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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바이에른 뮌헨

ECA(European Club Association, 유럽 클럽 협회) 창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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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나모 자그레브
(Dinamo Zagr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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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
(Real Madr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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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저스
(Rang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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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옹
(L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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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유
(Man U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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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Mi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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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Barcel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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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에른
(Bay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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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르키르카라
(Birkirk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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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약스
(Aj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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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더레흐트
(Anderlec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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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피아코스
(Olympiac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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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벤투스
(Juven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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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Chel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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쾨벤하운
(Københa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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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
(Porto)

2014-15 독일 1.분데스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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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트문트
(Dortm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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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버쿠젠
(Leverku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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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츠
(Mai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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묀헨글라트바흐
(Mönchengladb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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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에른
(Bay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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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스부르크
(Wolfsb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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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멘
(Bre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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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케 04
(Schalke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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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투트가르트
(Stuttg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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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크스부르크
(Augsb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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쾰른
(Köl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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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더보른
(Paderb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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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부르크
(Freib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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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프랑크푸르트
(E. Frankfu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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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버
(Hann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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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르크
(Hamb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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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타 BSC
(Hertha B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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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펜하임
(Hoffenheim)

2014-15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 E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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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에른
(Bay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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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시티
(Man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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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KA 모스크바
(CSKA Mosc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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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Roma)

2014-15 UEFA 챔피언스 리그 8강 매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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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
(Por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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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에른
(Bayern)

F.C. 바이에른 뮌헨 엠블럼[1][2]
F.C. 바이에른 뮌헨
F.C. Bayern München
정식명칭 Fußball-Club Bayern München e. V.
(축구 클럽 바이에른 뮌헨)[3]
창단 1900년 2월 27일
소속리그 독일 1 분데스리가
연고지 독일 바이에른뮌헨 (München)
홈구장 알리안츠 아레나
(Allianz Arena, 71,137명(국제 대회 67,812명))
애칭 Der FCB(에프체베), Die Bayern(바이에른인),
Die Roten(빨강), FC Hollywood (FC 할리우드),
Rekordmeister(기록 챔피언)[4]
슬로건 Mia San Mia[5]
공식 웹 사이트 http://www.fcbayern.de
라이벌 구단 1.FC 뉘른베르크(1.FC Nürnberg) - 바이에른 더비[6]
보루시아 도르트문트(Borussia Dortmund) - 데어 클라시커 더비[7]
VfB 슈투트가르트(VfB Stuttgart) - 남독일 더비
레알 마드리드 C.F.(Real Madrid C.F.) - 유러피언 클래식
TSV 1860 뮌헨(TSV 1860 München) - 뮌흐너 더비
회장 카를 호프너 (Karl Hopfner)[8]
부회장 헤르베르트 하이너 (Herbert Hainer)[9]
명예회장 프란츠 베켄바워 (Franz Beckenbauer)
사장 카를 하인츠 루메니게 (Karl Heinz Rummenigge)
단장 마티아스 잠머 (Matthias Sammer)
감독 조제프 과르디올라 (Josep Guardiola)
주장 필립 람 (Philipp Lahm)
부주장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Bastian Schweinsteiger)
제3주장 마누엘 노이어 (Manuel Neuer)
팀닥터 한스-빌헬름 뮐러-볼파르트 (Hans-Wilhelm Müller-Wohlfahrt)
수석 스카우터 파울 브라이트너 (Paul Breitner)
분데스리가
(24회/최다우승)
(★★★★ )
1932, 1968-69, 1971-72, 1972-73, 1973-74, 1979-80, 1980-81, 1984-85,
1985-86, 1986-87, 1988-89, 1989-90, 1993-94, 1996-97, 1998-99, 1999-2000,
2000-01, 2002-03, 2004-05, 2005-06, 2007-08, 2009-10, 2012-13, 2013-14
DFB-포칼
(17회, 최다)
1957, 1966, 1967, 1969, 1971, 1982, 1984, 1986, 1998, 2000,
2003, 2005, 2006, 2008, 2010, 2013, 2014
리그컵
(6회, 최다)
1997, 1998, 1999, 2000, 2004, 2007
DFL-슈퍼컵
(4회)
1982(비공식), 1987, 1990, 2010, 2012
인터컨티넨탈컵
(2회)
1976, 2001
UEFA 챔피언스 리그
(5회)
1974, 1975, 1976, 2001, 2013
UEFA 컵위너스컵
(1회)
1967
UEFA 컵
(1회)
1996
UEFA 슈퍼컵
(1회)
2013
FIFA 클럽 월드컵
(1회)
2013
최고 이적료 영입 하비 마르티네스 (Javi Martinez)
(2012년, From 아틀레틱 빌바오, 4000만 유로)[10]
최고 이적료 방출 토니 크로스(Toni Kroos)
(2014년, To 레알 마드리드, 3000만 유로)
최다 출장 제프 마이어 (Sepp Maier) - 536경기(1962~1979)
최다 득점 게르트 뮐러 (Gerd Müller) - 398골(1964~1979)
영구결번 12[11]


‘DAS REKORDJAHR 2013’[12]


세계 최강의 명문 구단 중 하나

분데스리가의 제왕

세계 최강의 전력뿐만 아니라 경영, 재정 등 구단 운영의 모든 면이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클럽

아약스와 더불어 UEFA 주관 3대 메이저급 대회[13] 우승, 트레블, 유러피언컵 3연패를 달성한[14][15] 유일한 클럽

전 세계를 호령하는 독일 축구의 자존심이자 전차 군단을 움직이게 하는 거대한 엔진


FC Bayern München XI[16]
FW
지오반니 에우베르
FW
칼 하인츠 루메니게
FW
게르트 뮐러
MF
로타어 마테우스
MF
슈테판 에펜베르크
MF
메멧 숄
DF
파울 브라이트너
DF
프란츠 베켄바워
DF
한스-게오르크 슈바르첸벡
DF
클라우스 아우겐탈러
GK
제프 마이어

FC 바이에른 뮌헨 명예의 전당
Der 'Kaiser' (황제)
프란츠 베켄바워
Der 'Bomber der Nation' (폭격기)
게르트 뮐러
Die 'Katze von Anzing' (안칭의 고양이)
제프 마이어
Der 'Macher' (창조자)
울리 회네스
'''Der 'Visionär' (공상가)
칼 하인츠 루메니게
Der 'Leitwolf' (늑대사령관)
로타어 마테우스
Der 'Chef' (지배자)
슈테판 에펜베르크
Der 'Samba-Stürmer' (삼바공격수)
지오반니 에우베르
Der 'Beständige' (꾸준함)
롤란트 볼파르트
Der 'Libero' (리베로)
클라우스 아우겐탈러
Der 'Mr. Europacup' (Mr. 유로파컵)
디터 회네스
Der 'Stratege' (전략가)
파울 브라이트너
Der 'Kaisers Bodygaurd' (황제의 기사)
한스-게오르크 슈바르첸벡
Der 'Titelsammler' (타이틀수집가)
비셴테 리사라수
Der 'Rekordmeister' (기록챔피언)
메멧 숄
Der 'Titan' (거인)
올리버 칸

Contents

1. 개요
2. 특징
2.1. 선수단 정책
2.2. 분데스리가 내의 선수 영입
2.3. 라이벌
2.4. 바이에른 뮌헨 스쿼드 = 독일국대 스쿼드(?)
2.5. 조직과 재정
2.5.1. 지역 기반 기업과의 스폰서쉽
2.5.2. 자선단체
3. 역사
3.1. 클럽의 창단과 시련
3.2. 첫 우승과 황금기
3.2.1. 뮌헨 올림피아 슈타디온으로
3.3. 침체기와 FC 브라이트니게(FC Breitnigge)
3.4. FC 할리우드(FC Hollywood) 시절
3.5. 다시 찾아온 황금기, 팀 히츠펠트(Ottmar Hitzfeld)
3.6. 펠릭스 마가트의 집권과 역사스만 시대
3.7. 루이스 반 할 시대 (Louis Van Gaal)
3.7.1. 2009-2010 시즌
3.7.2. 2010-2011 시즌
3.7.2.1. 극과 극으로 갈리는 평가
3.8.하인케스 (Jupp Heynckes)
3.8.1. 2011-2012 시즌
3.8.2. 2012-2013 시즌
3.9.과르디올라 (Pep Guardiola)
3.9.1. 2013-2014 시즌
3.9.2. 2014-2015 시즌
4. 스쿼드
5. 클럽 라이벌
6. 클럽 관련 인물
7. 클럽 역대 주장
8. 역대 성적(00~01시즌 이후)

1. 개요

독일의 명문 축구 구단. 구단 이름인 FC 바이에른 뮌헨은 지역 이름(바이에른뮌헨)을 그대로 따온 것#으로 보통 바이에른이라 부른다.[17] 원어발음은 '바이언 뮌셴' 또는 '바이언 뮨셴'에 가깝다. 독일어의 'r'발음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ㄹ'보다 '어'에 가깝게 발음한다. 'ch' 발음 역시 '히'와 '쉬' 중간 발음인데, 뮌헨 지방에는 '쉬'에 가깝다.

UEFA 챔피언스 리그 5회 우승, 분데스리가 우승 23회, 16번의 DFB-포칼 우승, 거기에 95-96 UEFA 컵 제패와 두 번의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클럽월드컵 우승 등...화려한 역사를 자랑하는 바이에른 뮌헨은 자타가 공인하는 독일을 대표하는 최고 명문 클럽이다. 또한 11만여명의 멤버쉽 회원들을 보유, 바르셀로나에 이어 유럽 최대 규모의 멤버쉽 멤버들을 자랑한다. 화려한 우승경력, 수많은 레전드, 고고한 전통, 안정적인 유스 시스템, 최근의 기세 등등...독일 최강은 물론이요 유럽 최고의 클럽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Die Roten'이라는 별명에서 나타나듯 상징색은 붉은색이며, Rot und weiß(레드 & 화이트)로 대표되는 이 팀 고유컬러는 100년이 넘게 이어져 왔다.
2010년대부터는 트레블우승에 2013년 한 해 5관왕, 독일 내 온갖 기록들을 갈아치우며 그 어느때보다도 강력한 팀의 세 번째 전성기를 보내고있으며, 전설적인 70년대 레전드들이 일구었던 불의 시대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2. 특징

2.1. 선수단 정책

소위 빅 클럽 중에선 FC 바르셀로나와 함께 자국유스 활용도가 가장 높은 클럽으로 바이에른 유스 출신 선수들은 숨가쁜 영입러쉬 속에서도 꾸준히 중용되고 있다. 09-10시즌엔 정작 큰맘먹고 30M의 거액의 이적료를 들여 영입한 마리오 고메즈는 후반기들어 뮐러에 밀려 벤치 신세를 져야 했다. 반 할이 고메즈를 싫어한다
현재 스쿼드에서도 주전급인 유스출신만 해도 주장 필립 람, 부주장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를 비롯해 토마스 뮐러, 토니 크로스, 홀거 바트슈투버, 다비드 알라바등이 있다. 이정도면 FC 바르셀로나 부럽지 않은 유스 발굴능력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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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G image (Unknown)]

이것이 바이에른 유스의 위엄 오오 저 꼬맹이들이 이렇게 괴물처럼 클지 누가 알았을꼬...

바이에른의 유스아카데미는 선수들에게 단 하나의 포지션만을 가르친다. 유스 선수들의 경우 포지션 변환이 빈번하고 그때문에 자리를 못잡든 여타 어린 선수들을 보면 이쪽이 확실히 좋은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추후 팀의 필요에 따라 변형적으로 기용해서 선수의 적응도에 따라 포지션을 변환하는것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성공사례가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윙어->중앙미드필더), 필립 람(풀백->수비형미드필더), 다비드 알라바(중앙미드필더->왼쪽풀백).

물론 언제나 좋았던것만은 아니다 대표적인 예로 08-09, 10-11시즌 막장의 주역들 렌징.. 렐.. 오틀.. 크라프트...

또한 싹쓸이 팀으로서의 이미지가 매우 강한데 이런 이미지와는 조금 상반되게 싸게 사온 선수를 터무니없이 높은 값에 팔아치우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모 팀은 넘어가자[18] 루카스 포돌스키의 경우에도 천만 유로에 FC 쾰른에서 사온 선수를 다시 되팔면서 고스란히 사온 가격에 팔았을 정도. 오언 하그리브스의 경우에는 이 팀 유스 출신을 키워서 비싸게 판 것이기에 포돌스키 같은 경우와 같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유스팀 출신이라는놈이 그렇게 깽판을 치고 떠났으니.. 바이에른이 욕먹을 입장은 아니다. 그리고 단테아르연 로번, 루이즈 구스타보등의 꿀영입을 통해 전력강화도 제법 잘한다.

2.2. 분데스리가 내의 선수 영입

바이에른 뮌헨은 분데스리가 역사에서 역대 우승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 압도적인 강팀이다. 바이에른 뮌헨은 전통적으로 분데스리가 내에서 우수한 선수를 영입하는 정책을 펴왔다. 바이에른 뮌헨 자체 내의 유스 시스템도 잘되어 있기 때문에 유스 출신의 선수도 많지만, 리그 내 다른 팀의 우수한 선수를 영입하는 일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독일 선수들 역시 대부분 제2의 국대라 불리는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는 것이 꿈이다.[19] 바이에른 뮌헨이 사실상의 독일 국대라고 불리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또한 아무리 좋은 선수라 하더라도 독일 선수가 아니면 가급적 뽑지 않고,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더라도 분데스리가 출신을 뽑는 정책을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 때문에 타 리그에서 선수를 영입하는 일이 별로 없었고, 거의 언제나 분데스리가의 다른 팀의 우수한 선수를 영입해 왔다. 이러한 정책은 독일 국대와도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유럽의 다른 국대들이 식민지 출신의 흑인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선발한 것과 달리 독일 국대는 2000년대 후반까지 오랫동안 독일 순혈을 유지해왔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바이에른 뮌헨의 이러한 정책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러나 여전히 독일 출신의 영입 비중이 높다. 외국인 선수들을 영입하더라도 타리그보다 분데스리가 출신들을 선호하는 것도 여전하다.

바이에른 뮌헨이 자국 출신의 선수들을 선호하는 것 처럼 분데스리가 선수들도 타리그의 명문 팀에서 뛰는 것보다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바이에른 뮌헨이 아닌 타리그의 명문팀에서 뛰는 것에 대해 배타적인 분위기마저 존재했다. 현 대한민국 국가대표 감독인 슈틸리케는 묀헨글라트바흐[20]에서 활약한 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서 오랫동안 활약했는데, 이 때문에 모국에서는 탈영병 취급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바이에른 뮌헨에서 인테르 밀란으로 이적해서 활동했던 마테우스는 독일 선수들이 너무 분데스리가 내에서만 뛰려 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타 리그에서도 활동하는 것이 독일 축구 발전을 위해서 도움이 된다는 견해를 피력할 정도였다[21]. 미하엘 발락의 이적도 독일 축구의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 준다. 발락이 레버쿠젠에서 성장한 후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할 때는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발락이 뮌헨에서 첼시로 이적할 때는 졸부구단 첼시의 돈의 유혹 앞에 바이에른 뮌헨 선수로써의 명예를 포기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국내의 축구팬들에게 바이에른 뮌헨의 이러한 선수 영입 정책은 다소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있기도 하다. 국내 해축에서 먼저 인기를 끌었던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경우 분데리가에 비해 다양한 팀이 우승권에 포진해 있는데, 잉글랜드에서는 해묵은 라이벌 구단 간에는 선수를 교환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리버풀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이 그러한 경우다. 때문에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예를 들면서 바이에른 뮌헨의 선수 영입을 매우 비판적으로 보는 축구팬들이 있다. 그러나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와 분데스리가의 선수 영입 정책과 문화의 차이가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빅5라고 불리는 잉글랜드의 강팀들은 어느 팀이나 우승을 노릴 수 있는 강팀들이며 전력이 엇비슷한 강팀들이다. 이러한 강팀들 간에 선수 이적 있을 경우 사실상 두 배의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가급적 강팀들 간에는 선수를 파는 것을 꺼리는 것은 나름 합리적인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강팀 간에도 타팀의 선수를 영입하려는 시도는 적지 않았으며, 최근에도 토레스, 판 페르시, 마타, 웰벡 등 다른 빅클럽의 선수를 영입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반면에 분데스리가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와는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언제나 바이에른 뮌헨이 독주하는 상황에서 다른 한 두 팀이 그때그때 바이에른 뮌헨에 도전하는 형국을 보여왔기 때문에 리그 내에서 장기적인 바이에른 뮌헨의 라이벌은 없다. 대부분의 분데스리가 선수들이 제2의 국대로 불리는 바이에른 뮌헨으로의 이적을 원하고 명예롭게 생각한다는 점은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와는 분명한 문화적 차이점이다. 또한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강팀들이 주로 중하위권 팀에서 선수들을 영입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분데스리가의 원탑 강팀인 바이에른 뮌헨이 리그 내의 다른 팀에서 선수들을 영입하는 것을 비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러한 영입 정책 때문에 바이에른 뮌헨의 역대 레전드들을 보면 독일 내 다른 팀 출신들이 적지 않은데, 특히 오랜 라이벌인 팀인 묀헨글라트바흐 출신인 로타어 마테우스, 슈테판 에펜베르크 등이 대표적이다.

레버쿠젠의 3연준 미하엘 발락, 제 호베르투, 루시우,[22] 베르더의 미로슬라프 클로제, 베르더과 함부르크에서 본좌놀이 했던 대형 센터백 발레리 이스마엘과 다니엘 반 바이텐, 최근에는 독일축구의 신성으로 떠오르고 있는 마리오 고메즈까지. 과거에는 도르트문트가 그나마 돈 많은 구단주의 돈지X로 견제했지만 도르트문트가 안습된 이후에는 뭐. 발락이 떠나고 잠시동안 슈투트가르트, 살케04, 베르더등이 떠오르면서 리그 우승도 뺐겼지만 다음 시즌에 엄청난 돈지X로 루카 토니, 클로제, 프랑크 리베리등을 보강해서 쓸어버렸다.

2012-2013 시즌에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마리오 괴체를 영입하여 화제를 모았다. 4월 초까지만 해도 그냥 루머 수준으로 게시판에서 키배를 벌이는 게 적절할 정도로 신빙성이 없어보였으나...4월 23일 부로 각종 찌라시부터 빌트지까지 공신력 높은 신문에서 기사를 속속들이 띄워보내더니 결국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공홈에서 괴체의 바이에른 이적을 직접 인증하면서 확정되었다. 분데스리가의 떠오르는 강팀인 도르트문트는 바이에른 뮌헨에 대해 나름의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는 팀이었고, 괴체는 그 팀의 유스 시절부터 쭉 함께해온 선수였다. 그런데 그런 선수가 분데스리가 내 최고의 안티팬을 보유하고 도르트문트 팬들이 넌더리를 내는 바이에른으로 이적하게 되었으니 당연히 팬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23] 특히 당시는 바이에른이 사장 울리 회네스의 장기간에 걸친 탈세가 적발돼서 구단 내외적으로 시끄럽던 상황이었고[24] 도르트문트는 챔피언스 리그 4강 1차전을 앞두고 있던 상황에 팀의 핵심이자 팀의 미래인 괴체의 이적이 바이에른 구단측에서 흘러나온것에 더욱 더 분노했다.

그런가하면 13-14 겨울이적시장이 진행중이던 1월 5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활약하던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와의 계약을 정식으로 발표했다. 시즌을 전부 소화한후 여름에 합류할 예정. 현재 여러 기사 댓글과 EPL팬커뮤니티EPL팬들이 왜?에서 이에 따른 분데스리가의 바이에른 독주가 예상된다고 줄기차게 까이는 중. 사실 큰 필요가 없어 보이는 괴체에 이어 레반도프스키마저도 영입한 것은 뒷공작이 없는 정당한 영입이라 해도 말들이 무성하기 마련이다. 전적도 화려했기에 어찌 봐도 라이벌 밟기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25]

그러더니 기어이 "The former Germany international feels it is almost Bayern’s patriotic duty to sign Reus rather than to see him leave to a top club abroad.(루메니게는 로이스를 해외 탑 클럽으로 보내는 것 보단 차라리 바이언이 잡는 것이 클럽의 애국적인 의무에 가깝다고 생각한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애국적 의무라는 주장은 심했다. (그런데 여기서 애국적 의무 발언은 루머라고 한다.) 한국에서의 여론 약화에 레반도프스키 영입에도 반신반의하던 국내 바이언 팬들은 슬슬 해탈하여 '이왕 버린 이미지 끝까지 가자'면서 로이스 영입을 오히려 기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26]

주로 도르트문트, 슈투트가르트, 함부르크, 샬케04, 베르더 브레멘과 같이 바이에른 뮌헨의 우승에 제동을 걸 수 있는 팀[27] 출신 선수나 감독들이 반 바이에른 뮌헨파에 속하는 경우가 많은데,특이하게도 위르겐 클린스만이나 토르스텐 프링스,오토 레하겔은 이런 예에 속하면서도 바이에른 뮌헨에 몸 담은 적이 있었다.바이에른 뮌헨에 있었던 적이 있지만 이들이 바이에른 뮌헨과 결별했을때는 좋지 못한 결말을 맞았기 때문에[28] 더더욱 반 바이에른 뮌헨파가 되었다.

한편 선수 방출도 상당히 냉정한 편이다. 빅클럽들이 선수를 방출하는게 냉정하긴하지만, 위의 렌징의 예도 그렇고 바이에른은 특히 냉랭한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소위 리베리, 클로제, 루카 토니를 한꺼번에 사온 분노의 영입을 벌일때도 충성해오던 선수들을 대거 방출하였다. 클라우디오 피사로, 로이 마카이, 산 살리하미지치, 케 산타크루스 등을 냉정히 쫓아내었다.[29] 물론 저때 들어온 루카 토니도 지금은 없다.(...) 그래도 메멧 숄이나 올리버 칸, 센테 리사라수 등 바이에른에서 은퇴한 선수들도 나름대로 많은 편. 13/14 시즌이 끝난 후에는 마리오 만주키치가 감독 펩 과르디올라와의 불화설 끝에 AT 마드리드로 이적한 바가 있다.

로타어 마테우스의 경우, 전성기를 이 팀에서 보냈고, 베스트 11에는 언재나 들어가는 사실상 레전드격인데도 반 바이에른 뮌헨파이다.(...)[30] 마테우스의 경우 올타임 레전드로 들어가기도 하나, 문제는 은퇴 후 바이에른 보드진과 사이가 완전히 틀어졌다. 회장 회네스가 '마테우스는 이제 바이언(바이에른 뮌헨의 바른 명칭)의 잔디관리사도 아닙니다.'라고 인터뷰했을 정도. 마테우스는 은퇴 이후 여러 번 구설수에 휘말렸기 때문에 그의 반 바이에른 성향도 그다지 이슈가 되지는 않았다. 마테우스는 이후에 여러군데 감독을 맡았는데 다 말아먹었다(...).

어쨌든 바이에른 뮌헨은 전국구 인기구단이다. 독일 축구선수들의 꿈은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는 것이라고 될 정도로 말이다. 2006년 SBS의 다큐멘터리에서는 뒤스부르크 출신의 바이에른 뮌헨 팬을 보여주기도 했다. 뒤스부르크에도 축구팀이 있음에도.[31] 물론 뒤스부르크 팀 실력이 현시창이니깐[32] 한마디로 분데스리가의 뉴욕 양키즈.

2.3. 라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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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맞붙은 양 팀.

전통적으로 분데스리가의 판도는 절대강자 바이에른과, 그에 대항하여 5~10년 주기로 라이벌팀이 등장해 시대를 양분하는 양상이었다. 최근에 분데스리가의 신흥 강호 도르트문트가 바이에른 뮌헨의 라이벌로 평가받지만 바이에른의 전통적인 라이벌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함부르크 SV을 꼽을 수 있다.

70년대의 라이벌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였다. 묀헨글라트바흐는 바이에른 뮌헨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위협적인 라이벌이었다. 70년대 바이에른 뮌헨은 71-72, 72-73, 73-74 세 시즌 연속으로 분데스리가 정상에 올랐으며, 이 여세를 몰아 74년부터 76년까지 3년 연속으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이 시절 바이에른을 위협했던 묀헨글라트바흐는 69-70, 70-71, 74-75, 75-76, 76-77 시즌에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하면서 리그에서 바이에른 뮌헨보다 많은 우승을 차지했다.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에 이르는 시기에는 함부르크 SV가 득세했다. 90년대 중반에는 도르트문트가 부상하여 2년 연속 분데스리가 정상을 차지하고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차지했으나 지나치게 전략을 짜낸 후유증으로 곧 추락했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는 SV 베르더 브레멘, 2000년대 후반에는 샬케 04, 그리고 2010년대에는 다시 도르트문트가 화려하게 부활함에 따라 더비전 양상으로 흘러갔다. 특히 2013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바이에른과 도르트문트가 맞붙게 되자, 엘 클라시코에 해당하는 독일어를 찾던 해외 언론들이 데어 클라시커라는 말을 앞다투어 사용하면서 크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널리 알려진 더비전으로는 우승순위 1, 2위를 차지하며[33] 같은 바이에른 주에 연고하는 1.FC 뉘른베르크와의 바이에른 더비[34], 바로 옆동네에 있는 VfB 슈투트가르트와의 쥐트도이치 더비(남독일 더비), 지금은 2부리가를 전전해서 잊혀졌지만 같은 뮌헨을 연고로하는 독일 최초의 클럽 1860뮌헨과의 뮌헨더비등이 있다. 특히 뮌헨더비는 7~80년대까지만 해도 1860뮌헨이 바이에른 위상 못지 않은 명문팀이었기에 치열했던 더비전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많은 관심을 받는 더비는 도르트문트와의 데어 클라시커(Der Klassiker) 더비. 데어 클라시커라는 용어는 비교적 근래인 2012년, 그나마도 독일 밖의 언론에서 만든 것으로 엘 클라시코를 독일어로 번역한 것에 불과하지만 양 팀간 라이벌리는 용어의 탄생보다 훨씬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90년대 초/중반부터 이미 치열한 더비전이 이어졌다. 매 경기 벤치 클리어링 직전까지 가는건 기본이었는데, 한성깔하는 슈테판 에펜베르크, 올리버 칸, 옌스 레만, 얀 콜러등이 양팀 주전이었으니 놀랄일도 아니다. 뮌헨과 도르트문트의 역대 전적은 뮌헨이 압도적인 우세지만, 90년대 중반부터는 거의 55:45로 대등하다. 양팀은 각각 96-97, 2000-01 한번씩 챔스 우승을 기록하는등 유럽대항전에서도 기세가 절대 밀리지 않았다.

양팀의 라이벌의식은 역사적/문화적인 온갖 이유들이 복합된 결과인데, 자세한건 데어 클라시커 항목을 참조하기 바란다. 양팀의 매치가 있는 날이면 경찰들이 중무장하고 출동할 정도로 분위기가 매우 살벌해진다. 말 그대로 그 시즌의 독일축구의 패권을 놓고 다투는 라이벌 매치로써, 도르트문트가 잠시 몰락의 길을 걸은 2000년대 중반에조차도 박빙의 경기를 양산해냈다.

특히 이 더비전이 다시 세간에 알려진건 두 팀이 12-13시즌이었다. 이 시즌 양팀은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엘 클라시코의 양 팀 레알 마드리드FC 바르셀로나를 각각 격파하고 결승에서 맞붙는 등 많은 명경기와 이야기거리를 만들어냈다.

2.4. 바이에른 뮌헨 스쿼드 = 독일국대 스쿼드(?)

특히 유로나 월드컵 직전 시즌에 주로 생기는 떡밥. 바이에른에서 주축을 담당하는 독일국적 선수들은 모두 독일 국대에서도 활약하는 현상. 회네스 구단주의 속내일수도 있겠지만 분데스리가의 선수들이 꿈꾸는 최종목표가 대부분 바이에른 뮌헨 입단인 것에서 파생되는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60년대 후반에 바이에른 뮌헨이 분데스리가의 강팀으로 자리잡으면서 시작되었고, 유로 1972와 74년 서독월드컵에서 우승하면서 확고해졌다. 74년 우승당시 서독 국대 스쿼드는 주장 베켄바워를 비롯해 수문장 제프 마이어, 게르트 뮐러, 울리 회네스, 폴 브라이트너, 한스-게오르그 슈바르첸벡,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등 무려 7명의 주전이 바이에른 뮌헨 소속이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해외파들이 등장하면서 잠재워지나 했더니 최근 들어와서 이 조짐이 부활했는데, 특히 유로 2012직전 시즌이었던 11-12시즌 당시 공격진부터 마리오 고메스-토마스 뮐러-토니 크로스에 중원의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거기에 수비진 필립 람-제롬 보아텡-홀거 바트슈투버가 그대로 국대 스쿼드였으며, 여기에 수문장 마누엘 노이어까지 있었다. 대체 뭐가 다른거여 게다가 독일의 주장, 부주장은 람과 슈바인슈타이거인데, 바이에른의 주장과 부주장 역시 람과 슈바인슈타이거다.
현재는 그나마 도르트문트의 부활과 아스날에서의 독일 커넥션의 형성으로 인해 바이에른 뮌헨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 아스날 FC로 굳어지고있다.

13/14 시즌을 앞두고 마리오 고메즈가 떠났지만, 대신 마리오 괴체가 대신 들어왔다. 그 마리오가 그 마리오가 아니라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샬케, 도르트문트 등 여타 분데스리가 클럽들과 해외파 선수들이 증가함에 따라 이 현상도 줄어드나 싶더니 대회 직전 마르코 로이스의 부상, 허리부상으로 일찌감찌 시즌아웃된 일카이 귄도간, 그리고 역시 부상으로 벤더 형제마저 못나오자 다시 독일국대는 바이에른 천국이 되어버렸다. 주전라인업중 마누엘 노이어, 제롬 보아텡, 필립 람,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토니 크로스, 토마스 뮐러, 마리오 괴체 무려 7명이 바이에른 선수로 채워졌다.

2.5. 조직과 재정

바이에른 축구 클럽은 자회사인 FC 바이에른 뮌헨 AG에 의해 운영되는데, 이 회사는 주식시장에는 등록되있지 않지만 사적인 회사이다. 회사 주식의 대부분은 모구단인 FC 바이에른 뮌헨 e.V(우리가 흔히 말하는 축구클럽 바이에른 뮌헨)이 보유하고 있고[35], 그 외 스폰서십을 맺은 아디다스가 9.4%, 아우디가 6.5% 등을 소유하고 있다.[36]

클럽의 보드진은 대부분 팀의 레전드 출신이며, 그 외에는 바이에른과 파트너십 관계에 있는 대기업들의 CEO가 맡고 있다.(헤르베르트 하이너 아디다스CEO 역시 바이에른 보드진 중 한명이다.) 클럽 회장은 2009년부터 울리 회네스가 역임하고 있으며, 그는 부상으로 이른 은퇴를 해야했지만 1979년부터 클럽 디렉터로 반평생을 바이에른에서 일하며 재정적인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 외 칼 하인츠 루메니게는 바이에른 뮌헨 AG의 사장이며, 프란츠 베켄바워는 1994년부터 2009년까지 바이에른의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바이에른의 명예 회장이다. 스포츠 디렉터는 마티아스 잠머가 맡고 있다.

2007-08 시즌의 매출은 2.1M유로의 세금을 제외하면 328.4M을 기록하였고, 2008-09 세금을 제하고 303.8M 유로의 매출을 기록했다. 델로이트의 풋볼 머니 리그에 의하면, 바이에른 뮌헨은 2009년에 €289.5M의 매출을 기록한 4번째 부자 클럽이라고 발표되었다. 또한 유럽 매출 Top10 구단가운데 가장 부채액수가 적으며, 동시에 가장 재정 안정도가 높다. 2012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출전에 따라, 클럽의 브랜드 가치는 $786M으로 상승하였고, 이는 전년도 대비 59% 상승한 수치이다. 이에 따라, 브랜드 가치는 레알 마드리드의 $600M 가치를 넘어섰고, $853M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뒤를 이어 이 부문에서 2위를 기록하였다. 2013년은 트레블에 한 해 5관왕의 업적을 이루는 등 우주 최강의 위엄을 뿜어낸 덕택에 832M로 브랜드가치 1위를 탈환했고, 2014년에도 챔스우승팀 레알 마드리드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1위자리를 유지했다. 어쨋건 대부분의 거대 클럽들이 적자인 마당에 2년 연속 흑자를 기록중인데다, 올 시즌 구단의 머천다이징 수입은 지난시즌의 두 배에 달하는 1억 유로를 내다볼 정도로 마케팅능력도 탁월하다.

여담으로 타 유럽 구단들은 국제적 마케팅에 중점을 둔 가운데, 바이에른은 국내 마케팅에 무게를 두고 있다. 독일 축구팬들은 바이에른 팬과 바이에른 반대파로 갈릴 정도로 전국구 인기 구단이다. 물론 2010년대로 넘어올수록 여타 유럽지역과 중동/아시아쪽의 마케팅에도 신경쓰는 모습.

2.5.1. 지역 기반 기업과의 스폰서쉽

대부분의 분데스리가 클럽들이 그러하듯 바이에른 역시 뮌헨 지역을 연고로한 많은 거대기업들의 빠방한 스폰서쉽을 듬뿍 협찬받고있다. 이 부분이 바이에른이 압도적으로 우월한 지점인데 유럽 최고 부국에서 알짜배기 땅을 거의 통짜로 먹고 있는 수준. epl만 봐도 좁아터진 런던에 수많은 클럽이 우글거리고 스페인도 영국보다는 나은 형편. 그리고 독일 내에서 제법 살 만한 다른 지역들은 전통 있는 클럽들이 산재해 있는데 뮌헨은 뮌헨을 넘어서 바이에른을 통째로 집어삼킨 꼴.

홈구장 알리안츠 아레나는 4200억원에 달하는 경기장 건설비의 24%를 뮌헨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보험사 알리안츠가 지원하는 댓가로 경기장 명명권을 얻은 것이고, 최근에는 110M 유로를 지불하고 바이에른의 지분 8.33%를 인수하는 동시에 경기장 명명권 계약을 5년 연장해 2041년까지 명명권을 가지게 된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110M이라는 계약금을 손에 넣은 바이에른은 공사비 부채 잔액을 탕감하고, 남은 금액은 유소년 클럽 시설에 집중투자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밖에 뮌헨 근교의 잉골슈타트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자동차기업 아우디와도 스폰서쉽이 체결되어있고, 2009년 90M의 주식을 매입해 6.5%의 지분을 보유하고있다. 이 계약은 바이에른의 알리안츠 아레나 임대료를 지불하는 기간을 예상보다 훨씬 단축시켰다. 그리고 같은 해(2009년)부터 매년 프리시즌 막바지에 유럽-남미의 강호 클럽들을 초청해 아우디컵을 개최하고있다.

메인 유니폼 제작사는 당연히 아디다스사가 맡고 있고[37], 이미 40년 가까이 협력관계인 아디다스는 2002년에 77M의 주식을 사들여 9.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바이에른 구단 외 기업이 맡은 가장 많은 지분이다. 2020년까지 유니폼 제작사 스폰서쉽 계약이 되어있는데, 물론 당연히 연장될 계획이라고 한다.

현 바이에른 유니폼의 주 광고 파트너이자 메인 스폰서는 독일 자국내 최대의 통신기업 도이체 텔레콤이고(유니폼에있는 .T.. 그 회사 맞다.), 또한 뮌헨에 본사를 둔, 300년 넘는 전통을 가진 맥주회사 파울라너와도 오랜 스폰서쉽 계약을 맺은 관계다. 그래서 바이에른이 우승 세레머니를 할때는 항상 들이붓고 마시는 맥주는 파울라너다. 그밖에 옥토버페스트나 각종 행사에 쓰이는 맥주, 음료를 후원하고있고, 매년 파울라너컵을 개최해 바이에른과 지역민들이 가까워지는 계기를 마련한다.[38]

그밖의 프리미엄 파트너쉽 계약을 맺은 기업에는 코카콜라, 삼성(경기장 내부 모니터, 스크린, TV등은 예상외로 대부분 삼성것이다), 루프트한자(항공편 스폰서쉽. 루프트한자 CF에 바이에른 선수들이 자주 등장한다)등이 있다.

2.5.2. 자선단체

바이에른은 이미 자선단체를 운영해 어려움에 빠진 클럽이나 개인을 도와온걸로 유명한데, 2004년 인도양 지진 해일이 일어난 직후 FC 바이에른 - 힐페 e. V. (FC Bayern – Hilfe e.V.)가 조직되어 자선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하였다.

이 활동으로 클럽의 선수들은 €600,000의 기부금액을 모았다. 모인 기부금은 스리랑카의 마라텐케니에 학교를 짓는데 쓰였으며, 스리랑카의 트린코말리 지역의 재건을 위해서도 쓰였다. 2007년 4월, 이 기부단체는 지역의 불행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으로 목적을 변경하였다.

뮌헨은 재정난에 닥친 축구 클럽을 도우는데에도 힘썼다. 그 사례로 지역 라이벌 TSV 1860 뮌헨은 바이에른과 정기적 친선 경기를 가졌고, 1860에게 도움이 되는 이적을 해주며, 재정 지원을 하였다. 그리고 FC 장크트 파울리가 재정난으로 프로리그 라이센스를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바이에른은 장크트 파울리와 친선 경기를 무료로 벌여, 모든 매출액을 FC 장크트 파울리가 가져가도록 하였다. 최근에는 마르크 판 보멀의 친정팀인 네덜란드의 포르튀나 시타르트가 재정난에 처하자 바이에른은 자선경기를 벌였고, 수입금 전액을 지원해주었다. 2013년 2월에는 재정난으로 부도 위기 직전에 놓여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아헨이 해체될 위기에 처하자, 곧바로 친선경기를 기획해 관중 입장료 등 수익금 전액을 아헨의 부채 탕감에 지원하는데 쓰도록 하였다.
또다른 사례로는 1993년 알렉산더 치클러를 디나모 드레스덴으로부터 영입한 데에 있었다. 바이에른 뮌헨은 2.3M의 DM에 치클러를 영입, 재정난에 닥친 드레스덴을 도왔다. 2003년 바이에른은 160만 유로의 대출을 담보 없이, 거의 부도가 난 라이벌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 지원해주었고, 도르트문트는 위기를 넘기는데 성공했고 현재 이 대출금액은 상환되고 있는 상태이다.

3. 역사

3.1. 클럽의 창단과 시련

바이에른 뮌헨은 뮌헨 체육 클럽(MTV 1879) 의 멤버들에 의해 1900년에 창단되었다. MTV 1879의 선수들이 1900년 2월 27일 집회에서, 축구부가 독일축구협회(DFB)에 가맹이 불가능해지자, 11명의 축구부 선수들이 MTV 1879에서 탈퇴하여 같은날 오후에 축구 클럽 바이에른 뮌헨(Fußball-Club Bayern München)을 창단하였다.
이후 바이에른은 지역 라이벌을 상대로 모두 대승을 거두었고, 1900-01 시즌 남독일 챔피언쉽 준결승전에 진출하였다. 이어지는 후년에 바이에른은 남부 지역 여러 리그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1910-11 시즌, 바이에른은 새로 출범한 바이에른 주의 1부 리그 크라이슬리가(Kreisliga)에 편입된다. 바이에른 뮌헨은 첫 해에 크라이슬리가 우승을 거두었지만, 이후 1914년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직전까지 몇년간 무관에 그쳤고, 1차 세계대전으로 독일 전체의 축구 활동이 중지되었다.

이후 바이에른은 1926년, 남독일 챔피언쉽이 출범하기 전까지 몇기의 지역 우승컵을 들어올렸으며, 28년에도 지역리그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린다. 바이에른이 공식 기록상 처음으로 획득한 우승 타이틀은 1932년의 리그 우승으로, 리카르트 "리틀 돔비" 콘(Richard "Little Dombi" Kohn)은 바이에른을 이끌고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와의 당시 독일 챔피언쉽 결승에서 2-0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독일이 나치 휘하의 암흑기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창단 멤버들에 유태인이 여럿 있기에, 1930년대 나치에게 구단 간부들이 강제로 해임당하기도 했다.(그런데 독일 및 여러 유럽 축구단에 유태인들이 연루되던 게 꽤 많다. 이를테면 2007년 분데스리가 우승한 슈투트가르트는 아주 초창기에 유태인 구단이라는 별명을 가졌고, 구단 마크가 다윗의 별이 들어가기도 했으니) 이 조치에 구단은 저항했지만, 히틀러 나치즘은 바이에른을 '유대인 클럽'이라고 조롱하며 분쇄했다. 클럽의 간부진 및 서포터즈의 열혈 회원 중에서 유대인은 속속 빠져나갔다. 다행히 국경을 넘어간 사람도 있지만 수용소로 끌려간 사람도 있었다. 남부리가를 호령했던, 강력했던 바이에른은 그렇게 추락하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바이에른은 남부 오베르리가에 속해있었다. 당시에는 통합된 리그가 없는, 총 5개로 나눠진 각 지방 리그 체제였으며, 남부 오베르리가 또한 독일의 1부 리그였다. 바이에른 뮌헨은, 1945년에서 1963년까지 13명의 감독을 해임하며 암흑기를 보냈다. 1955년에는 2부 리가로 강등되었지만 1시즌만에 복귀했고, DFB-포칼 결승에서 포르투나 뒤셀도르프를 1-0으로 꺾으며 창단 후 첫 우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당시 바이에른은 심한 재정난을 겪었고, 결국 1950년대에는 부도 크리까지 맞는다. 롤란트 엔틀러(Roland Endler)는 재정 지원을 하였고, 4년간 구단의 회장직을 맡았다. 1963년, 독일의 오베르리가는 단일 1부 리그인 푸스발-분데스리가(Fußball-Bundesliga)로 통합되었다. 이때, 출범 멤버로 각 지역의 5개의 오베르리가 팀이 3~4팀씩 포함되는데, 바이에른은 남부 1부 리그 3위로 마쳤지만, 같은 뮌헨을 연고로 한 지역 라이벌인 TSV 1860 뮌헨이 오베르리가 우승을 거두었다. 독일 축구협회는 같은 연고지의 2팀을 1부 리그에 넣는 것을 거부함에 따라, 바이에른 뮌헨은 1963년 분데스리가의 출범 멤버에 들지 못한다. 바이에른 뮌헨은 그로부터 2년 후에 분데스리가로 승격했다.

3.2. 첫 우승과 황금기

그렇게 바이에른은 서독의 통합 리그인 분데스리가의 출범 당시 바이에른 뮌헨은 1부리그 멤버로 초대받지 못했고, 2년 후에, 프란츠 베켄바우어, 게르트 뮐러등을 앞세워 1부리그로 올라온다.[39] 분데스리가로 승격된 첫 시즌, 바이에른 뮌헨은 리그 3위의 호성적을 거뒀고 독일 컵 우승을 가져갔다. 그 다음 시즌에는 컵 위너스 컵 우승을 거두었다. 이후, 즐라트코 차이코프스키 (Zlatko Čajkovski) 감독의 뒤를 이어 감독이 된 브란코 제베치 (Branko Zebec) 감독은 1968-69 시즌, 첫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끌었다.[40]

70년대 초중반에 들어와 분데스리가는 바야흐로 '바이에른 천하' 시대를 맞는다. 우도 라텍 감독이 이끄는 바이에른은 분데스리가 사상 첫 3연패(71-72, 72-73, 73-74 시즌)의 위업을 달성했고 3년 연속 유럽 챔피언스 컵 우승을 차지하며 그 절정을 맞았다. 그러나 유러피언 컵 3연패 과정이 그리 순탄치 많은 않았다. 74-75 시즌 도중인 1월에, 바이에른이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자 구단주는 팀의 중흥을 가져온 우도 라텍(Udo Lattek) 을 짜르고 데트마어 크라머(Dettmar Cramer)[41]를 새로 감독으로 임명하였다. 이 시즌의 리그는 10위로 마무리하였으나 결승전에서 리 브렘너를 중심으로 한 리즈시절의 리즈 유나이티드를 꺾으며 우승하였고, 그 다음 시즌의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을 확보하였다. 그 다음 시즌의 리그 성적은 3위였고, 이 시즌에도 유러피언 컵을 우승하였다. 4강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홀로 세골을 몰아친 게르트 뮐러의 활약으로 합계 3-1로 꺾었고, 햄든파크에서의 결승전에서 AS생테티엔을 '프리킥 스페셜리스트' 프란츠 로트의 결승골로 꺾으며 유럽컵 3연패에 성공한 바이에른은 빅이어를 영구 소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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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FA 챔피언스 리그(당시 유러피언 컵) 3연패를 자축하는 바이에른 선수들. 맨앞의 5번 유니폼 입으신 양반이 프란츠 베켄바워 되시겠다.

3.2.1. 뮌헨 올림피아 슈타디온으로

1972년 5월 26일 개장한 뮌헨 올림피아 슈타디온은 1972 뮌헨 올림픽을 대비해 뮌헨 올림피아 파크 내에 건축된 경기장으로 6만 9천명을 수용할 수 있었으며, 1972-73 시즌 분데스리가부터 2005년 여름 새로운 홈구장 알리안츠 아레나로 옮기기 전까지 33시즌동안 바이에른의 홈구장으로 쓰이며 고락을 함께 했다. 독일의 명건축가 귄터 베니쉬와 프라이 오토에 의해 설계되었는데, 사상 최초로 강철 케이블에 지탱되어 안정된 거대한 아크릴 유리 덮개를 설치한 신선하고 혁신적인 구조에 당시 최첨단 시설등을 갖춘 경기장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러나 한쪽 면은 여백의 미를 추구해서인지 완전히 개방된 형태라 겨울에 경기를 관람하게 매우 추웠고, 관중석 절반 정도는 아예 지붕으로 덮여있지 않아 비, 눈등의 악천후에 그대로 노출되는 등 여러 애로사항이 록달록 꽃피어나기 시작했다. 안습. 또한 종합경기장이다보니 피치와의 거리가 너무 먼 것등이 계속해서 문제가 되어 추후 알리안츠 아레나가 신규 건립되게 되는 원인이 된다.

3.3. 침체기와 FC 브라이트니게(FC Breitnigge)

70년대말 구단은 적자의 늪에 허덕이며 졸전을 거듭하게 되었다. 크라머를 경질한 구단은 헝가리의 로란트 줄러(Lóránt Gyula)를 감독으로 앉혔고, 역시 이는 분위기 반전을 가져오지 못하였다. 76-77 시즌에는 리그를 7위로 마무리하였고, 그 다음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최악의 분데스리가 성적인 12위를 기록하였다. 바이에른 수뇌부는 결국 로란트를 경질, 수석코치였던 체르너이 팔(Csernai Pál)에게 감독직을 맡겼다.

주전 선수들의 이탈도 이어졌다. 팀의 주장이자 상징 프란츠 베켄바워는 1977년 뉴욕 코스모스로 이적했고, 전설의 수문장 제프 마이어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은퇴한데다, 인대부상에 시달려오던 울리 회네스마저 회복에 실패하고 조기 은퇴를 결정한다. 거기다 팀의 득점을 책임지던 '폭격기' 게르트 뮐러마저 포트로더데일로 떠난다.

1980년대에 들어 팀은 재정난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보드진의 다수가 교체됐다. 부상으로 인해 조기에 은퇴할 수밖에 없었던 울리 회네스(Uli Hoeneß)를 구단 보드진으로 불러들였다. 그는 미국식 마케팅을 구단에 도입하며 큰 성공을 일으켰고, 구단은 기사회생에 성공하였다. 그의 마케팅 방식은 여기에 나와있다. 이로써 80년대 국내 리그의 바이에른의 독주가 시작되었고 10년간 7번의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반면 같은 시기에 유럽 무대에서의 성적은 썩 만족스럽진 않았다. 81/82시즌과 86/87시즌 두 번의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올랐으나 둘 다 준우승에 그쳤다. 또한 80년대의 바이에른은 공-수 핵심인 칼 하인츠 루메니게파울 브라이트너[42]에게 의존한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당시의 바이에른은 'FC 브라이트니게(FC Breitnigge)'라고 불릴정도로 둘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2011-12 AC 밀란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치아구 시우바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했던 걸 떠올리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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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이 중원사령관 파울 브라이트너, 우측의 득점왕트로피를 든 양반이 바이에른의 전설의 스트라이커이자 현 바이에른 사장 칼 하인츠 루메니게다.

3.4. FC 할리우드(FC Hollywood) 시절

1987년 부임한 유프 하인케스 체제하의 바이에른은 리가 2연패를 성공하지만 1990년대 들어 노쇠한 주축 선수를 떠나보내며 전력이 약화되었고, 클럽은 위기를 맞았고 1990-91시즌에는 준우승을 차지했으나 1991–92 시즌에는 10위를 기록하며 체면을 구겼다. 이는 강등권과 승점이 겨우 5점차밖에 나지 않는 부진이었다. 칠버풀/팔버풀은 위기도 아니여 이것들아 하인케스는 경질되었고, 1993-94 시즌 UEFA 컵에서는 2라운드에서 노리치 시티 FC에게 홈에서 덜미를 잡히며 조기 탈락의 수모를 당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프란츠 베켄바워가 94년 1월에 임시감독을 맡음에 따라 바이에른은 화려하게 부활하며 다시금 정상의 자리에 오르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 기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베켄바우어 감독대행을 이어 새로 감독이 된 지오반니 트라파토니오토 레하겔 감독은 당시5 벼락부자가 되어 막강한 선수를 쓸어담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대결에서 족족 개발살이 났고, 각각 1시즌씩 무관으로 끝냈다.
95-96 시즌 막판에 팀의 부진을 보다못한 베켄바우어는 또다시 임시감독직을 맡았고, 결승에서 지롱댕 보르도를 꺾고 팀의 UEFA 컵 우승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또다시 감독직이 트라파토니에게 넘어갔다. 그나마 트라파토니는 96-97 시즌에 팀이 3년만에 리그 우승을 이룩하였으나 같은 시즌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는 무려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해버려서(...) 복수하는 느낌이 제대로 들지도 않았다. 다음 시즌에는 승격팀 1.FC 카이저슬라우테른에게 처발리는 등 고전이 이어졌다. 공교롭게도 이 때 카이저슬라우턴 감독은 바이에른에서의 처참한 실패를 경험했던 오토 레하겔(...).

이 시기, 선수들은 형편없는 경기력에 반해 그라운드 밖에서 소란을 자주 피우는 등, 스포츠지보다 촌평지에 등장하며 FC 할리우드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획득하였다. 1998년 3월 10일, 선수들의 태도에 빡친 트라파토니는 분노의 인터뷰를 하였다. 근데 문법이 이상하다.(...) 그리고 시즌이 끝나자 트라파토니 감독은 사임하였다.

3.5. 다시 찾아온 황금기, 팀 히츠펠트(Ottmar Hitzfeld)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바이에른 뮌헨의 지휘봉은 라이벌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최전성기를 이끈 명장 오트마르 히츠펠트 감독이 맡게 된다. 히츠펠트가 부임한 첫해, 바이에른은 분데스리가 정상에 올랐고 DFB-포칼에서도 준우승을 차지했다. 다음해 바이에른은 리그와 독일컵 타이틀을 차지하며 더블을 기록했고 2001년 다시금 리그를 제패, 분데스리가 3연패를 기록했다.

그동안 부진했던 유럽대항전에서도 기세가 엄청났다. 부임 첫 시즌 98/99시즌, 바이에른은 조별리그에서 FC 바르셀로나인터 밀란을 침몰시킨데다 토너먼트에서 레알 마드리드까지 꺾으며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진출하지만, 결승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후에 캄프 누의 비극이라 명명된, 비극적인 패배를 당하며 준우승이 머무른다. 전반 6분만에 마리오 바슬러가 강력한 땅볼프리킥으로 피터 슈마이켈을 무너뜨리며 앞서간데다 경기 내내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줬으나, 후반 91분과 93분 두번의 코너킥 상황에서 디 셰링엄올레 군나르 솔샤르에게 실점해 4번째 빅이어를 눈앞에 두고 종료직전에 믿기지 않는 통한의 역전패를 당했다. 그라운드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는 주장 올리버 칸과 사무엘 쿠포르의 통한의 절규는 바이에른 팬들로선 눈물없이 볼 수 없었던 장면.

그리고 2년 뒤의 00/01 시즌의 바이에른은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바이에른은 '게르만의 혼' 로타어 마테우스가 은퇴했지만 주장인 '미친 호랑이' 슈테판 에펜베르크와 '거인' 올리버 칸을 중심으로 절치부심했다. 뿐만 아니라 비셴테 리사라수지오반니 에우베르의 부상 결장을 고려하더라도 결승전 선발 멤버 중 쿠포르를 제외한, 벤치 멤버 중 알리 다에이와 살리하미지치를 제외한 전원이 독일인으로 채워져 있었던 2년 전과는 달리 윌리 사뇰파울로 세르징요 등 거물 용병을 영입하고 오언 하그리브스등 유망주를 성장시키며 더욱 강해졌다. 바이에른은 조별 예선에서 아스날 FC을 1승 1무로 제압하며 기세를 과시했고, 8강에서 2년 전 통한의 아픔을 안겨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홈/원정에서 모두 털며 4강에 진출했다. 4강에서 만난 레알 마드리드도 홈/원정 모두 승리를 거두며 결승에 진출했다. 산 시로에서 열린 결승전 상대는 작년에도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아깝게 고배를 마신 발렌시아 CF였다. 에펜베르크와 멘디에타가 pk로 한 골씩 기록하며 1:1로 승부차기까지 간 이 접전은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중 유일하게 pk로만 득점이 난 경기로 기록이 되어 있다. 결국 승부차기에서 양팀 모두 7번째 키커까지 나오는 혈투 끝에 PK를 3개나 선방해 낸 올리버 칸의 활약에 힘입어 pk 스코어 5:4로 25년만에 빅이어를 들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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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이어를 들어올리는 슈테판 에펜베르크 성님.
앞줄 좌로부터가 당시 바이에른의 주역들인 올리버 칸 - 사무엘 쿠포르 - 에펜베르크 - 메멧 숄 - 카르스텐 얀커 - 히츠펠트 감독.

그리고 2000-01 분데스리가 우승을 건 마지막 라운드 함부르크 SV원정에서 무승부만 해도 우승이 확정되는 상황에서 후반 초반 헤딩골을 먹히며 그대로 샬케 04에게 허무하게 우승을 넘겨주는가 싶더니, 경기 종료 직전 상대 수비가 패스한것을 키퍼가 바로 잡아버리며 간접프리킥을 얻었고, 이것을 안데르손이 성공시키며 기적적으로 1대1 무승부를 만들어내 3년 연속 분데스리가를 제패하는데 성공했다!!!
바이에른 팬들에게는 드라마틱한 우승이자 두고두고 회자되는 장면이지만, 이미 최종라운드를 승리하고 바이에른이 패배해주기만을 바랐던 샬케 04는 허무하게 구단 최초 분데스리가 우승이 물건너갔고, 단 4분동안 마이스터 자리에 올랐었다는 의미로 '4분 챔피언'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샬케 팬들에게는 잊고싶은 흑역사로 남아있다.
그리고 이 사건을 거의 그대로 재현한 팀이 있으니 바로 11-12시즌의 맨체스터 시티

01/02시즌은 저조한 활약 끝에 우승을 라이벌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 내줬고, 주장 슈테판 에펜베르크와 떡대 피지컬을 자랑했던 스트라이커 르스텐 얀커가 떠났지만 미하엘 발락, 제바스티안 다이슬러, 클라우디오 피사로,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등 뉴페이스들이 대거 등장한 02/03시즌 다시한번 국내 리그/컵 더블을 달성한데다 챔스 4강까지 진출하며 건재함을 알렸다.

그러나 03/04시즌엔 포칼 16강에서 아헨에게 발목을 잡히는 등 부진이 이어졌고, 결국 바이에른은 시즌 종료 후 히츠펠트 감독과 결별을 선언하며 그의 시대도 조용히 끝나고 말았다. 뒷모습이 쓸쓸했지만 몰락해가던 팀을 화려하게 부활시킨데다 다시한번 바이에른을 유럽대항전의 강호로 만든 히츠펠트의 지도력은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었다.

3.6. 펠릭스 마가트의 집권과 역사스만 시대

히츠펠트가 물러난 후 후임 감독은 '마가트 유치원' 스쿼드 구축으로 VfB 슈투트가르트의 리가 준우승을 이끈 펠릭스 마가트. 그는 바이에른 감독 부임 후 04/05, 05/06시즌을 연속해서 더블로 우승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독일 클럽사상 최초의 연속 더블우승이기도 하다.

마가트가 욕먹는 이유는 06/07시즌 워낙 죽을 쒀서 그렇지 처음부터 바이에른을 말아먹은 건 아니었다. 게다가 05-06시즌의 우승은 2011-12 도르트문트가 경신하기 전까진 최다승점 우승이었다.[43] 하지만 독재자 타입의 감독인 데다 선수들에게 혹독한 체력훈련을 감행했고, 워낙에 특이한 규정을 많이 만들어 선수단과 마찰도 많았고, 결과적으로 바이에른의 UEFA 컵행을 이끈 흑역사로 남았다. 실제로 마가트의 별명은 사담 마가트(마가트+사담 후세인), 크벨릭스(Quälix)(이름 Felix와 괴롭히다 라는 뜻을 지닌 quälen의 합성어)였다.

또한 이 시기 유럽대항전에서의 활약은 매우 저조했는데, 이제 막 로만의 돈지랄투자가 시작된 첼시를 만나 합계 6-5로 패한 것도 있고, 당시 바이에른의 천적인 AC 밀란을 지겨울정도로 많이 만나기도 한게 원인이었지만, 어쨌든 바이에른의 위상과 맞지 않게 조기 탈락이 이어졌다. 02/03시즌 4강진출 이후 거의 10년간 8강 이상을 뚫지 못하는 부진이 이어졌다.

2005/06 시즌을 앞두고 바이에른은 1972년부터 홈구장으로 사용했던 정든 뮌헨 올림피아 슈타디온을 떠나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도시 북쪽에 새로 준공한 66,000석의 알리안츠 아레나로 자리를 옮긴다(추후 69,000석, 71,000석으로 좌석이 확대된다.). 최첨단 시설과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경기장 외벽 색깔을 바꿀 수 있는 이 경기장에는 이상하게 홈인 알리안츠 아레나에서의 전적이 원정에 비하여 영 아닌지라 알리안츠 아레나에 수맥이라도 흐른냐는 가설이 나오고있다. 흠좀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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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한 피지컬과 조직력을 앞세워 2시즌 연속 더블을 달성했던 바이에른의 주축들. 좌로부터 살리하미지치, 미하엘 발락, 클라우디오 피사로, 로이 마카이, 그리고 뒤의 흑형이 제 호베르투.

그리고 이어진 2006/07 시즌에는 슈투트가르트, 브레멘 등의 팀들한테 캐발리면서 순위는 현재 13/14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처럼 두자리수까지 꼬라박는 등처참하게 내려갔고, 결국 마가트는 2007년 1월 31일 경질되었다. 팀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급히 부임해 온 후임으로 99-03 바이에른의 두번째 전성기를 이끌었던 오트마르 히츠펠트가 부임했다. 히츠펠트의 바이에른은 챔스16강에서 라울 곤살레스, 데이비드 베컴, 뤼트 판 니스텔로이등이 포진하고 '우승청부사'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이끄는 레알 마드리드를 피말리는 혈투 끝에 홈에서 로이 마카이가 챔피언스 리그 역사상 최단시간 골인 10.5초만에 골을 기록하며 원정다득점으로 꺾고 올라가며 기대를 모았으나, 8강에서 바로 천적 밀란을 만나버리며 탈락했고, 리가에서도 결국 마가트가 싼 똥을 열심히 치웠으나 기어이 챔스권에 들지 못하고 4위로 쳐지며 UEFA 컵에 나가게되는 수모를 겪게된다.망했어요

07/08 시즌 다시금 히츠펠트의 지휘 아래 슈투트가르트에게 뺏긴 우승컵을 되찾기 위해 루카 토니, 미로슬라프 클로제, 프랑크 리베리등을 지르는 분노의 영입 시즌1을 보여주며 압도적인 성적으로 국내 리그/컵에서 더블을 기록하며 체면치레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통산 20회 분데스리가 우승으로 차기 시즌부터 엠블럼 위에 별4개를 달 자격이 생겼다. 현재 바이에른 엠블럼 위의 별4개는 이때부터였던것.[44] 그러나 헤타페전 극장경기끝에 극적으로 4강에 진출했던 UEFA 컵에서도 4강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에게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미니트레블에는 실패했다. 그리고 시즌 종료 후 바이에른의 레전드 of 레전드였던 주장 올리버 칸메멧 숄이 은퇴했다. 히츠펠트 감독도 눈물의 은퇴식을 가지는 등 많은 정신적 지주들이 떠났다.

위르겐 클린스만이 지휘봉을 잡은 08/09 시즌에는 말 그대로 삽질에 삽질을 반복한, '역사스만 시대'라 불리는 암흑기가 계속되었다. 그라피테-에딘 제코-미시모비치 삼각 편대를 앞세운 볼프스부르크에게 홈에서 5대1로 발리는 등 철저히 밀리면서 시즌 내내 단 한번도 리가 선두를 달리지 못하는 부진의 연속이 이어졌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번번히 대기권으로 날아가는 공격진의 슈팅, 처참하게 실패한 유망주 수비진등 총체적 난국이 이어진데다, 올리버 칸 은퇴 후 생긴 골리진의 구멍도 미하엘 렌징의 계속된 삽질이 반복되어 더욱 위태로워만 보였다.
챔스에서는 조별리그를 1위로 돌파한데다 16강에서는 스포르팅 리스본을 원정에서 5대0, 홈에서 7대1 도합 12-1이라는 엄청난 점수차로 격파하며 8강에 진출했으나, 주전수비 3명이 부상당한채 렐-브레누-오또 등의 유망주를 긴급 투입시켜 치른 8강에서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이끄는 FC 바르셀로나에게 원정에서 4-0으로 털리는 등 처참한 패배를 당하며 합계 5-1로 탈락한다.[45] 게다가 리그에서도 UEFA 컵으로 떨어지는 4위로 쳐지자 결국 바이에른 보드진은 성적 부진을 이유로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을 결정한다.

천만다행으로 시즌 막판 후임으로 임시감독에 부임한 유프 하인케스가 잔여 경기들에서 승리를 거둬주며 그나마 분데스리가 2위를 이끌며 차기시즌 챔피언스 리그 직행에 성공했지만 시즌은 무관으로 끝났다.

3.7. 루이스 반 할 시대 (Louis Van Gaal)

3.7.1. 2009-2010 시즌

루이스 반 할 감독이 부임한 2009-10시즌, 바이에른은 볼프스부르크에게 빼앗긴 우승컵을 되찾아오기 위해 아르연 로번, 마리오 고메스등을 대거로 지르는 등 07-08때에 이어 분노의 영입 시즌2를 시전하였고, 이를 통해 챔스 준우승과 리그/컵대회 더블을 기록한다. 같은 더치 커넥션이었던 마르크 반 봄멜에게 주장완장을 맡길 정도로[46] 신임했던 반 할은 반 봄멜-슈바인슈타이거의 중원라인 구성에 '로베리'라 불리는 공격라인을 개척한데다, 유스출신인 토마스 뮐러의 1-2선을 오가는 활용의 극대화, 홀거 바트슈투버, 디에고 콘텐토등의 발굴을 통해 대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애매함으로만 남았던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중앙미드필더로의 보직변경은 신의 한수였다는 평가.

그러나 처음부터 상황이 좋은건 아니었다. 시즌 초반엔 리그에서나 챔스에서나 인테르로 간 루시우, 부상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이르다면 이른 나이에 은퇴한 윌리 사뇰 등의 공백으로 꽤 부진하여 옆동네의 전통적인 강호이나 몰락해간다는 점은 비슷한 리버풀 FC, 유벤투스와 비슷한 말로를 겪을것이라...고 다들 예상하였으나 로번, 리베리 없이 챔스에서 유벤투스를 4대 1로 꺾는 쾌거를 올리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물론 우승레이스를 펼치던 샬케 04베르더 브레멘이 바이에른이 진 라운드에서 함께 패해주는 등 운이 따라주기도 했으나, 결국 전반기를 4위로 마쳤음에도 역전에 성공하여 마지막 라운드에서 샬케 04를 승점 4점차로 제치고 22번째 리가 우승을 확정했고, DFB-포칼 결승전에서도 베르더 브레멘을 4대0으로 누르며 더블에 성공했다.

챔스에서도 승승장구하는것까진 아니었던게 ACF 피오렌티나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에서는 말 그대로 탈락 직전까지 가는 위기 속에서 아르연 로번의 환상적인 두방으로 원정 다득점으로 승리해 두 경기 다 4-4 무승부에서 원정다득점으로 4강에 진출했고, 4강에서 올림피크 리옹을 올리치의 헤트트릭을 앞세워 격파하고 00/01 이후 9년만에 결승에 진출하게된다.
결승에서는 인터 밀란의 역습 두방에 2대0으로 패했지만 불완전한 스쿼드로[47] 국내리그 더블에 챔스 준우승까지 기록한 것으로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이룬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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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스터 샬레를 들어올리는 주장 반 봄멜

3.7.2. 2010-2011 시즌

10~11 시즌 초반부에는 꽤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나마 차츰 고메즈의 좋은 활약과 돌아온 프랑크 리베리덕에 안정세를 되찾고 있지만, 리그 절반이 진행된 17라운드 현재 5위. 1위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승점 차이는 14점이나 되기에...반 할 감독은 잘해봐야 2위가 될것같다고 하였지만 도르트문트의 선수층이 굉장히 얇아서(그래서 유로파 리그에서도 떨어진것이다. 수입이 짭잘하긴하지만 유로파 리그까지 치르기엔 도르트문트의 선수층이 너무 얇았다. 그대로 강행군을 하였다간 리그고 유럽대항전이고 뭐고 선수들 몸이 축났을것이다.) 그런지 샬케의 마가트 감독은 바이에른이 충분히 우승할것같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반 할도 짤리고, 마가트도 짤리고, 도르트문트는 꾸역꾸역 선두를 지키고, 정작 바이에른이 삽질했다...더불어 챔피언스 리그에선 전번 대회 결승에서 맞붙은 인테르와 16강전을 벌이게 되었다.

겨울 이적시장에서 현실FM 호펜하임에서 미드필더 루이스 구스타보를 영입함으로서 미들진은 강화되었지만...[48]그러나 가장 중요한 센터백과 풀백진은 여전히 좀 안습...필립 람 빼면 수비진은 정말 볼 거 없다. 그럼에도 영입을 못하는 이유는 반 할 감독이 본래 유스 출신선수들을 많이 중용하는 성향이기에 그런것도 있으며, 동시에 저번 시즌에 마리오 고메즈아르연 로번을 사올 때의 지출이 커서도 있다.

어쨌건 당장 유명한 선수를 영입하기보다는 유망한 선수를 육성하는게 현 바이에른의 방침인 듯. 아니 방침이다. 그렇게 굴러가자니 당장의 성적은 영 시망. 당장 괜찮은 플레이를 해 주고 있는 부트를 제끼고 육성드립을 치면서 골키퍼 유망주 크라프트로 주전 골키퍼 전격 교체!렌징으로는 뜨거운 맛이 부족했나 바이에른.

그리고 에딘 제코가 떠난 볼프스부르크를상대로 비겼다...이것도 문제지만 하필 아르연 로번이 돌아오자 마자 프랑크 리베리가 부상으로 아웃.(...) 시즌아웃일지도 모른다하니 우승이고 뭐고 정말 산넘어 산이다.

하지만 이건 페이크였고 2월 3째 주 드디어 로베리 라인 가동! 9개월만에 재가동된 로베리라인의 파괴력은 실로 탈분데스급, 여기에 뮐러와 고메즈까지 가세, 호펜하임을 상대로 시원한 4:0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그 뿐...수비진이 흔들리면서 3위를 놓고 경쟁을 벌이던 하노버 96에게 패하면서 반 할 감독은 시즌 종료와 동시에 계약 해지라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후 안드리스 욘커(Andries Jonker)가 임시감독이 되었고, 시즌 종료 시 80년대말에 바이에른의 감독을 맡았던 유프 하인케스(Jupp Heynckes)가 다시 감독이 되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그리고 떨어질 줄 알았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는 도저히 떨어지지 않고...

챔피언스 리그 16강전에서 원정 1차전에서 1:0으로 이겨놓고,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신나게 전반 내내 밀어붙이다가 2:1로 앞서던 후반 경미한 부상으로 이유로 아르연 로번을 뺐다. 그리고 지친 리베리를 빼지 않았다. 그러더니 동점골과 역전골을 허용하면서 2:3으로 역전패. 챔피언스 리그 역사상 두 번째로 원정에서 이기고, 홈에서 져서 떨어진 팀이 되었다.안습 교체 미스 및 수비진 붕괴를 두고 반 할 감독은 욕을 바가지로 먹는 중. 결국 올시즌까지만 감독직을 유지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독일 국대 드립치며 바이에른과의 재계약은 생각해 보겠다던 야심찬 감독이여 안녕!

승점줄타기하듯 위태위태한 상황에서 한 때 3위를 탈환했으나 결국 다시 어이없이 패배하고 4위로 떨어지자, 결국 당장 모가지로 방침이 변했다. 후임은 일단 수석코치가 감독대항을 하는 것으로. 우승은 사실상 물건너갔고, 관건은 챔스 티켓이 걸린 3위 자리를 탈환하는가 유무.

팀 부진의 원흉이 반 할이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반 할이 짤리자마자 4월 16일 경기에서 리그 2위 바이어 레버쿠젠 상대로 5:1 완승을 거두었다(...). 일단 범인의 이해와는 좀 동떨어졌던 선수들의 기용과 포지션이 안정을 찾았다. 뭐 로벤이 복귀하면 다시 벤치로 밀리겠지만 어쨌든 반할 체제에서는 절대 나올 일 없던 클로제가 선발로 복귀해 클로제 고메즈 투톱을 이루고, 제니트 우승 당시 월드클래스 수미로 추앙받던 티모슈크가 드디어 수미로 복귀해 펄펄 날았다.반 할 임마! 골키퍼도 크라프트에서 부트로 복귀! 일단 3위는 탈환했으나, 경쟁팀 하노버와 비교해 봤을 때 일정이 좋지 않아 3위 수성이 가능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 바이에른 입장에서는 다행히 하노버가 한계를 드러내며 4위로 처지면서 일단 챔스 티켓(정확하게는 3차예선)은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3.7.2.1. 극과 극으로 갈리는 평가
반 할 감독 재임시절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리는데, 마가트 시절과 클린스만 시절때의 말로처럼 마지막 시즌에 챔피언스 리그 티켓을 잃을뻔 했고, 수비진 영입이나 수비전술 개선에는 전혀 노력하지 않고 로베리의 파괴력에만 의존했다고 비판하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많은 유스들의 포텐을 터지게 한데다 잉여자원이 될뻔한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재발견[49], 토털풋볼의 재조명 등 많은 전술변화를 시도하며 공격루트를 개척해 이후 바이에른의 유럽 정상권으로의 성장의 초석을 다졌다는 옹호론도 존재한다.
특히 4-4-2, 4-1-3-2 위주의 투톱 전형에서 이후의 강력한 중원장악을 바탕으로 한 토털풋볼과 포제션풋볼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4-2-3-1 체제의 기틀을 마련한것은 반 할때였고, 이것을 유프 하인케스감독을 거치면서 수비적인 부분에서의 안정화와 부분전술의 보완이 이루어졌다. 즉, 슈바인슈타이거의 볼배급에서 나오는 물흐르듯 이어지는 공수전환에 강력한 양쪽 윙을 이용한 공격→공격진의 받아먹기라는 매커니즘을 확립하며 추후 바이에른 전술의 밑바탕을 깔았던 것이다.
또한 토마스 뮐러, 홀거 바트슈투버, 디에고 콘텐토등 유스 출신 스타들을 대거 발굴해낸것도 반할이었다. 특히 뮐러의 발견은 향후 바이에른에겐 거의 로또당첨이나 다름없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토마스 크라프트, 브레누 등 흑역사도 섞여있다. 10-11시즌은 유망주들을 과신하다가 망한것도 있으니깐.

가장 큰 문제점인 수비 부분을 살펴보자면, 루시우가 떠난 후 다니엘 반 바이텐마르틴 데미첼리스라는 느려터진 구멍들로 그 성적을 낸것도 미스테리고,[50] 게다가 이들의 서브조차도 전무한 덕분에 거의 모든 경기를 출장했다는게 더 신기했지만,[51] 일단 09-10시즌에는 결과론적으로는 더블 우승에 챔스에서도 수비진이 구멍을 보이긴 했으나 준우승이라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어 일단 바로 물갈이는 면했다. 게다가 09-10 시즌 데미켈리스는 가끔 데미신 모드를 보여주며 상대 공격수를 깔끔히 지워버리는 등 건재함을 보여줬고, 반바이텐은 09-10 한 시즌에만 무려 9골이나 기록했을 정도의 뛰어난 세트피스 가담력을 보여주며 바이에른의 주요 득점자원으로 분류되기까지 했다. 흠좀무.
그러나 이 문제점은 10-11시즌엔 한술 더 떠서 3골 먹히면 4골 넣어서 이긴다고 할 정도로 다른 부분에서의 보완은 이뤄졌지만 수비진은 루이즈 구스타보의 영입 외에는 그나마도 수비수가 아니고 수비형 미드필더다 전혀 개선을 보이지 않았고, 결국 그는 성적부진으로 짤렸다.

여담으로 뭉쳐있을땐 개판었지만 데미켈리스가 말라가로 떠난 뒤 서로 나뉘니까 잘만 뛰고있는 반바이텐[52]-데미켈리스의 수비진은 반할 감독의 수비전술 미흡을 탓할 수밖에 없을 듯 하다.

3.8. 하인케스 (Jupp Heynckes)

삽질의 반복이던 10-11시즌 종료 직전, 바이어 04 레버쿠젠의 돌풍을 이끌던 유프 하인케스 감독의 영입 확정 오피셜이 떴다. 이미 하인케스는 88년부터 4시즌동안 바이에른을 이끌며 2회의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한 경험이 있고, 08-09시즌 팀이 다시한번 유로파 리그로 떨어질 위기에서 임시 감독으로 부임해 2위로 끌어올린 경험이 있는 명장.
올리버칸 은퇴 후 고질적인 골키퍼 문제를 10-11 신들린 선방을 보여주던 마누엘 노이어를 데려오는데 성공하면서 해결했고, 수비진의 잔혹사도 제롬 보아텡하피냐라는 검증된 자원의 영입으로 해결했다. 11-12시즌 바이에른의 부활은 신입생들의 활약도 분명 한몫했다.

3.8.1. 2011-2012 시즌

개막전이었던 8월 8일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를 상대로한 홈 개막전에서 0:1로 패했다. 시종일관 두드려대다 뻥 걷어찬 공중볼을 신입생인 보아텡과 노이어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엉키며 한 골 얻어맞고 패배한다. 참고로 묀헨글라트바흐가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바이에른을 잡은 것이 통산 3번도 안된다고 한다.(...) 2라운드에선 추가시간에 터진 1골로 1:0 똥줄승을 거뒀다. 그나마 3라운드에선 함부르크 SV를 5:0으로 뭉개며 프리시즌 리가토탈컵에서 패한 굴욕을 되갚았다.

그리고 11~12 챔피언스 리그 조편성 추첨에선 맨시티와 비야레알,나폴리와 맞붙게 되었다. 죽음의 조라며 말이 많았으나[53] 1, 2차전에서 비야레알과 맨시티를 떡실신시키며 4득점 0실점이라는 압도적인 기록을 보여주었다.

리그에서는 더더욱 괴물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개막전인 보루시아 MG전을 제외하면 11경기 무실점 행진을 이어나갔으며, 21득점 1실점이라는 토나오는 성적을 내고 있다. 노이어는 무려 1000분 넘는 무실점 기록을 획득했다(...). 리베리, 로벤, 뮐러, 크로스, 고메스 등이 모두 미친듯이 날아다니며 득점을 기록하고 있다. 수비진에서는 홀거와 새로 영입한 제롬 보아탱, 람, 노이어 등인 대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거 지난 시즌 자동문 수비진이 맞는 팀인가 하고 팬들은 엄청나게 경악한 상태.

나폴리와의 챔피언스 리그 3번째 경기에서 결국 홀거의 자책골을 먹으며 시즌 통틀어 2번째 실점을 당했다. 웃기는 게 바이에른이 지금까지 실점은 모두 자책골이라는 점이다.골도 그냥은 안먹히겠다는 노이어의 의지가 돋보인다

바로 다음 경기인 하노버와의 경기에서는 pk로 한 골을 먹고 퇴장까지 당한 상태에서 슛이 몇 번이나 골대를 막고 나오거나 골키퍼나 수비수의 선방에 막히는 등 10:11 상태에서도 대등한 경기를 하다 쐐기골을 먹고 2대1로 패배.[54] 알라바가 만회골까진 성공했지만 거기까지.

전반기 끝부분 어느새 부활해서 돌아온 도르트문드의 맹추격을 받았지만 승점 3점을 앞선 상태에서 전반기를 끝냈다. 다득점 1위 최소실점 1위로 다득점은 도르트문드에 10점을 앞서 있다.

도르트문트가 챔피언스 리그 조별 라운드에서 4위로 광탈하며 유로파마저 탈락하였기에 챔피언스 리그를 병행하는 바이에른이 도르트문트의 맹추격을 받을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결국 시즌 후반기 첫 라운드에 패를 당했던 보루시아 MG에 또다시 털리며 이것이 현실화되었다. 도르트문트가 후반기 초반에 급상승세를 이어간데 반해 바이에른은 삐끄덕거리며 챔피언스 리그가 다시 시작하기 한참 전인 2월 5일에 이미 선두 자리를 내주어버렸다. 그리고 24차전까지 도르트문트에게 승점이 7점 차로 벌어져 도르트문트가 남은 10경기를 삽질하지 않는한 리그 우승도 힘들어졌다고 봤는데 공교롭게도 도르트문트가 여러 경기를 비기는 삽질을 해준 덕분에 28차전까지 승점 3점차로 크게 좁혀졌다. 골득실에서 앞서있기 때문에 4월 11일에 벌어질 도르트문트 원정을 이기면 리그 1위로 올라설 수 있었으나 0:1로 패하면서 6점차가 되었고 31차전 마인츠와의 안방경기를 득점없이 비기면서 8점으로 벌어져서 리그 우승은 이젠 좌절되었다고 봐야한다. 남은 3경기를 죄다 이기고 도르트문트가 3경기에서 도르트문트가 3경기 다 지던가 1무 2패를 거두면 극적인 역전 우승이 가능하지만 강등된 카이저슬라우테른과 느긋한 경기를 남겨둔 도르트문트가 이제 1승만 거두면 되는지라...결국 리그는 도르트문트가 우승하면서 2위로 마치게 되었다.

챔피언스 리그 16강 1차전 FC 바젤 원정경기에선 0:1로 패배했다.좀머 골키퍼의 선방이 컸다 이 시기 여기저기 이길 경기인데 지거나 비기거나 하며 삐그덕거렸지만 챔피언스 리그 2차전 바로 전 리그 경기인 호펜하임전에서 양 측면만 냅다 파는 전술을 중앙도 적극 활용하는 전술로 일신하며 7:0 보약을 지어먹은 후, 2차전 안방경기에선 바젤을 7:0으로 꺾으며[55] 8강에 진출했다.

8강 추첨 결과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가 뽑혔는데 1차전 원정경기에서 2:0 승리를 거둬서 한층 4강행 전망이 밝다. 경고한장 붙어있던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도 카드세탁 성공! 이어진 2차전 홈에서도 올리치의 멀티골에 힘입어 2:0으로 이겨 4강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4강 상대는 유럽대항전 최대의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와의 일전이었다. 1차전 홈경기에서 프랑크 리베리의 강력한 슈팅으로 선제골을 넣었으나 후반 초반 메수트 외질의 동점골로 1대1, 그 후 홈에서 승리를 따내려는 바이에른의 엄청난 파상공세를 마드리드가 어떻게든 틀어막는 양상으로 흘러갔고, 경기 막판 필립 람파비우 코엔트랑을 제끼고 크로스를 넣은걸 마리오 고메스가 극적인 결승골로 연결하며 2:1로 승리했다.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홈에서 극강[56]인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케르 카시야스마누엘 노이어의 선방대결이었던 2차전에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무리뉴가 이끄는 레알 마드리드를 꺾고 결승에 진출하면서 2010년 결승에서 주제 무리뉴가 이끌던 인테르에게 패하여 우승이 좌절된 설욕을 했다.[57] 합계점수 3대3 동률인 상황에서 돌입한 승부차기에서 마누엘 노이어가 레알 마드리드의 양대 발롱도르 수상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카카의 페널티킥을 연달아 막아버리며 분위기를 올렸고, 이케르 카시야스 역시 토니 크로스필립 람의 슛을 쳐내며 과연 그의 클래스가 어느정도인지 보여줬으나 세르히오 라모스가 대기권돌파슛라쏘공을 날리며 베르나베우의 분위기는 차갑게 식었고, 5번키커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침착하게 성공시키며 결승행을 확정지었다!!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열린 챔스결승 상대는 바르샤를 극적으로 따돌리고 올라온 첼시 FC. 이 경기에서 바이에른은 30개가 넘는 슈팅을 퍼부으며 첼시를 가둬놓고 팼으나 마지막 결정력이 2% 부족했던데다 페트르 체흐의 선방쇼까지 겹치며 토마스 뮐러의 선제골을 얼마 지키지 못하고 동점골을 허용해 연장전까지 끌고 갔다. 연장에서 프랑크 리베리가 만들어낸 페널티킥은 아르연 로번이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결국 승부차기로 돌입, 거기에서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실축으로 인해 바이에른 뮌헨은 우승을 놓치고 첼시가 우승을 차지했다. 3:3의 팽팽한 접전 상황에서 5번째 주자인 슈바인슈타이거가 슈팅을 시도했지만 골포스트에 정확히 맞고 튕겨나갔다. 이후 첼시의 5번째 주자인 드록바가 침착하게 골을 성공시키며 바이에른은 다 잡은 빅이어를 바로 눈앞에서, 그것도 본인들의 홈에서 놓쳤다. 아오 저 꼴통 쉐키...만 아니면 챔스 우승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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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승리를 결정지었어야할 연장 PK를 날려버린 로벤과 슈바인슈타이거는 패배의 원흉이 되고 말았다. 지못미. 로벤은 분데스 우승이 걸려있던 30라운드 데어 클라시커에서도 페널티킥을 실축했기에 더더욱 가루가되도록 까였다.

챔스결승 일주일 전에 치러진 2012년 5월 12일 포칼 결승에서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게 2:5로 대패하며 준우승에 그쳐야했다. 결국 리그는 무관으로 마무리한 데다가 챔피언스 리그도 준우승하면서 한해에만 준우승 3번하며 트리플 러너업에 등극하고 말았다.[58][59] 안습...~~

3.8.2. 2012-2013 시즌

구단 역사에 남을 '전설의 시즌'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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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즌을 앞두고 바이에른은 여러 선수들을 정리했다. 그동안 꾸준히 활약해준 이비차 올리치와(계약만료), 한스 외르그 부트(은퇴)와 존재감없던 벤치워머 우사미 타카시(임대 계약 종료)와 브레누(계약만료)와 결별했다. 그리고 유로 2012의 스타인 크로아티아의 마리오 만주키치와 묀헨글라드바흐 돌풍의 일원인 센터백 단테, 지난 시즌 이미 영입했던 세르단 샤키리가 합류했고 과거 바이에른 선수였던 클라우디오 피사로, 그밖에 90년생 이하의 여러 유망주를 영입했다. 이렇게 해서 팀의 1990년생 이하만 토니 크로스를 포함해 6명이 되었다. 벵거 따라하지말고

그런데 시즌 개막전에 고메즈의 발목 부상이 발견되어 수술에 들어갔다. 예상 회복 기간은 짧아도 두세달이고 잘못하면 반시즌을 쉬게 될수도 있다고.(...) 원톱 자리에 뮐러나 만주키치가 들어갈 것으로 보이는데 지난 시즌은 고메즈 하나만 믿고 갔었던 만큼 전술적인 부분에서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니까 빨리 제코 영입하라고

그런데 시즌 개막전 펼쳐진 DFL-슈퍼컵[60]에서 있었던 데어 클라시커 더비전에서 역시 못나온 마리오 고메즈를 대신해 만주키치가 원톱으로 나왔는데, 1득점 1도움의 훌륭한 스텟을 찍으며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치뤘다. 더군다나 이 경기는 샤키리, 단테 등 뉴페이스가 많이 출전한 경기였기 임에도 불과하고 지난 시즌 대패했던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2-1로 승리했기 때문에 분데스리가 우승을 더욱 점칠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분데스리가 개막. 1라운드는 비교적 손쉬운 승격팀인 퓌르트와의 경기. 예상 대로 뮐러-만주키치-로벤의 연속골로 3:0으로 완승하였다. 뮐러와 만주키치는 두경기 연속 골.

이적시장 끝나기 2일전인 8월 29일, 그동안 공들여왔던 하비 마르티네즈의 영입이 발표되었다. 이적료는 4000만 유로[61]로 바이에른 최고 이적료에 더불어 분데스리가 최고 이적료이다. 샤키리, 단테, 만주키치, 피사로에 마르티네즈까지 트리플 러너업에 빡친 감독이 분노의 영입을 시전한 것으로 보인다. 하비가 온것으로서 부상 때문에 불안불안하던 슈바인슈타이거의 걱정도 덜게 되었고 센터백도 볼수 있는 자원이기에 보아텡의 기복있는 수비 역시 걱정 없게 되었다. 한 선수의 영입으로 두가지 문제가 해결된 셈. 그러니 제발 우승 하자 12-13챔피언스 리그 조 추첨식에는 F학점시드를 받아 발렌시아 C.F., 릴 OSC, 벨라루스의 바테 보리소프와 한 조가 되었다.

2라운드, VfB 슈투트가르트와의 경기였다. 어렵지 않게 승리를 예측한 경기였으나 초반에 슈투트가르트 쪽에서 먼저 멋진 발리슛으로 선제골을 잡아냈다. 하지만 이 골은 바이에른의 부활을 알리는 축보가 되었으니...그 뒤 바로 이어진 뮐러의 자기가 찬 공 다시 차넣는(...) 골로 1-1, 1분 후 토니 크로스의 중거리슛으로 2-1, 그 뒤 중원에서 누비던 구스타보의 선수 역사상 기록에 남을 중거리 감아차기로 3-1, 후반 뮐러의 공을 마리오 만주키치가 받고 이어서 4-1, 골키퍼 손 맞고 뜬 공 뮐러가 헤딩으로 밀어넣어 5-1(...), 뮐러의 크로스를 받아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헤딩으로 연결해 최종 스코어 6-1로 화려하게 승리했다. 특히 이 경기는 하비 마르티네즈의 출전 여부에 상당히 관심이 비치던 경기였는데, 후반 76분 가량 슈바인슈타이거 대신 교체 투입되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리 뛰어난 활약은 없었다. 현재 뮐러와 만주키치는 3경기 연속골이며 뮐러는 3골 3어시스트를 달리며 분데스리가 득점&도움 선두 1위를 달리는 중이다. 고메즈 보고 있나?

3라운드는 마인츠전. 슬슬 부상의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로베리가 빠지고 뮐러와 샤키리가 양쪽 윙으로 출전했다. 선수 모두가 하나둘 지난시즌과는 달리 향상된 경기력을 뽐냈고 2분만에 뮐러의 택배 땅볼 크로스를 만주키치가 받아먹어 선제골을 기록했다. 만주키치는 현재 슈퍼컵을 포함해 4경기 연속골을 달성하는 위엄을 세웠다. 그 후 바트슈투버의 왼발 크로스를 슈바인슈타이거가 헤딩으로 꽂아 넣어 추가골을 기록했으나, 후반 15분경 단테의 백태클로 페널티킥이 선언되어 만회골을 허락했다. 경기가 끝나갈때 쯤 샤키리 대신 마르티네즈가 출전했고 만주키치대신 피사로가 출전했다. 허나 피사로는 골 기회를 많이 날리며 삽질(...). 결국 경기 끝나기 직전 하비 마르티네즈의 크로스를 받은 크로스가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시키면서 한골을 추가하여 3-1로 승리하였다. 마르티네즈는 첫 공격 포인트를 기록.

리그 경기가 끝나고 챔피언스 리그가 개막하였는데 같은 조의 강력한 2위 후보라고 여겨지고 있는 발렌시아와 경기를 하게 되었다. 리그에서 푹 쉬었던 로벤과 리베리가 투입되었고 구스타보 대신 마르티네즈가 선발 출장했다. 언제나처럼 노련하게 경기를 진행하다가 리베리-로벤-슈바인슈타이거로 이어지는 멋진 패스 플레이로 슈바인슈타이거의 첫골이 터졌다. 후반전에도 역시 65:35의 점유율을 가져가며 바트슈투버의 패스를 받은 크로스가 추가골을 넣으며 압승을 예고했으나, 세트피스 상황에서 터진 발데스의 헤딩골로 실점을 하고 말았다. 지난 시즌부터 여러번 지적되는 노이어의 세트피스 상황의 취약함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62] 경기 끝나기 전 경기 내내 불안불안한 플레이를 보이던 피사로 대신 투입된 만주키치가 로벤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찼으나 멋지게 막히고 최종 점수 2-1로 끝났다. 경기력에서 앞선 경기에 비해 뭔가 찜찜한 결과.

4라운드 FC 샬케 04 원정경기. 지난시즌 전반기에는 도르트문트와 함께 3파전을 이루던 샬케이기도 하고 이브라힘 아펠라이를 비롯해 네덜란드의 거물급 선수들이 포진된 샬케이기에 많은 관심을 받았다. 포지션을 보자면 리베리가 빠지고 뮐러가 선발로 들어왔다. 앞선 경기에서 큰 활약을 보인 만주키치가 이번에는 그닥 활약을 하지 못했고, 전반전에는 양팀이 지극히 수비적인 운영을 보였다. 그러나 후반 10분, 뮐러의 칼패스가 크로스에게 이어져 능숙하게 바이에른이 첫골을 뽑아냈다. 그 후 3분 후 라모스 뺨을 후려갈길만한 오버래핑을 구사하는 단테가 패스를 해 뮐러가 골로 연결시키면서 추가골. 프랑크 리베리의 빈자리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경기내용이었다. 그리고 후반 25분에 다소 부진한 만주키치 대신 하비가 들어가 뮐러가 원톱에 로벤-하비-크로스의 포메이션을 구축했다. 빌바오에서도 공미는 그닥 해본적이 없기에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스트라이커 바로 뒤의 뛰어난 수비력(...)을 뽐냈다. 그 후 지친 슈바인슈타이거 대신 티모슈크가 들어가며 경기 굳히기에 나섰고 클라스 얀 훈텔라르 등 선수들이 맹공격에 나섰지만 득점을 내지 못하고 2-0으로 종료됐다. 지금 크로스는 챔스 포함 4경기 연속골(리그 3골, 챔스1골)을 달리고 있고, 뮐러는 현재 4경기 4골로 만주키치를 제치고 단독 득점 선두에 올라섰다.

그리고 경악스러운 10월 3일 챔피언스 리그 2차전 바테 보리소프 원정경기, 아무리 원정이지만 조 최약체로 평가되었던 바테에게 1:3으로 완패당했다! 분데스리가에서 6전 전승을 기록하며 1위를 달리던 바이에른으로선 제대로 한방 먹은 셈.

바이에른은 마리오 만주키치, 프랑크 리베리, 토마스 뮐러, 토니 크로스, 하비 마르티네스, 단테, 필립 람 같은 핵심 선수들이 모두 선발 출격, 볼 소유권도 지배했다. 그러나 바테의 고르부노프 골키퍼의 선방을 넘지 못했으며 3골을 실점하는 굴욕 속에 추가시간에서야 리베리가 1골을 만회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릴 OSC 원정에서 3:1 대승을 이끌 때 이변이라고 여기던 바테가 바이에른도 잡을 줄은 누가 예상했을까. 참고로 바테는 이전 챔피언스 리그에서 무승을 달리던 팀이었고 릴을 이긴 게 역사상 첫 챔피언스 승리였던 팀이다.

이런 패배에 대한 설욕인지 8전전승을 달렸으나 9차전 바이엘 레버쿠젠과의 안방경기에서 운도 지지리도 없는 경기끝에[63] 1-2로 패하며 시즌 첫 패배를 당했다. 그래도 10차전 쉽지않은 함부르크 원정에서 3-0으로 이기면서 승점 27점으로 여전히 리그 1위.2위인 프랑크푸르트와 승점차는 7점이다. 그리고 챔피언스 리그 4차전 릴과의 안방경기도 6-1로 크게 이기면서 3승 1패로 역시 1위로 올라섰다. 11월 20일에 있을 발렌시아(3승 1패) 원정경기에서 1:1무승부를 거뒀으며 12월 5일 안방경기에서 바테 보리소프에 4:1로 승리를 거두면서 1위로 16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16강전 상대는 바로 아스날 FC.

11월 24일 13차전 하노버 96과의 홈경기에서 5:0 대승을 거뒀다. 13라운드까지 기준으로 11승1무1패 승점 34에 38득점-5실점으로 득실이 33점이라는 흠좀무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타국리그 웬만한 강팀들도 10실점은 넘었는데 2위 도르트문트와는 승점 9점 차이...
이후에 2승 2무를 보태며 전반기까지 13승 3무 1패 44득점 7실점이라는 성적으로 마무리했다.

2013년 2월 17일 현재 분데스리가 2위인 도르트문트와의 승점차는 15점으로 벌어진 상태이다. 22경기 18승 3무 1패, 이런 개깡패스러운 성적은 보통 신계와 인간계로 양분되는 라 리가에서 바르셀로나나, 레알 마드리드 정도나 가끔 찍는 성적임에도 분데스리가에서 당당히 승점 100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번 시즌 대부분의 빅리그에서 1위의 독주가 잦은게 사실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독주라 할 수 있다.[64] 그러한 무시무시한 12~13시즌 바이에른의 질풍같은 독주의 가장 큰 요인은 상식을 초월하는 우주방어다. 11월 24일부터 2월 17일까지 약 석달동안의 리그경기 10경기에서 겨우 2실점, 5경기 연속 무실점...뿐만아니라 리그 25경기에서 10실점, 특히 원정경기 10경기에 1실점을 기록중이다. 그 깡패스러운 수비력으로 인해, 골득실 많이 벌리기로 소문난 바르셀로나가 24라운드 동안 53골을 벌린 동안 2경기 적은 상황에서도 거의 같은 50골의 차이를 벌렸다.[65] 경기수를 감안하면 사실상 바르셀로나보다도 더욱 벌린 것. 말그대로 어디서도 듣도 보도 못한 충공깽한 수비력이라 할 수 있다.

사실상 리그 우승을 확정지은 셈이다. 26차전까지 치룬 2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승점 차가 무려 17점이라서 바이에른이 연패를 하지 않는한 역전은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25차전까지 겨우 1패(21승 3무)인 바이에른이 그럴 일은 없어 보인다.

2013년 2월 20일 아스날과의 챔피언스 리그 1차전에서 아스날을 3:1로 두들겨패버렸다(...). 이런 표현이 이상하지 않은 것이 이 경기는 아스날 홈에서 벌어졌다. 전반에 크루스의 환상적인 선취골과 뮐러의 코너킥 상황에서의 골로 일찌감치 앞서나갔으며 아스날은 슈팅 2개밖에 때리지 못할 정도로 부진했다. 그나마 후반에는 정신적으로 무장한 아스날이 맹공을 퍼붇고 바이에른이 조금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며 집 나간포돌스키에게 만회골을 먹혔지만 이날 월드 클래스 풀백의 모습을 보여준 람의 크로스를 받은 만주키치의 원더골[66]로 3:1로 다시 차이를 벌리고 그대로 경기 종료. 후반전에 잠시 밀린 것은 아쉬웠지만 전체적으로 분데스리가 1위다운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리베리, 보아텡, 슈바인슈타이거의 결장이 컸는지 2차전에선 홈에서 0:2로 패했지만 원정다득점 규칙으로 8강에 진출하는데는 성공했다. 그리고 8강전 상대는 유벤투스로 추첨이 이뤄졌다.

포칼컵 8강에서 성사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데어 클라시커 더비전에서 전경기 16강에서 구자철과의 충돌로 퇴장징계를 받은 팀의 핵심 프랑크 리베리가 결장했음에도 시종일관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몰아붙이며 아르연 로번의 결승골로 승리한다. 4강에서 만난 VfL 볼프스부르크도 인정사정없는 경기력으로 6대1로 대파했다. 더욱이 이 경기에서는 후반 교체해 들어온 마리오 고메즈단 6분만에 해트트릭을 달성하는(...) 진기한 기록도 나왔다.
결국 DFB-포칼은 1라운드부터 4강까지 15득점 1실점, 전승으로 결승진출에 성공했다.

3월 30일 리가 홈경기에서 함부르크 SV9:2로 털어버렸다. 이게 축구여 야구여 피사로선수 만루홈런!! 리그 7경기를 남겨둔 지금 앞으로 승점 2점만 추가해도, 혹은 도르트문트가 앞으로 1경기만 무승부를 해도 우승을 확정짓는 상황.
그리고 4월 6일, 프랑크푸르트 원정에서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환상적인 백힐슛이 결승골로 이어지면서 1:0 승리로 우승을 확정지었다!! 28라운드만에 확정지은 우승으로, 이는 역대 분데스리가 최단기간 우승기록이다.

그리고 챔피언스 리그에서 유벤투스를 상대로 홈에서 2:0, 원정에서 2:0으로 종합 스코어 4:0 완승을 거두며, 2년 연속 챔피언스 리그 4강에 진출했다.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아르투로 비달-안드레아 피를로의 MVP 편대를 상대로 대승을 거둔건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하비 마르티네즈의 중원에서의 콤비도 역할이 컸지만, 홈/원정 모두 마리오 만주키치가 엄청난 활동량으로 수비가담까지 담당하며 피를로를 담궈버리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슈바인슈타이거는 2차전 토리노 원정에서 2어시스트를 기록한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추첨으로 4강에서 만난 상대는 끝판왕 FC 바르셀로나. 이번시즌 최고의 떡밥매치중 하나라서 많은 기대와 관심이 모여졌던 가운데...

4월 22일, 라이벌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핵심선수이자 독일 최고의 유망주인 마리오 괴체의 영입에 성공했다. 7월에 합류할 예정. 하필이면 도르트문트의 레알 마드리드와의 챔피언스 리그 4강1차전, 그것도 홈 경기 바로 전날에 발표가 나서 모든 팬들은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하지만 과는... 타 팀팬들, 심지어 바이에른 팬들까지 이건 좀 너무한거 아니냐고 말하는 중...바이에른은 이로써 리베리, 뮐러, 로벤, 샤키리, 크로스괴체라는 말도 안되는 미드필더 라인을 가지게 되었다...슈바인슈타이거마르티네즈도...심지어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의 이적설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 더블스쿼드가 아니라 트리플 스쿼드를 만들 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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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는 없다." 합계점수에서 무려 6대0으로 앞섰는데도 토마스 뮐러의 추가골에 기뻐하는 바이에른 선수들.

4월 23일,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벌어진 4강 1차전에서 4:0으로 바르셀로나를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렸다.(...) 4년전 08-09 챔스 8강 1차전 캄프누에서 당했던 0:4 참사를 완벽히 갚아준 경기. 심판의 판정이 참으로 난감했으나[67] 그에 관계없이, 내용상 압도적으로 바르셀로나를 찍어눌렀다. 바르셀로나가 0:4 패배한 경기는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이니 이건 뭐...아직 2차전이 남아 있으나 유럽 축구의 패권이 넘어가는 상징적인 경기라는 평까지 나올 정도이다. 근 5년간 바르셀로나의 포스가 어느정도였는지, 그리고 현재 바이에른의 포스가 어느정도인지를 나타내는 평. 다만 이것이 바르셀로나가 단순히 최강자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일 뿐인지, 바이에른이 정말로 유럽 축구의 패권을 거머쥐는 것인지는 이후 몇 년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특히 2013/14 시즌에서 바이에른이 과연 챔피언스 리그 사상 최초의 2연패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인지에 많은 관심이 모이고 있다. 물론 그 바르셀로나조차도 챔스 2연패는 보여준 적 없음에도 사실상 이견이 없던 최강의 팀으로 인정받았던 것처럼, 2014년 현재는 바이에른 뮌헨을 세계 최강의 팀으로 꼽는데 이견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5월 2일 벌어진 원정 경기에서도 역시 한 시 바쁜 바르셀로나를 3:0으로 발라 주었다.진격의 거인. 그날 인류는 떠올렸다. 분데스리가의 거인을 합산 스코어 7:0...정말 무자비하게 털어 주었다. 바르셀로나는 5골이나 넣어야 하는 상황임에도 바이에른의 안정적인 수비 라인 때문에 결정적 기회를 만들어 내지를 못했고, 되레 피케가 자책골을 헌납하고 말았다.[68][69] 1차전과 2차전 모두 승리를 확신할 수 있는 상황이라 적당히 뛰어도 될 법했지만, 경기가 완전히 기운 마당에도 한 골을 더 추가하려고 바이에른 선수들은 전혀 사정을 봐주지 않으면서 바이에른 뮌헨의 자비심 없는 모습을 전세계 시청자들에게 각인시켰다. 1, 2차전 하이라이트

이로서 챔스 결승전은 영국 축구의 심장부 웸블리 스타디움에서의 데어 클라시커 더비로 치러지게 되었다. 어쨌든 마지막으로 우승한지 12년된 챔피언스 리그의 정상을 차지할 수 있을지, 또한 2010년에 아쉽게 실패한 트레블을 이번에야 말로 달성할 수 있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일단 챔스 결승 2주일 전에 있었던, 챔스 결승의 전초전이었던 리가 32라운드 경기는 1대1 무승부로 끝났다. 하지만 후반전 경기가 굉장히 과열된 상황에서 하피냐가 퇴장당할때 양팀이 몸싸움 직전까지 갔으며, 위르겐 클롭마티아스 잠머 바이에른 뮌헨 단장 사이에 설전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공교롭게도 잠머 단장은 90년대 중반 도르트문트의 전성기를 이끌고 감독으로써도 리가 우승을 이끌었던, 명실공히 도르트문트의 레전드였다.

33라운드, 시즌 마지막 홈경기였던 아우크스부르크전 홈경기에서 3대0 낙승을 거두며 홈팬들과 바이에른의 수많은 레전드들의 축하 속에서 마이스터 샬레를 들어올렸다!!! 도르트문트에게 2시즌 연속 빼앗겼던 분데스리가 타이틀을 3년만에 되찾아오는데 성공한 것.
시즌 최종전인 34라운드, 그 까다롭다는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원정에서는 전반 11분만에 3골을 내준 이뭐병한 상황 속에서도[70] 프랑크 리베리의 환상적인 논스톱 발리슛을 포함한 2골1도움 맹활약을 앞세워 4대3으로 끝끝내 역전해버렸다.(...) 흠좀무. 이로써 승점 90점 돌파, 91점으로 역대 최대 기록을 세우며 리가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어진, 5월26일 런던의 웸블리 경기장에서 열린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중세 전쟁을 형상화한 거대한 스케일의 오프닝을 시작으로 킥오프 휘슬이 울렸고, 전반전은 득점은 없었으나 양팀 골키퍼 스페셜이라 할만큼(마누엘 노이어 vs 로만 바이덴펠러) 슈퍼 세이브가 많이 나왔다. 후반 바이에른이 공세를 시작해 후반 14분 만주키치가 페널티지역 오른쪽을 돌파한 로벤이 골문앞으로 올린 땅볼 크로스를 왼발로 차 넣으며 도르트문트 골문을 갈랐다. 선제골을 넣었으나 후반 22분 귄도간이 페널티킥[71]을 성공시키면서 경기는 동점이 된다. 하지만 후반 43분 로벤이 극적인 결승골을 터뜨렸다. 로벤은 페널티지역 한복판을 침투한 후 왼발 슈팅으로 도르트문트 골문을 갈랐고 결국 바이에른이 승리를 거두며 오랜 숙원이었던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 성공했다. 그야말로 로베리 콤비, 노이어의 대활약. 이로써 챔피언스 리그 통산 5회 우승을 거뒀다, 레알 마드리드(9회)와 AC밀란(7회)에 이어 우승 횟수 세번째로 올라섰으며, 오랜 숙원을 이루어 낸 선수들은 결승 문턱에서 주저앉았던 설움이 북받쳐오른듯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기쁨의 눈물을 쏟았다.(바로 지난시즌 본인들의 홈에서 다잡은 빅이어를 눈앞에서 놓쳤으니...)
특히 작년 첼시전 PK를 실축하며 패배의 원흉이 되었던 아르연 로번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우승 확정직후 그라운드에서 우는 모습은 나름 감동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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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트레블의 아픔을 딛고 기어이 빅이어를 들어올린 바이에른

그리고 6월 2일, 베를린 올림피아 슈타디온에서 있었던 VfB 슈투트가르트와의 DFB-포칼 결승전에서 후반 20분이 넘기도전에 3대0으로 멀찌감찌 달아나며 거의 우승했다 싶을 찰나에 마틴 하르닉의 투혼의 두 골로 3대2까지 추격했으나 남은 시간동안 노련하게 잘 막아내며 우승에 성공, 셀틱 FC, AFC 아약스, PSV 아인트호벤, 맨유, 바르샤, 인테르에 이어 트레블을 달성했다!

2013~14 시즌부터 새로운 감독으로 2016년까지 펩 과르디올라와 계약을 맺었다. 유프 하인케스 감독이 올해를 마지막으로 연세와 건강상의 이유로 은퇴한다고 한다.[72]

아래는 참고로 12-13시즌 바이에른이 달성한 기록들
분데스리가
  • 역대 최다 승 (29승)
  • 역대 최다 승점 (91점)[73]
  • 역대 최소 패 (1패)[74]
  • 개막전 기점 역대 최다 연승 (8연승)
  • 역대 최다 원정승 (15승)
  • 역대 최다 원정승점 (47점)
  • 역대 최소 원정패 (0패)
  • 역대 최소 실점 (18실점)
  • 역대 최다 득실차 (+80)
  • 2위와의 최다 승점차 (25점)
  • 역대 최단기간 우승 (28라운드에서 우승확정)
  • 역대 최단기간 전반기마이스터 (14라운드)
컵대회
컵대회, 챔스 포함 전체시즌 통틀어 54경기에서 단 3패, 50여 경기를 치르는동안 득점은 무려 153골[76], 실점은 불과 31실점. 흠좀무.

그리고 트레블. 독일 슈퍼컵 우승까지 포함하면 쿼드러블 달성.

3.9. 과르디올라 (Pep Guardiola)

4. 스쿼드

FC Bayern München 2014-2015시즌 선수명단
등번호국적포지션한글 성명로마자 성명[77]출전어시비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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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 마누엘 노이어 Manuel Neuer 38 0 0 3주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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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F 사비 알론소 Xabi Alonso 31 3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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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 단테 Dante 30 0 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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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DF 메흐디 베나티아 Mehdi Benatia 18 1 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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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MF 티아고 알칸타라 Thiago Alcântara 1 0 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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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MF 프랑크 리베리 Franck Ribéry 26 9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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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MF 하비 마르티네스 Javi Martínez 1 0 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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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W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Robert Lewandowski 37 18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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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FW 아르옌 로벤 Arjen Robben 30 19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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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DF 하피냐 Rafinha 29 0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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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FW 클라우디오 피사로 Claudio Pizarro 12 1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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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MF 카스 숄 Lucas Scholl 0 0 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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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MF 기안루카 가우디노 Gianluca Gaudino 7 0 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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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DF 제롬 보아텡 Jérôme Boateng 33 2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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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DF 후안 베르나트 Juan Bernat 38 1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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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MF 마리오 괴체 Mario Götze 35 15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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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MF 제바스티안 로데 Sebastian Rode 26 2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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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DF 필립 람 Philipp Lahm 21 2 3 주장
22
GER_Flag.jpg
[JPG image (Unknown)]
GK 톰 슈타르케 Tom Starke 0 0 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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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GK 페페 레이나 Pepe Reina 1 0 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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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FW 난 쿠어트 Sinan Kurt 0 0 0
25
GER_Flag.jpg
[JPG image (Unknown)]
FW 토마스 뮐러 Thomas Müller 36 18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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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DF 다비드 알라바 David Alaba 29 5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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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DF 홀거 바트슈투버 Holger Badstuber 11 1 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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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GK 오폴트 징얼레 Leopold Zingerle 0 0 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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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MF 미첼 바이저 Mitchell Weiser 7 1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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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MF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Bastian Schweinsteiger 20 2 6 부주장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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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MF 파트릭 바이라우흐 Patrick Weihrauch 0 0 0

7. 클럽 역대 주장

8. 역대 성적(00~01시즌 이후)

  • 2000~01 시즌 리그 우승, 챔스 우승
: 포칼에서는 조기탈락했으나

  • 2001~02 시즌 리그 3위, 챔스 8강
: 노장들의 컨디션난조와 부상행으로 시즌 무관에 그친다. 시즌 종료후 세대교체가 진행되어 스쿼드가 대대적으로 물갈이되었다.

  • 2002~03 시즌 리그 우승, 포칼 우승, 챔스 32강
: 자국리그에서 더블로 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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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munchen4star.png
    [PNG image (Unknown)]
    바이에른 뮌헨은 상기된 엠블렘 위에 별을 네 개 달고 있는데, 분데스리가에서 5~9회 우승은 별 2개, 10~19회 우승은 별 3개, 20회 이상 우승해야 별 4개를 달 수 있다. 바이에른이 23회 우승으로 네 개를 달고 있고, 그 뒤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우승 8회로 별 두 개, VfB 슈투트가르트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가 5회 우승으로 별 두 개를 달고 있다.
  • [2] 가운데 푸른색 무늬가 옛 바이에른 왕국을 상징하는 문양이다.
  • [3] 뒤에 붙는 e.V.는 eingetragener Verein을 줄인 말로, "등록 클럽"이란 뜻이다.
  • [4] 리그/컵 최다 우승, 최다 이적료 기록 등 독일 내 기록이란 기록은 모두 바이에른이 가지고 있기에 붙여진 별명.
  • [5] 'Wir sind wir'의 바이에른 방언. 해석하면 '우린 우리일 뿐'이라는 뜻. 누가 어디서 뭐라고 하든지간에 우린 우리일 뿐이라는 의미로 바이에른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 [6] 뉘른베르크는 바이에른 다음으로 분데스 최다 우승팀인것이 보여주듯 과거에는, 특히 2008년 즈음 이전에는 레비어 더비만큼이나 치열한 매치중 하나였다. 그러나 뉘른베르크는 그 후 차차 몰락의 길을 걷더니 13/14시즌에는 결국 17위로 다이렉트로 강등되고 말았다.
  • [7] 국내 네티즌들에게 익숙한 명칭이긴 하지만 2013년까지는 존재하지도 않던 더비 이름이었다. 도르트문드 팬들에겐 레비어더비가, 뮌헨 팬들에겐 뉘른베르크, 묀흐너 더비가 더 중요한 걸 잊지 말자.
  • [8] 이전에도 바이에른 보드진과 고문역할을 맡았으나 건강문제로 2012년 사임했었다가 복귀했다.
  • [9] 바이에른 뮌헨의 보드진이자 현 아디다스사의 CEO이다.
  • [10] 분데스리가 최고 이적료로 마리오 고메즈의 3700만 유로를 넘어섰다. 바이아웃 규정으로 영입되었다.
  • [11] 선발 라인업 11명 다음의 번호인 12번을 팬들을 위해 영구 결번으로 지정해 놓았다.
  • [12] 유프 하인케스 감독의 지휘아래 바이에른 뮌헨은 2013시즌 역사를 새로 쓰며 유럽 최정상의 클럽으로 다시금 우뚝섰다. 좌로부터 분데스리가 마이스터 샬레, UEFA 챔피언스 리그 빅이어, DFB 포칼컵, UEFA 슈퍼컵, FIFA 클럽 월드컵트로피이다. 이 모든걸 단 한 시즌에 따냈다.
  • [13] 챔피언스리그,컵위너스 컵,유로파 리그
  • [14] <del>UEFA 플라그를 가진 팀은 4팀뿐이며</del> 공식적으로 플라그를 수상한 구단은 유벤투스 뿐 첼시, 아약스, 뮌헨은 조건만 채워졌으며, 유로피언 컵 3연패는 3팀만이 가진 기록이고 트레블은 현재 7팀이 해냈다. 이 중에서 전부 달성한 팀은 아약스와 바이에른이 유일하다.
  • [15] 국내에서는 판을 뜻하는 플레이트라는 잘못된 명칭으로 알려져 있지만 명판을 뜻하는 플라그가 맞다. 그리고 최초로 유럽무대를 모두 제패한 유벤투스 이외에는 수상 기록이 전혀 없다.
  • [16] 2005년 FC 바이에른 뮌헨이 66,000명의 바이에른 팬들을 대상으로 투표한 결과 선정된 구단 역대 베스트11이다.
  • [17] 이는 바이에른 뮌헨이 뮌헨 한 도시를 대표한다기보다는 바이에른주를 대표하는 팀으로써의 이미지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뮌헨은 바이에른의 주도이다. 독일은 1870년에 통일되기 이전까지 여러개의 왕국과 공국으로 나눠어져 있었기 때문에 지역색이 강하다. - 자세한건 데어 클라시커 유래 부분 참고.
  • [18] 물론 이과인이나 외질같은 경우는 나름 제값주고 팔았지만 그 전의 어마어마한 삽질들과 1000억을 공준분해 시킨 팀이라는 걸 잊지말자...
  • [19] 한국의 고등학생들에게 있어서 서울대의 위상과 비슷.
  • [20] 70년대 묀헨글라트바흐는 5차례나 리그 우승을 할 정도의 강팀으로 바이에른 뮌헨과는 라이벌이었다.
  • [21] 그러나 마테우스 역시 현재 독일 축구협회에서는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고 있다.
  • [22] 이 때가 어이없는 게 이 3명으로 가히 남의 집 기둥뿌리를 뽑아다가 본인 기둥뿌리로 삼은 격이기 때문이다. 전설의 트리플 러너업 시즌 당시 이 3명을 제외하면 월드클래스에 가까웠던 멤버는 그나마 스-외르그 부트, 베른트 슈나이더, 올리버 뇌빌 정도뿐이었다.
  • [23] 바이에른 팬들도 반신반의하다가 갑작스러운 라이벌 팀 선수 영입에 혼란스러워했다. 별 필요도 없어 보였는데다, 한동안 라이벌 밟기성 영입이 없어서 그 이미지가 엷어지고 있던 시점이기도 했다.
  • [24] 2천만 유로 이상의 금액을 탈세해서 감옥행 얘기도 쏱아져 나오고 있었다.
  • [25] 물론 레반도프스키 정도의 클래스 있는 스트라이커가 공짜로 풀린다는데, 게다가 선수 본인도 드림클럽이라는데 심지어 라이벌 팀 에이스인데 마다할 클럽은 없다. 빌바오라면 모를까
  • [26] 사실 따지고보면 리가 내 경쟁팀 선수 빼오기야 EPL을 비롯한 타 리그에서도 숱히 벌어지는 일이고, 프로 세계에서 돈의 논리가 '충성심' 같은 것에 우선하는건 매우 당연한 일이긴 하다. 바이언의 영입 사례 중 굳이 바이언을 비판할 거리를 찾자면 하비 마르티네스의 영입 과정이라든지, 마리오 괴체의 영입 '발표 시기' 정도를 들 수 있다.
  • [27] 특히 북부를 대표하는 함부르크와 베르더는 남부를 대표하는 바이에른 뮌헨을 싫어한다.
  • [28] 올리버 칸의 후계자로 유스시절부터 정성들여 키우던 하엘 렌징이 부진하자 바이에른 뮌헨에 나름대로 자격지심이 있을듯한 한스 외르그 부트-레버쿠젠 전성기 시절 주전 골키퍼였으나 바이에른 뮌헨에게 막히며 번번히 우승의 꿈이 좌절이 되었다.국가대표에서도 바이에른 뮌헨의 올리버 칸에 밀리며 벤치신세.최소한 이 당시에는 반 바이에른 뮌헨파라고 봐도 된다.-를 영입하며 성골 격임에도 렌징을 방출시킨 사례를 볼때, 다른팀들도 그렇지만 굉장히 냉정하게 인사정리를 해버린다. 이에 따라 렌징은 유스 출신임에도 반 바이에른 뮌헨파가 될 가능성이 높다.밀어줄 때 잘하라고! 싹수라도 보였으면 방출된 유망주가 6개월 백수하지도 않겠지.
  • [29] 냉정하긴 했지만 다들 노쇠화가 확연하거나 유리몸이거나 포텐이 안 터지거나 등등 합리적이긴 했다. 첼시는 뭘 믿고 피사로를 산 거지?근데 피사로는 다시 분데스에 돌아오고 나서 부활! 부왘!
  • [30] 마테우스는 바이에른 뮌헨의 라이벌팀인 묀헨글라트바흐 출신이긴 하다. 그러나 바이에른 뮌헨에서 활약한 시간이 더 길었고, 전성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아무래도 뮌헨의 레전드로 기억되고 있다.
  • [31]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안정환이 잠깐 머물었던 클럽이다.
  • [32] 보통 분데스리가의 팀들의 경기를 보면 카메라 워크가 EPL같은 타리그에 비하여 카메라 워크가 상당히 떨어지는 편이다. 왜냐? 그거야 구장으로 몰려오는 관중들이 그만큼 많기에.(...) 하지만 바이에른 뮌헨의 홈 구장인 알리안츠 아레나만큼은 예외인게 카메라가 그야말로 끝내준다. 월드컵 개막전 경기장이니만큼 당연히 카메라워크를 생각해서 만들었기 때문.
  • [33] 바이에른 24회, 뉘른베르크 8회(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공동2위)
  • [34] 13-14시즌 결과 결국 뉘른베르크가 강등당하면서 당분간 이 더비는 볼 수 없게 되었다.
  • [35] AG는 Aktiengesellschaft(주식회사)의 약자, EV는 Eingetragener Verein(등록 클럽)의 약자이다.
  • [36] DFB(독일축구협회) 산하 클럽들은 50+1 제도에 의해 한 개인이나 회사가 구단의 51% 이상의 지분을 가지는것이 금지되어있다. 바이에른도 여타 분데스리가 클럽들과 같이 소시오 제도로 운영되는 시민의 클럽이며, 80%에 달하는 지분이 바이에른 뮌헨 e.V와 11만에 달하는 팬클럽이 보유중이다.
  • [37] 바이에른 근교의 헤르초게나우라흐에 본사가 있다.
  • [38] 대회방식은 까다로운 조건없이 아마추어팀도 모두 참여 가능하며, 토너먼트방식으로 승자를 가려 우승팀은 꿈에그리던 바이에른 뮌헨과 대결할 수 있는 영광을 안는다. 물론 매년 우승팀들이 뮌헨에게 15:0정도로 학살당하지만
  • [39] 따라서 뮌헨은 강등당한 적은 없지만 1부 리그 개근 팀이 아니다.
  • [40] 위의 두 감독 모두 구 유고연방 (현재의 크로아티아) 사람이다.
  • [41]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지역예선 당시 대한민국의 U-23 대표팀 총감독을 맡았으나, 스파르타식 훈련을 중시하는 김삼락 감독과의 불화로 인해 2회 연속 본선진출에 성공하고도 경질된 비운의 명장이다.
  • [42] 도르트문트와의 12-13 챔스 결승에서 갑옷입고 트로피를 들고 나오신 그 노신사분이 이분이다. 현 바이에른에서 코치직에 계신다.
  • [43] 물론 1년만에 하인케스의 뮌헨이 기록을 따라잡았다. (05/06뮌헨:83점, 11/12도르트문트:84점, 12/13뮌헨:91점)
  • [44] 공식기록상 21회 우승이지만 엠블럼 위에 별을 달 수 있는 자격은 1963년 통합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 기록만 계산하기 때문에 1932년의 우승은 합산되지 않는다.
  • [45] 이 패배는 12/13 챔피언스 리그에서 되갚아주기까지 꽤 긴 시간 뮌헨 팬들을 괴롭히게 된다. 이 경기 전까지 바이에른은 압도적인 대 바르셀로나 상대전적을 자랑했으나 이 경기에서의 4:0으로 12/13까지 모든 상대전적이 물거품 취급당하게 된다. 이게 전력승부라면 억울하지도 않지 바이에른 입장에서는 최악의 부상 트러블이 발생하며 그저 허물어지기만 했던 경기였다. 리베리는 부상에서 복귀한지 2번째 경기, 루카 토니와 알틴톱은 부상에서 복귀한 첫 경기였다. 이들 말고 본격적인 부상자들은 챔스에서 제라드와 득점 공동 선두였던 클로제, 교체 1순위이던 보로프스키(막 부상 복귀해서 교체 명단에는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수비라인이 붕괴했다. 람(명단에는 있었다.), 루시우, 반 부이텐이 한 번에 나가버리면서 그냥 생각해도 아뜩한 수비라인 유망주들 렐과 브레누로 메시를 막으라는 꼴이 되어버렸다. 때문에 전성기를 구가하던 바르셀로나 팬들이 이 4:0을 언급하며 뮌헨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호언할 때 그야말로 피꺼...
  • [46] 클린스만 시절부터 주장이긴 했다. 참고로 반 봄멜은 바이에른 역대 주장가운데 최초로 비 독일인이 주장을 맡은 것이다.
  • [47] 특히 당시 바이에른의 수비진은 끔찍함 그 자체였다. 챔스 우승을 다투는 강팀의 전력이라 보기엔 수비진이 매우 가관이었을 수준. 그리고 결승 당일은 프랑크 리베리가 퇴장징계로 출장을 못하는 비극까지 있었다.
  • [48] 구스타보를 파는데에 강한 반대의사를 비친 호펜하임의 랄프 랑닉감독이 구스타보가 팔리니 사임을 하였을정도.
  • [49] 이때 중미로 포변을 안했다면 지금처럼 정상급 미드필더가 되지 못했을것이다.
  • [50] 사실 루시우가 있었대도 과연 좋아졌을지는 의문의 영역인 게, 뮌헨이 비교적 안 좋던 시절 루시우는 육체능력이야 두 말할 여지가 없었지만 나는 앞으로 나갈 테니 뒤를 부탁한다 식의 플레이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수비적 마인드라도 확실한 두 사람이 서 있는 거와 비교했을 때 난형난제였을 수도 있다.
  • [51] 바트슈트버와 티모슈크로 메울 수 있긴 했다. 허나 바트슈트버는 안 그래도 얇은 수비진 구멍 메꾸기 바빴고, 티모슈크의 본업은 수비형 미드필더.
  • [52] 12-13 단테-보아텡의 뒤를 받쳐 노련한 수비력과 빌드업, 무시무시한 세트피스시의 위력으로 트레블에 일조했다.
  • [53] 그래도 많은 전문가들은 챔스 경험이 많은 바이에른의 조1위로 예상하었다.
  • [54] 그 쐐기골도 그냥 놔두면 노이어가 쉽게 막을걸 구스타보 발에 맞으며 방향이 완전이 꺾여 들어가고 말았다.
  • [55] 챔피언스 리그 사상 최다 점수차 승리 기록을 경신했다.
  • [56] 10전 9승 1무. 그야말로 무패다! 다만 1314챔스 4강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다시 만나 원정에서 0:1, 홈에서 0:4로 탈탈 털리면서 무패 기록은 깨지게 되었다.
  • [57] 흥미롭게도 97-98 시즌 당시 레알 마드리드의 7번째 빅이어를 가져다 준 감독이 하인케스였는데, 리그 성적 부진에 책임을 물어 경질되었었다. 이 경기로 하인케스는 그를 내팽겨친 친정팀에 비수를 꽂았다.
  • [58] 참고로 이보다 10년전에는 바이어 04 레버쿠젠이 트리플 러너업을 한 적이 있다. 그로 인해 이날 백업 골키퍼였던 한스 외르크 부트는 두차례 트리플 러너업을 경험한 선수가 되었다.
  • [59] 하지만 마리오 고메즈는 한 수 더 뜬다. 소속팀 트리플 러너업에다가 리그와 리그컵, 챔피언스 리그 득점 2위로 콩라인을 세 번이나 더 탔다! 안타깝게도(?) 유로 2012에서 독일이 4강에서 탈락해서 유로 준우승이 날라갔지만 페르난도 토레스가 결승전에서 1골 1도움을 하여 유로 2012에서까지 득점 2위가 되어 버렸다. 2012년 고메즈 혼자서 미하엘 발락의 콩쿼드러플을 초월한 콩라인 7관왕에 오르는 위엄을... 결국 이름도 비슷하겠다 고메즈의 별명은 콩메주확정!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빨리 고메즈 항목을 만들어 주세요
  • [60] 분데스리가 우승팀과 DFB-포칼 우승팀이 펼치는 경기. 지난시즌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더블을 했기때문에 2010-2011 포칼 우승팀인 바이에른이 상대하게 되었다.
  • [61] 원래 세금 포함 46m이었으나 라 리가에서 6m를 내주었다. 이를 두고 아틀레틱 빌바오는 상당히 불쾌해했다고...
  • [62] 물론 대부분의 골키퍼가 세트피스 상황에서 노려지는 슛을 막기가 쉽지는 않다. 다만, 노이어는 대부분의 실점이 세트피스 상황이라는게 더 돋보이기에 들리는 말.
  • [63] 람의 허무한 실수로 선제골실점, 그냥 놔두면 아웃일 시드니샘의 부정확한 헤딩이 하필 앞에있는 보아텡의 안면에 맞고 들어가 결승골 허용
  • [64] 맨유, 바르사는 12점차, 유벤투스와 PSG는 5점차를 마크중.
  • [65] 참고로 3월 16일까지 바르셀로나는 85득점, 30실점, 바이에른은 67득점 10실점, 득실차가 30골대인 맨유나, 유벤투스,PSG같은 다른 리그 1위팀 득실차 2배를 넘어섰다
  • [66] 뒷발 맞고 공중에 붕 뜨다가 골대 안으로 그대로 들어갔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골.
  • [67] 바이에른의 3번째 골은 토마스 뮐러르디 알바를 밀친 것이 파울로 인정되지 않는 오심논란이 있지만, 그 전에 바르셀로나의 페널티 박스 안에서의 핸들링 반칙도 적어도 두번은 못 본 체하고 넘어갔다.
  • [68] 아이러니하게도 피케는 경기전 인터뷰에서 "4:0으로 이기는게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기적을 만들어내고 싶다"며 동료들과 팬들을 격려하기도 했었는데, 자책골 직후 본인의 심정이 어떠했을지는...지못미.
  • [69] 바로 뒤에 수비수를 따돌리고 들어온 마리오 만주키치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발을 안 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즉, 자책골 아니었어도 어차피 99% 골이었던 상황.
  • [70] 시즌내내 뮌헨의 통곡의 벽이었던 단테가 이날은 폭풍설사를 저질렀다. 친정팀이라고 봐주는거냐
  • [71] 단테가 전 동료 마르코 로이스의 낭심(...)을 발로 차면서 페널티 킥을 내주고 말았다(로이스와 단테는 둘 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같이 뛴 경험이 있다.).
  • [72] 바이에른 보드진은 유프 하인케스 감독의 잔류를 원했으나 하인케스는 가족들과 상의 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포칼 8강경기 승리 후 은퇴의사를 밝혔다. 펩 과르디올라의 영입은 그 후인 1월 말에 뉴욕에서 극비리에 이루어진것. 현재는 PSG, 레알 마드리드 등 다른 명문 팀들과도 링크가 자주 뜨는 중. 그러나 하인케스옹께선 모두 거절하셨다. 그 후 본인이 직접 기자회견에서 감독직 은퇴를 선언하였다. 바이에른의 간부로서 일할듯 싶다.(현재는 고향 묀헨글라트바흐의 자택에서 지내고있다고 한다. 콩트레블하고 한시즌만에 쟁쟁한 상대들 다 꺾으면서 트레블을 하셨으니 휴식이 필요하셨던 모양.)
  • [73] 분데스리가는 다른 리그들과 달리 34경기밖에 되지 않기때문에 38경기룰 티르는 EPL이나 라리라로 치면 승점 100~103점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 [74] 9라운드 바이어 04 레버쿠젠에게 홈에서 기록한 어이없는 1패로 무패우승은 실패.(후반 87분 그냥 놔두면 멀리 아웃될 시드니샘의 똥볼헤딩이 하필 앞에있던 제롬 보아텡의 안면에 맞고 들어간게 결승골이 됐다.)
  • [75] 오타가 아니라 실제로 6분만에 3골을 때려박았다!!! 뭐 물론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다 떠먹여준거긴 하지만 그래도 4강에서 이런 역대급 기록이 나왔다는게 흠좀무.(경기는 바이에른이 6-1 승리)
  • [76] 이게 왜 엄청난 수치냐면 분데스리가는 38라운드까지 진행되는 EPL, 라리가 등 여타 빅리그와 달리 34라운드밖에 없고, FA컵인 DFB-포칼도 라리가는 홈&어웨이로 치르고, EPL은 리그컵까지 병행하지만 독일은 오직 포칼밖에 없는데다 그것마저 단판승부로 치러 경기 수가 상당히 적다. 150골이면 실로 엄청난 기록이다.
  • [77] 굵은 글씨는 등판에 적힌 이름이다.
  • [78] 샬케 04로 완전이적이 유력함.
  • [79] 마이어의 갑작스러운 은퇴로 부주장이던 뮐러가 주장이 되었으나 차기시즌 바로 포트 로더데일로 이적해서 주장기간이 매우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