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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last modified: 2015-03-07 19:24:30 Contributors

연대구분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세기구분
19세기 20세기 21세기
밀레니엄구분
제1천년기 제2천년기 제3천년기

서기 1990년부터 1999년까지를 가리키는 말.

Contents

1. 개요
1.1. 1990년대의 대한민국
1.2. 1990년대의 미국: 20's 시즌 2
1.3. 1990년대의 일본: 잃어버린 10년
2. 문화
2.1. 음악
2.2. 게임
3. 기타
4.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
5. 이 시대에 시작된 것들
6. 이 시대에 쇠퇴한 것들
7. 이 시대에 나온 말들
8. 이 시대의 상징들
8.1. 이 시대를 풍미한 것
8.2. 이 시대의 유행어

1. 개요

냉전이 종식되고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가 처음으로 확립 된 시기. 1990년, 독일통일과 이듬해 발생한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사건 등, 체제 경쟁에서 공산주의 진영이 몰락하고, 자유(자본주의) 세계가 승리하였다. 2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 50여 년 간 지속되어 온 냉전 체제가 종식되고 드디어 인류에게 평화의 시대가 오는가 했지만 그런 거 없었고, 콩고 전쟁, 걸프전, 유고 내전, 체첸 사태, 보스니아 내전, 코소보 전쟁 등이 세계 각지에서 터졌다.

또한, 1990년대는 정보 혁명[1]이 처음으로 시작된 시기로 평가받는다. 대중들에게 정보통신(IT) 기술이 본격적으로 전파된 것이 이 시대로, 휴대전화, 무선호출기, 고성능 컴퓨터 등의 통신 기기들이 많이 등장하였다. 특히 월드 와이드 웹의 등장은 세계인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꾸기에 이른다.

금융과 경제 영역에서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화가 아주 활발히 진행되었던 시대였다. 미국은 이런 환경에서 아주 극적인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보수주의가 정국을 주도했던 80년대와 달리 전세계적으로 ‘신진보주의(신자유주의를 가미한 진보)’의 시대였다. 빌 클린턴토니 블레어가 대표적으로, 90년대 말 유럽은 대부분 제3의 길 성향의 사민주의 정권이 집권했다. 이른바 ‘장밋빛 유럽’.

북한에게는 드디어 반세기 가까이 집권하던 김일성이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김정일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북핵문제에 따른 제제와 경제난으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어 중국과 러시아 파견 노동자를 통한 본격적인 북한 주민의 이탈이 시작된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태국을 시작으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을 습격한 아시아 금융위기로 인도네시아에서는 30년 간 집권한 수하르토 정권이 퇴진하였다.

해체된 구소련 지역에게는 그야말로 헬게이트의 시대였다. 체제전환의 진통과 외국 자본 및 재벌들의 약탈에 나라는 만신창이가 되었고, EU에 편입되어 구제를 받을 수 있었던 발트 3국조차도 정치 및 경제적으로 엄청난 고생을 하였다. 1인당 국민소득이 9천 달러에 육박하던 러시아권의 경제는 이 시기 바닥을 찍게 되었으며, 2000년 푸틴의 집권으로 그나마 상승세를 그리는 중. 그러나 그 사이에 세력권은 쪼그라들었고 경제는 만신창이가 되었으며 인구는 줄었다(...)

중국장쩌민의 3세대 지도부 하에서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1.1. 1990년대의 대한민국

대한민국에서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로 세계에 위상을 떨치는 데 성공하였고, 사회적으로도 독재 시대의 종식과 지속적인 호황, 경제 발전 등으로 인해 ‘좋은 시절’로 기억되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동시에 성수대교 붕괴사고,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 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의 인재로 인한 참극이 잇달아 일어났던 시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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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MyeongDong 1993 서울 명동

이 시기의 청소년과 학생들은 1980년대의 이념적인 면에서 탈피하여 자유로운 사고를 하였으며, 특히 이 시기에 등장한 X세대는 개성을 중시하고 대중 문화에 열광하는 뭔가 모순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2] 그러나 X세대는 주체적인 문화를 창조하기보다는 상업 문화의 소비 주체로 전락하며 사회의 질을 떨어뜨리는 데에 일조하였다는 비판 역시 공존한다. 이 시대의 구호가 “서른 잔치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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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사회 영상

그리고 호황의 90년대 말에 이 사태가 터졌다……. 그리고 한국은 멸망했다...가 부활했네? 하지만 금모으기가 출동하면 어떨까? 금! 모! 으! 기!
도노반: 조지 소로스도 궁금해 하더라고

대한민국의 정치 분야로 들어가자면, 보스 정치, 3김 정치로 대표되는 시절로, 정당 간 정책대결은 커녕 거물급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하는 이합집산이 비일비재했었다(...).

1.2. 1990년대의 미국: 20's 시즌 2

1990년 독일이 공식적으로 통일 되고, 이듬 해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의 연쇄적인 붕괴가 시작되면서 말 그대로, 미국세계의 유일 초 강대국으로 명실 상부하게 부상하였다. 그와 동시에 빌 클린턴 정부가 들어서면서 경제적으로 상당한 호황을 누린 시기이도 하며 이는 아래의 다우 존스 지수 그래프를 통해 그 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


1990년대의 미국은 종종, 제 1차 세계대전의 승전 직후인 1920년대와 비견되기도 하며, 두 decade는 많은 유사성을 보인다. 다만, 1920년대는 미국이 세계의 유일의 초 강대국이 아니었고, 패권 국가들 중의 하나로 올라서게 된 시기였지만, 1990년대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약 50여년 간 지루하게 대결해 왔던 소련 및 동구권의 붕괴를 지켜보며 미국이 1극의 국가로 등장하게되었으므로 대개 1920년대 보다 1990년대를 더 화려하게 보는 경향[3]이 짙다.

1990년 이후, 중국이 G2로 떠오르기 전까지 약 20년 간은 세계의 정세를 미국이 자유자재로 통제 가능했던 시기였으며, 이라크 전쟁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겪은 이후부터 현재까지도, 여전히 1극강[4]의 위세를 보여주고 있다.

1.3. 1990년대의 일본: 잃어버린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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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 Yokohama Walkabout 横浜散歩 (901208)

(1988년~2010년)일본의 주식 시장 흐름

일본잃어버린 10년을 통해 더이상 호황을 누리지는 못하게 되었다.

(1980년~2010년)일본의 주택 시세 흐름

1990년대 일본의 부동산 폭락은 매우 유명한 검품붕괴의 선례가 되었다.

1990년, 일본은 주식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10년간의 장기불황에 접어든다. 많은 기업과 은행이 도산했고 평균 성장률은 0%에 달했다.


이웃 나라 이야기 2부 필패신화

해당 시기를 일본인들은 잃어버린 10년이라 칭한다. 이 불황은 2010년대까지도 지속되어 잃어버린 20년 또는 잃어버린 30년라는 명칭으로 대체되었다.

1.경기부양 2.부동산 거품 양산 3.거품 붕괴 4.경기 침체/1번 경기부양으로 무한 반복

이후 일부 경제학자들이나 관련 전문가들은 1990년대 일본의 부동산, 주식 폭락을 예로 들면서 경기 부양으로 인한 거품양산과 그로 인한 거품붕괴, 침체의 사이클에 대하여 설파하게 된다.[5]

(1980~1989)일본과 주요국가의 명목 GDP 흐름[6]1990년1991년1992년1993년1994년1995년1996년1997년1998년1999년
단위: 10억달러(약 1조원)
미국 전체 명목 GDP 5,979 6,174 6,539 6,878 7,308 7,664 8,100 8,608 9,089 9,660
일본 전체 명목 GDP 3,103 3,536 3,852 4,414 4,850 5,333 4,706 4,324 3,914 4,432
독일 전체 명목 GDP 1,547 1,815 2,068 2,008 2,152 2,525 2,437 2,159 2,181 2,133
프랑스 전체 명목 GDP 1,278 1,279 1,411 1,331 1,404 1,610 1,614 1,462 1,512 1,502
영국 전체 명목 GDP 1,024 1,069 1,112 998 1,080 1,181 1,243 1,384 1,477 1,518
중국 전체 명목 GDP 404 424 499 641 582 756 892 985 1,045 1,100
대한민국 전체 명목 GDP 284 332 356 391 458 559 603 560 376 486

일본은 성장 동력이 꺽여 오히려 경제규모가 줄어든 연도(1996년, 1997년, 1998년)도 있었던 시기다. 그래도 거시경제면으로 바라보면 경제의 규모는 여전히 세계2위였다. 하지만 미국과의 격차는 점차 고착화되었으며 미약하지만 차이가 벌어졌다. 게다가 유럽 국가들이 조금씩 일본을 추격하고 있었으며 한국과 중국도 경제 성장기에 접어든다.

2. 문화

2.1. 음악


1990's Billboard Hot 100 #1's (1990-1999)

록 음악의 경우, 록 음악의 헤게모니가 하드 록에서 출발한 메탈 계열에서 펑크 록에서 출발한 얼터너티브 록로 완전히 돌아선 시기라고 할 수 있으며, 이 변화는 아직까지 유효하다. 얼터너티브 록 쪽에서 너바나의 <Nevermind>, 펄 잼의 <Ten> 등의 명반이 등장하였으며, 스매싱 펌킨스와 같은 그룹도 90년대 초부터 후반까지 큰 인기를 끌었다. 물론 90년대 초반까지는 메탈의 기세도 여전히 등등해서 건즈 앤 로지스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메탈리카Metallica를 발매하며 대중적 인기를 드높였다. 그러나 90년대 초가 지나면서 메탈의 인기는 식어갔으며, 그나마 판테라 정도가 자존심을 지켰다. 하지만 오히려 노르웨이, 스웨덴등의 북유럽에서는 Darkthrone, Mayhem 같은 밴드의 블랙 메탈멜로딕 데스 메탈필두로 헤비 메탈이 얼터니티브와 관계없이 기세등등했다.

90년대 중반에 오면 80년대 끝무렵에 더 스미스, 스톤 로지스등을 통해 비롯된 브릿팝 음악이 본격적으로 부상한다.스웨이드를 시작으로 블러, 오아시스 등이 커다란 인기를 끌었으며, 라디오헤드는 90년대 중후반 <The Bends>와 <OK Computer>라는 명반을 내놓음으로써 90년대 록 음악을 집대성하고 'Radioheadism'이라는 음악 풍조를 탄생시키기까지 한다. 이는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져, 콜드플레이Muse, 엘보우, 과 같은 밴드들에게 영향을 준다.

일렉트로니카 음악이 이 시기에 매우 발전하였다. 펫 샵 보이즈 류의 신스팝이나 테크노 등에 머무르던 일렉트로니카는 이 무렵 정말 다양한 스타일로 분화되게 된다. 프로디지, 케미컬 브라더스 등의 메가 히트 밴드들이 등장하였으며. 에이펙스 트윈은 비단 일렉트로니카만이 아닌 대중 문화 전반에 큰 흔적을 남겼다. 또한 힙합은 'Golden Era'라 불리는 시대를 맞아 2pac트리어스 B.I.G.으로 대표되는 황금기를 맞이하였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힙합 문화가 한국에도 수입되어서 한국 힙합씬이 태동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홍대 앞을 기반으로 하는 인디 신도 90년대 중후반부터 본격적으로 태동하기 시작하였다.


K-POP: 1990 ~ 1997 K-POP: 1998 ~ 1999

한국은 이 시기에 대중음악의 전성기를 맞았다. 음반의 100만 장 판매 시대가 열렸고, 200만 장이 넘게 팔리는 앨범도 90년대 중반까지는 자주 볼 수 있었다. 장르가 다양화되었던 시기이도 하다. 전람회, 015B와 같이 대학생들이 가요계에 데뷔하는 경우가 흔했으며[7] 듀스, 서태지와 아이들, 김건모, 신승훈 등의 아티스트가 등장하였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경우 기존 가요와 다른 파격적 시도들을 함으로써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듀스는 1993년에 데뷔하여 인기를 끌었고 대표적 곡인 '여름안에서' '우리는' 등을 내놓고 인기를 누려가고 있었으나 1995년 11월 20일 김성재씨가 사망했다!그이후 듀스는 중단되었다. 이현도가 결국 마지막으로 duex foever라는 곡을 끝으로 듀스는 해체되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1992년에 데뷔하였고,'난 알아요', '하여가'등을 내놓으며 승승장구했지만 1994년에 '교실이데아'라는 곡을 거꾸로 돌리니 '피가 모자라'가 들린다며 여론이 시끄러웠다. 이후 서태지와 아이들은 '창작의 고통'을 이유로 1996년에 은퇴선언을 한다. 그 이후부터는 H.O.T를 필두로 한 아이돌 음악의 홍수가 시작되었다. 다만 초창기니 만큼 일본 음악산업을 데드 카피하는 악습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었고 이에 대한 비판 역시 직면했었다. 지금은 한류다 뭐다 해서 아이돌 음악의 위상이 나아지긴 했지만 이때는 아이돌 문화가 성숙하지는 않았던 셈 .

youtube(k85fjcJ4OVQ)youtube(xKmS9C03TeE)
J-songs BIBLE 90's (Japanese Single Sales Top 200 1990~1994 J-songs BIBLE 90's (Japanese Single Sales Ranking 1995~1999

일본도 한국과 비슷하게 다양한 장르들의 음악이 여럿 나왔으며, 음반 판매량이 최고를 기록하던 시기였다. 일본이 장기적 경제 불황에 빠져들었던 상황을 고려해보면 상당한 성과라고 볼 수 있는 부분. 물론 장기적 경기 침체가 오히려 음악과 같은 대중문화 소비를 늘렸다는 분석도 여럿 있다. Mr. Children, B'z, Spitz와 같은 록밴드들이나 시부야계 아티스트들이 크게 인기를 끌었으며, 80년대 후반부터 활동한 X Japan을 통해 비주얼계 록음악도 성행했었다.

또한 에이벡스의 Super Eurobeat 시리즈가 컴필레이션 앨범의 딜레마와 한계를 딛고 오리콘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고,아무로 나미에V6유로비트 장르로 90년대 중후반을 휩쓰는 등 유로비트도 약진했었다.[8]

2.2. 게임

게임계에서는 본격적으로 16비트에서 32비트로 넘어가기 시작한 5 콘솔 시대로, 이 시기에 비디오 게임의 비약적인 그래픽 상승 경향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PC에서는 둠 시리즈가 그래픽 혁명, 미스트(게임)시리즈가 CDROM의 대용량 매체를 적극 활용한 인터랙티브 혁명을 이끌어 냈고, 콘솔쪽에서는 32비트 게임기들이 보다 제대로 된 폴리곤 그래픽 지원과 세가 새턴은 2D가 훌륭한 대신 타 32비트 기종보다 3D가 구리긴 했지만 일단은 CDROM 매체를 이용한 풀모션 비디오[9] 활용으로 3D 게임의 중흥기를 이끌어내기 시작했다.

특히 90년대 중후반은 세가 새턴플레이스테이션, PC-FX등의 게임기들이 경합하며 만들어낸 2D 게임의 전성기라 할 수 있다. 특히 세가소니의 너 죽고 나 죽자식의 치열한 무한경쟁이 수없이 많은 2D 수작 게임들이 탄생한 배경이 되었다. 90년대말 플레이스테이션 2드림캐스트가 등장하며 보다 완연한 3D게임 시대가 열렸으나 그 전까지만해도 폴리곤 기술은 텍스쳐의 해상도도 낮고 해서 아직 조악한 수준이었으며 1999년까지는 2D의 우세가 지속된다. 그나마 새턴과 플스의 초반 싸움에서 새턴이 플스하고 호각을 뜬 이유도 새턴이 2D쪽에서는 확실히 우위를 점했기 때문. 그 게임 이후로 새턴이 밀릴때에도 2D 격투게임/슈팅게임의 이식률이 좋은 새턴은 이쪽 장르 매니아들에게 여전히 수요가 높았었다. 2000년대 초반, 6세대 콘솔의 등장을 거치면서 3D 구현기술이 발전해 2002년쯤에는 완전한 3D의 우세가 굳혀졌다.

휴대용 게임의 경우는 게임보이가 90년대를 주름 잡았었다. 게임보이는 아직 흑백 8비트 그래픽으로 작동되었다. 하지만 당시로선 성능이 좋았던 휴대용 게임기였다.

3. 기타

2010년대 들어 건축학개론, 응답하라 1997 등 90년대를 추억팔이하는 영상물이 많이 제작되고 있다. 거꾸로 말하면 90년대에 청소년기를 맞은 70년대, 80년대 초반 출생들이 주요한 소비세력으로 진입한다는 의미. 또한 오버뮤직씬에서는 UV, 인디뮤직씬에서는 90년대 K-POP을 컨셉으로 한 기린(뮤지션)* 후자의 경우 정확히는 90년대 초중반의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같은 뉴잭스윙, 힙합, 브레이크비트성 댄스 뮤직.]이라는 아티스트가 등장하기도 하였다. 서울의 이태원과 홍대 등을 시작으로 밤과 음악사이라는 90년대 가요를 튜닝해주는 주점형 클럽 체인점도 이런 맥락에서 히트치고 있다. 설립 자체는 2005년이지만 근년의 90년대 회고붐에 이어서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카더라.

묘하게 세기말적 분위기가 감돌기도 하였는데 90년대 초에는 다미선교회가 시한부 종말론(휴거) 소동을 일으켰다. 90년대 말로 갈수록 노스트라다무스 떡밥과 Y2K 문제 등이 이런 분위기에 일조하였다. 한국에서도 IMF 시대라는 경제적 원인이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5. 이 시대에 시작된 것들

지금도 널리 쓰이고 있는 것들을 적을 것.

6. 이 시대에 쇠퇴한 것들

이전 시대에 나와 지속적으로 쓰인 것들을 적을 것.
  • 경양식
  • 대한뉴스
  • 오디오
  • 학력고사
  • LP : CD가 등장하면서 망했다.하지만 LP,LD,배타맥스,VHS,카세트 테이프등이 시대의 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단종된것과 달리 이 쪽은 쇠퇴한 뒤에도 한시적으로 생산중이다..

7. 이 시대에 나온 말들

현재도 계속 쓰이고 있는 말들을 적을 것.

8. 이 시대의 상징들

8.1. 이 시대를 풍미한 것

이 시대에만 반짝했던 것들을 적을 것.

8.2. 이 시대의 유행어

이 시대에만 쓰인 말들을 적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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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농업 혁명, 산업 혁명과 더불어 인류 문명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3대 혁명 중 하나에 해당 된다. 그 첨병은 인터넷
  • [2] 그러나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대중 문화는 본래 취향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며 그러한 과정이 수용자의 개성을 확정짓는 역할을 하게 되어 있다. 한국의 대중문화는 이 당시 역사가 깊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선택' 범위가 그리 많지 않아서 개성을 추구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획일적으로 보이게 된 것이다.
  • [3] 이 무렵 할리우드에선 에어 포스 원, 아마겟돈, 진주만 등 미국 중심 사관의 영화들이 전성기를 이루고 있었는데, 이는 냉전에서 승리한 당시 미국민들의 자신감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 [4] 2015년 현재까지도 미국의 군사력과,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과의 군사력 총합 사이의 격차은 여전히 비교 불가능한 수준이다.
  • [5] 어설픈 경기 부양과 인구 감소로 집값 폭락한 일본
  • [6] (1990~1999)일본과 주요국가의 명목 GDP 흐름
  • [7] 확실히 이건 MBC 대학가요제의 공이 컸다. (그런데 015B는 전신이었던 무한궤도부터 생각하자면 88년 데뷔다.) 하지만 대학가요제로 대학생이 가수로 데뷔하는 건 대학가요제가 만들어진 시기인 70년대 후반부터 있었다.
  • [8] 그리고 이는,2000년 5월에 발매되었던 슈퍼 유로비트 110집이 70만장이라는 어마어마한 판매량과 오리콘차트 3주간 1위라는 엄청난 성과를 내게 되는 씨앗이 되었다.
  • [9] 게임외적인 부분의 CG/실사동영상을 재생하는 용도가 메인이었지만 몇몇 게임은 이러한 풀모션 비디오를 배경에 일부 박아넣는 식의 연출 용도로 활용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파이널 판타지 7에서 이런 기법이 많이 사용되었다.
  • [10] 정확히는 이 시대를 회상하는 코너.
  • [11] 물론 오락실2000년대 시망했지만.
  • [12] 2000년대의 상징이지만 이 시대에 시작되었다.
  • [13] 사실 영미권이나 프랑스 등지에선 이미 70년대에 일반화 되었지만 선거법 문제 때문에 상당히 늦게 도입되었다.
  • [14] 당시 전뇌회선상 유머의 주 매개체였다. 인터넷 보급은 90년대 말 되어야...
  • [15] 이외에도 PC통신으로 시작된 유머 시리즈들은 많지만,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기에 언급해본다.
  • [16] 오늘날의 포털 사이트 카페 서비스같은 개념.
  • [17] 90년대 말을 풍미했던 당시 휴대폰시스템.
  • [18] 다만 90년대 중반 이후로 주도권을 CD에게 내줘야만 했다.
  • [19] 김국진의 유행어
  • [20] 90년대 롯데칠성의 탄산음료 밀키스 광고 때 영화배우 주윤발이 말했던 대사. 이 대사 덕분에 그 당시 밀키스 매출이 급상승했다.
  • [21] 김흥국이 했던 멘트
  • [22] 만화 드래곤볼에서 손오공이 했던 대사
  • [23] 피구왕 통키 국내방영 이후
  • [24] 캡틴의 줄임말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어원은 일진문화에 두고있다는게 씁슬. 그래서 근성모는 그레이트 캡짱이라는 만화를 내놓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