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9.11 테러

last modified: 2015-09-11 16:56:26 Contributors

실제로 일어난 사건! HELP!

이 문서가 다루는 사건은 실제로 일어난 것이며, 열람 및 수정 시 주의해야 합니다.
서술에 문제가 있을 경우 [http]위키워크샵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cherney911terrorism.jpg
[JPG image (Unknown)]
영어September 11 attacks
프랑스어Attentats du 11 septembre 2001
독일어Terroranschläge am 11. September 2001
아랍어أحداث 11 سبتمبر 2001
일본어アメリカ同時多発テロ事件
이탈리아어Attentati dell'11 settembre 2001
폴란드어Zamach z 11 września 2001 roku
포르투갈어Ataques de 11 de setembro de 2001
우즈베크어2001-yil 11-sentabr terroristik hurujlari
스와힐리어Shambulio la 11 Septemba 2001
벵골어সেপ্টেম্বর ১১, ২০০১ এর হামলা

Contents

1. 개요
1.1. 9월 11일 뉴욕
1.2. 워싱턴
1.3. 납치당한 항공기들
2. 원인
3. 테러 직후
3.1. 정부 마비
3.2. 각계의 반응
3.2.1. 정치
3.2.2. 경제
3.3. 국제사회
3.3.1. 건축
3.3.2. 항공
3.4. ETC
4. 후속 테러
5. 현재
5.1. 음모론
6. 9.11 테러 사건을 다룬 작품
6.1. 문학
6.2. 영화
6.3. 드라마
6.4. 음악


"A second plane has hit the second tower. America is under attack."[1]
"또 다른 비행기가 2번 타워에 충돌했습니다. 미국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 대통령 보좌관 앤드류 카드 (Andrew Card), UA175편의 충돌을 조지 W. 부시에게 알리며.

Never Forget. (절대로 잊지 말라.)[2]

"9월 11일(한국시각) 밤늦게 벌어진 '미국 여객기 자살테러'는 더 이상 강 건너 불 구경하듯 볼 일이 아니다.
당장 우리나라의 주가에까지 엄청난 영향을 끼쳤고, 태평양 건너 서울 시내까지 마치 계엄령을 방불케 하는 삼엄한 분위기로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미국의 힘을 실감나게 하지만, 미국이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세계 역사의 흐름이 뒤바뀔지도 모를 사태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걸프전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걸프전보다는 차라리 진주만 공격에 비유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1941년 12월 7일 이전과 이후의 미국은 전혀 다르고, 심하게 말하면 진주만 공습 이전의 미국은 그날로 사라졌다.
2001년 9월 11일 아침 9시 이후의 미국도 그 이전의 미국이 아니다.
그리고 미국이라는 나라는, 전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강대국이다.
바뀐 미국은, 결국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 월간 플래툰 2001년 10월호. 특집기사 "테러의 뒷 모습" 기자 김진영

1. 개요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에 큰 충격을 가져온 사건.
21세기의, 그리고 테러리즘이라는 화두의 시작이 된 사건.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일어난 전세계 역사상 유례 없는 대규모 테러 사건.[3]

알 카에다의 요원들이 민항기를 공중 납치해서 미국의 심장부뉴욕워싱턴 한복판에 민항기를 충돌시키는 자살폭탄 테러를 저질렀다. 이 동시다발 테러로 인해, 무려 3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희생당했다. 이 사건은 "21세기가 시작되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세계 정세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으며, "미국의 현대사는, 2001년 9월 11일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라는 말까지 있다.

2000년에 들어 미국은 중동발 테러 위협이 곧 미국에 들이닥칠 것을 감지하고 있었고, 용의자들은 테러 1년전 미국에 잠입해 있었다. CIA, FBI 등의 방첩 기관들은 유력한 예비 용의자들을 선별하고 감시하며, 테러리스트 단체의 동향을 추적했다. 2001년 중반에 미국 내 암약 조직 혹은 테러리스트 단체간의 무선 통신량이 급증했다. 비행기를 때려박은 테러리스트들은 이 때 단체로 항공학교에 취학해 비행기 조종술을 익히고 있었다. FBI는 항공기를 이용한 테러가 있을 수 있으며, 그들을 조사해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계속하여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미 수뇌부는 국제법 위반문제나 보신주의 등으로 이를 흘려들었고 테러 수준을 한없이 낮게 보고 있었다. 결국 아무런 대비도 없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취임하여 국정 초반에 들어섰고, 뉴욕에선 시장 선거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1.1. 9월 11일 뉴욕

2001년 9월 11일 8시 45분, 조지 부시 대통령의 정책에, 아니 그는 물론 전세계인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준 큰 사건이 터지고야 만다. 바로 9.11 테러였다. 몇 명의 테러리스트들이 행한 이 전례없는 대테러는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고 세계 정세를 바꿨다.


9월 11일, 보스턴의 관제소에서는 이륙한 지 15분이 지난 아메리칸 항공 11편(AA11)과 교신을 시도하지만 11편은 10분이 넘도록 응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관제사는 잠시 후 "우리는 비행기을 납치했다. 가만히 있으면 무사할 것이다. 공항으로 회항하고 있다."는 교신을 듣는다.[4] 이는 연방 항공국과 공군에게 보고되었지만 납치 자체가 불확실한 상황인 데다 당시까지는 미국 내에서 공중납치가 대형사고로 연결되는 일이 없었기에 큰 위협이 아니라고 보고 있었다. 그러나 AA11편의 사무장이였던 베티 옹이 기내 전화로 비행기의 납치와 그 과정에서 승객이 칼에 찔렸다는 것을 알렸다. 잠시 후 AA11편은 뉴욕 상공에서 레이더에서 사라졌고 동시에 베티 옹의 전화도 끊어졌다.


세계무역센터에 첫번째 비행기가 충돌하는 순간.[5]

1번타워에 충돌한 항공기는 아메리칸 항공 11편(B767-200ER, N334AA)으로, 승객 81명(그중 5명은 하이재커)과 승무원 11명을 태우고 비행중이었다. 초유의 사태에 연방 항공국은 긴장했고 공군은 사라져 버린 AA11편을 찾기 위해 전투기를 내보냈지만 전투기가 출격했을 때에는 이미 충돌한 지 한참 지난 후인 데다 첫 충돌 비행기가 AA11편이라는 것을 파악하지 못해 근처에서 사라진 AA11을 찾는 헛수고를 벌였다.

러시아워 타임인 아침 8시 45분 뉴욕, 갑자기 한 대의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에 충돌했다. 사람들은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파악이 안 되어 혼란스러워했다. 단지 조종사의 조종 실수로 충돌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당장 언론들은 이 '사고'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이후 세계무역센터에 비상대피가 시작되었으나 충돌이 일어난 건물은 북쪽건물이라는 것 때문에 남쪽건물의 피난을 중단시키고 다시 안으로 들여보내기 시작했다.

한편,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의 교신이 끊어지고 불규칙하게 비행하고 있는 것이 뉴욕 관제소에서 포착되었다. 비행기는 원래 항로를 벗어나 뉴욕 상공으로 들어왔고 추락할 듯이 빠른 속도로 하강하고 있었다. 그리고 북쪽 건물이 불타는 모습이 방송을 통해서 전세계에 거의 생방송으로 중계되던 중, 9시 3분, 전세계 사람들은 충격적인 장면을 다시 한 번 보게된다. 방송 카메라가 전부 건물을 향해 있는 상태에서 두 번째 비행기 테러가 일어난 것이다.


각 뉴스들이 1번 타워가 불타고 있는 모습을 중계하던 도중 바로 2번 타워로 충돌하는 항공기 테러가 일어나는 모습을 생방송으로 목격한 시민들은 다시 한 번 경악했다.

2번 타워에 충돌한 항공기는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B767-200, N612UA)으로, 승객 56명(그중에 5명은 하이제커)과 승무원 9명을 태우고 비행중이었다.

이제서야 사람들은 이것이 미국에 대한 테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당시 방송 자료와 뉴욕에 있었던 사람들이 찍은 영상을 보면 두 번째 민항기의 충돌과 그 과정에 사람들이 혼란하는 모습까지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생생하게 담겨 있다.[6]

시간이 지나자 산소 부족, 열기와 연기에 견디지 못한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WTC 건물에서 뛰어내려 죽어가는 광경이 뉴스로 생중계되었다.

두 번째 충돌이 일어나고 56분 뒤인 오전 9시 59분, 남쪽 타워가 무너졌다.


오전 10시 28분, 먼저 테러가 일어났던 북쪽 타워도 무너졌다.

세계무역센터 건물은 근방에 7번 건물까지 있는데 익히 아는 초고층 건물은 1번과 2번 건물이다. 1번과 2번은 지상 100층이 넘는 초고층 빌딩이고 7번 빌딩은 50층 정도이며 22층인 3번 건물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9층이다. 사건 당시 비행기가 충돌한 1번 2번 빌딩이 무너진 것 말고도 길 건너 있는 7번 빌딩도 1번과 2번 건물에서 떨어지는 잔해에 맞아 화재가 발생하였고 결국 무너졌다.[7] 북쪽 타워의 경우 남쪽 타워보다 좀 더 오래 버티기는 했으나 충돌부의 엘리베이터와 계단이 전부 끊어져 버렸고 계단 하나 정도가 무사해 충돌층 위 층에서 소수라도 탈출할 수 있었던 남쪽 타워와는 달리 북쪽 타워에서는 충돌층 위에 있던 사람들은 한 사람도 살아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미 화재로 인해 주변 지역은 전쟁터나 다름없는 아수라장이였고 건물이 붕괴되면서 생긴 충격파는 매우 무시무시했다. 엄청난 양의 먼지들이 바람을 타고 시가지 전역을 순식간에 덮어버렸다. 건물이 붕괴된 충격으로 생긴 여진이 주변 건물들에게도 엄청난 부담을 줬다는 게 알려지면서 고층 빌딩들의 연속 붕괴가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공포가 퍼지기도 했다.

1.2. 워싱턴

그러나, 사건은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여전히 교신이 안 되는 비행기들도 있었으며, 항공국과 공군은 초유의 사태에 경악했고 항공국은 모든 비행기의 이륙을 금지하는 한 편, 고층건물이나 대도시 인근을 지나는 비행기들을 감시해야 했고 공군은 만일을 대비해 전투기의 추가 출격을 준비하였고, 여객기 격추 명령을 허가받으려 했으나 절차적 문제와 도덕적 문제로 인해 지연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아메리칸 항공 77편(B757-200, N644AA)의 교신이 끊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리지만, 결국 미국의 국방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펜타곤도 항공기 테러 공격을 받고 만다 (오전 9시 37분). 이 충돌로 안 그래도 정신이 나가 있던 미국 정부의 지휘 체계는 마비 상태에 빠져 수습이 늦어지게 되었다. 이것은 테러 수준을 넘어서 미국에 대한 명백한 선전포고나 다름이 없었다.

결국, 연방 항공국에서 당시 가장 권한이 높았던 벤 슬라이니의 지시[8]로 미국의 모든 영공이 폐쇄되었으며, 국내선 항공기는 무조건 착륙, 국제선 비행기는 회항해야만 했다.

한편, 유나이티드 항공 93편(B757-200, N591UA)도 납치되었다. 이 비행기의 목표가 어디였는지는 지금도 불분명하나, 인근의 원자력 발전소백악관을 목표로 했을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승객들은 테러리스트들 몰래 가족들과 전화를 해서 이 비행기가 자살 테러를 목적으로 납치된 것을 알아차렸고[9] 저항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 살아남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테러리스트들과 싸웠다. 결국 비행기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추락해 탑승객 전원이 사망하였다. 이들의 저항으로 미국은 추가공격으로 인한 더 큰 피해를 막을 수가 있었고 UA93편의 승객들은 미국인들에게 조국을 구한 영웅으로써 존경을 받고 있다. [10]

1.3. 납치당한 항공기들


  • AA11.jpg
    [JPG image (Unknown)]
    [11]
    AA11 - 아메리칸 항공 소속 항공기. 기종은 B767-200ER이며, 등록번호는 N334AA이다. 승객 81명(테러범 5명 포함)과 승무원 11명으로 총 92명이 탑승했다. 원래는 로간 국제공항을 출발해,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으로 향하려던 항공기였으나 1번 빌딩에 충돌하고 만다.

  • UA175.jpg
    [JPG image (Unknown)]
    [12]
    UA175 - 유나이티드 항공 소속 항공기. 기종은 B767-200이며, 등록번호는 N612UA이다. 승객 56명(테러범 5명 포함)과 승무원 9명으로 총 64명이 탑승했다. 이 항공편은 로간 국제공항에서 출발해,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으로 향하려 했으나[13] 2번빌딩에 충돌하게 된다.

  • AA77.jpg
    [JPG image (Unknown)]
    [14]
    AA77 - 아메리칸 항공 소속 항공기. 기종은 B757-200이며, 등록번호는 N644AA이다. 승객 58명(테러범 5명 포함)과 승무원 6명으로 총 64명이 탑승했다.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에서 출발한 77편의 목적지는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이었으나 펜타곤에 충돌하게 된다.

  • UA93.jpg
    [JPG image (Unknown)]
    [15]
    UA93 - 유나이티드 항공 소속 항공기. 기종은 B757-200이며, 등록번호는 N591UA이다. 승객 37명(테러범 4명 포함)과 승무원은 7명 총 44명이 탑승했다. 뉴어크 국제공항을 출발한 이 항공기의 목적지는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이다. 예정보다 늦게 출발해서 다른 항공기들과 비슷한 시점에 목표에 도착하기 힘든 상황에 납치당한다. 승객들은 기내 전화로 테러범들 몰래 가족들과 몰래 통화하다가 여객기를 납치해서 테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승객들은 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며, 테러범들을 제압해서 객실을 탈환했다. 하지만 조종석을 공략하던 와중에 이미 조종간을 잡고 있던 테러범이 여객기를 펜실베니아주의 평야에 추락시키고 만다.

참고로 이 이야기는 라이트 93(원제는 "United 93") 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한국에는 2006년 9월 8일 개봉되었다.[16] , 그리고 여객기가 추락한 장소에는 추모비가 건립되었다.

이 비행기가 워싱턴으로 향하자, 미 공군은 F-16전투기 2대를 긴급 발진시켰으나 이 사건 당시 훈련비행을 막 끝낸 상태였기에 공격할 무기가 남아있지 않아서 조종사들이 몸으로라도 막으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정황으로 보면 그 전에 이미 UA93편이 테러에 성공했을 가능성이 더 컸다고 한다.

하필 이 4대의 비행기가 선택이 된 이유는 이들이 캘리포니아 같이 보스턴에서 먼 곳으로 가는 비행기였기 때문이다. 멀리 비행해야 하는 만큼 기름이 많이 채워져 있어, 그 만큼 폭발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기종으로 보면 B767-200 1대, B767-200ER 1대, B757-200 2대이다. 항공사는 AAUA이고, 양사의 비행기가 각각 2대 납치되었다. 9.11 테러 이후, 조종석 문은 무조건 잠근다는 법[17]이 만들어지게 되었으며, 기장과 부기장의 독극물 음식테러로 모두 죽는 것을 막기 위해서 물도 철저하게 반입제한을 하여 함부로 마시지 못하게 하고, 기장과 부기장의 식사시간도 서로 다르게 설정하며, 서로 다른 음식메뉴로 제공을 하게 된다. 또한, 독극물 음식테러 대책도 더욱 강화되어, 일시적으로 액체류 반입금지를 시행하게 되고, 소지품 반입제한도 더욱 엄격하게 강화되어 손톱깎이마저도 소지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2. 원인

위에서도 계속 언급이 되었지만, 미국 내 비행기 안전은 상당히 구멍투성이었다. 조종실 문을 열고 침입하는 게 쉬웠던 건 물론이고, 위험한 승객을 제대로 골라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아니라 무장까지 허용하고 들여보내는 등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사실, 테러와의 전쟁9.11 테러의 전조는 90년대부터 정보기관들에서는 큰 위협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93년도 세계무역센터 자살폭탄 테러를 비롯해 연이은 대사관 테러와 콜 호 테러로 클린턴 행정부 시절부터 알 카에다와의 전쟁은 이미 예정된 일이었다. 문제는 정보기관 일선의 판단에 비해 미국은 소련 붕괴 후 찾아온 90년대의 대호황에 정치권부터 일반시민까지 취해 있어서 국가도 아닌 일개 테러조직 따위가 미국에게 위협이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전통적으로 정보조직들은 자기들이 알아낸 정보를 다른 정보기관과 공유하는 것을 매우 꺼렸기 때문에 더더욱 큰 문제가 생겼다.

  • 클린턴 행정부 전반기는 셧다운과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섹스 스캔들로 인해 중동의 테러조직 따위에는 관심도 가질 여력이 없었다.

  • 좀 관심 좀 가져볼만 하더니 이번에는 유고슬라비아에서 코소보 전쟁이 터져서 모든 관심이 발칸 반도로 집중되었다.

  • 대사관이 공격당하는 등 테러에 대한 위협이 점점 현실화되자 오사마 빈 라덴을 암살하려 했으나 여러가지 사정으로 3번이나 암살 작전이 취소되었다.

  • 오사마 빈 라덴이 수단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도망치고 있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국제법 위반 등의 이유로 두 눈 뜨고 구경만 하고 있었다.[18]

  • 미국 내 공항에 안보적으로 취약한 지점이 있다는 것이 지적되어 개선을 요하는 의회, 정부 보고서가 클린턴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 내에서 여러 차례 올라왔으나 무시되었다.

  • CIA와 FBI는 항공국에 위험인물의 정보에 접근할 권한을 줘야 한다고 권고했으나 정보당국은 이를 무시했다.

  • CIA와 FBI를 비롯한 정보당국끼리도 정보 공유를 꺼려해 테러리스트들이 미국으로 숨어들자 FBI가 정보를 필요로 함에도 불구하고 CIA는 정보제공에 비협조적이었다. 이는 반대도 마찬가지. 결국 테러리스트들을 찾는 수사관은 1명밖에 없는 개막장스런 상황이 일어났고 테러가 일어날 때까지 개선되지 않았다.

  • 부시 행정부의 안보담당들은 취임한지 1년도 안 되다보니 알 카에다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했다.[19] 게다가 중국과 하이난도 충돌사고로 사이가 냉각되면서 알 카에다를 신경쓰지 못한다.

  • 이런 상황에서 FBI가 용케도(...) 테러리스트들이 비행기로 건물에 테러를 할 것이라는 보고를 2001년 8월에 하지만 부시 행정부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 때쯤 되면 테러리스트들은 사실상 모든 준비를 다 끝마친 상황이다.

  • 아프가니스탄의 북부동맹을 지원해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하는 작전은 2001년 9월 10일까지 대통령 책상 위에 놓인 채 결재되지 못한 상태였다.

  • 민간항공과 공군이 사용하는 용어가 달라 테러 초기에 정보전달이 잘 되지 않아 혼동이 발생해 이미 추락한 비행기를 찾는 등의 혼선이 벌어졌다. 게다가 공군에서는, 외부 침공만 상정하고 있던 상태라 내부에서 공격을 해 오자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20]

종합하면, 아랍권에서 커져가는 반미정서와 그로 인해 발생한 테러조직들이 점점 조직적이고 강력해지는데도 불구하고 수뇌부는 이에 대해 과소평가했으며 정보기관들간의 상호 삽질과 그 동안 계속 방치되어 온 미흡한 안전규정에 대한 개선이 미뤄지면서 결국 19명의 테러리스트들에게 어처구니없게도 국가 안보체계가 모두 뚫리고 만 것이다.

이 쯤 되면, 그 동안 미국 본토가 무사(?)했던 게 신기할 정도다.

3. 테러 직후

사건 직후,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의 전체 영공이 봉쇄되었다. 이는 SCATANA(Security Control of Air Traffic and Air Navigation Aids)라는 통제 조치로 미 본토가 적국에게 침략당하거나 공습을 당하는 등의 응급상황을 대비해 미 영공상의 모든 비행기를 강제로 착륙시키고 Navaid 비콘도 전부 꺼버리는 조치인데, 60년대에 처음 제정되어 실제로 사용된 적은 9.11 테러 당시가 유일하다. 이 조치로 인해 영공에 떠있던 약 4200대에 달하는 엄청난 숫자의 비행기에는 강제 착륙 지시가 내려졌으며, 모든 비행기의 이륙이 금지되고, 미국으로 접근중이던 모든 민항기도 회항시켰다. 뉴욕항이 봉쇄되고 모든 여객선, 화물선들이 탈출했으며 부두에는 항모전단이 입항했다.

136_505.jpg
[JPG image (Unknown)]

AMERICA-UNDER-ATTACK.jpg
[JPG image (Unknown)]

cnn_911_t323_c.jpg
[JPG image (Unknown)]


당시 미국의 언론들이 뽑은 헤드라인은 "America Under Attack". 미 언론들은 '제 2의 진주만'이라고 칭하며 매우 충격을 받았다. 대부분의 초중고등학교도 일제히 임시휴교를 선언하고 학생들을 귀가시켰다.[21]

미국은 독립 이래로 미국 영토가 전쟁터가 된 일은 1812년 미영전쟁, 1861년 벌어진 남북전쟁, 1913년부터 1917년 사이 멕시코 혁명 중에 판초 비야가 이끈 멕시코 혁명군이 뉴멕시코주에 침공한 것, 그리고 진주만 공습 이후 다섯번째라는 점에서 큰 충격을 줬다. 여담이지만, 그 어떤 언론 매체에서도 아메리카 원주민과의 전쟁이었던 '인디언 전쟁'은 카운트를 하지 않는다. 어째서? 이건 뭐지? 인디언 전쟁이 침공전쟁이라는 걸 본인들도 아는 듯...[22]

미국의 본토 침공은 독립 이래로 네 번째[23]인데다 그것도 미국의 심장부에 민항기를 때려박는다는 유일무이의 테러 전략으로 인해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를 정말 제대로 선사했다.

3.1. 정부 마비

이 충격은 또 다른 부분으로 미국을 강타했다. 테러와 거의 동시에 테러충격으로 미국 지도부가 일시적으로 마비 수준에 처했던 것이다. 국무부에도 차량을 이용한 자살폭탄 테러가 감행되었다느니, 국회의사당 및 연방대법원 건물에서도 폭탄이 터졌다느니와 같은 일어나지 않을 테러 이야기들이 항공기 충돌을 전후로 대대적으로 퍼지며 주요 정부기관이 일제히 마비되었다. 얼마나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했는지, 미 상하원 양당 지도부는 테러 직후 급히 전용 방탄차량을 타고 엄중한 호위와 함께 교외의 핵전쟁 대비 시설로 이동했다. 직후 뉴욕항에 항모 2척이 입항했으며, 준계엄령과 동시에 모든 항공기들은 지상으로 내려와 통제를 받아야 했다.

공중 납치한 민항기를 사용해서 자폭 테러를 한다는 발상은 헐리우드 액션 영화에서도 보기 힘든 기상천외한 작전이지만, 사건의 불과 6개월 전에 Fox TV에서 방영한 엑스파일의 스핀오프 시리즈 론 건맨[24]1시즌 1화에서 미 정부가 민항기를 납치하여 세계무역센터에 충돌시키려 한다는(!) 내용이 나왔었다. 한편으로 톰 클랜시의 'Debt of Honor'라는 소설[25]의 마지막 부분에 일본인 기장이 여객기를 몰고 대통령 취임식이 진행중인 미국 국회의사당에 돌진해서 미 정부 요인 중 반수 이상이 사망하는 장면이 나온다. 경호요원이 스팅어로 대응했지만 여객기가 워낙 덩치가 커서 맨패드 따위는 씹고 들이박는다...이 때문에 톰 클랜시는 9.11 직후 한층 더 유명해졌고, 펜타곤은 헐리우드의 유명 시나리오 작가들을 불러모아 "가능한 모든 미 본토 침공 시나리오를 제출하라."고 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공중 납치는 아니지만, 비행기를 납치해 자폭 테러를 한 시도는 이미 예전에도 있었다. 항공 사고 수사대에서도 다룬 사건으로 알제리에서 반정부 테러리스트들이 공항에서 프랑스 여객기를 납치해 파리에 날아가 에펠탑에 자폭테러하는(!) 시도를 했지만 조종사와 프랑스 정부의 대응으로 마르세유에서 중간기착을 하게 한 후 특공대를 투입시켜 막아냈다. 생존자들 중에는 9.11테러를 보고 "만약 저들이 성공했다면 우리가 저런 꼴이 되었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을 정도였다. 결국, 여러모로 테러가 일어날 징후가 있었지만 사소한 것이라 생각하고 그걸 무시한 결과 역사상 최악의 대테러가 일어난 것이다.

테러리스트들의 목표는 세계 무역센터 빌딩[26], 미 국방부의 펜타곤, 그리고 백악관이었다. 쌍둥이 빌딩이 아닌 백악관으로 날아가던 또 다른 하나의 비행기는 승객들의 강력한 저항에 결국 목적지와는 다른 펜실베이니아 주 생스빌 벌판으로 추락했다.[27] 이 사건 전에 전투기로 3분 거리에 있던 가장 가까운 공군기지에도 발령이 났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단 3분의 여유만 있었으면 희생자는 100~400명까지 줄어들었을 것이다.

3.2. 각계의 반응

3.2.1. 정치

9.11 테러의 정치적인 영향은 미국의 대통령 조지 W. 부시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뒤이은 이라크전으로 자신의 뻘짓을 감추는데 매우 잘 이용되었으며, 안보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인들은 조지 W. 부시의 재선을 이루어주게 된다. 일부는 이 점 때문에, 이 사건이 조작된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을 펴기도 했다.

9.11 사건의 여파로 미국은 "PATRIOT Act"[28] 등을 통과시키며 '국가위기사태'라는 명목하에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법을 제정하였고 연방정부의 관료주의의 벽으로 인해 정보 공유가 안된 점이 사태를 막지 못한 원인이라 보고 국토안보부와 같은 킹왕짱 국가기관을 만드는 등, 여러가지로 민주주의 사회에 제약이 가해져서 많은 시민들과 지식인들을 걱정하게 만들었다.

또한 팔레스타인에서는, 이스라엘의 아리엘 샤론 총리가 "올ㅋ, 테러와의 전쟁 좋죠! 우리도 하마스헤즈볼라랑 PLO랑 기타 잡찌끄레기 테러리스트들이랑 전쟁 중임!"이라면서 계획적으로 PLO를 도발해서 화해무드를 완전히 박살을 내버리고, 언론이 잠잠한 틈을 타서 사방팔방 폭격을 해대기 시작했다. 미국에게 한 방 먹이고자 했던 알 카에다의 작전이 오히려 미국역린을 건드리는 바람에, 팔레스타인무슬림 동족들을 역으로 죽여버리는 꼴이 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아리엘 샤론은 오슬로 협정조차 씹어버리고, PLO의 수장 야세르 아라파트의 집무실을 공격해 파괴하고 아라파트가 촛불에 의존하여 집무를 보게 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연출해버림으로 분노한 팔레스타인 대중들이 이스라엘과의 대화의 길을 버리고 하마스 류의 극렬 무장 투쟁단체를 지지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게 되어, 가자지구에서 또 다시 피로 피를 씻는 유혈사태의 단초를 제공했다.

한편 2004년 10월, 오사마 빈 라덴은 인터넷을 통해 "왜 9.11 테러를 계획하게 되었는가?"를 비로소 밝혔다. 1982년 6월 이스라엘 공군의 무자비한 폭격으로 붕괴되는 베이루트 고층빌딩과 무고한 희생자들의 모습을 TV로 지켜보며 이를 갈았던 오사마 빈 라덴은 이스라엘의 후원자인 미국의 건물을 공격해서 그대로 되갚아 줄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20년 뒤, 빈 라덴과 휘하 테러리스트들은 이스라엘이 그랬듯이 미국인들에게 끔찍한 결과를 안겨 주었고, 그것이 아프가니스탄이라크에서 다시 피와 증오의 악순환으로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그야말로 증오의 연쇄.

또한 이 사건은, 미국 내와 전세계의 모든 이슬람교인들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인식이 되게 만들었고, 사건 이후 미국에서만 1년동안 400여명의 무슬림들이 증오범죄를 당하고, 또 1년 후에 100명이 더 당했다고 한다. 알카에다의 테러 때문에 애꿎은 선량한 이슬람교 신지들까지 피해를 본 셈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9.11 테러 이후, 아랍인들을 칭하는 인종차별 욕이 하나 더 생겨났다. 그건 바로 테러리스트. 이 사회적 현상을 잘 알려주는 영화 중 하나로 '내 이름은 칸'이 있다. 인도인 무슬림으로 미국에서 테러리스트 취급을 받는 자폐인(정확히는 아스퍼거 증후군)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미국을 공격한 적들에 대한 응징이었다. 이 때부터, 그 유명한 슬로건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테러와의 전쟁은 끝이 없는 수렁으로 빠지게 된다.

3.2.2. 경제

사건이 일어난 것이 미국 주식시장 개장 전이었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긴급히 1주일동안 주식시장을 열지 않는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29] 그러나 다른 나라는 그야말로 현실은 시궁창. 고베대지진버로우태워버린 일이 터졌다.

이 테러장면이 여과없이 전 세계에 전파되면서 세계 주식시장은 그야말로도미노 폭락사태가 벌어졌다.망했어요

안 그래도 IT버블 붕괴로 인해, 기진맥진한 상태였던 코스피시장과 버블붕괴로 인해 이미 아작이 나버린 코스닥시장은 "종목 89.7%[30] 하한가, 종목 98%[31]가 하락"라는 진기록당시 뉴스[32]을 세우며 폭락했다.[33]

어쨌거나, 한국증시와 일본증시가 폭락하자, 인도증시, 중동증시 등이 싹쓸이로 폭락하고, 결국 유럽증시까지 싸그리 폭락하는 등 도미노 폭락사태가 1주일 간 지속되었다. 망했어요

일주일 후, 미국 증시가 다시 열리자마자 이렇게 되었다. 또 다시 망했어요.

그러나 9.11 테러 이후, 월드컵이라든가 이라크 전쟁[34]이 터지면서 세계 증시는 상승추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결국 이런 사건이…

3.3. 국제사회


전세계가 모두 다 버로우탔다.

두 번째 항공기 충돌 장면이 전세계로 생중계가 되어 커다란 충격을 주었고, 미국은 복수귀가 되어 눈이 발칵 뒤집혔다. 부시는 미국의 편에 설 것인지, 미국에 맞설 것인지 세계는 정해야 한다고 호령했고 명분까지 충분했던 미국에게 꼬투리를 잡혔다가는 무슨 끔찍한 일을 당할지 아무도 몰랐다.

MAY1890.pvw.jpg
[JPG image (Unknown)]




  • 유럽한국[35], 일본[36], 호주 등 기존 동맹국들은 물론이고 전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일제히 테러에 대한 비판 성명과 미국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를 천명하고 나서며 눈이 뒤집혀진 미국의 눈치를 살피기에 급급했다.

  • 아시아
    • 한국 : 공식 희생자 1명[37][38]을 낸 한국은 9월 13일 전국적으로 추모일로 정하고 5분간 묵념시간을 가졌으며, 비인도적인 테러에 대해 공식적으로 애도를 표하는 성명서를 냈다.

    • 중국 : 중국에서는 당시, 99년 코소보 전쟁 중 중국대사관 오폭사건과 테러 몇 달 전 하이난도 정찰기 충돌사건,[39] 대만으로 이지스함 판매 논란 등으로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지만, 그 중국마저도 잔뜩 쫄아서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위한 영공통과를 강요받고 있던 파키스탄의 후견국다운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했고, 오히려 영공통과를 권유해야만 했다. 하지만, 당시 반미감정이 앙등해있던 터라 중국사람들은 속보를 듣고 만세를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 북한 : 심지어, 심심하면 미국을 까대던 북한마저도 잔뜩 쫄아붙어서, 비인도적인 테러공격에 대한 강력한 비판 성명조선중앙방송을 통해 내보내야만 했다.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때 미국에 겁대가리 없이 집적거렸다가 나라가 망하기 직전까지 갔던 북한은 평상시에는 미국에 대해 만날 개거품을 물면서 까대면서도, 미국이 정말로 빡돌아버린 상황에서는 꼬리를 내리면서 미국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곤 한다. 이후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 때도 그랬다.

  • 중동권
    • 이라크 : 이 상황에서도 이라크 정부는, 정확히 말하자면 사담 후세인의 응징이라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2년 뒤, 비 오는 날 먼지가 나도록 복날 개맞듯이 얻어터졌다. 한가지 불쌍한 점은 후세인은 텔레비전을 통해선 큰소리를 쳐 놓고는 부총리이자 외무장관인 타리크 아지즈를 시켜서는 미국에게 알 카에다 소탕을 돕겠다는 의사를 전달하면서 "우리도 테러리즘에 시달리는데 공조합시다?"라고 의사를 전달했지만 조지고 부시는 대통령 가카 앞에서는 기만책으로 밖에 안 보였다.(...) 사실 이따위 짓거리를 하면 당연히 전미가 분노할 수 밖에 없으니 이건 후세인이 한심한 선택을 한 것이 맞다.

    •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정부 : 사건 초기에 이들이 일으킨 일이라는 잘못된 정보가 알려지자 즉시 부정하며 테러에 대한 애도의 뜻을 밝혔으나, 정작 이스라엘미국의 관계로 인해 반미감정이 깊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이 소식을 듣자마자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고 기념음식을 돌렸으며,(…) 애들은 만세를 부르며 거리를 활주하는 등,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흠좀무. 그리고 미국 뉴스에서는 이 장면을 그대로 보도했다. 특히 한 신문에서는 "우리의 피는 싸구려가 아니다!"라는 기사를 썼는데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매일 죽어나는데도 무관심 하면서 미국인이 죽는 것은 대서특필을 한다고 비꼰 것이다.

    • 아프가니스탄 : 알 카에다오사마 빈 라덴을 내놓으라는 미국의 요구에 탈레반은 거절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은 전혀 상관없다고 발뺌을 했다.[40] 당연히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탈레반의 현대문물 탄압으로 미국에 테러가 있는지도 몰랐던 수 많은 아프간 주민들은 뜬금없이 전쟁이 난다는 소식만 전해듣고 멘붕을 해야 했다.

    • 파키스탄 : 탈레반 정권의 후원자였으나, 길을 당장 비키라는 미국의 요구에 잔뜩 쫄아붙어서 냅다 길을 비켜야 했다. 파키스탄은 처음에는 영공통과를 거부했으나,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의 말 한마디에 깨갱... "야, 이 새끼들아! 얌전히 항공로 열을래? 아니면 폭격 쳐맞고 석기시대로 돌아갈래?"[41] 물론 이건 외교적 결례인 동시에 엄연한 영공침입이다. 하지만, 당시 눈이 미쳐 돌아가버린 미국파키스탄이 영공통과를 거부했다간 국제법이고 뭐고 전부 씹은 상태에서 파키스탄부터 먼저 죽여버리고 개박살을 낸 다음에 아프가니스탄으로 나아갈 의지가 너무나도 명확했기에... 결국 미국의 외교압력에 굴복한 무샤라프 대통령은 파키스탄이 지고 있는 300억 달러 정도의 부채를 미국이 갚는 것을 도와주며 유엔의 지지를 얻고 인도와 이스라엘을 전쟁에 개입시키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 유럽
    • 러시아 : 러시아 마저도 쫄아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직접 애도 성명과 테러집단에 대한 비판 성명을 냈으며 국제연합에 테러 대책 기구 신설을 제안하여야 했다.

    • 무슨 테러만 일어나면 서로 자기들이 했다고 주장하기 바빴던 대부분의 테러조직들이 9.11 테러 직후에는 그야말로 잔뜩 쫄아버렸다. 일제히 미군 및 미국의 정보기관들에게 우리가 한 짓이 아니라고 말한것은 기본이고, 더 나아가서 우리를 제외한 다른 놈들이 전부 의심스럽다고 앞다투어 밀고하고 다녔다.(…)

    • 처음에 1순위로 지목을 당한 알 카에다는, 역시 자기들이 한 게 절대로 아니라고 극구 부정했다. 오사마 빈 라덴 본인도 미국이 자기뿐만 아니라 탈레반을 통째로 회치겠다고 덤벼들자 겁을 먹었는지 "난 모르는 일이다."라고 발뺌을 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결국 자신들의 소행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했다.

이 외에도 냉전 이후, 한 동안 국제사회는 세계가 멸망한다는 위기감에서 벗어난 것 때문에, 미국의 국제문제 개입도 많이 줄어들면서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매우 낙관적이고 낙천적인 분위기가 주를 이뤘다. 러시아나 중국이 다시 힘을 추스르고 미국이 이에 제동을 걸려 하면서 잠깐의 충돌과 위기감이 돌긴 하였으나 미국이 워낙 초강대국이었고 러시아와 중국은 냉전시절만큼의 정치적, 군사적 무력을 가지지 못했기에 이 분위기를 깨지는 못했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 미국이 다시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휘두르면서 이러한 낙관적인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사라졌다. 당장 9.11 이전에 나온 90년대 세계 국가들과 역사, 미래를 전망한 책들과 9.11 이후를 포함하는 세계와 역사, 미래를 예측하는 내용을 다룬 책들만 봐도 분위기가 일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탈리아의 여기자인 올리아나 팔라치는 9.11 테러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펜을 들어 9.11을 이슬람이 미국을 침공한 역 십자군 전쟁이라고 부르면서 알 카에다와 이슬람 세력을 맹비난해서 만년에 파시스트란 오명을 얻었다. 이슬람 단체들의 고소에도 팔라치는 눈 하나 깜짝안하고 후속편까지 썼다.

3.3.1. 건축

디스커버리의 특집에 따르면, 건설업계 사람들은 이미 몇십 년 전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비행기가 박은 전적이 있었기에[42] 쌍둥이 빌딩을 지을 당시에 비행기 충돌(사고)도 고려했고, 사건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래서 무너지지는 않을 거라고 봤다.[43]이외에 대규모 피해는 상상하지 못했으며 기껏해야 몇 층이 부서질 거라 본 듯. 하지만 현실은 완전한 붕괴였다. 두 사례간의 차이는 근본적으로는 충돌한 항공기[44]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쌍둥이 빌딩의 건축공법상의 차이도 컸다. 쌍둥이 빌딩은 내부공간의 극대화를 위해 철골튜브구조로 건설되었다. 즉 대부분의 건물 하중을 건물 최심부의 엘리베이터 코어와 건물 외벽의 철제 빔으로 지탱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하중을 지탱하는 기둥과 내력벽을 최소화 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공간 확보에는 유용했지만, 9.11의 경우에는 여객기에 적재되어 있던 항공유가 인화하면서 수천도에 달하는 고열이 발생, 철골이 녹아내렸다. 외벽의 철골이 녹아버리고 코어에도 충격이 가자 무너져내린 것. 비행기가 충돌할 때 각도를 틀어 비스듬하게 부딪쳐 최대한의 외벽 손상을 일으킨 점은 이러한 건물의 특징을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 다른 이유로는, 건물의 최상층이 아닌 중간 지점에 비행기가 충돌했고 파괴된 구조물 위에 간신히 지탱되던 윗층들의 무게 역시 어마어마했던 것. 이것이 중력에 의해 추락하면서 아래층들과 충돌하자 말 그대로 아랫층의 콘크리트와 철골을 가루로 만들어버리며 지상까지 내려왔다. 만약 비행기가 건물의 최상층에 충돌했다면, 남은 윗층의 무게가 적어서 전체 건물이 붕괴되지 않았거나, 붕괴의 정도는 훨씬 덜 했을지도 모른다. 훗날 빈라덴과 알카에다는 자신들도 건물이 무너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으며, 기대 이상이었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결국 충돌층이 붕괴 → 멀쩡한 아래층에 충돌층~최상층의 위치에너지 작렬 → 아래층 붕괴 → 이하생략.

사건 이후, 미 건축계에서 수천 도의 고열만으로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확신을 깬 붕괴건에 대해 조사한 결과 약해지는 철골에 결정타를 넣은 것은 중력이었음을 확인하였고 이후 '화재와 중력의 합작품'이라고 알려지게 된다.

3.3.2. 항공

이 사건을 계기로, 현재 전세계의 민항기들은 반드시 조종실 문을 잠가야 하며,[45] 조종석 승무원들의 용무나 일부 허용된 경우가 아니라면 절대로 문을 열지 않는다. 과거에는 이것이 의무가 아니어서 쉽게 조종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미국 국내선의 경우, 커튼 한장으로 조종실이 분리되어 있는 경우도 있었고, 설령 잠겨있어도 문을 두드리면 열어주는 경우까지 있었을 정도였다.[46] 심지어 러시아에서는 꼬마아이(조종사의 친척)가 조종실을 구경한다고 들어왔다가 비행기를 추락하게 만든 적도 있으며, 이건 내셔널 지오그래픽 항공사고 수사대에서도 방영되었다. 이 부분은 Aeroflot Flight 593기 추락사고를 참조하자.

또한, 테러범들이 납치에 쓴 무기는 금속 탐지기에 걸리지 않는 플라스틱 나이프[47]였다고 한다. 이후로 미국 항공기에서는 보안검색이 매우 엄격해져서 손톱깎이 하나도 휴대하지 못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기내식에도 썰어먹는 스테이크류가 사라지고 미리 잘게 잘라준다. 또한, 기장과 부기장이 동시에 사망하는 독극물 음식테러를 막기 위해서 액체류 반입도 엄격하게 제한하여 물도 함부로 마시지 못하게 했으며, 기장과 부기장이 식사를 하는 시간도 서로 다르게 설정하고, 기장과 부기장에게 제공하는 식사메뉴도 역시 서로 다르게 제공을 한다고 한다.

또한, 공군과 민간항공의 항공 관제 용어 차이가 초동대응에 혼선을 불렀다는 지적이 나왔고, 이후 군과 민간의 항공용어가 통일되고 기존의 공군과 항공국의 대응 체계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이것 이외에도 공항 내의 안전수칙과 보안이 강화되었으나, 이후 내부평가에서 많은 평가요원들이 칼을 비롯한 흉기는 물론 총까지 들키지 않고 통과하는 데 성공할 정도였고 이후로도 비행기 폭탄 테러 시도가 계속 일어나는 등 아직도 갈 길이 멀다.

3.4. ETC

9.11 테러가 일어난 지, 정확히 두 달 하고도 하루가 지난 11월 12일에 뉴욕 상공에서 존 F. 케네디 공항을 이륙한 AA587편이 뉴욕 퀸즈 주택가에 추락하는 대형참사가 터졌다. 원인은 잘못된 비행규정으로 밝혀졌으나 시기가 시기였던지라, 9.11 테러 당시처럼 모든 항공기가 강제로 착륙하고 출입이 통제되는 등 큰 혼란에 빠졌다.

9.11 테러 이후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수천명이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에 시달리고 있다. TV로 비행기가 충돌하여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뛰어내리는 모습이 생방송 되었으니, 이는 사건에 직접적으로 연루된 희생자들 뿐만 아니라 그걸 지켜본 모든 이들에게 트라우마가 된 것으로 인해 보안시장이 급격히 증가했다. #

9.11 테러 이후 1년간 미국의 이슬람 신자 400명 이상이 증오범죄를 당했고, 그 뒤로도 매년 100명 가량이 공격을 당했다고 한다.#

피해자가 워낙 많다보니 이슬람교인의 피해사례도 있는데 특히 미 의회에서도 언급된 사례로, 파키스탄계 미국 귀화인으로 뉴욕경찰(견습생)이 된 이슬람 신도 모하메드 함다니의 사례도 있다. 초기에는 용의선상에 올랐으나, 이후 그라운드 제로에서 의료가방과 함께 시신으로 발견되어 영웅으로 명예회복이 되었다. #

세계무역센터가 들어가는 미디어 매체가 대부분 수정되었다. 영화 스파이더맨 1편에서 스파이더맨이 세계무역센터에서 적과 싸우면서 거미줄을 무역센터 사이에 치는 장면이 있었으나, 장면을 수정했고 개봉도 늦어졌다고 한다. 또한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2 유리의 복수에서 연합군해리어 전투기유리군핵발전소에 부딪치는 장면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오리지널에서는 소련군이 파괴할 수 있다. 덤으로 세계무역센터 관련 캠페인을 제거했다고 한다. 메탈기어 솔리드 2에서도 아스널 기어가 맨하탄을 들이받는 장면이 수정된 것으로 추정된다. GTA 3에서는 LCPD의 패트롤카의 디자인이 NYPD에 가까운 디자인에서 LAPD와 유사한 디자인으로 변경되었고, 비행기가 고층빌딩 근처로 날지않도록 비행경로도 수정되었다. 결정적으로 북미판 박스 아트가 변경되었는데 [48] 지금까지 이 박스아트의 전통을 물려받고 있다.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 드림 시어터의 뉴욕 공연을 수록한 5집 라이브 앨범불타는 세계 무역 센터가 그려진 앨범 커버로 9월 11일 발매되었으나 테러로 인해 급히 물량을 회수하고 수정된 커버를 사용해야 했다.

게임 데이어스 엑스에서는 시스템 자원 사용의 한계와 최적화 문제로, 뉴욕의 거대한 건물이었던 세계무역센터를 게임 배경으로 집어넣을 수 없게 되었다. 뉴욕 시의 상징과도 같았던 세계무역센터가 사양 문제로 게임에서 등장할 수 없게 되는 바람에, 게임 제작자들은 이를 보완할 게임 설정을 추가했는데 그 설정의 내용이 세계무역센터는 테러로 붕괴되었다.. 그리고 게임이 출시된 지 1년 뒤 실제로 일어났다.

4. 후속 테러

런던 폭탄테러를 제외하면 대부분 사전에 저지되어서 그다지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9.11 테러의 재현을 노리는 이슬람계의 테러시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5. 현재

9.11 테러 당시 미국은, 냉전도 끝나서 딱히 외부적인 위협세력도 없었기 때문에 대외정책에 대한 명분과 필요성, 그리고 예산의 부족으로 슬슬 해외 문제에 대한 개입을 줄이려던 시기였지만 테러 이후 분위기가 반전되어 이곳저곳에 적극적인 개입정책을 벌이고 있다.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자리에는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라고 불리고 있으며, 건물 붕괴 후에 쌍둥이 빌딩의 철골 구조물 중 일부가 십자가 형태로 남아있어 '굴하지 않는 미국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현재 여기에는 프리덤 타워라는 건축물을 열심히 짓고 있다. 현장 옆의 빌딩에는 소방관 추모비도 걸려있다.

현재 그라운드 제로 주변엔 이슬람 사원을 건립한다는 계획이 발표되자 미국민들이 들끓고 있는 중. "이슬람 테러리스트에 의해 무너진 건물 주변에 이슬람 사원을 건립한다는 건 희생자들을 모욕하는 일이다."라는 반대의견과,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야한다."는 찬성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버락 후세인 오바마는 지지를 천명한 상태. 덕분에 지지율은 더 떨어졌다.


adfadfasdf.jpg
[JPG image (Unknown)]

세계무역센터 바로 옆에는, Tribute in light라는 서치라이트 설비가 설치되어 해마다 9월 11일이 되면 위와 같은 조명을 밝혀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또한, 플라이트시뮬레이터 같은 항공기 시뮬레이션들은 과거에는 표기되었던 장소[49]들이 사라진다던가 하는 경우들이 생겼다.

이 사건으로 인해 미국에서는 테러에 대해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기 시작했으며, 테러리스트에게는 인권 따위 없다 수준의 무자비한 처벌도 불사하고 있다. 미국 본토에 관해 무력 도전을 하거나 테러로 장난친다면, 정말이지 지구 끝까지 찾아내어 응징하고야 만다. 더군다나 한국처럼 형법이 물러터진(?) 국가도 아니고 징역 100년 정도는 쉽게 내리는 곳이 미국이다. 실제로 한국인이 한국 땅에서 인터넷 장난전화로 테러 협박을 했다가 FBI에서 한국 경찰에 수사 요청을 한 사례도 있다.[50] 미국인 앞에서 9.11 테러와 관련된 농담을 꺼내는 것은 매우 심각하게 불쾌감을 유발하는 행위이므로 절대 하지 말자. 이건 마치 한국인 앞에서 일본제국 종군위안부를 농담거리로 삼는 것만큼 위험천만한 행위다.

그리고 건축쪽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현재 미국에서 건물에 관한 규제가 강화되어서, 설계를 할때에는 그 건물이 테러에도 견딜지 있는지 고려를 해야 된다고 한다.

5.1. 음모론


대표적인게 루스 체인지(Loose Change) 다큐멘터리다. 이들이 주장하는 음모론은

  • 비행기와 상관없이 세계무역센터 7번 건물은 왜 무너졌나?

  • 철골로 된 세계무역센터 빌딩은 어떻게 자유낙하속도로 무너졌나?

  • 붕괴된 층보다 20~30층 아래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편들은 대체 무엇인가?

  • 왜 세계무역센터의 건물주는 9.11이 발생하기 6주 전에 35억달러짜리 테러보험과 함께 건물을 샀을까?

  • 9.11 이전 몇 주 동안 예고에 없던 대피훈련은 무엇인가?

  • 건물 내부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의견에 따르면 또 다른 폭발음을 들었다는데? 특히 소방관들은 건물 안 밝은 섬광을 보았다는데?

  • 왜 펜타곤 충돌 현장에서는 보잉 757기 파편이 없는가?

  • 비행기가 스쳤다는 펜타곤 잔디밭에는 왜 아무 흔적이 없나?

  • 펜타곤에서 엔진이 들이받았을 자리는 왜 멀쩡한가?

  • 펜타곤 직원들은 사고 당시 군용 화약 냄새를 맡았다고 하는데?

  • 미국 정부는 왜 사고기의 블랙박스를 회수하지 못했다고 거짓말을 했나?

  • 흔적없이 사라진 UA93편은 어디로 갔을까?

  • 미국 정부는 9.11 테러 당일 주요 각료들의 비행탑승을 왜 금지시켰는가? 미 공군은 왜 비행기가 납치된 시각으로부터 2시간동안 늦장을 부렸나?

  • 거짓 전화통화 // 거짓 빈라덴 비디오 // 거짓 납치범

  • WTC 지하에 숨겨져있던 1600억 달러의 금괴 중 2억 달러 어치만 발견한 점.


한 때 유명세를 얻은 음모론 중 하나였고, screw loose change 같은 반박 영상도 나왔고, 다른 반박의견들도 나와서 루스 체인지를 제작한 딜런 에이버리는 그 의견들에 대해 반박하면서 논쟁을 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방대한 조사가 이루어졌고 건축 전문가들이 건물의 붕괴원인을 설명한 판에 이런 음모론이 발 붙일 자리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쌍둥이 빌딩에 박은 비행기 중 한 대의 등록번호가 Q33NY이고 이를 Wingdings체로 바꾸면 비행기가 빌딩 두 개[51]를 향하고 있고 그 옆에는 해골과 다윗의 별[52]이 있는 모습이 나오기 때문에 테러를 암시하였다는 괴담이 떠돌았으나 나중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53]

그리고, '9.11 테러 직전 찍은 사진'이라며 한 남자가 쌍둥이 빌딩 옥상 위에 올라가 있고 그 뒤로 비행기가 날아오는 사진이 떠돌아 진위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어났다. 나중에 합성으로 밝혀졌다. 덕택에 이 사진은 Tourist guy라는 이름으로 필수요소가 되어 더 많이 합성 당한다(...)

이외에도 마약과 관련된 루머도 역시 존재한다. 아프가니스탄은 아편 전세계 공급량의 90% 이상을 담당하고 있으며, 대마 역시 세계 최대 생산국이다. UN에서도 당해년도 마약시세를 알아보는데, 일단 아프가니스탄부터 언급을 할 정도로 마약 생산대국이다. 만일, 아프가니스탄에 문제가 생기면 전세계의 뒷세계 경제가 초비상에 돌입한다고 봐도 될 정도이다. 그런데, 매우 엄격한 이슬람 근본주의를 추구하는 탈레반이[54] 아프간을 장악한 이후, 이슬람법에 어긋난다고 마약생산을 금지했던 것이다. 물론, 금한다고 쉽게 걸려들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큰 타격은 받지 않고 있었지만 탈레반은 완전근절을 위해 UN과 협력하여 아편생산을 무려 90% 이상 줄여버린다. 이는 안티드럭 캠페인 역사상 가장 큰 쾌거라고 모두가 기뻐했는데... 이게 바로 2001년이다. 그리고 이 일이 있고 미국에서 9.11 테러가 일어났으며, 미국은 아프간을 지목해 탈레반을 몰아냈는데, 미국이 점령하고 나서 아편 생산량은 순식간에 원상회복을 보이며 지금까지도 왕성히 아편생산을 하고 있다.

다음은, 영문 위키페디아에 등재된 아프가니스탄의 년도별 양귀비 재배 면적이다. 알다시피 양귀비 재배는, 아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2001 년과 그 전후를 주목해보자.

dfadfasdfasdf.PNG
[PNG image (Unknown)]



한국에는 아직도 911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근거자료

사우스 파크 시즌 10 에피소드 9 'Mystery of the Urinal Deuce'에서는 9/11 테러 음모론을 주제로 하기도 했다. 여기서는 미국 정부가 미국 시민들 4분의 1은 음모론 따위를 믿을 정도로 멍청하니 직접 음모론을 만들어 사람들이 자신들을 공포하게 하려는 일종의 프로파간다라고. 그리고 나머지 4분의 3에게는 진실을 말한다고 했다(...).

6. 9.11 테러 사건을 다룬 작품

6.1. 문학

  •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Extremely Loud And Incredibly Close) (2005, 조너선 사프란 포어): 상당히 실험적인 시도를 많이 했다. 페이지가 숫자로만 이루어져 있다던지, 한장에 한 문장만 있거나 아예 빈 종이라던지, 텍스트가 겹쳐 알아볼수 없다던지, 특히 결말부의 사진-9.11 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을 찍은 것-을 리와인딩하는 기법 등이 특이점이다.

6.2. 영화

  • '2001년 9월 11일(11'9''01 September 11)' (2002, 사미라 마흐말마프 외): 각각 11분 9초 1프레임의 단편 11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 에피소드 순서대로 사미라 마흐말마프, 끌로드 를르슈, 유세프 샤힌, 다니스 타노비치, 이드리사 오에드라오고, 켄 로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아모스 지타이, 미라 네이어, 숀 펜, 이마무라 쇼헤이 연출.
  • '화씨 911(Ferenheit 9/11)' (2004, 마이클 무어, 다큐멘터리)
  • '루즈 체인지 제2판(Loose Change 2nd Edition)' (2006, 딜런 애버리, 다큐멘터리)
  • '유나이티드 93(United 93)' (2006, 폴 그린그래스): 국내엔 '플라이트 93'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 '월드트레이드센터(World Trade Center)' (2006, 올리버 스톤)
  • '시대정신(Zeitgeist)' (2007, 피터 조저프, 다큐멘터리)
  • '내 이름은 칸(My Name Is Khan)' (2010, 카란 조하르)
  • '주저하는 근본주의자(The Reluctant Fundamentalist) (2012, 미라 네이어):모신 하미드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했다.
  •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Extremely Loud And Incredibly Close) (2012, 스티븐 달드리): 조나단 사프란 포어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했다.
  • '제로 다크 서티(Zero Dark Thirty)' (2012, 캐스린 비글로): 9.11 테러 주모자인 오사마 빈 라덴을 주인공 '마야'가 10여년 간을 추적하는 과정을 다루며 촬영 직전에 빈 라덴이 넵튠 스피어 작전을 통해 실제로 사살되어 스토리가 변경되었다. 영화 초반부에는 9.11 테러 당시 무전, 통화 음성들이 나와 영화 시작부터 극의 긴장감을 더한다.

6.3. 드라마

6.4. 음악

  • yellowcard - Believe(Ocean Avenue, 2003)
  • Dream Theater - Sacrificed Sons(Octavarium, 2005)
  • 조성모 5집 '내것이라면' 뮤직비디오:9.11 테러 때 사망한 소방관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
  • [1] 이 'America Under Attack'은 아래에도 나오듯 미국의 주요 언론들의 헤드라인으로 쓰였다.
  • [2] 미국 내 9.11 위령비, 기념관 등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문구다. 경우에 따라 '기억하라.'로 번역되기도 한다.
  • [3] 테러 사고 사망자 수 1위, 미국이 겪은 인재중 사망자 수 1위 라는 끔찍한 기록을 세웠다. 더군다나 테러 사건중에서도, 미국이 겪은 인재중에서도 1,000명을 넘는건 이 사건 뿐이다.물론 미국이 때린 사건으로는 수두룩하다.
  • [4] 사실 이 말은 테러리스트들이 승객들에게만 들으라고 한 말이였지만 무전기 조작 실수로 관제사가 듣게 된 것.
  • [5] 이 영상은 뉴욕시의 신참 소방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던 프랑스 출신 영화 제작자 Jules Naudet이 찍은 것으로, 북쪽 타워에 비행기가 충돌하는 모습이 담긴 유일한 영상이다.
  • [6] 당시 뉴스 생중계를 보면, 세계 무역센터 인근 고등학교에서 폭발물이 설치되어있는 것을 발견했다던가, 주변 건물이나 차에서 폭탄이 폭발했다거나 (이는 대부분 폭발열로 열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한 것으로 결론났다.), 워싱턴 몰에 불이 난다거나 하는 등 온갖 루머 (주로 폭탄 관련) 와 사고로 인해 방송사부터 뉴욕시 경찰, 구조대원까지 모두가 완전히 혼란스러워 하는 상황이 그대로 드러난다. 특히 CNN에서는 세계 무역센터 바로 아래에서 터진 폭탄이 1번 빌딩이 무너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도해 이후 음모론의 중요한 떡밥으로 작용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 [7] 7번 빌딩이 무너지기 전, 누군가 대피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했다. 지금 시점에서는 누가 그런 명령을 내린지는 모르나, 그 사람 덕에 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렸다고 한다.
  • [8] 이 때문에 벤 슬라이니는 9.11을 다룬 다큐에서 단골로 등장한다. 플라이트 93이라는 영화에도 본인 역으로 출연했다.
  • [9] 다른 비행기들은 테러리스트들이 목적을 밝히지 않은 상황에서 자살 테러를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지 저항하지 않았다.
  • [10] 이 UA93편을 중심으로 만든 영화가 "플라이트 93"이다. 아래에 기재되어있다.
  • [11] 해당기체로 사건 2개월 전 캘리포니아에서 찍힌 사진이다.
  • [12] 해당기체로 사건 6개월 전 뉴욕 국제공항에서 촬영되었다.
  • [13] AA11편과 출발지, 목적지가 같다.
  • [14] 해당기체로 사건 7개월 전 플로리다 에서 찍힌 사진이다.
  • [15] 해당기체로 사건 3일 전 뉴어크 국제공항에서 촬영되었다.
  • [16]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만들었는데, 로튼 토마토 신선도 91%를 찍는 기염을 토했으니 시간이 나면 한 번 보자.
  • [17] 사실, 우리나라 민항기는 이미 9.11 테러 이전부터 조종석의 문을 잠근다는 방침을 시행하고 있었다. 이유는 북한의 비행기 납치 테러 가능성이 높았기에.
  • [18] 이상과 같이 미리 화근을 제거할 기회를 놓친 점들이 발견되면서 클린턴 정권에도 9.11 테러의 책임이 일정 정도 존재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가 없었다.
  • [19] 알 카에다가 네임드로 올라온 게 워낙 최근이여서 아랍 쪽 첩보담당자들을 제외하면 미국 수뇌부들 중 그 누구도 알 카에다의 위험성을 알지 못했다. 클린턴 정권의 안보 담당자들이 업무를 인계하면서 "알 카에다를 조심하시오."라고 이야기하자 부시의 안보 담당자들이 "알 카에다가 도데체 뭐요?"라고 되물어 볼 정도였다(...).
  • [20] 비행기가 내륙에서 날아와 공격을 가했는데도 공군의 전투기들은 대서양 방향으로 출격했다. 영화 라이트 93에서는 지휘관이 전투기가 비행경로를 잘못 잡았다는 보고를 듣고 "시X! 아무것도 없는 바다로 날아가서 뭘 하고 있는거야!"라고 화를 내고 얼마 안가서 펜타곤이 공격당한다.
  • [21] 학생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모른 채 '휴교'라는 사실 하나에 좋아하다가 선생님들께 혼났다고 한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학생들에겐 그냥 휴교가 최고인거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소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보면 주인공 오스카는 9.11 당시 학교가 휴교해 친구들과 장난치러 가려 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WTC에... 하지만 실제로 전쟁이 일어난다면(...)
  • [22] 사실 원주민과의 싸움은 영국령 식민지 시기와 미국 건국 초기에 툭하면 산발적으로 일어난 전투였기 때문에 몇 번을 싸웠는지 정확하게 카운트하기가 불가능한 측면도 있다. 그리고 취소선 그은 내용에서 지적했듯이 인디언 전쟁은 원래 아메리카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과의 싸움이라서, 외부에서 미국을 공격한 것과는 사정이 다른 면도 있다.
  • [23] 1812년 지금의 캐나다에 해당하는 영국령 북아메리카 주둔 영국군에게 미국이 공격받아서 백악관까지 홀랑 태워먹었고, 판쵸 비야가 이끈 멕시코 북부 혁명군에 의한 뉴멕시코 침공의 경우 제대로 된 침공이라기보단 멕시코 정부군과의 전쟁 도중 미국 국경을 넘어 근처 마을을 공격한 정도였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침공이 맞긴 하다. 이 업적(?)으로 인해 판쵸 비야는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20세기에 미국의 '본토'를 침공하고서 살아나온 유일한 사람이란 타이틀을 얻었다. 또한 일본군은 잠수항모로 켈리포니아를 폭격하였지만 당시 일본군의 한계로 인근 숲에 산불을 내는 정도(...)에 그쳤다. 이는 미국 본토가 적군에게 유일하게 공습을 당한 사례이기도 하다.
  • [24] The Lone Gunmen
  • [25] 국내발매명 '적과 동지'. 9.11 이전에 집필되었다.
  • [26] World Trade Center, 일명 쌍둥이 빌딩
  • [27] 초기 알 카에다가 계획한 공격 목표물은 펜실베니아주의 원자력 발전소였다.
  • [28] 애국법이 아니다. 정식명은 Uniting and Strengthening America by Providing Appropriate Tools Required to Intercept and Obstruct Terrorism Act. 하지만 약자가 USA PATRIOT Act인지라 그냥 '애국법'으로 통칭하는 경우가 많다. 애당초 노리고 지은 이름이라...
  • [29] 테러가 일어난 지역이 바로 뉴욕 증권거래소가 있는 월 스트리트를 비롯한 온갖 금융거래사들이 모여있는 융행정구 (Financial District) 였던 이유도 있었다. 일단 테러를 당한 건물 이름부터가 WTC, 세계 무역센터 아닌가... 이 지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대피시키느라 주식시장이 억지로라도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었던 것.
  • [30] 591개. 이 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불행 중 다행인 듯?!
  • [31] 646개. 7년 뒤에 하락종목 최다 기록은 깨졌다.(무려 941개로 깨버렸다.) 뭐라고라?!
  • [32] "상승한 종목이 있다"는 것이 더 놀랍다.
  • [33] 다만, 당시 옵션은 엄청난 수익률을 자랑했다.
  • [34] 대체로 전쟁은 주식시장에 호재로 분류된다. 물론 자국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조건하에.
  • [35] 알 카에다가 한국에도 미 국적 여객기를 납치해서 주한미군 기지에도 테러하려고 했었다고 한다.
  • [36] 일본 역시 마찬가지로 도쿄 시내의 미 대사관을 노렸다고.
  • [37] 외국 상사 주재원
  • [38] 그 외에도 항공기 승객으로 탑승했던 재미교포 1명도 사망했다.
  • [39] 중국 영공에 근접하여 초계비행하던 미국 해군 전자첩보기 EP-3C가 요격을 위해 출동한 중국 F-8 전투기와 충돌해 하이난도에 비상착륙한 사건. 사고 경위와 기체,승무원 반환을 놓고 양국간에 감정 싸움이 벌어졌으나 일단 승무원과 기체는 무사송환됐다.
  • [40] 테러 2일 전, 탈레반의 숙적이자 북부동맹의 리더였던 아흐마드 샤 마수드를 알 카에다가 암살해주는 대가로 알 카에다를 아프가니스탄에 숨겨주기로 되어 있었다.
  • [41] 정확히는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협력하지 않겠다면 (영공을 통과시켜주지 않으면) 폭격으로 석기시대로 돌아갈 각오를 하시오."
  • [42] 당시 훈련중이던 B-25 경폭격기 1대가 안개 때문에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고, 결국 빌딩에 들이 받는 사고를 냈다. 승무원을 비롯한 다수의 사망자가 나왔으나 건물이 무너지는 정도의 큰 피해는 없었다.
  • [43] 그런데 애초에 이 둘을 비교할 수 없는 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사고는 단순사고였던 반면 9.11 테러는 테러리스트들이 작정하고 비행기를 충돌시켰다는 명백한 테러라는 것이다. 길 잃어서 허우적대다 실수로 박은 거작정하고 최고속력을 내서 꼬라박은 거랑 당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 [44] 전자는 B-25, 후자는 광동체여객기.…. 체급이 다르다. B-25는 최대 이륙중량 16t, 최대속도 438km/h, 순항속도 370km/h. 무역센터에 충돌한 B767의 경우는 공중량만 80t에 순항속도 850km/h이다. 대략 100t으로 잡고 700km/h로 부딪혔다고 치고 계산해도 B-25가 가질 수 있는 최대 운동에너지의 거의20배다. 실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사고의 경우와 비교하면 25~30배 가량 차이나는셈.
  • [45] 참고로, 계속된 북한의 민항기 납치에 이골이 났던 대한민국 정부는 9.11 테러 이전부터 이게 의무사항이었다. (...)
  • [46] 하지만, 생각보다 이 조항이 아직 잘 안지켜지는 경우가 많다. 메이저 항공사에서는 칼같이 지켜지나, 개도국의 경우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듣보잡이지만 자국에서 나름 유명한 항공사에서 조차 똑똑 두드리면 문을 열어주는건 예사요, 아예 조종실 문을 열어놓고 운행하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 [47] 일설에는 기내식용으로 주는 나이프였다고. 승무원과 승객들을 마구 찔러 공포심을 유발했기에 가능했으리라 보인다. 그런 걸로 비행기 납치가 가능할리가 없다고? 90년대 일본에서는 송곳으로 비행기를 하이재킹한 사례가 있었다.송곳은 철이니까 탑승 전에 걸려야 정상 아닌가
  • [48] 오리지널 박스아트에는 고층 빌딩이 그려져 있었다.
  • [49] 예를 들면 과거엔 있던 미군기지 같은 곳이나 항공기로 자폭테러하기 적절한 것으로 취급되는 장소.
  • [50] 한국 언론에서는 복자처리되었지만 미국 언론에서는 용의자의 사진과 실명이 공개되었다.
  • [51] 정확히는 서류 모양 그림문자
  • [52] 정삼각형과 역삼각형을 겹친 모양으로, 이건 이슬람이 아닌 유대인의 상징이다. 이스라엘 국기에 이게 그려져 있다는 걸 떠올려 보자.
  • [53] 미국에 등록된 항공기는 등록번호가 N으로 시작한다. 한마디로 개구라. Q33NY가 'NY-뉴욕 Q-퀸즈로드 33-33번지 즉 뉴욕 퀸즈로드 33번지를 가리키며 이는 세계무역센터 빌딩의 번지수이다'라고 알려져있지만 구글에서 검색해보면 세계무역센터 빌딩의 번지수는 70 Church St, New York, NY 10004이며, 퀸즈로드 33번지는 전혀 엉뚱한 곳을 가리킨다.
  • [54] 탈레반의 시작은 종교학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