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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윌슨

last modified: 2015-03-31 23:30:03 Contributors



에인절스 이적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 No.33
크리스토퍼 존 윌슨 (Christopher John Wilson)
생년월일 1980년 11월 18일
국적 미국
출신지 캘리포니아 주 뉴포트 비치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2001년 5라운드 텍사스 레인저스 지명
소속팀 텍사스 레인저스(2005~2011)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2012~)

Contents

1. 소개
2. 커리어
3. 이모저모

1. 소개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 소속으로 던졌고 2012년부터 LA 에인절스로 옮긴 좌완 선발투수.

2. 커리어

로욜라 메리마운트 대학에서 외야/1루/선발/불펜을 모두 오가며 준수한 활약을 펼친 뒤 2001년 드래프트에서 텍사스 레인저스의 지명을 받고 입단하여 마이너리그에서 선발투수로 성장했다. 하지만 2003년 8월 토미 존 수술을 받고 2004년을 통째로 날린 뒤 잠시 침체를 겪었고, 2005년 처음 콜업된 메이저리그에서 커맨드를 제대로 잡지 못하며 볼질을 거듭한 끝에 불펜으로 강등되었다. 그렇게 유망주 하나가 사라져가는가 했지만, 2007년에 에릭 가니에 트레이드 이후부터 마무리 투수 롤을 맡아 준수한 좌완불펜으로 활약했다.[1] 다만 2008년 풀타임 클로저로 지명되었다가 6점대 ERA를 찍어버리며 좌완 클로저는 성공하지 못한다는 속설을 증명하는가 했지만, 2009년 다시 셋업맨으로 뛰어난 구위를 보여주며 릴리버로서 실질적인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고, 레인저스는 2010년부터 윌슨을 다시 선발로 돌리기로 결정했다.

릴리버가 선발로 전환할 경우 십중팔구 따라오는 구속 하락, 빅리그에서 처음으로 뛰는 풀타임 선발 시즌, 적지 않은 나이, 적지 않은 볼넷를 생각하며 걱정하는 의견들도 많았지만, 윌슨의 경우는 이크 매덕스 투수코치의 조련과 본인의 노력으로 성공을 거뒀다. 첫 시즌에 200이닝을 넘기면서 3점대 ERA로 선방하며 클리프 리가 오기 전까지 레인저스의 실질적인 1선발 노릇을 한 것. 특히 스트라이크존 밑으로 떨어지는 브레이킹볼을 배워서 쏠쏠하게 써먹었다. 다만 볼넷은 불펜 시절처럼 많았다는게 문제지만.

2011년에도 .266이라는 낮은 BABIP와 알링턴 투수 치고는 유난히 낮은 홈런/플라이볼 비율, 무리한 시즌을 보내서 데드암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윌슨에 대한 예상은 대체로 아주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삼진 비율을 다시 끌어올리고 볼넷을 줄이면서도 특유의 높은 그라운드볼 비율을 유지하며 윌슨은 전년도보다 훨씬 향상된 성적을 기록하고 223.1이닝을 던지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윌슨의 이런 활약과 5선발 10승이라는 보기드문 기록을 합작한 투수진 덕분에 텍사스 레인저스는 2년 연속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했다. 윌슨이 포스트시즌에 삽질을 펼치며 레인저스의 X맨 노릇을 했다만[2]

2011년 종료 후 FA가 되었는데, 2011-12 오프시즌에 선발투수 자원이 너무 부족한 것을 고려할 때 이는 상대적인 가치가 매우 상승한 절묘한 시점에 FA가 된 것이기에 윌슨에게 호재로 작용했다. 이미 선발을 뒤집어 엎어야 하는 뉴욕 양키스라든지 마쓰자카 다이스케존 래키고맙게도 토미 존 수술을 받은 보스턴 레드삭스, 2011-12 FA 시장에서 대규모 돈지랄지출을 계획하고 있는 워싱턴 내셔널스 등 선발 급한 빅마켓 팀들이 입맛을 다셨다. 로이 오스왈트가 부상으로 골골대고 마크 벌리가 실질적으로 최고의 에이스라 보기엔 어려운 실정에서 다르빗슈 유의 포스팅을 제외한다면 실질적으로 FA 선발 최대어로 꼽혔다. 레인저스 측에서는 5년 $80M 이상을 원할 경우 그냥 내보내고 드래프트 픽을 챙기는 편이 낫다는 분석이 많았다.

그리고 드디어 고향팀[3]LA 에인절스가 윌슨과의 5년 계약에 합의했다. 이로써 에인절스는 제러드 위버-C.J. 윌슨-댄 해런-어빈 산타나로 이어지는 리그 최상급 선발진을 갖게되었다.

그런데 LA 에인절스알버트 푸홀스에게 10년 $240M의 오퍼를 넣었고 푸홀스도 계약에 합의에 이르며 다시 오리무중으로 빠지는듯 했다(...) 그래도 윌슨 역시 앤젤스와의 5년 $77.5M 계약이 공식적으로 발표되며 결과적으로 에인절스가 오프시즌의 또다른 큰손으로 발돋움했다.

그리고 2012년 초반까지는 적절아이큐피칭을 앞세워 해런이 부진에 빠진 에인절스 로테이션을 위버와 함께 이끌었다. 볼질이 잦은 피칭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팀의 솔리드한 2선발로서 부족함이 없다는 평. 올스타에도 선정되었으나 손가락 부상으로 출전은 좌절되었다.

하지만 후반기 들어 털리면서 10경기 이상 승리가 없다가 8월 말에야 겨우 10승을 채우는데 성공했다. 그 사이 ERA는 FIP의 수준으로 수렴해버리며 텍사스-LA에인절스 팬덤 사이에서 불거지던 다르빗슈 유와의 가치 논쟁에서 우위를 점하던 것이 무색해졌다. 시즌 최종 성적은 202⅓이닝 동안 13승 10패 3.83 ERA 173탈삼진 91볼넷.

2013년에는 그냥저냥 많이 까이지도 않고 많이 칭찬받지도 않을만한 어중간한 스탯을 기록하며 존재감이 떨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에인절스가 2013년을 앞두고 미 핸슨-조 블랜튼-이슨 바르가스로 이어지는 최고의 투수들을 영입했기 때문에 그들의 삽질을 까느라 윌슨이 관심을 덜 받기도 하고 위버가 부상자 명단을 갔다 온 만큼 나름대로 고군분투했다는 것이 중론이며, 그래도 17승 7패 ERA 3.39 212.1이닝을 올리며 에인절스의 실질적인 에이스 역할을 했다. 볼질은 여전히 쩔어주지만 팀내 최다 이닝과 최다 승을 기록하며 멸망까지 갈 뻔한 에인절스의 로테이션을 그나마 지탱해주었다.오오 모범FA 오오...

2014년 부상 전에는 괜찮았지만 부상에서 돌아온 후에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하며 5이닝도 채우지 못하고 강판당하는 경기를 계속 기록했다. 8월 7일 프리웨이 시리즈 4차전에서는 초반부터 볼질을 거듭하다가 결국 6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4실점을 하며 강판되고 패전. 이후에도 계속 예전만 못한 모습을 보이다가 포스트시즌에서는 신인 게릿 리차즈에게 선발라인에서 뒤로 밀린 3선발로 등판했는데 공교롭게도 팀이 캔자스시티 로열스에게 홈에서 2경기 모두 내주며 패해 2:0인 상황일 때 3차전에 나왔다. 그리고 1회말 2아웃을 간신히 잡고 3점을 내주며 조기강판 당했고, 팀은 8:3으로 패해 스윕당하며 그와 팀 모두 최악의 결과로 2014년을 끝냈다.

결국 죽쑨것 때문인지 구단을 상징하는 대표 선수에서 제외되는 굴욕을 당했다.

3. 이모저모


한편으로 불펜투수 시절 치 섹슨에게 만루홈런을 맞고 강판될 때 워싱턴 감독에게 짜증을 내다가 혼난 에피소드가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 등판을 마지막으로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아 2008년 잔여 시즌을 날리면서 더욱 안습이 되고 말았다.

2011년엔 라이언 브론을 제치고 졸렬인줄 알았는데 사실 정의구현타격왕을 차지한 호세 레예스를 디스하면서 이에 분노한 뉴욕 메츠의 팬과 트위터에서 키배를 벌였는데 메츠팬이 "니가 플옵서 털리길 바란다 XX아(...)"라고 하자 "(타이틀이 걸려있으면) 난 기꺼이 등판해서 내 방어율 낮출꺼임ㅋ 가서 비누로 입이나 닦으렴ㅋ"이라고 응수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서 플옵에서 신나게 털렸으니...트위터 키배

또한 에인절스로 이적한 뒤에 트위터로 레인저스 포수 마이크 나폴리의 전화번호를 공개하는 바람에(...) 나폴리가 큰 곤욕을 치른 바 있다. # 윌슨은 자기 입장에선 장난으로 한 것이라지만 나폴리는 별로 친한 사이도 아닌데,[4]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황당한 반응을 보이면서 홈런으로 되갚아주마라고... 그리고 2012년 시즌 첫대결에서 폭삼 그리고 윌슨은 기사가 나가고서 이런 반응을 보였다. 진정 멘탈갑(...)

2014년 시즌 들어서 드 앤 숄더광고도 찍었다.1234567
소속팀 동료하고도 같이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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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때 자이로볼을 던질 수 있다는 드립이 작렬했다.
  • [2] 포스트시즌 3경기에서 3패를 기록했다.
  • [3] 뉴포트 비치는 오렌지 카운티의 산타 아나 남쪽에 위치한 동네로, 야구에서는 에인절스 연고권역으로 인식된다.
  • [4] 2011년 시즌후 사적으로 만난 적 조차도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