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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P

last modified: 2015-04-06 16:22:14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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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디자인플라자[1]

서울특별시 중구의 복합 문화시설. 심시티 서울 디자인서울의 상징.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의 주도로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설계에 의해 지어졌으며 2014년 완공되었다. 홈페이지

Contents

1. 소개
2. 역사
3. 뭐하는 시설인가?
4. 건물 특징
5. 반응
5.1. 옹호
5.1.1. 성곽 터 보존에는 성공
5.1.1.1. 어째서 역사성 계승에 실패했는가?
5.1.2. 건축물을 정치적 맥락에서만 평가하는 것이 정당한가?
5.2. 비판
5.2.1. 한국 건축가들은 무시하나?
5.2.1.1. 어째서 한국 건축가를 무시했는가?
5.2.2. 역사성은 무시하면 끝인가?
5.2.2.1. 해외담론에 좌우되는 공공건축
5.2.3. 한계마저 초월한 예산낭비는 어쩔 건가?
5.2.4. 앞으로 어쩔건가?
5.3. 네티즌들의 반응
6. 이후 상황
7. 같이보기
8. 외부고리

1. 소개

좋아하는 사람은 한없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한없이 싫어하는 건물
구(舊) 동대문운동장이 철거된 자리에 세워지게 되었던 공간. 2007년 동대문운동장이 철거된 이후 동대문운동장에 대한 개발정책의 일원으로 세워지게 되었으며 2008년에 착공하여 6년만인 2014년 3월에 개장하였다. 현재 운영기관은 서울특별시이며 2009년에 먼저 개장한 동대문역사문화공원과 더불어 총관리를 한다.

2. 역사

2007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재임 당시 디자인 서울을 계획하는 목적으로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한 후 2008년 동대문운동장 부지에 역사문화와 디자인이 조화된 관광지를 설치할 계획을 목적으로 초안이 세워지게 되었다. 그 결과로 2009년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 세워지게 되었으며 이 DDP 설계와 정책은 오세훈 시장 임기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나 2011년 오세훈 시장이 서울시 무상급식 시민투표 실패에 대한 책임으로 사임하고 후임으로 박원순 시장이 취임한다. 박원순 시장이 사람 중심의 복지 서울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오세훈 시장이 추진했던 디자인 서울 프로젝트 대부분이 파기되고 서울시 예산에서도 디자인 관련 예산이 대거 삭감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공사가 계속 진행되고 2014년 3월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3. 뭐하는 시설인가?



이름만 듣고 목적을 딱 떠올리기가 어렵다. 이름에 쇼핑몰이라고 박혀 있으면 쇼핑몰이라고, 전시관이라면 전시관이라고 단어 하나로 설명할 수 있지만 그게 안 된다. 애초부터 복합 시설로 기획된 만큼 쇼핑몰 같은 단순한 개념만으로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DDP 홈페이지에서는 목적을 이렇게 설명한다.

DDP는 세계 최초의 신제품과 패션 트랜드를 알려주고, 새로운 전시를 통해 지식을 가르쳐주며, 다양한 디자인을 체험하게 하는 콘텐츠로 운영됩니다.

DDP는 알림터, 배움터, 살림터, 어울림광장(디자인장터 포함), 동대문역사문화공원으로 이루어져있는데

  • 알림터 : 전시장 내지는 갤러리로 쓸 수 있다. 여기서 규모가 큰 공간.
  • 배움터 : 박물관 기획전시 쪽으로 쓰기 좋은 곳. 메인테넌트가 간송미술관이다.
  • 살림터 : 쇼핑하는 곳 맞긴 한데 일반적으로 잘 팔리는 물건 위주로 기획한 곳은 아니고(...) 디자인 업체들이 물건 전시해놔서 디자인을 경험한다는 취지의 장소라 하겠다.
  • 어울림광장은 중앙 광장으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나오면 보이는 곳이다.
    • 디자인장터 : 쇼핑하긴 하는 곳. 옷도 있고 디자인 쪽 물건도 있지만 규모는 작다. 그러나 식당이 이쪽에 있다.
  •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이렇게 각 시설들은 나름대로 디자인에 끼워맞출 수 있는 여러 역할을 하고, "디자인/창조산업의 발신지"라는 DDP의 슬로건 하에 하나로 묶이게 된다.

4. 건물 특징


이라크의 유명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설계안 "환유의 풍경"이 현상설계에서 당선되었다. 비정형 곡면의 시공 난이도 때문에 여러 번의 수정을 거친 끝에 현재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초기 이미지가 당선작으로 공개됐을 때부터 업계에서는 논란이 일었다. 자하 하디드가 비판받는 부분 중 하나가 완공된 실제 건물보다 초기 이미지가 더 아름답다는 점인데, 이 이미지는 그런 비판이 무색하게도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는 것. 신입사원한테 맡겼나 원래는 이런 식으로 그린다.

세계적인 건축가답게 건물의 완성도는 상당한 수준이다. 곡선 중심으로 이루어진 공간 활용은 기존 한국 건축물들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독특한 내부 구조를 보여준다. 외부 형태도 이 정도로 본격적인 비정형 건물은 세계적으로도 봐도 많지 않다. 건축계의 상례는 초기 디자인은 비정형이더라도 시공과정을 거치며 어느 정도 현실적인 수준으로 표준 규격에 맞춰가는 식이다. 그러나 이 건물은 모든 외벽 패널을 각각 전혀 다른 모양과 곡률로 하나 하나 가공해냈다. 자하 하디드 경력을 봐도, 완공작 중 이 정도로 본격적인 비정형 건물은 찾기 어렵다. 시공상의 완성도가 이 정도로 높은 비정형 건물은 세계적으로도 프랭크 게리의 몇몇 작품 정도. 역시 세계적인 스타 건축가이자 비정형 건축을 추구하고 있는 쿱 힘멜브라우가 작업한 부산 영화의전당의 외장과 비교하면 DDP의 시공의 성취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를 두 작가의 역량 차이로 볼 수는 없고 도리어 해당 지자체의 예산과 관련이 있다. 영화의전당과 비슷한 조형을 한 쿱 힘멜브라우의 BMW벨트는 건축주의 풍부한 예산으로 인해 DDP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비정형 건축의 또다른 걸작이다. 아마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이미 오래된 건물들이 주변에 들어서있는 동대문이 아니라 송도 신도시같은 곳에 들어섰다면 이정도 비판은 받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거기다 성벽이나 건축 도중 발견된 가옥터를 일단은 어느 정도 보존하여 공원 부분을 형성했다. 현대적인 외형의 DDP와 역사성을 갖춘 성벽의 대비를 통해 시민들에게 독특한 경험을 제공하는 외부공간의 구성도 흥미롭다. 결국 내/외부공간, 독특한 조형등을 통해 사실상 동대문 주변의 분위기를 이 건물 하나가 일신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동대문, 두타, 롯데피트인 등 동대문의 다양한 상업용 건물들이 DDP를 둘러싸고 있어서 계속 시민들이 마주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5. 반응

일반인의 반응은 외계 건축물을 연상된다는 의견들이 대세. 무한도전 지구를 지켜라 특집에서 대놓고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하러 온 UFO로 묘사해버리기도 했다. 스타플릿 엔터프라이즈 호 실제로 M 구역의 '디자인 둘레길'을 걷다 보면 정말 영화에나 나올법한 간결한 복도와 한번씩 밖으로 보이는 조형 계단이 미래 우주선 내부를 연상시킨다. 엘리베이터 구역 새소리는 덤

이런 새 건물이 들어서면 으레 그렇 듯, DDP에게 내려질 비난은 역사성 문제를 제외하면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다, 서울의 맥락에 어울리지 않는다 정도이리라 보인다. 하지만 서울특별시청만큼이야 하겠어?[2]

5.1. 옹호


DDP를 옹호하는 주장도 있다. 건축에서 맥락주의는 나폴레옹 3세가 파리를 바로크 양식으로 통일한 사례나 아돌프 히틀러가 베를린을 게르마니아로 마개조하려고 시도한 사례 같은, 권위주의 정권에서 많이 나타나는 디자인 방법론이다. 게다가 최근 지자체의 건축들이 유리궁전이라는 일종의 한국적 맥락을 형성하고 있는 와중이다. 물론 유리궁전의 맥락에 의도가 있다고 보이지는 않지만, 이런 상황에서 DDP에만 고전적인 맥락주의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 비판인가는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DDP로 진입하는 지하 입구에서 받는 느낌은 특별하다.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지하로 진입하는 에스컬레이터나 대영박물관대영도서관잠깐만 거긴 천장을 거대하게 둘러싸 만든 내부 광장 만큼이나 현대적이다.

DDP에 대한 건축가의 변을 직접 들어보자. 자하 하디드의 인터뷰. 수석 디자이너인 패트릭 슈마허의 인터뷰. 건축 전문지인 공간에서 진행한 인터뷰이다 보니 업계용어가 난무하지만, 이 건물에 대한 작가들의 개략적인 생각은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위대한 시공 운운하는 것을 보면 건축가 본인들도 완공된 건물의 완성도에 만족하는 것 같다. 자하 하디드 본인은 주변 경관과 이질적이란 지적에 “건축 자체가 지형이 됐다” 고 반박했다.

5.1.1. 성곽 터 보존에는 성공


DDP의 역사성에 대한 비판은 크게 2개의 층위로 나누어 진다.

1. 한성 성곽과 하도감 터 등 조선시대 유물 복원 미비
2. 동대문 운동장 역사성 승계 실패

문제는 이 두개의 비판이 서로 충돌한다는 점이다.

우선, 동대문 운동장터를 복원하고자 한다면 하도감 터는 발견도 못했을 것이고, 한성 성곽 부지를 땅박으로 끄집어 내는 것도 실패했을 것이다. 동대문 운동장 중 축구장은 한성 성곽을, 야구장은 하도감 터라는 두개의 유적지 위를 덮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대문 운동장의 역사성을 승계하기 위해서 동대문 운동장 부지와 건물을 살리고 리모델링하는 방향으로 잡았다면 한성 성곽은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한성 성곽을 땅에 묻힌 상태로 그대로 놔두고 동대문 운동장을 리모델링 해야했기 때문.

반면, 한성 성곽을 살린다면 동대문 운동장을 완전히 살리는 것은 불가능 하다. 야구장은 어떻게 살릴 수 있어도 하도감 터는 아예 발견도 못했을 것이다. 아예 땅이 묻혀있는 것과 그래도 주춧돌이라도 전시되고 있는 현상황 중 어느 쪽이 더 나은 가를 생각해 본다면 주춧돌이라도 발견한 현상황이 낫다고 볼 수도 있다.

서울 성곽 복원에 실패하고 수문을 마치 DDP뒷 문 처럼 사용했다고 비판하는 의견이 있으나 이러한 상황이라도 과거 동대문 운동장에 비하면 진일보한 것이다. DDP건물이 성곽 위를 덮어버리지 않아 성곽을 복원하는 것이 가능하며 실제로 수문과 성곽 하단부는 잘 관리되고 있다.

당시 시장으로서는 세계적인 건축가의 건물을 남기고 싶다는 욕구와 한성 성곽길 복원이라는 당초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성공한 건물인 샘이다.

5.1.1.1. 어째서 역사성 계승에 실패했는가?

문제는 당시 동대문 운동장 부지에 대한 담론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새로운 건축이 지어질 때마다 맥락의 문제를 얘기했지만, 서울시가 지향해야할 맥락이 무엇인지 제대로 정해지지 않았던 것이다.

먼저, 동대문 운동장의 역사성을 계승하고자 한다면 한성 성곽 복원을 포기하거나 혹은 축구장을 포기해 성곽은 살리고 야구장은 살려서 리모델링하는 방향으로 담론을 발전시켰어야 했다. 하지만, 동대문 운동장은 결코 적지 않은 시간동안 운동장 기능을 하지 못한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고 제대로 관리가 되지 못해 흉물이 되어가는 상황이었다.

다음으로 조선시대의 역사성을 계승하고자 한다면 동대문 운동장을 완전히 밀어버리고 성곽 하단부만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성곽 상단부 까지 제대로 복원해 동대문과 근처 한성성곽길과 연결하고 철저한 발굴을 통해 하도감 터등 조선시대 건물 터를 제대로 발견해서 복원했어야 했다. 하지만 관련 담론도 충분히 성숙되지 않았고, 그저 성곽 정도 복원해서 한성 성곽길을 제대로 만들면 좋지 않을까, 라는 서울시의 계획만 있을 뿐이었다.

만약에 하도감 터를 복원하고자 했다면 하도감 터만 복원할지 아니면 건물을 복원할지, 건물을 복원한다면 이미 조선시대의 훈련소로 기능을 할 수는 없을 터인데 어떻게 박재화된 구경거리 신세를 면할지,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에 관한 담론이 성숙해 있었어야 했다. 하도감 터의 상태는 정확히 알 수 없어도 적어도 동대문 운동장 자리에 조선시대 훈련소가 있었다더라, 정도는 알고 있었을 테니까. 헌데 하도감에 대한 의견이 하도감을 발굴한 소감 정도로 한정되는 것을 보면 동대문 운동장이 있을 당시에 하도감에 대한 관심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관심이 없었으니 관련된 담론이 형성되지 못했고 담론이 형성되지 못했기에 막상 하도감 터가 발견되어도 제대로된 비판이 어려웠다.

DDP는 양측의 빈틈을 치고들어와 당시 시장의 욕구가 발현된 것이다. 양쪽 모두 제대로된 담론과 대안을 형성하지 못했고, 동대문 운동장과 부지는 방치되어 있었다. 방치되어 있는 부지에 대한 계획과 욕심을 가지고 치고 들어오니 제대로된 비판이 불가능 했고 양측의 역사성 계승을 실패하고 당시 시장의 계획만 구현된 것이다.


5.1.2. 건축물을 정치적 맥락에서만 평가하는 것이 정당한가?


DDP에 대한 평가는 DDP 건축을 결정한 전임 시장에 대한 평가와 항상 함께한다. 대다수의 평가를 보아도 자하 하디드의 신작이라기 보다는 전임 시장의 오점으로 평가받는 경향이 크다. 전임 시장을 지지하는 이들은 건물도 칭송하는 반면 전임 시장을 비판하는 이들은 건물도 비판하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가 이미 지어져서 기능하고 있는 건물에 대한 냉정한 접근이 가능할지 의문이 든다.

이미 5,000억이라는 경악스러운 비용이 들어간 건축이고[3] 다양한 공간과 디자인예술을 위해 기능해야 한다는 목적을 가진 건물이 도심에 위치한 것 자체는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어떻게 잘 활요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는 다소 부족해 보인다. 그저 전임시장에 대한 비판 일색으로 건물을 무시한다면, 이는 동대문운동장 역사성 담론을 도외시 해서 DDP를 잉태한 실수를 반복하는 일이 될 것이다.

5.2. 비판

비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왜 외국 디자이너를 써야 되었는가?
(2) 왜 건축물이 저렇게 이질적인가?
(3) 왜 돈은 무지막지하게 많이 들었는가?
(4) 용도가 무엇인가?

5.2.1. 한국 건축가들은 무시하나?

역으로 한국 건축계의 위기를 보여주는 건축이라고 볼 수도 있다. 거대한 건축물은 차라리 외국 유명 건축가에게 맡기고 중소규모의 건축물은 그냥 복붙을 해버리는 식이니 한국 건축가들이 설 자리는 그만큼 줄어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

당연히 한국 건축가들의 심기가 매우 불편한 상황이다. 공모전에 한국 건축가들도 다수 참가했으나 외국인의 작품이 다소 의심스러운 과정을 거쳐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해외 건축 디자인 트렌드의 최전선에 선 자하 하디드의 작품인 만큼 디자인의 혁신성은 인정할 만 하나, 서울성곽이나 동대문운동장의 역사성에 대해 한국인 만큼의 이해도나 애정이 있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지나치게 급진적인 디자인으로 세계적으로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건축가의 작품을 별다른 비판 없이 행정가의 직권으로 수입하지 않았느냐는 의견도 있다. 서울시는 이미 청계천 광장에 클래스 올덴버그의 소라 모양 조형물을 설치할 때도 비슷한 비판을 받은 전적이 있다. 결국 우리나라 건축가들은 해방 이후 최악의 건물들 20위 중 DDP를 랭킹 5위에 선정하기에 이른다.

현상설계 당시 참가작들을 모아놓은 사이트. 직접보고 판단해 보자. 참고로 해당 현상설계는 지명초청 방식으로 주최측에서 선정한 건축가만 참여할 수 있었다. 참가자들은 국내 건축가 4인과 외국 건축가 4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5.2.1.1. 어째서 한국 건축가를 무시했는가?

당시 한국 위정자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던 빌바오 구겜하임 미술관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하나의 성공신화였다. 별볼일 없는 도시(?)가 건축물 하나로 유명해졌다더라! 라는 이야기는 자신의 업적을 물질적인 형태로로 남기고 싶은 정치인들에게는 구미가 돋는 이야기였다. 이른바 빌바오 효과! 진위 여부를 알 수는 없지만 야! 사실은 구겐하임 미술관 디자인이 한국에 지어질 수 있었는데, 한국 높으신 분들이 보는 눈이 없어서 빌바오로 갔대!라는 소문은 여로모로 아쉬움을 낳았다.[4]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성공담은 이러한 공식을 머리속에 남겼던 것이다.

세계적인 건축가의 기괴한 건물=세계적인 명소=높으신 분의 업적

이러한 생각이 지배적으로 머리속에 박혀있으니 경쟁입찰은 그저 요식행위에 불과했던 것이다. 세계적인 건축가는 그분들이 보기에는 세계적인 명성으로 통하는 보증 수표로 보였으니까.

그러나 스페인의 쇠퇴한 산업도시였던 빌바오와는 달리 서울은 이미 충분히 작동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수도였고, 건물 하나로 이미지를 뒤집어 버리기에는 너무 담고있는 무게가 큰 도시였다.

우선 DDP가 들어서있는 동대문 근방만 봐도 그렇다. 과연 동대문이라는 건물이 가지는 무게가 DDP보다 작을까? 동대문과 DDP옆에서 시작하는 한성 성곽길의 아름다움과 산세와의 어울림이 DDP만 못할까? DDP를 홀로 보자면 훌륭한 완성도를 가지는 건물이지만 서울이라는 도시가 이미 담고있는 역사성을 덮어버릴 만큼 혁신적인 건물인지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다음으로 빌바오 효과를 보자. 분명 구겐하임 미술관은 빌바오라는 도시에서는 훌륭히 그 역할을 다해냈다고 볼 수 있다. 거대한 전시공간과 특히한 건물이 주는 충격은 쇠퇴한 산업도시를 미술관으로 가득찬 예술 중심지로 바꿔냈으니까. 하지만 서울은 쇠퇴한 산업도시도 아니고 이미 한국 예술의 중심지이다. 수많은 갤러리와 훌륭한 미술관을 도심에 품고 있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궁궐 건축이 즐비하다. 빌바오 효과를 기대하기는 여로모로 무리인 것이다. 이미 활성화된 도시니까.

게다가 프랭크 게리자하 하디드의 비정형 건축은 기괴한 모습이 자극적인 만큼 자극이 주는 휘발성도 굉장히 큰 건축이었다. 이미 유행도 지나버린 것.

실제로 생각만큼 세계적인 방향을 이끌어 내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냥 한국 내에서 훌륭한 건축물로 남아가고 있는 듯. 그럴 거면 차라리 한국 건축가에게 기회를 주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다. 자하 하디드는 이미 대형 건축물에 대한 기회를 많이 가졌지만, 한국 건축가들이 이정도 프로젝트를 이정도 권한을 받고 주도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 건축가의 주도로 이런 대형 프로젝트를 마무리 한다면 이는 한국 건축계에 경험으로 축적되겠지만, 이미 명성이 많은 자하 하디드 에게는 그녀가 겪어 왔던 많은 프로젝트 들 중 하나일 뿐인 것이다. 한국 내에서 봐도 아쉽고, 더 넓게 봐도 이미 많은 경험을 가진 건축가에게 그저 덤을 안겨주었을 뿐이니 아쉬울 따름이다.

잘못된 욕심에서 계획을 짜고 잘못된 선택을 했기 때문에 수준급의 완성도를 가지고도 DDP와 자하 하디드는 욕먹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위키러들의 주장일뿐 실제 목적과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으니 판단에 주의하길 바람.

5.2.2. 역사성은 무시하면 끝인가?

기억의 장소에 기억을 지워버리는 건축의 폭력 - 월간SPACE 2013년 3월호

DDP 자리에는 동대문운동장동대문야구장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지어졌는데, 결정적으로 서울성곽을 부수고 지어졌다는 점에서 역사성에 치명적인 오점이 있던 건물이었다. 그래도 대한민국 건국을 겪으면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겪었기 때문에 스포츠계를 중심으로 보존하자는 여론이 존재했다. 그러나 이미 상당히 시설이 노후화되어 있었고 프로경기를 할 수 없으므로 리모델링할 여지도 없는데다가 일제잔재, 서울성곽 복원이라는 명분에 묻혀버렸다.[5]

그러나 DDP는 이런 명분조차 만족시키지 못한다.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고 보니 조선시대 최대 군사 훈련시설이었던 하도감 터가 발견된 것인데, 이를 복원하지 않고 지나간 것이다. 게다가 과거 성곽 지하로 물길이 흐르던 수문이 발견되었는데, 현재는 완전히 DDP의 뒷문처럼 되어버렸다.

옹호자들은 DDP건축으로 성곽 부지가 훼손되고 수문 부재가 무너지진 않았다고 말하지만, 복원은 단순히 성벽 돌만 쌓아놓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원래 그 건축물의 기능을 어느정도 되살리고, 주변에서 성곽을 볼 때의 시야나 이후에 세워진 건축물과의 조화 등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복원할때 주변 부지까지 매입하면서 비용을 들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성곽을 복원한다 쳐도 DDP 건물에 가려 이전에 이 성곽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짐작하긴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수문의 경우 물이 흘러야 수문인데 DDP 건물을 짓느라 주변 터를 잡은 상황이라 더이상 수문의 기능을 하진 못한다. DDP로 인해 제대로된 복원은 불가능해진 것이다.[6]

어쨌든 DDP는 역사성 훼손이라는 영구까임권을 받아버렸으며, 이 이미지를 어떻게든 희석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되었다.[7]

5.2.2.1. 해외담론에 좌우되는 공공건축

일제시대에 준공된 건축을 정부주도로 리모델링한 예는 구 서울역사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다만, DDP가 엄청난 비판에 직면한 것과는 달리 문화역서울284는 한국 예술가들을 위해 공헌하고 있고 서울시민의 삶과 주변 경관에 잘 녹아들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 오르세 미술관이라는 성공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능을 상실한 기차역, 고전적인 외관,[8] 도시의 중심부에 있다는 위치. 모두 철도역으로 기능했던 오르세 미술관과 비슷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높으신 분들이 구 서울역 건물을 어떻게 활용할지 해외의 예를 찾아보면 바로 찾아볼 수 밖에 없는 성공사례였던 것. 오르세의 예를 참고하여 미술관으로 꾸미는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게다가 이미 많은 작품을 보유해 기존 미술을 전시하는 역할을 하는 오르세와는 달리 문화역서울284는 적극적으로 전시를 바꾸어가며 새로운 예술가들에게 전시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DDP는 빌바오 효과를 노리고 외국의 유명한 건축가에게 비정형 건축을 의뢰했지만 빌바오의 구겐하임과 서울의 DDP가 처한 환경은 전혀 달랐다. 여기서 두가지 아쉬운 상황이 발생한다.

첫째는 한국의 높으신 분들이 건축의 환경을 제대로 평가할 안목이 부족하다는 것.
둘째는 한국 건축계가 자체적으로 생명력있는 담론을 생성해 정치/행정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5.2.3. 한계마저 초월한 예산낭비는 어쩔 건가?

최초 사업계획 시 800억으로 책정되었던 예산이 완공 후 5,000억대로 늘어난 점도 대한민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사례이다. 외국도 마찬가지다 공사비가 6배로 불어나는 와중에도 여전히 이 건물의 용도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다는 점까지 포함해 여러모로 비상식적인 과정을 거쳐 완공된 건물인 것.

완공된 DDP의 연면적은 86,574㎡. 평으로 환산하면 26,189평 정도 된다. 전체 공사비 5,000억을 면적으로 나눠서 나오는 이 건물의 평당 공사비는 1,909만원 정도이다. 보통 건축계에서 디자인 좀 한다하는 작가가 설계하고, 돈을 좀 썼다싶게 지은 건물의 평당 공사비가 개략적으로 600~700만원 사이이다. 물론 건물의 퀄리티는 한도 끝도 없는 것이라 더 비싸게 지을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저 정도 금액 사이에서 공사비가 책정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이다. 그러니까 DDP는 단순히 면적이 넓어서 돈이 많이 든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같은 한 평을 짓는데 일반적인 작가 건물보다 3배 가까이 많은 공사비가 투입된 것이다. 이렇게 공사비가 증가한 요인은 전술한 비정형 형태에 기인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막 태동하고 있는 시공방식이다 보니 몹시 특수한 장비와 특수한 기술을 필요로 하고 이런 부분이 막대한 비용 증가로 이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시공비가 많이 들었다는 사실만으로는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문제는, 최초 사업계획 당시에는 시공비가 800억, 현상설계 당시에는 3배 가까이 증액된 2,270억으로 책정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현상설계에 참여하는 건축가가 고민하는 사항은 흔히 말하는 기능, 구조, 미에 국한되지 않는다. 주어진 예산 안에서 실현 가능한 계획안을 제시하는 것도 건축가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이다. 하디드의 초기 설계 안은 2,270억, 다시 말해 평당 860만원(이것도 적은 공사비는 아니다.)으로 지어질 수 있는 건물이 애초에 아니었다. 물론 현상설계에 참여하는 건축가는 보통 어느 정도 공사비 증액을 예상하고 디자인을 하는 경향이 있고 DDP 현상설계에 참여한 다른 건축가들의 안 중 예산이 빠듯해 보이는 디자인도 몇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하디드가 제출한 초기 디자인은 일반적인 공사비 증액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는 안이었다. DDP와 같은 관공서 발주 사업의 공사비 증액은 10%정도가 보통이다. 현상설계 당시의 국내 기술로 짓기가 가능한지조차 불투명할 정도였다. 하디드야 항상 그러듯이 자기 하고 싶은데로 설계를 했다 칠 수 있다. 하지만 서울시는 자신들이 작성한 응모요강 중 하나인 공사비 제한을 스스로가 완전히 무시한 채, 예산과 관련하여 무책임하다고도 볼 수 있는 하디드의 안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예산이 초과할 줄 몰랐다면 무식한 것이고, 알고도 뽑았다면 불공정한 것이다. 자하 하디드의 당선작에 대해 국내 건축계가 보내는 불편한 시선은 이렇듯 이해하기 힘든 서울시의 심사과정에 일부 기인하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참가자 중 한명이었던 승효상은 SBS와의 인터뷰에서 이 부분을 맹렬히 비난하기도 했다.

비정형 설계상 규격이 호환되는 자재를 거의 사용하지 않은 것은 앞으로 유지보수시 비용을 증가시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판넬이 다 모양이 다르니 하나 떨어지거나 하면 새로 판넬을 만들어야 한다. 3D 프린터로 찍어내면 되려나?
설령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흑자로 돌아선다 해도, 이러한 긍정적인 결과가 비합리적인 계획설계 및 불투명한 공사비 증액과 관련한 이해할 수 없는 행정처리에 면죄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5.2.4. 앞으로 어쩔건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사실상 건물 용도를 생각하지 않고 '지어놓고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같이 되어버려서 문제가 심각하다.

우선 건물 특성상의 문제가 있는데, 내부구조가 복잡해 전시관을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그전에 소라껍데기같은 비탈길 좀 게다가 내부 공간이 상당히 협소하고 개성이 너무 강해 행사를 치룰때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예로 개관식 이후 서울 패션위크를 열었을 때, 판매부스 행사에 참가한 디자이너들이 통로에 부스를 세워야 했다.

운영 면에서는 현재 간송미술관과 협력해 전시를 열고 있는데, 이게 DDP의 아킬레스건인 역사성 해결 측면에서는 굉장한 버프, 신의 한 수인 게 사실이다. 그러나 상업 디자인 전시장에 가까운 DDP와 맥락이 맞는지 의문이란 의견도 만만치 않다. DDP 측은 이런 것도 디자인에 포함된다고 주장하는 중.

하지만 이는 상당히 구색맞추기 변명에 가까운 감이 없지 않고, 실제로 2014년에 DDP는 상업성 전시를 주력으로 내세웠다. '트랜스포머 30주년 기념 오리지날 아트워크전', '서울시민과 함께하는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DDP 초대형 아트콜라보 페스티발', '문화 샤넬전', 'SBS드라마 특별기획전 <별에서 온 그대>',이게 신의 한수같다 '웨타 워크숍 판타지제왕의 귀환', 'BMW i3 신차 발표회' 등의 행사가 그러한 예이다. 덕분에 간송전 혼자 이질감이 굉장히 심하게 동떨어진 편.간송은 대체 무슨 죄냐

5.3. 네티즌들의 반응

국내 네티즌들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엇갈린 상황이다. 그 중에서 한나라당과 DDP 계획을 처음부터 세웠던 전직 서울시장 오세훈에게 좋지 않은 감정이 있는 진보계열 네티즌들의 '''반응이 매우 좋지않다"''. 그들의 반응은 "오세훈이가 시민들의 혈세를 다 쳐먹고 무상급식 반대하고 도망치더니 결국은 똥을 남겨놓고 가는구나", "한강 빛둥둥섬에 이은 최악의 건물이자 오세훈이가 싸 놓고 도망간 대망작", "세훈아, 한강과 동대문에 싸놓은 똥 치워라", "그거 만들 돈으로 무상급식이나 하시지" 라는 등의 조롱 섞인 반응이 보였다.

반면 자기들이 보수논객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네티즌들은 "그게 무슨 오세훈 시장 잘못이냐, 어차피 동대문운동장은 철거되어야 할 흉물이었다", "오세훈 시장의 업적이 빛나게 되었던 걸작!", "오세훈 시장이 잘못은 했어도 건물 하나는 참으로 잘 지었다" 는 반응도 있다. 특히 새누리당 지지자나 오세훈 시장을 지지했던 쪽에서 이런 반응이 많은 편이다.[9]

6. 이후 상황

개장 후 결과는 첫 해 재정자립도 84%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되고, 입지가 좋아 각종 국제 행사 및 상업 행사를 유치하고 있어 이후의 전망이 어둡지만은 않다고 할 수 있다. 'DDP 개관 100일만에 246만명이 방문'했다는 보도도 나왔으며 동대문축제 등 행사에도 만원사례를 기록, 주변 상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보도가 나왔다.

최초에 계획되었던 도서관 등의 공공시설 구역까지 죄다 유료 전시공간으로 변경되었으며, 그것으로도 모자라 각종 요금도 만만치 않다.떡볶이가 5천원 다시 말해서 수익성과 공공성을 맞바꾼 셈이라는 주장도 있다.

어찌되었든 3월21일 개관 후 지난 연말까지 DDP를 찾은 방문객이 누적 688만3456만여명을 기록하면서 목표치의 1.6배를 달성했으며, 첫해에 재정자립을 달성했으며 이와 함께 오세훈이 추진했던 둥둥섬까지 호평을 받으면서 오세훈의 선물이라는 기사까지 등장했다. 게다가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2015년 꼭 가봐야할 명소 52' 선정되는등 순항하고 있다. 자세한 이용 실적(...)은 DDP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확인 가능.

2014년에는 LED 장미를 전시하여 수 많은 커플들의 순례장소가 되었다.

2015년 개관 1주년을 기점으로 DDP를 방문한 방문객 수는 824만명을 넘겼다. 애초 목표였던 550만명을 훌쩍 넘겨 성공을 거둔 셈.# 하지만 이벤트를 찾아온 유료관객은 74만명에 불과하고, 지난 1년간 디디피의 전시 콘텐츠는 절반 이상이 대관전시로 꾸며져 자체 컨텐츠로 관객몰이를 하고 트렌드를 만들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디자인 평론가 최범씨는 “공공문화시설인데도 여전히 운영목적과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고 재정 수지 맞추기에 급급하다는 인상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은 숙고해봐야 할 문제”라고 비판했다. 디자인·미술계 전문가들의 시선은 아직 냉랭한 편이다.

또한 이런 긍정적인 결과를 면죄부로 삼아 이 사업의 진행과정 중에 보여준 몰상식하고 폐쇄적인 행정절차를 반복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의견도 있다. 지어진 결과물을 가지고 최대한의 성과와 이익을 내는 것과, 절차에 있어 투명성과 공정성을 추구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라는 주장. 기사 1 기사 2
한겨레에서 기사를 냈는데,제목과는 달리 자체 컨텐츠 부족 등을 지적하며 갈 길이 멀다고 적고 있다.

7. 같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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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홈페이지에서는 한글로 풀어쓴 명칭을 거의 쓰지 않으므로 약칭인 다대포DDP 자체가 공식 명칭.
  • [2] 하지만 이 말도 어폐가 있는데, 한 미술사학자는 사석에서 DDP에 대해 이 같은 비판을 한 학생에게 "무슨 소리야? 그럼 서울 시내에 그걸 고려하고 지은 건축물이 어딨냐?"고 반문해서 학생이 대꿀멍... 철저한 개발규범에 따라서 도시가 생겨난 유럽 도시들이랑 비교할 수가 없다는 것. 서울 자체가 건물들이 무계획적으로 중구난방 올라간 포스트모더니즘 그 자체도시라 DDP만 놓고 그렇게 깔 수는 없다는 입장. 역사성이나 경관 드립치면서 답 안나오는 문제에 매달리느라 중요한 문제는 쏙 잊어버린 듯
  • [3] 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도 2억달러, 2,000억원 근처다.
  • [4] 빌바오 건과 일치하는 지는 알 수 없지만 빌바오 구겐하임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현대그룹의 요청을 받아 현대 계동 사옥 건너편 부지에 미술관 설계를 진행했다는 야사가 있다. 프랭크 게리의 초기 디자인 컨셉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현대 회장과의 미팅자리에서 휴지를 구겨 던지며 "이게 컨셉이오" 했다가 미팅이 빠그러졌다는 카더라 통신이 업계에 내려온다.
  • [5]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여기보다 살짝 북쪽에 있는 124년 역사의 동대문교회가 서울성곽 위에 있어서 철거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다만 위치만 역사적 의미가 있었고, 건물은 70년대에 지어져 역사성이 없었다.
  • [6] 다만 성곽을 굳이 복원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생각해 봐야 한다. 이미 흥인지문과 성곽을 연결하지는 못하는 상황이고, 성곽을 쌓는다 쳐도 통행에 방해가 된다면 그건 문제일테니 말이다.
  • [7] 다만 DDP가 훼손한 역사성이 동대문 운동장인지 아니면 한성 성곽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조선시대의 역사성과 동대문 운동장의 역사성은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대문 운종장의 시작이 일제시대에 한성성곽을 밀어버리면서 시작했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 [8] 문화역서울284는 네오 르네상스, 오르세는 바로크
  • [9] 새누리를 지지한다고 꼭 그런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