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J.D. 드류

last modified: 2014-04-26 18:42:17 Contributors


LA 다저스 팬들 사이에서 이는 혐짤에 가까운 취급이다(...)


이름 David Jonathan Drew[1]
생년월일 1975년 11월 20일
국적 미국
출신지 조지아 주 발도스타
포지션 우익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1997년 드래프트 2순위
1998년 드래프트 5순위
소속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1998~2003)
애틀랜타 브레이브스(2004)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05~2006)
보스턴 레드삭스 (2007~2011)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2]

2008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MVP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J.D 드류
(보스턴 레드삭스)
칼 크로포드
(탬파베이 레이스)

Contents

1. 개요
2. 필라델피아 팬들의 속을 뒤집어놓고 세인트루이스로 향하다
3. FA로이드의 2004년과 LA 다저스, 그러나...
4. 보스턴 레드삭스 이적 후


1. 개요

전 메이저리그 선수. 포지션은 외야수.

필라델피아 필리스, LA 다저스, 보스턴 레드삭스 팬덤 한정 천하의 개쌍놈. 반면 카즈 팬들은 돈을 밝히는 그의 행동에는 실망하면서도 에이스를 안겨주고 떠났기 때문에 까방권을 주는 듯. 테오 엡스타인은 이 선수를 실컷 좋다고 했는데 정작 보삭스 팬들은 득점권에서 선풍기나 돌린다고 까댄다. 한때 레드삭스 팬들끼리 가장 유행하던 드립이 조나단 파펠본의 7,8회 기용과 요놈의 가치에 대한 논쟁. 그래도 홈런 안타 치거나 호수비 하면 좋다고... 했는데 2011년에는 노쇠화와 부상으로 인해 폭망하면서 그런 실드질도 사라졌다. 요즘 팬들은 2011년 끝나고 드래프트 픽이나 남겨주고 떠나면 고맙다는 반응. 더구나 삭스에서 연봉도 많이 드시는 분이니... 안습. 데이빗 오티즈보다 많이 받는데 OPS는 6할대를 치고 있다...

또한 두 동생도 전현직 메이저리거인데, 그 둘은 지금은 은퇴한 팀과 현재 애리조나 디백스 유격수 티븐으로, 둘째인 우완투수 팀과는 2004년에 한솥밥을 먹기도 했다. 또한, J.D.와 팀은 97년 드래프트에서 함께 1라운드에 지명되며 형제가 같은 해에 1라운드에 지명되는 최초의 대기록이 이뤄졌으나 형이 튀어서 그 기록은 흑역사가 되었고, 스티븐은 두 형보다 많이 어려서 학교 졸업이 늦었지만 고졸 자격으로 참가한 01년 11라운드, 대학에서 참가한 04년 1라운드에 지명되었고, 드랩 역사상 전무후무한 삼형제 1라운드 지명이란 대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2. 필라델피아 팬들의 속을 뒤집어놓고 세인트루이스로 향하다

처음 참가한 1997년 드래프트에서 트로이 글로스, 버논 웰스, 갈란드, 랜스 버크만, 제이슨 워스 등을 제치고 전체 2순위로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지명되었다. 그야말로 그는 대학야구 최고의 강타자였다. 선구안도 뛰어나고, 장타력도 좋고, 중견수 수비도 탁월[3]하고 송구능력 좋고 도루 잘하고, 바로 5툴 플레이어의 결정판이었다. 아예 하얀 그리피로까지 불렸을 정도. 그런데, 이 녀석이 MLB 자타공인 천하의 개쌍놈과 손을 잡더니 필리스와의 계약을 미루면서 시간을 끌었고, 결국 MLB 규정의 허점을 파고들어 필리스와 사인을 포기하고 독립리그 세인트 폴 세인츠에 입단하며 다음 해 드래프트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96년 그 유명한 Loop-Hole FA 사태에서 트래비스 리의 계약과 비슷한 10m 규모의 메이저리그 계약을 요구[4]했고 아무리 거물이라도 그건 너무하다고 생각한 필리스는 결국 그에게 두 손을 들었는데, 결국 다음 해인 1998년 드랩에서도 전체 1번 지명권의 필리스에게 선택되지 않으면서[5] 5픽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지명되어, 필리스에게 요구했던 금액을 디스카운트한 3m 보너스 포함 총액 7m의 메이저리그 계약[6]으로 드랩 당해인 98년에 데뷔했다. 그가 데뷔한 9월 8일은 마크 맥과이어로저 매리스의 한시즌 61홈런 기록을 갈아치우던 날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1년 전만 해도 자기 팀에서 전체 2번픽으로 지명된 선수가 독립리그행을 불사하며 필리스행을 거부했다는 사실에 필리의 극성스런 팬들은 14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에 대한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한다.[7] 스캇 롤렌과 함께 팀이 아닌 개인으로서는 우열을 가리기 힘든 필리스의 양대 공적이 되었다.

아무튼, 그렇게 이리저리 욕을 먹거나 환호를 받으며 세인트루이스에서 5년간 준수한 활약을 했다. 타율 자체는 아주 높진 않았지만, 뛰어난 선구안으로 걸어나가 쏠쏠하게 도루를 하는 형태였고 매년 20개 가량의 홈런도 때려내는 장타력을 갖췄다. 그러나, 카즈는 보라스가 꼬장 부리며 엄청나게 뜯어낼 것을 염려[8]하고 FA가 1년밖에 남지 않은 그를 트레이드하는데, 당시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에게 받아온 선수 중에는 제이슨 마퀴와 아담 웨인라이트가 있었다!

3. FA로이드의 2004년과 LA 다저스, 그러나...

2004년 FA로이드를 복용한 드류는 브레이브스에서 .305 .436 .569 31홈런 93타점이라는 엽기적인 스탯을 찍고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공헌하지만,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NLDS에서 패퇴하고 말았다. 그렇게 FA가 된 드류는 5년간 55m 보장, 2년차 지난 후 FA 선언 가능[9]이라는 좋은 조건으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사인한다.

그렇게 맞은 첫 해인 2005년에 그는 높은 몸값 때문에 부상을 우려한 팀에서 도루를 자제할 것을 요구받아 도루를 줄이기 시작했고, 초반에는 타율 2할 5푼대와 OPS 8할로 다소 허덕였다. 하지만 6월부터는 부상당한 밀튼 브래들리 대신 중견수로 이동하여 타격감이 살아나며 더 좋은 스탯을 찍었다. 그런데 7월 3일 애리조나 디백스전에서 손목에 공을 얻어맞고 시즌을 마감(...) 뭐 비율스탯 자체는 2할 8푼 타율에 4할 초중반 출루율과 5할 장타율을 찍는 OPS형 타자이자 득점권에선 2할 초반 타율에 눈으로만 .370 출루율을 찍는 잉여로서 꽤 괜찮은 성적을 찍었다.

2006년 복귀해서는 성적이 살짝 하락했어도 OPS .891을 찍는등 준수한 활약을 펼쳤고, 9월 18일 경기에서는 제프 켄트-J.D. 드류-러셀 마틴-말론 앤더슨으로 이어지는 4타자 연속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10] 그렇게 2006년이 끝나고 옵트아웃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그 동안 다저스에서 즐겁게 생활하는 모습과 다저스에 머물 것이라는 투의 언론 인터뷰를 보였던 것, 은근히 잔부상이 많은 타입이라 FA 시장 나와봤자 큰 돈 따내기도 어려울 것이란 점을 들며 "설마 옵트아웃 하겠어...?"라고들 생각했지만,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다저스 팬들은 이 옵트아웃에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고, 네드 콜레티 단장과 선수들도 큰 상처를 받았다. 특히 옵트아웃 조항을 실행하기 오래 전부터 "이 동네가 너무 좋다. 오래오래 있고 싶다."는 식의 인터뷰를 쭉 해왔고 며칠 전에도 "2007년이 기다려진다"고 했기 때문에 좋다고 해놓고 팬과 구단의 뒤통수를 갈긴 것이 되었고, 다저스 팬들은 드류의 셔츠와 피규어를 불태웠다. 심지어 2007년 개막전에서 밀워키 브루어스에 졌을 때는 선수들과 팬들이 한 목소리로 드류 천하의 개쌍놈 새키 때문에 졌다 소리를 했고[11], 변함없이 그를 응원하던 카즈의 팬들마저 점점 그에게 등을 돌렸다. 또, 엉뚱하게도 아메리칸리그로 튀어버린 형에게 열받은 다저스 팬들이 같은 서부지구의 티븐 드류에게 야유를 퍼붓기도 했다.(...)[12] 흥미롭게도 스티븐 드류의 2013년 소속팀은 보스턴 레드삭스.

결국 다저스는 논텐더로 방출한 제이슨 워스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한 니 로프튼 등의 공백으로 같은 해 FA 시장에서 외야 보강에 총력을 기울인 결과 애리조나 디백스에서 팀 옵션이 거절된 루이스 곤잘레스와 발만 빠른 똑딱이 후안 피에르[13]를 데려와야 했고, 2006년부터 풀타임으로 뛰기 시작한 안드레 이디어는 좌익수에서 우익수로 옮겼으며, 가장 통탄스러운 것은 서비스 타임 조절을 위해 아끼려던 맷 켐프의 콜업이 너무 빨라졌다. 망했어요...

4. 보스턴 레드삭스 이적 후

그렇게 온갖 사람들에게 욕을 들으며 새로 도전한 아메리칸리그의 보스턴 레드삭스. 매년 14m씩 5년간 총 70m이 보장된 새 계약조건은 과연 스캇 보라스의 위엄이 느껴지는 계약이었다. 특히나 이 계약이 세이버메트릭스와 머니볼 스타일 협상을 고수하는 테오 엡스타인을 상대로 따낸 계약이라 더욱...[14] 다만 드류의 유리몸에 대해 의문이 있었던 레드삭스 측은 07~10 4년간 500경기 (매년 125경기 꼴) 이상 출전하지 못하면 마지막 해인 2011년의 14m 연봉을 5m으로 대폭 삭감한다는 빡센 조항을 붙였다. 그렇게 4년간 525경기 턱걸이하고 마지막 해에 폭망. 과연 자본주의는 위대하다...

첫 해에는 중거리 좌타자에게 매우 유리한 펜웨이 파크를 홈으로 쓰면서도 아메리칸리그 첫 시즌에 장타력을 생각만큼 선보이지 못하며 OPS가 .796에 그치는 연평균 14m의 연봉을 감안하면 많이 부족한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우승반지 획ㅋ득ㅋ 하지만 2008년에는 OPS .927 을 찍는 기염을 토하며 생애 첫 올스타전을 뛰었는데, 양키스타디움에서 올스타전이 열렸는데도 레드삭스 선수로서 올스타전 MVP에 선정되었다(...) 2009년에도 .914를 찍으며 돈값을 하는 듯 했다.[15] 하지만 3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나이는 속일 수 없는지 2010년엔 다시 주춤했고, 2011년에는 급격한 추락을 겪어 선구안을 제외한 모든 툴이 쇠퇴한 커리어 사상 최악의 성적을 찍고 있고 부상까지 겹쳤다.[16] 결국 2011년에는 갑툭튀한 조시 레딕의 등장에 계약 만료 후 방출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최종 4홈런 22타점 .222 .315 .302라는 해도해도 너무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플레이스타일은 전형적인 눈야구+일발장타를 갖춘, 라이벌 뉴욕 양키스닉 스위셔 같은 OPS형 중장거리 타자로 준수한 주루능력도 갖추고 있어서 여러 타순 어느 순번에 갖다놔도 잘 할수 있는 선수다. 좌타자들이 다 그렇듯이 좌투수 상대로 다소 고전하는 점과 은근히 잔부상이 있는 것을 빼면 딱히 기복이랄 것도 없이 커리어 내내 꾸준함을 유지한 타자. 또한 패스트볼을 잘 공략하는 타자로서 여러 파워피쳐들을 상대로 장타력을 과시[17]하며 좋은 능력을 찍고 있다. 다만 평소에도 언더독 스타일보다는 라면수비[18], 득점권에서의 잉여모드, 성의없는 눈야구[19] 등의 모습을 보여주며 보는 입장에서 꽤 답답하다는 사람들이 많다. 게다가 은근히 잔부상이 종종 있어서 레드삭스 시절 이전에도 커리어 내내 한 해에 150경기를 출전한 적이 없다.[20] 더구나 레드삭스에서는 그의 전임자 우익수가 트롯 닉슨[21]이었기 때문에 더욱 대조되는 점이다.

사실 세이버메트릭스를 추종하는 계열에서는, 2007년~2011년 5년 70m 계약을 맺은 드류의 활약을 딱히 망했어요라 평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최소 중박은 되는 평가를 내리는 편. WAR에 의하면 그의 레드삭스 스탯은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인 데이빗 오티즈와 맞먹는 수준이며, 최근의 부진 역시 어쩔 수 없는 노쇠화를 감안해야 하고, 계약 당시 2006-07 오프시즌의 외야수 FA 자원도 풍족한 것이 절대 아니었던 것을 간과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세이버메트리션 레드삭스 팬 블로그의 글. 그렇지만 그런 인식에 대해 테오 엡스타인을 싫어하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팬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미지수(...) 솔직히 드류는 마냥 못했다는건 절대 아닌데 그렇다고 우승에 큰 기여를 했다거나 할 정도로 임팩트가 컸던 것도 아니라서 더 논쟁이 심화된다. 마쓰자카 다이스케, 존 래키, 훌리오 루고처럼 확실히 망했어요도 아니라 팬들 사이에서는 테오에 대한 각자의 입장차로 드류에 대한 입장이 갈라진다고 보면 된다. 그래도 스캇 보라스와는 상종하지 말아야 함에는 모두 동감한다

결국 하락세를 지켜본 레드삭스는 재계약을 하지 않았고, 2012년 3월 현재 FA상태이다. 하지만 사실상 은퇴 수순을 밟는 것으로 보인다.

2006년과 2007년 다저스와 보스턴에서 백투백투백투백 홈런을 친 일원에 속하는 대기록을 남겼다. 메이저리그 전체를 통틀어 5번[22]뿐인 기록인지라 드류는 전무후무한 케이스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이래저래 돈도 많이 벌고 운도 좋고 실력도 좋았으며 기록도 쌓은데다가 우승반지까지 얻은 보기드문 승리자.
----
  • [1] 고향에선 데이비드 대신 조나단 드류라고만 주로 불렸는데 이를 줄여 J.D.라 했다고 한다... 참고
  • [2] 대체 이 줄까지 만들 필요가 있겠나 싶지만 이 인물과 J.D. 드류의 경력이 워낙 범상치 않아서 추가한다(...)
  • [3] 빅리그에 와서는 중견수보다는 우익수로 더 많이 뛰었다. 본격적으로 커리어를 시작하려는 때에 카즈가 애너하임 에인절스의 중견수 골드글러버 에드몬즈를 데려왔기 때문.
  • [4] 당시에 필리스에서 뛰던 핵이빨 공화당원은 스캇 보라스를 맹비난하며 이 무시무시한 요구에 대해 진지한 공개토론을 제안하기도 했다(...)
  • [5] 그 1픽은 팻 버렐인데, 통산타율에서 알 수 있듯 전형적인 선풍기 스윙어라 삼진이 많았고, 좌익수로써 수비력이 많이 떨어졌기에 평가가 드류보다는 많이 떨어진다. 그러나 필라델피아 커리어는 .257 .367 .485 251홈런 827타점으로 드류의 통산 커리어인 .278 .384 .489 242홈런 795타점보다 모자라다고 보기 어렵다. 필라델피아 시절엔 연평균 145경기를 뛰었으며 필라델피아를 떠난 09시즌 이후 잦은 부상으로 제대로 경기에 뛰지 못했기에 필라델피아의 버렐은 유리몸이라 평가하기엔 부당하다. 그리고 올스타에 선정되는데 실패한 버렐에 비해 드류는 한번 선발된 적이 있다. 그러나 WS 우승반지 1개를 가진 드류에 비해 버렐은 2개를 가지고 있다.
  • [6] 필리스는 이 픽에 대한 보상도 받지 못했다. 전년도 드랩에서 사인에 실패한 선수의 순위+1 순번에 지명권을 부여하는 제도가 이 때는 없었고 그냥 1라운드 정규 지명권은 30개로 정해져 있고 그 다음에 FA 보상 샌드위치픽이 진행되었다. 이런 보상 지명권이 언제 생겼는지는 추가바람.
  • [7] 보삭스 팬들과 필리스 팬들은 최근에 서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편인데, 그들 사이에 드류 떡밥만 투척되면 이들은 그 순간 견원지간이 된다.
  • [8] 물론 그것도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역시 발전 없는 푸돌이의 장기 노예계약을 위해서도 페이롤 여유를 마련해야 했다. 그렇게 04년부터 체결한 계약은 8년 111m으로, 2011년을 끝으로 만료된다. 또한 습관성 좌우놀이 중독자 토니 라 루사 감독과의 트러블이 작용하기도 했다. 드류 본인은 보라스의 부채질이 있긴 했을테지만 자신을 툭하면 좌투수 타석때 교체하거나 벤치에 앉히는 토니 라 루사의 기용에 상당한 반발을 했었다.
  • [9] 선택적 계약 이탈. 말 그대로 계약 파기하고 FA가 될 수 있다는 것. 다만 이 경우 FA로 타 팀을 이적해도 보상 드래프트픽은 얻지 못하기에 선수 측에 굉장히 유리한 조건으로 재계약 협상이 전개된다. 흔히 "Opt out of one's contract"라고 말한다. 이 계약조건으로 대박을 터뜨린 사례가 바로 2007년 종료 후 옵트아웃을 선언하고 뉴욕 양키스와 재계약하여 "10년 275m+홈런 마일스톤 옵션"을 보장받은 알렉스 로드리게스.
  • [10] 당시 희생양이 된 투수는 각각 두 타자씩 존 애킨스트레버 호프만... 이 경기는 9회에 9-5로 다저스가 지고 있다가 이렇게 터진 솔로홈런 4연타에 동점이 되고 호프만의 블론세이브가 기록되었다... 파드리스 입장에서 더 안습인건 그렇게 연장 가서 타선이 1점을 내는데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귀신같이 10회말에 노마 가르시아파라에게 워크오프 투런을 헌납했다!
  • [11] 심지어 보스턴 레드삭스로 갔다는 것에 인연이 있어서 인터뷰를 요청받은 데릭 로우와 그래디 리틀 감독(2003 ALCS에서 페드로를 8회에도 올려놨다가 경질당한 그 감독 맞다.)은 본인들이 더 나서서 드류를 욕했다. 또한 콜레티 단장은 지가 노마 가르시아파라라도 되는줄 안다고 욕했다. 그런데 정작 드류를 영입한 레드삭스의 팬들은 로우와 리틀 감독의 심정은 이해하면서도 다저스의 네드 콜레티 단장에게 불만이 있었다고... 너네 팀노마가 있는데 우리 노마 가슴 아프게 그런 말을 해야겠음? 실제로 다저스 선수들과 팬들이 배신감을 토로할 때도 노마만은 보스턴으로 간 드류에 대해 이렇다 할 발언을 하지 않았다.
  • [12] 뭐, 스티븐은 매번 필리스 원정에서도 형이 들을 욕 대신 듣고 다닌다. 지못미.
  • [13] 당해 FA 시장에서 드류만한 외야 좌타자가 너무 없었다. 보라스는 이 점을 노려서 드류의 옵트아웃 조항을 실행했고, 그 결과 드류는 FA 시장에서 경쟁이 굉장히 치열해졌다.
  • [14] 같은 시기 레드삭스는 일본을 개발살내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마쓰자카 다이스케에게 6년 총액 52m을 보장해준다. 이 역시 스캇 보라스의 작품. 다만 마쓰자카가 더 까이는 것은 역시나 연봉도 연봉이지만 51m에 달하는 이적료 때문...
  • [15] 사실 돈값을 했다기에도 팬들이 보기엔 성이 안차는 것이, 9할을 넘나드는 OPS에 비하면 그의 득점권 타석에서 보이는 소극적 스윙이 영 만족스럽지 못하고 그 때문에 득점권에서 비율 기록은 좋아도 타점 수치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는 닉 스위셔아담 던 같은 눈으로 야구하는 선수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며, 득점권에서도 너무 쳐다보고만 있다는 것은 심지어 리키 헨더슨에게서도 나타난 현상이다. 오히려 득점권에서는 통산 성적보다 떨어지기 일쑤. 결국 이런 선수들은 특별히 리드오프 같은 자리를 맡지 않는 이상 눈으로만 야구하는 공갈포 소리를 듣게 된다.(...)
  • [16] 이 시기 카를로스 쿠엔틴, 헌터 펜스, 카를로스 벨트란 등 여러 우타/스위치히팅 우익수 영입이 검토되었다. 일단은 팜에서 올라온 좌타자 레딕이 공백을 메우는 형세.
  • [17] 물론 2010년부터 시작된 노쇠화로 패스트볼 공략 능력이 하락하였고 2011년 커리어로우급의 장타율을 찍고 있다.
  • [18] 특히 펜웨이 파크는 레프트/라이트 필드가 굉장히 비범한 구조를 자랑하기 때문에 코너 외야수도 수비하기가 굉장히 까다로운데, 그런 자리에서 수비로 욕먹지 않는 점만으로도 굉장한 능력을 갖춘 것이라 할 수 있다.
  • [19] 이런 부분은 눈야구를 즐기는 선수들이 전부 듣는 얘기니 그러려니 하자(...)
  • [20] 물론 지명타자를 쓰지 않는 내셔널리그와 빅 파피를 보유한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뛴 것으로 인해 지명타자 출전 횟수가 높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다. 하지만, 원래 외야수 하라고 데려온 선수에게 이미 자리가 있는 지명타자로의 출전까지 보장하면서 150~160경기를 출전시켜야 한다는 것인가?
  • [21] 2003 ALCS에서 애런 분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고 덕아웃에서 기물을 때려부수며 분통을 터뜨렸던 그 선수 맞다. 보스턴 레드삭스에서는 언더독 스피릿의 화신과 같은 프랜차이즈 스타 외야수였다. 물론 테오 엡스타인은 보사구팽에 맛을 들였는지 그를 내쳤고, 그렇게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선수를 들여온다고 온 것이 J.D. 드류였기에 그런 이유에서도 보삭스 팬들은 드류를 영 좋아하지 않는다.
  • [22] 1961년 밀워키, 1963년 클리블랜드, 1964년 미네소타, 2006년 다저스, 2007년 보스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