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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특무전대

last modified: 2015-01-25 23:34:07 Contributors

통합 첩보부대
국 군
DIC
과거 첩보부대 HID UDU AISU  미 군 
KLO
CIA
영도유격대


Contents

1. 개요
2. 제6004항공정보대
3. 684부대
4. 공군 특수부대


1. 개요

과거에 존재한 대한민국 공군의 첩보 부대 AISU(Airforce Intelligence Service Unit). 1990년에 대한민국 국군의 각군의 첩보부대를 국군정보사령부로 통합하기 전까지 각 군별로 첩보 부대가 있었다. 이 부대 역시 육군 첩보부대인 HID, 해군 첩보부대인 UDU 등과 같이 첩보 임무를 맡았고, 북파공작원을 양성했다. 육군의 HID는 규모가 가장 컸고, 해군의 UDU는 6.25전쟁 전인 1949년 6월 창설돼 가장 오래된 북파공작대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그리고 공군의 20특무전대는 북한지역 내부에 깊숙이 침투하는 가장 강력한 북파공작을 하였다.

20특무전대는 대북정보활동을 하던 23첩보대와 25첩보대(90특무대), 그리고 국내에서 대공수사를 주로 하는 26특수수사대로 구성돼 있었다. 26수사대는 대공분야라고 하는 특수수사를 주로 했기 때문에 OSI(Office of Special Investigation)로 불렸는데, OSI의 명성이 커지다 보니 OSI를 공군의 대북정보부대로 잘못 알고있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러나 20특무전대가 대북공작 임무를 떠맡으면서 26수사대(OSI)는 오류동에서 여의도 비행장으로 옮겨고, 이로써 23첩보대와 25첩보대만 남게 되자 20특무전대는 2325부대라는 위장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2. 제6004항공정보대

美공군에서 운용하던 첩보부대로 제6004항공정보대(6004th Air Intelligence Service Squadron : AISS) 산하 제1특수전부대(일명 NICK)가 있었다(부대장 도널드 니콜스). 서울 종로구 소재 안국동에 주둔하다 작전상의 불편으로 부대를 서울 오류동으로 이전하여 특수임무 수행의 요새가 되고, 한국공군 제20특무전대 예하 제90특무대(제5392부대로 개편)와 혼성부대로 주둔하면서 대북 첩보공작업무를 수행하였다. 美공군 6004 정보부대는 美제 5공군의 지원을 바탕으로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한국공군 제5392특무대와 혼성부대로 편성하여 일명 공군 특무대로 불리거나 네코부대(니콜라스 부대)라고도 불렸다.


6004첩보부대는 6.25 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10월 일본 군마겐 오다시 미군 기자내에 공작원 교육대를 설치하고 차출된 교육대원을 원정교육실시하는 한편, 인천지역앞 도서 제부도에 교육대를 설치하여 공작원 교육을 실시해, 엄청난 수의 북파공작원을 적진에 투입시켜 첩보 공작을 전개 했다. 강화지구 Howk Unit(호크부대) 부대장 김재원(로버트 김), 연평지구 Owl Unit(아울부대)부대장 홍순배, 교동도 지구 Eagle Unit(이글부대) 부대장 김동현을 단위 부대로 편성하여 운영하면서 북파공작 업무를 전개 했다.

美 제6004항공정보대가 1953년 제6006항공정찰정보대(6006th Air Reconnaissance and Intelligence Squadron : ARIS)로 개편되었고, 1954년 9월 극동공군이 일본으로 철수함으로서 제6006부대도 같이 철수하자, 대한민국 공군의 20특무전대가 6006부대의 임무를 떠맡았다. 이런 이유로 서해상에 있던 많은 섬들이 공군 관할로 넘어왔는데 이중 하나가 실미도였던 것이다. 여담으로 한국전쟁 당시 6004부대 예하 연평 용매분견대에 배치돼 특수임무를 수행하고, 휴전 후 부대가 해체되어 현지 입대해 제20특무전대에서 근무하다 전역을 하신분도 계시다.기사 내용은…

3. 684부대

2325부대는 서해 5도를 비롯한 여러 곳에 대북공작부대를 유지하며 유사시 공군 작전에 필요한 대북정보를 수집하는 활동을 벌였다. 그런 와중인 1968년 북한군의 대남공작부대인 124군부대가 청와대를 습격하는 1.21사태가 일어났다. 북한 무장공작원 31명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휴전선을 넘어 서울까지 진출한 이 사건은 정권 핵심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당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각 군에 기존의 첩보부대와는 별도로 후방에 침투해 김일성 주석 등 수뇌부 암살을 시도할 새로운 형태의 북파공작 기획을 지시한다.

이와 함께 육군 HID가 AIU (Army Intelligence Unit)로 개편되어 설악개발단이라는 위장명칭을 사용하는 등 편제가 정규화됐고, 해병대도 별도의 첩보부대를 창설했다(1975년 해군 첩보부대로 통합된다). 조천성[1] HID대장(당시 준장)이 훈련을 책임졌던 새로운 형태의 부대는 형식상 군별로 하나씩 만들어졌다. 1968년 4월 창설돼 684부대로 불렸던 실미도 부대는 공군 소속이었고, 선갑도 부대는 육군 소속, 장봉도 부대는 해군 소속이었다. 침투 용이성을 위해 북한 지역과 매우 가까운 서해 섬에 하나씩 자리한 형국이었다. 2325부대가 훈련을 담당했던 실미도 부대에게 부여된 명칭은 2325부대 209파견대였다.

원본에서 조차 사진은 확대되지 않는다

각 부대는 김신조 부대와 똑같이 31명으로 구성되어 총 93명에 달했다. 실미도 부대원들은 영화 줄거리와는 달리 전과자 출신이 아니었고, 북파공작부대를 통틀어 선갑도 부대만이 교도소에서 사면을 약속받고 차출된 이들로 구성됐다. 이렇듯 각 군이 비슷한 성격의 부대를 중복 편성한 데는 충성경쟁이 한몫했다는 게 같은 시기 AIU에 참여했던 특수임무수행자회 김희수 회장의 평가다.

그러나 1971년 8월 실미도 부대원들이 섬을 빠져나와 청와대로 향하던 중 서울 대방동에서 자폭하자, 놀란 중앙정보부와 각 군 수뇌부는 실미도 부대와 나머지 두 부대(선갑도 부대, 장봉도 부대)도 바로 해체했다. 그 과정에서 부대원들 일부가 보안유지를 위해 살해당하는 끔찍한 일도 벌어졌다. 그 후 2325부대는 6546부대로 개칭하고, 1990년 육·해·공군의 대북공작부대가 통합되면서 국군정보사령부를 창설하는데, 1991년 정보사는 오류동에 있던 부대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부지를 매각함으로써 지금은 교회가 들어서 있다.

4. 공군 특수부대

육·해·공군의 정보부대가 정보사로 통합되었다고 해서 해군과 공군이 대북침투부대를 전혀 갖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오산이다. 통합된 정보사는 육군적 성격이 강한 부대다보니 해군과 공군은 통합 이후에도 그들의 작전에 맞는 대북침투부대를 소규모로 유지했다. 예를 들어 미국 공군에도 있는 대표적인 공군 특수부대로, 적진에 침투해서 기상 정보를 수집하거나 현장에서 항공기 유도를 하는 공정통제사(CCT) 부대[2], 그리고 북한군에 격추되어 비상탈출한 전투기 조종사들을, 헬기를 타고 적진으로 침투해 조종사를 구출해내는 것을 주 임무로 하는 전대급 특수부대를 현재도 운용하고 있다. 조종사를 구출하는 일은 육군의 특전사해군의 UDT가 수행해내기 어렵다.당연하지만 그게 전문이 아니니까 이 임무는 공군 사정에 밝은 공군만이 제대로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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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육사8기, 제2대 특전사령관, 한국가스공사 이사장 역임
  • [2] 1978년 4월에 창설되어서 일명 784부대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