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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80

last modified: 2019-11-16 01:09:13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특징
3.1. 공격력
3.2. 방어력
3.3. 기동력
4. 실전 사례
5. 평가
6. 한국군의 T-80U
7. 대중 매체에서의 T-80

1. 개요


T-80bv.jpg
[JPG image (Unknown)]

T-80BV

T-80u.jpg
[JPG image (Unknown)]

T-80U


youtube(EQWEOAT6PEA)
소련 시절에 제작된 다큐멘터리이다.


소련 육군이 개발한 전차.

기존의 소련제 전차들이 불나방 마냥 마구 터져나가는 것을 본 소련 군부가 급거 개발한 전차라 알려지기도 했지만 사실 둘은 전혀 상관 없다. T-72가 동네북으로 등극한 것은 80~90년대의 일로서, T-80이 개발되기 시작한 70년대 중반과는 당연히 상관없다. T-72의 몰락에 수습하기 위해서 개발된 것은 T-90으로, 이는 T-72B에 콘탁트-5 반응장갑과 T-80U급의 고성능 화기관제장치를 결합한 것이다. (T-80U의 1A45의 문제점을 해결한 1A45T를 장착한 것으로 추정.)

2. 역사

NATO 측 전차를 압도하기 위해 소련이 야심차게 개발하던 신세대전차 T-64는 신기술 도입(자동장전장치, 서방식 철제 소형전륜, 복합장갑, 대향피스톤엔진 등)에 굉장히 의욕적인 전차였으나, 당시 소련의 기술력과 품질유지능력이 이에 따라가지 못하였던 상황이었던지라, 신뢰성이 떨어졌다. 이에 따라 대안적 전차로 T-72가 개발되었으나 카르체프 설계국과 모로초프 설계국의 알력, 특히 그 정치적 후원자들의 알력과 타협으로 인해 소련의 주력전차는 2종으로 구분된 상태였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T-72T-64를 뛰어넘는 차세대 전차를 개발하여 소련군의 명실상부한 주력전차로 하기 위해 개념안 219번(Ob'yekt 219)의 연구가 레닌그라드 키로프 공장에서 니콜라이 포포프의 설계팀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기본적으로 이전부터 존재하던 고출력 가스터빈전차의 연구결과를 T-64에 적용하는 것이었으나, T-64의 (안 그래도 문제 많은) 구동계는 고출력 가스터빈에는 부적합하여 이를 수정한 것을 1976년에 T-80으로서 채용하도록 결정된다. 그러나 T-80을 단일 차세대 주력전차로 하려는 계획은 결코 실현되지 못했는데, 왜냐하면 (이제는 3개가 존재하는) 서로 일감을 뺏기지 않으려는 전차설계국/생산공장들의 소속지역, 그리고 (그들로부터 로비를 받는) 정치적 후원자들의 알력과 타협의 결과로, 소련은 마침내 서로 비슷한 급의 전차인 T-64/72/80 3종을 모두 주력전차로 생산 및 장비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76년에 처음 등장한 T-80은 사실상 엔진과 구동부 등을 가스터빈용으로 교체한 T-64A였으며, 동년 하르코프 모로초프 설계국이 더욱 발전된 장갑과 화기관제장치, 9K112 코브라 주포발사미사일시스템 등을 탑재한 T-64B를 개발하자 똑같은 사양으로 업그레이드를 수행하여 1978년에 T-80B로 제식화하였다. 이 T-80B 및 반응장갑을 부가한 T-80BV는 90년 CFE 조약체결과 소련 붕괴시까지 4300여대 가량 생산되어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러시아 전차세력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T-80U는 필리사열상을 장착하는 개량을 받은것을 보아 좀더 오래 굴려먹을 예정으로보인다.)

한편 T-80은 본래 T-64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인 만큼 T-64의 개발과정과도 관련을 맺었다. 1970년대말 하르코프 모로초프 설계국은 T-64B의 차기형으로서 개념안 476번(Ob'yekt 476)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이는 좀더 큰 포탑에 최신형의 복합장갑인 cellular filler를 사용한 장갑이라는 설이 있는 장갑과 고성능 화기관제장치를 장착한 것이었다. 1980년대 초 소련 군부는 개념안 476을 선택하는 대신, 이 전차의 포탑을 T-80에 이식한 전차의 개발을 지시했다. 이 프로젝트는 개념안 219A라는 프로젝트명 때문에 T-80A라고 불리우나 대량으로 채택되지는 않았다. 후에 주장갑에 세라믹을 도입한 T-80B가 등장했으며 이 전차에 콘탁트-1 폭발반응장갑과 신형 9M119 주포발사미사일시스템 등을 추가한 것은 개념안 219AS라고 불리었으며 이것이 T-80U로서 1985년에 정식 채용된다. 채용직후 등장한 콘탁트-5 신형 반응장갑이 장착되어 오늘날 우리가 보는 T-80U의 모습이 완전히 정립되었다. 극초기형 T-80U 가운데는 콘탁트-5 대신 콘탁트-1이 장착된 것이 존재했다. 또한 1985-1988년간 생산된 T-80UD(T-64BM의 1,000마력 짜리 6TD-1 디젤엔진 탑재)역시 콘탁트-1 반응장갑을 장착했다. 이중 일부가 CFE 조약에 의해 해체되는 사진이 공개된 바 있다. T-72B 및 T-80U에서의 뛰어난 콘탁트-5 반응장갑 도입으로 인해 러시아 전차의 방어력은 소련 해체후인 90년대 중반까지 서방에 대해 우위에 있었다고 평가된다. 또한 90년대부터 신형 가스터빈 엔진이 사용된다.

러시아가 심각한 경제파탄으로 인해 거의 아무런 전차도 신규획득하지 못했던 90년대 동안, 우랄열차공장은 전차생산 외에도 대규모의 철도차량 생산 사업을 통해 공장을 재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옴스크 트랜스마시는 가장 큰 사업부문이 전차생산이었으므로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이에 더하여 1995년에 러시아 정부가 비용절감을 위해 신규 주력전차 도입을 단일화하기로 결정하고, 미래 러시아군 주력을 T-90전차로 내정한 것은 옴스크 트랜스마시사(社)에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옴스크 트랜스마시는 T-80UM, 블랙이글 전차 등 기존의 T-80U의 단점들을 수정한 다양한 개량형을 통해 수출시장을 공략했으나 거의 전적으로 실패했다. 결국 옴스크 트랜스마쉬는 1999년에 부도처리되었다. 그리고 현재 UVZ에 흡수되어있는상황, 키로프설계국에서 떨어져나온 스패츠마쉬역시 비슷하다.

현재 유일하게 생산되는 러시아군의 주력전차는 T-90계열이며, 이는 우랄열차공장에서 생산된다. (단 2008년이후 생산이 끊겼으며 현제 차세대 중 기갑플랫폼 아르마타의 전차형을 위해 개편중인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T-80계열은 KBTM, 말리셰프 플랜트에의해 우크라이나에서 명맥을 이어가는중이다.


현재 운용중인 약 2~3000여대의 전차세력을 전부 신형으로 대체하기에는 매우 긴 시간이 걸릴 것이 예상되므로, 앞으로도 제법 오랫동안 러시아군에서 T-80계열을 볼 수 있을 것이긴 하다. 때문에 러시아군은 보유한 T-80을 지속적으로 개량하고있다. (앞에서 기술했다싶이 제한적인 개량이 T-80U에 가해지고있으며, T-80BV에는 개량하지않는다.)

또한 T-80UD의 개발사인 모로조프 설계국과 생산공장인 말리셰프 공장이 소련 붕괴 후 우크라이나로 넘어가면서, 우크라이나에선 지금도 꾸준히 T-80UD 계열의 개량형을 개발하고 마케팅에 열심[1]이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얼마간은 T-80의 새로운 변형이 수출시장에 등장하는 것을 계속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T-80UD 300여 대를 지른 파키스탄 외에는 사려는 나라가 아직 별로 없지만 경쟁입찰 때마다 꾸준히 입질을 시도하는 중. 특히 최근에는 프랑스와의 기술제휴해서 프랑스제 사격통제장치[2]와 120mm 활강포에 버슬형 자동장전장치를 탑재한 T-84 Yatagan까지 선보이고 있다.

3. 특징


T-80은 125mm 라피라(Rapira) 활강포 (T-80U일경우 2A46M-1) 와 포발사 대전차 미사일, 동축기관총을 장비하고 장갑은 주 장갑외에 콘탁트-5 ERA, 동력원으로는 GTD-1000TF or GTD-1250(T-80U일부 우리나라가 불곰사업때 들여온 물량이 바로 이물건을 장착한 물건으로, 얼마 생산되지않은 물건이다.)가스터빈 엔진을 장비하고 있다.

3.1. 공격력

T-80의 125mm 라피라(Rapira) 활강포는 최대 유효 사정거리가 4km 가량으로 큰 구경으로 포구초속 1700m/s를 달성할수 있어 기존의 115mm 활강포에 비해 더큰 파괴력과 더 나은 명중율을 자랑했다. 또한 사정거리 4~5km의 AT-11 스나이퍼 포 발사 미사일을 사용할수 있었다. 이 미사일의 장단점은 해당 항목 참조.

포탄은 전차 내부에 45발이 장착되며 자동 장전장치를 사용하여 험지나 장시간 사격에서도 변함없는 발사 속도로 포를 발사 할수 있다.

그러나 이 전차포는 그 특유의 자동 장전장치 때문에 적지않은 단점을 지니고 있다. 우선 발사 속도가 분당 8발로 기존 수동 장전은 물론이고 서방제 버슬형 자동장전장치를 사용한 탱크보다 발사 속도가 떨어진다.(대략 분당 12~15발)

자동장전장치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다. 분리식 장약을 사용하는 덕분에 철갑탄의 탄심 길이가 서방에 비해 비교적 짧아 이론상으로는 관통력증대가 서방제보다 불리하다는 점이다. 포탄의 관통력은 단면적당 충격량이 높을수록 관통력이 좋기 때문에 포탄의 관통력은 일반적으로 탄심의 길이가 길고 지름이 작고 탄심 무게가 무겁고 속도가 빠를수록 관통력이 좋다. 125mm포는 속도와 지름면에서는 서방제와 동등했으나 탄심이 거의 40%가량 짧았다. (탄심이 짧은 것은 사실이나 지름은 더 두꺼웠는데 그 이유는 관통력 증대를 위해, 3BM-26같이 강철 탄체에 텅스텐 탄심을 심어두거나, 3BM-42처럼 텅스텐 탄심 2개를 강철 탄체 속에 묻어두는 방식으로 탄을 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상 주장과는 달리 실제 냉전 당시에는 도리어 관통력에 있어서 소련제 125mm가 서방제보다 동등하거나 우위에 있었다. 80년대 서방진영의 L7 강선포용 105mm 철갑탄 중 최고 성능을 자랑하던 M833 이 2km 에서 400mm의 50% 보증관통력을 가지고 (1984년 배치), 120mm 활강포용 철갑탄인 미국의 M829A1(1988년 배치)가 2km에서 600mm 의 50% 보증관통력을, 서독의 DM-33(1987년 배치)은 470mm의 50% 보증 관통력을 가졌다. 반면, 동시기 소련제 3BM-32 125mm 날탄은 2km에서 560mm 의 80% 보증관통력을 (1985년 배치), 소련제 3BM-46는 2km에서 650mm의 80% 보증관통력을 가져 (1991년 배치) 소련제가 근소한 우위에 있었다. 소련의 해체 후에야 배치되는 프랑스의 OFL F1 및 OFL F2 는 2km에서 600mm 의 50% 보증 관통력, 미국의 120mm 활강포용 철갑탄인 M829A3는 2km에서 800mm 내외의 50% 보증 관통력을 가진다고 추정된다. 이러한 정보을 토대로 결론을 낸다면 서방제 120mm 전차포에 비해 열세라고 단정할 수 없다. 소련 해체 이후 우크라이나에서는, T-84에 125mm 활강포 대신 서방측 120mm 활강포로 교체해 보기도 했으나, 결국 그러나 최신형인 T-84 oplot-m 에 와서는 서방제 120mm 를 버리고 다시 125mm 로 갈아탔다.

또한, 알려진 이미지와는 달리 서방은 50% 관통을 보증관통력으로 책정하는 반면, 소련은 80% 관통을 기준으로 책정하여, 소련의 품질기준이 더 엄격하다.

게다가, 탄종마다 워낙 비밀에 부쳐져 있어 위에 수치들은 대부분 추정치로 맞지 않을 수 있다. 독일제 DM-33 의 실 관통력은 470mm~500mm 이나, 공식자료 공개 전에는 KE 600mm 로 무려 100mm 이상 뻥튀기해서 평가해온 것을 고려하면, M1 에이브람스의 전면장갑을 과장한 사례와 마찬가지로[3], 서방측 포탄의 자료도 뻥스팩일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장거리 교전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AT-11 포발사 미사일시스템을 탑재한다.[4]

T-80U의 사격통제장치는 기동간 사격에 필수적인 포신안정기능의 경우 상하 움직임은 훌륭히 컨트롤 했으나 좌우 안정이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알려진 바에 따르면 T-80의 탄도계산기는 탄도계산에 2초 이상이 소요되는데, 서방제 탄도계산기의 소숫점 초단위의 계산속도에 비하여 열세였으며 [5], 심지어 T-72의 계산속도보다도 훨씬 느리다. 이렇게 탄도 계산이 느려진 이유는 측풍감지기의 탑재로 계산에 측풍 변수가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측풍감지기 탓에 계산속도가 느려지는 것은 유명한 서방제 전차인 레오파르트2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러시아제만의 문제는 아니다. 르끌레르 등에 탑재되는 서방제 신형 사통장치의 경우 해당 문제가 이미 해결되어 있으며, T-14의 경우는 이 문제를 해결했을 수도 있다.

근데 2A46M 라피라 전차포는 날탄의 경우 포구초속이 1700m/s를 상회하여 이 엄청난 초기 비행속도를 기반으로 1500m대 까지의 탄도가 거의 직선에 가깝기 때문에(매우 완만한 곡선) 1500m 내외의 거리에서는 또는 그 이하에서는 별도의 사통의 작동 필요없이 기본 배틀사이트 상태에서 명중율이 높은 편이다. 탄속이 빠르고 탄도가 일직선에 가까우며 1000m에서 도달시간이 0.6초 수준이다. 이는, 라피라 전차포의 분리형 포탄구조상 제한적인 질량으로 인한 관통력 향상에 있어서의 구조적인 불리함를, 탄속 증대 방식에 의한 운동에너지 증진으로 관통력을 향상시키는 해결방법에서 발생한 부수적 효과에 기인한 것 으로서, 냉전시대 주전장으로 상정한 유럽 지형은 완만한 굴곡의 언덕들로 이루어진 평원 지대로서 평균 교전거리는 2km 내 이며 그 이상의 장거리에서의 교전가능성 전술적으로 무의미한 가정으로 추정되고, 근거리에서는 사통의 계산작동 없이 신속하게 즉각적으로 발포가 가능하여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사통의 작동 없는 직접 사격의 경우 1500m에서의 명중률은 70% 가량으로 추정된다. 일례로 1998년 그리스 육군 전차 도입사업에서 1500m 거리의 표적에 30km 속도로 기동간 사격해 10발 중 9발을 맞추는 평가항목이 있었다. T-80UE와 T-84도 이 사업에 참가했는데 모두 6발을 맞추면서 서방제 첼린저 2와 함께 낙제점을 받았다.[6] M1, 레오파트2, 르클레르 같은 서방 전차들은 통과한 시험이었다.

또한 열상장비가 열악하여 야간전에서는 기존 2세대 전차 수준의 액티브/패시브 적외선 장비를 사용하며 덕분에 야간전이나 악천후에서는 서방제 전차에 비해 표적획득이 힘들었다. 게다가, 반응장갑을 장착할 정면 자리에 루나(Luna) 광증폭기를 장착한 바람에 방어력 면에서도 상대적으로 약점으로 작용한다.
허나 해당부분은 장갑력이 30도 기준으로 하여도 KE 620mm 이며, 직접 정면에서는 KE 780mm 가 넘어가는 부분이다. 게다가 T-80자체가 서구권 전차들보다 체급이 작아서, 비율적으로는 넓어보여도 실제로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후 T-80의 개량형 중에는 광증폭기를 탈거한 자리에 반응장갑을 증설한 형식이 있는 반면, 전차장용 레이저 거리측정기를 탑재한 형식도 존재하는 것이 그 이유다.

그래도 냉전시대에는 서방제 전차들도 지금처럼 튼튼한 방어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공격력도 지금처럼 강력하지 않아 T-80BV라면 몰라도[7] 강력한 방어력과 포발사 대전차미사일을 갖춘 T-80U라면 근거리, 장거리 모두에서 충분한 우세를 점할 수 있었다.

3.2. 방어력

방어력은 40톤 수준의 작은 전차였던 만큼 T-80BV까지는 APFSDS 대비 440~500mm 정도로 상대적으로 90년대 이후 배치된 서방의 3세대 전차에 비하면 열세였다.[8] 그러나 85년에 배치한 T-80U는 신형 복합장갑과 콘탁트-5를 장착하면서 APFSDS 대비 780mm 의 장갑력을 확보하여 문제를 해결하였다. 불곰사업때 평가받을 당시 M1A1, K1 같은 전차들과 비교해 방호력은 더 우수했다고 한다.
콘탁트-5를 제거한 기본 장갑력의 경우 가장 장갑두께가 얇은 30도각도 기준으로, T-80U의 포탑 장갑력은 APFSDS 대비 620mm이고, 용접장갑형 포탑을 탑재한 T-80U 최후기형 및 T-80UD의 경우 기본장갑력만 APFSDS 대비 700mm~ 750mm에 이른다.

콘탁트-5의 경우 APFSDS에 대하여 기본장갑 대비 20%가량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전 문서에서는 T-80U의 장갑력은 M1A1HA에 비하면 열세라 주장하였나, M1A1HA는 전면장갑이 KE 600mm 내외라서, 사실상 100mm 이상 여전히 T-80U가 우위에 있다. 공식자료 발표 전까지만 해도 M1의 전면장갑을 KE 450mm~500mm 로 추정하면서, 그마저도 추정가능 최대치 500mm 를 기정사실인 과대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후속하는 개량형인 M1A1, M1A1HA, M1A2 에 까지 추정 장갑력을 100mm 이상 연쇄적으로 과대 평가해왔다.

헌데 90년대 중후반 이후에 등장하기 시작한 T-80UM1 Bars나, 블랙이글등 능동방어 장치가 장착되어 대 미사일 방어력이 크게 강화되어 제작사 측은 대 미사일 방어능력이 3배나 올라갔다고 광고했었다.(지금은 제작사 옴스크 사가 부도나버렸다.)
대표적으로 쉬토라-1(Shtora-1) 소프트킬 방식의 능동방어 장비가 있는데 이 시스템은 적외선 교란장치, 레이저 감지장치, 연막장치 그리고 시스템 통제장비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적의 대전차 미사일 조준징후 - 레이저 빔이나 혹은 아레나(Arena)와 연동되어 대전차 로켓이나 미사일등이 감지되면 자동으로 승무원에게 경고하며 우선적으로 자체 교란장치로 미사일 유도장치에 대한 교란을 시도하며 이것이 통하지 않으면 미사일이 접근하는 방향으로 포탑을 돌려 연막을 처서 미사일의 명중을 막는 방식이다. 연막탄 발사 절차는 자동적으로 진행된다. 또한 아레나 하드킬 방어장비가 있는데 이것의 정보는 T-90 참조.

몇몇은 드로즈(Drozds) 하드킬 방어장비를 하고있는데 이 시스템은 107mm 로켓 8발과 레이더로 구성되어 있어 1km 이내에 접근하는 미사일을 감지하여 자동으로 파괴한다. 단, 드로즈 하드킬 장비는 전방위를 방호하는 아례나와는 달리 전방 60도 범위에 대해서만 방호를 제공한다. 물론 전방위를 방호할 수는 있지만 그러려면 포탑을 돌려야 한다(…).

다만 T-80는 태생적으로 동세대 전차에 비해 작아 측면장갑의 방어력이 약했으며 설상가상 자동장전장치의 위치가 낮아 측면이 피격되면 쉽게 무력화 되었다. 거기에 소련제 전차들의 특징인 예비탄을 여기저기에 쑤셔박는 것도 여전해서 T-72가 겪은 탄약 유폭문제 역시 동일하게 가지고 있었다. 과거에는 인터넷 상에서, 소련의 전차가 협소한 이유는 고질적인 엔진기술 부족에 기인하였다는 뇌피셜이 있었다. 허나 소련은 T-34 이래로 전통적으로 전차를 소형화 하는 것과 기동성 향상, 및 생산성과 신뢰성을 중요시 하였다. 특히 엔진문제로 실패한 초기형 T-64의 경우가 중요한 예로서, 전고와 전폭을 최소화 하기 위해 탑제할 엔진용량을 과도하게 축소하면서도, 기동성 향상을 위해 무리하게 엔진 출력을 증대시키려 하면서 실패하였다. 즉, 소련제 전차는 엔진문제로 전차가 소형화된 것이 아니라 전차를 소형화하기 위해 승무원을 우겨넣고 엔진도 소형화를 추구한 것이다. 다시말해, 소련제 전차용 가스터빈/디젤엔진의 출력부족은 엔진 자체의 기술력문제보다는 엔진을 과도하게 축소하면서도 고기동성을 위해 과도하게 출력을 증대하시키는 달성하기 힘든 목표에 기인하였으며, (동시에 저렴한 생산성과 신뢰성까지 확보한다는) 당시의 기술적 한계로, 소형화와 불만족스럽지만 수인은 가능한 수준의 출력(과 생산성, 신뢰성)정도로 만족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소련제 전차의 엔진문제는 달성하기 힘든 설계사상에 기인한 것이었지, 기술력문제는 부차적인 원인이라 할 것이다. [9] [10]

T-80는 본질적으로는 서방제 전차보다 한 체급 아래 전차로서 중량이 거의 20톤 차이가 나는데, 서방제 전차 이상의 높은 방어력을 달성한 점에서 기본설계의 우수성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현재도 40톤 수준의 전차중에서는 기본은 하는 방어력을 지닌다.

이외에 T-80의 방어력에 관한 내용은 링크 참조. https://blog.naver.com/solbongkj1sa/221470118644

3.3. 기동력

초기 T-80BV는 42톤 중량에 GTD-1000T 엔진을 장착해 동세대 전차중에서는 나름 준수한 기동력을 갖추었다.


고속 기동중 주포를 발사하는 T-80U. 나.....날았다!

강력한 기동력을 갖추어 서방에서는 플라잉 탱크란 별명을 붙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보통 착각하는 것이지만, 전투중량이 46톤으로 늘어난 T-80U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80년대 생산분은 1100마력 GTD-1000TF 엔진을 탑재하여 주적이였던 레오파르트2M1 에이브람스에 비해 기동력이 떨어젔다. 1990년에야 신형 GTD-1250이 장착돼 이때부터 세계 정상급 기동력을 갖추었다.

그러나 사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거지만 이 기동은 동세대 레오파르트2M1 에이브람스 또한 가능했고 90년대 중후반 이후 1500마력 50~60톤 내외 전차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이 기동은 T-80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그래도 가스터빈 엔진을 장착한 덕분에 가속력은 훌륭했으며 단점으로는 태생적으로 연비가 매우 떨어젔다는 점이다. 한국군의 실제 T-80U 운용시 러시아 측의 설명과 다르게 항속거리는 겨우 300km(!) 수준이었다고 한다. 다만 이것은 후면 추가 연료탱크를 떼어낸 상태로서 실제 거리는 450km 수준이다. 근데 이걸 장착하면 피격시 엔진이 쉽게 탈 수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더 정확한 정보는 M1 에이브람스 참조.

그밖에 신뢰성 높은 현수장치와 넓은 궤도 덕분에 험지에서 기동이 매우 우수하고 도하장치가 충실해 5m 깊이의 물까지 건널수 있어 전체적인 기동력은 높은 수준이다. 또한 가스터빈엔진의 나쁜 연비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T-80에 1000마력급 디젤엔진을 장착한 파생형이 T-80UD로서 1991년까지 500대가 생산되었고 이 중 소련이 대금을 지불하지 못한것으로 추정되는 350대 가량은 하르코프 공장에 남겨져 있다가[11] 후에 우크라이나군 용으로 현역에 투입되게 되며 이중 35대는 아예 우크라이나군에 쓰이지도 못하고 파키스탄으로 바로 물 건너갔다. T-80U 자체는 92년까지 생산된것으로 추정하는데 정확히 몇 대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공개된 CFE 조약 관련 문서에 따르면 1989년 우랄 이서에 배치되어 있던 수량은 T-80UD를 포함해 410대라고 한다[12]. 물론 T-80B는 3000대 이상이 생산되었다. 그것도 5-10년 안에![13]

4. 실전 사례



사실 실전사례는 잘 안 알려져 있지만 T-80UD가 먼저 만들었다. 그것도 모스크바에서!! 보리스 옐친이 인민대의원의회에서 다수당인 러시아 공산당에 불만[14]을 느끼고 제헌 의회를 따로 만들자 인민대의원의회는 옐친을 탄핵하고 러시아 공산당국회의사당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는 대륙의 기상을 보여주자[15] 옐친 역시 그 유약한 모습을 다 버리고 주위의 근위 기갑사단을 불러들여 대륙의 기상이 어떠한건지 다시 보여줬다. T-80UD의 일제 사격아래 러시아 국회의사당은 크게 부서졌고 공산당은 항복했다. 별로 좋지 않은 곳에서 데뷔했지만 일단은 시작은 성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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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된 T-80BV.

T-80U가 3세대 전차와 대적가능한 강력한 전차였던 것과 달리, 냉전 종료 후 러시아 전차전력의 중핵인 T-80BV(콘탁트-1 장착 T-80B)는 체첸 사태에서 T-72와 거의 다를 바 없는(경우에 따라서는 더 낮은) 생존성을 보여주었다. 더군다나 당시 투입된 많은 부대가 애초에 T-80을 운용한 경험이 없는 러시아 국경 내의 후방 군구 소속이었으므로 병참과 운용에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였다. 대부분의 전차병은 정차 및 대기중에도 디젤엔진 탑재 전차를 운용했을 때처럼 그대로 시동을 켜두었고, 그래서 공회전시에도 부하시와 별 차이없이 연료를 대량 소비하는 가스터빈엔진은 안그래도 부족한 러시아군의 병참능력에 더 큰 부담을 지웠다. 또한 T-80의 Korzina(바구니)타입 자동장전장치는 탄약 탑재위치의 문제 때문에 T-72에 비해 측면피격시 더 위험하다는 점이 밝혀졌다. 덤으로 가스터빈연료(등유)는 디젤연료(경유)에 비해 인화성이 높다. 무엇보다 몇대는 ERA 반응장갑을 몇개밖에 설치하지 않았고 나머지는 그 자리에 보관용 나무상자를 집어넣고 전투에 임했으며 또한 시가전에서 과거 소련군 출신이라 T-80의 약점을 속속들이 알고있는 체첸반군들이 겨눈 RPG-7을 피할 생각않고 느릿느릿 기어다니다 피격당해 전소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비록 1차 체첸 분쟁에서의 총체적인 실패는 개별 무기체계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소련 붕괴 후 러시아군의 총체적인 파탄 때문이지만, 이때의 실패는 T-80 계열의 프리미엄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 이는 부분적으로 T-72 계열의 우랄열차공장이 유일한 차기 러시아 주력전차 생산자로 지정되는 결과에 기여했다.

제 2차 체첸-러시아 전쟁에서는 1차 전쟁의 작전실패를 본보기로 삼아 폭발반응장갑을 충실히 장착했으며 보병부대등과 충분한 협동[16]아래 고속기동을 하며 적과 맞서서 피해를 줄이고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했다.

5. 평가

T-72에 비하면 매우 훌륭한 전차였다. 그리고 T-64의 직계 후손인지 의심될정도로 기계적 신뢰성도 높았다. 반응장갑도 훌륭했고 또한 사격 관제 시스템도 기존의 소련전차보다는 훌륭해 레이저 거리 측정기를 갖추었으며 기동간 사격도 가능했다. 덕분에 나름 동구권 최초의 3세대 전차로 그나마 서방전차와 전면 대결이 가능했으며 지속적인 개량덕분에 일부 면에선 뛰어난 점도 있었다. 그러나 작은 체구의 한계때문에 동세대 타 전차에 비해 확장력이 매우 열세였고 이점은 125mm 활강포에서 확인된다. 후에 개량형으로 나온 블랙이글이 서방전차처럼 보기륜이 7개로 늘어나 기존 T-80에 비해 대형화 된것도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설상가상으로 제작사의 부도로 T-80의 맥은 완전하게 끝났다고 봐도 좋다.

그런데 소련 자체의 연구에 의해 "T-80U는 T-72B에 비해 전투 효용성이 불과 10% 더 높을 뿐이지만, 가격은 3배" 라는 결론이 내려진 바 있다.[17] T-80U는 소련군의 교리에 비추어 볼 때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전차였던 듯하다. 사실 T-80에 고가의 가스터빈 엔진이 사용되었음을 고려할 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다. 가스터빈 엔진은 특유의 고출력으로 전술적 수준의 기동성을 보장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대량의 연료소모로 인해 작전적 수준의 기동성과 보급선에 걸리는 부하 면에서는 디젤엔진에 비해 훨씬 불리하다. 즉, 돈 값을 제대로 못한다는 얘기. 게다가 1980년대 T-72 계열의 V-46 디젤엔진의 가격이 9,600루블일 때 GTD-1000 가스터빈 엔진은 104,000 루블T55한대가격...이라는 끔찍한 가격을 자랑했다.[18] 엔진 가격차이가 열한 배다, 열한 배.(...) 여기에 위에서 언급된 가스터빈 엔진의 높은 유지비까지 고려하면... 그리고 연비는 안 좋기로 악명이 높다. 당연한 결말이라면 당연한 결말.

그러나 전체 전차 구성품 중에 엔진이 차지하는 가격 비중(10% 가량)을 고려할 때, 가격이 3배나 차이나게 된 된 것에는 역시 T-80U가 T-72B에 비해 고성능의 장갑, 미사일 시스템, 화기관제장치 등을 탑재한 영향도 상당히 컸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투효용성이 "10%"더 높을 뿐이라고 평가한 대목에서 러시아 교리가 전차를 어떤 관점으로 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다만 아직도 많은 수량이 존재하는 만큼 향후 10년이상은 1선에서 그 자리를 지킬 것으로 보인다.

3세대 MBT 치고는 비교적 작은 덩치에 고출력 가스터빈 엔진을 달아 놔서 전술적 기동성이 매우 뛰어나다 못해 날아다닌다. 덕분에 밀덕들 사이에서는 "러시아에서는 비행기가 아니라 전차가 날아다닌다"는 드립이 있다.

6. 한국군의 T-80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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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의 T-80U 전차. 전차장이 쓴 헬멧을 보면 기계화학교에서 운용하던 시절임을 알 수 있다.

한국 육군에서는 불곰사업으로 1996년 1차 때 33대의 T-80U와 2002년 2차 때 2대의 지휘형 T-80UK 를 포함한 35대 및 다수의 부품과 함께 도입되어 적성국 무기 연구를 위해 테스트 되었다. 러시아군과 동일한 사양으로, 옴스크 트랜스마시 공장에서 러시아군용으로 인도를 기다리고 있던(그러나 정부가 대금 지불을 못해 인도되지 못하던) T-80U 차량을 그대로 우리나라가 들고왔던 것이었다.[19] 일종의 악성재고처리인 셈이지만 나름 땡잡은 것. 게다가 이 전차들은 러시아 본토에서도 극히 드문 GTD-1250 1250마력 가스터빈 엔진 탑재형이었다. T-80U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80년대 생산분은 GTD-1000TF 1100마력 가스터빈 엔진을 탑재한다.

불곰 사업 이전까지 소련 및 러시아가 T-80계열 전차를 해외에 본격적으로 수출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수출형 버전이 존재하지 않았다.[20] 이중 한 대가 현재 현대로템[21]이라고 불리는 구 현대정공에서 완전 해체되어 기술검토에 들어갔는데(나중에 재조립했다고) 미국 본토 TACOM(육군 전차·차량 사령부)과 TECOM(육군 시험평가 사령부)에서 비행기 타고 날아온 미군 기술진 입회하에 작업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후일 러시아에서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건-런처 시스템의 핵심 부품을 회수했다는 소문이 있으나, 사실과는 다른 듯하다. 일단 타국에 넘어간 전차의 부품을 도로 빼내오는 것도 어려운데다가 3기갑여단 예하의 T-80U는 적어도 2006년까지는 건-런처를 사용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탄약도 주기적으로 구매하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재미있는 전설이 있는데 처음 T-80U가 들어올 당시 러시아측 교관은 T-80BV 교관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덕분에 초기 T-80U에 문제가 생기면 한러 양국 기술자 모두가 도면을 얼싸안고 고민했다고 한다. 아아 공돌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개취급이구나…. 그리고 기술유출을 막기 위한 무전기를 떼어내는 등 기본적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아 놀랐다고 한다(#).인생 망했다고 생각해서 기술유출 방지를 잊었던 러시아 그냥 가져가라 가져가, 다가져가!


더 이상 알아낼 것도 없고 양도 상당했으며 성능도 한국군이 사용하기 모자랄 것이 없었다. 덕분에 2004년부터 BMP-3과 함께 동부전선의 제3기갑여단에 이관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러시아제 무전기는 다른 아군 전차 및 군 통신망과 연결하기 위해 국산으로 교체했고 러시아제 차량 승무원용 헬멧 역시 국군 것으로 바뀌었다. 이외에 나머지는 러시아에서 들여온 그대로 운용중이다. 심지어 도색조차 그대로 쓰다가 부대 개편 후에야 한국군 위장도색을 썼다.

부품을 러시아에서 몽땅 사와야 한다는 점 때문에 운용비가 비싸다고 한다. 그리고 가스터빈 엔진. 거기다 숫자도 적으니 비싸질 수밖에 없다. 부품을 몽땅 러시아에서 사오는 것에다 고작 30여대분밖에 필요로 하지 않으니 말이다. 또한 열상장비가 장착되어 있지 않아서(?!) 전투 운용에 제약이 있다고 한다.

기계화학교에서 근무한 분에 의하면 전고가 상당히 낮다고 하는데 M48과 비교해보면 딱 체감이 될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90년대 중순 국방일보에선 김정일이 이게 도입된 뒤 밤잠을 설쳤다는 기사를 써댄 적이 있다. 국방일보도 엉터리 기사가 많긴 하지만…. 물론 김정일이 실상을 자세히 알고 밤잠을 설쳤을 가능성은 별로 없지만 왕 앞에서 패배적 발언을 할 군 간부가 얼마나 될까? 북한군 군부가 멘붕했을 가능성은 있다. 북한은 T-72조차도 대량 도입이나 입수에 실패하였고 사실상 중동에서 입수해서 복제한 T-62와 T-62계열 변종으로 근 30년이상 머물러 있는 중이다. 여기서 김정일이 밤잠 설치는 걸 알 정도로 남한의 정보력이 대단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 K-1같은 경우, 일반적으로 북한전차보다 우수한 전차라 알려져 있다. 허나 서방권 전차를 입수할 기회가 사실상 없는 북한으로서는 공표되어 있는 정보 외에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전차인 것이다. 하지만 T-80같은 경우는 구소련에서부터 이어지는 러시아의 최신전차이므로 적어도 북한 전차보단 우수한게 확실한 전차다.

당초엔 2015년 즈음에 퇴역이 예정되어 있었다. 위에 언급했듯이 유지비 문제도 있고, 부품수급이 어려운 문제가 있어서 고장 문제 등이 발생할 경우 더 이상 굴리기 힘들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쓸만한 무기를 쉽게 퇴역시키지 않는 한국군 특성상 몇 번이고 퇴역 예고가 번복되어 2017년 7월 시점에서도 현역으로 운용 중이다. M48 초기형도 아직까지 굴리는 나라이니...


7. 대중 매체에서의 T-80


  • 아머드 워페어에서 등장한다. 흔히 아는 U형의 등장 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현재 공개된 모델은 아무런 반응장갑도 달지 않은 초기형이다. 대전차 미사일을 뻥뻥 쏴대신다.

  • 월드 인 컨플릭트에서 T-80U가 등장한다. 다른 진영의 전차들과 능력치는 같다. 트레일러에서는 T-80BV가 출연하였다.

  • 워게임 시리즈에서 등장. 여기서는 다양한 종류의 T-80들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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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그 종류가 아주 다양하다. 구소련의 주력전차였던 T-55부터 T-80이랑 T-72까지 개조할 수 있는 키트들을 제안하고 있으며 심지어 140mm 활강포까지 제안했던 적이 있다.
  • [2] 프랑스의 방위산업 기술력은 결코 우습게 볼 수준이 아니다. 일례로 첼린저2의 차장조준경도 프랑스의 SAGEM사에서 제작한 조준경이고 세종대왕급 구축함에 탑재된 EO/IR센서도 프랑스제이다.
  • [3] 2010 공식 자료로 전면장갑이 KE 400mm 로 밝혀졌으나, 그 전까지만 해도 KE 500mm 가 진실인 양 뻥튀기해서 평가했다. 같은 연유로 탄종의 관통력 역시 상당히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 [4] 물론 70년대 초중반 급속도로 증강되던 NATO의 대전차 미사일과 공격 헬리콥터 등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 [5] 도대체 그 잘난 서방제 전차란 것이 무엇인지가 궁금하다. AMX-30, 첼린저, OF-40 등은 필요할때마다 '서방제'라는 범주에서 자의적으로 제외하고 다시 송환한다. 70-80년대의 나토군 주력전차는 고려조차 않고, 전면장갑이 400mm에 불과한 M1 에이브람스는 에이브람스 시리즈에서 고의적으로 언급을 생략하여 마치 존재조차 하지 않는 것 취급을 한다. 소련이 70년대 T-80B에서 이미 구현한 헌터킬능력을 미국은 소련 해체 후 90년대 중반의 M1A2 에 와서야 등장하는데 이러한 언급은 한줄도 없다. 소위 '서방제 전차'는 소련 해체 후 90년대에야 등장하는 전차만을 지칭하면서, M1A2의 주포에, 첼린저 2의 전면장갑, 레오파트 2의 엔진, 르끌레르의 전자장를 탑재하고, 소련 해체로 콘탁트-5등의 유출로 장갑특성에 대한 분석이 완료되어 그 후에야 배치되는 대응 탄약들을 시간을 초월하여 무장한 무적의 완벽한 짬뽕전차인 듯 하다. 프랑스의 AMX-30은 중동제인가?
  • [6] 다만, 이는 냉전 종식후의 경제난으로 인한 장비의 관리부족 및 승무원의 질적 저하를 고려해야 한다. 심지어 국제대회에서도 10년간 관리 없이 치장물자로 방치된 T-84를 T-64BM 승무원이 몰고 참가한 사례도 있는 것을 보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사정이다.
  • [7] 그래도 M1 에이브람스나 레오파르트 2 A2, AMX-30B등 80년대 중반의 서방제 3세대전차에 대하여는 대등한 대결이 가능한 수준이다.
  • [8] 그래도 80년대의 M1 에이브람스보다는 장갑력이 우수했다
  • [9] 애시당초 서방권이라고 해서 소련보다 엔진기술이 우세하다고 주장할 수도 없다. 미국은 전차용 고출력 디젤엔진의 개발 실패로 기술이 없어서 자국산 엔진으로는 가스터빈엔진 외에는 대안이 없고, 독일은 전차용 고출력 디젤엔진기술은 있었으나 가스터빈엔진은 기술 자체가 없다. 그 외 소위 서방국가라는 프랑스나 영국, 이탈리아도 디젤엔진이 독일제에 비하여는 시원찮다. 물론, 프랑스나 이탈리아는 서방권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모를까.
  • [10] 도리어, 냉전시대에는 오로지 소련만이 3세대 전차용 고출력 디젤엔진(T-80UD)과 가스터빈엔진(T-80U) 모두 개발에 성공하고 배치, 양산한 국가다. 소련의 전차개발에 있어서 관료주의와 비효율적 투자를 비판할 수는 있어도 '서방권'보다 기술력이 열등하다는 주장은 전형적인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
  • [11] Zaloga, Steve J., T-80 Standard Tank: The Soviet Army's Last Armored Champion, Osprey, 2009, p.27
  • [12] Zaloga, 2009, p.24
  • [13] 러시아에서 가장 활발히 전차생산이 되던 해에는 T-90계열을 200대가 약간 못되는 양을 뽑은 수준이다. 저 수치라면 적으면 300대, 많으면 600대이다!
  • [14] 옐친이 앞뒤 안가리고 시행한 자본주의 정책. 정확히 통화 급증및 민영화 정책으로 물가가 폭등하고 복지시스템이 박살나자 러시아 공산당은 천천히 그리고 합법적으로 지지율을 높인 상태였다
  • [15] 이때 모스크바 시민들은 옐친의 실책때문에 대다수가 인민대의원의회를 지지하고 옐친에 맞써는 시위를 벌였다. 2년전 고르바초프 감금 쿠데타시 옐친을 지지하면서 시위대를 조직한것과는 정반대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물론 옐친은 전경을 투입해서 이들을 진압했고 시민 사망자만 2천명이 나왔다.
  • [16] 제병과 연합
  • [17] VNII 트랜스마시의 연구 결과. S.J.Zaloga, "T-80 Standard Tank", osprey new vanguard series 152 (2009) p.25 에서 재인용
  • [18] Mikhail Baryatinskiy, "Main Battle Tank T-80", p.37
  • [19] S.J.Zaloga, "T-80 Standard Tank", osprey new vanguard series 152 (2009) p.34
  • [20] 다만 1990년대 초반 모로코에 5대를 판매했으며 92년에는 영국에도 한 대를판매하였다. 또한 스웨덴 전차 도입사업에 참가하기도 했으며, 아부다비에서 열리는 국제 방산전시회(IDEX)에는 93년부터 참가하였다. 게다가 우리나라에 도입된것과 비슷한 시기 키프로스에서 40대를 도입하였다.
  • [21] 전철만드는 그 회사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