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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last modified: 2018-11-23 02:01:41 Contributors

KBO 리그 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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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Samsung L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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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 히어로즈
(Kiwoom Her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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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다이노스
(NC Din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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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LG Tw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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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SK Wyver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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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Doosan B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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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Lotte Gi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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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KIA Tig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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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Hanwha Eag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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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위즈
(kt wiz)
과거에 참가했던 구단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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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엠블럼[1] 팀 마스코트
근성이,팀웍이[2] [3]
LG 트윈스
LG Twins
창단 1990년 3월 15일
구단 법인명 ㈜LG스포츠
영문명칭 LG Twins Baseball Club
상장유무 비상장기업
기업규모 대기업
연고지 서울특별시
구단 연고지 변천 서울특별시 (1990~)
구단명 변천 MBC 청룡 (1982~1989)
LG 트윈스 (1990~)
구단주 신용삼[4]
사장 남상건
단장 백순길
감독 양상문
홈 구장 잠실 야구장
(25,553석)
2군 구장 이천 LG 챔피언스 파크
(874석)
워드 마크[5]
LG_TWINS.jpg
[JPG image (Unknown)]
킷 스폰서 데상트
홈페이지 홈페이지[6] 공식 애플리케이션

최종 우승
2회
1990, 1994
역대 우승 엠블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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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994년

LG스포츠[7]
LG 트윈스
(야구)
창원 LG 세이커스
(농구)

1990년 한국시리즈 우승 팀
1989-해태 타이거즈 LG 트윈스 1991-해태 타이거즈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 팀
1993-해태 타이거즈 LG 트윈스 1995-OB 베어스

Contents

1. 개요
1.1. 구단 소개
1.2. 관중 동원력
1.3. 신인 육성과 FA 잔혹사
1.4. 구단이 그룹 이름을 바꾸다
2. 레전드
2.1. 영구결번
2.2. 상징적 인물
2.3. 아름다운 과거, 1994 신인 3인방
3. 엘레발
4. 팀의 역사
4.1. 역대 감독
4.2. 역대 성적 (MBC 청룡 시절 포함)
4.3. 2009년 이후
5. LG 트윈스 선수 관련
6. 트윈스 관련 커뮤니티
6.1. I love Twins
6.2. LG 트윈스 갤러리
7. 역대 유니폼 변천사
8. 사건사고
9. 지역 연고 학교
10. 관련 항목
11. 네임드 팬
12. 응원가
13. 그 외 트리비아


1. 개요

KBO 리그의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서울특별시. 서울을 연고지로 하는 3개 구단 중 하나이다. 모기업은 LG그룹으로, 산하 스포츠 법인인 LG스포츠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홈 구장은 잠실 야구장으로, 두산 베어스한집살이공유하고 있다.

1.1. 구단 소개

LG그룹문화방송MBC 청룡을 1990년 1월 18일 150억 원에 인수하여 그 해 3월 18일에 재창단, LG 트윈스 시대가 시작되었다.

2000년대 성적은 6668587667으로 좋지 않은 편(2003~2012년)이다. 롯데 자이언츠가 가지고 있던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기록을 경신하며 신기록을 달성하고 말았다. LG가 21세기 들어서 가을야구를 한 시즌은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2002년,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2013년, 최하위에서 4위로 대반전에 성공한 2014년 세 번 뿐이다. 유니폼은 핀 스트라이프지만, 막상 하는걸 보면 굉장히 어메이징하다(...).[8]

일본 위키에서는 월드컵이 개최되는 해마다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징크스가 있는 팀 이라고 적혀 있다.(...)2002년 이후 일본 위키는 아예 갱신을 안한 듯 하다.(...) 확실히 1990년, 1994년, 1998년, 2002년 시즌에는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었고 그중 2시즌엔 아예 우승까지 하긴 했지만,[9] 그것도 이젠 옛날 이야기고 근래 들어서는 월드컵이 개최되는 해에도 부진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2006년에는 창단 첫 최하위,[10] 2010년에도 6위에 머물렀으며 2014년에도 한화와 탈꼴찌 싸움을 하는 신세를 지기도 했다. 양상문이 취임한 6월 이후부터 무려 5계단이나 순위가 상승하며 2년 연속 가을야구를 하게 되었고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하여 이 징크스가 다시 살아날 듯 보였으나 넥센에게 1승 3패로 무릎을 꿇고 또 좌절했다.

경기 스타일에서 드러나는 팀컬러는 강력한 한방의 장타보다는 호타준족으로 치고 달리는 야구를 구사한다. 시대에 따라 팀컬러가 바뀌곤 하는 프로야구이지만 트윈스는 전성기 시절부터 장타보다는 연속 안타와 빠른 발을 기본으로 한번 점수를 내기 시작하면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신바람 야구로 유명했다. 단 한번 흐름이 끊기면 답이 없는 단점이 있어 내려가면서 암흑기엔 팀 전체가 롤러코스터를 타기 일쑤였다. 이를테면 어제는 두자릿수 득점을 했는데 오늘은 안타 한두개에 그쳐 빈타에 허덕인다거나... 투수 쪽에서는 전통적으로 선발보다는 불펜진이 강해서 잘되던 때가 많았으며 팀의 전설이자 유일한 영구결번인 노송 김용수 역시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활약한 투수. 우연인지 이런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팀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투수는 꾸준히 나타나 김용수-이상훈-봉중근으로 그 계보가 이어지고 있다.[11]

매해 겨울철에 기사거리를 쏟아내는 특성이 있어, 봄데, 여름성, 가을솩의 뒤를 이어 겨울쥐로 불리기도 한다. 여기서 기사거리는 "엘레발"이라든가 칠레발혹은 정말 겨울철에 엄청난 실력을 보줬다는 쪽인데 2013년 2월 25일, 연습경기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11-1로 대파하였다! #

1.2. 관중 동원력

좌측 상단부터 시계 방향대로 이상훈,김용수,정삼흠,김태원,인현배,서용빈,김재현,유지현

마지막 멘트에서 OB 팬이었던 최의민의 푸념(?)이 느껴진다. 아닌게아니라, LG가 최전성기를 누릴 당시 OB는 하위권을 전전하는 암흑기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LG가 압도적으로 우승을 한 1994년에 OB는 이 사건이 일어나서 엄청난 내홍을 겪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1995년에 OB가 우승을 했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 귀신같은 8위(...). 우승후 다음해 최하위라는 전무후무한 기록(...)[12]을 세웠다.

서울특별시를 연고지로 하며, 기나긴 암흑기 끝에 빠질건 다 빠졌던 시기에도 관중수 3위권 정도는 너끈히 찍었다.[13] 키워도 종종 출현하나 롯빠보다 전투력이 부족.[14] 리즈시절에는 롯데, 해태가 와도 잠실에서의 관중 숫자에서 전혀 안 밀렸다. 오히려 LG가 잘 나갈 때는 롯데가 못 나간 경우가 많아서 롯데가 잠실로 원정 온 경우에는 쪽수로 압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3년 비밀번호를 깨버리자 6년만에 관중 동원 1위를 탈환, 128만명을 동원하며 95년에 세워졌던 최다관중 기록을 갈아치웠고, 2014년에도 118만명을 동원하며 1위를 유지했다. 더불어 2015년 기준 롯데 자이언츠, 두산 베어스와 같이 통산 관중이 2천만명을 넘은 구단이기도 하다.

리즈 시절의 LG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서울 내 최고의 인기팀이었지만[15]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부당한 대우로 시작되는 구단 내 삽질과 자율이 방종이 돼버린 선수들의 무기력한 모습들이 성적부진으로 귀결되어 팬이 많이 떨어져나간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상훈, 김재현같은 경우도 있지만 프런트가 어떤 짓을 하건 결국 성적이 잘 나오게 되면 팬들은 그 팀을 지속적으로 응원하게 되며 특히 LG처럼 구단 충성도[16]가 높은 팀은 더더욱 그러하다. 한동안 겪은 총체적 난국은 근본적으로 성적에서 비롯되어 이리저리 문제점들이 부각되는 것이었다.

같은 구장을 쓰는 두산 베어스와 비교해봐도 두산이 최근 성적이 LG보다 압도적으로 우위에 점했음에도 관중수에서 큰 차이가 안 나는 걸 보면 서울 내에서 최고 인기 구단은 LG라 할 수 있다. 이는 신바람 야구로 불리던 최전성기 시대였던 1990년대에 입문한 팬들이 세월이 흘러 30~40대가 되었고 WBC와 올림픽 이후 인기몰이를 한 두산 팬은 상대적으로 팬들이 없다는 현상이다. 그리고 30~40대 팬들의 아이들도 LG팬이 되고, 여성 팬들도 두산에 비해선 적지만 많이 유입되면서 팬덤 크기가 유지되고 있다.

야빠 만화가인 최훈이 가장 까는좋아하는 팀. 예전부터 팀이 망하면(...) 팬들이 명문장과 명작들을 쏟아내는 경향이 있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란 소설까지 꼽지 않더라도 야구의 추억의 저자 김은식, 인천야구에 대한 책까지 펴낸 고 이종남 기자, 이런 네임드는 아니라도 삼미계열이나 쌍방울 팬들의 글은 인터넷에서 흘러다니는 글도 구구절절한데, 이게 21세기 들어서는 엘롯기에서 보인다는 이야기. 특히 대표적인 경우가 최훈. 그런데 최훈은 원래 하대리로 떴고 야구 만화도 국내보다 MLB카툰으로 먼저 성공했다. 망한 팀의 팬이 각성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사례. 물론 LG가 삽질하거나 괴물같이 추락하면 거기에 관련된 명작들이 쏟아져나온다.

마스코트는 팀웍이와 근성이.[17] 몇몇 팬들 사이에선 오리갑을 마스코트화하자는 얘기를 하고 있다. 그럼 구단명을 오리스로 바꿔야 해! 그림판 마스코트는 다운로드에 엠블럼을 클릭하면 볼 수 있다. 야구팬들 사이에선 마스코트 이름만 근성과 팀웍이고 현실은 시궁창이라며 비웃는 상황.

선수들 응원가의 퀄리티가 평균적으로 굉장히 좋은 편이란 것도 인기몰이에 한 몫을 하고 있다. LG 경기에 간 상대팀 팬들이 LG 응원가에 중독되어 나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오죽하면 삼성 라이온즈 팬들은 LG에서 응원단장만 데려오면 된다고 할 정도다.[18] 김용일 OUT 심지어 2014년 준플레이오프에서는 1차전부터 홈경기 팀인 NC 다이노스 응원단을 발라버리는 위업을 달성했는데 특히 3-4차전 홈경기에서 3루 응원단석을 제외한 모든 자리에 앉은 LG 팬들의 노란 수건으로 가득 채웠다. 물론 NC가 신생팀임을 감안해야 하는 점. 비슷하게 플레이오프에서도 3루를 제외하고 모든 좌석을 LG 팬들로 채웠다.

응원가에 대해 한 가지 사족을 더 달자면, 2007년부터 부르던 LG의 응원가 노래 중 티 김 선생의 노래가 많이 쓰인다. '서울의 찬가', '서울의 모정', '그대 없이는 못살아'[19]가 그 예.

1.3. 신인 육성과 FA 잔혹사

FA 계약한 선수들이 하나같이 삽을 푸는 불쾌한 징크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일명 FA 잔혹사.(홍현우, 진필중, 마해영, 박명환.) 특히 정성훈을 제외한다면 해태-KIA 타이거즈를 거치고 FA로 이적한 선수들이 먹튀가 된다는 것. 문제는 외부 영입 선수뿐만 아니라 프랜차이즈 선수에게 FA를 안겨 줘도 그렇게 되는 것이(조인성[20], 김재현) 구단과 팬 양쪽 모두에게 적극적인 영입 공세를 꺼리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도 계속 질러댄 덕분에 드디어(?) 무난한 케이스가 나왔으니, 바로 이진영정성훈이다.

선수 자체 육성이 된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현실은 시궁창. 유망주는 최소 10년을 숙성시켜야 한다는 게 언제부터인가 이 팀의 전통. 그나마도 그걸 못 기다려서 다른 팀에 넘기면 박병호이용규처럼 포텐셜 대폭발...2009년 시즌 끝나고 박종훈 감독을 영입해 유망주 양성에 힘을 기울이기로 했는데 그 새를 못 참고 2년만에 사퇴하여 김기태 수석코치에게 감독직을 넘겼다.

1990년대 라이벌이었던 해태 타이거즈와는 정 반대로, 빼어난 왼손잡이가 넘쳐나는 전통이 있다. 특히 전성기 시절 타선은 뭐 유지현한대화, 김동수 정도 빼면 죄다 왼손잡이. 넓은 잠실 야구장과 빠른 발, 그리고 2루타 정도는 노릴 수 있는 갭 파워를 겸비한 타선은 한번 불 붙으면 정신없이 휘몰아쳐서 상대의 혼을 빼놓는 야구를 했었고 그게 바로 LG의 상징과도 같은 신바람 야구의 근간이 되었다. 투수진에서도 이상훈을 비롯한 좋은 좌투수들이 있었고 지금도 봉중근, 박용택같은 좋은 왼손잡이들이 있지만...해태 타이거즈왼손잡이 찾으려고 그렇게 눈에 불을 켠 것처럼 이 팀은 우타 거포가 정말 징글징글하게 안나온다. KIA 타이거즈최희섭, 이용규, 양현종 등등 왼손잡이에 대한 갈망을 한시나마 푼 것과 다르게 이 팀의 우타 거포 워너비는 현재 진행형이다[21]. 한대화는 사실 해결사였지 거포는 아니었고, 그나마 제 몫을 한 건 우승했던 그 시즌밖에 없으며[22] 홍현우를 데려왔지만 그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박병호가 매년 1군에 들락날락했던 이유. 하지만 박병호도 트레이드했다. 결과는....

그래도 외야수 유망주만큼은 MBC 청룡 시절부터 미스터리하게도 화수분이다. 외야수가 없어서 고민해 본 적은 극히 드물다. 여기서 마르지 않는 LG외야라는 말도 나왔다. 1순위든 하위 지명이든 신고선수든 좌타외야수는 계속 나온다. 근데 투수 좀....

LG 트윈스 2군 구장이 위치한 구리시 아천동의 챔피언스파크가 훈련하는데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이라는 의견이 LG 팬/타 팀 팬들을 가리지 않고 나온다. LG 트윈스 2군 구장의 위치가 유흥가 지역이랑 너무 밀접해 있어서 젊은 선수들이 훈련에 집중 못하는 게 당연하고 노는 데에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중론이다. 이 야구장은 사실 LG 축구단의 훈련장이었는데, 그 중 1면을 야구장으로 개조하여 쓰고 있다가 걸렸다. 의정부 법원에서 다시 축구장으로 돌려 놓으라는 판결과 함께 LG 구본준 구단주도 이런 의견을 인지했는지 이전을 추진 중이다. 다만 이전하는 위치가 이천시의 남쪽인 대월면 부필리인데 그조차도 LG 선수들에게는 사치라는 의견도 많다.[23] 아예 2군 구장을 전라북도 무진장 지역으로 옮겨야 한다는 의견까지 있다.(무주군, 진안군, 장수군) 우스개 소리로 아예 연평도로 옮기자는 얘기까지 있다. 물론 연평도로 갈 일은 없겠지만 LG 유망주들의 느린 성장속도와 유흥을 즐긴다는 소문에 질린 LG팬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건 사실이다. 한때 넥센의 2군 구장이 전라남도 강진군의 강진베이스볼파크를 임차하여 사용하고 있고 계속 좋은 유망주가 나온다는 걸 생각하면[24] LG도 2군 구장은 아예 야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지방 군단위 지역쪽으로 옮기는게 어떨까 하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있다.[25] 여담으로 LG 트윈스 2군 구장을 LG 트윈스 갤러리에서는 구리식물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김기태가 2군 감독을 거쳐 정식 감독이 된 이후 타자 유망주들이 2군과 군경팀에서 날아다니며 폭격기 소리를 듣는 선수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2014년에 경찰청과 퓨처스리그 북부리그 선두 경쟁을 하자 구리동물원이라는 말이 쥐갤에서 생겨났다. 그래서 팬이랑 전문가들은 이들이 제대할 시기인 2015년~17년이 팀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거라고 예측하고 있는데, 2014년 군 복무를 마친 서상우, 김재율, 유강남, 윤정우, 나성용과 현재 군 복무 중인 강승호, 정주현 등이 자리를 잡아 세대교체가 된다면 2013년~2014년 시즌에 세운 강팀의 기반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2014년 8월 22일부터 구리를 떠나 이천 챔피언스 파크로 훈련장을 옮겼다.이천동물원

거기다 LG 트윈스 2군 선수들 멘탈을 관리하는 코치나 고참 선수가 없다는 것도 문제. 이형종, 서승화, 이승우 등이 감독을 대놓고 디스하는 글을 SNS에다 올린 것들을 보면....다만 2012년 시즌 종료 후 계형철SK 와이번스 투수코치가 재활군 코치가 임명되면서 이 문제는 다소 해결되었다.

또한 용병들도 이 삽질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는데, 외국인 선수 제도 도입 이후로 투수는 니 해리거, 크리스 옥스프링, 타자는 로베르토 페타지니를 제외하면 성공작이 없다.[26] 외국인선수라는 게 특성상 1,2년 잘하면 일본으로 가든가 기량이 하락하든가 하긴 하지만 그런 걸 감안해도 1년 평작 친 선수도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2000년에 잘해준 니 해리거 이후 2008년 로베르토 페타지니가 오기 전까진 그저...전설의 용병 매니 아이바도 있었고. 서울 라이벌 두산 베어스[27]타이론 우즈, 다니엘 리오스 등 KBO 역대급 용병을 최소 3,4년 이상 아주 단물 쪽쪽 빼먹은것과 매우 비교된다.[28]

여기에 한이 맺혔는지 2011년 시즌을 앞둔 스토브 기간 동안 외국인선수 영입에 꽤나 심혈을 기울이기도 했다. 장신 좌완 기교파 투수 벤자민 주키치와 시즌 종료 후 일찌감치 계약하였고, 이는 강상수 당시 스카우터가 성사시켰다. 2011년 1월 7일에는 2008년 시즌 최고 구속인 162Km를 달성한 기록이 있는 고무팔 레다메스 리즈를 영입하였다. 레다메스 리즈의 이름값과 경력만 놓고보면 일본프로야구 요코하마 & 요미우리를 거쳤던 강속구 투수인 마크 크룬이 초창기 요코하마에 입단했을 당시보다 훨씬 뛰어난 커리어인 건 분명하다.[29] 결국 2년 연속으로 둘 모두 괜찮은 활약을 보이면서 간만에 평작 이상의 수확을 거둘 수 있었다. 포스트 시즌 봉인이 풀린 2013년에 벤자민 주키치는 부진했지만 레다메스 리즈는 최다 이닝에 탈삼진왕을 차지하였고 3,997일 만에 LG의 포스트 시즌 첫 승을 이끌었다.

2011년 4월 10일, 드디어 5,016일만에 선두로 도약했다!![30] 이에 야갤에서는 5,016일 간 벌어진 사건들로 타임머신 놀이를 하며('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갈 듯', '베이징 올림픽 직관 가는데 우승할 듯') 13년이란 세월을 희화화하는 릴레이가 있었다. 위에 언급한 LG빠 만화가 최훈은 이런 만화로 LG 팬들의 심정을 대변했다.# [31] 그러다 2013년 8월 20일 1995년 이후 18년만에 후반기 1위에 등극했으며 9월 22일 4개 팀 중 최초로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지었고, 최종적으로는 10월 5일 정규리그 2위에 올라섰다.

1.4. 구단이 그룹 이름을 바꾸다

LG 트윈스가 그룹에 준 영향은 어마어마했다.

야구단 인수 당시 그룹 이름은 LG가 아닌 럭키금성이었다. 당시 럭키금성 그룹은 (주)럭키(=현 LG화학), (주)금성사(=현 LG전자) 양대주력사를 주축으로 계열사 이름도 럭키xx, 금성## 식으로 일관성이 없었다. [32][33]

그러나 MBC 청룡을 인수하면서 럭키금성은 너무 길고, 줄여서 럭금은 어감이 별로라는 이유로 팀명을 럭키의 L과 Goldstar의 G를 합쳐서 LG로 정하게 되었다.[34] 그리고 트윈스라는 애칭은 당시 럭키금성그룹의 상징과도 같던 여의도 트윈타워[35] 사옥에서 유래했으며, 미국에도 미네소타 트윈스가 있으므로 야구팀 이름으로 못 쓸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듯 하다.

이렇게 1990년 새로운 통합CI LG를 채택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해서 LG 트윈스를 창단했으나, 이후에도 공식적인 그룹이름은 럭키금성이었고 기존 계열사이름도 그대로였다. 수십년동안 써온 '금성(GoldstarGeumseong)', '럭키(Lucky)'로고 버리기가 아까웠던 것이다.

이후 1994년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야구단이 우승을 차지하면서 야구를 좋아하는 구본무 회장이 크게 기뻐하면서 그 다음해 그룹명을 정식으로 LG로 확정했고 돔구장을 지을 계획도 세우기까지 했다.[36] 구단이 그룹 전체의 이름을 갈아버린 셈이다. 또한 1984년 창단된 프로 축구단 럭키금성 황소도 LG 치타스로 이름을 바꾸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이 얘기는 무색할 정도로 안습 그 자체. 6668587667!

참고로 LG 트윈스 창단작업 때 만든 로고는 이후 편의점 체인인 계열사 LG25에서도 사용하게 되어 GS그룹으로 분리되어 GS25로 바뀌기 전까지는 매년 수익의 일정 %를 LG트윈스에 로열티로 지급했다.

그러나 LG그룹에서는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07년에 발간한 LG 60년사에서는 야구단이 그룹 이름 변경에 영향을 미쳤다는 내용이 단 한 줄도 들어가 있지 않다. 비밀번호 진행중에 발간되었으니....

2. 레전드

2.1. 영구결번


LG 트윈스 영구결번
No.41 김용수[37]

2.2. 상징적 인물

우선 늘푸른 소나무 김용수 선수를 빼놓을 수 없다. 마무리와 선발을 오가며 1999년 4월 19일에 국내프로야구 최초 100승 200세이브를 달성한 김용수 선수의 41번은 팀의 영구결번이 되었으며, LG 트윈스의 유일한 영구결번 선수이다. 그리고 역시 "야생마" 이상훈을 빼놓을 수 없다. 특유의 등판 장면과 선발 - 마무리를 오가며 완벽한 활약을 한 그를 기억하다가 현재의 LG 투수진을 볼 때 LG팬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고 한다...

이 밖에 1994년 LG의 신바람 야구를 이끌었던 김재현, 유지현, 서용빈 3인방도 프랜차이즈 스타들이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허슬 플레이어" 송구홍이나 "검객" 노찬엽 또한 추억의 선수들이다. 현역으로 뛰고 있는 선수 중에는 이병규(1번 항목)와 박용택이 LG의 프랜차이즈 선수로 기록될 수 있을 듯. 팀에 들어온지는 얼마 안 됐으나 봉중근 또한 팀의 에이스→마무리로 서서히 팬들의 마음속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외국인 선수 중엔 2008년, 2009년 시즌 맹활약을 펼친 로베르토 페타지니가 있다. 얼마나 활약이 대단했으면 LG팬들이 페타신, 페느님이란 별명을 붙였을 정도. 그가 남긴 충격이 대단했기에, LG팬들은 활약이 대단한 선수들에게 ~타지니라는 접미사를 붙이고 있다.[38] 그리고 2007년 시즌 중반 입단해 2008년 시즌 팀의 성적 부진, 특히 불펜진의 난조로 많은 승수를 챙기지 못해 옥크라이라는 별명을 얻으면서도 10승을 챙기면서 대인배급 성격과 상냥한 팬서비스를 보여줬던 크리스 옥스프링옥춘이라는 별명을 얻을만큼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며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그렇지만, 2000년대 들어서 팀이 죽을 쑤다보니 다른 방면으로 상징적 인물이 된 이들이 많다. 특히 2006년 활약한 방화신기(등유규민, 휘발류택현, 경유헌호, 김민기름, 정유재복) 멤버들은 전설이 되었으며, 이 외에도 먹튀계의 영원한 아이돌 홍보살홍현우국내 프로야구계의 첫 먹튀 이정길이 있다. 부산 영도구청장에 취임한 어윤태도 주목할(?) 만한 인물이며, 2000년대 후반에는 우규민KIA한기주화염 방사를 하고 다녔다. 파이야!~ 하지만 그랬던 우규민도 경찰청 제대 이후에는 선발투수로 전향하여 오랜기간 흔들렸던 LG 선발진의 한축을 담당하며 2013년, 2014년 시즌 투수진 안정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중이다.

2.3. 아름다운 과거, 1994 신인 3인방


왼쪽부터 유지현, 김재현, 서용빈
위에서 언급되었지만 먼 옛날로 건너가면 LG에도 아름다운 과거들이 있었다. 특히 1994년 이광환 감독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때 가장 파격적인 활약을 보인 신인 선수 셋 김재현, 서용빈, 유지현의 모습은 아직도 많은 LG 팬들의 가슴에 남아있다.

세 명의 1994년 기록은 다음과 같다.

  • 김재현: 시즌 125경기 출장, 타율 0.289 134안타 홈런 21 타점 80 도루 21(20-20 클럽)
  • 서용빈: 시즌 126경기 출장, 타율 0.318 157안타 홈런 4 타점 72(사이클링 히트 기록)
  • 유지현: 시즌 126경기 출장, 타율 0.305 147안타 홈런 15 타점 51 도루 51 (신인왕 수상)

그러나 LG의 암흑기 이순철 시대에 김재현은 FA후 SK로 이적하고, 서용빈은 병역비리에 연루된 후 은퇴, 유지현도 은퇴했다. 현재 김재현은 2011년 SK에서 마지막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은퇴했으며, 서용빈과 유지현은 각각 LG 트윈스의 타격과 주루코치가 되었다.

다만 항상 셋이 나란히 언급되는 것과 달리 이 세 사람, 특히 김재현유지현은 사이가 굉장히 나쁘다. 선수협 결성 당시 김재현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에 반해 유지현은 구단의 편에서 선수협을 결사반대했고 김재현을 제외한 LG선수들이 전부 선수협에서 나오게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 당시 김기태, 이모씨 등과 함께 오적으로 불렸다. 처음 데뷔했을 때부터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는 이 둘은 이때 완전히 갈라섰다. 그러나 유지현도 나중에 LG 프런트에 뒷통수를 맞았다는 것은 좀 아이러니.

덧붙이자면, 1994년 LG의 신인 중엔 위의 세 선수 말고도 주목할 만한 선수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투수 인현배. 그는 위의 세 선수와 함께 혜성처럼 등장하여 94년 전반기에만 10승을 쓸어담으며 LG 마운드의 희망으로 떠올랐지만, 부상 등의 악재가 겹쳐 남은 기간 동안 1승도 못 올리고 시즌을 마감해야 했다. 어쨌든 프로에 갓 입단한 신인이 10승을 올렸으니 수치상으로는 성공했다 볼 수 있겠지만, 그 후로 거의 활약을 못하고 은퇴함으로써 팬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허나 1994년 LG의 최전성기를 지켜본 올드팬들 중엔 신인 3인방에 인현배가 더해진 신인 4인방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30대의 늦은 시기에 기량이 만개한 최동수 역시 94년 신인으로서 LG에 입단했다. 당시엔 별 활약도 없었고 주목도 받지 못했지만... 2013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때 까지 노장으로서 묵묵히 팀을 이끌었다. 이래저래 94년 LG의 신인 농사는 프로야구 사상 최대의 대박 농사였다고 볼 수 있겠다.

그 결과...

94_최종순위.JPG
[JPG image (Unknown)]


저 당시에는 LG가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14년후 2008년, 순위는 정 반대로 바뀌는데...

08_최종순위.JPG
[JPG image (Unknown)]


이 사진들의 웃긴 점은 정말 정확히 대칭이 되었다는 점이다. 8구단이 짜고 순위를 저렇게 대칭으로 만들기도 힘들텐데 물론 쌍방울태평양[39]은...그냥 넘어가자.

하긴 그걸로도 모자라 옆집 1차지명 투수 류택현을 빼와서 한참 동안 잘(...) 굴리고 있으니... 노인학대.

3. 엘레발

희한하게도 시즌 전 훈련 관련 기사가 타 구단의 3배 이상은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LG프런트 쪽에서 적극적으로 기사거리를 언론사에 배포하기에 그런 것 같은데... 문제는 그런데도 악성 댓글은 타구단 선수가 깽판쳐서 사고친 기사보다 3배 이상 많이 달린다는 것이다. 그 대부분의 악플내용은... 사진으로만 훈련한다는 비아냥, 또 엘레발친다, 입훈련한다, (2010년까지)봄데 여름성 가을슼 겨울쥐 이런 식이다. 윈터리그???

사실 알고보면 단순한 이유인데, 일단 LG 트윈스는 서울의 구단이고, 기자들은 상대적으로 서울에 더 많이 산다. 그러니 기자들이 입수할 수 있는 정보가 타 구단에 비해 많을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스포츠 신문의 1면 사진은 각 지방별로 따로 뽑힌다. 즉, 헤드라인 기사 내용은 같아도 1면 사진은 서울이면 LG, 광주면 KIA, 대구면 삼성이라는 식. 따라서 LG의 성적과는 별개로, 대부분의 서울사람들은 지하철 등지에서 LG나 두산 관련 사진이 전면에 부각된 스포츠 신문을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성적은 나쁜데 언론에는 자주 노출된다는 인식이 형성되는 것.

4. 팀의 역사

MBC 청룡 시기의 최고 성적은 1983년의 준우승이다. 이후 LG 트윈스는 1990년, 1994년에 우승을 했다. 특히 이광환 감독의 신바람 야구를 내세운 1994년 우승은 현재까지도 LG 트윈스의 상징이자, 한국프로야구 발전에도 중요한 분수령이다. '뉴욕 양키즈가 될만한 팀'현실은 뉴욕 메츠이자 한신 타이거즈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1990년대 중반의 LG 트윈스는 그야말로 잘 나갔으나, 1997년과 1998년 2연준(2연속 준우승)에 그치고, 2002년에는 객관적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김성근 감독의 '원조 벌떼 마운드'운용으로 투혼의 준우승을 일구어 냈으나 시즌 후 준우승 감독을 경질하는 우를 범하고[40][41] 1994년 우승 감독인 이광환 감독이 다시 지휘봉을 잡았으나 이 때부터 LG에 암흑기가 도래했다. 1년 만에 짤리고(...) 수석코치 이순철이 감독으로 임명되면서 창단 첫 최하위의 수모를 겪게 된다.[42] 2007년 시즌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인 김재박이 화려하게 친정팀으로 돌아왔으나 결과적으로 주전들의 철밥통 포지션 운영과 조공성 트레이드 등으로 비밀번호가 늘어났을 뿐이었다. 이 시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LG 트윈스/1990~2008년 참조.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의 암흑기를 보내면서 얻은 별명이 칠쥐(7위 + LG)이다.

2007년 시즌에는 시즌 막판 삽질쇼로 인해 화끈하게 100억 지르고 5위라는 성적을 거두었으며[43], 2008년에는 결국 2번째 최하위의 성적표를 받았다.[44] 참고로 2008년의 2번째 꼴찌는 팀 역대 최저 승률 기록이기도 하다. 하필 쥐띠해에 쥐가 이렇게 부진하다니...[45] 몇년째 100억단위로 돈을 쏟아부으며 굴하지 않고 매 홈경기를 관전하는 구단주인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은 천사임이 틀림없다는 게 야구관계자나 팬들 사이에서 정설로 통.

실제로 엘롯기 중 기아 수뇌부는 아예 야구에 관심이 없어FIFA월드컵 스폰서의 위엄 운영은 현장과 프런트가 알아서 하고 롯데 수뇌부는 구단을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는데 반해 LG 수뇌부는 꼬박꼬박 직관에 스프링 캠프때도 찾아가며 2군까지 꿰고 있을 정도로 야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깊다. 그러나 그게 꼭 좋은 건 아니다. 야구를 잘 모르는 구단주의 지나친 관심은 자칫 필요 이상의 간섭과 구단주에게 잘 보이기 위한 사장, 단장의 삽질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 그리고 실제로 LG의 팀 성격이 엉망이 된 것을 그 때문으로 보는 입장도 상당하다. 이상훈+이광환 체제에 대한 미련으로 김성근 축출도 그렇지만, 리빌딩에 들어가야할 팀에 포지션까지 중복되는 즉전급 선수를 몇 년 동안 사들여서 팀 목표가 리빌딩도 아니고, 우승 도전도 아닌 애매하게 흘러가는 이유가 된 것이 그 이유.카드수집? 이런 케이스가 미국 메이저리그에도 있으니 바로 휴스턴 애스트로스. 2005년 준우승 이후 지속적인 영입을 통해 대권을 노렸으나 번번히 실패하고, 계속 좋은 유망주들도 놓치자 성적이 수직으로 추락한 것이 닮았다.

그러나 2011년 방영된 이광용의 옐로우카드 LG 특집에서 그 충격적인 실상이 알려졌다. 구단주가 임명한 사장이라는 인간이 "야구에 대해 문외한"이며 그저 술만 좋아해서 스프링캠프 때 박종훈 감독과 기자들 앞에서 추태를 부렸다 하니... 그나마 이 보도 덕에 그룹에서 직접 감사팀을 파견하여 대대적인 재정비 작업에 들어가면서 현재는 그래도 팬들을 고려하는, 평타는 치는 프런트로 바뀌었다. 비록 능력 부족으로 인해 지탄받는 점은 있으나, 2011년부터 시작된 백순길 단장 체제가 4년 이상 지속되는 것만 해도...[46]

LG 금고 속 8천만원짜리 롤렉스 15년... 2014년에도 결국에는 주인을 찾아가지 못했다.[47]

4.1. 역대 감독

구단 홈페이지에서는 LG로 바뀐 이후의 감독만 카운트하고 있으나 여기서는 전신인 MBC 청룡 시절의 감독까지 포함한다.

초대 백인천 1982년 ~ 1983년
감독대행 유백만 1983년
감독대행 한동화 1983년
2대 김동엽 1983년
3대 어우홍 1984년 ~ 1985년
4대 김동엽 1985년 ~ 1987년
감독대행 유백만 1987년
5대 유백만 1988년
6대 배성서 1989년
7대 백인천 1990년 ~ 1991년
8대 이광환 1992년 ~ 1996년[48]
감독대행 천보성 1996년
9대 천보성 1997년 ~ 1999년
10대 이광은 2000년 ~ 2001년[49]
감독대행 김성근 2001년
11대 김성근 2002년
12대 이광환 2003년
13대 이순철 2004년 ~ 2006년[50]
감독대행 양승호 2006년
14대 김재박 2007년 ~ 2009년
15대 박종훈 2010년 ~ 2011년
16대 김기태 2012년 ~ 2014년 135승 138패 5무 0.495
감독대행[51] 조계현 2014년 6승 10패로 0.375
17대 양상문 2014년 ~ 50승 38패 1무 0.568

4.2. 역대 성적 (MBC 청룡 시절 포함)

드 = 드림리그, 매 = 매직리그
* = 공동순위
연도 순위/팀 숫자 팀 이름 경기수 승률
1982 3/6 MBC 80463400.575
1983 2/6 100554320.561
1984 4/6 100514810.515
1985 5/6 110446510.404
1986 3/7 108594180.590
1987 5/7 108505170.495
1988 6/7 108406440.389
1989 6/7 120496740.425
1990 1/7 LG 120714900.592
1991 *6/8 126537210.425
1992 7/8 126537030.433
1993 4/8 126665730.536
1994 1/8 126814500.643
1995 3/8 126744840.603
1996 7/8 126507150.417
1997 2/8 126735120.587
1998 2/8 126636210.504
1999 매3/4 132617010.466
2000 매1/4 133676330.515
2001 6/8 133586780.464
2002 2/8 133666160.520
2003 6/8 133607120.458
2004 6/8 133597040.457
2005 6/8 126547110.432
2006 8/8 126477540.385
2007 5/8 126586260.483
2008 8/8 126468000.365
2009 7/8 133547540.406
2010 6/8 133577150.429
2011 *6/8 133597220.450
2012 7/8 133577240.442
2013 3/9 128745400.578
2014 4/9 128626420.492
2015 9/10 144647820.451
2016 4/10 144717120.500
2017 6/10 144697230.489
2018 8/10 144687510.476
2019 -/10 144----
KBO 통산 V2 4483212122571050.484

그외 사항은 KBO 리그/역대 팀 스탯 항목 참조.

6. 트윈스 관련 커뮤니티

6.1. I love Twins

6.2. LG 트윈스 갤러리

7. 역대 유니폼 변천사

8. 사건사고

12. 응원가

KBO 구단 최초로 선수별 응원가를 도입했을 만큼 KBO의 응원문화를 선도하는 팀이었으나 2008년 롯데 자이언츠의 약진으로 이 분들이 주목받으면서 신규 야구 팬들에게는 그닥 주목받지 못했다. 2009년 어떤 요정이 응원단장이 되면서 지금도 불리고 있는 박용택, 정성훈, 이진영[68]의 응원가가 나오면서 KBO 응원 no.1 자리를 놓고 몇년째 롯데와 다투고 있다. 응원가도 명곡이 많아 비슷한 포지션, 또는 비슷한 캐릭터의 후배 선수들이 대대로 내려받는 전통이 있는데, 예를 들어 유지현의 응원가는 차세대 대형 유격수(...)로 입단한 박경수가, 조인성의 응원가는 같은 성씨의 후배 포수가 물려 받았고, 손인호의 응원가는 같은 성씨라는 이유로 손주인이 물려 받았다.

다만, 타 팀으로 이적한 선수의 요청에도 절대 응원가를 내주지 않기로 유명하다. 2012년 FA로 SK에 이적한 조인성이 LG시절 응원가를 쓰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했지만 구단은 단호히 거절, 결국 조인성은 SK에서 이상한 응원가(...)만 듣다가 한화로 이적해 병맛 좀 돋아도 중독성 있는 응원가를 받았고, 2015년에는 KIA를 거쳐 kt로 이적한 이대형이 LG시절 응원가를 사용하고 싶다고 밝혔지만, 이번에도 딱 잘라 거절했다. 물론, 선수가 이적하면 그 선수의 응원가는 원 소속구단에 그 권리가 있는게 맞다. 하지만 응원가가 불려지고 있는 이 선수 째 가사만 바뀐 채 불려지는 이 선수처럼 원래 응원가가 이적 후에도 계속 불려지는 사례도 많다.

여담으로 응원가 중 '민족의 아리아'를 부른 주인공인 황석빈씨가 '너의 목소리가 보여 2'에 출연#하였다.

13. 그 외 트리비아

  • 최훈의 만화 GM(웹툰)클로저 이상용에서 서울 게이터스의 모델이 되었다. 안 좋은 쪽으로. 자세한 것은 항목 참고. LG팬이지만 LG는 까야 제맛

  • 헬로 키티와 제휴를 맺고, 키티와의 콜라보레이션 제품들을 판매하는 키티 트윈스라는 쇼핑몰을 오픈했다. 잠실 야구장에도 매장이 있으며 특히나 여성 팬들이 반응이 폭발적이라고 한다.

  • 2013년에 1군에 합류한 NC 다이노스를 제외하면 KBO 리그 출범 이후 MBC-LG시절을 통틀어 단 한 번도 홈런왕과 MVP 수상자를 낸 적이 없는 유일한 구단이다. 홈런왕은 소총타선 이미지+국내에서 가장 넓은 잠실 야구장을 홈으로 쓰고 있기 때문에 없는게 이해는 가지만......MVP의 경우 1995년 시즌에 20승을 달성한 이상훈이 가장 근접했으나, 당시 페넌트레이스 1위 버프+홈런왕+100타점의 김상호에게 MVP를 빼앗기고 말았다. LG팬들은 이에 대해 굉장히 아쉬워 한다. 라이벌 팀에서 MVP-홈런왕을 가져갔거니와, 김상호도 사실은 MBC에서 데뷔를 해서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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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015년 LG그룹 CI 변경에 따라 엠블렘도 약간 달라졌다. 그래봐야 LG 폰트 바뀐거뿐이지만...
  • [2] 좌측에 있는 팀 엠블렘 위에 그려지기도 한다.
    twinslogoanother.png
    [PNG image (Unknown)]
    바로 이렇게.
  • [3] 여러모로 LG는 건물, 마스코트에 쌍둥이를 좋아하는데, 구씨와 허씨의 협력으로 이루어진 회사의 성격을 반영하는 듯.
  • [4] 구단주 대행
  • [5] 2015년 LG그룹 CI 변경에 따라 워드마크도 약간 달라졌다. 그래봐야 LG 폰트 바뀐거뿐이지만...
  • [6] 홈페이지를 제외하면 구단이 운영하는 SNS가 없는 유일한 구단이다.
  • [7] 구단 법인 및 재무정보에 관한 내용은 LG스포츠 항목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8] 그런데 모자 로고라던가 팀 명칭을 보면 천조국어느 야구팀과 매우 흡사하다. 또 유니폼도 사실 악의 제국보다 이쪽에 가깝다. 오죽하면 LG 트윈스 모자 쓰고 미국에 나갔을 경우 미국인이 천조국 쌍둥이 팬이냐고 했을 정도. 하지만 원정 유니폼을 쥐색으로 바꾼 이후로는 더더욱 악의 제국에 가까워져 버렸다.
  • [9] 1990~2002년의 기간 동안 LG는 한국시리즈에 5번 진출했는데, 월드컵이 안 열리는 해였던 건 1997년 딱 한 번뿐이다. MBC 청룡 시절까지 확대해도 월드컵이 열린 1982년과 1986년엔 각각 6팀 중 3위, 7팀 중 3위로 성적이 나쁘지 않다. 하지만 1982년과 1986년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단일리그에 계단식 포스트시즌이 아니라 전기리그 우승팀과 후기리그 우승팀이 한국시리즈에서 맞붙는 그런 시절이었다. 82년과 86년에 종합 3위를 했더라도 두 해 모두 전기리그, 후기리그 우승도 못해보고 가을야구 진출을 못했으니 엄연히 말하면 이 두 해도 부진한 성적이다.
  • [10] 당시 감독이 금지어인 그분이었다...
  • [11] 헌데 이상훈이 2004년 금지어인 그분과의 갈등으로 SK로 이적 이후 이렇다할 선발-마무리를 오가는 투수를 찾기 힘들었고 팀의 암흑기가 시작되었다. 2012년 봉중근의 마무리 전환은 결과적으로 2013년의 선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 [12] 신인 드래프트 수혜를 받고자 고의로 최하위 성적을 거뒀다는 설이 존재한다.
  • [13] 팀은 6668587667을 찍어도 같은시기 관중집계는 1112133332이다.
  • [14] 다만 디씨 한정으로 LG 트윈스 갤러리는 절륜한 병신력을 자랑한다. 주니어 야갤 취급까지 받기도 한다.
  • [15] 전국구 인기 구단에 상당히 근접했던 서울의 두 팀 중 하나로, 다른 한 팀은 이상민을 영입하면서 동시에 팬덤이 유입되어 2007~2010년의 인기팀으로 급부상한 서울 삼성 썬더스.
  • [16] 엘지팬들은 선수사랑이라고 하지만 엘지선수니까 좋아하는건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구단 충성도가 중요하다.
  • [17] 과거에는 쌍둥이 로보트였다. # 이후 2006년 CI교체 이후 그냥 사람(...) 캐릭터로 바뀐 상황.
  • [18] 그러나 2013년부터 김상헌이 응원단장이 되면서 삼성 팬들 사이에선 이 말이 들어간 듯 하다. 반대로 LG 팬들은 친목질등 논란이 있는 오명섭을 바꿔야된다고 이야기한다.
  • [19] 그런데, '그대 없이는 못살아'는 KIA에서도 들을 수 있다.야구에서는 KIA가 '그대 없이는 못살아'를 조금 먼저 썼지만 사실 같은 LG스포츠단 산하의 프로농구단 창원 LG가 이 노래를 가장 먼저 쓴것을 KIA가 베낀것이다. 결국 KIA측에서 이 응원가를 도용했다.
  • [20] 그나마 2010년에 지난 2년간 부진으로 인해 까인 것을 풀어내듯 매우 좋은 모습을 보여 골든 글러브까지 받았다. 하지만 2011년 이후 2번째 FA에서 이견을 보여 SK로 이적
  • [21] 물론 2010년 들어 KBO 리그판에 우타거포 자체가 희귀하긴 하다.
  • [22] 물론 허문회의 지명권까지 갖고 온 트레이드 자체는 대 성공이었다. 신동수도 괜찮은 투수였지만, 김상훈이병훈이 LG를 떠나 해태에서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 보고 오자.
  • [23] 두산 베어스 2군 구장인 두산 베어스 필드가 이천시의 북쪽의 백사면 경사리에 있다. 이천시에 이미 두산이 자리잡고 있는데 굳이 2군 구장을 두산과 같은 위치에 두는 것이 불만인 LG 팬들도 많다. 우린 이천의 자존심! 그런데 대월면과 백사면 두 지역은 무려 남북으로 20km 떨어져 있어서 가까운 편도 아니다.
  • [24] 유망주가 잘 나오는 이미지 때문에 묻히지만 강진 2군 캠프의 상태는 심각하다. 오히려 1군(서울 목동)과 너무 떨어져 있어서 1군과 2군 코치의 소통이 힘들며, 2군 코치 수 자체도 2012년까지는 감독 포함 4명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시설이 좋은 것도 아니며, 특히 재활 시설이 매우 열악해 넥센 선수들은 부상을 당했다 하면 회복이 매우 느리다. 조용준도 이런 재활 시설에 대해 강하게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래서 히어로즈프로야구단 측은 경기도 화성시와 협약을 맺고 2군 팀명을 화성 히어로즈로 정해 2군 구장 및 훈련장을 신축했다.
  • [25] 구리시의 별명이 오죽하면 구리베가스이다. 유흥가 & 술집이 밀집한 지역이고 여기서 차로 좀만 더 가면 서울의 유흥가도 갈 수 있다. 한마디로 2군선수들이 술이나 유혹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이란 얘기다. 막말로 공부하라고 큰 돈 들여 독서실 보냈는데 그 주위에 PC방 & 유흥시설 있으면 공부할 수 있겠는가? 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런 환경에서 음주 관련한 사고가 없었다는 게 신기할 정도.
  • [26] 코치로서는 지못미스럽게 천년만년 장수할 수 있을 정도로 욕을 먹는 염경엽의 유일무이한 업적. 사실 스카우터로서의 염경엽현대 유니콘스 시절부터 유능하다는 평판을 받았고, 결국 LG를 떠나고 넥센으로 가자 탈쥐효과(...)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감독 되고서 넥센 사상 첫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 [27] 하지만 이 팀은 드래프트로 뽑은 타이론 우즈 정도를 제외하고는 중고품(...) 알뜰구매.(...) 그걸 보여 준 게 크리스 니코스키, 터 콜, 크 키퍼 등.
  • [28] 타 팀에서 뛰던 중고 용병(특히 삼성제, 매니 마르티네스는 예외)을 사와도 100% 망한다.
  • [29] 2010년 1승도 못 올리고 웨이버 공시된 에드가 곤잘레스의 사례 때문에 리즈와 주키치와 계약했을 때 두 선수에게 윈터 리그 & 멕시칸 리그 출전 금지를 제시했으며 출장하게 되면 계약 취소란 강수를 두었다. 그 대신 훈련 수당으로 달러를 더 줬다. 그리고 열심히 훈련한 결과 둘 다 선발 축을 이루어 재계약에 성공했다. 특히 제구력 나쁜 리즈는 가면 갈수록 제구력이 늘고 있다.
  • [30] SK와 공동 선두. 팀당 5경기 이상 소화한 시점 기준이다. 약 13년 8개월이며 이 부문에는 롯데의 13년 10개월 기록이 있다.
  • [31] 하지만, 다음 경기인 2011년 4월 12일 삼성 라이온즈전 패배 이후 다시는 1위로 올라오지 못했고, 가을 야구조차 실패했다!
  • [32] 럭키금성이라고 그룹명을 사용한 것은 1980년대 초반부터로, 그 이전에는 그냥 럭키그룹이었다. 그룹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기업이 '락희화학공업사-(주)럭키-LG화학'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상대적으로 나중에 창업한 금성사가 주력으로 같이 부각되면서 이같이 부르게 된 것.
  • [33] 이름의 일관성을 안 따지다 보니 아예 럭키와 금성이 아닌 이름을 쓰는 계열사도 매우 많았다. 대표적인 회사가 반도패션, 호남정유. 이후 LG로 바뀌면서 명칭을 LG패션(현재는 그룹에서 분리), LG정유(현 GS칼텍스)로 통일했다. 또한 럭키금성 시절엔 편의점 이름을 LG25 (현 GS25) 라고 한적도 있었다.
  • [34] 그룹에서는 1984년 그룹 계열 광고회사 LG애드에서 'LG'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 [35] 당시에는 63빌딩에 이어,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이었다.
  • [36] 여담이지만 선경에서 SK로 바뀐 것은 1998년이고 SK 와이번스의 창단은 2000년이라 SK는 야구단에서 따온 것은 아니다.
  • [37] 잠실 야구장 LG 홈 경기 시 1루 내야석과 우측 외야석 사이 계단에 김용수의 등번호 41번과 영구결번일인 1999.4.19가 박힌 대형 현수막이 걸린다.
  • [38] 예) 깝타지니, 잉타지니 등등
  • [39] 쌍방울-SK 와 태평양,현대-넥센은 공식적으로 다른 팀이다.
  • [40] 당시 사장 어윤태의 "이건 김성근의 야구지 LG 야구가 아니오."라는 멘트는 당시 프런트의 삽질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그리고 2011년 어느 팀에서 또다시 재현된다
  • [41] 다만 몇몇 올드팬들 사이에서 김성근의 평가는 최악. 이동현장문석을 굴리면서 이 두 선수의 커리어를 상당부분 말아먹었고, 이병규의 타격 폼을 개조시키려다 실패해 슬럼프의 원인을 제공했으며, 신인 드래프트를 말아먹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의 일. 그리고, 한화 이글스에서 그 동안 성적에 가려져 있던 김성근 감독의 만행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저 '일부'의 평가는 재평가를 받았다.
  • [42] 이 시기 이순철의 행태는 KTF의 김철 감독과 더불어 삽질의 대명사로 남는다.
  • [43] 이때의 평가는 의외로 좋았던 편. 전년도보다 더 약해진 전력임에도 성적이 좋아졌기에 팬들은 다음시즌을 기대하게 했지만, 더 질러야 할 상황에서 프런트는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 결과는...
  • [44] 하지만 LG그룹은 이걸 광고로 사용했다(…).
  • [45] 공교롭게도 같은 쥐띠해였던 1996년에도 크게 부진하여 팀 사상 최초 꼴찌를 이 때 달성할 뻔하기도 했다. 실제로는 같은 잠실 팀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가 2.5게임차로 꼴찌를 하면서 가까스로 꼴찌를 면하긴 했다만...
  • [46] 백순길 단장은 단장을 맡기 이전에는 LG그룹 고객서비스 부문. CS(고객 만족) 경영팀장을 역임한 바 있다. 이 경력 때문인지 팀 케미스트리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부분을 차단하는 데 능하다는 평을 받는다.
  • [47] 이게 무슨 얘기인지는 #기사 참조
  • [48] 96년 시즌중 중도사퇴
  • [49] 01년 시즌중 중도사퇴
  • [50] 2006년 중도 사퇴
  • [51] 2014년 김기태 감독이 중도 사퇴했지만 구단에서는 사퇴를 수리하지 않은 상태로 조계현 수석코치에게 실질적인 감독대행 역할을 맡겼다.
  • [52] 자타공인 LG광팬 중 하나여서 이로 인해 생긴 별명이 쥐훈. 다만 2013년 말 이후로는 SK에 보다 치중한 모습을 보여서 솩훈(…)이라 까이고 있다.
  • [53] 시사회 때 한 두산팬이 "두산 경기에 시구하러 오세요!"라고 요청하자 "죄송합니다, 저는 서울팀만 시구할겁니다."라고 단칼에 거절한 적이 있다.당연히 쥐갤에서는 찬양받았다
  • [54] 무릎팍 도사에 출연하여 LG팬인 걸 밝히지 못한다고 울분을 토하였다(…).
  • [55] 흔히 LG팬들 사이에서 달마 아저씨, 달마아재라고 불리던 열성팬이다.
  • [56] 프로 원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잠실로 찾아와서 MBC청룡과 LG트윈스를 응원하셨다.당시 LG트윈스 선수였던 김재박은 박기홍옹이 보이지 않으면 반듯이 경기가 끝난후 박기홍옹의 집에 직접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봤다.
  • [57] OSEN의 LG 트윈스 전담기자로, 2014년 7월경 LG를 중심으로 우주의 기운이 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라는 역대급 기사를 썼다. 타어강과 다르게 실제로 우주의 기운인지 결국 4강에 가서 성지 취급을 받는 중이다.
  • [58] SK 와이번스 소속의 투수 맞다. 물론 지금은 엄연한 소속팀이 있는 만큼 잘 어필하지도 않고 했다가는 큰일나지만, 어렸을 때부터 LG 특히 이상훈의 팬이었으며 데뷔 초에는 대놓고 LG 응원가 불렀다가 까였다(…). 이러한 에피소드로 인해 쥐갤에서는 흔히들 쥐광현으로 부르고 있다.
  • [59] 어렸을 때부터 LG팬이었으며 해당 항목을 확인하면 알겠지만 초등학생 시절에 조인성이랑 사진도 같이 찍었다.
  • [60] 전라도 여수 출생이다보니 같은 전라도를 연고로 하는 해태/KIA 역시 응원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MBC 시절부터 팬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LG 그룹과도 친분이 있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식객등의 작품을 보면 LG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정작 시구는 두산경기에서 했다(...).
  • [61] 라디오에서 LG 트윈스의 팬임을 밝혔다. 두산 팬인 김장훈과 야구 이야기를 할 때면 으르렁거린다고(…).
  • [62] 봉중근과 큰 이병규의 열렬한 팬이다. 20세기 미소년에서 매니저와 같이 두산전을 관람하는 것이 방송되었다. 경기 관람 전에 봉중근을 직접 봤는데 걸그룹 멤버를 보는 것보다 더 떨렸다고 한다. / 유광잠바 조공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 [63] KBS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의 사직구장 편에서 본인이 LG 트윈스의 팬이라고 밝힌 바 있다.
  • [64] 방송에서 가끔씩 LG 트윈스 모자를 쓰고 다닌다. 참고로 같은 팀 멤버인 이민우두산팬이다.
  • [65] LG 트윈스의 광팬이지만 필패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직관 오는 것을 싫어하는 팬이 많다. 마지막 경기로 플레이오프 진출 여부를 가렸던 2013년 10월 5일 두산전에서는 공형진이 퇴장한 후에야 팀이 역전승을 거두었다고(…).
  • [66] EBS와 스카이에듀에서 사회탐구를 가르치는 강사이다. 그녀의 꿈은 한 때 최초의 여자 야구 해설자였다고 한다. 그녀의 블로그에는 LG트윈스와 관련된 글이 많다.
  • [67] 유자식 상팔자에서 조갑경과 자녀들이 밝히길 LG가 지거나 지고 있으면 가족들이 피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변에 있던 가족들에게 화풀이한다고 한다.(...)
  • [68] 2009년 주니치로 이적한 이병규 응원가를 물려받았다가 2010년 이병규의 복귀로 지금의 응원가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