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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

last modified: 2015-04-03 09:33:33 Contributors


  • 미 공군의 장거리 정찰기는 U-2에서 알아볼 수 있다.


왼쪽부터 디 에지(The Edge, 기타), 래리 뮬렌 주니어(Larry Mullen, Jr., 드럼), 애덤 클레이튼(Adam Clayton, 베이스), 보노(Bono, 보컬).


80년대 사진. 왼쪽부터 애덤, 래리, 보노, 에지.

Contents

1. 개요
2. 활동
2.1. 초창기
2.2. 80년대, 성공을 달리다
2.3. 90년대, 실험에 나서다
2.4. 00년대, 왕의 귀환
2.5. 기타
3. 영향
4. 음반

1. 개요

아일랜드의 록 밴드. 상업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모두 성공한 밴드이다. 아일랜드의 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이며, 세계에서 수입이 가장 많은 밴드 중 하나다.
대표곡으로는 "Sunday Bloody Sunday", "Bad", "With Or Without You",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 "One"[1], "Beautiful Day", "Vertigo" 등이 있다.

2. 활동

2.1. 초창기

1976년 9월 25일 더블린의 한 고등학교에서 결성되었다. 처음에는 U2란 이름이 아니었으며, U2란 이름이 된 것은 1978년이다. CBS의 눈에 띄어 1979년에 데뷔 EP Three를 내 아일랜드 내에서 인기를 얻었다. 1980년에는 영국으로 건너가 아일랜드(Island) 레코드와 계약하고 데뷔 앨범 Boy를 발표했고, 다음 해에는 두 번째 앨범 October를 냈다. 초창기에는 로큰롤을 기반으로 한 스트레이트하고 둔탁하면서도 서정적인 멜로디가 인상적인 밴드였다. 이 시절 평론은 그럭저럭 좋았으나, 흥행에는 실패해 비운의 밴드가 될 뻔했다.

2.2. 80년대, 성공을 달리다

하지만 1983년 낸 앨범 War가 영국차트 1위에 올랐고, 이후 투어에서 매진 공연을 잇따라 만들어내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브라이언 이노를 만나 작업한 앨범 The Unforgettable Fire로 미국에서 차트에 오르며 승승장구한다. 그리고 1985년 라이브 에이드에 출연해 존재감을 발산했다.[2] 그리고 마침내 1987년 The Joshua Tree를 내놓았다. 이 앨범으로 그래미 어워드를 석권하면서 세계적인 밴드로 떠오르게 된다. 이어진 The Joshua Tree 투어에서는 처음으로 대형 스타디움 공연과 거대한 조명놀이에 나섰고, 밥 딜런과 같은 다른 뮤지션들과 같이 연주했다. 이를 담은 앨범 Rattle And Hum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2.3. 90년대, 실험에 나서다

그러나 이후 멤버 간 음악적 견해 차이로 갈등을 겪었다. 보노와 에지는 좀 더 세련된 팝을 원했던 반면 애덤은 본연의 둔탁한 하드 록을 원한 것이다. 이들은 베를린에서 "One"을 녹음하며 갈등을 봉합하고 1991년 Achtung Baby를 내놓는다. 이 앨범부터 U2는 얼터너티브 록일렉트로니카 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아 여러 실험적 요소를 가미한 앨범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또 활발한 사회 활동도 시작했다.[3] 1993년 내놓은 Zooropa 앨범은 평은 괜찮았지만, 팬들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리기 시작했고, 브라이언 이노 없이 작업한 1997년 작 Pop 앨범은 차가운 외면을 받았다.

2.4. 00년대, 왕의 귀환

이를 의식했는지, U2는 실험을 끝내고 2000년대에는 다시 본래의 록 사운드로 돌아갔다. 브라이언 이노가 다시 참여한 2000년 작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앨범은 그래미상 주요 부문을 휩쓸었고, 22개국의 앨범 차트에서 1위에 오르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평단도 호평 일색으로 정상으로의 귀환을 축하했다. 2002년에는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서 9.11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공연을 열었다. 2004년에는 앨범 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을 발표하였고 투어를 통해 전세계의 돈을 쓸어갔다, 2005년에는 로큰롤 명에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009년에는 No Line on the Horizon을 내놓았다. 이후에는 360°투어를 다니며 세상에서 가장 큰 공연무대를 만들어 엄청난 조명놀이를 벌였다. 이후 2014년 2월에 새 싱글을 내놓았다.
2013년 말에는 1978년부터 35년간 함께한 매니저 폴 맥기네스가 떠났다. 그리고 마돈나의 매니저로 유명한 가이 오시리가 새 매니저가 되었다. 그의 영향인지, 유투는 공식 SNS 계정을 활성화하고 팬들과의 소통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전에 없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트위터 공식 계정을 U2.com에서 U2로 바꾸어 팬들의 의견을 물은 뒤 반응을 리트윗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텀블러 계정을 만들고 움짤을 올리기도 했다.
한동안 새 앨범 발매 소식이 없었는데, 새 앨범이 정말 뜬금없이 발표되었다. 2014년 9월 9일에 itunes 독점으로 새 앨범 Songs of Innocence를 무료로 뿌렸다! 정식 앨범 발매 예정일은 2014년 10월 13일.

2.5. 기타

초기의 진보적 성향이 많이 퇴색되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4]
앨범이 나왔다 하면 그래미 어워드를 쓸어가는 밴드이다. 흑인 음악가들은 웁니다 지금까지 총 6회의 시상식에서 수상했고, 34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22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2006년에는 최우수 록 앨범상, 록 부문 최우수 보컬상, 올해의 레코드상 등 5관왕을 석권했다.

3. 영향

현재 음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밴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 많은 음악인들에게 무수한 영감과 파급력을 주고 있는 밴드이다. 좀 과장하자면 소위 모던 록을 구사하고 있는 밴드들 중에서 이들의 영향을 받지 않는 밴드들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미국 출신인 더 킬러스라이브가 이들에 대해서 공공연하게 존경의 표시를 하기도 했으며, 최근 밴드들 중에서는 콜드플레이 후기 음악적 성향이 이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적, 이승열, 강산에와 같은 뮤지션들이 호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다만, 한대수는 이들을 별로 좋게 평가하지 않았다. 이유는 보노의 목소리가 너무 짜증나고, 디 엣지의 경우도 과대평가 받고 있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4.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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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철학적인 가사로 유명하며, 아름다운 가사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다만 노래가 나왔을 당시에는 가사가 너무 난해하다고 말이 많았던 모양. 사실 뮤직비디오를 다른 주제로 3개씩이나 찍은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난해하게 한 건 다분히 의도적인 것으로 보인다.
  • [2] 유투는 원래 "Sunday Bloody Sunday" "Bad" "Pride (In the Name of Love)" 세 곡을 연주할 예정이었지만, 갑자기 보노가 Bad를 부르던 중 객석으로 내려가 여러 여성과 춤을 추면서 "Sunday Bloody Sunday" 와 "Bad"만 부르고 무대에서 내려와야 했다. 그들은 뒤의 사람들에게 밀려서 곤란한 지경이었는데, 보노가 이를 보고 몸짓으로 여성들을 구하려 하였지만 스태프들이 이해하지 못하자 결국 직접 내려가 여성들을 밖으로 데려와 춤을 춘 것이었다. 이 장면은 전세계에 생중계되었고, 사람들에게 유투를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애덤과 래리와 에지는 빡침을 금할 수 없었다
  • [3] 이 시기의 사회 활동으로는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함께 작업한, 보스니아 내전을 비판한 "Miss Sarajevo" 싱글 발매가 있다. 1997년 Popmart 투어 때는 직접 사라예보로 가서 공연하기도 했다.
  • [4] 2009년 초에는 탈세 혐의에 연루되어 명성에 먹칠을 하기도 했으나, 3월 발매한 No Line on the Horizon이 빌보드 1위에 랭크되면서 싸악 묻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