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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 후쿠치야마선 탈선사고

last modified: 2015-03-09 16:55:42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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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당시 앞에있던 차량 (Z16편성 4량) 의 사고전 모습.
이 사고로 폐차되었다.
0006_1.jpg
[JPG image (Unknown)]
사고당시 뒤에있던 차량 (S18편성 3량) 사고후의 모습.
뒷쪽에 있던 차량이라 앞에 있던 차량보다 비교적 손상이
적었다. 수리를 하면 다시 운행할 수 있는 듯 하나
지금도 수리하지 않고 미야하라검차소에서 보관중.
JR福知山線脱線事故

Contents

1. 개요
2. 원인
3. 영향
4. 유사 사고
5. 영상

2005년 4월 25일 일본에서 발생한 철도사고이다. '2005년 일본철도 3대 참사'중 하나. 승객과 승무원 107명이 숨졌고 562명이 부상을 당했다.[1] 이듬해에 벌어진 사고 1주기 추모행사에는, 기관사를 제외한 106명만 모셔졌다.

외국에서는 아마가사키역 주변에서 일어났다 해서 '아마가사키 탈선사고(Amagasaki rail crash)' 라 부른다.

1. 개요

사고일 아침 9시 18분 경, 일본 효고(兵庫)현 아마가사키(尼崎)시를 운행하던 후쿠치야마선 JR 서일본 쾌속열차(7량 편성)가 탈선, 인근 아파트(일본에서는 맨션이라 한다)를 들이받았다. 절대 후쿠치야마시에서 일어난 게 아니다!! 맨 앞차량은 아예 건물 1층 주차장 안으로 들어갔고, 2번째는 건물에 부딪혀 뭉개지면서 첫번째와 두번째에서만 9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사고 열차는 이타미역을 지날 때 정차위치를 오버런했다. 당초는 8m 오버런했다고 보고되었으나 실제로는 40m 정도인 것으로 밝혀졌다. 기관사와 차장이 불이익을 두려워해 축소 보고한 것.[2] 오버런 한 것을 제 위치로 되돌리는 과정에서 이미 1분 20초 정도 지연되어 있는 상태였고 열차가 츠카구치역을 통과하여 아마가사키역으로 가는 동안, 우측으로 커브를 도는 구간이 있으며 여기는 속도제한이 70km/h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기관사는 마음이 조급해졌는지 무려 116km/h의 속도로 사고 구간에 진입하였다.[3] 위험하다고 느꼈는지 급히 제동[4] 을 시도하였으나 이미 원심력으로 차량은 붕 떠버린 상태였다.[5]


선로에서 불과 약 6m 떨어진 곳에는 아파트가 있었는데, 선두차량부터 아파트에 충돌하면서 정지했고, 편성된 전동차 중 2호차와 3호차가 잭나이프현상[6]을 일으키며 아파트에 포개져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4호차와 5호차는 선로에 널브러졌으나, 6호차와 7호차는 탈선하지 않았다. 좌석발매를 하지 않는 보통권 제도라 정확한 탑승인원은 파악하기 어려우나 700명 정도가 승차하고 있었던 걸로 추정된다.

당시 반대편 선로에는 특급열차가 진입하고 있었는데, 사고를 목격한 한 주부가 순간 기지를 발휘, 철도건널목의 비상버튼을 눌러 마주오던 특급열차를 정지시켰다. 자칫 발생할 뻔한 2차 참사를 방지한 공을 인정하여, 일본 정부는 이 주부에게 홍수포장(紅綬褒章, Medal with Red Ribbon)을 수여하였다.

2. 원인

사고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었으나, 시뮬레이션 결과 사고 구간의 한계속도는 106km/h인 것으로 드러났다. 처음에는 133km/h이 넘어가면 차량이 전복된다고 발표했는데, 그건 공차(空車) 기준이고 실제 승객이 탑승한 경우는 이보다 훨씬 위험하다. 결국 과속으로 인한 탈선사고인 셈. 해당 구간의 ATS 장비가 구형이라 참사를 막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JR 각사는 제한속도 초과를 막을 수 있는 ATS-P나 ATC같은 유형의 신호시스템을 단계적으로 적용 중이었으나, 후쿠치야마선은 ATS-P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던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이윤과 효율만을 앞세운 철도 회사의 경영, 그리고 그렇게끔 내몰아가는 과도한 경쟁이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교토(都), 오사카(大), 고베(戸) 에서 각 한 글자씩 따온 이른바 케이한신(京阪神) 지역은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철도회사간의 경쟁이 치열한 곳이다. 주요한 도시 구간마다 어김없이 두세개의 철도회사가 역 짓고 선로 깔아서 열차 돌리는, 트랜스포트 타이쿤이 현실세계에서 시전되는 동네이다.

이러한 경쟁은 물론 철도 서비스의 향상을 가져오기도 했다. 예컨대 JR의 경우 고속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 통근용 전철인데도 무려 130km/h까지 찍어주고 표정속도도 90km/h에 달한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수도권 전철 1호선의 동인천 - 용산급행에 비하면 두배나 빠르다. 그 빠르다는 대한민국의 신분당선의 표정속도가 61.6km/h에 지나지않을 정도. JR의 이런 고속화에 맞서 사철은 JR에 비해 더 저렴한 운임을 내세워 경쟁하고 있다. 철도 운행의 정시성도 칼날같이 지켜져서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열차 운행시간을 초 단위로 점검하며 기관사들을 압박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런데 사고 기관사는 23세의 젊은이로, 경력이 11개월밖에 되지 않는 초보였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충분히 숙련되지 않은 초보 기관사를 현업에 배치하였고, 그는 열차 조작에 미숙한 나머지 오버런을 범하고 열차를 지연시키고 말았다. JR서(西)일본은 이러한 경우 '일근교육(日勤教育)'을 부과하곤 했는데, 그게 교육이라기보다는 벌세우기에 가까운 형태여서 기관사들은 대단한 부담감을 느꼈다고 한다. 일근교육을 받을 때에는 근무조에서 제외되어 업무시간 내내 교육만 받는다. 그런데 그 교육이라는 게 남들 눈에 잘 띄는 곳에서 리포트 쓰기, 사규 옮겨쓰기, 제초·청소[7], 상사 면담 (말이 좋아 면담이지, 사실상 폭언·모욕 등)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 사실상 징벌적 조치다. 이미 2000년에 일근교육 때문에 자살한 사람이 있을 정도. 결국 지연된 열차를 회복하고자 무리한 운전을 하다가 참변을 부른 것.

다만 이는 공식적으로 발표된 원인이고, 일본, 특히 간사이 현지에서 돌고 있는 이면적인 이야기로는 운전사의 자질 문제도 제기되고 있었다고 한다. 특히 해당 운전사는 신참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운전사로써 가장 기본적으로 숙지하고 있어야 할 재차량에 따른 제동거리의 변화조차도 제대로 숙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 숙지하고 있는 지식조차도 지나치게 정형적인 틀 안에서만 숙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전에서의 다양한 변수에는 대처하기가 어려운, 즉 운전사가 적성에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스테인레스 스틸로 제작된 열차의 경량화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었다. 열차는 통상적으로 일정한 충돌강성을 갖추도록 되어 있고, 물론 해당 207계 전동차는 그 조건을 만족했지만, 전면 충돌강성에 비해 측면 충돌강성이 미흡하여 사고를 키웠다는 이야기이다.

3. 영향

대형 참사로 불리던 토사 쿠로시오 철도 스쿠모역 충돌사고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사고가 터져서 일본 사회에 몰고온 여파는 어마어마했는데,
  • 사고 노선은 55일간 열차 운행이 중단되었다.

  • 사고 당시 일부 JR서일본의 직원들이 볼링대회를 즐기고 낮술을 곁들인 점심을 먹었던 사실이 보도되어 큰 비난을 받았다. 사고 속보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 사고 차량인 207계 전동차는 JR동일본의 207계와는 전혀 관계없다. 동일본의 207계는 국철 시절 10량 1편성만이 시범적으로 제작되어 조반선-지하철 지요타선 직통으로 투입하였으나, 성과가 그저 그래서 양산에는 이르지 못한채 E233계에 밀려 사라진 비운의 차량이라 존재감도 별로 없다. 반면 서일본의 207계는 짠돌이인 서일본이 그나마 급행형 전동차를 개조한게 아니고 새로이 발주한 열차다! 이 사고로 차적에서 말소된 것을 제외하고도 477량이 운행중. 더군다나 히가시니혼 측 207계는 정확히 분류하면 207계 900번대로써, 쉽게 말하면 선행차인 셈이다. 근데, 양산차랑은 완전 딴판이란건 함정. 선행차는 205계 선두차에다 관통문 붙인 그런 형상이고, 측면은 아예 205계다(!) 그런 고로, 광폭형 차체도 아니고... 혁신적인 디자인은 개뿔. 그냥 국철 통근형 전동차 형상이였다(...).

    이 207계 전동차는 JR서일본의 코퍼레이트 컬러인 파란색 띠가 둘러져 있었으나구도색 열차모습, 사고의 악몽을 연상시킨다는 여론으로 남색과 오렌지색으로 교체되었다. 이후 제작된 후속 모델인 321계 역시 남색과 오렌지색 띠를 둘렀다.신 도색 모습

  • 일본의 철도모형 제작업체인 TOMIX와 KATO는 207계 모형의 생산을 중단하였다. JR서일본 홈페이지에서 PDF로 제공하던 종이 철도모형에도 207계는 삭제되었다.

  • 지나치게 빡빡한 열차시각표가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받자, 이를 개정하여 종전에 비해 운행소요시간이 늘어났다. 사고 구간의 제한속도는 70km/h에서 60km/h로 낮아졌다.

  • 충돌한 아파트는 JR서일본에서 매입하는 것으로 합의하고 주민들은 모두 이주하였다.

  • 이 사고보다 앞선 2003년에 일어난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의 희생자 유족 17명이, JR서일본 노동조합 측의 초청으로 이 사고 추모식에 참석하여 슬픔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 2015년 현재까지도 (무려 10년간) JR서일본 홈페이지에는 이 사고에 대한 사과문이 메인에 올라가 있다. 홈페이지를 리뉴얼하면서도 사과문을 유지시키고, 사고개요와 사고 후 반응, 사고에 대한 대응에 대한 페이지를 전부 메인페이지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해 놨다. 심지어 한글판 홈페이지에도 이 사고를 언급하는 안전 헌장을 띄워놓고 있다. # 어지간한 사고는 흑역사처리하고 덮어버리려고 하는 기업들과 비교하면 확실히 모범적인 셈. 그런데 사실 일본에서는 그다지 눈에 띄는 조치는 아니다.

4. 유사 사고

  • JR 우에츠(羽越)본선 탈선사고 : 이 사고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2005년 12월 25일, 이번에는 JR 동일본 소속 특급열차 '이나호'가 탈선해서 5명이 숨지고 32명이 다치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 원인을 거칠게 요약하면 열차가 바람에 날아갔다. 믿기 힘들지만 사실이다. 결국 본문의 사고와는 달리 불가항력적인 천재(天災)로 결론내려졌고.#

  • JR 닛포(日豊)본선 탈선전복사고 : 이 사고 역시 위의 우에츠 본선 탈선사고와 비슷하다. 2006년 9월 17일, JR 큐슈 소속 특급열차 '니치린'이(벳푸발 미야자키공항행) 미나미노베오카역에 진입하던 중 전차선의 이상을 발견하고 급정지했는데 정지 직후 회오리 바람에 열차가 날아갔다.. 참고로 이 회오리바람은 주위에 접근중이었던 태풍 산산의 영향으로 발생한 적란운에 동반된 바람이었다. 해당 열차는 이미 태풍의 영향으로 발생한 강풍으로 서행하면서 약 40분 정도 지연되어 노베오카역에 도착했고 강풍이 계속되어 미나미노베오카역에서 운행종료를 할 예정이었다. 사고가 났을때도 시속 25km로 서행운전. 이 사고에서는 선두차량 2량만 탈선 및 전복이 일어나서 인명피해는 승객과 기관사를 포함해 6명이다.

  • 에세데 사고 : 본문 참조.

  • 스페인 갈리시아 고속열차 탈선사고 : 본문 참조. 이쪽은 후쿠치야마 사고와는 달리 운전사가 의도적으로 안전 시스템을 꺼버리고 해당 구간을 주행하다가 탈선한 사고.

5. 영상


저는 분해서 분해서 참을 수 없습니다.
○○의 생명을 빼앗고 두 사람의 미래를 빼앗고
저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은 JR이 원망스럽고 원망스러워서 참을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이 있어도 괜찮나요? 괜찮을 리가 없어요.
벌레 잡듯이 ○○을 죽이고 나의 모든 것을 빼앗았다.
이 싸움에서 질 수는 없어요.
저를 지옥으로 떨어트린 JR과 싸워주세요.
- 후쿠치야마선 탈선사고로 사망한 남성의 연인(32)이 자살하면서 남긴 유서


사고 2개월 뒤의 사고 구간 영상(1:05~18초 특히 주목)
안내방송 내용:
다음, 아마가사키. 아마가사키. JR 고베선 고베 방면과 JR 도자이선으로 환승 가능합니다. JR 타카라즈카선에서의 탈선 사고로 인해 아마가사키에서 타카라즈카 구간에 대해 열차의 운행을 중지하고 있었습니다만, 오늘 6월 19일부터 운전을 재개하고 있습니다. 이용해주시는 고객님께는 장기간에 걸쳐 큰 불편과 폐를 끼쳐드린 점 사과드립니다.

네셔널 지오그래픽채널 "사상 최악의 참사" Runaway T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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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사망자 가운데 재일 한국인인 전칠영(당시 35세 여성)씨가 있고 부상자 중에도 양창원(당시 50세 남성)씨가 있었다.
  • [2] 더 자세히 말하자면 기관사가 열차내 전화시스템으로 선배였던 차장에게 연락해서 이번일을 눈감아달라 부탁했고, 차장은 이 말을 알아듣고는 축소보고했다. 보고를 열차내 전화로 차장이 했는데 하기전에 맨 뒷칸서 열차가 제대로 안서는 바람에 늦었다며 항의한 손님이 있었다고 한다.
  • [3] 예전에 100m 정도 오버런 해서 일근교육을 받은적이 있다한다. 때문에 더 조급해졌을 것이다.
  • [4] 비상제동이 아닌 일반제동이었다. 왜 일반제동을 했는지에 대한 설 중에는 '회사 내에서 비상제동 사용시 일근교육이라는 정신나간 정책이 있었기 때문' 이란 설이 가장 설득력이 높다.
  • [5] 한편 제동을 시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충격으로 인해 제동간이 비상제동으로 전환되었다는 설.
  • [6] 선두차량에 급제동이 걸렸을 때 뒤따라오는 차량들이 마치 잭나이프의 칼날처럼 꺾이는 현상.
  • [7] 선로에 떨어진 비둘기을 솔로 닦아내는 작업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