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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역대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회 창설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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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대회 개요 및 결과
2. 병역특례
3. 한국 팀 선수 명단
3.1. 코치진
3.2. 투수
3.3. 포수
3.4. 내야수
3.5. 외야수

1. 대회 개요 및 결과

방식: 각 지역별 풀리그 > Pool A&B / C&D 1,2위팀 끼리 리그 > 준결승 > 결승
우승: 일본, 준우승: 쿠바, 3위: 대한민국, 4위: 도미니카 공화국.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올스타
포지션 선수
C 사토자키 토모야(일본)
1B 이승엽(한국)
2B 율리에스키 구리엘(쿠바)
3B 아드리안 벨트레(도미니카 공화국)
SS 데릭 지터(미국)
OF 켄 그리피 주니어(미국)
이종범(한국)
스즈키 이치로(일본)
DH 요안디 가로보(쿠바)
P 야델 마르티(쿠바)
마쓰자카 다이스케(일본)
박찬호(한국)

시작했을 때 별 관심을 못 끌었던 것에 비해, 큰 인기와 큰 수익을 올렸던 대회였다. 이는 비단 한국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NBC, ABC(미국 방송), FOX같은 주요 방송 네트워크들의 외면 속에 케이블 스포츠 방송인 ESPN이 WBC 중계권을 산 것도 아니고 공짜로 받았는데, 미국 vs 캐나다의 경기를 132만명이 시청하면서 그해 최고 시청률 프로그램을 기록할 정도였다.

한국에서도 아시아 예선 일본전을 승리[1]하면서부터 분위기가 무르익어서 준결승 일본전에서 길거리 응원전까지 생겨날 정도로 고조되었다. 그리고 그 4강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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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인절 스타디움의 마운드에 태극기를 꼽고 있는 서재응.[2]

2라운드에서도 일본과 같은 조에 속한 한국은 일본을 2:1로 꺾고 4강 진출을 확정했다.

상당히 큰 문제점을 표출했던 대회이기도 했다. 대부분이 여름 개최를 주장했지만 미국의 의향대로 3월에 개최되었다. 초청국가 16개국을 MLB에서 관심을 두는 마켓으로 선정한지라, 야구 아마추어인 유럽국가들은 대부분 초대받지 못한데다 쿠바 선수단의 미국 입국을 거부하려고까지 했다. 결국 쿠바는 우승금 전액을 당시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피해를 입은 뉴올리언스 지방에 기부하는 조건으로 참가. 그러나 정작 우승은 일본. 미국이 결승에 올라가기위해 상대적으로 강한 중남미를 피할 수 있도록 짜여진 리그방식이 구설수에 올랐고,[3] 편파판정과 경기진행(밥 데이비슨으로 대표되는 미국 심판 전면배치, 미국전에서 일본은 역전할 수 있었던 기회를, 멕시코는 홈런을 잃어버렸다. 멕시코의 경우는 홈런이 2루타 사건 참조) 등등도 문제가 되었다.

대회의 포인트는 아테네 올림픽 본선 탈락에 한과 이치로의 30년 발언에[4] 대한 분노에 휩싸인 한국의 4강진출과, 6:0 패배 한국과 같이 아테네 올림픽 본선 못갔는데도 대진표를 저렇게 짜고도 4강에도 못간 미국의 병크, 마지막으로 디즈니랜드에 생긴 정신과 시간의 방(어?).

어쨌건 결론적으로는(돈을 버는것에) 성공적인 대회였기에 2회대회가 열릴 수 있었다.

또한, 이승엽은 이 대회에서 초대 홈런왕과 타점왕에 오르며 대활약[5]하여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은 대회이기도 하다.특히 일본전에서 8회 역전 투런포와 미국전에서 솔로홈런후 받은 고의사구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지구방위대 천조국 국대의 위엄.jpg

선수 옆의 성적은 직전 시즌인 2005년 MLB 소속 팀에서의 성적이다. 순서대로 타율/출루율/장타율/OPS/홈런/타점/도루
1. 버논 웰스 .269 .320 .463 .783 28HR 97RBI 8SB
2. 데릭 지터 .309 .389 .450 .839 19HR 70RBI 14SB
3. 켄 그리피 주니어 .301 .369 .576 .946 35HR 92RBI 0SB
4. 알렉스 로드리게스 .321 .421 .610 1.031 48HR 130RBI 21SB
5. 치퍼 존스 .296 .412 556 .968 21HR 72RBI 5SB
6. 제이슨 배리텍 .281 .366 .489 .856 22HR 70RBI 2SB
7. 마크 테셰이라 .301 .379 .575 .954 43HR 144RBI 4SB
8. 맷 홀리데이 .307 .361 .505 .866 19HR 87RBI 14SB
9. 체이스 어틀리 .291 .376 .540 .915 28HR 105RBI 16SB
P. 돈트렐 윌리스 22승 10패 ERA 2.63 236.1이닝 170삼진 7완투 5완봉 WHIP 1.13

리그베다 위키에 저 선수들 항목이 다 작성되어 있는 것만 봐도...

1회 대회 때 미국 대표팀은 그야말로 초호화 멤버로 나왔기 때문에 예선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미국을 꺾는 이변을 연출하자 지금까지도 종종 야구 커뮤니티에선 저 사기팀을 대체 어떻게 이긴겨?라고 회자되기도 한다. 마 에이로드 삼구삼진 잡아봤나 하지만 저렇게까지 멤버를 동원했는데 막상 발리자 대충대충 하기로 마음먹은건지 2회 대회에 나온 미국 대표팀 멤버의 네임밸류는 1회에 비하면 아무래도 좀 떨어지는 편. 미국 팀은 이번 대회에서 이런저런 망신을 많이 당해서 미국 야구 전문가들의 혹평을 받기도 했다. Team USA가 아니라 Team U[6]라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했을 정도.##

이 대회는 한국 야구의 국제적 위상을 본격적으로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훨씬 예전의 일이긴 하나 허구연 해설위원의 회고에 따르면 그가 1984년 다저스에 연수를 갔을 때 한국도 야구를 하고 프로야구도 있다고 하자 미국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근데 1984년이면 한국프로야구 생긴 지 얼마 안 됐잖아? 2006년에는 세월이 많이 지났고 한국인 메이저리거도 소수 배출한 상태였기 때문에 저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인지도도 높지 못하고 평가도 높지 않았다. 당연한게. 아시아에서는 일본만 인정할 뿐 한국은 아오안이었다고 봐야 할 듯[7]. 하지만 한국 팀이 일본을 상대로 연승을 거두고 미국의 사기 팀도 대파하는 (당시 기준으로는) 엄청난 이변을 일으키자 이 때부터 한국 야구의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 MLB.com의 기자가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녀석들인가?(Who are these guys, anyway?)"라고 했을 정도였다[8].## 일본에서도 한국이 축구를 잘해도 야구는 아오안일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자기네와 강력하게 맞먹는 것에 경악·분노하는 분위기가 연출됐다[9] . 그래서 MLB 사무국은 2009년 대회에서 대놓고 한일베이스볼클래식으로 대진을 짜버려 장사하는 분위기로 갔다... 어쨌든 이 대회를 기점으로 한국 야구가 여전히 미국이나 일본 야구보다는 수준이 낮게 평가되더라도 예전보다는 평가가 훨씬 좋아졌다. 외신들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등 이후의 국제대회에서 한국 팀의 선전에 찬사를 보내기는 해도 생각지도 못한 이변인 것처럼 보도하진 않게 되었다. 그러나 2013년에 대굴욕을 겪게 되는데...

2. 병역특례

2002년 월드컵병역특례[10]와 이에 따른 K리그의 부흥, 해외진출의 기회를 보장받은 박지성, 이영표의 성공을 바라보던 야구계에서는 WBC 4강 달성 후 '축구와의 형평성'을 논하며 "야구 월드컵의 지위를 인정하여 병역특례를 달라"고 요구했고, 결국 11명의 미필자들이 병역특례 혜택을 받았다. 기존 병역법 시행령인 올림픽 동메달, 아시안 게임 금메달, 월드컵 16강에 WBC 4강이 새로이 추가된 것이다.

그러나 해당 시행령에 대해 '축구와 야구를 제외한 타 종목과의 형평성'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됐고[11] 결국 2007년 12월 월드컵과 WBC 둘 다 동시에 혜택이 폐지되었다. 1회 WBC 이후 개정된 병역법이 2회 WBC를 치루기 전에 다시 바뀐 것. 이후 치뤄진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는 전 회보다 더 높은 준우승이라는 호성적에도 불구하고 병역혜택을 받지 못했다. 어차피 병역문제 해당자가 추신수, 박기혁, 최정, 임태훈으로 4명밖에 없긴 했다. 게다가 박기혁을 제외한 셋은 다음해 광저우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면제를 받았지만 박기혁은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12]하며 구청과 2년짜리 계약

3. 한국 팀 선수 명단


※ 2006 WBC로 인해 병역면제를 받은 선수는 굵게 표시

3.1. 코치진

감독 김인식(한화 이글스 감독)
코치

3.5. 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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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 때까지만 해도 일본 내에서 야구에서만큼은 일본이 한국보다 한수위라는 인식이 팽배했던데다, 실제 2003년 삿포로 아시아야구선수권에서 한국이 광탈하면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본선에조차 나가지 못했던지라 일본이 상당히 자신만만했었다. 이 상황에서 요미우리의 종신 회장 및 나루히토 황태자 부부 등의 수많은 귀빈들이 참관한 아시아 예선전이 열렸고, 한국은 0:2 로 뒤지다가 1타점 안타와 투런 홈런을 보태 3:2 로 역전승하면서 일본에 큰 충격을 안겨줬었다.
  • [2] 이것을 계기로 남녀노소 한국 야구 대표팀을 불구하고 대표팀은 국제대회 경기에서(본선 or 결승) 승리한 후 마운드에 태극기를 꼽는 문화가 생겼다.
  • [3] 덕분에 한국은 일본에게 2번 이기고 1번 져서 탈락.
  • [4] 다만 스즈키 이치로 항목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듯이 언론에 의해 왜곡되어 전해진 내용이다. 하지만 이걸 알 턱이 없는 당시 한국 팬과 선수들은 당연히 분노했고, 배영수구대성과 짜고 일부러 엉덩이를 맞추는 사건도 벌어졌다. 그리고 김인식 당시 감독의 반응도 압권인데, 김인식 감독: "뭘 그런거 가지고 그래? 50년에서 30년으로 줄어든 것 뿐인데."
  • [5] 4경기 연속 홈런을 포함해 5홈런 10타점
  • [6] Underperforming or Uninspired or plain-old Ugly.
  • [7] 정기적으로 미,일 올스타전을 치르고 있는데다 메이저리거 출신들이 자주 찾았던 곳도 일본이었으니..
  • [8] 메이저리그의 입장에서 본다면 아시아 야구는 일본외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더구나 한국야구는 사실상 이때 처음 접하게 된 것이었고 여기에 공,수 양면에 상당히 기본잡힌 탄탄한 모습을 보여주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 [9] 당장 프로팀으로 구성된 국대팀들간의 대결에서 일본의 성적이 의외로(일본의 입장에서) 좋지 않았다. 더구나 아시아 프로야구의 역사가 긴 일본으로서는 '고딩'연배의 한국 프로야구에게 1번도 아니고 2번씩이나 졌다는 사실이 여간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10] 참고로 당시 축구대표팀은 16강 진출로 받았다. 4강진출로 받은 것이 아니다. 2002월드컵 기타 항목 참조.
  • [11] 이런 과정을 거치며 여론이 반대로 돌아선게 크게 작용했다. 애초에 2002년 월드컵 병역혜택도 국민여론으로 인해 주어진 것이고.
  • [12] 방어율 5점대의 임태훈도 승선할 정도로 2회 WBC 병멱혜택 무산에 대한 보상차원(실제 여론도 긍정적이었고)에서라도 갈 법 했는데 6월에 골절상을 당하면서 도저히 뛸 수 없는 몸이 된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