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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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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FIFA 월드컵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2006 FIFA 월드컵 독일

2002 FIFA World Cup Korea/Japan™

21세기 첫 월드컵이자, 사상 최초로 아시아에서 개최되고 2개의 나라가 공동으로 개최한 월드컵
이제는 전설이 된 대한민국 축구 역사 상 최고의 황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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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Contents

1. 개요
2. 유치 경쟁
3. 명칭
4. 대회 엠블럼·마스코트·공인구
5. 지역예선 통과 팀 목록
6. 대회 전 사정
6.1. 대한민국
6.2. 일본
7. 대회 진행
7.1. 경기장
7.2. 조 편성
7.2.1. 대한민국
7.2.2. 일본
7.3. 대회 직전
7.4. 조별 라운드
7.5. 결선 토너먼트
7.5.1. 토너먼트 결과
8. 주요 팀 결과
9. 기타
10. 결과
11. 대회 이후


새 천년, 새 만남, 새 출발
新しい千年、新しい出会い、新しい出発
New millenium, New encounter, New start

1. 개요

youtube(CbibSut5Urs)

2002년에 개최된 17번째 FIFA 월드컵으로 역대 월드컵 중 최초이자 최후로 공동 개최된 대회다. 2002년 5월 31일부터 2002년 6월 30일까지 32개 국가가 대한민국일본의 20개 경기장에서 64경기를 치렀다. 한-일 양국의 각 10개 도시에 경기장이 건설되었다.

2. 유치 경쟁

1989년 일본이 최초의 월드컵 아시아 개최를 목표로 월드컵 조직위를 결성했고 일본에 자극을 받은 대한민국은 1994년에야 월드컵 조직위를 결성하고 1995년에 일본과 함께 FIFA 월드컵 개최 제안서를 제출한다. 제안서를 제출한 국가가 두 나라 밖에 없었으므로 유치 경쟁은 굉장히 치열해졌다. 펠레브라질의 우방인 일본의 개최를 강력히 희망했는데 마라도나는 단순히 펠레가 일본편을 들었기 때문에 대한민국편을 들었다.[1] 마라도나는 2002년 월드컵 유치 홍보 계획의 일환으로 잠실주경기장에서 열린 '마라도나 공식 재기전'(1995년, 보카 후니오르스 초청)에 출전했다. 그 경기는 마라도나가 1994년 미국 월드컵, 약물 복용으로 출장 정지 처분을 받은 후 첫번째 공식 경기였기 때문에 세계적인 관심을 모은 경기였다. 여담으로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시축을 하고, 마라도나와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기념촬영을 하였다.[2] 치열했다고 하지만 유치 경쟁은 일본 vs 현대 그룹의 싸움이라고 할 정도로 현대 그룹이 한 일이 많았다.

펠레와 마찬가지로 브라질 출신이었지만 더더욱 친일적으로 알아준 앙 아벨란제 FIFA 회장 역시 일본의 단독개최를 희망.[3]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일본의 우세가 기정사실이었지만, 월드컵에 한 번도 진출하지 못한 국가는 월드컵을 개최할 자격이 부족하다[4]는 한국의 주장이 대두되면서 상황이 미묘해지기 시작한다. 실제로 한국은 2년 전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스페인과 독일 등의 유럽 강호들에게 상당한 선전을 펼친 경력도 있었던 덕분에, '일본은 월드컵을 개최할 자격이 부족하다'는 한국의 주장이 다른나라에서도 서서히 먹히게 되었다. 이렇게 일본 대세론에 이상기류가 흐르기 시작하는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FIFA 고위 관계자들이 관전한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축구 아시아 챔피언쉽 결승전에서 한국이 시종일관 일본을 몰아붙인 끝에 2-1로 이기고 우승컵을 따내버렸고, 분위기는 급반전되기 시작한다.

게다가 FIFA의 개혁을 주장하던 레나르트 요한손 UEFA 회장을 필두로 유럽측 FIFA 집행위원들이 아벨란제 회장을 견제하기 위해[5] 한일 두 나라의 공동개최를 강력히 주장하고 여기에 그동안 부동표였던 아프리카측 FIFA 집행위원들까지 유럽측 FIFA 집행위원들에 동조하기 시작했으며, 열성적으로 한국의 개최를 주장했던 정몽준 역시 FIFA 집행위원들이 만장일치로 합의한다면 공동개최에 찬성한다고 말하면서 분위기가 급반전되었다.

때문에 아벨란제 회장으로서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개최지 결정 이틀 전에 일본 월드컵 조직위원회에 공동개최 의향을 타진했는데, 사실 당시의 분위기로 봐서는 표 대결로 갈 경우 일본이 불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결국 일본 월드컵 조직위원회는 공동개최를 수용했다. 물론 한국은 이미 공동개최를 사실상 승인한 상태였다.

결국 FIFA는 양국의 역사적 특수성을 감안, 한 쪽이 월드컵을 개최하면 다른 한 쪽은 엄청난 좌절감에 빠질 것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집행위원 만장일치로 공동개최를 선언하게 된다. 후에 정몽준 부회장은 한국이 공동개최라도 이뤄낸 것은 FIFA 내부의 정치 싸움을 이용했기 때문이라고 회술했다.

일본이 단독개최를 놓친 이유는 일본의 유치의 전략적 판단미스가 불려낸 참극이다. 같은 대륙에 두 후보지가 나오는 실수를 범한 피파. 그러한 아벨란제의 삽질과 그 삽질한 아벨란제를 믿고 유치전략 편 일본의 삽질로 인해 가장 개최 준비에 앞섰으면서도 공동개최를 허용하게 만든 일이 된 것이다.

단독 개최는 놓쳤지만 결승전이라도 자신들이 치르겠다고 주장했고 대한민국 측은 추첨으로 정하자고 주장했다. 결국 추첨으로 결승전은 일본이 치루게 되었다. 대신 개막전은 대한민국이 가져가게 되었다. 대한민국이 결승전을 가져왔으면 대표팀의 마지막 경기를 일본에서 치를 뻔했다 나중에 결승전을 자기네 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개막전을 대한민국에게 양보한 일본은 전 대회 챔피언 프랑스가 1라운드부터 탈락하며 피똥을 쌌다. 하지만 결승전이라도 가져간 게 어디인가.

정몽준 부회장에 따르면 아버지(정주영 회장)에게 공동개최 사실을 말하자 '몽준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라고 했다고.[6] 일본을 제치고 서울 올림픽을 따낸 정주영의 입장에서는 성에 차지 않았을 수 있긴 하지만… 흠좀무.[7]

3. 명칭

본래는 2002 FIFA World Cup Japan/Korea™이었다. 이에 정몽준왜 일본이 대한민국 앞에 오냐며 항의했고 제프 블라터 당시 FIFA 사무총장은 J가 K보다 먼저와서 어쩔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여기에 정몽준은 프랑스어로는 한국을 Corea(…사실은 Corea가 아닌 Corée)라고 표기하며 FIFA(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는 프랑스어를 사용한 단체이기 때문에 프랑스어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게 먹혀서 결국 Korea/Japan으로 정정되었다. 그렇게 따지면 FIFA Coupe du monde Corée/Japon이라고 써야 맞겠지만.(…) 일본은 여기에 꼴받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한 월드컵이라고 표기하기 시작한다.(…) 오죽했으면 일본어 위키백과에 있는 문서는 자꾸 일한 월드컵이라고 수정되어 수정제한이 걸렸다. 한국어 위키백과의 문서도 일본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에 의해 일본/남조선(…)이라고 바뀐 적이 있다.

사실 결승전을 일본에 넘기는 대신 명칭을 Korea/Japan으로 표기하는 것을 사전에 일본과 협의했다. 그러나 대회를 앞두고 일본이 임의적으로 협약된 명칭을 어기고 Japan을 앞에 두기시작하자 사전 협의를 이행할 것을 한국측이 촉구. 그 과정에서 정몽준이 협의사항을 언론에 공개했다. 당시 정몽준은 Japan을 앞에 두려면 결승전을 포기하라는 식으로 강하게 항의했고 결국 일본은 대회기간동안은 가급적 공식적인 Korea/Japan의 표기를 사용했다[8]. 조직위 외의 일본내 매체에서는 일반적으로 대회 공식 브랜드인 'FIFA 월드컵'으로만 표기하면서 '일한 공동개최'로 수식하는 식으로 우회적으로 무시하였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2014년, 일본은 교과서에서 공식적으로 한일월드컵 공동개최를 삭제하고 일본 단독개최로 변경하기에 이른다. 2002 일본 월드컵 오오 선진역사왜곡국 오오

4. 대회 엠블럼·마스코트·공인구


위 사진 왼쪽의 엠블럼이 대회 엠블럼으로, 이 엠블럼의 도안은 한일 월드컵 이후부터 월드컵을 상징하는 공식 도안으로 계속 사용되고 있다. 독일 월드컵, 남아공 월드컵 엠블럼에도 같이 포함되어 나왔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이후로 사라졌다.

(위 사진 오른쪽 부분)대회 마스코트는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단일 마스코트가 아닌 3가지 유형의 마스코트로 만들어졌으며 3D로 제작되었다. 정식 명칭은 아트모(Atmo). 스페릭스(Spheriks)라고 불리는 외계인(…) 종족인 이 마스코트는 코치를 상징하는 아토(Ato)와 두명의 선수를 상징하는 니크(Nik), 캐즈(Kaz)로 이루어져 있다. 공동개최라는 대회 특성상 마스코트도 특정국가의 상징물에서 벗어나 외계인을 모티브로 삼았으며 디자인도 영국의 인터브랜드(Interbrand)에서 맡았다. 그 때문인지 친근감이 떨어져 인기는 별로였다.

마스코트를 이용한 만화와 애니메이션도 제작되었다. 애니메이션은 TV판과 극장판이 모두 만들어졌다. 아동용으로 그냥저냥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는 듯 하지만 대중적으로 그리 큰 성공은 거두지못했고 이런 마스코트가 그러듯 대회가 끝나면서 자취도 사라졌다.

여담인데 한국에선 진돗개삽살개를 한국 측 마스코트로 정해야 한다고 논쟁을 벌인 바 있다. 진도군에선 '진돗개를 2002년 월드컵 마스코트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자체적으로 마스코트 도안까지 만들어 대대적인 홍보전을 펼쳤으며. 한국삽살개보존회에서는 '독도 지킴이 삽살개'라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한 후 월드컵 마스코트 지정 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결론은 둘 다 김치국 마시는 소리로 끝났다.아키타견도 그렇게 했으면 둘 다 됐을텐데

월드컵 공인구로는 피버노바가 사용되었다. 열정(Fever)와 신성(Nova)의 합성어로 기존의 축구공과는 다른 화려한 디자인이 특징이며, 그 때문인지 처음 공개되었을 당시에도 상당한 화제거리였다. 요즘 나오는 여러 공인구들과 비교해도 피버노바만큼 튀는 디자인은 좀처럼 없을 정도. 그래서 골키퍼들이 뜬 공을 처리할 때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병림픽, 아니 병든컵 방지를 위해한국어일본어가 아닌 제 3의 언어를 사용했다.

5. 지역예선 통과 팀 목록

각 지역별로 예선을 통과한 팀(본선 진출/플레이오프)들은 다음과 같다. ●표는 개최국 자격 자동 진출팀을, ★표는 전 대회 우승팀 자격 자동 진출팀을 의미하며 ()안의 팀은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거쳤다.(유럽-아시아, 남미-오세아니아)

  • 남미(4.5장):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
  • 북중미(3장): 코스타리카, 멕시코, 미국
  • 아시아(4.5장): 대한민국●, 일본●,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 아프리카(5장): 카메룬, 나이지리아, 세네갈, 튀니지, 남아프리카 공화국
  • 오세아니아(0.5장): (호주)
  • 유럽(14.5장): 프랑스★, 러시아, 포르투갈, 덴마크, 스웨덴, 폴란드, 크로아티아, 스페인, 이탈리아, 잉글랜드, 슬로베니아, 터키, 벨기에, 독일, (아일랜드)

  • 대륙간 플레이오프: 우루과이, 아일랜드

호주가 우루과이에게 1승 1패를 기록했으나 골득실(0:3, 1:0)로 밀려 탈락, 결과적으로 오세아니아는 단 한 팀도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참고로 월드컵 역사상 최다점수차 경기 및 월드컵 역사상 한 경기당 최다득점자가 이 대회 오세아니아 지역예선에서 나왔다. 호주 대 미국령 사모아의 경기로 31-0이라는 신기하고 놀라운 점수가 나왔으며 치 톰슨은 이 경기에서 혼자 13골을 퍼부었다. 절대 오타가 아니다. 3-0이 아니다. 삼십일대 영 저 점수가 맞다.

6. 대회 전 사정

6.1. 대한민국

일단 공동개최는 확정되었지만 차범근을 앞세운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선 완전 개털렸고 허정무를 앞세운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레바논 아시안컵에서도 이렇다할 성적[9]을 내지 못하면서 국가대표팀에 대한 우려는 극에 달했다. 거기에 2000년에 열린 아시안 청소년 대회 16, 19살 대회 모두 4강에 탈락하면서 이 우려를 더 부채질했다.

이대로 가다간 월드컵 역사상 개최국은 모두 16강 이상 성적[10][11]을 냈는데 대한민국이 16강도 진출하지 못하면서 개최국의 전통을 깨부수는게 아니냐는 부정적인 여론이 득실거렸고, 김대중 대통령까지 나서서 국가대표팀의 전력을 상승시킬 대안을 세우라며 KFA와 문화관광부를 압박했다. 만약 한국이 조별리그 탈락하고 일본이 16강에 진출한다면, 국민 정서상 도저히 용납이 안되는 최악의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당시 일본립 트루시에라는 프랑스 출신의 명감독을 영입해서 1999년 U-20월드컵 준우승, 2000년 시드니 올림픽 8강, 2000년 아시안컵 우승,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 준우승 등을 하며, 탈아시아를 외치던 상황이었다.

이에 정몽준은 TV 해설가이자 교수였던 이용수를 기술위원장으로 임명하고 그에게 대책을 강구하라 요구한다. 이용수 해설가의 회상에 의하면, 당시 그가 매일 아침 일어나서 시작했던 하루 일과가 대국민 사과문을 작성하고 수정하는 거였다고. 심지어 정몽준은 농담으로 이용수에게 "대표팀이 16강에 못 든다면, 우리 둘 중 하나는 한강에서 뛰어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할 정도였다.

아무튼 여기에 이용수는 단기적 처방으로 '외국인 감독 영입 카드'를 내민다. 기술위원회는 누구를 감독으로 영입할 것인가를 두고 토론을 했고, 여지껏 주로 기용해왔던 값싼 동유럽 감독들은[12] 제외하고 어차피 지를거면 화끈하게 지르자며 세계 초일류급 감독을 영입할 계획을 세운다.

당시 기술위원회에서 영입 1순위로 떠오른 사람은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 프랑스를 우승으로 이끌던 에메 자케였다. 당시 자케는 FFF(프랑스 축구협회)에서 기술고문으로 유유자적하고 있었기 때문에 연봉 협상만 잘되면 쉽게 영입할 수 있다고 생각되었으나 자케의 휴가 크리로 무산되었다.

자케의 영입 시도가 실패한 후 기술위원회는 곧바로 영입 2순위였던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접촉했다. 히딩크는 1998년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4강에 올린 뒤 레알 마드리드와 레알 베티스 등을 전전하다가 성적부진으로 사퇴한 뒤 별다른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었던지라 월드컵 개최국인 대한민국의 감독직에 도전하는 것을 받아들였다. 결국 2000년 12월에 정식 계약을 하게 되었으며 2001년 1월 1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공식 취임하였다.[13]

이후 히딩크 감독은 프랑스와 체코에게 각각 5:0으로 패배하면서페이크다 이 병신들아 오대영 감독이라 불리는 굴욕을 당했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선수들을 물색하고 전략을 짰고, 애인과 데이트를 하고 골프를 치러 다녔다.[14]


2001년 12월 1일 부산 벡스코에서 월드컵 조 추첨행사가 열렸다. 총 13명의 조 추첨자가 선정되었으며, 한국 측 인사로는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 월드컵 국가대표 홍명보 선수, 바둑기사 조훈현 9단, 산악인 박영석, 탤런트 송혜교, 국제심판 은주 등 6명이 선정되었고, 일본에서는 오카노 순이치로 일본축구협회장과 프랑스월드컵때 일본 주장으로 활약했던 이하라 마사미 등 2명으로 결정되었다. 나머지 5명의 인원들은 대륙별 안배원칙에 따라 브라질 축구황제 펠레, 네덜란드요한 크루이프, 카메룬저 밀라, 중국의 여자 축구스타 , 프랑스 월드컵 공동위원장을 역임한 셀 플라티니가 선정되었다.


그런데 한국 추첨자 선정에 있어서 한국 축구의 전설로 불리는 차범근이 제외되고, 축구와 관련이 없는 비축구 스포츠계 인사들이 채워지는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많았으며, 특히 스포츠 분야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탤런트 송혜교가 선정된 것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상당했다.[15] 아마도 차범근프랑스 월드컵의 경기 진행 도중 대표팀 감독에서 경질되는 등 오랫동안 대한축구협회와 마찰을 빚은 전력 때문에 추첨자 선정에서 배제된 것으로 보인다.[16] 행사에는 영어가 가능한 재미교포 출신인 가수 그 당시에는유승준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수로 소개되어 축하공연을 했다.[17]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립싱크 공연을 해서 작은 논란도 있었다. 그 모범청년이 불과 몇 개월 후 훨씬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킬 줄은 아무도 상상 못 했을 것이다.

조 추첨 결과 폴란드, 미국, 포르투갈과 함께 D조에 배정되었고, 그 결과에 우리나라의 많은 국민들은 우울해했다. 당시에 우승이 가능한 전력으로 평가받던, 포르투갈이 같은 조로 편성되면서 사실상 개최국 자격으로 시드를 받은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은 유로 2000 4강에 빛나고 루이스 피구 등의 황금세대가 포진한 FIFA 랭킹 4위의 우승 후보였다.[18]
같은 조의 폴란드는 당시 끗발 날리던 리버풀의 주전 골키퍼 두덱과 공격수인 리사데베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유럽예선을 가장 먼저 통과한 동유럽의 강호였고, 그나마 만만했던 미국도 FIFA 랭킹 13위의 북중미 강호였고 게다가 골드컵에서 맞서서 깨진 적이 있었다.[19] 이건 뭐 개최국이고 뭐고 멘붕이요 광탈 예약 조편성이었다. 월드컵 사상 최초로 2라운드 진출 실패한 개최국이 되느냐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실제 사례는 8년 후에나 나왔지만.)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꾸준히 대표팀의 전력을 올리면서 대회 직전 홈에서 벌어진 스코틀랜드와의 평가전에서 4:1 대승을 거두고, 잉글랜드와 1:1로 비긴데다가, 프랑스에게 선전끝에 아쉽게 3:2로 역전패하자[20] 1년전 프랑스를 만나서 자신감이 없었던 대표팀은 이 경기에서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이며 전력을 끌어올렸고, 국내 여론은 해볼만하다는 여론이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6.2. 일본

당시 J리그 흥행을 앞세운 일본 축구는 탈아입구탈 아시아를 외칠 정도로 강력했다. 필리프 트루시에 감독이 이끄는 일본대표팀은 2000년 레바논 아시안컵에서 우승했고,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도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승승장구 했다. 더구나 U-20 청소년 대표팀도 99년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준우승, 2000년 시드니 올림픽 8강(U-23) 등 전체적인 분위기도 좋았다. 게다가 세리에 A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던 미드필더 나카타 히데토시에 당시 아시아 최초의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거인 이나모토 준이치까지.

게다가 조 추첨식에서 러시아, 벨기에, 튀니지와 같이 H조에 배정됐는데 당시 H조는 FIFA 랭킹 20위 안에 드는 팀이 하나도 없는 로또나 다름 없는 조였기 때문에 한국 축구팬들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2014년 월드컵엔 대한민국이 비슷했지

7. 대회 진행

7.1. 경기장

전후로 1998년, 2006년 월드컵은 동네가 동네이니만큼 거의 모든 경기장이 재활용이었다. 하지만 두 개최국 중 축구 인프라가 열악한 모 국가잠실종합운동장을 재활용하려다가 영 좋지 않은 반응이 나왔다. 서울시에서 '설마 서울을 개최지에서 제외하겠느냐'라는 안이함으로 개최 당시 약속했던 신축 약속을 뒤집었고 IMF 사태로 인해 경기장 신축에 부정적인 여론이 고개를 들었으며 이는 곧 서울에 축구전용구장을 굳이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서울 전용구장의 대안으로 잠실종합운동장 리모델링, 인천문학경기장 증축, 수원월드컵경기장 주경기장 선정, 신축 돔구장과 겸용 등등 별의별 안이 나왔지만 결국 축구전용구장 신축으로 결정되었다. 잠실 리모델링안은 상암 신축비용을 능가하는 초월적인 금액이 나온데다가 FIFA 실사단 평가에서 최악의 평가를 받아 폐기되었고 문학경기장의 경우는 주경기장이 수도에 없는게 말이 되냐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던데다가 전용구장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외, 수원월드컵경기장은 관중석수 미달로 제외, 돔구장은 뚝섬 돔 경기장 건으로 안 좋은 야구계의 여론+신축 약속을 안지킨 서울시에 대한 부정적 여론으로 인해 실현될 가능성이 적었다. 다만 인천, 부산, 대구는 각각 전국체전, 아시안게임, 유니버시아드로 건설이 기확정된 경기장이었다. 그러나 인천 문학 경기장은 시공이 늦어져서 역설적으로 전국체전에 활용하지 못했다.

그리고 서울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이슈가 되었던 곳이 전주였다. 이 곳은 종합운동장이 수용인원이 3만명도 안되는 데다 당시에는 조명시설조차 없었음에도 개조해서 월드컵을 개최하겠다는 만용을 보여주었다. 다행히 그 제안이 원체 턱도 없다 보니 결국 나온 대안이 전주 월드컵 경기장.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은 실사단 점수에서 최하위 점수를 받았으나 지역 안배 문제로 포항이 탈락[21]하면서 자연스럽게 가져가게 되었다.

다른 공동개최국도 그리 좋은 사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른 한쪽보다는 기존 구장을 많이 활용한 편. 다만 일본 역시 월드컵 유치 시점에 운영되고 있던 경기장은 오사카 나가이 및 가시마 스타디움 2개 뿐이었다. 양국에 10개씩 모두 20개의 구장에서 경기를 진행했다.[22] 그런데 신설한 구장들은 대회 이후에 잘 활용하고 있…나?

  • 한국 : 일단 10개 경기장이 모두 K리그의 홈구장으로 활용되고 있었으나, 2012년 인천이 축구전용구장으로 새롭게 개장된 숭의 아레나로 이전하였다.
    그리고 축구뿐만 아니라 부산 아시아드경기장은 아시안게임, 문학 월드컵경기장은 전국체전, 대구 월드컵경기장은 하계 유니버시아드와 세계육상선수권 개최, 광주 월드컵경기장은 하계 유니버시아드 유치등등 월드컵 이후에도 많은 스포츠 행사에 사용되었으며 축구전용구장들도 모두 프로구단들이 입주해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경기장 활용이 잘 되지 않았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더구나 대부분이 도시 외곽지역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다만 2004년과 2006년 각각 벌어진 K리그의 연고이전이 월드컵 경기장 활용을 명분에 끼워넣는 형태로 벌어지는 과거가 있었다.

  • 일본 : 대부분의 연고 J리그 구단이 월드컵 경기장과 기존 경기장을 공용하는 형태이다. J리그가 복수 홈경기장을 유지하는 이유 중에는 기존 경기장이 시립 또는 모기업 소유이고 월드컵 경기장이 현립이어서 양측의 이해가 엇갈리는 탓이 크다. 이 때문에 매경기 3만명 이상을 가볍게 동원하는 우라와조차 2009년까지는 매년 한두 경기 쯤은 기존 고마바 스타디움(21,500명 수용)을 사용했다. 반면 미야기나 시즈오카는 그야말로 허허벌판에 뜬금없이 박혀있는 입지 탓에 거꾸로 기존 경기장을 기본으로 연간 1~3경기 정도를 소화하고 있다. 시즈오카는 주빌로 이와타시미즈 에스펄스의 중간지점에 있다 보니 이들이 붙는 시즈오카 더비를 유치하다가, 지금은 그조차 없이 원정팬 많이 오는 우라와 경기만 치르고 있다.

△ 경기장 명칭은 월드컵 당시 사용된 명칭.
  • 한국의 경우 실질적으로 모든 경기장이 'XX 월드컵 경기장'으로 통칭되었으나 모두 정식 명칭이었던 건 아니다.
  • 일본 경기장들의 법적 정식 명칭은 '또 따로 있다'. 매우 복잡하므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정규 애칭'을 기재.
국가 도시 경기장 수용인원 전용구장
대한민국 대구 대구 월드컵 경기장[23] 66,422명 X
서울 서울 월드컵 경기장 66,086명 O
부산 부산 아시아드 주 경기장 55,983명 X
인천 인천 문학 경기장[24] 52,179명 X
광주 광주 월드컵 경기장[25] 44,118명[26] X
울산 울산 문수 축구경기장 43,550명 O
수원 수원 월드컵 경기장[27] 43,288명 O
전주 전주 월드컵 경기장 42,477명 O
대전 대전 월드컵 경기장 40,535명 O
서귀포 제주 월드컵 경기장[28] 43,657명[29] O
일본 요코하마 요코하마 국제 종합 경기장[30] 72,327명 X
사이타마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 63,700명 O
시즈오카 시즈오카 스타디움 에코파[31] 50,889명 X
오사카 오사카 나가이 스타디움[32] 50,000명 X
미야기 미야기 스타디움 49,133명 X
니가타 니가타 스타디움[33] 42,300명 X
삿포로 삿포로 돔 41,484명 [34]
이바라키 이바라키 현립 가시마 사커 스타디움 40,728명 O
오이타 오이타 스타디움[35] 40,000명 X
고베 고베 윙 스타디움[36] 40,728명[37] O
도쿄가 없다.[38][39]

보다시피 모두 신축 경기장임에도 종합운동장의 숫자가 상당히 많은 편인데, 이것은 국제대회 행사 유치와 경기장 활용 등의 이유로 지방자치단체들이 종합운동장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당시 국가대표 감독인 거스 히딩크는 한국 대표팀이 종합운동장에서 경기해야 하는 것에 대해 '홈 어드밴티지를 약화시킨다'며 대회 조직위원회가 경기장 배정을 생각없이(…) 했다고 자서전을 통해 비판하기도 했다.[40] 종합운동장은 그라운드와 관중석의 거리가 멀어, 심리적으로 홈이점을 충분히 누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 테이블에서 보듯 종합운동장들이 축구전용구장에 비해 수용인원이 많은 편이었기 때문에 더 많은 한국 관중들이 들어와 압도적인 응원을 선사할 수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일본은 사정이 더하다. 축구경기용으로 전환 중인 상태의 삿포로 돔을 축구전용구장으로 계산한다고 해도 한국보다 2개 더 적은 4개 뿐이다. 그나마도 가시마는 기존 전용구장을 마개조 증축한 것, 고베는 기존 구기장을 재건축한 것으로 완전 신축은 사이타마 1개 뿐이라고 할 수 있다.

7.2. 조 편성

이번 월드컵을 끝으로 우승국에게 주었던 월드컵 자동 진출제가 폐지됨에 따라 이번 월드컵 우승국인 브라질은 다음 월드컵부터는 지역예선을 거쳐서 본선진출을 하게 되었다.

A조 ~ D조는 대한민국에서 경기를 치르게 되었고 E조 ~ H조는 일본에서 경기를 치르게 됨에 따라 대한민국은 자동으로 D조 1번째에 배정되었고 일본H조 1번째에 배정되었다. 지난 월드컵 개최국이자 우승국인 프랑스는 우승국 자격에 따라 A조 1번째에 배정되었다. 한편 A조와 C조의 2라운드 진출 팀은 일본에서 F조와 H조의 2라운드 진출 팀과 토너먼트를 치르게 되고, E조와 G조의 2라운드 진출 팀은 한국에서 B조와 D조의 2라운드 진출 팀과 토너먼트를 치르게 된다.

대진표 결과를 보면 조별리그의 아르헨티나-잉글랜드, 이탈리아-크로아티아, 잉글랜드-스웨덴전과 8강전의 잉글랜드-브라질, 그리고 결승전 등 세계적인 관심을 끄는 빅매치는 대부분 일본에서 열리게 되었다.

한편, 중국은 조 추첨 전에 예선전을 한국에서 치를 수 있도록 FIFA 측에 요청했고, 그에 따라 중국은 C조에 배정되었다.

조 추첨 결과 F조가 이번 대회 최악의 죽음의 조로 꼽히게 되었다.그러나 A조가 다른의미로 죽음의 조가 되어버렸다

시드 배정
  • 톱시드 - 대한민국(개최국), 일본(개최국), 프랑스(전대회 우승국), 독일, 브라질, 스페인,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 톱시드 팀 이외의 유럽 팀(11) - 유럽 팀 중 3개 팀은 비유럽 시드 팀이 속한 조에 편성.
  • 톱시드 팀 이외의 남미 팀(3), 아프리카 팀(5) - 남미 팀은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다른 조로 편성.
  • 톱시드 팀 이외의 아시아 팀(2), 북중미 팀(3) - 아시아 팀은 한국, 일본과 다른 조로 편성.

7.3. 대회 직전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는 이번 월드컵 우승 후보 0순위. 98 월드컵, 유로 2000, 2001 컨페더레이션스컵을 잇달아 재패하여 그랜드 슬렘을 달성했을 뿐더러, 특히 컨페더레이션스컵 개막전에서 한국을 5:0으로 작살내어 세계 최강의 위용을 선보였던지라, 당시만 해도 프랑스의 월드컵 2연패 가능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시피 했다. 그 외에 아르헨티나는 프랑스의 2연패를 견제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팀으로 거론되었고, 91 세계 청소년 축구 대회 우승의 주역인 소위 황금 세대들이 포진해 있는 포르투갈 역시 이 대회의 최대 복병이었다. 이에 비해 남미 예선 3위[41]로 간신히 본선에 진출한 브라질과 잉글랜드에 밀려 플레이오프로 밀려나고[42]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간신히 본선 진출권을 따낸 독일은 8강 이상 진출하기 어렵다는 혹평을 들을 정도로 팀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6월이면 한/일 양국이 장마철에 접어들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 개막을 예전 대회에 비해 1개월 정도 앞당겨 5월 말에 개최하였다. 그래서 유럽리그에서 뛰던 선수들, 특히 월드컵 직전에 챔스 결승을 치뤄야 했던 레알 마드리드레버쿠젠의 선수들이 피로누적 때문에 대회 초반 제대로 뛰지 못했다는 해석이 많다.이것이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조별리그 일본-토너먼트 한국을 오가면서도 준우승을 한 독일을 보면 설득력이 조금 떨어진다.[43]

일례로 포르투갈은 한국에 적응하겠답시고 옛 식민지였던 마카오에 베이스 캠프를 차렸는데 그나마도 우기라 훈련도 제대로 못했다.[44] 거기에 한국에 입국한 뒤에도 전력분석했다면서 98년도 데이터를 꺼내서 대표팀에도 없는 김도훈을 조심하라고 했다(...)[45]. 거기에 하라는 훈련은 안하고 쇼핑만 하러 다니질 않나[46]완벽하게 막장 그 자체였다. 그리고 2009년 강심장에서 홍석천이 포르투갈 대표팀과 술자리를 했다는 이야기[47]를 하기까지 했다.

그나마 오심으로 승리를 도둑맞은 러시아 정도면 모를까 다른 팀들은 변명의 여지가 없을 정도. 그냥 준비 부족이었던 거다. 상대가 개최국이라고는 해도 승점 자판기 신세였던 아시아 팀들이니 요태까지 구래와틋 그냥 바를 거라고 생각하고 안일하게 나왔다가 참변을 당해버렸다. 물론 모든 유럽팀들이 이런 막장인 것은 아니었다. 가령 위에서도 언급한 독일 대표팀의 경우 제주도에서 현지적응훈련을 한 뒤 16강전을 서귀포 경기장에서 치루는 등 제대로 대비해 좋은 성적을 냈다.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개막식에서는 초박형 LCD모니터로 에밀레종을 재현하거나[48] 차세대 통신기기 IMT-2000을 든 도우미들이 경기장 지붕에서 레펠을 타고 내려오는 등 각종 이벤트로 당시 일본에 가려있던 한국의 디스플레이, IT 기술을 잘 홍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7.4. 조별 라운드

좌측부터 조 순위대로 나열되어 있다. 굵은 글씨로 표시된 나라가 16강 진출국.

A조 덴마크 세네갈 우루과이 프랑스
B조 스페인 파라과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슬로베니아
C조 브라질 터키 코스타리카 중국
D조 대한민국 미국 포르투갈 폴란드
E조 독일 아일랜드 카메룬 사우디아라비아
F조 스웨덴 잉글랜드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G조 멕시코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에콰도르
H조 일본 벨기에 러시아 튀니지

7.5.1. 토너먼트 결과

경기 대진표 경기 <width=20%> 대진표 경기 대진표 경기 <width=20%> 대진표
A 16강 1경기
독일 1:0 파라과이
I 8강 1경기
독일 1:0 미국
M 4강 1경기
독일 1:0 대한민국
P 결승
독일 0:2 브라질
B 16강 2경기
멕시코 0:2 미국
C 16강 3경기
스페인 1:1(3:2) 아일랜드
J 8강 2경기
스페인 0:0(3:5) 대한민국
D 16강 4경기
대한민국 2:1 이탈리아
-
E 16강 5경기
덴마크 0:3 잉글랜드
K 8강 3경기
잉글랜드 1:2 브라질
N 4강 2경기
브라질 1:0 터키
F 16강 6경기
브라질 2:0 벨기에
G 16강 7경기
스웨덴 1:2 세네갈
L 8강 4경기
세네갈 0:1 터키
H 16강 8경기
일본 0:1 터키
O 3/4위전
대한민국 2:3 터키

2002 FIFA 월드컵 우승

브라질
다섯번째 우승

9. 기타

  • 스웨덴 대 세네갈의 16강전, 한국 대 이탈리아의 16강전, 터키 대 세네갈의 8강전은 골든골로 승부가 갈렸다. 세네갈은 스웨덴에 선제골을 내주었으나 막판에 동점골을 성공시킨 데 이어 연장전에서 골든골을 성공시킴으로써 8강에 올랐으나, 8강전에서는 터키에 골든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결승전을 제외하고 2라운드 최대의 빅 매치였던 브라질 대 잉글랜드 전에서 브라질은 잉글랜드의 오언에게 선제골을 내주었지만, 히바우두와 호나우지뉴가 잇달아 골을 성공시키면서 2:1로 역전승을 거두었는데, 특히 호나우지뉴가 직접 프리킥으로 작렬시킨 역전골은 이 대회 베스트 골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 이때를 기점으로 서포터즈 클럽인 붉은 악마가 유명해졌다. 2002년 당시에는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을 정도. 특히 매 경기마다 펼친 카드섹션 퍼포먼스가 매우 화제가 되었다.
    각 경기 별 카드 섹션 문구는 다음과 같다.
    • 폴란드전 : WIN 3:0
    • 미국전 : GO! KOR 16!
    • 포르투갈전 : 대한민국
    • 이탈리아전 : AGAIN 1966[49]
    • 스페인전 : PRIDE OF ASIA
    • 독일전 : 꿈★은 이루어진다
    • 터키전 : [email protected]리그[50]

  • 길거리 응원은 대단한 장관이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응원하는 모습은 모두의 찬사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51] 월드컵의 단골손님인 훌리건도 찾아볼 수 없었고, 응원 이후 스스로 쓰레기를 치우는 높은 수준의 시민의식을 보여주었다. 초상집도 월드컵 앞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몇몇 시민들이 시내버스 천장 위에 올라가는 등의 지나친 행동을 보인다거나 수많은 인파 속에서 소매치기, 성추행 등의 범죄도 벌어졌었다.

  • 사회 뿐만 아니라 군대 내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 육해공군 가리지 않고 부대 내에 큰 스크린을 설치해서 장병들에게 경기를 보여준다든지, 한국전만은 꼭 시청하게 하라는 공문이 내려온다든지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물론 훈련이나 경계 인원은 제외. 지못미.

  • 제3국가의 경기에서의 한국 관중들과 일본 관중들이 대조적이었는데, 한국 관중들은 주로 강팀보다는 약팀을 응원, 그것도 일방적이 아니라 서로 공정하게 응원하는 반면, 일본은 무조건 강팀과 인기팀 위주로 일방적인 응원을 했다. 특히 일본에서 열린 잉글랜드와 이탈리아, 브라질 경기를 보면 일본인지 유럽이나 남미인지 헷갈릴 정도인데 세네갈은 16강전을 일본에서 치렀는데, 한국에서 조예선을 할 당시 한국인들이 세네갈 국기를 흔들고 세네갈 극소수 관중들과 어울려 세네갈을 응원해줘서 일본도 그러겠지 여겼더니만 그런 거 없고 죄다 스웨덴만 응원해서 실망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한국 측에 부탁하여 응원도구와 몇몇 물품을 일본으로 공수해주기도 했다.

  • 아일랜드 축구팬들은 조예선을 일본에서, 토너먼트를 한국에서 하는 바람에 두 나라를 오가야 했다[52]. 체류비용을 걱정했지만, 한국이 일본보다 물가가 싸다는 사실을 알고 안도하기도. 거기다 지자체에서 여행객을 위해 고수부지에 텐트촌까지 마련해 줘서 체류비가 많지 않은 이들이 무척 좋아했다. 아무튼 그렇게 체류비가 남아서 '기왕 온 김에 관광 더 하고 가자'고 남은 아일랜드 팬들이 꽤 많았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아예 영어 원어민 교사로 채용되서 말뚝 박은 사람들도 있었다. 덕분에 2002년 기점으로 국내에 아일랜드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 체류비 이야기를 하자면 터키 기자들을 뺄 수가 없다. 원래 자국 성적은 잘해야 16강이라 여기고 있었기에 터키가 계속 토너먼트에서 승리하자 터키 기자들은 좋아 하면서도 체류비 문제로 난감함을 겪어야 했다.(...) 그 와중에 일본 물가가 한국보다 비싼 것을 알고 깠다.(...)


  • 스페인 대표팀은 월드컵 기간 중에 똥개한국 토종개(...)를 길렀다. 시장에서 멍멍탕(...)이 될 운명에 처한 강아지를 보고 가엽게 여긴 스페인 기자가 1만원을 주고 구해왔다고[53]. 이 누렁이는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 겨땀감독의 이름을 따서 '카마친'이라고 불렸다. 카마친은 스페인 선수들에게 몹시 사랑받았지만, 비행기 검역에 걸려서 선수들이 스페인으로 돌아갈 때 못 데려갔다고 한다[54]. 카마친에게 정이 들었던 카시아스는 공항에서 헤어질 때 눈물까지 글썽였다고.

    4강 한국전 승부차기에서 실축을 한 호아킨은 흑화한 모습이 찍히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 올리버 칸은 베지밀의 맛에 반해서 한국에 있는 내내 베지밀을 달고 살았다. 대회 끝나고 고국으로 돌아 갈 때도 한 박스 부쳐갔다고. 그리고 이후에 독일의 한인촌을 배회했다 카드라 지단의 경우 2%를 매우 좋아해서 훈련내내 물대신 2%만 마셨다.

  • 브라질 대표팀 또한 여러가지 일화를 갖고 있다. 목욕탕에 때를 밀러간 호나우도는 때밀이 아저씨가 팬이라고 하자 자신의 팬티(...)와 모자, 슬리퍼를 선물로 줬다. 카를로스는 재야 고수 호텔 직원과 탁구를 했는데, 번번이 지는 바람에 오기가 생겨서 계속 도전했다고. 그리고 브라질 대표팀은 노래방을 무척 좋아했으며, 카를로스와 호나우딩요는 당시 유행한 펌프를 즐겨했다고 한다.


  • 한국과 평가전에서 다친 지단은 부산의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병원 관계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근데 그 병원에서는 이 사진을 멋대로 광고용으로 써버렸고, 지단은 나중에 이 소식을 전해듣고 어이없어 했었다. 지단의 몸값이나 초상권을 생각해 본다면 병원측은 정말 용자짓을 한 셈이다.

  • 세네갈 대표팀 선수 파디가는 대구에 왔을 때 모 귀금속 가게에서 가족들에게 사 줄 목걸이를 고르고 있었다. 근데 파디가 를 금은방 절도를 하러 온 아프리카 노동자로 오해한 금은방 주인이 경찰에 신고, 나중에 혐의가 풀리자 무안해진 금은방 가게 주인은 파디가에게 그 금목걸이를 선물로 주었다.

  • 포르투갈 콘세이상은 호텔 미용사 아가씨에게 반해 날마다 머리를 손질하러 갔다. 콘세이상은 엄청 끈질기게 구애했지만, 결국 차이고 말았다.(...)

  • 우루과이 대표팀은 천안연수원에 베이스 캠프를 차린 후 몸도 풀겸 천안연수원의 조기축구회와 경기를 가졌다. 비록 친선경기이긴 하나 컨디션 점검 차 레코바, 몬테로, 실바등 정예 멤버가 출격했는데, 예상외로 2골이나 내주며 7-2로 승리했다. 참고로 한국국가대표팀도 우루과이 상대로 아직 2골을 넣어본 적이 없다.
    우루과이 대표팀은 연수원의 미니 냉장고를 매우 탐냈기에 삼성에서 그들의 고국길에 선수 전원에 미니 냉장고를 선물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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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PG image (Unknown)]

  • 데이비드 베컴으로 위시한 스타 플레이어들의 헤어 스타일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베컴의 모히칸풍 헤어스타일(일명 닭벼슬)은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며 누구나 따라하는 간지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호나우두의 뭐라 설명하기 힘든 머리(일명 다리미)는 만인에게 큰 웃음을 주며 월드컵이 지구촌 축제가 되는데 이바지하기도 했다.

  • 대회 공식 주제가는 미국 가수 아나스타샤의 Boom. 리키 마틴이 불러 대히트했던 98월드컵의 'La Copa De La Vida'의 인기를 이어갈 거라고 기대되었지만 개최국내 반응은 썰렁 그 자체…. 다들 기억하겠지만 클론의 월드컵 주제가들과 윤도현 밴드[55]의 ' 필승 코리아'만 울려퍼졌던 2002년 여름이었다.(국외는 유럽과 대만에서 리키 마틴만은 못하지만 그럭저럭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아나스타샤는 다음해 방암에까지 걸렸지만 다행히 치료를 계속하며 아직까지 잘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이게다 그 해 펠레눈길 저주에 걸렸기 때문이다. 버틴게 용하다. #



(Boom M/V)

그리고 한/일 전용 주제가로 브라운 아이즈, 박정현, 소웰루, 케미스트리가 부른 Let's get together now가 있지만 이 역시도 시망. 참고로 Let's get together now는 1945년 광복 이후, 지상파 방송에서 일본 가수가 부르는 일본어 노래가 방송된 첫 사례이다.

youtube(OqVNS9Khrjk)
youtube(27F4nyUlz0U)

  • 완전 시망한 주제곡에 비해 그리스 작곡가 반젤리스가 한국의 아리랑과 사물놀이, 일본의 전통 북 소리를 조합해서 만들어냈다는 공식 입장가(入場歌) 'Anthem'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Anthem 전곡) # 리믹스 홍보영상

  • 또한 테마곡 중 하나인 조수미의 champions(챔피언) 또한 대호평을 받았다. 이 때문에 반젤리스의 입장가와 함께 2002년 월드컵 관련 영상의 단골 bgm으로 사용되고 있다.[56]



  • 대회 막바지인 29일 제2연평해전이 발발하였다.

  • 여기에 더욱 충격을 준 일이 있었다. 한국-포르투갈전이 있던 날 MBC 뉴스데스크에서는 각계의 반응을 다뤘는데 그중에는 해군 2함대의 반응도 살피고 인터뷰도 했는데 인터뷰에 응한 인물중 한명이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윤영하 소령(당시계급 대위)이었다.
1분에서부터 윤영하 소령과의 인터뷰가 시작된다.[57]
이로부터 16일 뒤에는 이들의 생전 응원 장면을 취재한 내용을 유족들에게 공개한 장면이 보도되었다.

  • 2002년 월드컵 16강 진출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중 미필자들에 한해 병역혜택을 받았다. 정확히 말하면 인천 학 경기장에서 포르투갈을 꺽고 16강 진출이 확정되었을때 김대중 전 대통령이 라커룸으로 들어와 선수들을 축하해주었는데 당시 주장이었던 홍명보가 "선수들 고생했는데 병역헤택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 했다. 대통령은 "생각해 보겠다."라고 했으며 이후 선수들에게 병역혜택이 주어졌다.[58] 많은 사람들이 4강 진출로 병역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하는데, 16강전이었던 이탈리아 전과의 결과는 상관없이 16강 진출 기념으로 병역혜택이 주어졌다. [59]

10. 결과

순위 국가 경기 득실 승점 비고
1 브라질 7 7 0 0 18 4 +14 21 우승
2 독일 7 5 1 1 14 3 +11 16 준우승
3 터키 7 4 1 2 10 6 +4 13 3위
4 대한민국 7 3 2 2 8 6 +2 11 4위
5 스페인 5 3 2 0 10 5 +5 11 8강
6 잉글랜드 5 2 2 1 6 3 +3 8 8강
7 세네갈 5 2 2 1 7 6 +1 8 8강
8 미국 5 2 1 2 7 7 0 7 8강
9 일본 4 2 1 1 5 3 +2 7 16강
10 덴마크 4 2 1 1 5 5 0 7 16강
11 멕시코 4 2 1 1 4 4 0 7 16강
12 아일랜드 4 1 3 0 6 3 +3 6 16강
13 스웨덴 4 1 2 1 5 5 0 5 16강
14 벨기에 4 1 2 1 6 7 -1 5 16강
15 이탈리아 4 1 1 2 5 5 0 4 16강
16 파라과이 4 1 1 2 6 7 -1 4 16강
17 남아프리카 공화국 3 1 1 1 5 5 0 4 1라운드
18 아르헨티나 3 1 1 1 2 2 0 4 1라운드
19 코스타리카 3 1 1 1 5 6 -1 4 1라운드
20 카메룬 3 1 1 1 2 3 -1 4 1라운드
21 포르투갈 3 1 0 2 6 4 +2 3 1라운드
22 러시아 3 1 0 2 4 4 0 3 1라운드
23 크로아티아 3 1 0 2 2 3 -1 3 1라운드
24 에콰도르 3 1 0 2 2 4 -2 3 1라운드
25 폴란드 3 1 0 2 3 7 -4 3 1라운드
26 우루과이 3 0 2 1 4 5 -1 2 1라운드
27 나이지리아 3 0 1 2 1 3 -2 1 1라운드
28 프랑스 3 0 1 2 0 3 -3 1 1라운드
29 튀니지 3 0 1 2 1 5 -4 1 1라운드
30 슬로베니아 3 0 0 3 2 7 -5 0 1라운드
31 중국 3 0 0 3 0 9 -9 0 1라운드
32 사우디아라비아 3 0 0 3 0 12 -12 0 1라운드

11. 대회 이후

2000년대 초반 들어 J리그에 스타 선수들을 빼앗기며 침체기에 들어섰던 K리그는 월드컵 이후 축구 붐에 힘입어 다시 과거의 영광을 되찾게 된다. 물론 월드컵을 위해서 지었던 10개의 최신식 구장도 인기에 한 몫했다. 올스타팀에 선정된 파이 외잘란도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하기도 했고, 하지만 4강이라는 성적은 한국 축구에 너무 큰 기대를 갖게 만들었고 이후 유럽 축구의 인기가 많아지고 한국 축구가 연달아 병크를 내자 한국 축구에 실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하는데 일조한다.[62]

이 당시 한국대표팀은 미래를 위해 유망한 청소년 선수 4명을 훈련 파트너로 대표팀에 합류시켰다. 정조국, 여효진, 최성국, 염동균이었는데, 정조국과 여효진은 이렇다할 성장을 보이지 못했고, 최성국과 염동균은 승부조작질로 한국 축구계에 먹칠을 가했다.(...)

월드컵 수익금은 18억달러(약 1조2960억원)로 TV 중계권료가 10억8000만달러(약 1조2960억원)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후원업체로부터 들어오는 돈도 3억달러(약 3600억원)나 된다.

그러나 FIFA가 엄청난 수익을 올린 것과 달리 공동개최국인 한·일 양국의 흥행은 기대에 못미칠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원인은 공동개최를 하다보니 경기장 건설에 막대한 비용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10개 경기장을 신축하는데 2조원에 육박하는 돈을 쏟아부었다. category=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5&article_id=0000109110 #

일본도 경기장 신축과 보수에 3조원이 넘는 재정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재주는 개최국이 부리고 돈은 FIFA가 챙긴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게 사실이다. 그리고 그렇게 탈 아시아를 외쳤지만, 대한민국의 기대 이상의 선전과 아시아 팀들의 상향평준화 속에 묻혀서 물건너갔고 J리그의 파이를 키우는데 몰두하게 되었다.

2009년 열린 FIFA 총회에서 FIFA는 더 이상의 공동개최는 없다는 선언을 냈고, 이는 이 월드컵을 최초이자 최후의 공동개최 대회로 만들게 되었다. 하지만 이 원칙은 2018년 월드컵 개최에서 폐기되어 벨기에-네덜란드(원래 룩셈부르크도 같이 묶어서 베네룩스 3국으로 하려 했다고 한다.), 포르투갈-스페인이 공동개최를 추진하였다. 투표 결과 둘 다 러시아에 밀려 떨어지기는 했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 월드컵은 피파에서 "개별개최로 신청된 나라를 임의로 묶어서 공동개최로 만들어버린" 것이므로 처음부터 공동개최로 신청하는 것과는 이야기가 다르기는 하다.

FM에서는 2002 FIFA 월드컵은 대한민국에서만 개최되었다고 나와있다. FM의 전신이자, 2002년 당시 발매된 'CM(챔피언쉽 매니져)01/02 or 2002 K리그'에서는 공동개최라고 되어 있지만 대다수 중요한 경기들이 실제와는 달리 일본 경기장에서만 진행되었다.(개막전과 심지어 3-4위전과 4강 전 경기가 일본 개최) 처음 있었던 공동개최였기에 시스템상 지원이 어려웠던것이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201x년 월드컵은 북유럽 몇개 국가가 공동개최한다고 뜬다. 흠좀무.

월드컵이 끝나고 안정환은 이탈리아를 상대로 골든골을 넣었단 이유로 어이없게 AC 페루자에서 방출당해 커리어가 밑바닥을 치기 시작했다.(…)[63] 그리고 이탈리아 의회에선 대한민국과 국교를 끊어야되는거 아니냐(…)는 잉여스런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는 루머가 있다[64]. 남아공 월드컵 조추첨 직전에도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한국과 재대결하고 싶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65]을 보면 아직까지도 앙금이 남아 있는 듯.[66]

이 대회까지는 전 대회의 우승국이 개최국과 마찬가지로 예선 없이도 참가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대회의 흥행을 위한 것이었는데 이게 여러모로 논란이 많았다. 논란의 핵심이 되는 부분이 '전 대회 우승국이 그 전력을 4년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였다. 결국 이 대회에서 프랑스가 1라운드부터 처참하게 개발살이 났다. FIFA에서는 '전 대회 우승국이 그 전력을 4년간 계속 유지하지 못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이 대회를 끝으로 전 대회 우승국의 자동 출전권을 폐지해 버렸다...라고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지만 사실 이 대회가 개최되기 전에 이미 전 대회 우승국의 자동 출전권은 폐지된 상태였다.[67] 그래서 전대회 우승팀 대신 개최국이 개막전을 치르게 되어 전 대회 우승팀이 개막전에서 고전한다는 징크스도 사실상 사라지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4강 진출의 분위기를 타고 정몽준 축협 회장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노무현 후보와 단일화했다. 그리고 돌연 노무현 후보 지지를 일방적으로 철회[68]해서 노무현 후보의 당선에 혁혁한 공을 세운다.(...)

서양 축구팬들한테는 안좋은 의미로 유명하다, 이유는 유튜브나 인터넷에서 지금까지 또는 파울, 매수 모음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일본 우익이랑 중국, 베트남, 기타 아시아 국가때문(...)

10년 후 2012년 한국에서는 2002년 월드컵 10주년을 맞이하여 K리그 올스타전을 2002년 당시의 대표팀과 2012년 현재의 K리그 올스타와의 경기로 꾸몄다. 흥행도 성공했고, 그에 걸맞는 다양한 이벤트들이 많았던 알찬 올스타전이었다. 10년전 현역 선수들이었던 멤버들이 감독이나 코치, 혹은 베테랑이 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 어딘가 감회가 새롭다. 대작 애니메이션이 종료된 뒤 후일담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69]

이 대회에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엔트리에 이름만 올리고 실제로는 그라운드에 얼마 서있지도 못한 카카는 브라질이 이 월드컵에서 우승한 덕에 FIFA 월드컵에 출전한 모든 선수들 중 최대의 행운아가 되었다. 겨우 20분 정도만 뛰고 월드컵 우승 멤버가 되었으니...

이경규가 간다가 2002 월드컵 특집방송으로 부활하여 좋은 반응을 얻자 이후 한국 지상파 방송 3사는 다음 대회인 독일 월드컵부터 기존의 예능 프로그램의 월드컵 특집은 물론이오 아예 월드컵 특집예능을 런칭하는 등 월드컵 시즌에 맞춰서 특집방송을 경쟁적으로 편성하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이 대회 본선 16강전~4강전에서 대한민국과 대결한 나라들이 훗날 개최된 월드컵에서 공교롭게도 대결한 순서대로 모두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16강전 상대 이탈리아는 다음번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8강전에서 대한민국과 대결한 스페인은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사상 첫 우승을 달성했으며, 4강전에서 대한민국과 대결한 독일 또한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럼 2018 러시아 월드컵터키가 우승인가? 혹은 현실성을 좀더 감안하여 포르투갈이 될 지도? 그만큼 당시 대한민국이 우승후보들 줄줄이 꺾으며 올라갔었단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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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마라도나와 펠레는 서로 사이 안좋기로 유명하다. 20세기 최고 축구선수선정을 두고 둘이 자존심 대결을 벌여 결국 피파는 펠레, 마라도나 둘다 최고 선수로 선정하면서 둘이 굉장히 기분나빠 했다.허정무에게 맞은건 잊었었나보다
  • [2]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로부터 8년 후인 2010년에 그렇게 응원했던 국가와 대결하게 된 것은 참 아이러니.
  • [3] 아벨랑제는 아예 한국은 전쟁위기가 있으니 일본이 개최해야 한다는 인터뷰라든지, 자신은 매해 휴가를 일본으로 간다고 자랑한다든지 너무나도 노골적인 일본 지지를 보여줬다.
  • [4] 실제로 일본의 월드컵 본선 첫 진출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이었다. 그리고 2022년 월드컵의 개최지는 중동의 카타르(…).
  • [5] 당시 유럽측 집행위원들은 조앙 아벨란제 회장의 장기집권에 불만을 가지고있던 터였다.
  • [6]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a_match&ctg=news&mod=read&office_id=144&article_id=0000007957
  • [7] 88올림픽 유치 당시 경쟁 상대가 비교적 만만한 나고야였고 일본 국내 여론도 '도쿄에서 했는데 또?'식으로 시큰둥 해서 일본 측이 맥이 빠져있었던 반면 02년 월드컵 유치는 일본도 필사적이었다는 차이가 있다. 다만 올림픽 유치 때와 비교하면 한국의 위상이 달라진 상태였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 [8] 그런데 이후에도 포스터로 장난질까지 쳤다. 파란색 바탕에 Korea라는 폰트를 파란색으로 칠해서 사실상 '2002 FIFA World Cup Japan'이라 알아보게 만든 것.찌질한 놈들 그런데 12년 후 일본은 진짜 교과서에서까지 한일 월드컵을 삭제해버렸다. 역사까지 바꾸고 싶을정도로 싫었냐!?
  • [9] 다만 아시안컵 같은 경우는 1988년 대회 준우승 이후로 12년만에 4강(3위)까지 갔고 4년전 2:6 대패를 안겨준 이란을 8강전에서 이겨 작은 설욕을 했다는 점도 있다.(참고로 이란 감독이 한국전 패배로 스스로 사임했다.) 하지만 결과와 달리 조예선에서 1승 1무 1패로 가까스로 와일드카드 8강(당시에는 12개 나라가 참가했기에 가능)으로 진출했기에 비난도 컸다.
  • [10] 엄밀히 말하면 16강이 아닌 2라운드(조별리그 통과) 진출. 참가국이 16개국이었던 시절에는 본선 참가만 해도 16강이었다.
  • [11] 이 기록은 2010년 개최국인 남아공이 16강도 가지 못하고 탈락하면서 깨졌다.
  • [12] 당시 철의 장막이 붕괴함으로 인해 동구권 축구인들의 가성비가 좋았다.
  • [13] 당시 협상 담당이었던 가삼현 KFA 국제부장의 회고에 따르면, 히딩크는 감독 제의를 받자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내가 선수들에게 아무 이유 없이 나무에 오르라고 하면 그것을 용인하겠는가?"라고 물었고 가삼현 부장이 그것을 존중하겠다고 말하자 두말않고 감독직 제의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 [14] 물론 농담이니까 취소선을 그어놓은 것이다. 개인적인 여가생활을 비난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으며, 스트레스 관리 또한 프로의 당연한 자세다. 4강 갔으니 농담으로 말할 수 있는거지, 누구도 16강 갔으면 땅 산거 그까이꺼 가지고 뭐라 했을까 다만, 그 당시에는 아직 스포츠에서도 근엄함을 미덕으로 여기던 일본군스러운 풍토가 남아 있었기에 히딩크의 이러한 공사 구분을 좋지 않게 여기는 여론도 적지 않았다. 더군다나 당시는 아직 대표팀이 재정비된 성과를 보이기 전이었다.
  • [15] 추첨자 선정 통보를 받았을때 느낌을 묻자 "처음에는 이렇게 큰 행사인 줄 몰랐다. 국제적인 행사인 것을 알게 된 뒤 깜짝 놀랐다."는 송혜교의 인터뷰 내용 때문에 이런 논란은 더욱 도마위에 오르게 되었다.
  • [16] 대신 차범근은 2003년 12월에 열린 2006 독일 월드컵 대륙별 조추첨 행사에서 아시아 대표 조 추첨자로 참석하여 약간의 한풀이는 했다.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 total_id=1809830&cloc=joongang%7Carticle%7Crelated_news
  • [17] 행사의 남자 MC도 재미교포 릭윤이 맡았다.
  • [18] 당시의 포르투갈 대표팀은 98 프랑스 월드컵에서 한국을 5:0으로 우주관광을 보낸 네덜란드 대표팀에 버금갈 정도였다. 게다가 포르투갈은 유럽 예선에서 바로 그 네덜란드를 탈락시키고 조1위로 예선을 통과했다.
  • [19] 다만 골드컵에서 패배는 미국의 눈을 속이기 위한 연막작전이었다는 것이 훗날 이용수 위원장의 회고에서 밝혀졌으며 그에 앞서서 벌어진 미국과의 평가전에서 한국이 승리한 적도 있기는 했다.
  • [20] 참고로 1년전인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선 5:0으로 프랑스에게 안방에서 능욕(2000년대 와서 이 대패를 당해본 적이 없다.)당하던 거와 달리 1년만에 벌인 재대결에선 전반까지 한국이 2:1로 프랑스를 역전해나가기에 이르렀다. 선취골은 트레제게가 기록했으나, 그 뒤 10분만에 박지성이 동점골, 설기현이 전반 41분경에 역전골을 성공시켰다. 그런데 후반전에 명백한 프랑스 선수의 페널티 에어리어에서의 핸들링 반칙이 일어나고 공은 골라인 바깥으로 나갔으나,주심은 페널티 킥이 아닌 코너킥을 주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지단은 이 경기에서 부상을 당했다. 이는 이후의 경기에서 프랑스에 엄청난 악재를 불러오게 된다.
  • [21] 영남권에만 대구,울산,부산 세 곳이 있어서 포항까지 주게 되면 지역 편중 논란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 [22] 당초 한국에서는 특별시+광역시에 7개 경기장을 건설하는 것으로 계획했지만 일본과 비율을 맞추고자 10개로 늘렸고 추가된 수원, 전주, 서귀포는 국고지원을 받지 않는 조건으로 경기장을 유치했다.
  • [23] 2008년 3월 5일부로 '대구스타디움'으로 정식 명명되었다.
  • [24] 당초 전국체전용으로 기존 구장을 신축 또는 리모델링하려고 했는데, 월드컵 유치로 계획을 수정하여 경기장 규모를 키웠다. IMF 사태로 서울 축구전용구장 신축 반대 여론이 제기되면서 한때 월드컵 개막전 장소로 거론되기도 했다.
  • [25] 월드컵 기간 중에는 본 관중석과 그라운드 사이에 가변좌석을 설치하여 축구전용구장으로 운영했지만, 월드컵이 끝난 후 가변석을 철거하고 육상트랙을 설치해서 종합운동장으로 변했다. 당초 설계를 종합운동장으로 했다고.
  • [26] 가변석 철거 후 현재는 40,245석.
  • [27] 문학과 마찬가지로 한때 월드컵 개막전 장소로 거론되기도 했다.
  • [28] 위치가 서귀포여서 '서귀포 경기장'으로 통칭되기 쉽지만 정식으로는 제주를 달고 있다.
  • [29] 이후 가변석 철거, 보수 공사로 인해 2013년 현재는 29,971석이다.
  • [30] 명명권 채택으로 2005년부터 닛산 스타디움으로 명명되었다.
  • [31] 광주와 유사하게 월드컵 기간중 가변좌석을 활용하여 5천석 정도를 늘렸다. 현재도 축구 경기에는 사용중이나, 광주와 달리 처음부터 육상경기장 명목이었다.
  • [32] 명명권 적용으로 2014년 이후 '얀마 스타디움 나가이'.한일 월드컵에 사용된 경기장 중 가장 먼저 완공되었다.
  • [33] 명명권 적용으로 2007년 이후 '도호쿠전력 빅 스완 스타디움'.
  • [34] 야구장-축구전용구장 간 전환이 가능한 구조이다.
  • [35] 명명권 적용으로 2010년 이후 '오이타은행 돔'.
  • [36] 명명권 적용으로 2013년 이후 '노에비어 스타디움 고베'. 덧붙여 이유는 불명이지만 FIFA의 경기 기록에는 2007~2012년 사용된 스폰서 명칭 '홈즈 스타디움 고베'로 기재되어 있다. FIFA는 원래 경기장의 스폰서 명칭을 인정하지 않는다.
  • [37] 개최 당시 6만석이 넘었지만 역시 가변좌석을 철거하여 현재의 규모로 축소되었다.
  • [38]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개최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9.11 테러 이후 유사한 테러 발생을 우려하여 취소하였다고 한다. 도쿄는 당시 국립경기장의 노후화 및 시설 부족(예를 들어 관중석 중 지붕이 덮이는 면적이 20%도 되지 않으며, 관중석도 4강전 등 주요 경기 용도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으로 신규 경기장이 필요했는데, 이에 따라 재정 및 혼잡 등을 사유로 입후보하지 않았다. 애초에 일본 내 단독 개최지 후보로도 꼽히지 않았다.
  • [39] 비록 도쿄에선 월드컵경기장이 없었지만 사이타마, 이바라키, 요코하마 경기장은 도쿄 근교 도시들로 도쿄와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 [40] 그럴 만도 한것이 대표팀 조별리그 3경기가 열린 곳은 부산, 대구, 인천으로 모두 종합운동장이었다…
  • [41] 2위 에콰도르와 6위 콜롬비아의 승점 차이가 겨우 4점이었다. 3위 브라질과 6위 콜롬비아의 차이는 겨우 3점. 한 경기만 더 졌어도 월드컵에 못 올라올 수도 있었다!
  • [42] 잉글랜드에 무려 1:5로 대패하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 [43] 더 나아가서 2002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평소에 열리는 시기보다 약 열흘정도 앞당긴 5월 15일에 열렸었다.
  • [44] 이때 중국과 평가전에서 2:0으로 이겼다. 다행히 소림축구에 피구나 파울레타 발목이 아작나는 일은 없었지만, '중국을 이겼으니 비슷한 한국도 간단하겠지'...라고 단단한 착각을 하고 만다. 한중간 역대전적도 안 봤던 모양이다.
  • [45] 이 말도 안되는 짓은 포르투갈 전력 탐색관의 불성실 때문이다. 단순히 유럽내의 자료만 봤기에 이런 병크를 터트린 것. 프랑스만 해도 월드컵 직전 한국과 평가전에서 진땀승을 거두고 '이놈들 1년 사이에 엄청강해졌다'고 놀랐는데, 정작 한국과 조예선을 치루는 포르투갈은 이러고 있었으니...
  • [46] 미국에게 발렸을 때만 해도 선수단이 긴장을 탔지만, 폴란드를 4:0으로 바른 다음에 다시 기강이 헤이해졌다고. 거기다 감독은 안그래도 부실한(위에 설명된...) 데이터가 담긴 노트북이 고장이 났지만 고쳐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 [47] 신빙성이 있냐 없냐 시끄러웠는데, 후에 홍석천이 방송에서 당시 포르투갈선수들에게 사인받은 티셔츠를 공개하며 사실인것으로 밝혀졌다.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3&no=855416 폴란드만 해도 호텔 앞 편의점에서 캔맥주 마시며 노가리 까더라는 축구팬들의 증언이 있었을 정도니...
  • [48] 백남준작 '동방으로 부터'
  • [49]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당시 북한이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진출한 것을 의식한 문구. 붉은 악마 측에서는 깊은 생각 없이 적은 건데, 문구를 미리 발견한 이탈리아 측에서는 항의까지 할 정도로 격하게 반응했다고 한다.
  • [50] See you at K-리그. 월드컵 끝났으니 K-리그에서 보자는 뜻이다.
  • [51] 이에 대한 일화로 90대 할머니가 3.1 운동 이후 모든 국민이 대한민국을 외치는 것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 [52] 조예선을 치른 일본에는 약 3만, 그리고 한국에서 열리는 16강 전에는 8천명이 방문했다
  • [53] 그냥 시장 아줌마가 키우던 누렁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멍멍탕 취재를 했던 스페인 기자가 오해를 한 것이라고...
  • [54] 하지만 나중에 알려지기로 몇 개월 후에 카마친을 그리워한 모리엔테스가 사람을 보내서 통역관이 맡아서 기르고 있던 카마친을 정식으로 데려갔다고 한다. 참고로 이 통역관은 스페인 선수들과 함께 PC방에 놀러가기도 했다.
  • [55] 이후 윤도현은 축구팬들 입장에서 실망스런 행보를 보였다. 2002년 월드컵 특수로 인기를 한 몫 따낸 다음에 독일 월드컵에선 깔끔히 등을 돌렸던 것. 본인은 밴드 이미지가 월드컵이나 축구 관련으로 굳혀질까 그랬다는데...축구팬들 입장에선 이 인간이 미나인지 뭔지 하는 여자 가수와 다를 게 없게 되었다.
  • [56] 그런데 MBC에서는 한때 이 노래를 국가대표팀 경기 중계에서 득점이 나올 때마다 삽입하여 빈축을 샀다.
  • [57] 주의깊게 보면 윤영하 소령뒤로 참수리 357호정이 찍힌 구명조끼를 입은 승무원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 [58] 당시 많은 기자들과 카메라가 있는 데서 요구를 한것이었기 때문에 거절하기도 힘들었다. 또한 16강 진출로 많은 사람들이 "그정도 혜택은 있어야 않겠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도 해서 병역혜택이 주어지고 난후 말이나오는 일은 없었다.
  • [59] 그리고 이 병역혜택은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4강 진출 기념으로 야구선수들에게 혜택이 돌아갔으며 이후 다른 종목의 반발로 월드컵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병역혜택은 사라졌다.사실 사라지는게 맞지..
  • [60] 5골을 기록한 독일의 미로슬라프 클로제와 브라질의 히바우두는 공동 2위를 기록했다.
  • [61] 마의 6골 벽을 깨뜨린 호나우두도 MVP감으로 손색이 없었지만 기자단 투표가 호나우두가 두 골을 넣기 전인 결승전 하프타임에 열렸기 때문에 칸이 수상자가 되었다. 이 대회 이후로 MVP 투표가 결승전 종료 이후에 행해지게 되었다.
  • [62] 하지만 축구저변 자체는 꾸준히 성장했다. 대회 전에 10개 팀이 고작이던 K리그는 현재 1, 2부 합쳐 22개 팀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유소년 축구도 상당히 활성화 되었다. 그리고 실망감을 느낄 수 있는 자체가 관심이 있다는 소리다. 일부 기레기들 말대로 그들만의 리그나 그들만의 종목이었다면, 이미 한국 축구는 프로든 아마든 진작에 망하고도 남았다.
  • [63] 1994년 미국 월드컵 때는 브라질의 키퍼 타파렐이 비슷하게 이탈리아에서 쫓겨났다. 안정환은 골든골이나 넣었지만, 타파렐은 승부차기에서 선방하지도 않았다. 로베르토 바죠가 홈런 지른거다.(...)
  • [64]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축구와 관련해서 우민정치를 행하고 있기에 이탈리아의 반응이 더 격앙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 [65] 실제 말디니는 자신의 국가대표 은퇴경기때 상대할 팀을 한국으로 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천수에게 대갈통이 차인 것이 엄청 분했던 모양.
  • [66] 2006 독일 월드컵 스위스전에 패배한 우리나라의 느낌이 이탈리아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그 이상일지도. 이들에게는 축구는 전쟁이다!
  • [67] 프랑스의 무승 탈락의 충격이 커서 잘 언급되지 않지만 아르헨티나는 전 대회 우승 후 다음 월드컵 개막전을 모두 패배하였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 개막전에서는 벨기에에 패했고,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의 개막전에서는 로저 밀러가 이끄는 카메룬에 패배하며 체면을 구겼다.
  • [68] 월드컵에 편승해서 새치기 하듯이 여당의 대선후보 자리를 꿀꺽하려 했으나 온갖 소동 끝에 이루어진 여론조사 방식의 후보단일화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에 패배하여 대권도전의 꿈이 물건너 갔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를 하루앞둔 날의 유세에서 노후보가 지나가는 말로 자신이 아닌 정동영, 추미애 당시 국회의원을 차기 지도자로 언급하자 마음이 상했는지 삐져서 곧바로 유세도중 자택으로 돌아가 문을 걸어잠그고 그날 저녁 만인을 황당케 한 지지철회를 언론에 공표한다. 이에 노후보의 지지층은 결집하게 되고 부동층의 표심동정표도 상당수 노후보에게 향했다.
  • [69] 이 시합에서 젊은 것들(...)이 어르신들(...) 골 좀 넣겠다는데 필사적으로 막았다. 신광훈은 소속팀 감독인 황선홍을 악착같이 막아서(...) 경기 중에 황선홍 감독이 째려보기도. 그리고 소속팀으로 돌아가서 뒤끝이 작렬했었다.(...) 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670378&rrf=n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