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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86899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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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항목은 588689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588689967'으로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LG와 롯데 비밀번호는 꼴X로 리다이렉트 되는데 한화만 안 하면 불공평해서이 항목은 꼴화꼴칰으로 쳐도 들어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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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집 전화번호 1588-6899
수능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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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개요
2. 안습한 역사
2.1. 2008년: 불운의 시작
2.2. 2009년: 본격적인 암흑기의 도래
2.3. 2010년: 태균이도 없고, 범호도 없고
2.4. 2011년: 뒤늦은 리빌딩의 시작
2.5. 2012년: 탈꼴찌의 기쁨도 잠시 뿐...
2.6. 2013년: 프로야구 최초 9위의 불명예
2.7. 2014년: 9구단 체제 2년, 9위 독식 2년
2.8. 2015년: 10구단 체제, 2차 리빌딩 시도
2.9. 2016년 : 짙어지는 절망, 믿었던 감독의 실체
2.10. 2017년: 진정한 리빌딩의 시작
2.11. 2018년: 암흑기를 끝내는 데에는 2년으로 족했다
3. 이 시기의 문제점

1. 개요

8888577, 6668587667에 이어 한국프로야구가 만들어낸 또 다른 전설의 비밀번호. 2011년 당시 동순위의 LG에게 상대전적이 뒤졌으므로 엄밀히 따지면 5887899가 맞지만 넘어가자. 보크는 잊었나?

한화 이글스의 2008년부터 2016년까지의 순위를 나열한 비밀번호로, 이제 8888577과 동급이 된 7년 연속 가을야구 탈락의 기록은 물론, 롯데 자이언츠의 4년 연속 최하위에 이은 3년 연속 최하위, 유일한 6년 중 5년 꼴찌, 9위 꼴찌 독식 등의 안 좋은 순위 관련 기록들을 상당히 많이 포함하고 있는 비밀번호이다.

2013년 9월 21일, 한화 이글스SK 와이번스에 패하면서 신생팀 NC에게도 순위에서 밀리게 되었고, 이제 남은 경기에서 전부 이기고 KIA가 잔여 경기 전패를 해야만 겨우 8위를 노려볼 수 있었다. 그리고 9월 22일, SK전에서 패하면서 꼴찌가 확정[1]되었으며 이로서 6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2년 연속 최하위[2]를 기록함과 동시에 KBO 역사 최초의 9위라는 불명예 기록을 세웠다. 신생팀에게도 10경기 차 내외로 멀어지며 3할 승률도 간당간당한 2013년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 비밀번호가 어디까지 갈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2014 시즌에도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10월 3일, 4위 LG가 넥센에게 압승을 거두고 한화가 롯데에게 패하면서 롯데 자이언츠가 찍었던 8888577과 같은 자릿수의 비밀번호를 기록하게 되었고, 2014년 10월 12일, 롯데에게 패하면서 치킨집 전화번호 5886899가 확정되었다. 이날 2008 시즌의 5를 떼고 886899라고 암흑기를 칭하는 기사도 나왔으며, 당장 2015년에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면 8888577을 뛰어넘게 되며, 이제 2년만 더 꼴찌에 머물러 있으면 롯데의 4년 연속 최하위 기록도 경신하게 된다.

여담으로 암흑기가 시작된 2008년부터 2014년까지 거둔 패배수는 539패. 롯데의 8888577 시절 쌓은 패배수 538패보다 1패가 더 많다.(...)

2012 시즌까지만 해도 엘넥한의 일원으로 비슷한 성적을 기록하면서 10자리를 써나간 LG 트윈스는 13~14년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해 비밀번호를 끊었으며, 한화와 사이좋게 5자리 비밀번호를 써내려간 넥센 히어로즈도 비밀번호 항목 생성을 피한 것을 넘어 창단 첫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며 하위권 탈출에 성공한 데 반해, 한화는 계속해서 약팀으로 남아 결국 5886899라는 비밀번호를 써내려가게 되었다. 2014년 현 시점에서 이 기록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는 팀은 KIA 타이거즈나 2015년에 1군에 신규 합류하고 나서 개막 10연패를 찍은 kt 위즈 정도밖에 없으나, KIA 타이거즈는 4년이나 차이나고 일단 시작은 588로 똑같다 kt 위즈는 2015년에서야 1군에 합류했으니 비밀번호를 찍으려면 한참 멀었다.

또 이 비밀번호 이전 한화가 꼴찌를 한 시즌은 창단 시즌인 1986년, 단 한 번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비밀번호 기간 동안만 무려 5번을 꼴찌를 했으니 더 비참해보이는 기록이다.

2. 안습한 역사

2.1. 2008년: 불운의 시작

멀리 보면 2007년부터 조짐이 보였다. 2007년에도 한화는 잦은 장마비 덕분에 생긴 우천 순연을 최대한 이용해서 붕괴된 선발진을 소수 정예로 끌고 가는 게 가능했기에 중위권을 사수하고 가을 야구도 나가봤을 뿐[3], 이미 팀 구성의 약점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2008 시즌에는 꾸역꾸역 승수를 쌓으면서 올림픽 브레이크 이전까지 56승 46패를 기록하며 두산에 승차 없이 3위를 기록하고 있었으며, 잔여 경기가 많이 남아 있긴 했지만, 쉬는 동안 전력 재충전이 될 거라 기대했기에 한화의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다. 그러나...

올림픽 브레이크 이후 3주 동안 류현진이 등판한 경기를 제외하고 모두 패배하며 무너졌고, 결국 후반기 내내 8승 16패[4]를 기록하며 최종 성적은 64승 62패. 4위 삼성과 승차 1경기 차이[5]로 포스트시즌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2.2. 2009년: 본격적인 암흑기의 도래

지난 해 불운이 있었지만, 2회 WBC에서 김인식 감독이 좋은 성적을 냈고, 김태균, 이범호, 류현진이 좋은 활약을 해 주어 올해도 좋은 성적을 낼 것이라고 팬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또한 전해에 한화는 엄연히 5할을 넘긴 팀이었으며, 강력한 선발 에이스와 훌륭한 중심 타선, 그리고 믿을 만한 마무리를 보유했기에 시즌 전에는 우승을 예상하는 사람도 많았다. 더군다나 개막전에서 SK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등 모든 것이 잘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김태균이 주루 중 홈에서 포수와 부딪치며 뇌진탕 증세를 보이며 전력에서 이탈했고, 이범호김태완 또한 잔부상으로 이탈하면서 급속도로 추락. 유원상, 김혁민 등 유망주의 더딘 성장세와, 정민철, 송진우 등 노장들의 연이은 은퇴로 인해 끝없는 추락을 이어가며 팀 역사상 2번째 꼴찌와 팀 역사상 최초의 8위[6]를 기록하게 된다. 김인식 감독이 계약기간 만료로 물러나면서 한화가 고른 새 감독은 한대화 당시 삼성 수석코치.

그러나 한대화 부임 이후 팀은 큰 위기를 맞는데, 바로 FA로 김태균이범호가 각각 지바 롯데 마린즈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이적한 것. 일본으로 진출한 만큼 당연히 보상금과 보상 선수도 못 받게 되면서 한화 입장에선 큰 손해가 되었다. 거기에 유격수를 맡던 김민재 까지 은퇴하며 한화는 순식간에 국가 대표급 1루수, 유격수, 3루수를 잃어버리게 된다.[7] 암흑의 시대가 도래하였구나!

2.3. 2010년: 태균이도 없고, 범호도 없고

2010hanwha.jpg
[JPG image (Unknown)]


쩔어주는 근자감.

시즌 시작 전 한화는 시즌 티켓 구매 혜택이랍시고 포스트시즌 입장권을 증정하는 것도 아니고 구매 우선권을 부여한다고해 팬들의 속을 제대로 긁어놨다...

2010년을 맞아 새롭게 들어온 전력은 방출 선수들인 전근표, 정원석마정길에 현금 3억 원을 넥센에 주고 데려온 마일영, 두산에 사정사정해서 트레이드한 이대수, 그리고 외국인 선수 두 명밖에 없었다. 개막전에서 지난 해와 달리 SK에 2연패하면서 출발했다.
이후에도 매번 찬스마다 터지는 병살, 단순한 플라이볼도 잡지 못하는 OME급 수비를 보이면서 추락을 반복한다. 그리고 김태완, 이도형의 부상으로 인해 타 팀 방출선수 출신인 정원석, 전근표가 4번 타자를 맡는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벌어질 정도였다.

그나마 투수들 중에서 류현진이 홀로 고군분투하고 2군에서 돌아온 노장 강동우의 활약으로 5월 7일 넥센 전에서 11연패를 끊으면서 타선의 무게감이 다시 생기기 시작하나...했었다.
그러나 7월 초 송광민시즌 중 입대라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지는데, 한 술 더 떠서 신검에서 현역 부적격 판정을 받고[8] 퇴소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결국 송광민은 이후 사회복무요원으로 가서 2년 간 얼굴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외국인 선수호세 카페얀이 11패를 찍으며 십일패얀 일찌감치 시망하며 방출, 대신 데리고 온 부에노 또한 기대에 못미쳤고, 훌리오 데폴라는 선발로 돌아선 뒤 잘 던지긴 했지만 이미 때가 늦은 뒤의 일[9]이었으니...결국 최종 성적은 49승 2무 82패 0.368로 2년 연속 꼴찌.

그나마 류현진의 1점대 평균자책점, 29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 기록이 위안이 되는 와중에도 구대성, 이영우 등 노장들은 하나둘씩 은퇴하며 사라져 갔고, 젊은 선수들은 죄다 미필에 주전 선수들의 연령층도 너무 높았다.

절망적일 정도로 선수가 없는 상황임에도 구단 프런트는 일본에서 복귀한 이범호KIA 타이거즈에 빼앗기고, 스토브리그에서 최영필, 이도형과의 FA계약을 거부하고 반 강제 은퇴시키는 등 도저히 리빌딩을 하려는 의지가 있는지조차도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기껏 이범호 보상선수로 데려 온 선수가 군 복무를 앞둔 안영명이었다거나 2군 전용 구장조차도 없었던 상황이었다.

2.4. 2011년: 뒤늦은 리빌딩의 시작

시즌을 앞두고 김태완, 황재규가 공익근무요원으로, 정현석은 경찰청에 입대했다. 웬만한 유망주들은 죄다 미필이니 원... 대신 한상훈고동진이 공익근무요원 복무를 마치고 소집 해제되어 돌아왔지만 크게 기대할 수 없는 전력이었다.
4월부터 류현진, 훌리오 데폴라가 털리면서 8위로 추락, 그렇게 3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하나 싶었다.

그러나 5월부터 장성호, 강동우의 복귀와 한상훈, 오선진, 이여상, 김혁민의 각성으로 서서히 성적이 나아지기 시작하더니 넥센을 제치고 7위로 올라섰다. 여기에 부진을 책임지고 팀 대표 이사와 단장이 바뀌고 그룹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 때를 기점으로 대타 등 한대화 감독의 작전이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지기 시작하며 한대화 감독의 야왕신드롬이 폭발한다.

이후 부진하던 오넬리 페레즈, 훌리오 데폴라를 퇴출하고 데니 바티스타, 카림 가르시아를 데려왔고, 이대수가 6월쯤부터 맹활약하면서 후반기 약진 속에 최종 성적은 LG와 함께 공동 6위. 시즌 막판에 연패만 하지 않았으면 5위도 가능했고 실제로 구단 고위층에서도 5위 달성시 보너스를 걸었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상대 전적으로 따지면 7위가 되기 때문에 2013년도 신인 드래프트에서 NC 다이노스에 이어 2번째 순위로 지명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더불어 3할을 때린 이대수가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경사도 맞았다.

하지만 바로 다음 해 이것이 플루크였음이 드러났다. 여담이지만 세이버매트리션 사이에서는 이 해 한화의 6위 달성이 대한민국 야구 역사상 최고 미스테리라고 회자된다.[10][11] 그런데 이거라도 안 했으면 롯데를 넘어서는 6년 연속 최하위라는 대기록을 달성할 뻔 했다.

2.5. 2012년: 탈꼴찌의 기쁨도 잠시 뿐...

시즌 시작 전 FA로 송신영을 영입하고, 일본으로 진출했던 김태균김도망의 복귀, 특별법을 통해 박찬호를 데려오는 등[12] 나름의 전력 보강을 이루었다. 무엇보다 작년에 6위로 탈꼴찌에 성공한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리빌딩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듯했다...시범경기 성적은 3위로 서서히 포스트시즌에 도전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해 주었다.

그러나 선수들과 프런트는 시즌 초부터 성적을 내야 한다는 중압감을 이기지 못했고, 결국 시즌 초부터 이해할 수 없는 플레이를 보여주며 날개도 없이 최하위 자리로 떨어졌다. 시즌 초부터 대전구장의 리모델링 공사가 늦어져 청주구장을 홈으로 쓰면서 컨디션이 꼬이기 시작했다. 김태균, 박찬호, 류현진이 분전했지만, 작년 탈꼴찌에 힘을 보탰던 이대수, 신경현, 강동우, 한상훈은 부진그리고 본헤드 플레이에 시달렸으며, 송신영분식회계를 일삼았고, 박정진은 2년 간의 혹사로 인해 일찌감치 시즌 아웃, 가르시아 대신 데려온 브라이언 배스, 션 헨은 먹튀 행각을 보이며 퇴출됐다.

5월 말에는 팀의 성적을 비관한 팬의 한대화 사칭 게시글 사건까지 벌어졌다. 결국 시즌 중인 8월 말 한대화 감독이 전격 경질되고, 한용덕 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는 등 우여곡절 끝에 최종 성적은 원점으로 돌아온 8위. 시즌 초반부터 끝날 때까지 한 번도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일명 환승역 없는 8호선. 류현진의 7년 연속 10승 좌절과 함께 시즌 초의 꿈들은 전부 산산조각났다. 김태균이 타격왕을 차지했고, 오선진이 주전 3루수로 자리잡는데 성공하였으며, 송창식안승민의 후반기 호투, 한용덕 감독대행의 후반기 팀 운영이 그나마 볼만한 것이었다. 근데 시즌 내내 꼴찌하고도 승률 4할은 찍었다.(.408) 심지어 다음 시즌의 기아와의 승률이 거의 차이가 없었다!!![13]

시즌 종료 후 류현진이 공개 포스팅을 통해 메이저리그로 진출했고, 양훈의 입대와 박찬호의 은퇴로 선발 로테이션에 구멍이 뚫리게 되었다. 송신영이 NC로 이적했고, 스토브리그에서도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등[14] 별다른 전력 보강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한화는 김응용 전 해태, 삼성 감독을 선임하는 초강수를 둔다. 비록 전력 누수는 심했지만, 내년부터는 NC 다이노스가 새롭게 참가하는 만큼, 그리고 김응용 감독이 해태와 삼성 시절 성적이 굉장히 좋았고 해태 말년에 팀이 추락했어도 최소한 꼴찌는 하지 않았던 만큼[15] 최소한 탈꼴찌는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럴 것만 같았다.


iPhone.jpg
[JPG image (Unknown)]

한화팬이 아이폰 5를 사야만 하는 이유.jpg 그러나 이 아이폰이 한화용으로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16]
아이폰은 한화에게 드러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꿇어라. 이게 너와 나의 눈높이다.

2.6. 2013년: 프로야구 최초 9위의 불명예


시범 경기 때부터 8위를 찍으며 불안감이 커져갔다[17]. 개막전부터 롯데에 2연속으로 역전패하면서 2연패로 시작, 이후 연패를 끊어야 한다는 조급함에 사로잡힌 김응용의 이해할 수 없는 선수 운용에 힘입어서 KIA - 넥센 - 삼성 - LG에 연속 스윕패하고 개막 13연패 신기록을 쓰고 말았다. 이 때 해탈한 한화 팬을 대상으로 붙은 별명은 보살팬(...). 그나마 NC 다이노스상대로 3연승을 거두며 연패를 끊었고, 4월 21일 두산을 0:1로 이기면서 탈꼴찌에 성공. 그렇게 해서 탈꼴찌까지는 노려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5월 이후 가파른 NC의 성장세에도 미치지 못하며 3할 승률 달성에도 허덕였고, 전반기 종료 후 NC와는 6경기 차이로 9위 자리를 일찌감치 굳히고 있었다.

2013hanwhaquiz.jpg
[JPG image (Unknown)]


지금 누구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2013년 6월 20일 편파 중계에서는 이딴 자학성 퀴즈나 내면서 팬들의 속을 또 한번 뒤집어놓았다. 이 시점에서도 꾸준하게 바닥을 깔아주고 있었으니...참고로 이날 경기에서도 KIA에게 패배했다.

그렇게 2013년 9월 1일, 넥센전에서 패배하면서 4강 트래직넘버가 소멸했다. 8위 NC와의 경기 차이가 10경기 이상이었기 때문에 탈꼴찌조차도 가능성이 없었던 상황. 그나마 삼성, LG에 뿌린 고춧가루 세례만이 한화 팬들의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휴식일이었던 2013년 9월 11일, 롯데가 NC를 꺾으면서 5~6위 트래직넘버도 소멸했으며, 2013년 9월 21일, SK전에서 패배하면서 7위 트래직 넘버가 소멸했고,[18] 9월 22일 SK전에서도 패하면서 탈꼴찌 트래직넘버조차 완전히 소멸, 프로야구 최초 9위의 불명예와 함께 588689가 확정되었고 이 항목이 작성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지난 해에도 SK전에서 패배하며 최하위가 확정되었는데, 비밀번호를 찍기 시작한 2008년 이후는 둘째치고 1986년 7위 이후 최악의 성적인 42승 1무 85패 승률 0.331이라는 성적을 받아들게 되었다.[19]

그 뿐만 아니라 팀 성적, 개인 성적도 망해버렸는데, 팀 홈런, 팀 타율, 팀 도루, 팀 평균자책점 등 모든 면에서 8~9위를 벗어나지 못했고, 투수진은 이적생 송창현과 용병 데니 바티스타대나 이브랜드, 마무리 송창식을 빼면 거진 전멸해버렸으며, 작년에 이어 올해도 10승 투수조차 배출하지 못하고 말았다. 타자들도 구장을 넓힌 부작용 탓에 김태균을 제외하면 10 홈런 이상을 기록한 타자조차 없을 정도로 위력적인 타선을 상실하고 말았다.[20]

2.7. 2014년: 9구단 체제 2년, 9위 독식 2년

FA로 정근우이용규를 영입하고, 외국인 선수로 펠릭스 피에, 앤드류 앨버스, 케일럽 클레이를 데려와서 기대를 모았으나...개막 경기 승리 이후 4월 4일부터 6일까지 SK전을 스윕당한 걸 시작으로 해서 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LG가 급격히 추락해서 9위로 떨어지긴 했지만 한화도 8위를 유지했을 뿐 7위로 치고 올라가지는 못했다.

급기야 610 대첩 이후 LG 트윈스와 같이 공동 8위가 되더니 6월 15일 NC전 패배와 LG의 SK 상대 승리가 겹치면서 한화는 9위로 떨어졌다. 6월 21~23일과 7월 1일~3일까지의 LG 3연전을 각각 루징 시리즈와 스윕패로 장식하면서 LG를 7위로 올려줌과 동시에 한화의 9위는 굳어져 갔다. 8월에 12승 7패로 약진하면서 그래도 탈꼴지와 4강 희망을 조금은 품을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여전히 탈꼴찌는 요원하였고, 9월달에 KIA를 제칠 수도 있었으나 9월 9일부터 12일까지 넥센전과 두산전 연속 스윕패로 인해 희망은 계속 사라져 갔다. 아시안게임 직전까지 8위와의 승차는 1게임 반.

인천 아시안게임 휴식기가 끝나고 기아와 탈꼴찌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3경기를 연패, 10월 3일 롯데전에서도 패하면서 4위 트래직넘버가 완전히 소멸됐다.[21] 10월 5일 5위인 SK에 패하면서 5위 트래직 넘버도 완전히 소멸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11:1로 패해 롯데에 밀리는 것이 확정[22], 6위 트래직도 소멸했다. 그 후 롯데보다 경기수가 적은 두산이 6위, 롯데가 7위가 되었는데 10월 8일 두산이 KIA를 이기면서 7위 트래직 넘버가 소멸되었다.

이 시점에서 사실상 꼴지는 확정되었고 기적이 일어나야만 8위인 상황이 되었다. 10월 11일 오전 시점에서 KIA가 4경기, 한화가 3경기를 남겨둔 상황[23]이어서 잔여경기 수로만 보면 한화가 불리했으나, KIA의 상대가 1위 삼성(3경기). 2위 넥센(1경기)이었던터라 이미 4강 탈락을 확정지은 롯데와의 2연전이 있던 한화가 KIA에 비해서 남은 일정상 더 유리하다는 예측도 있었다. 그러나, 한화가 11일과 12일의 롯데와의 2연전에서 모두 패배한 반면, KIA가 삼성에 1승(11일)1패(12일)를 거두면서 8위 트래직 넘버마저 완전히 소멸, 2년 연속 9위[24]가 확정되며 이 항목도 5886899로 갱신되었다.

13일엔 시즌 마지막 홈 경기를 치뤘는데, 최근 수년간 마지막 홈 경기에서 보여준 좋은 모습을 기대했지만, 올해는 그마저도 없이 삼성에게 22:1이라는 핸드볼 스코어로 관광당했다. 2014 타고투저야구 피날레 그 와중에 올해 나름 괜찮은 모습을 보여준 신인급 외야수인 장운호 선수가 헤드샷을 맞고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가는 일까지 벌어지며 최악의 시즌 마지막 홈 경기가 되고야 말았고, 관련 기사의 덧글에는 "내년에 10위 하면 16진수 써서 5886899A 하면 되겠다"는 등의 드립이 이어졌다(...) 왠지 드립이 아닌 것 같다. MLB, NBA 꼴찌는 U[25]

사실 2년 연속 꼴찌보다 답이 없어 보이는 건 세부적인 성적들. 류현진 판 돈을 팀에 투자했다는데 팀 순위 9위, 팀 실책 1위, 팀 방어율 신기록[26], 팀 득점 9위, 팀 피홈런 1위, 팀 홈런 8위[27], 팀 실점 1위, 팀 병살 1위, 팀 탈삼진 9위, 팀 장타율 9위, 팀 피안타율 1위의 참 주옥 같은 기록들은 한화 팬들이 도저히 내년을 기대하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 프런트는 정신을 못 차렸는지 다음 감독은 철밥통 코치들 중에서 내부 승격이 대세라고 한다. 그나마 물망에 오른 한용덕이나 이정훈에 대한 팬들의 평가 자체는 그리 박하지 않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코치로서의 기량에 대한 것으로 1군 감독으로서의 기량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많은데다, 내부 승격했다가는 프런트와 코치진의 일명 "칰무원"들이 갈아치워질 리가 없기에 5886899A 확정 더 기나긴 암흑기가 초래될지도 모르는 상황. 해당 기사가 나오자 타 팀 팬들은 비웃고 있고 한화 팬들은 우릴 호구로 보는 거냐면서 분노하고 있다.

2.8. 2015년: 10구단 체제, 2차 리빌딩 시도

2015년 성적에 따라서는 최초 7위, 최초 9위, 최초 10위를 모두 가져가는 팀이 될 수도 있다.[28] 후임 감독이 얼마나 리빌딩을 잘해주냐가 탈꼴지 및 비밀번호 탈출의 관건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리빌딩을 위하여 한화 프런트는 2014년 10월 25일에 김성근을 감독으로 선임했다.
그리고 김성근 감독의 투수 FA 요청에 따라 4년 32억에 권혁을,4년 34억에 송은범을 영입한 것에 그치지 않고 배영수까지 3년 21.5억원에 계약을 해내는 데 성공하였다!

시범경기에서는 신생팀인 KT에도 밀리면서 꼴찌를 기록했다. 시범경기는 시범경기일 뿐이고 정규시즌에 들어가면 달라질 것이라 기대하는 팬들도 있지만 지면서도 경기 내용조차도 별로 좋지 않다며 불안해하는 시선도 있다. 과연 한화는 김성근 매직으로 정말 달라질 것인가, 아니면 오히려 김성근이 입칰효과에 걸려들 것인가? 팬들은 기필코 전자의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오히려 무원칙한 선수 갈아먹기로 인해 선수들은 선수들대로 혹사당하고 성적은 성적대로 안 나오는 나쁜 결과만 낳으면서 또 비밀번호 뒷자리에 '6'을 찍고 말았다.

2.9. 2016년 : 짙어지는 절망, 믿었던 감독의 실체

2015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김성근 감독은 자신의 기조를 전혀 바꾸지 않았고, 오히려 무원칙적이고 이율배반적인 전횡을 일삼았다. 안영명, 송창식, 권혁이 줄줄이 수술대에 오르는 등 감독의 아집 때문에 선수들이 줄부상을 입었음에도 팀 운영의 합리화보다 자신의 체면만 중시하였고, 선수들을 쥐어짜는 야구를 했음에도 작년보다 순위가 낮은 7위를 찍고 말았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암울한 전망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도 문제이지만, 이처럼 팀에서 전횡을 일삼고 있음에도 그룹 수뇌부(정확히는 청계산 왕회장)는 여전히 김 감독에 대한 신임을 거두지 않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물론, 김성근 감독을 당장 경질한다고 해도 당분간은 리빌딩은 커녕 '강제 안식년 돌입'으로 몇 년간 하위권에서 맴돌 상황이지만, 현재로서는 유임시키면 시킬수록 팀의 암흑기가 그만큼 더 길어질 상황.

모기업의 전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팀의 사정은 나아지지 않으며 팬들도 선수들도 지쳐갈 무렵 권혁에 대한 길들이기 차원의 사적 제재 등을 비롯한 여러 추문들이 터져나오면서 김성근 감독의 능력에 본격적인 문제 제기가 시작되었고, 결국 후반기에 박종훈 전 LG 트윈스 감독을 단장으로 영입하면서 2군에 대한 감독의 간섭을 차단하였다.

2.10. 2017년: 진정한 리빌딩의 시작

시작부터 박종훈 단장과 갈등을 빚던 김성근 감독은 결국 2017 시즌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사퇴했고, 잔여 시즌 한화 이글스를 이끌 감독 대행으로 이상군 수석코치가 선임되었다. (이는 KBO 최장기간 감독대행 기록이 되었다.)

코치 시절부터 능력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던 그가 갑자기 감독이 됨에 따라 팀에 대한 우려는 더욱 증폭되었고, 초보 감독으로서 치러야 했던 수많은 시행착오들은 고스란히 그의 책임이 되었다. 결국 이 해에도 팀은 8위를 찍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으나, 이 시기에 서균, 박상원 등을 비롯한 유망주들과 박종훈 단장이 긴급수혈한 최재훈 등의 새로운 인재들이 이 시기에 성장하여 이듬해에 팀의 주전으로 활약하는 등 외부의 수많은 조롱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리빌딩을 단행하여 이듬해 팀의 재도약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

물론 그와는 별개로 '비밀번호'는 드디어 10자릿수가 되었고, 팬들은 최다 자릿수 경신의 가능성 때문에 두려움에 떨었다.

2.11. 2018년: 암흑기를 끝내는 데에는 2년으로 족했다

2017 시즌이 끝남과 동시에 이상군 대행체제가 막을 내리고, 두산에서 수석코치를 하고 있던 한용덕이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김성근 감독 시절과는 반대로 거액의 투자를 지양하고[29] 새로운 용병도 저가의 육성형 용병들을 영입하는 등 큰 투자를 하지 않았고 겉보기에 구단 차원에서 큰 움직임이 없었기에[30],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화를 최하위 후보 중 하나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해 기적이 일어났다.

지난 시즌까지와의 모습과 달리 한화는 몇 차례 위기를 겪으면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한용덕 감독과 송진우 투수코치의 조련으로 투수진이 몰라보게 환골탈태한 가운데 수비진도 정근우와 이용규의 급격한 노쇠화에도 불구하고 정은원을 비롯한 신예 및 유망주들이 훌륭하게 자리를 메꿔주었고, 타격은 비록 장종훈 코치의 코칭철학(...) 때문에 전체적으로 "뻥야구"가 되어버렸지만 여기에서도 당초 기대하지 않았던 이성열과 외국인 타자 제라드 호잉이 타선을 이끌어주면서 공격력이 크게 배가되어 상위권 팀에게도 "무시할 수 없는 팀"으로 인식되기 시작해 결국 시즌 전반기 2위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비록 후반기에는 풀타임 경험 선수들이 드물다는 약점 때문에 체력 저하와 다른 팀들의 분석 및 견제로 인해 전반기에 비해 위태로웠으나, 그럼에도 크게 무너지지 않고 이를 악무는 듯한 끈질긴 모습을 보여준 끝에 9월 28일 두산전에서 승리하면서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지어 지긋지긋하던 비밀번호를 10자리에서 중단시키는 데 성공했다.

3. 이 시기의 문제점

가장 큰 문제점은 근 5~10년 동안 기본적으로 신인 육성, 인프라 개선 등 기본적인 투자가 너무 미비했다는 것이었다. 2004년~2009년 동안 다른 구단이 신인 드래프트에서 행사할 수 있는 모든 권리를 행사했던 것과 달리 한화 이글스의 경우에는 겨우 4~6명의 선수만 뽑고 패스했을 정도로 근시안적으로 팀을 운용했고, 그러다 보니 그 때 뽑은 선수들이 성장해 전력을 형성하고 있어야 할 현재 기본적인 전력조차도 없는 게 당연하다. 오죽하면 한화에 FA 정근우를 빼앗긴 SK 와이번스는 FA 보상 선수가 아닌 정근우의 연봉 300%를 FA 보상금으로 수령했을 정도다.

병희, 윤규진, 신주영, 안영명 등 싹수가 보였던 쓸만한 신인들은 김인식 시절 혹사로 빠르게 없어졌다. 특히 김인식 감독 초기에 혹사당한 정병희는 제대로 기억하는 팬들조차 없는게 현실이며, 결국 FA로 풀린 김민재를 영입하면서 SK 와이번스에 보상선수로 이적한 뒤 군 복무를 마치자마자 2010년 말 SK에서 방출당했다. 혹사 - 재활의 반복을 거친 윤규진은 팬들에게 새가슴 의혹을 받고 있는게 현실이다. 방출생 또는 외국 출신인 정원석, 강동우, 이대수, 박찬호를 데려와 1~2년 정도 잘 써먹기도 했지만, 오히려 이게 신인 선수 육성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이런 방출생 출신의 선수들은 나이가 있었던 탓에 언제 부진해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신인 지명이나 관리도 엉망이었는데 박상규최우석같이 멘탈이 문제가 되는 선수들이 여럿 있었고, 최진호처럼 뺑소니 사고를 저질러 흑역사가 된 케이스도 있었다. 또한 김용주윤기호같이 자질이 모자라고 몸 상태에 문제가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북일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이유로 지명한 경우도 있었는데, 윤기호는 부상이 있는 걸 알면서도 북일고 출신이란 이유 하나로 전준우를 지명할 기회를 버리고 뽑았다. 김용주는 북일고 시절의 혹사와 함께 고교 야구 좀 본 사람 중에 성공할 거라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 한계가 빤히 보이는 선수였는데도 1지명으로 뽑았다.

특히 투수진 육성은 그야말로 처참하게 실패했는데, 김인식 시절에 신인 드래프트에서 야수 지명을 줄이고 투수만을 집중적으로 모았음에도 2007년 정민철이 2.90의 평균자책을 기록한 이후로 2008 시즌부터는 류현진을 제외하고 풀타임으로 평균자책 3점대 이하를 기록한 선발 투수가 단 한 명도 없다. 안영명, 양훈, 김혁민 등이 한 시즌이나마 희망을 보여주나 했지만 혹사 등으로 인해 다음 시즌으로 넘어가면서 바로 원상 복구되기를 반복. 그렇다고 불펜진 육성은 성공했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닌 것이 같은 기간 동안 한화에서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불펜 투수는 2010 - 2011 시즌의 '노망주' 박정진과 2012 시즌 이후의 송창식 정도밖에 없다. 그나마 박정진은 노쇠화 기미가 역력하고, 송창식은 2013 시즌의 혹사 후유증으로 2014 시즌을 완전히 말아먹어버렸다.

야수 지명을 줄였기 때문에 야수가 부족해졌는데 타 팀 방출선수나 신고선수로 때웠지만 그것도 2009년을 끝으로 한계에 이르렀고, 이 와중에 투수진조차도 붕괴되면서 결국 현재의 빈약한 팀 전력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나마 매 년 한 명씩을 지명한 포수진에서도 주전 포수 육성에 실패하면서 노장 신경현이 포수 마스크를 써야 했을 정도였다. 멀리 보면 이 신인 육성의 문제점이 1990년 대부터 보였는데, 실제로 한화가 1996년 홍원기, 이영우, 송지만, 임수민으로 대표되는 신인 4인방 이후부터 제대로 육성에 성공한 선수는 끽해야 김태균, 이범호, 류현진, 최진행 정도에 불과하며, 특히 상위 순위로 지명해서 키워낸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군 입대 선수 관리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타 구단의 경우 2004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 이후부터 신인 선수들의 병역 문제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선수 육성에 힘쓰고 있었다. 보통 신인이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면 일찌감치 병역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며 미래를 내다보기 마련인데, 한화의 경우에는 2년 연속으로 드래프트에서 4~6명의 선수만 뽑은 걸로도 모자라 김인식 시절부터 쓰지도 않을 유망주를 군대도 보내지 않고 썩혀놓으면서 기본적인 선수 군 복무 관리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결과가 2010년 송광민의 시즌 중 현역 입대 해프닝.

또한 한화라는 팀 특성 상 이상군, 강석천, 이정훈, 이강돈, 한용덕, 장종훈, 송진우, 정민철, 구대성, 이영우, 신경현과 같은 프랜차이즈 스타들이 굉장히 많았고 이들에 대한 의존도가 굉장히 높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이 선수들이 2000년대 중반~2013년에 모두 은퇴를 선언하면서 전력에 균열이 생겼고, 가뜩이나 신인 육성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상황과 프랜차이즈 스타의 은퇴가 겹쳐져 기나긴 암흑기가 시작된 것이다.

감독 선임에 있어서도 부정적인 모습들이 드러났는데, 일단 김인식 시절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과 1번의 준우승을 달성했지만, 믿음의 야구, 재활 공장장 이미지에 가려진 무차별 투수 혹사와 노장 선호[31]로 인하여 이미 주축 선수들의 고령화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던 한화에 엄청난 후유증을 남겼다. 한대화 경질 이후 선임된 김응용 또한 2004년 이후 10년 가까운 현장 공백으로 인해 어제 등판한 투수를 다음날 선발투수로 등판시키는 등 1980~1990년대 야구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보이며 2년 연속 꼴찌를 기록, 뒤늦은 리빌딩에 나서고 있던 한화와는 처음부터 전혀 맞지 않는 인물임을 증명했다. 이름값만 보고 선임한 후임 김성근 감독도 김응용 감독 이상으로 팀의 현실과 동떨어진 야구를 고집하며 자신의 그간 이름값에 가리워진 구태와 병폐만 드러냈다.

흔히 한화의 암흑기를 이 5886899가 시작되는 2008년 무렵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경우가 많으나, 그 조짐은 이미 2000년대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32] 2년 연속 우승을 노렸던 2000년에는 정민철일본 진출로 인한 투수진의 붕괴로 인해 전체 7위에 그쳤고, 2001년에 잠깐 4강에 들기도 했지만 승률은 겨우 4할 후반에 불과했고 최하위 롯데 자이언츠와는 단 2경기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던 상황[33]이었다. 보통 같으면 이 무렵에 리빌딩에 착수했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프런트에서는 당장의 성적만을 바라보며 근시안적으로 팀을 운용했다.[34] 그래도 2002~2004년에는 깔아주는 팀들이 있어서 그럭저럭 꼴찌만은 하지 않으며 적당히 중위권에서 놀았다. 그 결과 2005년부터 3년 동안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고 2006년 류현진의 포텐이 제대로 터지며 1번의 준우승을 거두기도 했지만 딱 거기까지. 주전 선수들의 고령화가 심각했고, 결국 이 선수들이 모두 은퇴하면서 급속도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무엇보다 한화 이글스는 2012년까지 8개 구단 중 유일하게 2군 전용 훈련장이 없었다! 심지어 당시 매년 선수 팔아서 운영하던 넥센 히어로즈조차도(현재의 화성시가 아닌 머나먼 강진군이었지만) 2군 훈련장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한화 2군은 계룡대 연병장이나 대전고등학교 운동장을 전전하면서 연습을 했다. 다른 팀들은 전용 구장에 웨이트 시설에 기숙사에 식당에 재활 센터까지 갖춰놓고 1년 내내 연습시킬 때 한화는 그때그때 남의 운동장 빌려서 눈치보면서 연습하고, 심지어 구장을 못 구해서 퓨처스리그 경기가 연기되는 경우도 있었다. 설령 2000년대 중반 패스했던 신인지명을 모두 행사했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선수 육성이 된다면 그건 기적. 암흑기를 헤메던 롯데 자이언츠가 2007년 상동야구장이 완공된 이후 유망주들이 많이 배출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구단이 얼마나 투자에 미비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35]

단, 한화도 조금은 할 말이 있었던 것이 2군 훈련장 건설이 늦어진 것은 대덕구의 탓이 크다. 2007년 대덕구 신탄진동에 2군 훈련장을 짓기로 양해 각서까지 체결해 놓고 행정 절차 핑계대며 무려 4년 넘게 질질 끌어 삽마저 못 뜬 것. 결국 팀 성적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참다 못해 서산시에 짓겠다고 발표해 버리니 그제서야 대덕구는 양해각서까지 체결해놓고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했다며 반박 보도 자료까지 돌렸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그나마, 다행히도 2012년 초 서산시 성연면 서산테크노밸리에 2군 훈련장 착공 계획이 수립되었고, 2012년 12월에 드디어 서산 야구장이 문을 열었다.

거기에다 앞에서 얘기한 몸 상태, 기량 미달 선수임에도 북일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명하는 것과 같이 선수 시절 이름을 날렸거나 프랜차이즈 출신 선수들을 대우해 준다는 이유만으로 별다른 연수도 없이 코치진에 무혈 입성한 이상군, 송진우, 조경택, 정민철 등 능력 없는 코치들인 속칭 칰무원 때문에 제대로 된 선수 육성이 이뤄지지 않은 부분도 문제를 키웠다.[36][37] 대표적으로 정민철은 투수 기용, 교체 타이밍 등에서 문제점을 드러냈으며, 이상군은 투수 코치로 있으면서 선수들의 구위, 제구, 투구폼 등을 망가뜨리고, 용병 스카우터로도 배스션 헨 같은 수준 미달 용병을 데려와 무능력함을 증명했다. 송신영 FA영입은 덤, 조경택 또한 배터리 코치로는 무능력해서 명포수라는 반어법[38]이 등장할 정도이며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외에도 타이거즈 출신 등 팀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외부에서 수혈한 코치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는 않다.

신인 드래프트의 실패와 무능력한 코치진의 시너지(...)가 결정적으로 드러나는 게 바로 답이 없는 한화의 수비. 매년 마무리 훈련과 스프링캠프에서 지옥 훈련을 한다고 하는데 시즌 초에 보면 오히려 퇴보해 있고, 시즌 말 즈음 가면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 싶다가 다음 해에 보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희망고문이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39]

여기에 2011년부터 신생팀 NC 다이노스, KT 위즈가 창단하는 변수가 발생하면서 꼴찌하고도 전체 1순위로 신인을 지명하지 못하는 불운을 겪고 있는데, 그렇게 북일 팜의 윤형배, 희운, 청주고의 주권을 NC, KT가 지명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40][41] 강승호재윤 등 북일팜 야수들을 LG 트윈스에 뺏기고 나서 지명한 야수들 중 조정원이나 한승택 등을 빼면 1군 경험이 없으며 그나마 한승택은 경찰청 입대를 앞두고 KIA 타이거즈에 FA 보상선수로 빼앗기고 말았다.

또한 2013년 드래프트에서도 제주도 + 대졸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신인 지명에서도 문제를 드러냈다. 이것은 한일 월드컵 특수로 인해 당시 체육계 유망주들이 전부 축구로 몰려가 버린 탓에 특급 신인이 씨가 마른 상황에서 현재의 하위권 팀들은 치고 올라가는 데 몇 년의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더 큰 문제는 지금 대한민국 야구가 전체적인 하향 평준화를 겪으면서 타이중 참사를 일으키는 등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는데, 이런 약팀 고착화가 지속된다면 승률 인플레 등 야구의 존립을 해칠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하향 평준화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2013년만 봐도 얼마나 승률 인플레가 심각하면 무려 5~6팀이 승률 5할을 돌파했고,[42] 5위 팀은 역대 최고 승률로 포스트시즌 탈락[43]하는 진풍경을 보여주는가 하면, 포스트시즌 마지노선이라는 5할 승률을 찍고도 포스트시즌이 좌절되는 팀이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나올 뻔 했고 한 때는 마지노선이 5할 5푼에서 왔다갔다 했을 정도였다.
반대로 2014년 시즌에는 승률 디플레가 심각했는데, 4위인 LG 트윈스 마저 5할승률이 안되었고(0.492), 1~4위 승차보다 4~9위 승차가 더 적을정도로 하위권 경쟁이 치열했던 시즌으로, 하향평준화를 명백하게 보여주었다.승률 인플레도 하향평준화, 승률 디플레도 하향평준화라면 어느 장단에 춤을 맞추라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화는 2군 구장 부재, 군 입대 선수 관리 부실 등 팀의 가장 기본적인 시스템조차도 제대로 짜여 있지 않았던 팀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현재진행중인 암흑기 탈출을 위해서도, 대한민국 야구의 존립을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부족한 시스템을 보강하는 등의 노력이 시급한 상황이다.

2012년부터 건설한 새로운 2군 경기장인 서산 야구장 이 완공되면서 체계적인 2군 육성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 2군 구장은 KBO 내에서도 수준급인 시설로 알려져 있다. 또한 2012년부터 드래프트 이외에도 가장 많은 신고 선수를 영입하고, 2012년 천안북일고를 우승시켰으며 육성에 있어서는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 이정훈 감독을 2군 감독으로 선임하며 뒤늦게나마 육성 체계를 완성시켰다. 문제는, 2014년에 이상군이 육성군 코치로...왓더?! 그래봐야 실권없는 명예직이다.

류현진LA 다저스로 가면서 남겨준 2500만 달러의 포스팅 금액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는데, 2013년 FA 시장에서 그걸로 화끈하게 질러 버렸다. 먼저 이대수 4년 20억원, 한상훈 4년 13억원, 박정진 2년 8억원으로 내부 FA 후보자를 잔류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정근우를 4년 70억원, 이용규는 4년 67억원으로 영입하며 FA 빅4 중에서 2명을 데려오는데 성공했다.

2014년 시범경기에서는 3월 15일까지 한화 이글스는 팀 평균자책점 1위라는 괜찮은 성적을 냈다. 관련기사 다만, 이 기사가 나오자 마자 3월 16일 경기에서 LG 에게 12:2 로 대패했다. 시범 경기라는 것이 최선을 다하는 경기가 아니라, 팀의 수준을 확인하기 위해 이 선수 저 선수 투입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불 지를만한 애들이 질렀다 여튼 투수진 문제는 2014년 한화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외국인 선수를 통해 선발진 문제는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겠지만 빈약한 계투진이 해결되지 못한다면 한화의 리빌딩 기간이 생각보다 오래 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2015 시즌부터는 KT 위즈도 1군에 합류하기 때문에 자칫 A를[44]두자릿수 순위마저 찍을 수도 있다. 9호선을 넘어 혼자 공항철도 탑승.[45] 사실 보안문제가 대두되는 현대사회에서 비밀번호에 영문자를 넣으려고 하는거라 카더라.

하지만 부실한 투수진을 결국 극복하지 못한 채 2014년 10월 12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패하면서 3년 연속 최하위(8위, 9위, 9위)가 확정되었고, 희망고문은 그저 희망고문이었을 뿐이다. 최다 연속 최하위 부문에서도 8888577의 롯데와 타이 기록을 세우기까지 1년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이 팀은 솔직히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안 됩니다 너희의 빛은 꺼졌다. 이제 끝났다. 아~~~!! 제대로 망했어요!!!

그나마 투수진에 비해 양호한 야수진의 경우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닌데, 구장을 넓힌 부작용으로 인해 20홈런 타자가 배출되지 않고 있으며, 프로 11년차인 이용규최진행, 김회성과 함께 1군 야수진 중 막내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력 선수들이 대부분 30대 이상으로 팀의 평균 연령층이 여전히 높기 때문에 운 좋게 비밀번호를 끊어낸다 하더라도[46] 한화의 전통인 들쭉날쭉한 성적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FA나 트레이드로 전력 보강을 시도한다 해도 이런 고참/주력 선수들이 부진에 빠지거나 타 팀으로 이적/은퇴했는데 유망주/신인 선수들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다면 지속 가능한 강팀으로의 성장이 불가능할 뿐더러 실질적인 암흑기는 더 오래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14년에 FA의 두 대어를 낚으며 팬들에게 희망고문을 선사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째 꼴찌를 이어 갔다.애초에 투수진이 막장 of 막장인데 가을 야구 한다는 발상이 웃기긴 햇지만 만약 그대로 이어졌다면 2015년도 그냥 포기하는게 나을 분위기였으나, 한화 수뇌부는 김성근 감독을 영입하여 또 다시 팬들에게 희망고문을 선사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한화를 살려내면 야신은 신을 뛰어 넘는다고 이야기한다.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김성근 감독의 이야기에 따르면 근본부터 문제점이 많으며, 특히나 체력에 있어서는 독립 야구단으로 존재했던 고양 원더스 선수들보다 심각하다고 말해 한화의 근래 처참한 성적의 원인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김성근감독이 이 비밀번호를 깰 수 있을지 아니면 한화의 꼴찌본능이 김응용에 이어 김성근까지 잡게될지 두고 봐야할 듯.김성근도 못고치면 해체하는게 맞는듯

김성근 감독은 프런트에 FA 영입, 그것도 투수의 영입을 직접 강력하게 요청하였는데, 한화 프런트는 이 요청에 걸맞는 보답을 하였다. 한화는 FA 시장에서 또 다시 큰손으로 부상하며, 권혁, 송은범, 배영수 3명의 투수 FA를 성사시키며 탈꼴찌를 위한 대대적인 투자를 이어 갔다...

그리고, 후반기 시즌이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지금도 이 비밀번호는 끝나지 않았다는 게 중평.
팀 자체는 아직까지 꺼지지 않은 희망을 바라면서 5위 경쟁 중이나, 기존의 호평 때문에 기대하고 데려왔던 김성근 감독이 시즌 절반도 안 되어서 오히려 실망스럼 모습만 보여주고 있기 때문. 특히, 팀의 몇 안되는 자원들을 제멋대로 갈아먹고 선수 기용도 무원칙에 이중잣대를 남발해대는지라 올해 설령 5위를 한다고 해도 내년이 암울할 수 밖에 없기 때문.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나마 남아잇는 힘을 소진해버린 한화는 후반기에 더더욱 부진을 보이며 결국 6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거기에다 시즌 후 FA 과정에서도 석연찮은 행보를 보여주어 더욱 2016년 시즌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기사거리 궁한 기자들과 노리타들은 여전히 여론을 조장하고 있지만.

그리고 2016년에는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퇴보하고 있던 팀 사정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계속해서 선수 탓, 구단 탓을 하면서 고집스럽게 자신의 커리어만 중시하여 팀을 갉아먹었다. 결국 이 시기에 들어 과거 김성근이 일궈낸 '성공'에 가려졌던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재조명되었고, 시즌 후반기부터 모기업과 구단이 감독에게 전권위임했던 권리들을 점차 축소시켜나가자 감독은 이러한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듬해 시즌 초에 사퇴하는 것으로 빅엿을 먹이고 떠난다.

결국 한화는 리빌딩이 무엇인가를 배우는 데에 무려 8년이란 시간을 낭비한 것.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이러한 8년의 삽질(...)은 팀 육성에 크나큰 반면교사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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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한편, LG 트윈스6668587667 종결도 이날 확정되었다.
  • [2] 이것도 2011년 한대화 감독 체제에서 6을 LG와 같이 찍어서 망정이지 2011 시즌마저 꼴찌였더라면 롯데 자이언츠8888577을 뛰어넘는 6년 연속 꼴찌라는 대기록이 쓰여질 뻔 했다.
  • [3] 류현진 - 정민철 - - 비 - 비, 류현진 - 정민철 - 세드릭 - 비 - 비...대신 불펜은 필사마, 멍멍이, 쿠옹을 혹사시키는 식으로 때웠다. 그리고 류현진에겐 이 시즌이 한화 시절에 맞이해 본 마지막 가을야구 시즌이었다.
  • [4] 그 막장이라던 2013시즌의 승률과 비슷하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한지?
  • [5] 당시 삼성과의 상대전적에서 뒤졌기에 동률이었어도 4강 진출은 불가능했다.
  • [6] 빙그레 창단 당시에는 7개 구단 밖에 없었으므로 8위는 이번이 처음. 꼴찌 경험은 빙그레 원년에 한 번 있었다.
  • [7] 셋 다 모두 2006 WBC 국가 대표였다. 김민재는 2루수 등 내야 유틸리티이긴 했어도 애초에 수비 때문에 뽑힌 만큼 수비 능력은 탁월했다.
  • [8] 시즌 중 입대라는 해프닝도 문제지만, 현역 군복무에도 부적합한 선수를 주전으로 올렸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 [9] 사실 초반에 마무리 보직에서 헤메다가 다시 선발로 전업한 케이스다. 2년 후에 이런 일이 또 벌어진다
  • [10] 사실 2007년 크보 미스터리양준혁, 김동주의 도루를 제외하면 세이버매트리션들은 엄청난 플루크가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설명한다. 이에 반해 한화의 6위는 진짜 설명하기 힘들다. 실제로 팀 득실점으로만 승률을 예측하는 피타고리안 승률은 압도적으로 최하위였다. 이해 한화의 피타고리안 승률은 .387인데, 실제 승률은 무려 .452. 질 때는 아주 개발살(...)이 나고 이길 땐 간신히 이겼다는 소리.
  • [11] 이런 플루크의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된 것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대타 성공율이었다. 한동안은 한대화 감독이 대타 쓰기만 하면 무조건 득점타였으니 원. 이게 야왕 신드롬의 출발이기도 했고. 하지만 다음 해가 되자 대타 성공율도 팀 타율에 수렴해버렸다.
  • [12] 2007년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에서 유일하게 한화만 지명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구단들이 지명 절차를 생략한 박찬호 입단에 순순히 동의해주었다.
  • [13] 정확하게는 2012년 한화의 승률은 0.4076923…이었으며 2013년 기아의 승률은 정확하게 0.408.
  • [14] 이 때 나온 드립이 시장 질서 드립. 수 많은 한화팬들이 코웃음을 쳤다!
  • [15] 의외로 해태는 김응용 감독 시절 단 한 번도 꼴찌는 안 했다. 98년에 5위, 99~00년엔 드림리그 4위였지만 전체성적에선 각각 7, 6위를 기록.
  • [16] 아이폰5 2012년 말 한국 출시, 2013년 프로야구 신생팀 출범, 개막 13연패(...)
  • [17] 9위는 삼성 라이온즈. 근데 삼성은 원래 시범 때 못하는 팀이라...그리고 결국 시범 경기의 뒤에서 1등을 3년 연속 정규리그/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으로 바꿔 버렸다.
  • [18] 참고로 이 때 탈꼴찌 매직 넘버가 소멸된 팀은 KIA 타이거즈가 아니라 NC 다이노스였다. 기아가 당시 7위이기는 했지만 잔여경기가 많이 남은 탓에 탈꼴찌 확정을 NC보다 늦게 했는데, 결국 최종 순위에서 마저 NC에게 밀렸다.(...)
  • [19] 심지어 85패는 구단 역사상 한 시즌 역대 최다패 기록. 승률 또한 역대 프로야구 사상 최저승률 10위에 해당한다.
  • [20] 한화는 빙그레 창단 시절부터 매 시즌 10홈런 이상을 기록한 타자가 꼭 있었다. 이것도 김태균이 1002 대첩에서 홈런을 쳐서 망정이지 자칫하다가는 이 전통마저 끊어질 뻔했다.
  • [21] 더불어서 LG 트윈스는 2014시즌 꼴찌를 완전히 면하게 되었다.
  • [22] 이걸로 롯데는 10년 연속으로 최하위를 면했다.
  • [23] 17일 KIA와의 맞대결은 제외
  • [24] 더불어 2015시즌부터는 kt 위즈가 참가하기에 최하위 팀의 순위가 9위가 아니며 당연히 9위로 최하위를 기록할 수 없다. 따라서 한화 이글스는 KBO 역사상 유일하게 9위로 최하위를 기록한 팀이 되었다.팀 하나가 해체되면 또 모르지
  • [25] U는 21번째 알파벳, 9+21=30. 물론 진지빨고 말하면16진수는 0부터 F까지이므로 30은 1E가 맞다.
  • [26] 삼미 슈퍼스타즈가 6.23의 팀 방어율 기록을 갖고 있었는데, 10월 13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무려 22실점을 내주면서 한화가 삼미의 기록을 뛰어넘게 되었다. 아무리 2014 시즌이 워낙 심한 타고투저 시즌이긴 했으나...
  • [27] 팀 홈런 9위는 LG 트윈스지만 LG는 대전보다도 규모가 큰 잠실 야구장을 홈으로 쓰는데다가 같은 잠실 야구장을 쓰고 있는 두산 베어스와는 다르게 팀 컬러 자체가 소총병이기 때문에 이걸로 위안을 삼기에는 너무 처참하다. 게다가 LG는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했다.
  • [28] 옛날에 대전 연고였던 모 팀 덕분에 최초 8위까지 챙기는 것은 면하게 되었다.
  • [29] FA 재계약에서도, 팬들의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정근우와 안영명의 몸값을 후려쳤다. (당시에는 팬들의 비난이 거셌으나, 시즌 후반에는 재평가를 받게 된다.)
  • [30] 다만, 작년 시즌부터 팀에서 쓸모없다고 판단된 선수들을 하나 둘씩 트레이드하거나 방출하는 작업을 개시하고 있었다.
  • [31] 사실 이건 2005년 당시에 가장 효과적인 작전이었다. 그게 도를 지나쳐서 문제가 된 것이다.
  • [32] 사실 한화는 빙그레 이후 1994년부터 2007년까지 1번의 우승과 함께 포스트시즌 진출을 7번 정도에 성공했지만 그것도 정규리그 3~4위 턱걸이에 불과했고, 그 외의 시즌은 대게 하위권에 그치고 있었다.
  • [33] 이 해는 하위권 싸움이 박터졌기로 유명했었다. 1위와 3위의 승차가 3위와 8위의 승차보다 많았을 정도.
  • [34] 얼마나 근시안적으로 운용했으면 2001년 시즌 중 외국인 투수를 무려 5번씩이나 바꿔댔다. 결국 이듬해부터 한 시즌 팀당 외국인 선수 교체 횟수를 2번으로 제한하는 규정이 생겼다.
  • [35] 어느 정도였냐면 2003년에 한화 이글스에서 활동했던 임재철이 당시 개판 5분 전이었던 한화의 시설에 학을 뗀 나머지, 2004년 차명주를 상대로 두산 베어스에 트레이드될 당시 "롯데보다 X같은 곳은 처음 봤다"라는 임팩트 강한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참고로 임재철은 한화의 메인 팜이라고 할 수 있는 북일고 출신이다.(경성대 졸업 후 롯데 자이언츠 입단)성골한테도 욕 듣는 구단
  • [36] 쉽게 말해서 으리축구로 까였던 홍명보호를 생각하면 딱 좋다. 김응용이 능력있는 일본 투수 코치를 쓰자고 부탁하는 걸 능력도 없는 주제에 씹은 건 덤이다.
  • [37] 결국 투수코치는 정민철과 신용균이 맡았지만 마운드상황은 기아보다 조금 나은정도였다.
  • [38] 조경택 항목 참고. 유래는 본인 스스로 명포수라고 자칭했던 인터뷰에서 시작된 것.
  • [39] 특히 2014 시즌에는 8월 들어서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9월~2014 인천 아시안 게임 휴식기 이후 또 다시 시즌 초의 모습으로 돌아가버렸다.
  • [40] 단, 윤형배의 경우 당시 신인 지명은 전면 드래프트였으며, 넥센이 맨 먼저 우선지명을 행사할 수 있었기에 애매한 감이 있다. 하지만 NC의 창단이 없었다면 북일고 윤형배나 대전고 조상우(동산고에서 전학했기에 순수 충청팜 출신은 아니지만) 중 한 명을 지명할 수도 있었던 상황.
  • [41] 그나마 한화로서는 다행인게 윤형배가 사이버 투수로 남았다는 것이다.
  • [42] 6위 SK가 최종전에서 패하면서 5할이 붕괴, 결국 5개 구단이 5할 승률을 넘었다. 하지만 승률 인플레를 언급할 때 고려할 점이 있는데, 9개 구단 중 4개 팀이 4강에 오를 수 있기 때문에 중간값을 잡아보면 5위가 5할이다. 즉, 어차피 5개 구단이 5할을 넘는 것은 예상되었고, 실제로 페넌트레이스 종료 때 그렇게 되었다. 다만 신생 팀 NC보다도 훨씬 못한 이 있을 거라 생각을 못했을 뿐(...).
  • [43] 2012년 포스트시즌 진출 때 승률보다도 훨씬 높았다! 2012년엔 0.512, 2013년엔 0.532.
  • [44] 16진수로 바꾼다면 가능해진다. 한 자릿수밖에 표시할 수 없는 전광판에서 두자릿수를 표시하는 방법과 동일하다.
  • [45] 공항철도의 역번호는 A로 시작한다. 1호선 서울역이 133이듯, 공항선 서울역은 A01.
  • [46] 애초에 이것 자체도 거의 불가능한게 기록상으로도 장명부의 한해 30승같이 비정상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전년도 최하위에서 바로 순위권에 들어간 팀 자체가 없는데다가, 팀 자체가 유래없을 만큼의 심각한 내분 상태라(1992년의 경우는 잘나가기라도 했다.) 내년에 4강간다는 말을 농담으로도 하는 사람 자체가 김성근 감독 취임 이전까지는 아예 없었다. 최하위는 아니지만 전년도 8팀중 7위가 다음해 우승한 적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