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irected from page "시드니 올림픽"

E,AHRSS

2000 시드니 올림픽

last modified: 2014-09-21 16:19:43 Contributors

역대 하계올림픽
26회 27회 28회
1996 애틀랜타 올림픽 2000 시드니 올림픽 2004 아테네 올림픽

개최일 2000년 9월 15일 ~ 10월 1일
개최지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Contents

1. 개요
2. 유치전
3. 대회 진행
4. 한국 대표팀
4.1. 축구 대표팀의 흑역사


1. 개요

1956 멜버른 올림픽 이후 두번째로 오세아니아에서 개최된 대회.
44년 만에 호주에서 다시 개최된 올림픽으로써, 20세기를 닫는 올림픽이다. 일반적으로 21세기 첫 올림픽으로 아는 경우가 많은데 잘못 아는 거다. 21세기의 시작은 2000년이 아니라 2001년이다. 다만 천년 단위의 숫자가 2로 바뀐 후 열린 첫 올림픽이라 흔히 새천년 첫 올림픽으로 많이 부른다. 어쨌든 천년 전환기에 개최된 대회로서 관문 역할을 한 결정적 의미는 크다.

2. 유치전

2000년 올림픽 유치 투표 과정
국가 도시 1차투표 2차투표 3차투표 4차투표 결과
호주 시드니 30 30 37 45 유치 선정
중국 베이징 32 37 40 43 유치 탈락
영국 맨체스터 11 13 11 유치 탈락
독일 베를린 9 9 유치 탈락
터키 이스탄불 7 유치 탈락

1993년 9월 24일 모나코 몬테카를로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개최지가 결정되었다. 개최지 투표에서 1,2,3차 모두 중국 베이징이 1위를 하다가 시드니와 최종 결선에서 43:45로 아슬아슬하게 시드니가 채택되었다. 투표 결과를 보면 알겠지만, 3차에서 떨어진 영국 맨체스터의 표가 같은 영연방 국가인 호주 시드니로 몰린게 가장 큰 이유. 물론 중국은 이를 식민주의자들의 음모라느니, 아무 문제도 없는 인권논란에 따른 것이라고 강하게 규탄했다. 너나 잘하세요.

사실 인권 문제도 영향을 아주 안 미쳤다고 보기는 어려운데, 1993년이면 천안문 6.4 항쟁(천안문 사태)이 일어난지 겨우 4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아무리 중국이 떠오르는 강국이고, 상업적인 이익이 가능하다고 해도 이런 요소가 완전히 기억에서 지워지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반대로 시드니는 꾸준히 고정표를 확보한 후, 마지막에 영연방의 표 및 중국에 대한 묘한 거부감이 있는 나라들의 표를 잘 흡수했던 것이 컸다. 또, 남반구에서 오랜만에 올림픽을 열어야 한다는 명분도 나쁘지 않았다.

3. 대회 진행

환경 친화적인 올림픽이기도 하였다. 사격장 양궁장을 가건물로 지었으며, 버스도 천연가스를 연료로 쓰는 버스로 운행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올림픽 건물 있는 곳까지 시티레일 전철 노선이 신설되어 운행을 개시했으며, 2014년 현재도 멀쩡히 잘 다니고 있다. 당연히 전동차를 투입해서 운행했으며 건설 자체도 최대한 환경을 배려해서 기존 노선을 최대한 활용하고 일방향으로 운행하게 하여 공사비를 절감하는 등 신경을 많이 썼다. 그러나 공기수송

위에 적힌대로 시설 운영면에서는 꽤나 좋았던 대회였지만, 약물파동과 심판들의 판정 문제가 제기되었고 한국도 미국과 경기했던 야구 준결승전에서도 말도 안되는 판정 문제를 겪기도 하였다. 또한 불친절한 자원봉사단 또한 문제가 되었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적자를 기록했던 1976 몬트리올 올림픽과는 달리 1억 달러의 적자로 선방했다.

사상 처음으로 남북한이 동시에 입장하였고, 이때부터 한반도기가 올림픽 대회에서 처음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개최전 독립해서 신생국이 된 동티모르가 이 대회에 최초로 참여했으며, 호주 원주민 출신 캐시 프리먼이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여담으로 프리먼은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호주 총리를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분노어린 비난을 하기도 했다.

이번 올림픽부터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경기)와 태권도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휠체어 레이싱과 체스가 시범종목으로 채택되었다. 태권도의 경우는 첫대회에서부터 체급제한[1]이 걸려있었지만 준결승 패자 간 동메달 결정전까지 진행을 하였다. 이것은 다음 올림픽인 2004 아테네 올림픽까지 이어졌으며, 2008 베이징 올림픽부터는 패자부활전 승자와 준결승 패자 간에 동메달 결정전을 치러 두 명에게 동메달을 주는 형식으로 변경이 되었다.

수영에서는 화젯거리가 두 가지 있었는데, 첫번째는 적도 기니의 흑인 선수 무삼바니의 독특한 수영 폼 + 막장경기#를 들 수 있다.개헤엄 전설[2] 자세한건 영상을 보면 한번에 감이 잡힐것이다. 그리고 이안 소프가 자유형 400m 계영 400m 계영 800m등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획득, 인간어뢰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여자 수구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최초의 대회이기도 한데[3], 이를 관전하던 전세계 인류가 컬쳐 쇼크를 받게된다. 경기의 특성상 몸싸움이 많이 발생하고, 그 결과 거의 대부분의 경기에서 선수들의 수영복이 벗겨지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 심지어 수영복이 아예 찢어져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사람들은 열광했고(…), 덕분(?)인지 여자 수구 종목은 이후 대회에서도 제외되는 일 없이 치러지고 있다.

한편 이번 대회에서 중국은 종합성적 3위로 뛰어오르며 종합성적 1위 미국과 종합성적 2위 러시아와 더불어서 새로운 스포츠 강국으로 부상했다.


이 올림픽에선 폐회식을 빼놓고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는데, 폐회식에서는 호주의 국민스타 카일리 미노그가 호주 대표 가수로서 폐회식 공연을 담당 하여 ABBA의 Dancing Queen을 불렀다. 노래 자체가 일단 전 세계적인 명곡임에는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인데다, 카일리 미노그의 독특하고 화려한 무대 의상과 부드러우면서도 시원시원한 안무가 곡과 폐회식 분위기와 상당히 잘 맞아 떨어져, 당시 전 세계 선수단들과 관객들의 열띤 반응을 얻었고 지금까지도 올림픽 역사상 가장 멋진 폐회식 공연으로 기록된다.소개할때 음악과 싱크로가 딱 맞는걸 보면 닭살이 돋는다

4. 한국 대표팀

한국은 이 대회에서 금메달 8개, 은메달 9개, 동메달 11개를 따냈다. 펜싱과 구기 종목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였다. 특히 유럽의 전유물이었던 펜싱에서 현 대한민국 남자 에페 국가대표팀 코치인 이상기가 에페 남자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따내고, 이어서 김영호가 플뢰레 남자 개인전 금메달을 따냈고, 메달을 따지 못하였으나 남자 에페 단체전도 4위를 기록하였다. 필드 하키에서는 네덜란드와 인상적인 경기를 펼치며 은메달을 획득하기도 하였다. 또 야구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동메달을 취득하며 이후 국제대회에서 야구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구대성은 3/4위전에서 일본 타선을 막아내며 일본킬러란 타이틀이 생겼다. 여자농구는 예선전에서 러시아를 격파했고 쿠바, 프랑스 등 쟁쟁한 팀들을 물리치고 16년만에 4강진출이라는 대업을 이뤄냈다. 비록 동메달 결정전에서 브라질에 연장끝에 패하면서 메달획득에는 실패했지만 4강에 오른것만해도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당시 미국 대표팀과의 예선전에서도 단 14점 차, 4강전에서 13점 차로 패하는 등 경기내용 면에서도 매우 훌륭했다. 레슬링심권호는 이번 대회에서 체중을 불리면서까지 2체급에서 금메달을 따는 기적을 일궈냈다.

그 외에 여자 사격에서는 강초현이 0.2점 차로 은메달에 머물렀지만, 그러고도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4.1. 축구 대표팀의 흑역사

사실 흑역사라기 보다는 운이 없다고 해야 더 마땅할 것이지만...

조별리그 2승 1패하고 광탈했다. 조별리그 1차전 스페인전 0-3 떡실신이 시발점이었다. 2차전 모로코와 3차전 칠레 경기 모두를 1-0으로 잡긴 했지만 그러고도 골득실이 마이너스가 나면서 광탈 크리. 후일 타이중 참사와의 유사성도 엿보인다. 2승 1패하고 조별리그 예선 탈락을 한 국내 최초의 사례.[4]
----
  • [1] 총 8체급이 있으나 한 국가에서는 성별로 최대 2체급, 체급당 1명씩의 선수만 참가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한국의 독식을 막기위해 만들어진 규정이지만 첫대회에서 금3, 은1개를 획득했고 베이징에서는 전부 금메달을 획득해갔다. 이 규정이 걸린 덕분에 여러국가에서 메달을 골고루 획득하는것이 가능해졌다. 비슷한 제한이 걸려 있는 종목으로 여자 역도가 있다.
  • [2] 사실 에릭 무삼바니의 경우 정식 경기는 아니고, 초청 받은 선수다. 수영 실력은 아마추어나 다름없었는데, 하필 함께 경기했던 선수 두 명이 부정출발로 실격하는 바람에 혼자 레이스를 펼친다. 남들이 기록을 위해 뛸 때 이 선수는 빠져 죽지 않으려고 수영한 셈(...) 다른 선수들이 레오타드형 수영복을 입은 반면에 혼자 독특하게 트렁크 수영복을 입고 나왔다(...) 현재는 기니의 수영 국가대표 코치로 일하고 있다.
  • [3] 참고로 남자 수구는 제2회 1900 파리 올림픽 때부터 치러지던 유서깊은 종목이다.
  • [4] 대외적으로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일본이 똑같이 2승1패로 조별리그에 탈락한 선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