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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

last modified: 2018-03-24 01:53:15 Contributors



정식명칭 엘지전자주식회사
영문명칭 LG Electronics Inc.
설립일 2002년 4월 1일
업종명 이동전화기, 가전제품 제조업
상장유무 상장기업
기업규모 대기업
상장시장 유가증권시장(2002년 ~ 현재)
편입지수 코스피지수
KRX100
KOSPI200
시가총액 9조 7,861억원(코스피 26위) [2][3]
종목코드 066570
홈페이지

Life's Good[4]


Contents

1. 개요
2. 역사
2.1. 금성사 시기
2.2. LG로의 사명 변경
2.3. LG전자
3. 사업현황
3.1. 가전
3.2. TV
3.3. PC 및 노트북
3.4. 스마트폰
3.4.1. 인터넷 슈퍼폰과 알바
3.4.2. 신용등급 하락
3.5. 자동차 부품
4. 보유 브랜드
4.1. 사장 브랜드
4.2. G 프로젝트
5. 공식 블로그
5.1. THE Blog 시기
5.2. Social LG전자
6. 기타
7. 관련 항목

1. 개요

youtube(nFxWSTYHRQ4)
2015년 CES에서 나온 한 영상

대한민국에 본사를 둔 LG그룹 소속의 종합 전자이며 국내에는 삼성전자하고는 콩라인 이다.

전세계에서 백색가전이라는 타이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핸드폰의 헬지

본사는 마포대교 인근의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대로 128(舊 여의도동 20번지) LG트윈타워에 위치해 있다.

사실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리튬과 철을 이용해서 만든 벽돌 유통업체

2. 역사

2.1. 금성사 시기

GoldStar.jpg
[JPG image (Unknown)]
[5]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기술의 상징 금! 성! 절전하세요!
엘리베이터가 오래된곳이면 찾아보세요![6]
시골에도 자주 볼 수 있답니다!
X나게 오래가는 전자기기

1958년 10월, 주식회사 금성사라는 이름의 전자 회사가 설립되었다. 설립자는 故 구인회. 1년 뒤 금성사는 자사 최초 제품인 A-501 라디오를 개발, 생산했으며, 1960년 선풍기, 1965년 냉장고를 만들며 명성을 쌓아 갔다.

그리고 1966년 8월 대한민국 최초의 흑백TV VD-191를 생산하며 대한민국의 대표 전자 회사로 자리잡게 된다. 10년 뒤인 1977년에는 자사 첫 컬러TV인 CT-808, 1982년 대한민국 최초 VCR 및 컬러 비디오카메라를 개발하였다.

창립 25주년(1983년) 기념 광고

1980년대 들어서는 컴퓨터게임기에도 관심을 두었다. 하지만 출시한 게임기가 하필이면 3DO 얼라이브. 결과는 지금 이 게임기를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예상해보면 쉬울 듯하다(...). AVGN배관공은 넥타이를 매지 않는다 리뷰에서도 그가 보유한 3DO 기기들을 이야기할때 잠깐 나온다.

금성사의 제품은 국민 생활에 혁명을 가져왔으며 기실 1990년대 중반 이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전자제품 시장은 금성사가 거의 다 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속옷시장은 vinus가...

그것도 모자라 금성제 전자제품은 보통 더럽게 오래 간다. 광고멘트 그대로10년째 쓴다는 사연은 기본이고, 1988 서울 올림픽 때 산 선풍기가 아직도 현역이라는 케이스도 있으며, 심하면 냉장고나 전자레인지, TV, 세탁기가 20년을 넘어간다는 말도 있다.35년 된 금성 에어컨, LG전자로 돌아온 사연[7] 25년 된 '금성사' 세탁기, "여전히 쌩쌩!" 오히려 삼성전자의 제품은 상대적으로 내구성이 떨어졌다.(반도체 계열은 말고) 이런 사연을 보고 있자면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 전자제품의 수명이 왜 더 짧아지는지 궁금해질 지경이다(...)[8] 물론 현재의 LG전자 제품은 그 정도로 심각한 정도까지는 아니지만...[9]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라는 문구를 꾸준하게 밀기도 했다.
한편 1980년대에는 비디오 사업을 전개하기도 했다. 2000년대 중반에 사업 철수.

2.2. LG로의 사명 변경


금성사는 럭키그룹과 함께 럭키금성그룹으로 불렸는데, 이것은 설립자가 같은 인물이었기에 가능했다.

럭키그룹에 대해 간단히 서술하면, 럭키그룹은 1947년 구인회에 의해 설립한 락희화학공업사로 출발한 기업으로, 한국 최초의 화장품인 럭키크림과 역시나 한국 최초의 치약인 럭키치약으로 유명하다.[10][11][12] 락희화학공업사는 1974년 주식회사 럭키로 상호를 변경했으며, 이후 금성사가 커지면서 1983년 럭키금성그룹으로 그룹명을 바꾸었다.

1995년 럭키금성그룹은 럭키(Lucky)의 L과 금성(Goldstar)의 G를 따온 LG그룹으로 이름을 변경한다.[13][14][15] 그룹명에 맞추어 금성사도 사명을 지금의 LG전자로 바꾼다.

다만 이런 변경에는 숨겨진 사연이 있었으니, 1990년대에 들어와서 금성사가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제품을 제조해서 수출하는 단계를 벗어나 해외에 법인을 세우고 현지생산, 현지판매 체제를 세우려고 하니 이미 Goldstar의 상표가 유명해져서 세계 각국(당연히 해외공장설립이 그렇지만 인건비가 싼 개발도상국)의 잔머리 돌아가는 놈들이 각자 자국에 Goldstar 혹은 비슷한 이름으로 유령회사를 등록시켜놓고 상표권의 사용 대가를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골머리를 썩히다가 아예 회사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이름을 전세계에 등록하는 방법으로 진드기들을 퇴치한 것. 또한 미국에서는 ‘골드스타’가 해외의 전장에 나간 전사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어서 Lucky Gold Star는 전사자에게 ‘잘 죽었다’는 조롱처럼 들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

2005년 LG그룹의 일부 회사가 GS그룹, LS그룹, LIG로 분리되었는데, 전자 쪽은 LG그룹에 남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16] GS그룹에 GoldStar가 없다

2.3. LG전자

하지만 사명 교체와 그룹 분할로 인한 어수선한 분위기는 더 이상 금성 시절의 영광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 바로 마케팅을 내세운 삼성전자에게 국내시장 1위 자리를 내주게 된 것. 이후 콩라인 2인자로 남기 시작한다. 2010년 10월 구본준 부회장이 취임한 이후 사내 구호가 1등 합시다이니 말 다했다(…).[17]

하지만 1995년 미국의 TV업체인 제니스 인수, 1996년 세탁기의 고유명사로 자리잡은 통돌이의 출시, 1999년 필립스와 합작해 훗날 LG디스플레이가 되는 LG-Philips LCD의 설립, 2000년 에어컨 휘센 출시와 LG정보통신 합병, 2005년 대히트한 휴대 전화기 초콜릿폰을 만드는 등 활발한 활동도 했다.

하지만 한 번의 잘못된 판단이 LG전자를 휘청거리게 만든다. 2008년 이후 스마트폰을 위시한 새로운 시장이 도래하는데 당시 대표이사이던 남용 부회장은 뜻밖에도 스마트폰 사업에 서둘러 진출하기보다는 기존 피처폰의 마케팅을 강화하기로 방향을 잡는다. [18][19] 이러한 결정은 라는 별명과 함께 대실패를 기록했으며 실적 악화로 자금이 부족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이를 보다 못한 구본무 회장에 의해 남용 부회장 및 그가 영입한 C레벨 이하 모든 외국인 임직원들이 퇴출당했고, 구본무 회장의 둘째 동생인 구본준 부회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친정 체제가 선포됐다. 그리고 2011년 11월, 기업의 자본환경 개선정확히는 남용이 싸지른 오물더미 클리닝을 위해서 주식을 공모 형식으로 약 1조원 가량 유상증자했다. 친정 체제 선포와 유상증자라는 초강수[20] 이후 LG전자는 헬지 시절을 떨쳐내고 스마트폰 시장 등에서 전열을 재정비하여 재도약 중이다.

하지만, 몇 년 전에 야구에서 자신들을 물먹였던 사나이15년 전에 입힌 내상[21] 때문에 라이벌이었던 삼성전자에 밀려 만년 콩라인을 면치 못하고 있다.

3. 사업현황

LG전자 내부의 사업부는 다음과 같다.

  • 홈 엔터테인먼트 : 약칭 HE사업본부. 3D TV, 랩탑+노트북+프린터 등의 PC, 비디오+오디오 기기 등의 기술, 제품 개발을 담당.
  •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즈 : 약칭 MC사업본부. 피처폰+스마트폰의 휴대 전화기 와 태블릿 및 G워치 등의 웨어러블 담당.
  • 홈 어플라이언스 & 에어 솔루션 : 약칭 H&A사업본부[22]. 냉장고+청소기 등의 백색가전 및 에어컨, 에너지 등을 담당.
  • 비이클 컴포넌츠 : 약칭 VC사업본부. 자동차 부품 담당.

3.1. 가전

백색가전은 금성으로 쌓은 인지도를 이어받은데다 기술력도 높아 시장에서 잘 나간다. 세탁기진공 청소기는 제품명인 통돌이와 동글이보통명사로 자리잡았으며 에어컨은 아예 이것만을 전담하는 부서가 분리될 정도이다. 청소기는 로봇 청소기 부분이 잘 나간다.

냉장고는 경쟁사와 1위 자리를 엎치락뒤치락 하는 중으로, 그 와중에 소송전까지 벌였다. 사유는 냉장고 용량으로, 삼성전자가 2012년 8월 유투브에 상대적으로 용량이 적은 삼성전자 냉장고가 용량이 높은 LG전자 냉장고보다 더 많은 물건을 담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영상을 올리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LG전자는 9월 광고금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졌지만, 2013년 1월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추가로 신청했다. 그러자 삼성전자도 LG전자에 손해배상 소송을 신청했다. 이 소송전은 결국 8월 두 회사가 조건없이 소송을 취하하기로 합의하면서 마무리되었다.

이렇듯 가전은 LG이나, 최근 들어서는 김연아를 내세운 삼성전자에 기우는 분위기이다. 2013년 국내시장에서의 브랜드 가치가 2위로 밀렸다; 손연재로 대항하고 있지만 어렵다

그 외에 정수기, 공기청정기, 제습기, 가습기, 안마의자, LED 전구 등을 만들고 있지만, 인지도는 미미하다. 제습기는 7년 연속 세계 1위임에도 미미하다.

3.2. TV

TV는 90년대 중반 국산 TV로서 당시는 흔치않았던 동시 화면 기능(PIP)을 광고에서 보여주는 등 잘 나갔지만 LCD로 진입한 2000년 이래로 삼성전자의 파브에 쭉 밀리고 있으며 [23] 결국 브랜드를 교체하기에 이른다. 기술력도 부족해 2009년 5월 야구장에서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는데 참여자들이 삼성전자 TV에 점수를 계속 주는 바람에 주최 측에서 결과를 조작하다 들킬 정도(…). 마케팅마저 딸려 LED TV (LED 백라이트를 채택한 LCD TV) 나 보더리스형(무베젤형) TV의 경우, 개발이나 양산은 LG전자가 먼저였지만 이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3D로 진입한 2012년 격차는 더 벌여져 전세계적으로 S전자에 밀리며 북미에서는 2등도 아닌 3을 기록했다.[24] 더구나 3D 송출 방식을 초창기에는 경쟁사처럼 셔터글라스(SG)를 쓰다가 2011년 편광방식(FPR) 노선으로 변경해 SG 사용자에게 불편함을 주었고 마케팅도 '스마트'를 앞세운 삼성전자에 밀리는 상황.

다만 편광방식이 호평을 받았고 LG전자의 기술력도 좋아져 2012년 LG전자, 삼성전자, 소니 3D TV를 대상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는데, LG TV가 승을 거두었다. 경쟁사에서도 편광방식 3D TV를 출시하는 등 호조. 또한 편광방식을 통해 LG그룹 계열사 간 협동을 시험했고, 옵티머스 G를 통해 이를 정착시켰다.

OLED로 진입한 2013년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LG디스플레이 공장의 수율이 딸린 게 안습일 뿐

비트매니아 IIDX 한국 기체 모니터가 이 제품군 계열이다.

한편 2013년 말경 점유율 문제로 듣보잡 화가 되어가고 있던 모바일 운영체제 webOS휴렛팩커드로부터 인수한다는 뜬금없는 결정을 내렸다. 결국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특허권만 빼고 다 사들였고, 이것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 TV를 2014년 CES에서 선보여서 정말로 webOS를 탑재한 제품을 만들것임을 확고히 보여주었다. 애초에 모바일용으로 만들어졌던 운영체제이니만큼 잘되면 스마트폰과 태블릿, 심지어 웨어러블 쪽으로도 활용할 가능성도 높다는 듯.

3.3. PC 및 노트북

데스크탑 시장은 삼성전자의 매직스테이션과 삼보의 체인지업에 밀려 존재감이 없었으며 이는 현재도 그대로다. 또한 컴퓨터 조립을 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비싼 가격에 비해 썩 좋은 부품은 없다는 듯하다.

노트북 시장에서는 1996년 IBM과 합작 지분으로 LG-IBM을 설립, 다른 제조사들이 독자 개발한 노트북을 판매하는 것과 달리, 묵직한 디자인과 튼튼한 내구도로 유명한 IBM의 ThinkPad를 LG-IBM 로고를 붙여 직접 정식 수입해서 판매하였다. 2003년에는 자체 개발 노트북인 XNOTE를[25] 발매하기 시작했는데 미적 만족과 기능적 편의성을 모두 잡아낸 디자인으로 싱크패드 독자 라인업 시절보다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LG-IBM은 2004년 IBM의 PC 사업부가 레노버에 매각되면서 해체되었고[26]. 싱크패드 브랜드는 잠깐동안 한국 IBM에서 관리하다가 레노버가 완전히 PC 사업부를 인수한 후부터는 레노버에서 관리하게 되었다. 싱크패드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ThinkPad 문서 참조.

여하튼 엑스노트는 국내시장에서 사무용 및 개인용으로 꾸준히 팔리면서 이용자들의 호평을 받았으나, 2013년 현재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는 아티브의 기세를 버티고 있다. 아티브 시리즈에 대항하여 텝북이라는 키보드 내장 슬라이드형 테블릿+노트북 제품을 내놨는데 1세대에서는 1366x768 해상도에 1.35kg이라는 어정쩡한 무게과 성능, 그리고 어처구니 없는 키보드 키 배치 때문에 호평받지 못했다. 심지어 광고도 OME! 수준이었다. 2014년 1월에 출시한 2세대는 1920x1080 Full HD 해상도에 무게를 더 줄인 제품을 내놔 유저들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발매된 그램 시리즈 역시 "우리 LG가 달라졌어요"라는 평가와 함께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디스플레이의 LG라는 명성 답지 않게, 파란 색상을 표현할 때 발생하는 세로줄 현상과 무선랜 속도 저하 등의 문제 때문에 논란이 되고 있다. 세로줄 현상의 경우, 개선품을 내놓았지만 기존 사용자들에게는 액정을 교환해주지 않는다는 정책으로 인해 불난 집에 부채질한 격이 되었다. 이제 사후 지원만 확실히 해 주면 될텐데 또한 무선랜의 경우, 구매자들이 구매를 말릴 정도로 계속해서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 제품별 복불복이 너무 심한 상태이며, 2014년 10월 이후 생산된 최신 제품들 역시 동일한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모니터도 국내에서는 LG전자가 우위였었다. 19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용산에서 삼성전자 모니터는 ㅎㄷ전자 모니터와 동급의 저가형 3류제품으로 취급됬고, LG전자의 모니터는 메이저 취급을 받았었다. 하지만 현재는 모니터 업체가 많이 있기에 위상은 많이 줄었다.

프린터는 국내 최초 잉크-헤드 분리형 프린터인 아트젯을 출시했지만 저수익이라는 이유로 1995년 사업에서 철수했었다. 하지만 2011년 사업을 재기해 마하젯을 발매했으며, 2012년 포켓포토라는 초소형 프린터를 출시했다.

반도체 분야는 알다시피.... SK하이닉스 항목 참조.

LG전자의 PC 부품 중 상대적으로 특화되어 있는 부문이 바로 ODD다. 일본 히타치와 합작한 Hitachi LG Data Storage에서 만들고 있으며, 제품에도 이 회사명이 나온다.(약자로 HLDS) DVD-멀티 라이터(DVD-RAM 포함) 및 블루레이 라이터(BDXL[27] 포함)를 만들고 있으며, 외장형도 나온다. 그런데 아직 광스토리지 홈페이지가 업데이트되어 있지 않아 누가 보면 신형 라이터의 출시를 안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신형 라이터 모델을 알고 싶으면 LG전자 홈페이지가 아닌 오픈마켓을 뒤져봐야 한다.[28]

3.4. 스마트폰

삼성이 갤럭시 S를 공개한 2010년, 남용 부회장은 스마트폰이 필요없다며 시장에서 전략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고성능 피쳐폰(맥스) 전략으로 나갔다가 2010년 2분기에 전년도 동일 분기 대비 영업이익이 90% 하락이라는 경이로운 성과(...)를 이뤄냈다. 이러한 경영 실적의 영향으로 남용 부회장은 자진 사퇴를 하고, 구본무 회장의 동생인 구본준 부회장이 취임하게 되었다.[29] 결국... 2010년에는 총 1조원의 적자가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2012년 옵티머스 LTE II, 옵티머스 G의 출시로 부정적 이미지를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UI(옵티머스 UI 2.0)도 쿠키폰 시절 때 부터 쓰였던 스타일의 아이콘을 드디어 버리고, 정사각형 기반의 아이콘으로 새 단장한 UI(옵티머스 UI 3.0)를 채택하여 더 낫게 변화시켰고, 최적화도 갤럭시 시리즈를 많이 따라잡았다.

갤럭시 S 급의 휴대폰[30]에도 안드로이드 아이스크림 샌드위치 업그레이드를 제공하겠다고 밝혀[31] [32] 옵티머스 브랜드가 재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옵티머스 LTE II 역시 100만대 판매량을 넘어서는 호조를 보였으나...

회장님 폰이라던 옵티머스 G는 몇 달이 지났는 데도 젤리빈 4.1 버전에서 업데이트 될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경쟁 기종이던 갤럭시 S3는 이미 4.3 업데이트로 업데이트 해 주었기 때문에 사용자들은 끝없는 불만을 표출했다. 게다가 LG의 경우 옵티머스 3D 2011년 7월 출시, 옵티머스 EX 2011년 9월 출시 ,옵티머스 Q2 2011년 9월 출시, 프라다폰 3.0 2012년 1월 출시, 옵티머스 3D 큐브 2012년 3월 출시, 등 다수의 기종을 모두 젤리빈 지원을 포기 하였지만.(LG의 경우 3g기종은 모든 기종을 젤리빈의 사후지원을 포기하였다.) 베가의 경우 베가 레이서 2011년 6월, 베가 LTE 2011년 10월, 베가 LTE M 2011년 12월, 베가 LTE EX 2012년 1월, 등 다수의 기종을 사후지원 해주었기 때문에 젤리빈에서는 베가만도 못하다는 비판도 듣고 있는 상황. 이 부분에선 삼성을 따라오려면 아직 멀은 듯. 그런데 2014년 3월 폭풍 킷켓 업데이트로 사용자들을 놀라게 했다.

LG 스마트폰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2012년 1분기 스마트폰 점유율 순위 8위 3.7%를 기록했고,# ZTE, 화웨이 등 중국 업체의 무서운 성장률에 밀리고 있다. 2011년 4분기에는 ZTE에게, 2012년 1분기에는 화웨이에게 추월당했다. 화웨이가 2011년 4분기에서 2012년 1분기까지 단 1분기 만에 2.9% → 5.8%라는 기록적인 성장을 이루는 동안 LG는 3.6% → 3.7%로 소폭 증가하는데 그쳤다.#

노키아라는 공룡이 무너지는 동안 흘러나온 점유율을 모조리 삼성이 쪽쪽 빨아먹어서 점유율은 애플-삼성 위주로 고착화 되었는데, 저가형과 중국시장은 중국 기업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LG가 피쳐폰 시절의 아성을 되찾는 길은 쉽지 않아 보인다.

스마트폰에 집중하기 위해 당분간 태블릿 사업에서 철수한다고 밝혔다. # 그리고 테블릿+노트북의 텝북을 내놨다

안드로이드에서 방향을 잡는게 더 시급하다고 판단해서인지 윈도우폰 프로젝트들을 전부 드랍했고, 그 결과 윈도우 폰 8의 협력 하드웨어 업체에선 제외된 상태이다.# 또한, 이미 출시 된 옵티머스 7윈도우 폰 7.8 업데이트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MS의 지원으로 7.8 업데이트가 정상적으로 시행되었기 때문에 LG가 이 방면으로 욕을 더 먹을 일은 없다.

2013년 옵티머스 G와 쌍둥이 레퍼런스폰 넥서스 4, 그리고 갤럭시 노트 II에 대항하기 위해 Full HD 해상도를 적용한 옵티머스 G Pro를 출시했다. 넥서스 4의 경우 저렴한 가격에 구글신의 소프트웨어 최적화, 성능 모두를 만족시켜 많은 호평을 받았다. 프리미엄 시장인 북미 시장 내 점유율도 10%로써 삼성, 애플에 이은 3위로 올라선 상태. 기존에 기덕들이 빨았던 hTC, 모토로라, 노키아, 블랙베리 등이 모조리 Others에 분류되며 시망 상태인 것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다.[33] LG G2 또한 마케팅을 빼먹었지만 만족스럽게 뽑아냈으며, 통신사와의 협의 및 유통 문제도 해결되어 빠르게 전세계에 출시될 예정이다.

세계 스마트폰 점유율의 경우 년도 단위로는 3위를 차지한 적이 한번도 없으나. 분기별 성적까지 포함하여 치자면 한때 애플, 삼성에 이어 소니랑 치고박고 하며 3위를 차지한 적도 있었다. [34] 하지만 중국 업체인 레노버, 화웨이에 밀려 2013년 3분기에 SA, IDC 공통으로 5위까지 밀려났으며, 4분기에는 그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여담으로 2013년 3분기의 SA 집계에서는 잠정집계에서는 4위였으나 최종 집계결과 레노버의 판매량이 올라가면서 5위로 밀려났다. 순위보다도 3~4위를 차지한 화웨이와 레노버는 흑자로 추정 되지만, LG전자 MC사업부는 3분기에는 797억의 적자, 4분기에는 434억의 적자를 기록한 상태라 더욱 우려가 되는 상황이다. 사실 적자가 문제라기 보다 저렇게 마케팅비를 붓고도 순위는 되려 하락했다는게 더 문제이다. 애초에 3분기에 과도하게 부었다는 마케팅비가 2000억인데 이게 이번에 SA,IDC에서 LG를 제치고 4위를 차지한 레노버의 1분기 영업이익 수준인걸 생각하면 최근 LG를 5위로 밀어낸 중국업체들은 더 여력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4분기에 LG전자와 중국업체의 판매량 격차는 더욱더 벌어졌고, 결국 2013년 1~2분기에 6개월 천하를 기록했던 LG는 2013년 최종순위에서마저 4위로 밀려 났다. 여기다가 레노버가 모토로라를 합병하여 버린 것도 LG에게는 악재이다. 레노버가 모토로라를 합병한 상태로 계산하면 2013년 LG전자의 순위는 5위까지 떨어진다. 국내 언론들은 3분기에 5위 했을때 누적판매로는 3위 드립을 줄기차게 했는데 이제 그것마저 못하게 되었다.
단 2013년 3분기의 가트너 순위에서는 레노버 3위, LG전자 4위, 화웨이 5위로 4위를 차지 하였다. 그러나 가트너는 SA나 IDC에 비하여 저명도나 신뢰도가 좀 떨어지는 편이다. 게다가 중국 회사들은 흑자인데 LG전자는 적자인 게 문제다.

최근의 문제는 퀄리티는 점점 올라가고 있는데 점유율은 제자리고 판매량은 안습이라는 것이다. 가끔씩 터지는 버그와 회사 차원의 잘못된 대응, 그리고 더럽게 실력 없는 마케팅 능력으로 인한 브랜드 이미지의 하락이 큰 이유로 보인다. 기존 옵티머스 시리즈의 안 좋은 이미지를 벗겨내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다.

2014년 3월 7일, 커뮤니티 사이트 Seeko에서 타사를 까내림과 동시에 몰래 자사의 제품을 홍보하는 일명 덧글 알바질을 하다가 해당 사이트 운영자에게 제대로 딱 걸렸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공지 참고.

3.4.1. 인터넷 슈퍼폰과 알바

2012년 말부터 언론플레이나 인터넷 알바가 급속도로 늘어났다. 애플-삼성 구도에 어그로가 쏠려 있어서 크게 관심받지는 추세는 아니었으나 근래 네이버 뉴스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덧글만 보면 충분히 삼성&애플을 뛰어넘었다는 언행들은 LG판 앱등이 문제는 헬빠랑 알바랑 구분이 되지 않는다 사실 빠가 아니라 멍청한 거다. 또한, 애플빠,삼엽충에 이어 앞의 두 기업에 반감을 가지고, 옵티머스 LTE II 이 후 LG폰이 버스를 통해기존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자 LG빠들도 생겨나게 되었다. 소위 헬충이또는 헬빠. 이들은 주로 AMOLED를 청소년 정서에 좋지 않은 아몰레기라고 까거나 삼성의 패밀리 룩 디자인을 까고 있다. 허나 전자는 LG G Flex[35], 후자는 옵티머스 G Pro 이 후의 LG 스마트 폰[36]들을 보면 LG전자는 그냥 입을 조용히 다물고 있어야 할 수준이다.

LG의 판매량에 비해 어마어마한 덧글들이나 알바활동, 잘못된 빠심 덕에 네티즌들로부터 인터넷 슈퍼폰이라는 별명을 얻어내었다.

2014년 시코에서 언플을 하다가 적발되었다. 그런데 여기 알바들의 글을 보면 일반 빠심있는 사용자들과 구분 안될 수준의 글들이다.(...)
LG G Pro 2LG G3 출시 이후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빠들까지 이상한 피해의식을 가지고 늘어나는 추세. G Pro 2와 G3의 사건은 각각 항목 참조.

3.4.2. 신용등급 하락

2014년 2월 무디스 사는 LG전자의 신용등급을 모바일부문의 경쟁 심화, 전분야의 평균판매단가(ASP) 압박, 시장점유율 유지를 위해 늘어나는 마케팅 비용 등을 고려하면 영업이익률이 3~4% 수준을 밑돌 것이라며 Lower medium grade에서 최하위인 Baa3로 하강조정하였다. 이는 Non investment grade speculative등급인 소니와도 불과 한등급 차이이다. 무디스 사는 또한 LG전자가 가격 압박과 모바일 관련 높은 수준의 마케팅 비용 등으로 수익성이 수년 동안 둔화될 것 이며 중국 제조업체가 성장하면서 향후 경쟁자로 등장하여 LG전자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칠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무디스의 발언이나 LG전자의 다른 사업은 비교적 양호한 것을 생각해 보면, 이러한 신용등급 하락은 스마트폰의 실패가 강하게 영향을 미친것으로 보인다.

3.5. 자동차 부품

LG화학의 배터리가 전기 자동차 시장에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LG전자는 새로운 먹거리로 자동차 부품을 선택하였고, 2013년 7월 이를 담당하는 사업부를 만들었다.

4. 보유 브랜드

  • 냉장고 : DIOS(디오스)
  • 노트북 : XNOTE(엑스노트), Ultra(울트라), gram(그램)
  • 데스크탑 : XPION(엑스피온)
  • 에어컨 : WHISEN(휘센)
  • TV : 인피니아, 시네마 3D, OLED(올레드)
  • 세탁기 : TROMM(트롬)
  • 청소기 : 동글이, 로보킹, 싸이킹
  • 휴대 전화 : G, Vu, F, L

4.1. 사장 브랜드

  • 에어컨 : 바이오 어라?
  • TV : 아트비전, XCanvas(엑스캔버스)
  • 휴대 전화 : Cyon(싸이언), Optimus(옵티머스)

4.2. G 프로젝트

휴대폰에서 시작된 G 브랜드를 그룹 차원에서 밀고 있다. 옵티머스 G는 LG전자 홈페이지가 아닌 LG그룹 홈페이지 '이노베이션' 부분에 들어가는 영광을 누렸으며[37] 옵티머스 G에 이은 이른바 'G 프로젝트' 가 그룹의 중점 사업으로 떠올랐다. 22Kg 트롬 세탁기, 휘센 손연재 스페셜 G, 901L 양문형 냉장고, 블랙라벨 세탁기 등 자사의 혁신적인 백색가전 제품에 대해 G 프로젝트로 통칭하고 있다.

휴대폰에서도 플래그쉽 제품에 한해 옵티머스 브랜드를 버리고 LG G 시리즈로 개편하였다. 국내에서는 LG G2 출시와 함께 정식으로 개편하였고, 옵티머스 G Pro도 해외에서는 LG G Pro로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38] 모종의 사건 때문에 거G라는 비아냥을 받기도

5. 공식 블로그

2009년 3월 10일 'THE Blog'로 시작했으며 현재는 'Social LG전자'라는 이름으로 운영 중이다.

5.1. THE Blog 시기

주소는 http://blog.lge.com. THE Blog 라는 이름은 네티즌 공모로 지어졌다고 한다. 꼭 공모가 필요한 이름인가 다른 기업 블로그와는 다르게 비회원도 댓글을 남기는 것이 가능했다.

기업 내, 외부에서 일어난 여러 일들을 포스팅하고, 또 피드백을 착실히 받는 등 기업 블로그 중에서는 성공 사례로 자리잡는 듯 했으나, 옵티머스 Q의 프로요의 난으로 대혼란을 격은 뒤 새로이 개편을 하게 된다.

5.2. Social LG전자

주소는 http://social.lge.co.kr. 메뉴 위치도 바뀌었다.

THE Blog 때와는 달리 Social LG전자에 로그인하거나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야만 댓글을 쓸 수 있다.

6. 기타

  • 2011년 2월 4일소니에게 PS3와 브라비아 TV가 자사의 블루레이 관련 기술이 무단사용 되었다며 소송드립을 날렸다. 10년 12월에 소니 에릭슨에게 소송당한 것에 대한 맞소송이라는데. LG가 승소한다면 PS3의 북미 수입이 금지되는 엄청난 여파를 불러올 수 있지만, 어차피 소송이 끝날 때 쯤에는 PS3의 수명이 끝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소니에게 있어서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유럽 쪽에서는 이 때문에 PS3의 유럽 수입이 10일간 금지되었는데, 그 뒤 3월 11일, 소니가 승소하여 유럽 지역에서의 PS3 압류가 해제되었다. 또한 소니 측에게 13만 유로(약 2억원)의 소송 비용을 지불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하지만 아직 끝난게 아니다. 미국 ITC에 소송건 것은 이제야 시작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럽건도 압류 건만 해결된 것이지, 특허 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다(...).

  • 사실 LG전자는 특허 포트폴리오가 매우 강하다. LTE(통신), ATSC(디지털 TV), MPEG(비디오 코덱) 등 주요 특허 분야에서 세계 정상급이다.
  • Linux가 설치된 PC에서 FLATRON 모니터를 연결하면 LG Electronics 가 아닌 Goldstar 로 인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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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금성전자라는 사명을 사용한 일은 없다. 그러나 그렇게 알고 있는 분들을 위해 리다이렉트.
  • [2] 2015년 03월 20일 기준
  • [3] http://finance.naver.com/sise/sise_market_sum.nhn?sosok=0&page=1
  • [4] 과거에는 LG전자의 구 명칭이였던 럭키금성(Lucky Gold)의 앞 글자를 따온 것이였다.
  • [5] 참고로 이 형태는 1980년대 중후반부터 사명 변경 직전까지 썼던 형태이다. 1960년대~80년대 초까지 썼던 로고는 아래 CF에서 볼 수 있듯이 미묘하게 딱딱한 느낌이었다(...)
  • [6] 엘리베이터 사업은 이후 LG산전 -> LG오티스를 거쳐 지금은 한국오티스에 흡수합병. GoldStar라고 써 있는 부분에 바뀐 사명을 스티커로 붙여 놓은 곳도 많다.
  • [7] 1977년 생산품. 가동해보니 아직 냉방력은 여전했고, 더욱 놀라운 사실은 기증자가 사용하던 35년간 한 번도 고장난 적이 없었다고 한다. 흠좀무. 정말 오래 간다.
  • [8] 그래서 이런 도시전설이 있다. 요즘 나오는 전자제품은 시간이 지나면 일부러 고장이 나게 설계한다는 것. 소니타이머 참고. 사실 복잡하고 고장이 날 구석이 많아서이기도 하고 옛날에는 그냥 무식하게 튼튼하게 만들다가 이제는 더 작은 크기에 고밀도화된 칩셋, 기판 등이 들어가기 때문에 내구성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 [9] 남아프리카 공화국토네이도가 몰아쳤는데 이에 LG 냉장고가 내동댕이쳐졌지만 외관이 훼손된 것 외에는 작동에 문제가 없어 내구성이 탱크임을 입증한 기사가 있었다. LG전자의 가전 제품은 예전 금성사 시절 때보다는 아니지만 여전히 내구성은 괜찮은 듯 하다. 관련 기사
  • [10] 구인회는 1931년부터 차례대로 '구인회상점', '주식회사 구인상회', '조선흥업사'를 세웠지만 이들 회사는 LG그룹과는 관계가 없다. 럭키크림을 판매하고자 설립한 락희화학공업사가 LG그룹의 직접적인 모태이다.
  • [11] 럭키가 락희(樂喜)가 된 데에는 당시 이승만 정권에서 외세를 배척한다며 기업이름에 외래어를 쓰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혹은, 기업명칭으로는 아직 한자가 친숙하고 외래어가 익숙치 않은 시절이라 럭키에 최대한 가까운 한자이면서 좋은 뜻을 내포한 락희라는 가차를 쓰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 [12] 다만 락희라는 한자를 일본어로 읽으면 럭키가 되긴 한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 [13] 이를 보여주듯 LG그룹의 본사인 LG트윈타워의 엘리베이터 문에는 럭키그룹과 금성사의 마크가 같이 새겨져 있다.
  • [14] 개별 계열사 중에는 그룹명 변경 이전부터 LG라는 사명을 사용한 경우도 있다. 그 내려가는 야구팀이라던가
  • [15] 그런데 Life's Good이라는 슬로건을 사용하면서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들고 있다(?).
  • [16] 단, LG전자의 자회사로 민수용 전자부품 및 레이더, 미사일 등 정밀군수물품등을 생산하던 LG이노텍은 민수용 전자부품 생산업체인 LG이노텍과 군수물품 생산업체인 넥스원퓨처로 분리되었다. 이후 넥스원퓨처는 다시 LIG그룹에 편입되어 현재는 LIG넥스원이 되었다.
  • [17] 아직 백색가전, 데이터 스토리지 등 몇몇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S전자보다 높다. 그럼 뭐해 돈이 안되는데
  • [18] 그 외에도 남용은 글로벌 회사로 도약한답시고 부사장급 임원들을 전부 외국인으로 바꾼다던가, 20년 이상 근무한 내부직원보다 외국인 직원의 의견을 더 듣는다던가, 기술 개발 비용을 줄이고 마케팅 비용을 늘리는 등의 기행을 일삼았다.
  • [19] 때문에 외국인 임원과 국내직원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고 신기술 개발 속도가 느려졌으며 무엇보다 변화하는 시장 상황에 제대로 대처를 못하게 되었다. 이것은 초콜릿폰과 LCD TV로 존재감을 드러내던 2008년까지는 그 충격이 크지 않았지만, 2010년 이후 스마트폰과 3D TV 시대에 대응하지 못하고 우왕자왕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결과로 드러났다.LG전자에서는 이 때를흑역사로 여기는 듯.
  • [20] 현행법상 지주회사는 자회사 주식 최소 30% 이상을 보유해야 하는데 유상증자 액수가 당시 시총의 10%에 육박했고, 이로 인해 보유 지분율이 30%대 초반으로 떨어졌다
  • [21] 이 당시, 전경련의 제안으로 김대중 정부에서는 그룹 간 빅딜을 제안했는데 컨설팅을 맡았던 외국계 컨설팅 기업에서 파견한 인원 중 한국인 컨설턴트 한 명이 이장석이었다. 그가 반도체 분야에서 LG반도체보다 역량이 밀렸던 현대전자에 지나치게 후한 평가를 하는 바람에 LG그룹은 피눈물을 흘리면서 LG반도체(투자한 규모와 인력, 시간, 수익성 면에서 그룹 차원의 애착이 크고 깊었던 기업이었다.)를 넘겨야했고, 이 때문에 구본무는 이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14년 동안 전경련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렇게 떠나보낸 LG반도체는 결국, 2012년 03월 23일부로 SK그룹의 자회사가 됐다. 게다가 LG는 남용의 권한 남용(濫用)으로 인해 하이닉스를 되찾아올 여유도 없었다.
  • [22] 2014년 12월부로 기존 HA 사업본부와 AE 사업본부가 합쳐졌다.
  • [23] 이 때 삼성전자는 소니와의 합작 회사를 설립해 기술을 상당량 흡수했다.
  • [24] 공립학교나 공공기관에 설치되어 있는 오래된 브라운관 티비나 VCR 대다수가 Goldstar인 걸 보면, LG전자가 TV에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 [25] 자체 제품이나, 브랜드는 LG-IBM으로 출시되었다.
  • [26] 여담으로, IBM은 LG에 PC 사업부의 매각을 제안했으나 Xnote의 성공적 시장 진입으로 인해 거절했고 결국 중국레노버에 매각하게 된다. 참고로, 2012년 레노버IBM의 PC 사업부 인수 이후 폭풍성장하여 전세계 PC 사업 2~3위 기업이 되었지만 LG전자는... 후새드
  • [27] 블루레이 미디어 중 가장 최신의 규격으로, 기본이 100GB다.(최대 128GB)
  • [28] LG전자 외국 홈페이지에는 업데이트되어 있다.
  • [29] 웃기는 건 남용 부회장이 자진 사퇴하기 바로 전 주에 LG의 성공과 한국 재벌스럽지 않게 구씨가 아님에도 성공 가도를 달리는 전문 경영인 CEO니 뭐니해서 타임지에 꽤나 길게 기사가 났다. 그리고 이분은 LG텔레콤 에서도 CEO 직을 내려놓게 된 경력이 있다.
  • [30] 안드로이드 아이스크림 샌드위치 업그레이드를 지원하지 않는다. 이유는 항목 참고
  • [31] 사실 LG전자가 잘했고, 삼성전자가 못 했다고 하기가 애매하다. 갤럭시 S의 출시일은 2010년 6월이며, LG에서 갤럭시 S 급의 스펙이라고 공언한 위 모델들은 그보다 1년 뒤인, 즉 갤럭시 S II 시기에 출시된 폰들이다. 안드로이드 초기 모델이었던 갤럭시 S는 삼성전자가 예상하지 못한 메모리 파티션 문제 때문에 업그레이드가 상당히 껄끄러운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당시 스펙이 좋았던 갤럭시 S라도 이미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 보급화 된, 1년 간격으로 나온 기기 간와 초기 모델과의 차이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 [32] 시기로 보면 그래도 2010년 모델을 벨류팩이나마 제공해 준 모델은 삼성전자 뿐이고, LG전자는 2010년 기기의 사후지원을 제공하지 않았다.
  • [33] 아심코의 분석에 따르면 대부분의 모바일 기업은 적자나기 시작하면 그대로 시망 테크를 타지만 예외적으로 LG 전자는 모바일 이외에 매출의 원천이 많아 버텨냈다고 평가했다. 근데 소니는 왜 그 모양이야 소니는 전자 및 가전도 적자라서 금융으로 먹고 살거든
  • [34] 2013년 1분기 ~ 2013년 2분기
  • [35] AMOLED 디스플레이를 탑재했다. 정확히 말하면 P-OLED 기술이다.
  • [36] 옵티머스 LTE 2와 전혀 다른 디자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 대체적으로 삼성 플래그쉽 기종들의 디자인을 많이 의식했음을 알 수 있다.
  • [37] 현재는 LG G2로 교체.
  • [38] 제품명은 그대로 옵티머스. http://www.lg.com/us/cell-phones/lg-E980-optimus-g-p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