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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대학가요제

last modified: 2015-02-28 12:27:23 Contributors

MBC 大學歌謠祭

Contents

1. 개요
2. 대학가요제 역대 수상자
3. 여담


1. 개요


MBC에서 매년 가을 주최하는 대학생 대상의 가요제로, 1977년에 첫 선을 보였고 2012년까지 매년 개최되었다. 제1회에서는 학생들의 창작곡 외에도 번안곡들도 많이 참가했으나 그 뒤 회를 거듭하면서 차츰 자작곡으로만 채워지게 되었다. 촬영 장소도 문화체육관 또는 잠실체육관등 실내에서 펼쳐졌으나 주철환피디의 아이디어로 1994년 18회 대회때 처음 캠퍼스(고려대)에서 펼쳐져 이후에는 대학교 캠퍼스에서 열리는 것이 대학가요제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기성가요계와 대비되는 캠퍼스만의 신선함과 건전함(…)을 주된 콘셉트로 잡아 첫 단계에서부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수많은 가요제가 본격적으로 번성하는 계기가 된다.

오래된 역사에다 가수의 등용문으로도 큰 기능을 했기 때문에 많은 MC들과 새내기 가수들이 이 대회를 통해 유명세를 얻었고 이들 중 현재까지도 방송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물들도 많다. '70~80년대의 수상자들은 대학가요제 n주년 특집 무대에 다시 초청되어 당시 수상곡들을 새롭게 선보이기도 하며, 열린음악회나는 가수다 등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에서 당시 수상곡이나 히트곡들을 간간이 리메이크되어 무대에 올라오기도 한다. 7080 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컨셉트의 컴필레이션 앨범에도 준 필수요소 급.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의 난립과 기획사 위주로 가요시장이 재편됨에 따라 2013년 7월 초 대학가요제를 더 이상 개최하지 않게 되었음을 결정하였다는 소식이 알려졌으며, 이로써 36년간의 여정도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그 뒤 불과 5개월만인 2013년 12월에 36년간 이어진 명맥을 잇고자 대학가요제를 다시 부활시키기로 했고, 2014년부터 대학가요제의 개최를 재개한다고 예정되어 있었으나, 결국 2014년에 개최를 영구 중지하기로 결정되었다. 관련 기사1 관련 기사2

이미 2000년대부터 참가자들의 실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고, 기성 가요를 답습하는 경향이 거세졌다. 그 결과 2006년의 뮤즈그레인을 끝으로 시청자들로부터 주목을 받을 만한 참가자가 나오지 않았다. 또한 집단이 중심이 되던 기존의 대학 문화가 급속도로 해체되고 있는 점도 대학가요제의 존립 기반을 흔들었다.한겨레의 기사

그 뒤, 2014년 11월 8일에 역대 대학가요제 출신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대가회(대학 가요제회)가 직접 공연을 주최해 2년 만에 다시 세종문화회관부터 공연을 시작해 전국투어를 펼칠 예정이다.

2. 대학가요제 역대 수상자

3. 여담

  • 초창기에는 매 대회마다 LP판을 발행하였는데, 시대가 시대인지라 건전가요라든지 다른 기성가수들의 곡이라든지 해당 가요제의 참가곡이 아닌 다른 회차의 참가곡들까지 어물쩡 삽입되기도 하였다(…). 1회 입상곡 및 참가곡이 음반으로 나왔을 때 함중아의 '내게도 사랑이'가 같이 들어간 것이 대표적인 사례.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함중아가 대학가요제 출신인 걸로 착각하기도 한다.

  • 대학 내에서 한번 만들어진 밴드나 팀이 기수별로 이어지다 보니 같은 팀의 후배들이 선배들의 뒤를 이어 다시 수상명단에 오르는 경우도 보인다. 샌드페블즈, 징검다리, 활주로, 샐러맨더스, 쌍투스 등이 대표적.

  • 현재 imbc에서 자사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 과거 대학가요제 영상을 서비스하고 있다.

  • 제1회 참가곡 '당신은 모르실거야'는 혜은이의 원곡을 합창 풍으로 리메이크한 것으로, 핑클의 2001년도 3.5집에도 해당곡을 리메이크한 바 있다. 세 곡을 연달아 들어보면 갭이 장난 아니다(…). 제1회에는 당시 가요계의 흔한 풍조였던 번안곡도 많았는데, 그 원곡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폴 모리아(Paul Mauriat)의 Mother of Mine, 사이먼 앤 가펑클의 The Boxer, 그리고 디즈니랜드 내부의 테마곡인 It's a Small World까지 상당히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 제2회인 1978년에 가장 유명해진 곡은 대상곡이 아니었다. 심민경이라는 본명으로 출장한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 임백천과 고영선이 불렀던 '한마음'[1], 노사연의 금상곡 '돌고돌아 가는 길', 배철수가 소속된 그룹 활주로의 은상곡 '탈춤'은 대상곡이었던 부산대 중창단팀 썰물의 '밀려오는 파도소리'를 압도하는 인기를 누렸다. 특히 심수봉의 그 때 그 사람은 아무런 상도 타지 못했는데 그 당시 기준으로는 가장 히트한 노래가 되었다. 애초에 탈락 이유가 황당하게도 너무 '프로 같아서' 였으니… 예전에 1983년 프로야구에서 장효조가 신인상을 타지 못한 이유인 '참신성이 부족해서'보다 더 기막힌 이유가 되겠다.

  • 역대 대학가요제의 MC 중 일부만 꼽아 보면 현 SM엔터테인먼트 회장인 이수만부터 시작해서 초대 뽀미언니 왕영은, 임예진, 이덕화, 김희애, 이문세 등. MBC 대학가요제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 MBC 대학가요제의 최대 라이벌은 좀 당황스럽게도 같은 MBC가 주관하는 MBC 강변가요제였다[2]. 이 둘은 강변가요제가 7~8월 사이에 열리고, 대학가요제가 9월~12월 사이에 열린다는 것 외에는 차이가 별로 없었다. [3] 그나마 늦게 시작한 강변가요제가 대학생 외에도 참여가능이라는 식으로 학력제한을 없애면서 차별화를 시작했는데, 그게 1999년. 참고로 이 제도가 시행된지 2년 만에 강변가요제가 폐지되었다.

  • 사실 타 방송사에서도 MBC 대학가요제의 인기를 흉내낸 가요제를 벌였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TBC였다. MBC 대학가요제 바로 다음해인 1978년에 개최된 TBC의 가요제 명은 TBC 해변가요제였다. 1회 대상은 한양대 혼성그룹 징검다리가 '여름'이라는 곡으로 수상했는데, 이 그룹멤버중 한 명이 뽀미언니로 알려진 왕영은이었다. 그외에 블랙앤테트라에는 이후 송골매에서 활동하는 구창모가 소속되어 있었고, 이치현과 벗님들의 이치현은 이후 짚시여인이라는 곡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그리고 활주로의 '세상모르고 살았노라'가 인기상을 수상했는데, 이 당시 활주로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송골매의 배철수이다. 다음해에 해변가요제는 TBC 젊은이의 가요제로 이름을 바꾸었고[4] 2회가 진행되었다. 이 때 유명해진 곡은 금상수상곡인 불놀이야를 부른 옥슨80인데, 이 그룹의 보컬이 홍서범이다. 그리고 1981년 TBC가 방송통폐합의 영향으로 사라지면서 젊은이의 가요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 후반기로 가면 공정성 논란, 표절 등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특히 언급되는 것이 2006년의 뮤즈그레인 파동인데, 시청자들에게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던 전주교대 밴드 뮤즈그레인이 아무런 상도 수상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불만이 속출한 것이다. 이 시기 침체기에 있던 대학가요제가 모처럼 언론에 노출된 것이 이 모양이었으니…. 더구나 2007년이나 2009년에는 대상팀에 표절의혹이 제기되면서 평가가 더욱 안 좋아졌다.

  • 2005년 대상 수상 그룹인 Ex는 <잘 부탁드립니다>로 큰 사랑을 받았지만, MBC에서 데뷔도 안 한 그룹을 논스톱 시리즈에 카메오로 출연시키는 등 상업적으로 이용해먹는 바람에 비판을 받았다. 그 결과 신선한 이미지만 소모하고 정작 데뷔시에는 주목을 못 받고 소리 소문 없이 묻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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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내 마음은 하나요 내 뜻도 하나요 어젯밤의 꿈도 하나요'로 시작하는 노래. 임백천의 초기 대표곡이다.
  • [2] 강변가요제가 배출한 가수들로는 주현미, 이선희, 권진원, 박미경, 이상우, 이상은, 박영미, 육각수, 빅마마의 신연아, 박혜경, 김현성, 장윤정 등이 있다.
  • [3] 단지 강변가요제는 MBC 라디오국에서 주최했다는 것의 차이다. 그래서 그런지 초창기에는 'MBC FM 강변축제'였다.
  • [4] 이때 제 2회 젊은이의 가요제라는 명칭을 썼는데, 제 1회 젊은이의 가요제는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