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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

last modified: 2014-11-21 21:23:05 Contributors

역대 FIFA 월드컵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

Italy_1934_World_Cup.jpg
[JPG image (Unknown)]


Contents

1. 개괄
2. 개최지 선정
3. 지역예선
4. 대회 엠블럼·마스코트·공인구
5. 경기장
6. 대회 진행
6.1. 1라운드
6.2. 8강
6.3. 4강
7. 기록실
8. 결과
9. 수상
10. 뒷 이야기
11. 대회 이후


1. 개괄

1930년 우루과이에서 열렸던 월드컵이 개최국 우루과이의 우승으로 끝난지 4년 후, 이탈리아에서 2번째 월드컵이 열리게 되었다. 1934년 5월 27일부터 6월 10일까지 8개 도시에서 개최되었다.

이 월드컵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처음으로 지역 예선이 열렸다는 것이다. 지역예선에는 32개의 팀이 참가하여 16개의 팀이 본선에 진출하였고, 대회의 방식은 조별 리그 없이 녹아웃 토너먼트로 우승팀을 가렸다. 녹아웃 토너먼트제였기 때문에 같은 라운드의 경기는 모두 같은 시간에 열렸다. 처음으로 3,4위전도 열렸으며 이탈리아결승전에서 체코슬로바키아를 2대 1로 제압하고 유럽 국가 중 첫 월드컵 챔피언이 되었다.

또한 2년 후의 베를린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베니토 무솔리니파시즘을 선전하고자 용을 쓴 대회로 악명이 높기도 하다.

2. 개최지 선정

1932년에 이탈리아스웨덴과의 유치 경쟁에서 승리하여 제 2회 대회의 개최권을 따냈다. 원래 FIFA이탈리아월드컵을 개최하면 파시스트의 나팔을 불어제낄게 안 봐도 블루레이라서 별로 개최권을 주고 싶지 않았지만 스웨덴 정부대공황의 여파로 GG를 친 관계로 어쩔 수 없이 이탈리아에게 개최권을 넘겼다. 이탈리아 정부는 결정이 떨어지자마자 급히 350만 리라예산을 편성하여 개최 준비를 했다. 존나좋군??

3. 지역예선

이 대회 지역예선의 자세한 내용은 밑의 항목 참조.
그리고 이런 일들이 있었다.

4. 대회 엠블럼·마스코트·공인구


1934년 대회 포스터

포스터의 구성은 간단했다. 앞에 파란 옷을 입은 선수는 개최국인 이탈리아의 선수를 형상화 한것이고 뒤에는 출전국들의 국기가 쭉 나열되어 있는 것이다.

마스코트와 공인구는 이번에도 없었다.

5. 경기장

월드컵이 열린 도시와 구장은 다음과 같다.
(수도 로마를 제외하면 가나다순)

6. 대회 진행

6.2. 8강

왼쪽에 있는 진하게 표시된 국가는 4강 진출국.

7. 기록실

17경기에 70골이 터지면서 경기당 평균 4.12골을 기록했다.

8. 결과


순위 국가 경기 득실 승점 비고
1 이탈리아 5 4 1 0 12 3 +9 9 우승
2 체코슬로바키아 4 3 0 1 9 6 +3 6 준우승
3 독일 4 3 0 1 11 8 +3 6 3위
4 오스트리아 4 2 0 2 7 7 0 4 4위
5 스페인 3 1 1 1 4 3 +1 3 8강
6 헝가리 2 1 0 1 5 4 +1 2 8강
7 스위스 2 1 0 1 5 5 0 2 8강
8 스웨덴 2 1 0 1 4 4 0 2 8강
9 아르헨티나 1 0 0 1 2 3 -1 0 1라운드
9 프랑스 1 0 0 1 2 3 -1 0 1라운드
9 네덜란드 1 0 0 1 2 3 -1 0 1라운드
12 루마니아 1 0 0 1 1 2 -1 0 1라운드
13 이집트 1 0 0 1 2 4 -2 0 1라운드
14 브라질 1 0 0 1 1 3 -2 0 1라운드
15 벨기에 1 0 0 1 2 5 -3 0 1라운드
16 미국 1 0 0 1 1 7 -6 0 1라운드

9. 수상



주세페 메아차




올드리히 네예들리

2위(4골) - 에드문트 코넨(독일), 안젤로 스키아비오(이탈리아)
3위(3골) - 라이문도 오르시(이탈리아), 레오폴트 키엘홀츠(스위스)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 베스트 11
골키퍼: 리카르도 사모라(스페인).
풀백: 하신토 킨코세스(스페인), 에랄도 몬셀리오(이탈리아).
하프백: 루이스 몬티, 아틸로 페라리스(이상 이탈리아), 레오나르도 실라우렌(스페인).
공격수: 주세페 메아차, 라이문도 오르시, 엔리케 구아이타(이상 이탈리아), 마티아스 진델라(오스트리아), 올드리히 네예들리(체코슬로바키아).

10. 뒷 이야기

11. 대회 이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우승하고 난 이후 잉글랜드와 맞붙기 위하여 런던 원정을 떠났다. 이 경기는 아스날의 홈구장이었던 하이버리 스타디움에서 열렸는데 이 경기는 '하이버리의 난투극'이라고까지 칭해질 정도로 격렬한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루이스 몬티잉글랜드의 공격수 테드 드레이크와 충돌하여 오른발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고 그의 파란만장한 선수 생활도 저물어갔다.
경기는 잉글랜드의 3대 2 승리로 끝났고, 이 시합으로 잉글랜드의 콧대는 한층 더 높아졌다. 월드컵 X까! 우리는 챔피언을 이겼다고! 하지만 그 때 잉글랜드 축구팬들은 이것이 의 씨앗이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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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Partito Nazionale Fascista의 약자. 국가 파시스트 당의 약자이다
  • [2] 2차 대전중에 폭격을 맞고 파괴되었다
  • [3]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산 시로가 맞다. 1926년 개장
  • [4] 유벤투스토리노 FC가 두 집 살림을 하던 델레 알피 구장의 원래 이름
  • [5] 5경기는 1경기의 재경기
  • [6] 인터 밀란의 역대 최고 레전드이자 이탈리아 축구를 대표하는 레전드 중 한 명. 골키퍼를 제끼는 트릭을 축구 역사상 최초로 선보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당시에도 이것은 큰 흥미거리였다고 한다. 봤지? 골키퍼는 제끼라고 있는거야 탈리아 국가대표로 53경기 출전 33득점으로 아직도 역대 득점 순위 2위. 그리고 밀라노에 위치한 5성급 축구 경기장에 그의 이름이 헌정되어 있다. 주세페 메아차 스타디움이 바로 그의 이름이다
  • [7] 2006년 11월 이전까지의 기록에는 올드리히 네예들리(체코슬로바키아), 에드문트 코넨(독일), 안젤로 스키아비오(이탈리아). 이렇게 총 3명이 4득점으로 공동 1위에 올라 있었다. 그러나 FIFA 측의 자료 검토 결과 네예들리의 1득점이 누락된 것으로 판명, 네예들리의 단독 1위로 기록이 수정됐다
  • [8] 자신의 기술인 메아차의 설명에 있는 골키퍼 제끼기가 콤비에게 먹히는지였다고 알려져 있다
  • [9] 브라질은 대공황의 여파로 경제가 침체된 1930년 내내 국제대회 때마다 이랬다. 1932년 LA 올림픽 때도 커피를 잔뜩 싣고 와서 '이거 팔아서 참가비용 쓸께요'하다가 거부당해서 재정적 곤란을 겪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