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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88577

last modified: 2018-09-29 04:54:03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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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개요
2. 안습한 역사
2.1. 2001년 : 불운한 시작
2.2. 2002~2003년 : 백골프의 등장, 절정기
2.3. 2004년 : 리빌딩의 시작
2.4. 2005~2007년 : 처절한 꼴데 탈출기
3. 2008년. 제리 로이스터의 등장과 비밀번호 종료
4. 2013년. 다시 생긴 악몽?
5. 2008년 이후
6. 동병상련의 심정
7. 기타 이모저모


1. 개요


lotte.jpg
[JPG image (Unknown)]

"최근 7년 롯데 순위"라는 멘트로 봐서 2008년쯤에 나온 자료화면으로 추정된다.

롯데 자이언츠의 2001년[1]부터 2007년 성적으로, 저 속에 4연속 꼴찌라는 위업도 들어있는 위대한 숫자이다. 그 시절 동안 올린 패배수는 무려 538패이다.[2]

롯빠의 마지막 보루이자 타팀의 영원한 놀림거리. 하지만 타팀 팬[3]들이 자기가 응원하는 팀 성적이 나쁘다며 아우성칠때 옆에서 조용히 8888577의 주문을 외우면 닥치고 버로우하게 되는 신비로운 힘이 있다. 사실 4연속은 커녕 3연속 꼴찌를 한 팀도 롯데를 제외하면 2014시즌에 899를 달성하며 3연속 꼴찌를 달성한 한화밖에 없다는 점에서 어떤 팀에서도 깨기 힘들 것이 확실한 대망의 기록. 바다 건너에서는 어느 구단이 2008년 부터 4년 연속 기록중...이긴 하지만, 이 구단은 1954년부터 1959년에도 6년연속 최하위1600!! 888888!!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나선 1960년 리그우승, 일본시리즈우승. 어?


당시 롯빠들의 심정를 대변해주는 짤방. 삼성역사상 최악의 성적이었던 6위도 사실은 백인천 재임시절.[4]

2. 안습한 역사

2.1. 2001년 : 불운한 시작

2001년은 롯데에 있어 너무나도 불운한 해였다. 2001년은 유례없는 중하위권 팀들의 치열한 순위싸움이 벌어진 해였는데, 이 치열한 상황에서 악전고투하던 김명성 감독이 시즌 도중 7월 24일에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사상 유래없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우용득 대행 체제로 어떻게든 수습하려 했고 후반기에 김주찬이 톱 타자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며 팀에 활력을 불어넣기 시작해 시즌 막판까지 4강 싸움을 벌였으나, 2001 시즌 막판 펠릭스 호세마산구장에서 배영수의 빈볼성 투구를 참다 못하고 참교육죽빵을 날리며헤이 영쑤돈두댓 잔여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으며 팀이 무너지고 말았다. 결국 4위와 2게임 차이로 아쉽게 8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호세가 출장정지 먹고 나서 1군에 갓 올라온 선수가 훗날 롯데의 주전 강타자

2.2. 2002~2003년 : 백골프의 등장, 절정기

2001년 8위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다른 해의 8위와 달리 이 해의 4~8위간 성적은 2게임차로 거의 도찐개찐에 가까웠기에 꼴지를 했다고 뭐라 할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듬해 김민재의 FA 이적, 펠릭스 호세의 이중계약 파동 등 전년도의 주축 전력들이 이탈하기 시작하며 롯데는 나락으로 빠져들기 시작했고, 대행에서 승격한 우용득 감독은 이러한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 최악의 성적을 찍고 중도 사퇴하였고 동시에 새롭게 부임한 감독이라는 단어도 아까운 백인천 감독이 롯데 7년 암흑기를 확정짓는다.

백인천은 부임하자마자 시즌 포기와 리빌딩을 선언하며 온갖 무리수를 던져댔고, 그 결과 2002년 롯데는 구단 역사상 최악+모든 구단 역사상 뒤에서 3등[5]이라는 찬란한 성적(35승 1무 97패, 승률 0.265)을 내면서 독보적인 최하위를 한다.[6][7] 이해 롯데의 홈 최종전이었던 2002년 10월 19일 한화전의 유료관중은 69명이었다.

이 당시 관중동원이 얼마나 안습이었느냐를 증명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2002년 9월 14일, 부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참가국들을 응원하는 시민 서포터즈가 결성되었는데, 원래 주경기장에서 발대식 행사가 예정되어있었다. 3만명 이상의 서포터즈가 모이고 행자부장관, 부산시장, 각국 대사가 참가하는 성대한 행사였다. 롯데는 침체된 프로야구붐을 되살려보겠다는 생각으로 사직야구장으로 장소를 변경하길 요청했고, 행사 이후에 서포터즈가 그대로 공짜 야구경기를 관람하게 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5년만의 만원관중 예상이라며 보도자료를 돌렸다.관련기사#1 그리고 야구장은 오랜만에 사람들로 붐볐는데... #2 하지만 그 날 관중수는...514명...행사가 끝나고 경기시작 시간이 되자 귀신같이 관중들이 다 빠져나가 버린 것이다. #3 당시 운영팀장은 "사람들이 돈 받는 줄 알고 다 갔나봐요."라며 씁쓸해 했다.과연 돈받는것때문에 우르르 나갔을까 공짜 야구도 소용없는 지경이었다.

새감독이 대놓고 시즌포기를 선언하고 다음 시즌을 제대로 준비하겠다고 했으니, 2003년 시범경기까지는 구단과 팬들도 나름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2002년에 남발했던 무리수의 후폭풍으로 개막 후 13경기동안 1무 12패를 서막으로 충격적인 시즌이 시작 된다. 2002년부터 시작된 백인천의 온갖 무리수가 시너지 효과를 내기 시작하며 안좋은 결과들을 쏟아내자, 백인천은 책임은 고사하고 아예 감독직 수행을 거의 포기하고 배째모드로 들어갔다. 그렇게 롯데는 2003년에도 바닥을 기다 결국 8월 백인천을 해임한다. 대행으로 부임한 김용철이 그나마 팀을 어느정도 수습하고 승률을 끌어올렸으나 이미 때는 늦어 39승 3무 91패, 승률 3할로 전년도에 이어서 압도적인 꼴찌를 차지했다. [8]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3년 연속 꼴찌.

2.3. 2004년 : 리빌딩의 시작

3년 연속으로 꼴찌를 한 후 2004년부터 양상문 체제로 들어서면서 롯데의 본격적인 리빌딩 행보가 시작된다. 이상목, 정수근을 FA 영입하며 전력보강을 꾀했고둘 다 먹튀가 되었지만 이대호, 박기혁, 김주찬등을 중용하며 새로운 주축 전력들을 키워내려 애썼다. 그 결과 승률이 전년도에 비해 1할 넘게 올랐으나 그전까지의 누적 데미지가 워낙 컸던 탓에 50승 11무 72패로 다시 한번, 4년 연속으로 8위를 하게 되었다. 8888! 그로 인해 꼴데라는 별명 확정이게 다 백인천 때문이다!!![9] 안습.

2.4. 2005~2007년 : 처절한 꼴데 탈출기

그렇게 리빌딩 행보를 밟아나간 양상문호는 2005년 초 엄청난 돌풍을 일으키며 1위까지 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이후 팍 죽어버리며 한달도 채 안 되는 기간만에 또다시 나락으로 추락했고, 고군분투에도 불과하고 재활공장장 버프를 받은 한화에 밀려 5위라는 아쉬운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하게 된다. 이게 다 김재박때문이다! (참고항목 : 야구 명언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참조.)

그리고 2006년이 되어 팬들은 2년만에 팀을 5위까지 끌어올린 양상문 감독이 계속 감독을 맡을 거라 생각했지만[10] 구단주가 갑작스레 발표한 롯데 투자계획에 따라 새롭게 들어온 감독은 바로 강병철. 1984년 최동원, 1992년 염종석의 전성기와 그 후를 아는 팬들은 큰 우려와 혹시나 하는 작은 희망으로 그를 지켜봤지만 성적은 2년 연속 7위외쳐!! 77!!라는 기록과 함께 또다시 시궁창으로 빠지게 되고, 대망의 8888577이 완성된다. 동시에 팬들이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던 강병철 감독은 주구장창 까이며 잠시 야인으로 지내다 08년 히어로즈 2군 감독직에 오르게 된다.

이시기 강병철 감독에 대한 분노는 극에 달해있어서,

잠실 구장에서 플랜카드가 걸리기도 했고[11] 사직구장에서도 "편파적인 강감독의 선수기용 반대한다" 라는 플래카드를 걸기도 했다. 이 짤방만 봐도 이 시절 롯데 팬들의 설움이 어느 정도였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김성근 감독이 오기 전 한화 팬들의 심정도 아마 이 짤방과 비슷하리라.

3. 2008년. 제리 로이스터의 등장과 비밀번호 종료

2008년 제리 로이스터 감독을 영입하여 시즌 최종순위 3위로 8년만에 가을야구 진출에 성공해 드디어 이 주문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게 아쉬웠던 안티들은 888857737758888의 장엄한 데칼코마니데칼마니를 찍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기대는 그냥 기대. 하지만 2011 시즌 롯데팬은 양레기 감독의 호구짓시행착오를 보며 꿈이 아닌 현실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았으나 이후 7월 이후로 각성한 롯데 자이언츠의 미칠듯한 대약진으로 2위(!!)까지 올랐다!!! 더불어서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확정! 2012 시즌도 1위자리를 넘보다가 DTD를 시전하며 가을을 독서의 계절로 만들 위기에 빠졌으나 10월 2일 KIA전 승리로 간신히 5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확정! 흠좀무.

4. 2013년. 다시 생긴 악몽?


하지만 2013년 감독이 김시진으로 바뀌고 FA들이 떠나고 감독의 작전들이 모두 호구가 되면서 두산과 넥센을 끝내 잡지 못하고 결국 9월 28일자로 가을야구를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감독님 데려오라고 했잖아 사실 13시즌에는 하위권이 졸라게 못 했기 때문에 승률 인플레가 발생해서, 승률 5할 3푼 2리를 찍고도 5위를 한 것이다. 이 승률도 한화에게 14승2패로 찍어 눌렀기 때문.양학

그리고 2014년 현재 순위는 7위. 다시 비밀번호 작성하게 생겼다. 로이스터가 끝내고 양승호가 부활시키자 김시진이 다시 암흑기를 열었다. 결국 8888577을 종결한지 7년만에 다시 7데로 돌아왔다. 롯데는 어떻게 다시 7데가 되었나

5. 2008년 이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기 시작한 2008년에는 준플레이오프에서 3연패, 2009년에는 준플레이오프에서 1승 후 3연패로 탈락했으며, 2010년 준플레이오프에서도 두산을 2연승을 거뒀다가 다시 연패를 당하면서 2승 3패로 탈락. 이 때문에 8888577이 아니라 부산은행 8888577-03-1323 예금주 : 로이스터라는 말이 나왔었다.

결국 로이스터 감독은 포스트시즌 성적의 책임을 지고 경질되었으며, 다시 데칼마니비밀번호 시대가 시작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롯데 팬들 사이에서 만연했다.

결국 2011시즌 개막 1달만에 꼴지까지 떨어지게 되면서 새로운 비밀번호 시대의 서막을 여는가 했으나, 위에서 언급했듯이 여름 이후 미친 듯이 각성한 롯데 자이언츠의 대약진으로 2위까지 올랐다. 오히려 성적은 로이스터 시절보다 더욱 좋았다. 더불어 롯데의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도 사상 처음이고. 게다가 페넌트레이스 2위하고 플레이오프 직행! 존나좋군? 그리고 어느 팀작년(2010년)에 달성한 최다 비밀번호 경신이 2011년에도 달성되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SK에게 2승 3패로 패배하면서 최종 순위는 3위로 마감했다.[12][13] 8888577-03-132323

2012 시즌에는 시범경기에서 레알 꼴데가 되었지만 페넌트레이스에서는 의외로 선전하더니 4월 20일자로 단독 1위까지 올라섰다! 그리고 털리는 탑 갤러리 단독 1위 후에는 두산과 1위 싸움을 신나게 하였다. 그러다 잠시 중위권으로 내려가다 영남 라이벌인 삼성과 1위 다툼을 치열하게 하였고, 7월 7일 단 하룻동안 탑데로 되돌아간 적도 있었지만 다음날 패배로 다시 2위가 되면서 삼성에게 1위 자리를 내주었다.
그 이후 다시 두산 베어스와 치열하게 치고박기를 하다가 9월 9일 시점에서 2위 굳히기에 나선 상황이었다. 당시 롯데가 가을야구 걱정할 때가 아니라 20년 만의 우승을 걱정할 때라고 롯데팬들은 설레발을 쳤으나, 결국 롯데는 10월 1일 KIA와 4강 싸움을 하였다. 당시 4위였던 롯데는 9월 29일부터 KIA와 경기를 치뤘기 때문에 만약 KIA에게 스윕당하면 5위 KIA와의 승차가 1.5경기차로 줄어들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몰랐었다.
그런데 롯데가 포스트시즌 진출 매직넘버를 0으로 만드는데, 준플레이오프에서 두산을 3승 1패로 꺾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함으로써 비밀번호를 종결한 이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차기 라운드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롯데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일은 없었다. 롯데는 이어지는 플레이오프에서 거짓말처럼 패배했다

2013년 시즌은 탑데부터 7데까지 롤러코스터를 탔다. 9월에 4위인 넥센의 질주에 따라가지 못하여 결국 9월 28일, 롯데가 한화에 대승을 거두고도 넥센이 마지막 1승을 챙기고 결국 6년만에 가을야구 실패. 그리고 SK하고 유종의 미를 위한 5위 싸움 끝에 결국 5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승률은 2012시즌보다는 정작 2013시즌(.532)이 더 높다. 그리고 이는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역대 최고 승률 가을야구 실패.

어쨌던 간에 2001년부터 2007년까지의 악몽은 벗어났지만, 롯데는 1992년을 끝으로 한국시리즈에 우승하지 못했다.

6. 동병상련의 심정

가장 비슷한 예로 LG 트윈스의 2003년 이후 성적인 6668587667이 언급되기도 하며 LG로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다행히(?) 강산이 바뀐 2013시즌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며 이전에 비해 크게 개선된 모습을 보였고, 4강을 나눠먹던 단골팀들이 추락하여 사실상 재기불능의 상태였기에 2013년 9월 22일에 가을야구를 확정지었다.

이 외에 이와 비슷한 비밀번호를 찍었던 팀으로는 한화 이글스넥센 히어로즈가 있었다. 이 중에서 한화의 경우 2008년부터 4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실패 및 2연속 최하위를 자랑(...)했으며, 지나치게 약화된 선수층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선수조차 잡지 않고(혹은 못하거나) 리빌딩만을 외치며 전력증강에 실패하여 2010년 시즌까지만 해도 롯데나 LG를 뛰어넘는 비밀번호[14]의 서막을 알리는 듯 싶었다.[15]
그러나 2011년 프런트가 물갈이 되고, 한대화 감독 또한 승부사의 포텐셜이 터지면서 약한 전력으로도 끈끈하고 포기하지 않는 팀컬러를 보여주며 팬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게다가 카림 가르시아를 영입하는 등 타선도 더욱 강해졌다. 몇 년 더 봐야 알겠지만 롯데나 LG의 비밀번호를 뛰어넘기는 쉽지 않을 듯.(그러나 결국 LG와 동률을 찍었...) 자세한 것은 한화 이글스 항목 참조. 어쨌든 2011시즌을 6위[16]로 마감함으로써 일단은 비밀번호가 5886이 되었다.

2011시즌이 끝나고 한화는 더욱 희망적이었던 일이, 박찬호김태균이 복귀한 데다가 골든글러브 유격수도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한대화의 삽질과 투타 양쪽에서 몇몇 선수가 말아먹는 분위기로 인해 이러한 트레이딩도 소용이 없어서 한화는 2012년 내내 꼴찌를 면치 못했으며 결국 시즌 도중에 한대화 감독이 경질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2012년 시즌 후 김응용감독이 부임하며 잠시나마 기대를 갖게 했지만 그것도 잠시, 류현진은 포스팅으로 해외진출, 박찬호는 은퇴, 장성호는 트레이드로 나가면서[17] 2013시즌을 앞두고 시름이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 결국 2013년 시즌도 꼴찌이자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9위 확정, 588689 항목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2014년 시즌에도 8월에 잠깐 반짝하다가 9위, 5886899로 비밀번호가 연장되었다.

2011년에 한화 이글스가 이른바 '야왕 신드롬'으로 분위기가 좋았던데 비해, 빌리장석이 있는 넥센은 선수 팔아 연명하고 있었으니 많은 사람들이 무난하게 꿈도 희망도 없다고 믿었던 상황이었다. 넥센 히어로즈는 한화 이글스와 달리 경제적 여력 자체가 열악하여 선수층이 얇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팀의 재정 문제를 확실히 해결하고 타 구단에서 주축선수를 대거 영입하기 전까지는 비밀번호 시대를 계속 이어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였다. 그나마 주축 선수 몇몇은 1군급이고 박찬호를 영입한 데다 김태균까지 돌아온 한화와 달리 넥센의 전력은 그 자체가 타팀의 2군에 준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2011년 기준으로 넥센은 전신격인 현대의 2007년 성적 6을 합치면 67678을 찍고 있었다. 하지만 2012년 구단주 장석甲이장석이 드디어 돈을 풀어 김병현, 이택근 등을 영입해서 전력이 강화되었다. 게다가 서건창의 포텐 폭발로 전력 보강이 하나 더 이루어졌다. 일단 영 좋지 않은 일로 망한 L모구단덕에 꼴찌는 면할거라는 추측이 많았다. 결국 (2012년 10월 1일 기준) 사실상 6위에 안착했지만, 막판까지 기적적으로 4위권에 진입할 가능성을 점칠 정도로 잠재력이 있었다. 또한 설령 2012년에는 하위권에 머물지라도, 차츰차츰 팀이 강화되고 있었기에 몇 년 지나면 비밀번호에서 탈출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되었으며 실제로 2012년 봄에 상위권을 마크했었고 잠시나마 1위를 마크했던 저력도 보여주었다. 그리고 2013년 시즌에는 초반부터 선두를 질주하며 포스트시즌 진출이 유력시되었지만, 얇은 선수층(특히 투수)가 결국 한계를 보여 후반기 들어 차츰 순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4강을 확정지으며 창단 6년만의 포스트시즌 진출로 비밀번호를 해제했다. 그리고 2014시즌에는 아예 플레이오프 직행.

2013년 한화이글스가 4월 14일 13연패를 기록하며 2003년 롯데가 세운 도저히 깨질것 같지 않았던개막 12연패를 경신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롯데의 8888577이 끝난 2008년에 한화의 5886899 중 첫 5가 시작되었다. 롯데가 뜨니 한화가 진다. 그리고 LG가 6668587667을 끝낸 2013년에 이번엔 롯데가 6년만에 5를 찍었다. LG가 뜨니까 또 롯데가 졌다.

결국 한화의 비밀번호는 2018년 포스트시즌 진출로 인해 5886899678라는 10자리 숫자에서야 멈추게 된다.

해외로 눈을 돌려보면 일본프로야구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난카이 호크스 시절에 20년 연속 B클래스(4~6위)를 기록했다. 거기다 시카고 컵스의 경우는 38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다.

7. 기타 이모저모

디시인사이드 야구 갤러리에서 인터넷 방송을 할 때 가끔씩 이 번호로 비밀번호를 설정하는 듯. 근데 요새는 LG가 찍은 비밀번호에 좀 밀리는 감이 있다. 그래도 외우기 쉽고 짧아서 뉴비 거르기용으로 자주 쓰는 편.


여담으로 이 시기에 한화한테 유독 약했다. 항상 상위권만 있다가도 한화에게 덜미를 잡혔었던 시절이 이때였다. 특히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롯데는 한화한테 철저하게 밟혔고 이 시기 한화가 가을야구 즐기는걸 구경만 해야 했다. 이러다 보니 이때 통합야갤시절, 한화팬들이 "칰키워"라고 불릴정도로 굉장히 강세였고 롯데 팬들만 보면 냄새난다고 욕을(...) 했었다. 그래서 생겨난 게 바로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 하지만 2008년 이후로는...

02-888-8577서울대학교에 있는 분자 세포 생물학 연구실의 팩시밀리 전화번호라고. 서...서울대 야구부!!
8888577.png
[PNG image (Unknown)]


원조(?)인 051-888-8577도 있는데, 부산광역시의회 2층 방송실의 전화번호라고. 여기에서 부산시청 전화번호 pdf파일을 다운받아보자. 부산시청 행정전화는 888국으로 시작한다.

2010년 11월 19일[18] 이말년 씨리즈 '수능특공대'편에서 패러디되었다. [[http://blog.naver.com/ipory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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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000년 성적까지 합치면 58888577비밀번호가 여덟자리 수가 되지만, 양대리그가 시행되었던 2000년에는 매직리그 2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였다. 하지만 드림리그 3위였던 삼성 라이온즈보다 승률이 낮아 준플레이오프를 치렀고 여기서 삼성에 패배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 [2] 참고로 7년간 치뤘던 경기 횟수는 총 910회다. 특히 8888을 찍던 때는 무려 532전 330패. 한 시즌 평균 패배수가 80패를 넘어갔다.
  • [3] 특히, 두산이나 KIA 등 상위권과 하위권을 왔다갔다하는 팀.
  • [4] 다만 삼성은 백인천이 취임하기 전 2년도 55를 찍으며 나름대로는 답이 없던 상황이었고 백인천은 결국 KBO역사상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리빌딩으로 팀을 97년 포스트시즌으로 이끌고 이 리빌딩이 결국 2000년대 삼성의 토대가 되었기에 그때를 본 삼성팬들에겐 여전히 평이 좋은 감독이다.
  • [5] 모든 구단 역사상 뒤에서 1등은 1982년 승률 0.188의 삼미 슈퍼스타즈, 2위는 주전을 모조리 팔아치웠던 1999년 승률 0.224의 쌍방울 레이더스
  • [6] 7위 한화(0.461)와도 2할 가까이 차이가 난다! 이 롯데 때문에 2002년 시즌은 역대 최악의 승률 인플레를 자랑했다. 순위 경쟁이 치열하면 페넌트레이스 1위와 최하위의 승률 차이가 2할도 안 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바로 전 해에는 한국시리즈 우승팀과 리그 꼴찌팀이 1할도 차이 안 났었는데... 동네북 그 정도면 차라리 고딩들하고 하는거 어때요?
  • [7] 참고로 이 때 롯데는 청보 핀토스 시절 허구연의 최하의 승률 기록(0.273)을 깼다...
  • [8] 이 해 롯데는 시즌 시작부터 두산과 함께 땅 속으로 파고들어갔다. 시즌 13게임까지 롯데 1 12패, 두산 1 12패(...). 게다가 두 시즌 합쳐서 190패라는 막장기록까지는 아니어도 188패이기 때문에 거기서 거기고 무엇보다도 두 시즌 연속 90패를 기록했다는 점이 뼈아픈 기억이다.
  • [9] 8888의 임팩트 때문에, 최근 10년간 롯데는 꼴찌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꼴데 별명을 이어가게 된다.
  • [10] 지금이야 양상문은 크보 최악의 투수코치로 욕먹고 있지만 이 당시에는 만년 꼴찌 롯데를 단기간에 중위권으로 상승시키는 등 감독으로서의 평판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그러나 뒤에 롯데 투수코치로 돌아오고 나서는..이하생략 그런데 후에 양상문 감독이 -16의 엘지를 4강에 올려놓은 다음 이 때 8888577의 5가 양상문 업적이었다는게 재발굴되었다.
  • [11] 통합 야갤시절 야갤에서 활동하던 롯빠들이었다.
  • [12] 최종 2위팀으로 기록되는 팀은 한국시리즈 준우승팀이다.
  • [13] 2008년에는 최종 순위가 3위였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게 스윕당해 최종순위는 4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준플레이오프는 최종순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것은 3위에게 주어지는 약간의 어드벤티지. 만약 2008년에 삼성이 두산을 이기고 한국시리즈에 올라갔으면 롯데의 최종순위는 4위였을 것이다. 물론 실질적으로는 4위다.
  • [14] 하지만 쌍방울도 68788찍고 포스트시즌으로 갔다. 하지만 흑역사 1999년의 포스가 워낙 강해서...
  • [15] 여기에는 리빌딩에 대한 의지가 전무한 프론트의 투자 부족이 큰 영향을 끼쳤다.
  • [16] LG의 비밀번호 보고 갸우뚱한 사람이 있을텐데, 4강 탈락팀의 경우 승률이 동률이면 그냥 공동순위 처리한다. 2011년 시즌 이전에는 1991년 LG와 쌍방울이 공동 6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다만, 신인 드래프트 등 순위 판가름이 필요한 경우에는 상호간의 전적 등을 참조하여 순위를 결정한다.
  • [17] 막상 2013년에는 트레이드로 내보낸 장성호보다 트레이드로 데려온 송창현이 더 잘했다.
  • [18] 이날은 2011학년도 수능 다음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