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T-34

last modified: 2015-08-28 03:44:10 Contributors

Contents

1. 소련의 중(中)전차 T-34
1.1. 개요
1.2. 시작
1.2.1. T-34/57
1.2.2. T-34/76
1.2.3. T-34/85
1.3. T-34를 만들기 시작해서 '그냥 많이' 만들었습니다
1.4. 대전 직후
1.5. 6.25 전쟁북한군의 운용
1.6. 현대
1.7. 장단점, 기타
1.7.1. 장점
1.7.2. 단점
1.7.3. 독일에서의 평가
1.8. 총평
1.9. 매체에서의 등장
2. 미국의 프로토타입 중(重)전차 T34
3. 다연장로켓 T-34

1. 소련의 중(中)전차 T-34

한국인에게 가장 유명할 T-34/85, 서울 시청 앞의 조선인민군 215번 전차.


제2차 세계대전기의 소련군 기갑장비
전차경전차T-27, T-37, T-38, T-40, BT 전차, T-26, T-50, T-60, T-70
中전차T-28, T-34, T-44
重전차T-35, KV-1, KV-85, KV-2, IS-2, IS-3
랜드리스 전차M3 스튜어트, M3 리 / 그랜트, M4 셔먼, 발렌타인, 처칠, 마틸다
자주포ZiS-30, SU-76, SU-85, SU-100, SU-152, SU-122, ISU-152, ISU-122
장갑차D-8, BA-3/6, BA-64
프로토타입SU-14, Antonov A-40, T-43, SU-100Y

제2차 세계대전기의 나치 독일군 기갑장비
장갑차 반궤도 장갑차 Sdkfz251 하노마크
장륜 장갑차 Sdkfz222, Sdkfz232, Sdkfz234 퓨마
전차 경전차 1호 전차, 2호 전차
중(中)전차 3호 전차, 4호 전차, 5호 전차 판터
중(重)전차 6호 전차 티거, 6호 전차 B형 티거 2
돌격포 3호 돌격포, 4호 돌격포, 4호 돌격전차 브룸베어, 슈투름티거, 돌격보병전차 33B
구축전차 마르더, 헷처, 4호 구축전차, 나스호른, 5호 구축전차 야크트판터, 페르디난트/엘레판트, 6호 구축전차 야크트티거
자주포 1호 자주포, 베스페, 2호 자주포, 그릴레, 훔멜, 게쉬츠바겐 티거
노획전차와 개조품 35(t), 38(t), 소뮤아 S-35, 샤르 B1 bis(GW-B2), T-34, 호치키스 H35 (GW-39H), FCM 36 (GW-FCM36)
프로토타입 경 트랙터, 기갑 자주포 4호(Sd.Kfz. 165/1), 판터 2, 8호 전차 마우스, E-100
페이퍼플랜 3/4호 전차, VK 1602 레오파르트, 7호 전차 뢰베, 9호 전차, 10호 전차, E 시리즈, 라테, 몬스터
그 외 골리아트, 보르크바르트 4호, 600mm 자주박격포 칼, (독일 기갑 병기/기타)

제2차 세계대전기의 이탈리아군 기갑장비
전차경전차Fiat 3000, CV 33, L3/35, L6/40
中전차M11/39, M13/40, M14/41, M15/42, 하리아노
重전차P26/40
노획 전차T-34
자주포/대전차 자주포Semovente L40, Semovente 75/18, Semovente 75/34, Semovente M43, Semovente 90/53

베트남전기의 월맹군 기갑장비
전차경전차PT-76
MBT T-55, 59식 전차, T-34/85
APCBTR-60, BTR-50, BMP-1, 63식 장갑차
자주대공포ZSU-57-2, ZSU-23-4 쉴카



급하게 대량생산을 했기 때문에 연결부위 등이 무척 조잡하다. 멋보다는 강인함에 초점을 둔 것이다. 물론 T-34가 2차 대전 중에서 가장 뛰어난 전차는 아니었지만 주어진 임무는 확실하게 수행해냈고, 그 엄청난 생산량은 전쟁의 균형을 뒤집어버리기에 충분했다
― 영국 크롬웰 프로덕션, '2차 대전사'

"어떤 얼간이들은 소련의 T-34가 2차 대전 최고의 전차라고 합니다. 소련은 이걸 9만대나 생산해냈죠. 그래서, 당시에 그들이 우리 편이었던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군요."
히스토리 채널, 밀리터리 Q&A

T-34를 만들기 시작해서 그냥 많이 만들었습니다.
― Aryeh Nusbacher박사[1] 디스커버리 채널, Top Ten-Tanks편에서.

군수공장도 아닌 곳에서 문맹 노동자들이 제작하고, 트랙터를 몰던 농민들이 운전하며 전장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당대 최고의 군인들이 조종하는 정교한 전쟁기계들을 짓밟아버리고 베를린을 정복했다.

1.1. 개요

youtube(itFXEhMQfLM, width=360, height=315)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소련에서 생산되어 기갑부대의 주력으로 운용된 중(中)전차. 소련이 만든 걸작 전차로 알려졌으며, 성능도 준수하지만 생산하기 쉬운 구조 덕분에 많은 수를 확보할 수 있게 되어 독일 기갑 전력에 비해서 열세였던 소련의 상황을 반전시키고, 전쟁을 이기게 해 준 원동력이 되었다. 생산된 수나 전쟁에서의 중요성, 실전 검증 등을 기초로 역사상 가장 거대한 영향력을 끼친 전차로 꼽아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이후 한국전쟁에서 조선인민군의 전차로 활용되었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유명한 전차다.

소련군이 붙인 별명은 로지나(Родина:조국, 모국#)이라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많이 쓰인 말이 아니었으므로 현지에서 찾을 때는 그냥 T-34라고 찾아야 알아듣는다.

1.2. 시작

T-34는 BT-7M 쾌속전차의 후속 전차로 개발되었다. 1939년 8월 76.2㎜ 전차포를 장비한 A-32가 신형 중전차(中戰車)로 선정되었지만 1939년 12월 발발한 핀란드와의 겨울전쟁 결과 A-32의 성능부족이 드러나면서 생산 계획이 취소되고 말았다. 이후 A-32와 경쟁에서 탈락하였던 A-20 설계팀이 A-20의 장갑두께를 1.5배 강화한 개선안을 제출하고, 1939년 12월 이 개선안이 T-34로 제식 채용되었다

하지만, T-34가 채용되기까지의 과정은 매우 험난했다.

1940년, T-34 전차의 채용이 사실상 확정되어 제183공장에서 500대,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에서 100대를 생산하기로 계획되었던 차에 독일로부터 3호 전차 2대가 수입되는 난항을 겪게 되었다.

당시 소음에 있어서는 치하와 자웅을 겨룰 정도로 요란하기 그지없었던 T-34에 비해서 비교적으로 소음이 적은 3호 전차는 소련 기술진을 경악하게 만들었고 안정된 서스펜션과 넓은 포탑 내부 공간, 그리고 전차병 개개인에게 지급되는 차내 인터폰 및 우수한 성능의 무전기 등 T-34가 3호 전차에 비해 유리한 것은 공격력과 방어력 뿐이었다. 하지만 당장 T-34가 못 쓸 물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포병 사령관 그리고리 쿨리크 원수는 이걸 빌미로 계속 시비를 걸면서 T-34의 설계 및 생산 자체를 원천 봉쇄하려 한다.

쿨리크 원수는 1890년생으로, 스탈린의 최측근으로 막강한 권력을 보유한데다가 보수적인 육군 장성이었다. 게다가 코시킨 기사의 상관인 리하초프가 자신의 라이벌이라는 이유까지 있었으니 어떻게든 T-34의 채용을 막기 위해 애를 썼다. 'T-34에 탑재될 76.2mm 주포가 너무 약하니 107mm 주포를 탑재하라', '이런 전차보다는 BT 계열의 쾌속전차를 생산하는 것이 낫다!' 식의 태클을 시시건건 걸어왔던 것이다.

덕분에 레닌그라드 전차공장 지대에서 수석 설계자로 근무하다가 쾌속전차를 개발하던 하리코프 기관차 공장으로 전속된 후 이 곳에서 설계 중이던 신형 쾌속전차 A-20을 기초로 보다 강력한 76.2mm 주포를 탑재하고, 장갑을 강화하는 한편 광폭 궤도를 적용시켜 유명한 T-34를 만들어서 T-34의 설계자이자 아버지로 불리는 코시킨 기사는 과로와 쿨리크 원수의 방해로 인해 결국 1940년 9월 26일, 42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하게 되었다.

그 이후 모로조프가 수석 기술자가 되어 설계는 재수정되었지만 쿨리크 원수는 이 때까지도 계속 딴지를 걸어 T-34M(A-43)의 개발이 완료될 때까지 기존 T-34의 생산을 중지할 것을 제의하는 판국이었다.[2]

결국 쿨리크 원수의 딴지 및 몇몇 악재로 인해 1940년 제183 공장과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에서 생산될 약 600대의 T-34/76은 겨우 117대만이 생산되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쿨리크 원수는 T-34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만행을 저질렀는데, 대표적인 것이 실탄을 낭비한다고 보병의 기관단총 도입을 막았고, 지뢰도 쓸모없다고 하다가 결국 바르바로사 작전 때 소련군의 대패를 초래했다. 후에 소장으로 강등된다. 그런데도 정신을 못차리다가 전후에 전화로 스탈린에 대한 험담을 하다가 도청에 걸려서 반역죄로 총살당했으니 개인적으로는 스스로 무덤을 판 대가를 치루었으나, 그가 저지른 만행은 바르바로사 작전뿐 아니라 독소전 초반과 중반기에 소련군의 막대한 피해를 불러오는 큰 원인이 되었다.[3] 그리고 쿨리크가 그렇게 밀던 A-43의 개발은 독소전쟁이 발발된 뒤 T-34의 생산라인에 차질을 주는 것을 피하기 위해 폐기된다.

1.2.1. T-34/57

57.jpg
[JPG image (Unknown)]
55.jpg
[JPG image (Unknown)]
1941년 모델.

t34ft.jpg
[JPG image (Unknown)]
sdfdfd.jpg
[JPG image (Unknown)]
do.jpg
[JPG image (Unknown)]
T-34/57 Obr 1942 이거나 1943.

<1941년형 제원>
전장 6.68m
전폭 3m
전고 2.45m
전비중량 25t
탑승인원 4명
(전차장, 탄약수, 조종수, 무전수)
엔진 12기통 4행정 수냉식 디젤엔진 V-2
최고출력 500hp
최고속도 55km/h
항속거리 400km
무장 100구경장 57mm ZiS-4 포 1문
7.62mm DT기관총 2정(2,898발)

T-34/57은 T-34/76과 비슷한 시기에 개발되었으나, 양자의 차이는 주포의 차이뿐, 모든 면에서 동일하다. 이는 개발계획의 통합에 따른 것이다.

주포인 57mm는 100구경장이라는 엄청난 장포신을 자랑하며, 장갑관통력에서는 T-34/76의 76mm보다 엄청난 성능을 자랑했다.[4] 하지만 당시 소련의 기술력으로는 해당 주포의 포신을 대량으로 조달할 능력이 되지 않았으며[5], 철저하게 대전차전만 감안한 나머지 고폭탄의 개발이 지지부진했고[6], 양산된 양도 적었으며, 57mm 고폭탄의 성능도 거의 수류탄 수준이라서 의외로 대보병전이나 대참호전같은 곳에서는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중대한 약점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소수가 양산된 T-34/57은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T-34/76과 함께 제대로 된 부품 및 탄약지원없이 전장에 투입되었으며, 안그래도 신형전차라서 부품과 탄약이 기본적으로 모자란데다가, 특수하게 제조된 신형포탄까지 필요한 관계로 T-34/76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투입된 다수의 전차가 제대로 활약도 못해보고 격파당했으며, 살아남은 소수는 간헐적으로 보급되는 약간의 탄약과 물자에만 의지해서 주로 대전차전 전용으로 쓰이다가 소모돼서 사라진다. 추가적인 양산이 몇 번 고려된 적은 있었지만, 앞서 말한 주포와 탄약의 조달문제등으로 인해 324대만 생산되고 T-34/76 와 85에게 자리를 넘겨준다.

1.2.2. T-34/76

ee.jpg
[JPG image (Unknown)]
t3.jpg
[JPG image (Unknown)]
T-34/76 Obr. 1940[7]

T-34-76_1941_001.jpg
[JPG image (Unknown)]
T-34-76_1941_002.jpg
[JPG image (Unknown)]
gl.jpg
[JPG image (Unknown)]
75.jpg
[JPG image (Unknown)]
T-34/76 Obr. 1941[8]

T-34-76_001.jpg
[JPG image (Unknown)]
T-34-76_002.jpg
[JPG image (Unknown)]
88.jpg
[JPG image (Unknown)]
T-34/76 Obr. 1942[9]

화염방사 전차로 개조된 T-34/76(OT-34)

T-34_76mm.jpg
[JPG image (Unknown)]
탱크 바이애슬론 대회 시작 전 나온 러시아군 소속 퍼레이드용 T-34

T-34/76은 생산 공장마다 제각각 전차의 모습이 달랐다. 엔진 배기구의 문,차체 동축기관총대 모양,보기륜,포 방패,캐터필러 등이 그러함.

<1941년형 제원>
전장 6.68m
전폭 3m
전고 2.45m
전비중량 26.5t
탑승인원 4명
(전차장 겸 포수, 포탄 장전수(포탑 동축기관총 사수), 조종수, 무전수(차체 동축기관총 사수))
엔진 12기통 4행정 수냉식 디젤엔진 V-2
최고출력 500hp
최고속도 55km/h
항속거리 400km
무장 41.5구경장 76.2mm 강선포 F-34 1문(77발)
7.62mm DT기관총 2정(2,898발)

T-34는 스페인 내전에서 기존의 고속/경장갑 중심의 전차들이 37mm PaK 36같은 견인식 소구경 대전차포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경험에 대한 반성에서 탄생한 중전차이다. 동맹국 생산을 포함하여 1940년에서 1958년까지 약 8만4천여대가 생산된 것으로 추산되어 대전중 생산된 전차로서는 최다 숫자를 자랑한다.

초기에는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한 대구경인 76.2mm포를 주포로 장비하였으며, 미국크리스티 현가장치는 경쾌한 기동력을, 넓은 캐터필러는 극한지에서의 기동력을 보장하였다. 차체와 포탑의 전/측면 장갑부에 크게 60도급 피탄경사설계를 도입하여 보병 지원 위주의 단포신 포 일색이던 독일군의 전차들을 무력화시켰다.

이 형식을 보통 T-34/76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생산 시기에 따라 꾸준히 개량이 가해졌기에 주포가 같은 T-34/76이라고 하더라도 1943년형처럼 연도에 따라 별도로 구분하는게 옳다.

경쾌한 기동성과 상당한 화력, BT 고속전차로부터 물려받은 경사장갑 설계로 당시 3/4호 전차가 주력이던 독일군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고, 이후 독일군은 T-34의 장점을 적극 도입한 판터를 새 주력으로 개발하는 등 기갑전력 개선에 박차를 가하지만 독일의 국력은 소련을 따라가기에 역부족이었다.[10]

독소전쟁 발발 시점에서 소련군이 배치한 T-34는 960대(생산은 1,220대)였고 이는 독일군이 동원한 전차 3,000여대 중에 3호 전차4호 전차의 수량이 약 2천대 정도였음을 감안해 보면 그렇게까지 모자르지는 않을 정도의 숫자였다.

그러나 막 새로이 배치된 신형 전차다보니 제대로 운용할 줄 아는 승무원 및 정비 인력이 거의 없을 정도였고, 대숙청으로 인해 지휘체계에 심각한 혼란이 발생한데다 예비 부품과 탄약비축량마저도 극히 부족해[11] 거의 힘을 쓸 수 없었다.(Zaloga, 10-11) 심지어 한 소련 전차병은 파시스트 놈들 땅크는 펄펄 날아다니는데 이 쌍놈의 T-34는 조금만 달려도 퍼져버린다. 변속기도 독일 놈들이 더 좋았고, 우리 건 엿이나 바꿔먹으면 딱 맞는다.라며 폭풍디스를 시전했다.[12]

이는 전훈의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된 바가 컸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전투가 이어진 스페인 내전에서 운용된 소련제 전차는 본질적으로 장갑이 얇은 경전차인데다가, 호위보병없이 단독으로 운영되는 대실수를 저지르는 등의 삽질이 겹쳐져서 그다지 활약을 못하고 보병에 큰 피해를 입었는데, 공화국군의 군사고문으로 갔던 소련군 장교들이 이것을 보고 한 목소리로 "대규모 전차운용은 별로 효과없고, 역시 전차는 보병에 딸린 보조역을 해야한다. "고 주장했다. 이때문에 소련은 스페인 내전 이후 사단급 이상의 기갑부대를 모두 해체하고 기껏해야 보병사단에 딸린 여단이나 연대급으로만 기갑부대를 운용했다.

그러다가 독일군이 폴란드 침공이나 프랑스 침공에서 대규모 전차운용으로 성공을 거두고, 겨울전쟁에서 소련이 참패하면서 "아 그때 그렇게 한게 맞았구나"하며 다시 예전대로 전차부대를 대규모로 편성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독일한테 그 틈을 찔리면서 독소전쟁을 맞게 되는 불행을 겪게 된다. 이렇게 갓 신편되거나 재편중이었던 소련군 기갑부대는 아직 제대로 싸울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실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래도 무겁기 짝이 없는 KV계열도 아닌 중형 전차가 3호/4호의 공격을 잘근잘근 씹어먹는 성능은 독일군을 뒤집어놓기에 충분했고, 1941년 말 모스크바 전투에서는 눈밭에서도 우월한 기동성으로 활약하여 독일의 공세를 좌절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며 '모스크바의 수호신', '조국 전차'라는 별명을 얻게된다. 이후에는 생산량도 빠르게 늘어나고 허접한 성능도 서서히 개선되기 시작하며, 소련 지휘관들이 전차의 집중운용 개념을 제대로 습득하고 활용하기 시작하면서는 더욱 더 독일군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갔다.

하지만 아래에서 언급하듯이 여러가지 문제가 있어서 1944년부터는 본격적인 개량형인 T-34/85에게 바통을 넘기고, 남은 T-34/76은 새로 보충되지 않고 전장에서 격파될 때까지 사용하다가 박살나면 살아남은 전차병에게는 T-34/85가 주어지고, 박살난 전차는 쓸만한 부품은 다 뜯긴 후 방치되거나 고철로 변했다. 그래서 의외로 생산량에 비해 21세기 시점까지 남아있는 전차수량이 매우 적고, 대부분은 박물관에 전시된 상태다. 그러나, 더 아래에도 있지만 북한군이 현역으로 굴리고 있다는 추측이 있다. 기갑문화재 북한군

소련의 드미트리 표도르비치 라브리넨코 근위상위는 t-34/76을 타고 두달 반동안 56대의 독일 전차를 격파했다.(1941년 모스크바 전투 중 전사) 연합국 최고의 탱크 에이스임에도, 서방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으며, 소련에서도 묻혀있다가 소련이 망하기 직전인 1990년에야 소련 영웅훈장을 받았다.

(맨왼쪽에 있는 사람)

1.2.3. T-34/85

T-34_85mm.jpg
[JPG image (Unknown)]
<1944년형 제원>
전장 6.75m
전폭 3m
전고 2.60m
전비중량 30.9t
탑승인원 5명
(전차장, 포수, 탄약수, 조종수, 무전수)
엔진 12기통 4행정 수냉식 디젤엔진 V-2
최고출력 500hp
최고속도 55km/h
항속거리 340km
무장 54구경 85mm 강선포 ZIS-S-53 1문(77발)
7.62mm DT기관총 2정(2,898발)

비록 초기의 T-34들이 불리한 조건에서 분전했으나 한계도 분명했다. 특히 단순 스펙상으로는 우세했으나 관측 및 통신장비가 부실하고 승무원 배치같은 설계도 구식이라 전차장이 포수를 겸해야 하는등, 종합적인 전투 효율에서는 단점도 많았다. 이 문제는 꾸준한 개량으로 포탑을 대형화 시키고 전차장석을 독립시키며 큐폴라를 장비하는 등의 성능 향상으로 부분적으로 해결했으나, 본질적으로 2인용 포탑이라는 것을 개선하지 않은데다가 1942년 이후 독일군이 4호 전차의 주포를 개량(단포신 7.5cm에서 장포신 7.5cm로 재장착.)하면서 화력에서 약간 밀리고 티거, 판터 등의 신형 전차들을 개발하기 시작하자 근본적인 공격력이 답보 상태라 질적으로 압도적인 열세에 처하기 시작했다.

결국 대대적으로 화력을 개선한 것이 T-34/85. 외관상으로도 대형포탑과 장포신 주포로 인해 T-34/76과 비교하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 차체 전면은 여전히 30도 정도의 45mm 경사장갑이지만, 신형포탑의 전면은 90mm로 강화되어 76mm 탑재형보다 전체적으로 방어력이 약간 향상되었다.

주포로 채택한 54구경장 85밀리포는 티거의 주포보다 파괴력이 조금 떨어졌지만 APCR을 사용할 경우 이론상으로는 1,000미터 이내의 표준교전거리에서도 티거의 정면장갑을 관통할 수 있었다.

기존의 76mm 주포는 본래 ZiS-3 계열의 경야포를 개수한 것이라 고폭탄의 위력은 그렇다해도 구경에 비해 실질적인 장갑 관통능력이 약하여 독일의 50mm급 대전차포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처음에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티거 상대로는 사실상 측후면조차 거의 관통이 불가능했다. 티거야 일종의 중장갑 기병 개념으로 운용될만큼 괴물이니 그렇다 쳐도, 1943년부터는 그동안 만만했던 4호 전차조차 전면장갑을 80밀리로 강화하며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화력이 크게 부족해졌다. 그래도 4호 전차는 76mm 주포로 어느정도 상대가 가능했지만 티거나 판터에게는 답이 없었다.

즉, 85mm포로 교체한 결과 기존의 76mm 주포탑재형에 비해 티거나 기타 독일 전차와 확실한 교전 능력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수치상의 결과이고, 일단 이론상 관통력과 실전에서 발휘되는 관통력은 상당히 달랐다. 한 때 독일군은 실제로 85mm를 자군의 88mm와 동급으로 분류했으나, 1944년 겨울의 독일 병기국 보고서는 소련군의 85mm 철갑탄은 티거의 전면 장갑을 상대로 500~600m 정도에서나 효과를 볼수 있는 것으로 기록했다. 물론, 1000m이상의 거리에서 명중이 불가능한것은 아니며 실제 관통이 가능한 거리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이것은 독일에 비해 러시아의 포탄 제조기술과 조준경의 성능이 상대적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전후의 기록을 연구한 후대의 연구자들도 85mm를 88mm가 아닌 75mm PaK 40과 거의 동급으로 보고 있을 정도.[13] 결론은 제한적이지만 개별적으로는 85mm포로 티거나 판터를 상대할수 있게 되었다고 보면된다. 물론 위의 수치가 항상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티거나 판터도 예전처럼 T-34를 만만히 보기만 할 입장은 못 되었다. 그 사실은 야전 지휘관들과 전차병들이 실전을 겪으면서 금방 알게 되었다.

다만 85mm 전차포의 제한적인 성능은 어디까지나 티거, 판터를 상대할 때였고, 다른 독일 전차 상대라면 85mm의 화력은 충분함 그 자체였다. 이전까지의 T-34는 독일의 4호 전차를 상대할 때조차도 화력이 충분치 않았지만, 이제는 효과적인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T-34/85는 4호 전차에 비해 확실히 방어력 및 기동력에서 우세했고 아무리 나쁘게 보아도 화력은 대등했다.(유탄의 위력은 85mm 전차포가 더 우세했을것이다.) 단지 표적획득 및 정밀조준능력, 그리고 조직적인 전투에 필요한 각종 부가적 요소들의 측면에서 여전히 4호 전차가 더 우세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이미 전략적 우세를 잡은 소련의 입장에서 그런 부차적인 요소들은 숫자로 메우면 그만인 수준이었다. 그 전까지는 4호 전차는 괴물수준은 아니라 어느정도 대항할수 있었지만 다수의 티거나 판터를 상대로는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확실한 우위를 잡기가 어려웠다.

한가지 확실한것은 T-34/85전차가 대량 투입되는 사실은 독일군에게도 절대로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76mm탑재형 T-34상대로는 정면에서는 중단거리에서도 견딜수있는 티거나 판터전차였지만 T-34/85가 출현하면서 티거는 500m ~ 600m정도의 중단거리에서는 정면장갑이 관통당할수도 있는 위험에 처했고 판터는 정면은 80mm 경사장갑이라 실제는 140mm의 수직장갑수준의 방어력을 가져서 정면은 안전하다 해도 약점인 측면은 더 쉽게 관통당할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다. 개별적으로야 훨씬 우세한 티거와 판터였지만 생산물량이 독일보다 크게 우세한 러시아 군대의 입장에서는 예전의 76mm 탑재형의 숫자만큼 85mm 탑재형 T-34/85를 엄청난 물량으로 밀고올것인데 중단거리에서 위험에 노출이 절대안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점은 실제 독일군 장군들과 독일군 전차장들도 금방 알아챘다. 거기다 티거와 판터는 단가나 자원과 제작시간이 T-34/85보다 많이드는 전차라 손실이 생기면 부대의 전력 손실이나 보충에서 불리했다. 이런 문제들이 IS-2스탈린 전차의 존재와 같이 티거2를 개발하게 된 원인중 하나였다.

또한 이 전차의 기동력과 생산 용이성이 높이 평가되어 T-34의 하부 차체를 그대로 이용한 각종 대전차자주포구축전차SU-85, SU-100, SU-122같은 물건들이 대량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알렉산드르 오스킨[14]

여담으로 티거 2는 첫 실전 투입에서 T-34/85 한 대에게 3대가 격파되는 굴욕적인 데뷔전을 치뤘다. 당시 해당 전차병들간의 숙련도 차이를 생각해도 전설로 남을 업적이다. 참고로 이때 해당 T-34/85전차의 전차장이 알렉산더 오스킨 중위였다. 이 일화는 고바야시 모토후미의 만화 도로 위의 괴물의 이야기들 중에도 들어 있다. 다만 T-26부터 몰았던 오스킨 중위의 경력에서 보듯이 1944년경이 되면 세계최강 독일기갑부대와 3-4년간 굴러먹었던 소련군 기갑부대도 숙련도는 비약적으로 향상되어 야전 기동에 있어서는 독일군에 딱히 뒤쳐지지 않았다. 1944년 바그라티온 작전시의 독소 기갑부대의 손실교환비는 1:1로서 이때쯤 되면 소련군도 독일군 못지 않은 기갑전력을 보유하게 되었다.[15]

1.3. T-34를 만들기 시작해서 '그냥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냥 많이 만들었습니다.[16]설명이 필요 없다. 옆동네는? 정교하게 만들기 시작해서 그냥 적게만들었습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승전직후 모스크바에서[17]

양이 곧 질이다.[18]
- 블라디미르 레닌하지만 영국요리라면 어떨까? 영!국!요!리!
 
1941년 당시 소련의 전투/전투근무 지원능력은 매우 열악해서 많은 T-34들이 퍼진 채로 줄줄이 노획되거나 자폭했다. 이는 1942년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사실 독일군의 진격을 피해서 원래 있던 공장부지에서 생산시설만 간신히 빼돌렸다가 황무지에 대충 건물 세워서 가동시킨 공장에서 제대로 된 물건이 나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따라서 터져나가는 수보다 훨씬 많은 전차를 만들어내서 버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19] 이 찍어낸 전차에 탑승할 승무원들은 바로 스탈린의 강제적인 농업 집단화로 만들어졌다고 과언이 아니다. 집단농장에 수용한 농민들에게 집단기계화 영농을 위해 대대적으로 트랙터, 콤파인의 운전교육을 시켰는데, 이때 교육받은 트랙터 콤바인 운전사들을 바로 전차운전병으로 징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집단농장화가 농업의 생산성을 극도로 떨어뜨렸으나 전차병 양산에 도움을 주었다는건 참으로 아이러니.

게다가 숫자로 메꾸는 것에도 문제가 있었던 위기상황이 닥친 적도 있는데, 폭증하는 손실에 비해 생산된 전차의 전선 배치 속도, 승무원 훈련의 적체, 그리고 무엇보다도 76mm형의 구식화와 85mm형의 개발로 인한 차종 변경 문제 및 재고 차량 처리 때문에 1943년 12월 시점에는 1만 8천 대가 넘는 재고 전차를 후방에 안은 상태에서, 독일군과의 가용 전차 비율이 역대 최저 수준인 1.7:1까지 떨어지는 참사를 겪기도 했다.

물론 소련군이 그냥 구식 전차에 승무원이 바보라고 해도 닥치는 대로 그냥 밀어넣었으면 이제 독일군은 끝장이나 마찬가지였을 테지만, 형벌 부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시점에 이르면 소련에서 병사가 될 남자가 바닥나기 시작한때 였다. 따라서 위의 상황이 닥치자 그야말로 승승장구로 잘나가는 전선에만 전차를 몰아주는 극약처방을 내리기도 했다고 한다. 당장 T-34의 생산량을 감안한다면 단순계산만으로도 전차병이 336,000명이 필요하게 되는데,[20] 아무리 전차가 격파되더라도 승무원이 살아남아서 다른 전차를 타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도 100% 승무원이 생존하는 경우보다는 보통 1명 이상이 죽고, 1명 이상은 심각한 부상을 입어서 전투능력을 영구적으로 상실하는 경우가 많으며, 전차가 폭발해서 승무원이 몰살당하는 것도 많이 있다. 따라서 전차를 몰 수 있을 정도로 능력이 좋은 인원을 함부로 소모하는 것은 당시의 소련의 인적자원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위기상황은 1944년 중반쯤 되면 다른 연합국, 특히 미국의 협조로 무전기나 전차 조준경 등의 주요 부품의 신뢰성도 좋아진 덕분에 물량과 품질 모두에서 독일군한테 본격적인 지옥을 보여주게 된다. 당장 위의 위기상황도 한 달 남짓한 사이에 4:1 수준으로 전력격차를 늘렸다.

하도 많이 만들어 놔서 지금도 러시아에선 땅 파면 나오는 전차라고 한다[21]
사실 소련은 T-34를 만든게 아니라 땅에서 파낸거라 카더라

1.4. 대전 직후

전후에도 대량 생산 되었으며 대전 후에는 소련 영향 하에 들어간 동유럽 공산 위성국들이나 세계 각국의 친소 국가들에 대량으로 공여되었으며, 중동권에서는 현지 개수를 가해 1980~1990년대까지도 굴러다녔고 아프리카 일부 빈국에서는 아직도 현역으로 돌아다니고 있다. 셔먼 전차와 T-34 중 어느 쪽이 먼저 현역에서 사라질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상태.

1.5. 6.25 전쟁북한군의 운용

공산권 대량 공여의 결과로 6.25 전쟁 당시 북한군이 운용했던 전차이기도 해서 한국인과 나름 인연이 있는 전차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관련 기록 필름이나 사진 등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IMG_20140711_151914.jpg
[JPG image (Unknown)]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T-34-85.

T-34/85는 북한군에게 개전 전까지 242대가 공여되었고, 이후 북진 직전까지 150대 가량이 추가로 공여되었음이 소련 문서로 확인되고 있다. 21세기 현대에도 250여대를 보관중이라고 한다.

당시 한국군이 가지고 있던 보병용의 무반동총과 2.36인치(66mm) 바주카, 그리고 6파운더의 미국 라이센스판인 57mm 대전차포 정도의 대전차화기라면 숙련된 병력에 의해 전차의 취약부위를 공격할 경우 충분히 상대해 볼 수도 있어 실전사례에서 대전차화기를 이용하여 T-34를 격파한 전과는 있다. 하지만 보병이 조작하는 대전차화기를 그런 방법으로 사용하려면 앞서 언급한 제대로 훈련된 병력이 필요한데다가 매복한 후 근거리에서 전차의 측면이나 후면을 노려야 하는 등 전차를 잡는 입장에서는 전차를 1번 공격할 때마다 전차를 잡을 확률은 낮은데 자기 목숨이 날아갈 확률은 거의 100%에 가깝다는 위험한 상황을 연출해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해당 대전차화기들은 이미 독일군의 전차를 전면에서 사격할 경우 66밀리 로켓탄의 저질 위력 때문에 간혹 티거도 정면에서 격파할 수는 있으나 파괴력 부족이라는 점이 입증된 상태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실제 성능을 따지자면 2선급 대전차화기라는 이야기다. 거기에 당시 주일미군의 무기 보관상태가 엉망이라 불량 탄약때문에 명중해도 불발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 나중에 밝혀졌다. 따라서 당시의 한국군의 보병용 대전차화기는 이미 능력부족인 상태였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한강대교한강철교를 너무 일찍 날려버린 덕택에 전선에서 후퇴하던 대부분의 57mm 대전차포는 한강을 건너지 못했고 이 대전차포들이 북괴군에게 노획되는 것을 막기위해 어쩔 수 없이 국군 대전차포반원들은 공이를 분해하고 포신과 기관부는 수류탄이나 폭약을 이용하여 파괴해야 했다.

그리고 개전당시 국군의 유일한 기갑차량이었던 M8 그레이하운드 장갑차의 37mm 포로 T-34를 저지해보려는 시도가 있었고 철갑탄을 발사하여 T-34를 몇 대 파괴할 수 있었으나 37mm 포도 통상사격으로는 전차의 무한궤도나 파괴할 정도로 절대적으로 위력부족이며, 철갑탄까지 부족한데다가, 매복 후에 1대가 무한궤도를 사격한 후 전차의 조종수가 전차 전면에 있는 조종수 해치를 여는 순간 그 곳에 핀포인트 사격을 가하는 특이한 사항이 아니면 격파가 불가능하므로 결국 적 전차의 반격으로 엄청난 손해만 입고 말았다.[22]

문제는 당시 미군도 보병용 대전차화기는 한국군의 것과 거의 동일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미군중 최초로 전투에 돌입한 스미스 특임대대가 대혼란에 빠진 것도 어떤 면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가장 먼저 투입될 수 있었던 일본 주둔 미군의 경우 훈련부족에 편제병력도 모자라고, 전차의 경우도 일본의 좁은 도로와 빈약한 교량을 감안해서 M24 채피같은 경전차로만 구성된 상태였으므로 T-34를 대적할 수 없었다.

또한 개전 초기의 한국군은 대대급 훈련을 받은 부대가 최정예였던 시절이었을 만큼 훈련도가 부족했고, 전차에 대한 무지도 겹쳐 일방적으로 박살났다. 갓 태어난지 얼마 안된 한국군은 사기도 낮고 준비도 부족한 만큼 많은 걸 바랄 수 없었다. 당장 전차를 격파했다고 알려진 사례의 상당수가 SU-76같은 상부개방형 대전차자주포였을 정도로 당시의 한국군은 전차와 대전차자주포도 구분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이러한 한국군의 T-34 쇼크는 화염병이나 수류탄을 이용한, 이른바 육탄돌격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실제 전차 파괴전과를 확인해보면 실질적인 타격은 줄 수 없었던 것 같다. 일단 1952년에 집계된 256대 파괴전과 중 전차포 97(37.9%), 북한군 유기 63(24.6%), 로켓포 및 무반동총 35(13.7%), 항공기 29(11.3%), 포병 28(10.9%), 수류탄 3(1.2%), 미군 지뢰 1(0.4%)다.

물론 다만 춘천-홍천 전투간 말고개 전투 사례와 같이 이러한 육탄돌격으로 인해 전차의 기동을 방해하거나, 돈좌시킨 사례도 있으며, 개전초기 혼란에 빠진 국군이 상황을 수습할 수 있는데 미미하게나마 도움이 될 약간의 시간을 끌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군의 전차운용 방식과 훈련미숙 등의 병크 덕분에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소모되던 중 미군이 본격적으로 M26 퍼싱이나 M46 패튼 등의 고성능 전차를 투입한 이후엔 지리멸렬했다. 만약 인민군이 개전 초의 절대우세에 전차를 집중적으로(일명 기갑웨이브) 운용했다면 낙동강 전선이란 말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군에게는 너무나도 다행히도 북한군의 전차운용은 능숙하지 못했다. 한국전쟁 초기의 탱크쇼크 효과에 맛을 들인 북한군은 전선 강행돌파시에 전차를 자주 동원했다. 이는 소련군의 작전기동군 교리에서 많은 점을 참조한 것이나 문제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 충분한 화력지원과 후속 증원부대의 신속한 투입이라는 점은 빼먹고 기습과 탱크쇼크의 시너지만을 고집하여 충분한 화력지원 없이 전차와 자주포, 보병만 일회성으로 덜렁 보내곤 했다. 전사를 살펴보면 야간에 전차나 자주포가 뜬금없이 갑툭튀 하여 국군과 UN 군이 필사적인 항전을 펼치는 사례가 많이 발견되지만 포격이 동반되거나 돌파구를 후속부대가 확장하여 전선 깊숙히 첨입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이에반해 한국전쟁 초기의 혼란을 수습한 국군은 낙동강 전선이라는 천혜의 방어막과 UN 군의 막강한 지원화력을 십분 활용, 강행돌파 예상지점에 화망을 미리 구축해놓고 T-34가 걸려들기만 하면 문자그대로 있는 화력을 모두 끼얹어 버렸다. 특히 낙동강 방어전 당시 북한군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광복절까지 낙동강 전선을 돌파하여 적화통일을 이루고자 했기에 이는 큰 효과를 불러 일으킬 수 있었다. 다부동 전투에서 이러한 양상이 잘 나타나고 있다.

참고로 3.5인치(89mm) 바주카포의 보급으로 바주카포로도 전차의 전면에서 충분한 타격을 줄 수는 있게 되었다. 물론 미군의 퍼싱이나 영국군 센츄리온 같은 신형 전차들이 왔으니 T-34/85는 더이상 적수가 되지못했다.

마지막으로 한국군은 6.25 전쟁 동안 총 3대의 T-34/85를 노획했으며 미국 위장에 태극기를 그려 피아식별을 하였다. 다만 노획전차의 특성상 부품과 탄약공급문제 등으로 인해 오래 사용하기 힘들었고, 여기에 전황 변화 등이 겹쳐서 마지막에는 이중 단 한대만이 남았다.

T-34/76은 오랫동안 북한군에 없었다고 알려져 왔다. MBC 드라마에서 T-34/76을 사용하는 장면이 방영되어 고증오류라고 까이기도 했다. MBC 드라마의 등장 장면
그런데 누군가가 BBC의 다큐멘터리의 한국전쟁에 투입된 T-34 중 76형 모습을 발견했다! 또, 아래쪽 현대 문단에서 보듯 북한 매체에서 북한군이 T-34/76으로 추정되는 전차를 사용하는 모습이 방송되었다.

화염방사기를 장착한 전차인 OT-34는 T-34/76을 개조해서 차체전면 기관총자리에 화염방사기를 부착하는 동시에 76mm 주포는 사용이 가능한 상태로 유지하였으며, T-34/85는 화염방사전차가 되긴 했으나 소련군 수요를 충족하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소련군이 공격용으로 화염방사전차를 줄 경우에는 OT-34/76을 줄 수 밖에 없으므로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다.

1.6. 현대

T-34_Tank_Yugoslavia.jpg
[JPG image (Unknown)]

태어난지 환갑이 다된 1990년대의 유고슬라비아 내전에서도 꽤 널리 사용되었다. 유고 연방군은 소련과 라이센스 계약을 통해 T-34를 수천대 보유하고 있었고, 할리우드 영화 철십자 훈장에 나오는 T-34는 모두 유고슬라비아에서 로케이션을 한 것일 정도로 관리도 잘하고 있었는데, 유고 연방이 붕괴되면서, T-34는 세르비아 민병대 손에 넘어갔고, 내전에 사용되었다. 내전의 성격상 중화기가 쓰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병들을 상대로 의외로 큰 위력을 발휘하였다고.

북한에서도 전쟁 발발시 (중화기 없이 강하하는) 남한의 특수부대를 상대하기 위해 후방에서 아직도 T-34를 운용중이라고 한다.

00.png
[PNG image (Unknown)]

그런데 영상에서 북한군이 T-34/76을 굴리고 있다는걸 보여줬다.[23] 그 외 이런 사진도 나왔다.


1968년 프라하의 사진이 아니다.
폴란드의 흔한 예토전생

2006년 10월 23일에 헝가리에서 일어난 시위에서 시위대가 박물관을 습격, 무슨 생각을 한 건진 모르겠지만 1956년 헝가리 시위당시에 소련이 진압하면서 썼던 물건과 같은 전시한 T-34/85에 경유를 넣었다. 그런데 엔진이 돌아가는 말도 안되는 사태가 발생. 참고로 박물관 전시품은 행사 때 가동시키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윤활유는 커녕 외관 정비 외에는 별로 하지 않은 상태이므로 연료를 넣었다고 해서 움직이는 일은 없다. 무슨 AK-47도 아니고. 소련의 엔진기술력은 세계 제이이이이이이일!!! 결국 마침 시위도 한창이겠다 타고 나와서 신나게 굴러다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전시물이었기에 포탄이나 기관총탄은 없었으므로 사격은 불가능한 상태였으며, 동영상을 보면 조종한 사람의 실력도 수준급이라 인명 피해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비도 안했는데 굴러가는 탱크도 대단하고 그걸 끝내주게 운전한 사람도 대단하다 물론 NBC 방호 따위 생각도 안했던 물건이었던 만큼 결국 운전수는 최루탄 러쉬에 꼼짝 못하고 체포, 탱크는 찰나의 외출을 마치고 엔진을 제거시킨 후 다시 박물관에 돌아갔다고 한다. 후환 제거


헝가리에서는 T-34의 차체에 포탑을 그 21의 엔진으로 개조한 Big Wind라는 괴이한 녀석도 개발되었다. 이 놈의 정체는 소방차.


제트 엔진의 배기가스로 물대포를 초고속으로 뿜어내서 화재를 진압하는 것이 목적이다.컨텐츠-뉴스

1.7. 장단점, 기타

1.7.1. 장점

  • 전차의 3요소인 공격, 방어, 주행이 조화를 이루었다.

    3호 전차4호 전차에 비해 T-34의 큰 장점이었던 화력과 방어는 판터티거가 나오면서 퇴색한 면이 많지만, 주행능력 만큼은 T-34가 판터와 티거보다 훨 나았다. 베를린 전투를 앞둔 소련군의 최후의 대공세인 1945년 1월의 비수아-오데르 대공세때도 당시 독일군의 주력이었던 판터와 티거는 해빙기의 도로에서 많은 삽질을 한 반면, T-34는 원래부터 소련의 도로사정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기 때문에 동부독일이나 폴란드의 해빙기때는 기동성있게 움직일 수 있었다.

  • 가격이 저렴하고 대량생산이 가능하며, 생산시에 숙련된 노동자나 장인이 별로 필요없다.

    가격이 상당히 저렴한데, 대량생산하면서 값은 더 떨어졌다. 이 가격은 전쟁 초반에 26만루블에서 19만 루블까지 떨어졌는데, 당시 티거1의 가격이 25만 마르크였다고 한다. 당시의 환율을 제대로 평가하기는 힘들지만, 외국 밀덕들의 가격 평가에 의하면 가격비가 1:4~5 정도라고 한다. 그러니까 같은 가격을 써서 티거 한대에 T-34 4~5대가 달려드는 셈이니 왜 T-34가 전장에서 떼로 몰려올 수 있는지를 설명해 준다.[24]

    당장 T-34의 궤도와 독일제 Sdkfz.251의 궤도를 비교해 보자. 심지어 T-34의 경우 궤도들을 연결하는 핀이 좌우로 미끄러져 빠지지 않도록 고정하는 장치도 없다! 차체 안쪽에 작은 돌출부위가 있어서 안쪽으로 빠지는 않게 도로 쳐넣는 기능을 했지만 바깥쪽으로 빠지는 건 막는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구조를 극단적으로 단순화시켜서 생산성을 높였던 것이다. 그만큼 마무리가 거칠거나 성능이 부족한 부분도 있었지만 실전에서 큰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다.

  • 그 당시 소련의 평균적 기술수준을 능가하는 신뢰성 높고 연비 좋은 디젤 엔진과 크리스티 현가장치로 험지에서 장거리를 고속으로 주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디젤엔진은 공돌이의 본가 독일도 카피가 어려워서 포기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독일군의 기갑부대는 끝까지 가솔린 엔진으로 움직였는데, 이는 석유자원이 부족한 독일에게 큰 부담을 주었다. 그 반대로, 소련은 원유는 풍부한 반면 정유기술이 부족하긴 했지만, 디젤엔진에 사용되는 중유는 고도의 정유기술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소련 기갑부대는 처음부터 연료가 부족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 경사장갑을 대대적으로 채용해서 중량에 비해 방어력이 우수하다.
    이점은 독일측에서도 유용하게 인식하여 판터의 설계에 대규모로 채용되었다.

  • 훈련을 부실하게 받은 병사도 쉽게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조작이 간단하다.
    사실 소련군은 직전의 농업집단화때문에 농민으로부터 수십만의 트랙터 운전사들을 양성했는데 이들을 모두 전차병으로 징집하여 적어도 전차의 운전병은 부족함이 없었다. [25]

1.7.2. 단점

turret.jpg
[JPG image (Unknown)]

[26]
  • 2인용 포탑을 사용하므로 전차장이 포수의 역할도 해야하기 때문에 사격시에는 주변관찰이 안되고, 주변관찰시에는 사격이 안되므로 독일의 전차보다 반응속도가 엄청나게 떨어진다. 이 점은 T-34의 개량형인 T-43에서 3인용 포탑을 채용하여 해결되었으나, 화력이 빈약하다는 이유로 인해 생산되지 못했으므로 결국 T-34/85에서 3인용 포탑을 채용해서 해결한다.[27]

  • 부실한 조준장치로 명중률이 떨어지며, 조준장치의 제조에도 문제가 있어서 조준장치에 사용되는 렌즈가 처음부터 어긋났거나 흐린상태가 많았다. 그래서 독일군이 독일제 조준경을 장착한 T-34는 소련제 원본보다 좋았다.

  • 트랜스미션 레버가 옆의 무전수(및 전방 기총 사수)의 탄약고(기관총 탄약을 넣어두는 곳)와 가까워서, 레버가 앞으로 가 있으면 기총수가 기관총 재장전을 할때도 애로사항이 꽃피었다.

  • 포탑이 전방에 치우쳐 있으므로 전면장갑을 강화할 경우 차체 중심이 앞으로 쏠리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장갑강화가 힘들다. 이런 이유로 인해 1942년 이후에 등장한 대전차 화기 상대로는 방어력의 우수성이 퇴색했다.

hat.jpg
[JPG image (Unknown)]

  • 포탑이 너무 앞으로 치우친 관계로 전차 상면에 조종수 해치를 못만들기 때문에 전면장갑에 조종수용 출입구를 만들었다. 게다가 조종수용 관측창도 부실해서 일반적인 이동시에는 출입구를 열고 다니는 일도 많았다. 이렇게 되면 차체 전면에 큼직한 약점이 생기는 셈이라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심지어 한국전쟁때는 이 약점을 노린 M8 그레이하운드 장갑차의 37mm포에 당하기도 했다. 애초에 조종수는 마치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는 것 처럼 착석해야 전차를 조종할 수 있다. 때문에 키가 큰 현대인들은 전면 해치를 열어두어도 탈출하기 버거울 정도다.

  • 이건 모든 소련제 병기에 해당하지만. 부품자체의 정밀도가 낮거나 마무리가 거칠어, 단순하고 고장안나는 이미지의 소련군이 무색하게 잔고장이 심했다. 그래서 소련군은 아주 단순무식한 해결책을 내는데 그냥 고장난 부품을 현장에서 교체한 후 고장난 부품은 그냥 버린다.라는 해결책이다. 고장난 부품을 갈아 끼우는것은 흔한 일이지만 여기서 교체하는 부품은 캐터필러나 탐조등 같은게 아니라 바로 엔진 그 자체였다! 게다가 브레이크 라이닝등 툭하면 고장나는 부품은 야예 고장날 것이라고 간주하고 해당 부위 전체나 예비부품을 전차에 탑재하고 출격했다.
    원래 이런 경우에는 보통 고장난 곳을 수리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소련군은 야전 수리능력이 딸려서 나름대로 현장에서 응급처치가 쉽고 간편한 해결책을 내놓은 것이다.[28] 오죽하면 랜드리스로 들어온 M4 셔먼무고장 전차라며 사랑받고 정예부대에 집중적으로 몰아줄 정도였으며, 심지어 T-34보다 한단계 체급이 아래인 경전차에 불과한 스튜어트와 발렌타인을 T-34보다 더 선호했다고 한다.[29]
    이런 잦은 엔진 고장의 원인은 초기형에 사용하던 공기 필터가 대기중 부유물을 걸러내기는 커녕 공기의 흐름만 차단하는 불량품이었기 때문이다.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니 출력 자체가 낮아지고, 걸러지지 않은 모래는 실린더 내부로 끼어들어가 엔진 자체를 망가뜨리기 일쑤였다. 애버딘 시험장에서 평가를 받은 보고서에서는 미군이 "스파이가 방해 공작의 일환으로 설계를 엉망으로 한 것 같다"고 혹평을 했다는 언급까지 있다. 이 문제는 1943년형 등 후기형에서 일명 "사이클론 필터"로 교체하고서야 해결된다. [30] 심지어 1942년도에 생산된 T-34/76의 경우에는 설계상 보장시간이 100시간밖에 안 되었으며 이것 마저도 야전에서는 고작 70시간 정도뿐이라는 매우 뒤떨어지는 신뢰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논문까지 존재한다.[31] 애초에 소련의 공업화 수준이 낮았는데다가, 이를 감안하지 않은 단기간에 이룩한 과도한 공업화에 따른 부작용, 낮은 공업화 수준을 통한 전시 대량생산을 시도했고, 이는 전차 대량생산의 선두주자라고 할수 있는 영국 또한 2차대전 당시 엄청난 삽질을 벌였다는 점에서 어쩔수 없다고 봐야한다.

  • T-34 초기형과 중기형은 무전기가 없어서 각 전차들에게 무전을 못내렸다. 그래서 전차장은 해치를 열어 다른 전차에게 손짓이나 작은 깃발로 지휘를 해야 했다. 초창기 무전기가 장착된 차량도 있기는 했는데, 이는 상부의 지시를 수신받아야 하므로 지휘차량만 무전기가 있었다. 즉, 차량간 긴밀한 전술 이행을 위한 용도가 아니었으므로 차량간 통신은 수신호에 의존해야 되었다. 게다가 주변을 관측할수 있는 관측장비가 부족했다. T-34 에 무전기가 일찍이 장착되었더라면 적어도 손실율은 많이 줄었을 것이다. 사실상 초기 모델에도 전 무전기를 장착하려 했으나 당시 상황이 상황이었는지라(우랄 산맥 너머로 공장 이전중이었다.) 다수를 투입할 수가 없었기에 지휘 차량에만 보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보급 상황이 나아진 이후에는 전 차량에 설치하게 되었고(대략 43년 중반) 1944년에 나온 85모델은 차체에 있던 장비를 포탑으로 옮겼다.

1.7.3. 독일에서의 평가


독일군이 노획한 T-34


마개조(...) 하지만 위의 88mm 대공포 버전은 가짜다. 실제 사진이라고 돌아다니는 사진 역시 가짜. 대신에 포탑을 떼어내고 4연장 기관포를 달아 대공전차로 마개조한 버전은 있다.
독소전쟁 발발 1년전에 히틀러는 독일의 3,4호 전차 생산공장에 소련 기술진 방문을 허가해 주었는데, 소련 기술진과 무관들은 당시 독일군의 주력이었던 이 전차를 보고 "이것은 T-34나 KV-1으로 해볼만하다"는 평가를 내렸고, 도리어 "독일놈들이 페이크로 한물간 놈을 우리에게 보여준게 아닐까?"는 의문을 제기했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는 독일측에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고, 장래를 위해 3호 전차에 60구경 장포신 전차포를 빨리 장착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으나, 소련의 신형 전차로 실제 어떤 물건이 튀어나올 지는 예측하지 못했고, 그래서 앞서 언급한 충격을 받게 된다.

독소전쟁 초기에 소련군은 초기의 기계 결함과 숙련병 부족, 전황의 악화로 인해 멀쩡한 수준의 T-34를 대량으로 전선에 유기했고 독일군은 자국의 전차 물량부족과 T-34 전차의 우수성을 인정하고서 이렇게 유기된 T-34를 상당량 거두어 사용했다.

독일군의 기갑부대 지휘관들이나 일선 전차병들도 대부분 T-34를 위협적으로 평가했다. 독일 기갑부대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하인츠 구데리안 장군은 "몇 가지 기계적인 문제가 있지만 여태까지의 독일전차보다 훨씬 우수하다."며 이 전차를 위협적인 존재로 인정했다. 회고록 "기계화 부대장"의 모스크바 전투를 기록한 부분에서도 T-34때문에 독일 기갑부대가 큰 피해를 입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또한 "판처 클라이스트" 라고 불린 에발트 폰 클라이스트 원수 또한 "지금까지 나온 전차 중에서 가장 좋은 전차"라고 인정했다. 또한 독소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전역에서 영미군 기갑부대와 싸워본 리드리히 폰 멜란틴 중장은 후에 저서에서 "우리에겐 T-34에 맞설만한 것이 없었다" 고 호평을 했다. 심지어 전설적인 티거 에이스인 오토 카리우스조차 동부전선에서 가장 위협적인 상대는 T-34라고 기록했다.

사실 대전 초반 독일군에게 있어서 T-34보다 더 큰 충격을 준 것은 KV-1전차였다. 하지만 KV전차는 구식 방식으로 바른 떡장갑만 빼고는 독일의 기술진들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의 전차였고, 오히려 부작용으로 느린 속도와 둔중한 반응속도, 게다가 중전차 주제에 T-34와 동급의 주포를 장착해서 화력이 빈약하다는 약점까지 있었기에 일단 초기의 충격을 이겨낸 독일군에게는 T-34와 비슷하거나 약간 처진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단, KV전차 때문에 독일 전차의 중장갑, 중무장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사실이다.[32] 참고로 독일에도 T-34 에이스가 있는데 바로 스위스 태생의 에밀 자이볼트란 이로 다스 라이히에 입대하여 종전 때까지 노획한 T-34를 타고 적 전차 65대를 격파하는 위엄을 보여줬다. 사실 T-34로 가장 많은 전차를 격파한 양반이라고하니 흠좀무.

1.8. 총평

전차 자체의 성능만 보면 왜 이 전차가 제2차 세계대전의 전차 중 1위를 기록하는지 의문이 드는 전차일수도 있다.

그러나 T-34가 이처럼 인정을 받게된 것은 T-34의 존재가 소련군의 절망적인 소프트웨어, 한세대 뒤떨어진 하드웨어를 만회하고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게 해준 명품이었기 때문이다. 상대방인 독일군의 수많은 명장들마저도 T-34를 명품이라 극찬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적절한 시기에 대량으로 등장해서 전쟁의 향방을 바꾼 전차이기 때문이다.

전쟁무기로써 우수한 전차란 전차 자체의 능력뿐 아니라 생산력, 유지보수능력 등 제반사항까지 포함하여 판단해야 한다. 만일 이러한 점을 무시하면 최강의 전차는 프로토타입으로 제작된 몇 안되는 초중전차들이 독점하게 될 것인데, 누구도 그런 것을 인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반대의 예시도 가능하다, 성능은 동급의 돌격소총과 비교해 고만고만한 AK-47이 왜 M16과 함께 최고의 소총으로 군림하는지 생각해보자.

거기에 T-34의 대량생산에 무기대여법을 통한 서방연합국의 지원이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는것도 이야기도 반만 맞는 이야기이다. 무전기등 부속설비의 장비에는 서방연합국의 지원물자가 요긴하게 쓰였고, 또 다른 장비의 생산에 투입될 노력이 T-34에 집중되며 생산량 증폭에 크게 일조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핵심적인 것은 T-34 자체가 원래부터 생산력이 높은 전차였다는 점이다. 일례로 T-34가 첫 생산된 1940년 9월부터 독소전쟁 발발 직전까지 랜드리스는 꿈도 못꾸고, 전시체제도 아닌 평시상황에서, 위에서도 서술되어 있듯이 쿨리크 원수의 지속적인 방해속에서, 단 2곳의 전차공장에서 9개월간 생산된 T-34의 수량이 1,220대였는데, 독소전이 가열되던 1943년 한해 동안 독일이 생산한 (숫적 주력인)4호 전차의 총 생산 수량이 3,013대였던 것을 비교해보아도 알수 있을 것이다.[33]

단지 소련군의 고질적인 인명 경시 및 경직된 구조 탓에 화력강화가 상당히 늦은 시점에서 결정되었으므로 불필요한 희생이 컸으며, 독소전쟁 후반기의 소련의 진격속도를 느리게 만들기도 했다. 이외에도 T-34는 승전국의 대표 전차였기에 과대평가된 측면이 강하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전술적인 면에서는 제원표상으로는 T-34가 우위에 있는 3,4호 전차에게 제대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밀리는 등 많은 한계점을 도출했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 #1#2#3#4#5[34]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방법을 쓰던 간에 전장에 적정수준 이상의 능력을 가진 전차를 대량으로 쏟아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인데, T-34는 이 기준에 완벽하게 적합하며, 소련 정부와 노동자들이 이 전차를 대량 생산 및 대단위 전선투입을 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당장 생산량만 따지면 오히려 더 많고, 기계적 신뢰성, 승차감이 월등히 좋으며, 화력에서도 대등하거나 더 높으며 더욱이 똑같은 2차대전 승전국의 전차인 M4 셔먼이 왜 T-34같은 대접을 받지 못하는지도 한번 생각해 보자.이러한 점은 영국 전차기술학교에서 1944년 작성한 T-34에 대한 보고서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본 전차의 전체적 설계는 효율적인 전차에 필수적인 요소와 전쟁 상황에서 필요한 요소들을 끌어모아 러시아의 병사들과 지형, 생산 설비에 맞게 적절하게 조정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러시아의 산업화가 아주 최근에야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러시아의 공업지역 대부분이 적에게 점령되어 있는 상황, 그리고 공장 시설과 숙련공 상당수가 손실되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토록 우수한 전차를 설계해 내었을 뿐만 아니라 막대한 양을 생산할 수 있었다는 것은 가히 최고 수준의 공학적 업적이라 할 만하다."

결론적으로 T-34는 개별성능은 독일군 전차를 압도하지 못했으나 쓸만한 성능에 낮은 생산가와 높은 생산성, 낮은 운용비 등을 모두 감안하면 소련군의 기갑전력이 독일군을 압도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에 승리의 견인차였고 조국을 구한 전차였다. 저 전설적인 티거가 프라모델 금형 신세로 전락하는 동안, 이 투박한 싸구려 전차들이 전염병처럼 유럽을 유린하던 나치 제국을 짓밟고 러시아의 운명을, 아니 세계의 운명을 바꾼 것이다.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이기는 것이라는 산 증인.

1.9. 매체에서의 등장

2차대전을 소재로 한 미국, 구 소련, 러시아 영화들에서는 아직도 주행이 가능한 T-34가 그대로 등장하였다. 한편 라이언 일병 구하기켈리의 영웅들에서는 외형이 적당히 개조된 T-34가 독일군티거 역을 맡았는데, 포탑이 약간 앞으로 달려 있어서 포르쉐 티거와 비슷하다.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대한민국의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등장하는데 M48 패튼이 대역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단, 로드 넘버 원의 경우 76mm포 탑재형의 레플리카를 만들어서 촬영을 하였다.[35] 진짜 T-34를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고 싶다면 통일의 그날을 기약하자.

프라우다 고교소속으로 등장하는데 76mm포 탑재형과 85mm포 탑재형이 모두 등장한다.

'전차'의 기본 모델로 T-34/85가 등장한다. 참고로 독일은 '팬저'라는 괴상한 이름으로 티거의 외형이다[36]. 게임 특성상 동급 보병과 기동성 말고는 아무런 보너스가 없기 때문에 도시 막타용으로나 쓰지 잘 안쓴다. 석유는 다른 필수 유닛들이 많이 사용하기도 하고..

소련 테크트리의 5,6티어 중형전차로 등장한다. 5티어는 76밀리 탑재형이지만 사람들은 거의 57밀리를 쓴다. 6티어는 85밀리 형태. 다른 나라의 5티어 탱크, 특히 같은 중형인 셔먼이나 4호전차에 비해서 앵벌머신이라는 이름은 듣지 못하지만 크레딧 벌이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특유의 경사장갑때문에 장거리 포격시 도탄 확률이 좋다. 57미리 속사포로 꾸준하게 데미지를 줄수도 있고, 76미리로 한방을 노릴수도 있다. (보병을 상대할 일이 없어 고폭탄 사용 여부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게임 특성상 속사 화력이 좋게 설정된 57mm의 평가가 원본 76mm보다 더 좋다. 응?) 다만 장갑은 그렇게 좋지 않은 편이며 동티어 전차들중에선 고티어방에 끌려갔을 시 화력부족으로 가장 약해지는 전차이기도 하다. 중국산 T-34도 있는데 거의 동급이라고 보면 된다.
6티어의 T-34-85는 동티어 중에서도 가장 좋은 중형전차에 속한다. 준수한 기동성과 높은 화력이 합쳐져서 36,01이 중전차가 된 이후 6티어 최고의 중형전차로 꼽힌다. 물론 포탑장갑만 5티어에서 강화되어 장갑은 약하지만 중형전차에 장갑을 요구하는것이 모순이다.
원판 T-34는 엔진 마력 수치와 추중비에 비해 가속력이 그다지 좋지 않다. 이는 원본이 지녔던 기계적인 결함으로 인한 기동성의 악화를 약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비슷하게 조금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전차로는 독일의 판터가 있다.
기프트샵 전용 골드탱크로 T-34/85M도 있는데 포는 T-34/85보다 약하지만 전면 장갑이 강화된 형태다.
T-34의 후속작으로 거론되던 A-43과 A-44 등은 2차 중형 트리로 갈라져나왔다. 둘 다 성능에 대한 평가는 좋지 못하다.
중국은 T-34의 중국버전인 Type T-34를 5티어부터 운용하게 되며 오만가지 마개조를 하여 원판과 연관성을 찾아보기 힘든 8티어 T-34-2/T-34-3까지 T-34의 이름을 쓴다.

도깨비 탱크 T-34라는 이름으로 나오긴 하는데 T-34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거 치고는 생김새도 전혀 다른 모양이라 연관성은 불명.
항목 참조.

T-34/76을 기본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무기고에서 85mm 주포 업그레이드를 마치면 T-34/85를 사용할 수 있다.

2화에 등장하는 토오노 시키 쟁탈 두근두근 비치발리볼 대회에서 나이스어택 상품으로 귀전차(鬼戰車) T-34가 경품 목록에 등장한다. 물론 MVP상인 '시키씨와 둘만의 개인실 숙박권'에 그냥 넘어간다.

T-34/76이 등장하며 독트린에 따라서 T-34/85를 호출하는것이 가능하다.

워게임 : 에어랜드 배틀에서 동독군과 폴란드군이 끌고다닌다. 스팸용 전차라서 수도 엄청나다. 후속작 워게임 : 레드 드래곤에서는 북한군과 소련군도 T-34/85를 끌고 나와, 이론상 T-34만 운용할 경우 160대라는 미친 물량을 보여줄 수 있다(...)

수많은 T-34의 파생형이 나온다.
T-34 1940,1941,1942년 형의 T-34/76과 T-34 1941년 형에 추가장갑을 덧댄 T-34E와 주포를 57mm로 바꾼 T-34/57, 1943년형에 57mm 주포로 교체한 T-34/57 mod.1943이 있고 T-34/85의 초기형과 후기형까지 등장한다.

이 수많은 바리에이션의 T-34들의 장점은 모두 다 다르지만 딱 하나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물장갑이라는것. 차체 전면 관측창이 어니더라도 뚫릴 곳이 매우 많아 몸을 사려가며 플레이 해야한다.[37]
다만 T-34/57이후로 독일군 못지않은 탄속과 관통력을 가지게 되서 공격력만큼은 좋은편이 된다.

T-34/76형이 등장한다. 세계대전 때부터 지을 수 있는 군사기지를 지으면 1개 분대, 총 3대가 지원된다. 공격력과 체력이 높지만 이동속도가 느리다. 냉전 때 반응장갑 업그레이드를 통해 체력을 높일 수 있다.

76/85형 가리지 않고 거의 전편 등장한다. 2차대전 그중에서도 독소전을 주로 다루다보니 4호 전차보다 더 많이 등장하는것 같기도. 일단 물량빨을 보여주지만 가끔 각성(?)하면 판터티거도 잡는다.

2. 미국의 프로토타입 중(重)전차 T34

자세한 것은 T34 항목 참조.

3. 다연장로켓 T-34

2차대전중 미군의 주력전차인 M4 셔먼 전차의 포탑위에 얹던 다연장로켓. 자세한 것은 칼리오페 항목 참조.
----
  • [1] 당시 공장직원 아니다 군 역사가. 취소선이 그어진 이유는 아래 후술.
  • [2] 사실 A-43은 T-34 초기형에서 단점으로 거론되었던 2인용 포탑 대신 3인용 포탑을 사용하고 여러가지 설계상의 문제점을 고칠 목적으로 개발되던 것이라 완전히 잘못된 판단은 아니었다.(Zaloga, S., Sarson, P., T-34/76 Medium Tank 1941-1945, 1997, 13) 개발이 T-34의 생산과 같이 진행되어 방해를 주지 않았으면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쿨리크 본인의 사사로운 호불호 때문에 T-34의 생산을 완전히 중단시키라고 압력을 넣은 것이었다.
  • [3] 참고로 일부 학계에서는 대숙청의 영향보다는 쿨리크 원수의 만행으로 소련이 독소전 초반에 대패하고, 많은 희생을 낳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심지어 쿨리크 원수만 아니었으면, 독일의 기습침공 이후, 오히려 소련군이 반격해서 독소전을 조기종결시켰을거라고 주장하는 학자들까지도 있다.
  • [4] 어느 정도냐 하면 BR-271P 포탄 기준으로 100m 거리의 관통력이 88mm 포와 맞먹는다.
  • [5] 생산공장 전부가 원래 생산되던 T-34/76 때문인것도 한몫
  • [6] T-34/57 의 주포는 원래 대전차전을 염두에 두고 개발된 ZiS-2 대전차포였기 때문
  • [7] 76.2mm L-11 주포를 장착한 초기형 버전. 쿨리크 원수의 방해공작 때문에 1940년동안 117대만 생산되었다.
  • [8] F-34 주포를 장착한 버전. 1941~1942년까지 생산되었다.
  • [9] 1942~1943년까지 생산되었으며 포탑이 육각형으로 변경된 후 방어력이 올라가고 내부공간이 조금 넓어졌다.
  • [10] 하지만 당시 독일은 영국과의 대서양전투나 북아프리카 전선등 여기저기 벌려놓은 일들도 많고 모든걸 자국내에서 해결해야 했지만 소련은 영국과 특히 미국의 엄청난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단순비교는 곤란하다. 물론 소련도 개전초 국가의 핵심지역들이 독일에게 빼앗기는 엄청난 타격을 입기는 했지만...
  • [11] 철갑탄을 아예 지급받지 못해서 대전차전에서 별 소용이 없는 고폭탄만 들고 뛰어들다 산화되기 일쑤였다. 이 역시 쿨리크가 포탄 생산을 방해해서 벌어진 사태이다.
  • [12] 당시 소련전차병들이 스펙상으론 T-34보다 못한 영국이나 미국제 전차를 좋아했다는건 이러한 경향이 크다. T-34보다 기계적 신뢰성이 훨씬 뛰어나 운용하기 편했고 상대적으로 뒤떨어져보이는 장갑방어력이나 화력등은 본가인 영국군이나 미군에겐 불만이었지만 해당전차의 기대치가 그 전차의 체급에 맞는 수준이었던 소련군입장에선 그리 큰 불만요소가 되지 못했다. 즉, 영/미군에겐 셔먼전차가 독일군의 판터나 티거에게 털려나가는게 큰 문제가 되지만 소련군 입장에선 셔먼이 판터나 티거를 상대못하는게 당연한 거라서 판터나 티거에겐 그에 걸맞는 자국산 중전차를 내세워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 [13] 실제로 85mm의 APCR 관통력은 140mm 내외였고, Pak 40의 APCR 관통력은 147mm 수준이었다.
  • [14] 1920~2010. 1939년에 대학을 마치고 세무공무원으로 일하다가 1940년 장교로 징집되었다. (당시 소련도 임박한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군을 확장하고 있었으나, 장교부족 사태 때문에, 대학생 재학생이나 졸업생들에게 속성교육을 시키고 학사장교로 임관시켰다. 전쟁이 터진후에는 아예 조금이라도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은 모조리 장교로 임관시켜 소대장이나 중대장을 시키지만, 이렇게 군사훈련을 전혀 안받은 전술적 무학자들이 소대나 중대를 지휘하다가 소련군은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후반기에는 이들도 짬밥이 생기면서 베테랑이 되고 소련군의 전력은 급상승한다. ) 기갑병과로 배치된 그는 1941년에 독소전쟁이 터지자 T-26을 몰다가 이후 T-34-76을 거쳐 T-34-85를 몰게 된다. 1942년 큰 부상을 당해 후방으로 이송된 그는 회복되자 기갑학교를 졸업하고 1943년 다시 전선으로 복귀했다. 1944년 바그라티온 작전시인 8월 12일 그는 독일군 티거2 전차 3대를 격파하고 1대를 나포해서 소비에트연방영웅이 된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계속 군에 남아서 중령까지 올랐고, 1971년 퇴역후 전차설계에 종사했다.
  • [15] 상대적으로 이시기의 독일군은 서부 영미군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동부전선 전력의 일부를 서부로 이동시켰기 때문에 소련군보다 나을것도 없었다.
  • [16] 원문은 T-34 is an ugly tank, but the T-34 is an easy tank to make. The Soviet Union is frightening Hitler, they started make T-34s, and they just make a lot of them. 문서 상단 인용문에서 보듯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방송된 적이 있는 Top Ten-Tanks 편에서 언급된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앞문장과 연계도 되지 않은데다가 문장자체도 오역이지만 그 오역이 T-34의 미칠듯한 생산력과 묘하게 잘 어울려서 국내 네티즌에게 컬트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 [17] 이 사진의 전차병의 군장의 변화에 주목. 원래 소련군 전차병은 헬멧을 제외한 군장이 보병과 다를바 없었으나, 소련군이 승기를 잡아가고 군복이 대폭 바뀌자 전차병은 흑색 가죽제복을 지급받는다. 독일군과 마찬가지로 소련군도 전차병은 엘리트병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그리하여 독일군처럼 보병과 차별화된 군복을 입게 된다.
  • [18] 변증법의 양질전화에 관한 얘기다. T-34뿐만 아니라 붉은 군대보병용 소화기들에 적용된 설계사상 역시 변증법적 유물론의 연장선상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 [19] 실제로 41년 소련의 전차 손실은 약 2만대인데 42년까지 2만 5천대를 생산해서 버텼다(...)
  • [20] 독소전쟁중의 인원수에 비해 적다는 생각이 들수있지만, 보병계열은 무식하게 가르쳐줘도 수만이든 수백만이든 보병으로 징집이 가능한데 비해, 전차를 운용해야할 전차병을 보병 가르치듯 가르쳐주고 투입하면 팀킬은 물론 각종 사고가 벌어질 가능성이 안봐도 뻔한 경우가 많다(...)
  • [21] 저 T-34는 독일군이 노획하다 방기된 전차로 보인다.
  • [22] 전임 대대장에 대한 불만으로 보복을 하려다 실수로 막 전입온 신임 대대장 일가족을 도끼로 참살하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형수 고재봉이 죽기 전에 기독교에 귀의하게 만든 종교인이 개전 당시 M8 장갑차 승무원으로 참전하여 37mm 포로 철갑탄을 발사하여 T-34를 파괴하였으나 결국 피탄되어 부상을 당한 분이다.
  • [23] T-34/76 Obr. 1943 후기형 버전
  • [24] 참고로 T-34의 대량 생산 경험이 나중에 T-54/55의 기계적 신뢰성을 담보하는데 유용한 피드백이 되었다.
  • [25] 물론 전차운전이 트렉터보다 어렵긴 하지만, 적어도 무에서 양성하는 것보단 훨씬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 [26] 이 사진의 포탑은 PT-76 의 포탑이다. 아래 글에서 서술하듯이 PT-76도 T-34/76 처럼 전차장이 1인2역을 맡아야 하는것이 같으므로.왼쪽이 전차장 자리,오른쪽은 탄약수 겸 동축기관총 사수.T-34/76 포탑 내부는 사진 화질이 낮고 구분이 잘안되어서 이 사진으로 했으므로 양해바람.
  • [27] 76mm 포 의 1인 2역의 역할은 PT-76에서 드디어 끝이 난다
  • [28] 미국도 B-29 정비할때 저렇게 했는데 미국은 아예 비행시간 75시간마다 모든 엔진 교체로 고장을 해결했다.
  • [29] 참고로 스튜어트는 전차 자체와 내부부품의 신뢰성과 속도를 제외하면 T-34에게 밀리는 형편이며, 발렌타인의 경우 장갑과 내부부품의 신뢰성을 제외하면 T-34에게 밀리는 형편이다. 독소전 후기에 가게되면 화력과 장갑이 부실한 스튜어트는 인기가 떨어지게 되지만, 장갑만큼은 T-34보다 두껍다고 할수 있는 발렌타인의 경우 셔먼 못지 않게 전쟁 후반까지도 소련 전차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 [30] 소련이 미국에 운반을 위해 유조식 여과기에 오일을 제거한것을 미국인들이 건식 여과기로 착각하여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미국의 기술자들이 바보도 아니고 시험 평가 때는 실물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설명서 및 제원표도 같이 보내어서 평가받도록 한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신빙성이 낮다.
  • [31] 참고로 논문은 The Journal of Slavic MilitaryStudies 28-1호에 실렸던 보리스 카발레르칙의 Once Again About the T-34이다.
  • [32] KV-1 한대가 8.8cm 대공포까지 동원한 독일군의 공격에도 며칠간 버틴 사례가 있다. 구식 방식이긴 하지만, 어쨌든 초기에 독일군이 대적하기엔 상당한 부담이 되었고 전차 설계 사상을 확립하는데에도 계기가 되었다.
  • [33] 하지만 이 수치는 독소전쟁 발발 전 방해가 있긴 했지만 정상적인 여건 하에서 생산되었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전쟁 발발 후 전선이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하자 산업시설을 우랄산맥 근처로 옮기기 전이었으니 말이다. 후대에 성공적으로 옮겼다는 평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이는 전시 중이라는 것을 감안한 평이고 실제로는 100퍼센트 다 옮기기는 건 애당초 불가능이었고 실제로도 많은 시설물이 손실되었거나 독일군의 손에 넘어갔으며, 옮겼다 해도 전기 같은 기본적인 시설 하나 제대로 없는 허허벌판에서 대량으로 생산하기는 힘들었다. 랜드리스 항목을 보면 잘 나와있지만, 당시 미국은 소련에게 식량부터 시작해 군복,석유,경금속 등등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품목을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덤으로 무기까지 충분히 보내주었다. 랜드리스가 없었다면 T-34 생산량은 만 단위는 기록하겠지만, 9만대라는 수치는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며, 생산되어 나오는 제품들 품질은.....윗글에 잘 나와 있지만 안 그래도 안습인 품질이 더 수직낙하했을 것이다.또한 최근의 전시무기생산량을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무기의 생산량은 제품생산과정의 복잡성보다 그 나라의 산업총생산량 및 역량에 크게 영향을 받는데 랜드리스는 소련의 생산역량이 중공업쪽으로 힘을 쏟을 수 있도록 안정된 기반을 제공해주었으므로 랜드리스가 없었다면 변수가 매우 많아져 t-34또한 지금같은 평가를 못 얻었을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 [34] 하지만 글의 근거가 지나치게 통계자료에만 국한되고 있으며 실제 T-34의 손실은 단순히 T-34의 성능뿐만 아니라 당시 소련의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되어 이루어진 결과임을 전혀 감안하지 않았기에, 진지하게 참고하기에는 적절한 자료라고는 할수 없다.
  • [35] 문제의 고증오류라고 까였던 그 전차 맞다. 허나 위에 써있듯이 현대 매체에서 북한이 76mm형을 쓴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다시 주목을 받았다…
  • [36] 팬저는 Panzer 를 영어식으로 읽은 것으로 뜻은 전차. 끝(...).
  • [37] 고증대로 차체는 후기형인 T-34/85까지 거의 변화가 없지만 포탑 장갑은 두꺼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