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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바우두

last modified: 2015-12-17 05:37:50 Contributors


이름 히바우두 비토르 부르바 페헤이라
(Rivaldo Vítor Borba Ferreira)
국적 브라질
출신지 페르남부쿠 주 파울리스타
생년월일 1972년 4월 19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187cm / 77kg
프로 입단 1991년 산타 크루스 FC 입단
소속팀 산타 크루스 FC (1991~1992)
모지미림 FC (1992~1993)
코린치안스 (1993~1994)
파우메이라스 (1994~1996)
레알 클럽 데포르티보 데 라 코루냐 (1996~1997)
FC 바르셀로나 (1997~2002)
AC 밀란 (2002~2003)
크루제이루 (2004)
올림피아코스 (2004~2007)
AEK 아테네 FC (2007~2008)
분요드코르 (2008~2010)
상파울루 FC (2011)
카부스코르프 SC (2012~2013)
상 카에타누 (2013)
모지미림 FC (2014)
국가대표 74경기 35골

1999 FIFA 올해의 선수상
수상
히바우두
2위
데이비드 베컴
3위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2000 FIFA 올해의 선수상
수상
지네딘 지단
2위
루이스 피구
3위
히바우두
1999 Ballond'or
수상
히바우두
2위
데이비드 베컴
3위
안드리 셰브첸코
내가 유스클럽에 있었을때 나는 호마리우의 플레이를 보면서 자랐고 1군에 콜업됬을 당시 호나우두의 플레이를 목격했으며 호나우지뉴와 함께 필드에서 뛰었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최고는 히바우두다. - 챠비 에르난데스




Contents

1. 개요
2. 플레이스타일
3. 커리어
4. 유독 큰 경기에 강했다
5. 1999년
6. 2인자
7. 끝자락
8. 기타


1. 개요

2인자들의 1인자

경기를 혼자 뒤집는 게 가능한 선수.[1]
축구계의 콩라인 끝판왕

브라질의 축구선수.
1972년 4월 19일 브라질 출생. 섀도우 스트라이커와 공격형 미드필더 포지션을 오가는 프리롤 특화형.
축구계의 산신령

2. 플레이스타일

악마의 왼발로 알려졌을 정도로 왼발슛이 대단한 선수이다. 심지어 거의 모든 볼터치를 (의식적인지 본능적인지는 알 수 없으나) 왼발로만 행하며, 차는 것도 전부 왼발, 발 하나를 안쓰는데도 불구하고 감각적이고 멋진 플레이를 보여준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점에서는 헝가리의 유명한 레전드 페렌츠 푸스카스와 흡사하다.. 물론 둘의 소속팀은 철천지 원수지만.

몸싸움도 주력도 뛰어났다. 등지는 플레이 등의 피지컬로 수비수들 사이의 좁은 틈새에서 자신의 공간 확보 -> 왼발 테크닉으로 폭풍 돌파 or 패스로 수비라인을 박살냈다.[2] 즉 말하자면 무시무시한 킥력에 덤으로 몸빵과 주력을 얹은 선수. 수비 입장에서는 들러붙자니 이긴다는 자신이 없고 좀 떨어져 있자니 발도 빠른데 킥력도 좋고. 이런 점에서는 호날두와 비슷한데, 호날두와의 차이점이라면 히바우두는 왼발 의존도가 크고 호날두보다 탐욕적이긴 하지만 직선적, 직관적인 플레이를 주로 하는 호날두에 비해 능글맞은 구석이 있었다. 드리블과 플레이메이킹을 통해 중앙도 폭 넓게 이용하던 것[3]과 호날두와 달리 피지컬과 스피드보단 테크닉에 좀 더 치중한 플레이라는 점도 차이점이다. 은근 호날두와 비슷한 플레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스페셜만 봤을 때 이야기이고 확연히 다른 유형의 선수였다.

히바우두의 가장 큰 약점으로는 탐욕을 꼽을 수 있다. 물론 본인의 능력이 출중해서 큰 문제는 없었지만 본인이 결정적인 순간을 차지하려는 욕심이 큰 선수였다.

3. 커리어

브라질 리그에서 뛰다가 1994년 팔메이라스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1996년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로 이적하며 유럽축구에 발을 딛는다. 적응기는 고사하고 오자마자 21골을 몰아쳤고(득점랭킹 리그 4위), 호나우두가 인테르로 떠나고 그의 대체자를 찾던 FC 바르셀로나가 그를 영입했고 그와 바르셀로나는 성공가도를 달린다. 바로 전 시즌에 레알 마드리드에게 승점 2점차로 리그 우승을 빼앗겼기에 바르셀로나는 독기를 잔뜩 품고 있었고, 히바우두 - 파트릭 클루이베르트 - 루이스 피구로 이어지는 스리톱[4]을 형성하고 뒤에서 과르디올라가 킬패스를 쭉쭉 질러주는 공포의 스쿼드를 갖추게 된 바르셀로나는 이듬시즌 4년만에 라 리가 챔피언 자리를 탈환함과 동시에 국왕컵에서도 우승, 한 시즌 더블을 이룬다.

이후 1997년부터 2002년까지 바르셀로나 전력의 핵심으로 활약하다, 감독과의 불화로 스쿼드에서 제외되는 일이 많아지고 때마침 베를루스코니 구단주가 원해 AC 밀란으로 이적했으나 대망.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의 전술상에 히바우두가 녹아들지 못하던 상황에서, 당시 막 이적해온 카카에게 완전히 밀렸다. 그러나 자신은 후배 카카의 성공에 행복하다는 인터뷰를 했다. 오오 대인배

결국 벤치신세에서 벗어나 주전을 뛰기 위해 떠돌다 크루제이루를 거쳐 2004년 그리스 리그의 올림피아코스로 이적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올림피아코스에서의 맹활약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고 특히 챔피언스리그에서는 혼자 미쳐 날뛰면서 레알 마드리드나 리버풀 등 온갖 강팀들을 때려부수는 활약을 보였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거의 리버풀을 때려잡고 진출할 뻔했으나 리버풀 젊은 주장의 극적인 중거리가 터지면서 고배를 삼키게 된다. 그리고 2007년에는 올림피아코스 생활을 마치고 그리스 리그의 AEK 아테네로 이적해 1시즌동안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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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그리고 2008년 또다시 이적을 감행했는데, 새로 입단하게 될 팀은 우즈베키스탄FC 분요드코르. 당시 분요드코르는 엄청난 돈지랄자금력을 동원해 아시아 축구계의 신흥 강호로 올라서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중이었고, 히바우두 영입에 이어 감독으로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를 앉히며 일약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이 기세로 2009년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노렸으나 포항 스틸러스와의 8강전에서 2차전 연장 혈투까지 가는 끝에 결국 4-5로 패해 좌절되었고, 2010년도 알 힐랄에게 밀려 중도하차했다. 이후 팀에서 방출되었다가 2011년 상파울루와 1년 단기계약을 맺었다. 2014년 현역은퇴를 선언 했다.

4. 유독 큰 경기에 강했다

딱히 멘탈甲이라 불릴만한 강한 멘탈을 지닌 선수는 아니었고, 오히려 호나우지뉴처럼 경기를 즐기는타입이었지만 그는 유독 큰 경기, 혹은 위기상황에 강했다.

상술한 대로 바르셀로나에 합류하자마자 리그 트로피와 국왕컵 트로피를 안긴 것으로 시작해,

1999년 감독의 대삽질[5][6]로 바르샤 스쿼드가 휘청댈 때도, 히바우두만은 변함없는 활약을 하며 해당시즌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을 따냈다. 물론 직후 반 할은 경질되었다. 감독과의 다이다이 매치에서 승리 지난 2010년 11월 어느 루저가 기록을 경신하기 전까지 바르셀로나에서 챔피언스리그 역대 최다득점자 자리는 그의 몫이었다. 통산 27골.

그리고 지금도 회자되는 00-01시즌 리그 최종전. 팀 분위기가 개판이 되다 못해 막장가도를 달리던 중 난적 발렌시아 C.F.를 홈으로 불러들여 마지막 38라운드를 치러야했다. 그때까지 바르샤는 발렌시아에 승점 3점이 모자란 5위였고, 무조건 이겨야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얻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날, 히바우두는 영웅이 되었다. 3-2 바르셀로나 승리. 히바우두 해트트릭. 승리를 확정짓는 마지막 일격이 된 그때 그 오버헤드 킥은 기회가 된다면 꼭 찾아보라. 숨넘어간다. #

그리고 이러한 그의 위기대처 능력은 국가대표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는데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그 진가를 볼 수 있다. 조별예선 1차전인 터키전에서 페널티킥으로 역전골을 넣어 2:1로 승리를 거두었으며, 잉글랜드전에서도 동점골을 넣어 역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7]

그리고 대회 내내 기존의 히바우두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줘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탐욕 한 단어가 꼭 따라붙던 기존의 캐릭터와는 전혀 다르게 철저하게 호나우두의 득점력을 배가시키는데 주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잉글랜드전에서 동점골을 성공시켰듯이 호나우두의 능력으로는 어려운 상황에서는 자신이 결정시키는 모습이나, 추하게까지 비춰졌던 헐리우드 액션 등은 저게 정말 그 히바우두인가 싶을 정도로 놀랍고도 날카로운 모습이었다.

5. 1999년

2인자 히바우두가 유일하게 1인자의 자리에 올랐던 한 해이자, 그의 커리어가 정점에 달했던 때.
98년 월드컵 이후 브라질 A팀에서 히바우두는 호나우두와 영혼의 투톱을 이루며 승승장구했는데, 99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브라질에 우승을 안겨주었다. 개인상 측면에서도 톱을 달렸는데, 득점왕 부문에서는 호나우두와 공동 수상이었지만(5골) 대회 MVP는 히바우두의 몫이었다. 앞서 유독 큰 경기에 강했다고 했는데, 사실상의 결승전이라 할 수 있던 아르헨티나와의 8강전에서 1점차로 끌려가던 마당에 미친 듯한 프리킥으로 2-1 역전승을 만들어냈고, 리얼 결승전에서도 2골을 때려넣으며 확실한 도장을 찍었으니 그에게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을 시작으로 온갖 개인상이 돌아간 것은 지당한 결과였다.베컴 : 난 트레블했는데?? 앞서 적었던 대로, 히바우두가 유일하게 호나우두를 제치고 1인자의 자리에 올랐던 20세기의 피날레였다.

6. 2인자

흔히들 발락콩락이라 부르며 축구계 2인자의 대명사로 칭하는데, 이 사람 역시 콩라인으로서는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 뭐 결국 둘 다 축구로 정점 찍은 사람들이니 우스개소리긴 하지만. 히바우두의 경우 브라질의 10번으로 1998년 월드컵 준우승을 시작으로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우승에 기여했고 99년 한 해는 독보적인 에이스였다.[8] 그리고 발락은 히바우두가 팀 내 2인자 이미지가 컸던 것에 반해 독일의 에이스로서 여러 차례 독일 올해의 선수 수상을 했지만 아무래도 국대가 준우승에 머물렀던 점, 팀 우승도 첼시 시절 한 번을 제외하면 왠지 당연해 보이는 뮌헨 시절에 몰려 있다는 점에서 비교할 수 있겠다.그래 봐야 축구로 연봉 수십억씩 받던 사람들...

히바우두는 놀라운 공격 포인트에 비해 전성기가 짧은게 옥의 티라면 옥의 티였다. 1996년 올림픽 국가대표를 시작으로 1997년 컨페더레이션스컵 대회도 출전했지만 그 때는 아직까지 호마리우가 건재했던 시기였고 호마리우가 은퇴한 때인 1998년 프랑스 월드컵~2002년 한일 월드컵까지 약 5년 간 그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줬지만 아쉽게도 한일 월드컵 이후로는 국대에 선발되지 않은 점이 그를 콩라인 반열에 들게 한 큰 이유일지도. 이런 점에서 이탈리아의 스트라이커였던 크리스티안 비에리와 약간 비슷한 신세라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라 리가를 완전히 휘어잡았던 왼발신이었음에도 네임밸류가 잘 알려져있지 않은 편인데, 다른 건 둘째치고 소속팀에서 에이스로 군림할 수 있는 기량이 충분했음에도 팀 동료에 묻혀서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이 커리어 내내 지속되었다. FC 바르셀로나시절 전성기를 불태웠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루이스 피구를 더 주목했다. 개인 득점랭킹 또한 97-98,비에리 : 득점왕 감사합니다 냠냠 98-99,라울 : 득점왕 감사합니다 냠냠 00-01시즌 리그 득점랭킹 2위를 차지했다. 특히 00-01시즌의 활약은 정말 눈부신 것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골 차로 2위였다.라울 : 또다시 득점왕 감사합니다 냠냠

브라질 국가대표에서도 다를 건 없다. 기세등등하게 국가대표에 승선했을 때는 미친 듯이 골 넣어대는 어떤 아저씨가 버티고 있었는데, 그 아저씨가 한물 가자 이번에는 황제라는 양반이 등장해 빼도박도 못하게 되었고, 늙어가는 처지도 억울한데 이번에는 갑자기 웬 외계인엄친아가 튀어나왔다.[9]

월드컵인데, 98년 월드컵에는 본선에서만 3골 3어시, 2002 월드컵 때는 5골 4어시를 찍는 활약을 했다. 순수히 공격포인트 수만으로 따지면 호나우두를 오히려 능가했음에도 그 어떤 스포트라이트도 그에게 오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10]

그러나 브라질이 원래 그런 동네고 자기 자신 역시 다른 동네 같았으면 국대 붙박이였을 사람들 앞길 막은 건 마찬가지라. 당장 베베토만 해도 노구를 이끌고 참가한 98년 거의 경기마다 교체당했으면서도 히바우두와 같은 수의 득점을 올렸다. 자르데우, 지오반니 에우베르, 마르시오 아모로소, 아일톤 곤칼베스 다 실바 같은 유럽 4대 리그 득점왕들조차 히바우두와 전성기가 겹쳐서 쓸쓸한 국대생활을 보냈다. 이들보다 한 끗발 떨어지는 선수들이 국가대표를 노리기는 거의 언감생심에 가까웠으니[11] 남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쏠렸다는 히바우두도 남의 앞길 많이 막은 셈이다.하지만 14년 월드컵 미네이랑의 비극을 보자니 이들 중 한 명만 10년 늦게 태어났어도 종신 국대 했을 듯. 베베토 호나우두 호마리우 클라스 보소...

7. 끝자락


2011년, 커리어 내내 영혼의 파트너라 불렸던 그리고 자기를 가장 엿먹였던 호나우두가 은퇴함에 따라 이제 히바우두 역시 은퇴를 준비하는 듯했으나 페이크였고 여전히 현역이다. 2013년 기준으로 자신의 커리어 15번째 팀인 브라질 1부리그 상 카에타누에서 뛰었다. 2014년 브라질 3부리그 모지미림 FC로 이적하였다.

콩라인, 콩라인이라고 하지만 이미 축구 선수로서 다 이룬 선수로서 불혹이 넘은 나이에도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필드를 누비는 걸 보자면 정말 축구를 사랑하는 선수인 것 같다. 위대한 전설의 마무리가 어디에서 될 것인지 그를 지켜보는 올드팬들도 제법 궁금하게 지켜보고 있다.아직도 은퇴 안 했냐


"팀원들은 나를 보고 할아버지라 불러. 나도 그게 그리 싫지는 않아. 나는 현재 경기를 뛰기 보다는 애들에게 조언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얘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그래도 귀를 잡아 땡겨가며 억지로 조언을 해주지는 않아.

은퇴... 그건 정말 힘든 일이야. 선수에게 있어 은퇴는 첫 번째 죽음이나 마찬가지거든. 하지만 나는 절대 죽지 않을 거야. 선수는 자신이 언제 은퇴해야 하는 지에 대해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어. 난 아직 아니야"[12]

하지만 결국 한국시간으로 3월 16일, 은퇴를 선언했다. 그의 제2의 인생이 성공할 수 있길 빌자.

8. 기타

국내의 한 기자가 듣보잡 취급을 했다. 지못미...#

여담으로 캡틴 츠바사 road to 2002에서 주인공 츠바사의 포지션 라이벌이자 조언자 정도의 위치로 등장했으며, 작품 내에서 츠바사와의 공존에 성공한다. [13]

폐인 양성게임으로 악명높은 풋볼 매니저에서 불혹의 나이지만 능력치가 매우 높은편이라 에디터로 나이를 의도적으로 낮춰 사용하는 유저들이 많다. 나이 때문에 신체 능력은 형편없는 상태에서 기술/정신 부분만 굉장한 상태인데,[14] 나이를 낮춰버리면 안습했던 피지컬이 미친듯이 상승하면서 전천후 괴물이 탄생한다.[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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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00-01시즌 챔피언스 리그 티켓을 놓고 다툰 발렌시아와의 최종전을 시청해보면 알수있다.
  • [2] AC 밀란에서 두각을 못 보인 것은 갑자기 닥친 수비부담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피지컬 능력의 하락이 눈에 띄었다.
  • [3] 애초에 측면 기반 선수도 아니였다. 국내에서 윙포워드라 알려진 계기가 현 바르셀로나 시절의 모습과 현 맨유감독 루이 반 갈의 젠덴 기용으로 인한 기행때문이다(...).이때는 왼쪽 미들이였다만
  • [4] 사실 이때의 히바우두는 자신의 최적의 포지션인 섀도우 스트라이커가 아닌 왼쪽 윙포워드에서 뛰었다. 스트라이커인 클루이베르트와 프리롤에 가까운 오른쪽 윙포워드였던 피구가 있었기 때문에 반 할식 쓰리톱을 세운다면 윙어로 뛰기엔 어정쩡한 위치였지만 그럼에도 득점력이나 파괴력 자체는 죽지 않아서 바르셀로나에서 맹활약 하긴 했다. 반 할이 사임하고 나서 투톱체제로 전환했을때 AC 밀란으로 이적.
  • [5] 루이스 반 할. 전 바이에른 뮌헨 감독.
  • [6] 섀도우 혹은 플레이메이커 위치에서 활약하던 히바우두를 좌측면 미드필더로 고정시키려 했다. 알기 쉽게 예를 들자면, 메시를 좌측 미드필더로 고정시키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 보면 된다.
  • [7] 잉글랜드전 최고 수훈으로는 히바우두에 천금의 어시스트를 선사하고, 역전골을 성공시킨 호나우지뉴를 꼽을 수도 있다.
  • [8] 오죽하면 당시에는 이 사람의 어시 덕분에 '호나우두가 주워먹기를 했네, 황제소리 들었네'라는 풍문이 있었을 정도. 호나우두가 1인자였을 시기에도!
  • [9] 그러나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호나우지뉴와 카카는 스트라이커 내지는 공격수인 히바우두와 포지션이 약간 달라 히바우두에 명성에 누가 갔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지만 어차피 사람들의 주목도를 얘기하는 것이니까. 사실은 같은 피지컬 괴물 계열인 탕아, 아드리아누에게 밀렸다고 봐야 한다.
  • [10] 최종보스가 스포트라이트를 죄다 가져가버렸고, 오히려 사람들은 터키전에서 그가 잠시 보여줬던 헐리웃 액션만 기억해줄 뿐이었다.
  • [11] 루이장 에딜손처럼 국대 승선하는 경우가 있기도 했다.
  • [12] 2013년 상 카에타누에 있을 당시의 인터뷰 내용이다.
  • [13] 작내 이름은 리바울 히바우두를 영어로 읽을 경우 발음되는 거 같다
  • [14] 간단히 말해서 피지컬을 제외한 능력치는 20~30대 현역 공격수 중 그 어떤 선수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 [15] 훈련 방향에 따라 개인기, 골결정력, 드리블, 볼트래핑, 중거리슛, 코너킥, 크로스, 패스, 패널티킥, 프리킥 등 공격관련 기술 모두 20이 나올 수도 있다. 그걸 평균 이상으로 돌아온 피지컬이 받쳐준다.
  • [16] 한마디로 정리해보면, 전성기 마라도나 스텟이 저랬을까 싶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