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irected from page "발롱도르"

E,AHRSS

FIFA 발롱도르

last modified: 2017-03-17 22:31:29 Contributors

FIFA_Ballon_dOr.jpg
[JPG image (Unknown)]
ballon_d_or.png
[PNG image (Unknown)]
FIFA Ballon d'Or

Contents

1. 개요
2. 수상 기준
3. 개인 퍼포먼스 VS 팀 성적?
4. 이야깃거리
5. 역대 발롱도르 수상자
6. 역대 FIFA 올해의 선수상 수상자
7. 역대 FIFA 발롱도르 수상자

1. 개요

1995년 최초의 비(非)유럽인 발롱도르 수상자
라이베리아의 조지 웨아[1]
발롱도르(Ballon d'Or, 황금공)는 1956년부터 프랑스 스포츠 일간지 레퀴프에서 뽑은 올해의 유럽 선수상이다.

국내 축구 팬들이 종종 잘못 알고 있는데, 발롱도르는 1995년 들어서 선수의 유럽 국적 제한을 풀었다. 바로 이 시즌 수상자가 아프리카의 축구 영웅 조지 웨아. 그래서 마라도나와 펠레는 이 상을 받지 못했다.[2] 그래서인지, FIFA에서는 '명예 발롱도르'를 만들어 이러한 레전드들에게 시상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명예 발롱도르 수상자는 디에고 마라도나,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펠레가 있다. [3]

2010년부터는 주장과 감독이 투표하던 FIFA 올해의 선수상과 통합되어 FIFA 발롱도르[4]를 시상하게 되었다. 줄여서 피롱 도르. 기존 발롱도르는 기자단만 투표하였으나 피롱 도르부터는 기자단, 주장, 감독이 각각 1:1:1 비율로 투표를 하게 되었다.

2. 수상 기준

FIFA 발롱도르 투표에 기존 피올 투표의 영향이 기존 발롱보다 2배 많은데, 통합 이전의 올해의 선수상은 말 그대로 인기투표 취급을 받았고,[5] 권위도 발롱도르보다 낮았단 것이 문제다. 물론 개인 퍼포먼스를 팀 성적보다 중시한다면 피올이 완전 인기투표인 것만은 아니며[6] 과거의 유럽국적 제한이라거나 유럽 리그 제한이라거나 하는 이유로 발롱도르에서는 후보 자체에 포함될 수 없었던 선수가 피올에 선정되는 경우는 예외로 쳐야 하지만, 그 외의 경우에는 발롱도르와 피파 올해의 선수상 수상자가 다른 것으로 나올 때마다 권위가 발롱도르에 더 쏠린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결국 2010년 최초 투표부터 인기투표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해당 논란에 대해서 다룬 한국내 블로그 글 링크. 기존 발롱도르 투표 결과는 2010년엔 스네이더-이니에스타-사비-메시 순이었고, 2013년엔 리베리-호날두-메시 순이었다. 물론 2010년의 메시와 2013년의 호날두의 개인 퍼포먼스가 압도적이었기에 피롱도르를 받을 자격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어쨌든 이전 발롱도르와 지금 피롱도르 선정 기준의 괴리감이 커진 것은 사실이며[7], 투표 비율을 조정하거나 다시 발롱도르와 피올로 분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예를 들어 모든 리그 경기를 다 지켜보거나 분석했을 리 없는 각 대표팀 주장, 감독들에게도 투표권을 준다면 어떻게 투표하겠는가? 1위를 찍으라면 당연히 델보스케 : 사비, 인혜 / 카시야스 : 무조건 호날두 / 마스체라노 : 일단 무조건 메시 / 듣보잡 제3세계 국가대표팀 주장[8] : 무조건 호날두 or 메시 / 이런 식이 될 것이다. 일이 이렇게되니 메시와 호날두는 은퇴 후에도 계속 발롱도르 득표가 나올것이라고 비아냥거리는 등 원성이 자자하다.

이렇듯 FIFA 발롱도르(2010년) 이후 수상 기준에 대한 논란이 많은데, 2007년부터 계속해서 UEFA 챔피언스 리그 득점왕이 FIFA 발롱도르를 수상하고 있다. FIFA 발롱도르를 원하는 자, 챔스 득점왕이 되어라 장지현 SBS 축구해설위원은 "세계축구의 경쟁력을 집대성한 무대가 유럽축구이며, 유럽 챔피언스리그는 그 중에서도 최고의 별들이 나서는 대회"라면서 "4년 주기로 열리는 월드컵과 달리 매 시즌 진행하는 데다 관심 면에서도 월드컵 못지 않은 만큼, 이 대회에서 득점왕에 올라 '당대 최고 골잡이'를 인증한 선수가 FIFA 발롱도르 후보로 주목받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3. 개인 퍼포먼스 VS 팀 성적?

사실 '올해의 선수'를 뽑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기에 FIFA 올해의 선수상과 통합되기 이전에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1974년의 발롱도르이다. 프란츠 베켄바워는 당시 1974 서독 월드컵, UEFA 챔피언스 리그, 분데스리가를 우승으로 이끌었지만, 수상은 요한 크루이프가 했다. 객관적인 성적보다 '토탈 사커'로 시대의 '아이콘'이 된 크루이프에게 줘야한다는 심리가 작용한 투표였다. 베켄바워는 이 결과에 분통을 터트리며 "도대체 이 이상 뭘 더하란 말인가!"라는 말을 남겼다. 1999년의 발롱도르 역시 가장 유력한 후보는 맨유를 트레블로 이끈 데이비드 베컴이었는데, 정작 수상은 히바우두가 수상했다. 바르셀로나를 캐리한 히바우두의 원맨 퍼포먼스가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될 정도로 대단했기 때문이다. 역사상 가장 논란이 심한 발롱도르인 2001년은 라울이 수상해야 한다는 의견이 중론에 가까웠지만, 정작 수상은 뜬금 없이 마이클 오웬의 몫으로 돌아갔다. 리버풀이 '미니 트레블'을 달성하면서 투표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수상 기준이 개인 퍼포먼스냐, 팀 성적이냐는 그때 그때의 심리로 인해 달라지는 부분이다.

2002년의 발롱도르는 월드컵이라는 대회가 주는 무게감이 그대로 반영된 투표였다. 월드컵 득점왕을 차지하며 브라질에게 통산 5회째 우승을 바친 호나우두가 수상했는데 리그에서의 활약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투표였기에 논란이 많았다. 호나우두는 길고 긴 부상끝에 월드컵 직전에야 복귀, 불과 리그에서 10경기에만 출전했을 뿐이었다. 리그에서 아무런 활약도 없이 단순히 월드컵에서 보여준 포스로만 상을 수여했기에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월드컵에서의 활약이 발롱도르의 결과에 그렇게 중요하다면 2001/02시즌의 거의 모든 경기를 훌륭히 소화하며 레알 마드리드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견인하고 월드컵에서도 대활약을 펼친 브라질 동료 호베르투 카를로스가 수상하는 것이 더 정당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요한 크루이프는 2002년 발롱도르 결과에 월드컵의 비중이 과도하게 들어갔다고 신랄히 비판하며 티에리 앙리가 수상하는 것이 옳았다고 평했다.

2004년의 발롱도르는 안드리 셰브첸코의 몫으로 돌아갔는데 티에리 앙리가 수상했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9] 앙리 앙리는 그해 아스날을 무패 우승으로 이끈데다가 유럽 골든부츠와 리그 골든부츠를 동시에 석권하며 세브첸코 보다 퍼포먼스, 성적 모두 표면적으로 나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앙리가 유럽대회의 성적이 좋지 않았기에 수상하지 못한 것이라면 포르투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과 포르투갈의 유로 2004준우승을 이끈 데쿠가 수상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앙리는 4위를 기록하고 마는데 리그에서 무관에 그치고 아무런 개인 수상도 하지 못한 호나우지뉴가 투표에서 3위를 기록했기 때문이다.[10] 당시 호나우지뉴는 '외계인'이란 별명으로 시대의 아이콘이 될 정도로 매 경기 하이라이트를 찍다시피하며 차원 높은 퍼포먼스를 보여주던 때였다. 이처럼 한 시대를 지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가 등장하면 그 선수는 팀성적 & 개인성적에 구애치 않고 높은 득표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1974년의 크루이프, 1999년의 히바우두의 사례처럼, 트레블과 월드컵 준우승을 달성한 웨슬리 스네이더를 제치고 발롱도르를 수상한 2010년의 리오넬 메시 역시 그러한 이유로 투표심리가 작용했다고 보인다. 2004년의 발롱도르 투표에서 아무런 성적과 수상이 없는데도 3위를 기록하며 논란이된 호나우지뉴는 그해 통합되기 이전 FI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면서 기준의 모호함을 반증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 처럼 발롱도르는 기준을 기계적으로 나누고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스스로의 기준을 가지고 투표하는 것이기에 투표자들에게 당해 어떤 선수가 가장 임팩트를 주었는가 중요하다. 그렇기에 개인 퍼포먼스로 타야한다, 팀성적으로 타야한다 모두 무의미한 논쟁에 불과하다. 사실 발롱도르 최후의 후보 3인에 들어가는 선수는 그 해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들이기에 누가 타더라도 납득할만한 결과로 받아들일 수 있을것이다. 물론 키배는 좀 나겠지만 한준희 해설위원은 2013년 발롱도르 수상을 예상하며 트레블의 주역 프랑크 리베리 대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밀었는데, 그 이유도 투표인마다 개인의 기준이 있을 것이고 해마다 팀 성적이냐, 개인 퍼포먼스냐, 월드컵 성적이냐 라는 여론이 달라진다. 이번에는 퍼포먼스로 인한 여론으로 리베리가 아닌 호날두가 탈것이라고 예측했고 적중했다.영상

참고 발롱도르와 피파 올해의 선수상의 기준 차이링크

4. 이야깃거리

2005 발롱도르 후보 50인 안에 대한민국박지성이 있었다.

피롱도르 이후 레알, 바르사의 기세가 엄청나다. 남성 부문[11] 감독상은 2011년 알렉스 퍼거슨이 3위를 한 것을 제외하면 2012년까지 주제 무리뉴, 비센테 델 보스케 스페인 국가 대표팀 감독, 펩 과르디올라만이 3위안에 이름을 올렸다. 그중 무리뉴는 2010년 인테르 감독으로 수상한 이후는 꾸준히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 이것은 2013년에 최종 3인이 모두 다르게 나오면서 깨졌다.[12]애초에 레알, 바르사 둘 다 뮌헨과 도르트문트한테 개발렸으니.

남성 부문 선수상의 경우 3년 연속 메시가 수상한 것은 그렇다 치고,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제외한 팀의 선수로 3위 이내에 이름을 올린 선수는 2013년의 프랑크 리베리뿐이다. 그것도 3위로(...).

그리고 월드 베스트 11을 선정하는데,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간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제외한 팀의 선수가 포함된 것은 단 3팀뿐이다[13]. 2010년 트레블 시기의 인테르 소속 3명[14], 2011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이 2명[15], 2012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1명[16]이 예외로, 3년간 33자리 가운데서 나머지 27자리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게 돌아갔다.

2013년에는 바이에른 뮌헨이 3명[17], PSG가 2명[18]으로 5명을 배출하면서 비 레알, 바르셀로나 팀들로서는 최대 배출자 수를 낸 해가 되었다. 더 정확하게는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한 바이에른 뮌헨이 3명을 배출한 것은 이상할 것이 없는데, PSG가 2명을 뽑아낸 것이 이색적 상황.

2012년에는 투표 오류가 발생했다. 대상은 남자 감독상. 감독상은 델 보스케가 수상하였는데, 주제 무리뉴가 '몇몇 지인들이 나에게 투표했다고 이야기했는데, 알고 보니 다른 사람에게 투표했더라'라는 발언을 한 것이 시작이었다. 흔한 뒤통수 내지 입발림인가 했는데, 마케도니아 국가 대표팀의 주장으로 투표 자격을 가진 고란 판데프자신은 원래 무리뉴를 1위로 뽑았는데, 투표는 델 보스케, 로베르토 만치니, 위르겐 클롭에게 갔다라고 하면서 투표가 조작되었다고 발표한 것이다. 당연히 투표를 주관하는 FIFA는 발끈해서, 마케도니아 축구 협회에서 보내온 투표 용지까지 공개하면서 고란 판데프가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란 판데프는 해당 투표 용지의 사인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맞섰지만 역시 판데프가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나나 했는데...갑자기 마케도니아 축구 협회가 기술적 오류가 발생했다. 판데프 말 맞음이라고 발표한 것이다. 마케도니아 축구 협회에 의하면 고란 판데프는 자신의 의사를 구두로 밝혔는데, 이 후 과정에서 기술적 오류가 발생해서 저런 투표 용지가 작성되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기술적 오류 때문에, 이름 듣고 동그라미 하나 치는 게 오류가 발생하나 마케도니아 축구 협회는 이런 사례가 판데프 한 명뿐이라고 밝혔지만, 그렇지 않아도 이야기가 많던 피롱 도르의 권위가 또 한번 코미디가 된 사건이었다.

2013년에는 투표자가 적다는 이유로 투표 기간 연장에 들어갔다. 문제는 기존 투표의 수정 또한 가능하다는 것. 하필 이 사실이 발표된 것이 메시의 부상 중, 그것도 호날두해트트릭 이후라는 점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19][20] 인터넷에서도 노래방 도르, 연장 도르, 발놈 도르(...) 등으로 신나게 까이는 가운데...축구 관련 언론들에서도 FIFA의 일처리 행태를 가루가 되도록 까는 중. 물론 발롱도르 역사상 투표 기간 연장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다만 FIFA는 연장 전 집계한 순위와 연장 후 집계한 순위에는 변동이 없었다고 발표했다.[21] 막상 투표날 사회자이자 오렌지 삼총사의 일원인 루드 굴리트의 인지도가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매우 떨어지는 편이라 외모가 꽤 닮은 브라질의 레전드 카푸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웃기지만 뭔가 좀 슬픈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FIFA 월드컵의 징크스 중에는 롱도르의 저주도 있다. 월드컵 직전에 발롱도르를 수상하면 발롱도르를 수상한 선수가 소속된 국가대표팀이 월드컵에서 부진하는 징크스이다. 중요한 것은 발롱도르 수상자들은 하나같이 월드컵 우승을 놓쳤다는 점이다. 2013년도 발롱도르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수상하였는데 이 때문에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어떤 성적을 거둘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리고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이 저주는 이어졌는지 포르투갈은 조별 예선 첫 경기에서 독일에게 4대0으로 대패했고, 코엔트랑과 알메이다가 부상당한데다 페페가 어이없는 박치기 끝에 퇴장당했다. 호날두가 부상에도 불구하고 전경기 출장하며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예선탈락을 당했다.

5. 역대 발롱도르 수상자

연도 수상자 소속팀
1956 스탠리 매튜스[22] 랙풀 FC
1957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레알 마드리드 C.F.
1958 이몽 코파 레알 마드리드 C.F.[23]
1959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레알 마드리드 C.F.
1960 루이스 수아레스(1번 항목) FC 바르셀로나
1961 마르 시보리 유벤투스 FC
1962 세프 마소푸스트 클라 프라하[24]
1963 레프 야신 디나모 모스크바[25]
1964 니스 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65 에우제비우 벤피카
1966 바비 찰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67 로리안 알베르트 렌츠 바로스
1968 조지 베스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69 지아니 리베라 AC 밀란
1970 게르트 뮐러 바이에른 뮌헨
1971 요한 크루이프 AFC 아약스
1972 프란츠 베켄바워 바이에른 뮌헨[26]
1973 요한 크루이프 FC 바르셀로나
1974 요한 크루이프 FC 바르셀로나
1975 레흐 블로힌 FC 디나모 키예프
1976 프란츠 베켄바워 바이에른 뮌헨
1977 란 시몬센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978 빈 키건 함부르크 SV
1979 빈 키건 함부르크 SV
1980 칼 하인츠 루메니게 바이에른 뮌헨
1981 칼 하인츠 루메니게 바이에른 뮌헨
1982 파올로 로시 유벤투스 FC
1983 미셸 플라티니 유벤투스 FC
1984 미셸 플라티니 유벤투스 FC
1985 미셸 플라티니 유벤투스 FC
1986 고르 벨라노프 디나모 키예프
1987 루드 굴리트 AC 밀란
1988 마르코 판 바스턴 AC 밀란
1989 마르코 판 바스턴 AC 밀란
1990 로타어 마테우스 인테르
1991 장 피에르 파팽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1992 마르코 판 바스턴 AC 밀란
1993 로베르토 바조 유벤투스 FC
1994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FC 바르셀로나
1995 조지 웨아 AC 밀란[27]
1996 마티아스 잠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997 호나우두 인테르
1998 지네딘 지단 유벤투스 FC
1999 히바우두 FC 바르셀로나
2000 루이스 피구 레알 마드리드 C.F.
2001 마이클 오언 리버풀 FC[28]
2002 호나우두 레알 마드리드 C.F.
2003 파벨 네드베드 유벤투스 FC
2004 안드리 셰브첸코 AC 밀란
2005 호나우지뉴 FC 바르셀로나
2006 파비오 칸나바로 레알 마드리드 C.F.[29]
2007 카카 AC 밀란
2008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09 리오넬 메시 FC 바르셀로나

----
  • [1] 20대 초반까지 아프리카에서 활동했으나 그의 재능을 알아본 아르센 벵거에 의해 발탁되어 AS 모나코에 입단해 유럽무대에 데뷔하였다. 이후 AC 밀란에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아프리카 역대 최고의 선수를 꼽을때 언제나 언급되는 레전드
  • [2] 마라도나는 SSC 나폴리에서 활약하면서 리그 우승과 UEFA 컵 우승을 이끌었으나 국적 제한 때문에 받지 못 했고 펠레는 유럽 리그에 간 적이 없어(브라질의 산투스 FC에서 18년 동안 활약하고 미국 뉴욕 코스모스에서 은퇴) 이 상 후보조차 오르질 않았다.
  • [3] 그런데 디 스테파노는 나중에 스페인 국적을 취득했기 때문에 이미 정식으로 발롱도르를 수상한 적이 있다. 물론 유러피언 컵 5연패를 이룬 유럽 최고의 레전드인 만큼 수상 자격은 충분하지만...
  • [4] 1991년 처음 FIFA에서 제정하여 수여하였다. 2010년 발롱도르와 통합되었다. 통합되었으므로 FIFA 올해의 선수상 수상자도 표기한다.
  • [5] 기레기 기레기 하면서 까이지만, 그래도 직접 얼굴 대면하는 선수들간의 친목질이나 관련된 충분한 지식이 부족해서 단순 인지도만으로 투표할 수도 있는 감독과 선수들에 비하면 기자단 투표는 상대적으로 중립적이고 전문적 권위가 보장된다. 그리고 감독과 선수들 투표가 좀 부질없어지는 것이, 기자단은 상대적으로 많인 리그와 선수들을 균형 있게 보지만 선수단과 감독들은 그렇지 않다.
  • [6] 사실 이 부분도 문제인 것이 피올과 발롱도르는 어느 쪽은 팀 성적을 중시하고 어느 쪽은 개인 성적을 중시하는 상이 아니었다. 단지 기자단과 축구관계인이라는 투표자 성향의 차이와 지식 수준 등의 차이로 경향성이 달랐을 뿐이다. 이것이 발롱도르의 권위문제로 불똥이 튀자 개인 성적과 팀 성적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전 기자단 투표 시절 발롱도르에서는 소속팀이 월드컵이나 챔피언스 리그에 우승한 경우에 좋은 평가가 나오는 경향성이 있었고, 피올은 개인의 인지도가 더욱 중시되었는데 피롱도르는 후자의 가중치 때문에 후자 위주로 선정 되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축구에서 개인 성적과 팀 성적을 어떤 형태로 분리할 수 있느냐로 벌이는 논쟁을 고려하면 팀 성적과 개인 퍼포먼스 이야기는 단순 물타기일 뿐이다.
  • [7] 피올 비중이 2/3이라 사실상 피올 선정 기준과 가까워졌다.
  • [8] 아프리카 축구연맹에만 50개국이 넘는다는걸 유의하자
  • [9] 세브첸코의 승리로 끝난 이 발롱도르의 결과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많다. 다음의 링크들을 확인하시라. 기사 1기사2관련글
  • [10] 유독 상복이 없는 앙리는 2006년에도 수상할 기회가 왔으나, 월드컵 우승을 이끈 파비오 칸나바로지안루이지 부폰에게 밀려 3위에 그치고 말았다.
  • [11] 피롱도르가 된 이후로는 남성 부문과 함께 여성 부문의 선수상과 감독상을 함께 수상한다. 물론 대부분의 축구 팬들은 그다지 관심 없다.
  • [12] 수상자는 유프 하인케스이고 나머지 두 명은 알렉스 퍼거슨, 위르겐 클롭
  • [13] 2010년의 다비드 비야는 전반기에는 발렌시아 소속이지만 후반기에 바르셀로나에서 뛰었다. 수상시점에서는 바르셀로나 소속.
  • [14] 마이콘, 루시우, 웨슬리 스네이더
  • [15] 네마냐 비디치, 웨인 루니.
  • [16] 인간계 최강 라다멜 팔카오.
  • [17] 마누엘 노이어, 필립 람, 프랑크 리베리.
  • [18]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치아구 시우바.
  • [19] FIFA 회장 제프 블라터가 이 무렵 호날두를 조롱하는 듯한 행동으로 논란을 일으킨 적 있었고, 호날두가 공개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발롱도르 시상식에도 불참을 선언한 이후 적극적인 사과 공세를 보내고 있었다. 따라서 투표 기간 연장도 화해 제스처의 일환임이 거의 확실.
  • [20]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호날두 또한 부상을 당했다. 응?
  • [21] 상식적으로 호날두를 공개적으로 조롱하고 다니는 블래터가 호날두를 애초에 밀어줄 이유는 없다
  • [22] 사실 스탠리 매튜스가 초대 수상자가 된건 공로상 격으로 받은거라 2위였던 디스테파노가 정당한 수상자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 [23] 수정 이전에 스타드 드 랭스 소속으로 되어 있었으나 발롱도르 수상 당시 레이몽 코파는 레알 마드리드 소속이었다.
  • [24] 최초의 동유럽권 국가 수상.
  • [25] 전무후무한 '골키퍼' 수상
  • [26] 최초의 수비수 수상
  • [27] 최초의 비유럽인 수상자. 2013년 현재까지 유일한 비유럽, 비남미 국적의 FIFA 올해의 선수, 발롱도르 수상자이다. 또한 FIFA 올해의 선수 가운데 조국이 월드 컵 본선에 나가지 못한 유일한 선수이기도 하다.
  • [28] 당시 유럽대항전 라이벌 팀들을 모두 씹어먹은 바이에른 뮌헨의 중원사령관 슈테판 에펜베르크에게 줘야 한다는 말이 많았다.
  • [29] 축구에서 빛나는 포지션이 아닌 수비수로서 최초로 받은 상이다...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정확히는 4백의 센터백으로서 최초이다. 수비수로는 이미 전설이 된 황제 베켄바워가 발롱도르를 수상했고, 마티아스 잠머도 리베로로 뛰며 호나우두를 제치고 발롱도르를 받았다. 다시 말해 리베로가 아닌 수비수로서는 최초(칸나바로는 스토퍼).
  • [30] 인테르의 트레블과 2010년 월드 컵 준우승의 주역 겸 실버 볼 수상자인 웨슬리 스네이더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혔지만, 10/11 시즌에 팀 순위가 급락하면서 기세가 한 풀 꺾였다. 차비 에르난데스가 월드 컵 우승과 리그의 활약으로 유력한 후보가 되었고, 월드 컵 결승골을 넣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도 강력한 후보 중 하나. 메시는 클럽에서는 08/09 시즌을 넘어서는 대활약을 펼쳤지만 아르헨티나가 월드 컵 8강에서 탈락하면서 어렵다는 평가...그런데 결국 차비, 이니에스타, 메시 바르셀로나 3인방이 최후의 3인으로 남았고, 결국 최종 승자는 메시여서 '최우수 선수상이 아닌 인기상' 논란이 일었다. 이 당시 메시가 경기당 한 골씩 넣는 미친 페이스를 보여줬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의견과, 그래도 트레블+월드 컵 준우승을 한 스네이더가 받았어야 한다는 의견으로 나뉜다. 가장 논란이 난 것은 스네이더가 최후의 3인에도 없었다는 것.
  • [31] 여담으로 피롱도르가 아니라 이전의 발롱도르였다면 수상자는 스네이더였을 것이고, 메시는 이니에스타와 사비에게 밀린 4위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기자단 투표 결과가 실제로 그러했기 때문이다. 투표내역을 보면, 메시의 수상은 피롱도르의 정체성을 강하게 규정지어 버렸다고 할 수 있다.
  • [32] 역대 최초 4년 연속에 역대 최다 수상. 참고로 메시는 합쳐지기 이전인 2009년에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을 동시 수상했기에, 4년 연속 수상이란 표현에 아무런 하자가 없다.
  • [33] 이번에도 2010년과 거의 똑같은 양상을 보여주었다. 이전의 발롱도르였다면 기자단 투표 1위는 리베리, 2위가 호날두, 3위가 메시였고 리베리가 발롱도르를 받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