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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애틀랜타 올림픽

last modified: 2016-02-18 02:37:31 Contributors

역대 하계올림픽
25회 26회 27회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1996 애틀랜타 올림픽 2000 시드니 올림픽



개최날짜 : 1996년 7월 19일 ~ 8월 4일
개최장소 : 미국 애틀랜타

Contents

1. 개요
2. 유치전
3. 실패한 올림픽
4. 이모저모


1. 개요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제 25회 하계 올림픽. 올림픽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올림픽이자, 올림픽 상업화의 절정을 보여준 대회. 그러나 이 대회로 인해 IOC에서는 미국에 대해 탐탁치 않은 시선을 보내게 되는 첫 대회이기도 하다. 성공적이었다고 결코 평할 수는 없는 대회다.

2. 유치전

1996년 올림픽 유치 투표 과정
국가 도시 1차투표 2차투표 3차투표 4차투표 5차투표 결과
미국 애틀랜타 19 20 26 34 51 유치 선정
그리스 아테네 23 23 26 30 35 유치 탈락
캐나다 토론토 14 17 18 22 유치 탈락
호주 멜버른 12 21 16 유치 탈락
영국 맨체스터 11 5 유치 탈락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 7 유치 탈락

개최지 선정 당시부터 엄청 논란이 많았다. 올림픽 개최 100주년 대회라서 누구나 전부 그리스 아테네를 예상했고, 실제로 투표 결과도 3차 투표까지는 아테네가 1위였다. 그러나 마지막 4차 투표에서 결과가 뒤집히더니, 결국 최종 선정지는 아테네가 아닌 애틀랜타로 결정되었다. 이 의외의 결정에 사람들은 당황했고, 그리스 정부의 반발이 특히 심했다.

세간에서는 1992년 동,하계 올림픽과 1994년 동계올림픽 모두 유럽에서 개최한다는 점 때문에 대륙 순환개최론에 어긋나는게 아닌가하는 우려 때문에 결국은 유럽이 아닌 북미 대륙으로 정했다는 일설도 있다. 그러나 이미 1984년로스엔젤레스에서 하계올림픽을 개최했던 미국에게 또다시 12년만에 하계올림픽 개최권을 주었다는 것에도 너무 특정 국가를 밀어주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더 타당해 보였다. 참고로 1992년 동계올림픽은 프랑스 알베르빌, 하계올림픽은 스페인 바르셀로나, 1994년 동계올림픽은 노르웨이 릴레함메르에서 열렸다.

왜 이런 결정이 나왔는가에 대한 가장 유력한 근거는 미국 기업들의 로비다. 특히 IOC의 주요 스폰서이자, 애틀랜타를 근거지로 한 코카콜라의 로비와 이 과정에서 매수된 일부 IOC 위원들의 투표가 있었다. 이는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당시 솔트레이크 시 측에 의해 IOC 위원들이 매수된 사건과 함께 폭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자연히 굉장한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결국 IOC의 몇몇 위원들은 윤리 의무 위반으로 사퇴하기에 이른다.

개최지 선정을 두고 반발 여론이 있자 IOC가 내놓은 변명이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위업을 기리고자 했다는 것. 그러나 정작 이 올림픽은 인권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3. 실패한 올림픽

올림픽 개최 직전에 폭탄 테러가 일어나며 2명의 사망자와 111명의 부상자까지 나는 등, 치안 관련해서 엉망이었다.

1984년로스엔젤레스에서 이미 하계올림픽을 치뤘던 점도 있어서 그 이후로 12년을 넘긴 때에 같은 국가의 도시에서 하계올림픽이 열리게 되었다는 점 때문에 미국이 무리하게 올림픽을 과식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후에 미국은 6년 후인 2002년 솔트레이크에서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도 했다[1].

결정적으로 너무 상업적으로 대회가 흐르는 바람에 올림픽이 이래야 하는가 하는 회의적인 반응이 나오게 되었다. 모든 부분에 돈을 매기고, 자원 봉사자들마저 스폰서 로고를 달고 활동하는 모습이 좋게 비춰지지 않았던 것. 올림픽 경기장 주변 지역과 선수촌/기자촌 그리고 미디어 센터 등 일명 올림픽 존은 올림픽 스폰서 기업들의 폭리 장사판이었고, 결제마저 스폰서 금융회사신용카드만 가능했다. 미디어센터 역시 너무 상업적으로 배치했고, 경기 순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울러 미국쪽 주관 방송사인 NBC와 IOC의 갈등까지. 1992년 바르셀로나에서 문제된 상업주의가 애틀랜타에서 정점에 달했다.

쿠베르탱 남작이 제창했던 아마츄어 정신은 완전히 사라졌고, 다국적기업들의 철저한 마케팅 수단으로 전락했다.[2] 이런 문제와 함께 2002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미국이 9.11 테러 관련해서 정략적으로 올림픽을 활용하면서, 미국에 대한 올림픽의 이미지는 실추되었다. 애틀란타 올림픽의 물신주의와 솔트레이크의 과도한 애국주의가 맞물리면서 IOC에서 미국에 대한 반감이 등장, 최대의 상업 이익이 가능함에도 2012년 뉴욕2016년 시카고 시의 올림픽 유치 시도는 조기 탈락으로 끝났다. 아마 당분간 미국이 올림픽 개최하기는 힘들 듯.

대회 마지막까지 애틀랜타 올림픽에 대한 평은 좋지 않았다. 급기야 대회 폐막 연설에서 IOC 의장인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는 관례적으로 하던 '역대 최고의 대회(the best Olympics ever)'라는 말을 하지 않고, 그저 훌륭했던 대회(Well done, Atlanta)라는 말만 했다. 이런 말을 들은 역대 처음이자 마지막 대회...;;;

여담으로 대회도 막장이지만 마스코트인 이지[3] 역시 막장이라는 평이 많은편. 상상의 외계생물체를 형상화했다는데 모양이 영 괴상해서 등신대 크기의 이 마스코트를 보고 아이들이 울어버려서 개막식 때 딱 한번 출연하고 폐막식 때는 아예 퇴출당했다(...) 그래봤자 베이징 올림픽만큼 막장이려나[4]

4. 이모저모

그래도 나름대로 기록은 나왔다.

  • 캐나다너번 베일리는 100M 남자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 미국의 이클 존슨이 200M와 400M를 동시 석권한 것도 이 대회. 그래서 대회 후에 세계에서 누가 빠른지를 놓고 떡밥 대결이 벌어졌다. 결과는 존슨이 부상으로 기권하면서 베일리의 싱거운 승리.[5]
  • 소프트볼, 치 발리볼, 산악 자전거가 이 대회에 처음 실시되었다.
  • 이클 프로 선수가 이 대회부터 출전이 허용되었다. 프랑스의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 5회 우승자인 스페인의 미겔 인두라인이 출전하여 우승하였다.
  • 여자 축구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 레슬링 자유형 100kg 금메달리스트 커트 앵글은 올림픽 금메달 이후 ECW를 거쳐 WWE,TNA에서 활동하는 프로레슬러가 되었다.
  • 칼 루이스가 35세의 나이로 멀리뛰기 금메달을 차지했다.
  • 여자양궁에서 한국의 김경욱 선수가 과녁 한가운데에 있는 카메라 렌즈를 2번이나 맞추며(그 유명한 퍼펙트 골드이다.) 2관왕 차지.
한국 팀은 금메달 7 은메달 15 동메달 5 를 기록했다. 콩라인이 많았던 대회 남자 체조의 여홍철은 당시 뜀틀 종목에서 유력한 우승 후보였으나 막판에 착지 불안정으로 은메달에 그쳤고, 육상 마라톤의 이봉주는 비록 유력한 우승 후보였던 스페인의 마르틴 피스를 견제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복병 남아공의 조시아 투과니에게 결국 밀려 은메달로 만족해야 했다. 여자 핸드볼은 덴마크를 상대로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지만 막판에 체력이 고갈되어 결국 3연패의 꿈을 접어야 했다. 특히 야구와 농구 종목은 그야말로 흑역사로 남을 대회였는데, 야구에서는 당시 프로 선수의 출전이 허용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도 아마야구 최강 쿠바를 비롯하여 미국, 일본, 대만 등에 줄줄이 패했을 뿐더러, 심지어 야구가 듣보잡 취급을 받는 이탈리아 등 유럽 팀에도 패하는 굴욕을 맛보았다. 그나마 네덜란드를 상대로 1승이라도 챙긴 야구와 달리 농구는 그야말로 악몽의 전패. 당시 NBA 스타 플레이어들로 구성되어 드림팀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미국 대표팀의 압도적인 전승에 빗대어 나이트메어팀이라는 비아냥까지 듣는 지경에 이르렀다. 축구에서는 가나를 상대로 올림픽 출전 사상 첫승을 올렸지만, 뒤이어 멕시코와 비기더니 마지막 경기에서 탈락이 확정된 이탈리아[6]에 1-2로 발목을 잡혀 사상 첫 8강 진출을 날려버렸다.

성화를 최종 점화한 사람은 전설적인 복서 무하마드 알리였다. 그가 파킨슨병으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성화를 점화한 모습은 이 대회에서 몇 안 되는 감동적인 장면이다.

남북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한이 철천지 원수의 나라인 미국에서 열린 올림픽에 처음으로 인공기를 휘날리며 참가한 대회이기도 하다[7]. 이 외 아프리카 섬나라인 코모로가 처음으로 올림픽 무대에 참가하기도 했다. 또 1997년에 중국으로 반환된 홍콩영국의 속령상으로 참가하게 된 마지막 올림픽이기도 하다[8].

올림픽 주 경기장은 올림픽 끝나자마자 바로 개조해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홈 구장으로 쓰고 있다.터너 필드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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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전에도 1908년 세인트루이스, 1932년 로스엔젤레스에서도 하계올림픽이 열렸던 적이 있다
  • [2] 그러나 근대 올림픽이 애초에 시작부터 상업적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판단은 각자 알아서.
  • [3] 당초 나온 이름은 '와티짓'이었지만 What is it?이냐라는 비판이 잇다르자 변경.
  • [4] 그럼에도 베이징 올림픽 마스코트인 푸와는 디자인적으로는 성공적인 마스코트여서 역대 마스코트 best 4위에 랭크된 바 있다.
  • [5] 경기 기록을 달린 거리로 나누면, m/s가 200m가 더 빠르게 나오기 때문에 벌어진 떡밥.
  • [6] 월드컵 우승을 4번이나 차지한 강호이지만 브라질과 마찬가지로 올림픽에서는 의외로 약한 모습을 자주 보인다. 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월드컵에 한 번도 출전하지 못한 잠비아에게 0:4로 패배했다.
  • [7] 1984년에 같은 국가에서 열렸던 로스엔젤레스 하계올림픽 때는 불참했다. 이후 2002년 트레이크 동계올림픽 때도 불참했다.
  • [8]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부터는 중국 행정구 자격으로 참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