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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홍콩 우산 혁명

last modified: 2015-03-06 07:41:56 Contributors

  • 이 항목은 '홍콩 민주화 운동', '우산 혁명'으로도 들어올 수 있다.

햇볕이 더 강하게 내리쬔다면, 마땅히 우산을 펼쳐 하늘을 막겠다
홍콩, 우산 혁명[1]

현장의 모습

Contents

1. 개요
2. 주요 세력
3. 배경
4. 진행 상황
5. 결과, 영향
6. 반응
7. 트리비아

1. 개요

2014년 9월 27일부터 시작된 중화인민공화국 홍콩 특별행정구 주민들의 시민불복종 운동. 처음에는 대학생·지식인 중심의 시위였으나, 현재는 중·고등학생과 일반인들의 광범위한 지지까지 합류한 전 홍콩적인 시위가 되었다. 시위 전개 과정에서 홍콩 경찰이 최루탄과 최루액·살수차 등을 이용해 진압을 펼치자 시민들이 지참하고 나온 우산[2]을 이용해 최루액을 막아내는 모습이 보이자 '우산 혁명(Umbrella Revolution)'이라는 별칭이 붙었고, 한국 언론에서도 우산 혁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홍콩도 정치적으로 크고 작은 문제가 여러 번 일어났지만 이 대규모 시위로 여태까지 일 잘 한다고 생각했던 홍콩 정부의 이미지는 대판 깎였으며, 주변국에도 정치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2. 주요 세력

혁명을 주도하는 세력은 크게 셋이다.
  • 사랑과 평화의 센트럴 점령(讓愛與和平佔領中環·Occupy Central with Love and Peace, 이하 센트럴 점령)
    홍콩대학 법학부 교수 다이야오팅(戴耀廷·Benny Tai), 홍콩중문대학 사회학부 협력교수 천지앤민(陳健民·Chan Kin-Man), 침례회 목사 주야오밍(朱耀明·Chu Yiu-Ming)이 공동대표로 있다. 2013년 1월 16일 "센트럴을 점령하자"는 내용이 담긴 <시민 저항의 가장 파괴적인 무기(公民抗命的最大殺傷力武器, Civil disobedience's deadliest weapon)>라는 다이야오팅의 기고가 계기가 되어 3월 27일 창단했다. Occupy Central이라는 구호에서 볼 수 있듯 월가 점령 시위의 구호를 답습했으며, 비폭력을 표방하고 있다.
  • 홍콩 전상학생연회(香港專上學生聯會·Hong Kong Federation of Students, 이하 홍콩 학련)
    홍콩 최대의 대학생 조직. 그 이름대로 청년 세력을 대표하고 있다. 홍콩대학 문학부 학생인 저우융캉(周永康·Alex Chow)[3]이 총비서장이다. 시위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건 홍콩중문대학 학생이자 부비서장인 천아오후이(岑敖暉·Lester Shum).
    8개 대학 학생회가 회원으로 가맹했다. 서울에만 수십 개의 4년제 대학이 있는 한국인의 관점에서는 고작 8개만 가맹했네 하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홍콩의 4년제 대학은 저 8개뿐이다. 즉 홍콩의 대학생 조직 전체가 시위에 가담한 것이다.
    • 홍콩대학 학생회
    • 홍콩중문대학 학생회
    • 홍콩 공업대학교(香港理工大學·The Hong Kong Polytechnic University) 학생회
    • 홍콩 도시대학교(香港城市大學·City University of Hong Kong) 학생회
    • 홍콩 침례대학교(香港浸會大學·Hong Kong Baptist University) 학생회
    • 레이난 대학교(嶺南大學·Ling Nan University)[4] 학생회
    • 홍콩 슈런 대학교(香港樹仁大學·Hong Kong Shue Yan University) 학생회
    • 홍콩 과학·기술대학교(香港科技大學·The Hong Kong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학생회
  • 학민사조(學民思潮·Scholarism)
    혁명의 상징이자 스타로 급부상한 학생운동가 황즈펑(黃之鋒·Joshua Wong)이 위원장이다. '학민'은 "학생도 시민의 의무를 이행하여 적극적으로 급진적 사회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아수나로? '사조'는 5·4 운동에서 나온 용어로, 중국의 전통 사상을 버리고 민주·사상·언론의 자유를 내세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중·고등학생 활동가의 조직치곤 꽤 유서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데, 중국 공산당이 홍콩 정부를 통해 주관하는 중국 국민 교육의 철회를 구호로 2011년에 창단했다.[5] 청소년 계층의 운동을 주도하고 있으며 원칙적이고 강경한 성향을 띤다. 중국 본토에서는 '극단주의자'들로 찍힌 모양.

3. 배경

본래 덩샤오핑은 홍콩을 반환받을 때 영국과 합의하여 사회주의 체제가 적용되지 않고, 현재의 정치.경제 시스템을 최소한 50년 간 유지하는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유지하기로 한 바 있다.[6] . 그리하여 홍콩은 중국의 일개 행정구역이면서도 독자적인 헌법·행정부·법원을 보유하는 고도의 자치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홍콩의 대통령이라 할 수 있는 홍콩 행정장관은 <홍콩 기본법 제45조>에 따라, 선거인단에 의한 간선제를 통해 선출되므로 상대적으로 친중파가 당선되기 용이한 구조였다. 그래서 홍콩의 민주파는 행정장관 선거의 직선제를 요구했고, 결국 2017년부터 홍콩 특별행정구민의 직접 선거를 통해 행정장관을 선출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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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미인대회식 '직접선거', 더럽게 고맙다"

위 짤방에서 왼쪽은 홍콩 TVB에서 개최하는 미인대회의 결선 방식이고, 오른쪽은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안이다. 저 미인대회는 5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이 10인을 뽑고, 이 중에서 또 3인을 남긴 뒤, 최후의 1인은 1인 1표의 팬 투표로 결정한다. 그런데 중국 정부의 제안은 이와 놀랄만큼 닮았다. 중국의 의회인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과반수 지지를 얻은 후보자 2~3인을 내보내면, 홍콩 구민은 이 중 1명을 직접 선거로 뽑으라는 것이다. 당연히 전국인민대표대회는 민주파·반중파 인사가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반길 리가 없다. 뭔 소리냐? 직선제를 해봤자 전국인민대표대회의 허가를 받은 친중파 후보 1·2·3 중 한 사람을 뽑는 어용 선거가 되어버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이다! '자치권은 주겠으나 지도자 후보는 중국 입맛에 맞는 놈만 허가하겠다'는 실로 조삼모사스러운 논리에, 분노 게이지가 오른 사람들은 입후보의 자유까지 보장하라며 시위에 나서게 된다.

일국양제 원칙 자체야 50년은 형식적인 숫자이고 중국인도 홍콩인도 둘 다 자동 연장으로 보며.[7] 그나마 "사회주의 체제"는 아예 적용되지 않는다고 중영 공동성명에 명시되어 있어 상관없지만 이렇게 되면 일국양제는 껍데기만 남고, 실질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중국 중앙정부가 꼭두각시 행정장관을 통해 자기들 입맛대로 주무르게 되어 대륙과 홍콩의 차이는 억지로 좁혀지는 모양새가 된다. 이렇게 되면 일국양제는 모양새만 남고 실질적으로는 통합된거나 마찬가지가 된다. 그래서 홍콩인들은 이 사실을 직시하고 반발 운동을 벌여 왔고, 이것이 폭발한것이 우산혁명이다. 참고로 홍콩을 방문한 원자바오 총리는 성난 시민들에게 둘러쌓여 항의를 받기도 했다.

물론 이는 직접적인 기폭제였을 뿐이고, '홍콩'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민주파는 이전부터 계속 친중파나 중국 정부의 공산화 정책에 반발해왔다. 이를테면 황즈펑은, 과거 중국이 홍콩 고등학교 교과목에 중국 공산당에 대한 찬양 내용을 담고 있는 국민교육 과목을 추가하려고 하자 학생들의 시위를 조직해 교과목 채택을 무위로 돌려놓았다. 또, 홍콩 반환 이후 중국인이 대거 홍콩으로 이주하는 바람에 물가가 상승하고 일자리는 줄어들어, 홍콩 젊은이들의 삶이 어려워진 것을 시위의 원인 중 하나로 보는 시각도 있다. 기사

4. 진행 상황


주요 시위 지역. 처음에는 애드미럴티(金鐘·Admiralty) 등 도심에서 시작하였으나 코즈웨이 베이(銅鑼灣·Causeway Bay)와 완차이 구(灣仔區·Wan Chai District)를 거쳐 카오룽 반도의 웡콕(旺角·Mong Kok)까지 시위가 번지고 있다.

이후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홍콩 당국이 시위대와 충돌을 일으키지 않아 우산 혁명의 열기가 좀처럼 퍼지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5. 결과, 영향

시위가 12월 15일자로 종료되면서, 홍콩 시민들은 진정한 민주화를 쟁취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홍콩 시민들은 이번 우산 혁명으로 홍콩의 민주주의 수준에 대한 공론화, 덩샤오핑이 약속한 높은 수준의 자치권과 일국양제가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을 세계에 폭로, 그리고 홍콩 시민 스스로의 단결력을 쟁취하였기 때문에 이번 시위는 완전한 실패가 아닌 절반의 성공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한편 홍콩, 중국 정부는 조삼모사 직선제를 지켜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홍콩 민주주의에 대한 훼손이 전세계에 알려져 세계로부터 따가운 눈초리를 받게 되었으며, 홍콩 시민들을 전혀 납득시키지 못함으로써 홍콩의 반중 감정을 심화시키고 대만에서도 중국 정부에 그나마 협조적인 중국 국민당이 참패하는 등 하나의 중국이 심각한 타격을 입는 등 손해가 만만치 않다.

그리고 시위 종료 후 약 한 달 째인 2015년 1월 12일, 홍콩 경찰이 민주화 시위 핵심 인물들을 하나씩 체포하거나 소환 조사하려 하고 있다. 이에 맞서 홍콩 민주파는 새로운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6. 반응

  • 홍콩 정부
    친중파인 량전잉이 행정장관으로 있는 홍콩 정부는 당연히 이 시위를 불법으로 규정하여 강경 진압을 천명하였고, 진압에 나선 경찰은 최루탄 등을 사용하여 진압에 나섰다. 또한 10대 청소년을 포함하여 시위대 75명을 연행하였으나, 이게 시위대를 향한 광범위한 지지를 부르는 역풍을 불러오자 강경책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뒤에서 친중 단체를 지원하고 있다는 루머가 횡행하고 있다. 경찰이 친중 단체의 홍콩 시위대 습격을 본체만체 한다던가. 우린 간섭 안 할게 겉으론
  • 중국 정부
    아직까지 직접적으로 개입하진 않고 있다. 중국인민해방군 주홍콩부대나 인근의 중국 인민무장경찰부대를 투입하는 건 쉽지만, 국제 도시인 홍콩에 그런 짓을 하면 각국의 다굴을 맞을 게 분명하기 때문에 눈에 띄는 조치는 피하고 있다.
    그렇다고 시위대의 입장을 그대로 수용할 수도 없으므로, 외교부 대변인 화춘잉(華春瑩)을 통해 '법에 의한 처리'를 주문하였다. 10월 1일엔 시진핑'일국양제'를 고수한다는 발언을 하였는데, 이는 사실상 현재 중국 정부의 직선제안을 고수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또 여론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인스타그램 등 인터넷 SNS 서비스를 차단하고, 중국 내 인터넷과 언론에서 우산 혁명에 대한 내용을 검열하는 한편, 외신의 홍콩 관련 보도를 차단하는 등 언론 통제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위 1달이 지나자 시진핑이 직접 반란이라는 단어까지 언급하며 강경 대응할 태세임을 예고했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국제 여론이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사실 국제도시인 홍콩을 아무리 자국의 특별행정구이고 법적 근거가 있다고 해도 국제사회의 눈치를 안 볼수는 없을 것이다. 당장 자치권도 없는 티베트나 위구르도 마구잡이로 밟았다가 다굴을 당하기도 하고, 1989년 천안문 사태 직후에는 실제로 경제 제재까지 먹었는데 현재 중국은 그때보다 더 개방되어 행여나 미국 비자발급 중단 및 여행 금지 같은 조치라도 당하면 경제가 망하고 공산당 체제는 되려 위기를 맞는다. 물론 벼르고 있던 일본이나 미국 등에게도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좋은 구실이 된다. 참고로 미국에서 공부하는 중국 유학생만 해도 엄청난 숫자이고, 미국 회사에 취직해 일하는 중국인도 많은데 중국 정부의 무력 진압으로 미국 정부 차원에서 비자 발급 중단이나 강제 추방 및 입국 금지같은 조치라도 내리면 이들은 모두 갈 곳이 없어진다(...) 미국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가 있진 않는 러시아에 대한 서방 제재와는 차원이 다른 셈이라 시진핑은 크림반도를 다루는 푸틴처럼 할 수 없는 것이다. 반론이 있긴 하지만 현재는 어쨌든 중국에게 별 다른 방법은 없다.
  • 미국
    백악관 대변인 조니 어니스트는 정례 브리핑을 통해 "홍콩 기본법에 따른 홍콩의 보통선거와 홍콩 인들의 열망을 지지한다"고 발언하여 시위대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국무장관 존 케리(John Forbes Kerry)는 중국 외교부장 왕이(王毅)의 면전에서 "홍콩의 시위를 존중해야 한다"며 우산 혁명을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왕이는 "내정간섭 하지 말라"며 맞받아쳤다.
  • 영국
    홍콩의 지배국이었던 영국은 일국양제 원칙이 훼손되고 있음에 우려를 표했고, 외무부를 통해 홍콩의 보통선거안을 지지한다고 발표하였다. 닉 클레그(Nicholas William Peter Clegg) 부총리는 항의의 의미에서 중국 대사를 초치할 계획임을 밝혔다. 일국양제가 중국의 일방적 약속이 아닌 영-중 양국의 합의이기 때문에 영국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다.
    11월 30일, 우산 혁명을 조사하려는 영국 조사단의 홍콩 방문을 중국이 허용하지 않겠다고 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유는 내정간섭.
  • 중화민국
    마잉주는 물론, 정부 차원에서 시위대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였다. 중국은 중화민국에 하나의 중국을 내세워 압박하면서 홍콩의 일국양제를 대만에도 적용하겠다[11]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으므로, 홍콩이 일국양제 하에서 최대한의 권리를 보장받는 것은 중화민국 입장에서도 다행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위가 다시 불붙은 11월 29일 지방선거가 열려, 친중 성향의 중국 국민당민주진보당에 완패했다. 홍콩을 향한 중국의 대응이 반중 정서를 부추겼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을 정도로, 중화민국은 우산 혁명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
  • 러시아
    관영 언론을 통해 뜬금없이 미국이 배후에 있다는 음모론을 제기하였다. 가재는 게 편 뭐 이놈들이야 쿠르스크 호 침몰할 때도 같은 개드립 치던 놈들이니…푸짜르가 러시아에서도 민주 시위 날까봐 쫄았는갑다 물론 반정부 성향의 민간 언론들은 시위를 지지했다.

7. 트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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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시위대가 제작한 로고. 초창기에는 엄브렐러 같이 다소 섬뜩한 로고들이 보였지만, 지금은 다른 로고들이 더 많이 쓰이고 있다. 2014 홍콩 좀비 아포칼립스
  • [2] 비나 햇볕을 막기 위해 지참하고 나온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달리 홍콩에서는 10월이 지나도 덥고 습한 편이다.
  • [3]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법률위원회 위원장인 저우융캉과 이름이 같은데, 공교롭게도 그 저우융캉은 시위가 다시 주목받을 시기인 2014년 12월 5일 부패 혐의로 체포됐다. 같은 듯 같지 않은 두 명의 '저우융캉'
  • [4] 한국의 영남대학교와 이름이 같다.
  • [5] 비슷한 스탠스를 취하는 한국 청소년인권운동의 경우, 3년 이상 존속하는 조직이 극히 드물다.
  • [6] 다만 이 약조문을 실제로 선포한 사람은 장쩌민이다. 덩샤오핑은 홍콩 반환을 5개월쯤 남기고 사망했다.
  • [7] 한국에는 안 알려져 있지만 현지의 법학계에서는 이렇게 해석하는데 동의하며 중국 정부도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 [8] 홍콩 중문대학교는 휴학 기간은 짧았지만 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하는 걸 고려해 일부러 수업 지도를 상당히 늦추는 등 교수들도 협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긴 센트럴 점령의 공동대표 가운데 한 명이 이 학교 사람이니.
  • [9] 홍콩 경찰의 최루탄 사용은 2005년 한국 농민들의 반 WTO 원정 시위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다.
  • [10]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한 날이다.
  • [11] 대만 특별행정구 설치에 대만 달러도 유지하고, 원하면 대만군도 그냥 놔두겠다는 조건이다. 물론 중화민국 국민들은 한마음으로 이걸 바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