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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LA 올림픽

last modified: 2015-04-10 14:25:10 Contributors

역대 하계올림픽
22회 23회 24회
1980 모스크바 올림픽 1984 LA 올림픽 1988 서울 올림픽

< 1984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 >
time1984.jpg
[JPG image (Unknown)]
1983 - 로널드 레이건,
유리 안드로포프
피터 위버로스
LA 올림픽 조직위원장
1985 - 덩샤오핑

Contents

1. 개요
2. 특징
3. 기타

1. 개요


개최날짜 : 1984년 7월 28일 ~ 8월 12일
개최장소 : 미국 로스앤젤레스

2. 특징

1984 LA 올림픽은 딱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모스크바 올림픽 파행에 대한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의 보복.[1] 다른 하나는 돈잔치. 참가국 수는 당시까지는 역대 올림픽 최다. 불참국도 적었다. 문제는 불참국들이 주로 소련과 동독 같은 스포츠 강국이라 올림픽 자체를 심심하게 만들었다는 것. 이 문제는 다음 올림픽인 서울 올림픽에서 대부분 정도 해소되고, 궁극적으로는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완전 해소된다.[2]

개회식 장소이자 주경기장은 1932 LA 올림픽 주경기장인 LA 메모리얼 콜리시엄. 52년 만에 같은 장소에서 다시 개최되었다.

흑자를 본 올림픽이다. 8년 전 1976 몬트리올 올림픽이 최악의 적자를 보면서 막을 내린 것과 달리, LA 올림픽은 중계권료의 폭등과 다양한 마케팅으로 흑자(250만 불)를 내는데 성공했다. 다만, 이는 올림픽의 지나친 상업화의 시초라는 점에서 오늘날 비판받기도 한다.[3]

대만1972 뮌헨 올림픽 이후, 처음으로 올림픽 무대에 복귀했다. 단,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는 쓸 수 없었고, 차이니스 타이베이라는 국호를 가지고 등장했다.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처음 하계 올림픽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 바로 LA 올림픽 이었다.[4] 참고로 대만은 "차이니즈 타이페이"라는 이름으로 1979년 다시 자격이 주어졌지만, 소련아프가니스탄 침공 보이콧으로 참석하지 않았다. 중국도 역시 보이콧에 끼었다. 미국보다 소련이 더 미워

대한민국은 다음 대회 개최지로서 스포츠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래서 그 전 대회까지 금메달 단 한 개를 따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이 번 대회를 통해 금메달 6개, 은메달 6개, 동메달 7개(전체 10위, 메달수 스웨덴과 공동 10위)를 차지하면서 본격적으로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주로 양궁, 복싱, 레슬링, 유도에서 거둔 수확이었고, 구기종목 사상 첫 은메달이 나온 대회이기도 했다. (여자 농구와 여자 핸드볼)[5]

미국이 금메달 83개를 차지하면서 압도적인 실력을 과시했는데, 사실 홈그라운드의 이점 + 소련 및 동유럽 불참으로 인한 미국 쪽 심판의 장난질이 겹친 결과였다. 한국도 복싱에서 많은 피해를 본 편이었다. 플라이급의 유력한 우승후보였던 김광선이 편파판정으로 1회전 탈락한 사례도 있었으니까. 이 때 이를 간 소련과 동유럽 심판들은 나중에 1988 서울 올림픽 복싱 박시헌 vs 로이 존스 주니어 판정을 조작하기에 이른다. 즉, 홈그라운드의 이점으로 한국의 박시헌에게 금메달을 준 것이 아니라, 속된 말로 "미국 놈들 엿먹어라" 였던 것이다. 그 발단이 된 것이 바로 이 대회였다. 이 것때문에 제일 피해본건 사실상 박시헌...



대회 마스코트인 (Sam). 흰머리수리엉클 샘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전 대회 소련과 함께 국가 상징 돋네 호돌이

다음 개최지가 대한민국이었기 때문에 폐막식 때 태극기가 게양되고 애국가가 연주되었으며[6] LA 시장이 올림픽 깃발을 다음 개최지인 서울시장에게 넘겨주었다. 폐막식 때 서울올림픽 로고가 등장하기도 하였다.

여담으로 여자 육상에서는 마라톤이 처음으로 채택된 대회다. 야구 종목도 시범적으로 치러졌다.

3. 기타

2008 베이징 올림픽 이전 올림픽 항목 중 엔하위키에 작성된 마지막 하계 올림픽이었다. 어자피 추후 열릴 대회는 그 때 가면 더 자세히 작성되니깐.. 이제는 모든 항목이 다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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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루마니아유고슬라비아는 여기에 동참하지 않고 참가했다. 루마니아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대통령의 탈소련 정책에 의해, 유고슬라비아는 비동맹세력의 맹주라는 점에서 소련의 입김을 덜 받는 나라였던지라 LA 올림픽 참가가 가능했다. 그 덕에 이 대회의 금메달 순위에서 루마니아2위, 유고슬라비아는 9위. 참고로 대한민국도 이러한 상황에 큰 이익을 봤고 이 대회를 기점으로 금메달 수가 많아졌다. 루마니아의 경우 아무리 타국의 불참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도 이런 순위는 전무후무. 사실 불참 이유는 다들 보복이라는 거 뻔히 알지만 이들 불참 국가의 공식적 명분은 '선수단 안전보장이 불가능'하다는 것.
  • [2] 서울 올림픽에는 북한과 북한에 동조했던 쿠바, 에티오피아(당시 국명은 에티오피아 인민 민주 공화국) 등이 불참했다는 한계가 있었다.
  • [3] 특히 LA 올림픽 조직위원장이었던 피터 위버로스는 지나친 상업화를 추구했다는 이유로 관계자, 언론, 팬들로부터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그리고 그는 올림픽이 끝난 후 메이저 리그 커미셔너로 추대된다. 그런데 MLB 커미셔너로서도 역시 똑같은 짓을 했으니... 그러나 위버로스의 올림픽 상업화 노선은 냉전 시대의 올림픽 위기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평가도 많다. LA 올림픽을 개최할 때만 하더라도 이전 대회였던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때 올림픽이 4대륙 올림픽으로 전락 + 제2의 뮌헨 참사를 막기 위한 보안 경비 투자의 증가로 사상 최악의 적자를 내며 전세계적으로 이렇게 없는 살림 쥐어짜면서까지 올림픽을 유치시킬 필요가 있냐는 목소리가 높아진 상황이었다. 서울올림픽 유치전 때 많은 국가들이 올림픽 유치를 망설였던 이유이기도 하다. 올림픽의 규모가 점점 더 커져가고, 국가의 위력을 과시하는 쪽으로 변화해가면서 나타난 올림픽의 상업화는 이미 예견된 수순이었다.
  • [4] 동계는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대회가 처음. 역시 미국이 개최국였다. 대만은 이때 선수단이 미국까지 갔으나 이런 호칭 문제에 불복하고 불참했다.
  • [5] 구기종목 사상 첫 메달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의 여자배구 동메달.
  • [6] 그리스, 미국 국가 다음으로 마지막에 연주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