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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쿠니 시게코

last modified: 2015-04-02 00:10:58 Contributors

東久邇成子

Contents

1. 개요
2. 출생과 성장
3. 결혼
4. 신적강하 후의 삶
5. 병과 사망

1. 개요

쇼와 덴노와 고준황후의 2남 5녀 중 첫째이다. 만약 일본 황실이 여성의 계승을 인정했다면, 맏이인 히가시쿠니 시게코가 쇼와 덴노의 뒤를 이어 여성 덴노가 되었을 것이다.

결혼 전의 이름은 데루노미야 시게코 내친왕(照宮成子內親王), 결혼 후의 이름은 모리히로 왕비 시게코 내친왕(盛厚王妃成子內親王), 1947년 신적강하를 당한 후로는 히가시쿠니 시게코(東久邇成子). 1925.12.6 ~ 1961.7.23

2. 출생과 성장

다이쇼 덴노와 데이메이 황후의 첫 손주이기도 해서, 많은 축복을 받으며 태어났다. 다이쇼 덴노에게 있어서는 생전에 본 유일한 손주이기도 하다.

시게코 공주는 황실의 전통을 깨고 친부모의 곁에서 모유로 자랐으나, 1930년부터 부모와 떨어져 궁성 내에 있는 구레타케(吳竹) 기숙사에서 양육되었다. 양육계가 시중들기 어려우며, 응석을 받아주는 친부모의 곁에서 버릇없이 자라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훗날 태어난 시게코 공주의 여동생들도 이곳에서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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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후리소데 차림의 시게코 공주.

여자 가쿠슈인 시절, 시게코 공주는 작문과 과학 과목을 좋아했다고 한다. 자신의 특수한 신분을 의식한 탓인지, 아니면 덴노와 황실의 신격화가 한창이었던 시대적 배경 때문인지, 시게코 공주는 학창 시절에 이러한 글을 남기기도 했다.

"나는 어떠한 인연에서인지 고귀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나는 끊임없이 세상의 주시 속에 있다. 언제 어디에서나 나는 우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황실을 짊어지고 있다. 나의 언행은 즉시 황실에 영향을 끼친다. 그러니 어찌 태평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후략)."

3.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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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히로 왕과 시게코 공주의 결혼사진.

시게코 공주는 과학 과목을 좋아하여 장래 대학에 진학하여 생물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당시의 공주로서는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대신 그녀는 어른들의 뜻에 따라 시집을 가야 했다. 1941년에 시게코 공주의 결혼이 정해졌는데, 신랑은 나가코 황후의 숙부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 왕의 장남인 히가시쿠니노미야 모리히로(東久邇宮盛厚) 왕이었다. 히가시쿠니노미야 가문으로서는 2대에 걸친 내친왕[1]과의 혼인이기도 했는데, 모리히로 왕의 어머니는 메이지 덴노와 측실 소노 사치코(園祥子)의 9녀인 야스노미야 도시코(泰宮聰子) 내친왕이었기 때문이다. 근친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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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게코의 고모할머니이자 시어머니인 히가시쿠니 도시코(1896.5.11 - 1978.3.5)

1943년 3월 시게코 공주는 여자 가쿠슈인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동년 10월에 모리히로 왕과 결혼식을 올렸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시절이라 공주의 결혼식이지만 간소하게 치러져, 시게코 공주는 어머니 나가코 황후가 입었던 쥬니히토에를 입고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이렇게 호화로운 혼수를 장만해 갔다.

시게코 공주는 어머니 나가코 황후를 많이 닮아, 시집갈 무렵 옷의 치수를 재었더니 나가코 황후의 결혼 당시 체형과 정확히 일치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결혼 당시 어떤 기분이었느냐에 대해 훗날 그녀는 "슬프기도 했고, 싫기도 했고, 행복하다는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라고 했다. 당사자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어른들끼리 정한 결혼인데다가 맞선 한 번도 없이 결혼했기 때문에, 부부의 사이는 어려웠다.[2] 다행히 모리히로 왕은 비교적 성실한 남성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는 부부 사이에 애정이 싹텄다고 한다.

도쿄 대공습이 한창이던 1945년 3월, 히가시쿠니노미야 시게코 비는 도쿄의 한 방공호에서 첫 아이 노부히코(信彦) 왕[3]을 낳았다. 당시 군인이었던 남편 모리히로 왕은 군대의 일로 치바에 가 있었고, 시게코 비는 조산부들에게 둘러싸여 첫 출산을 했다. 나가코 황후는 직접 찾아가는 대신 궁중의 시녀들과 간호부들을 보내어 모정을 나타냈다. 그 후로 장녀 후미코(文子) 여왕, 차남 모토히로(基博)[4], 3남 나오히코(眞彦), 차녀 유코(優子)의 3남 2녀를 낳았다.

4. 신적강하 후의 삶

패전 후 히가시쿠니노미야 가문은 황족의 신분을 잃고 평민으로 전락했고[5] 군인이었던 히가시쿠니 모리히로는 직장인이 되었다. 히가시쿠니 시게코는 아이들을 직접 돌보고, 직접 장을 보면서 조금이라도 저렴한 상점을 찾아다니고, 가계를 돕기 위해 부업을 하는 등, 보통의 주부와 같은 고생을 했다. 그러나 시게코는 어린 시절 접어야 했던 향학열을 되살려, 통신교육을 공부하고 물고기의 양식을 독학으로 성공시키기도 했다.[6] 1958년 1월 2일, 시게코는 NHK의 <나의 비밀>이라는 생방송 프로그램에 깜짝 출연했다. 당시 궁중에 모여 있던 황족들은, 하던 놀이를 팽개치고서 TV에 집중했다고 한다.

1959년 4월, 남동생 아키히토 황태자가 황실의 오랜 전통을 깨고 평민[7] 여성인 쇼다 미치코와 연애결혼을 했다. 미치코 황태자비를 몹시 미워한 친정어머니 나가코 황후와 달리, 시누이인 시게코는 남동생 부부를 응원하는 메시지를 신문에 실었다. 또한 큰올케 미치코 황태자비를 친정 부모 및 형제들과 함께 자신의 집에 초대하여 파티를 열어주기도 했다.

5. 병과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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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첫째 시누이 시게코의 3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미치코 황태자비.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었나 싶을 무렵인 1960년, 시게코는 에 걸렸다. 수술을 시도했으나 이미 의학의 힘으로 고칠 수 없는 상태였다. 덴노 부부는 시게코를 궁내청 병원으로 옮겨 거의 매일 문병했고, 나가코 황후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느 황족으로부터 소개받은 주술사까지 불러왔으나 주술로써 이 고쳐질 리가 만무했다.

1961년 5월 7일, 시게코는 친정아버지 쇼와 덴노의 환갑 잔치에 참석했으나 몸이 너무 쇠약해져 연회 내내 누워있어야 했다. 이것이 최후의 외출로, 결국 시게코는 친정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7월 23일 세상을 떠났다. 시게코의 장례식은 아오야마에서 거행되었고, 나가코 황후는 시게코의 무덤 곁에 홍매화[8]를 심었다. 쇼와 덴노와 나가코 황후는 큰 충격과 슬픔에 잠겼으나, 지난 해에 태어난 장손 히로노미야 나루히토 친왕을 위안삼아 이겨냈다고 한다.

한편 모리히로는 데라오 요시코(寺尾佳子)라는 여성과 재혼하여 아츠히코(厚彦)와 모리히코(盛彦)라는 두 아들을 더 낳았지만, 그 역시 후처와 5남 2녀를 두고 1969년에 죽었다. 시게코의 사후 40년이 되는 2001년 7월 23일, 남동생 부부인 아키히토 덴노와 미치코 황후가 시게코의 묘지에 참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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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일본 황실에서 덴노손녀까지는 내친왕(內親王), 증손녀부터는 여왕(女王)이라 한다. 남자손자까지가 친왕, 증손자부터는 왕. 단 1947년 황실전범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고손자/고손녀까지를 친왕/내친왕이라 했고, 5대째부터 왕/여왕이라 했다.
  • [2] 그래서 시게코의 여동생들은 중매결혼이지만 형식적으로나마 맞선과 데이트 등을 거쳐 결혼했다. 하지만 막내 여동생 시마즈 타카코를 제외하고는, 오히려 맏언니 시게코보다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다.
  • [3] 훗날 쇼와 덴노는 이 첫 손주의 결혼 문제에 대해 "양친이 계신 건전한 가정의 로, 노부히코 본인이 좋아하는 여성이면 된다."고 말했다 한다.
  • [4] 초명은 히데히코(秀彦)로, 훗날 미부(壬生) 가문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 [5] 1947년의 신적강하.
  • [6] 아버지인 쇼와 덴노 역시 물고기 연구를 좋아했던 것을 보면, 부전녀전인 듯.
  • [7] 말이 평민이지, 미치코 황후의 친가인 쇼다(正田) 가문은 닛신(日淸) 제분이라는 대기업을 운영하는 대 재벌가이며, 외가인 소에지마(副島) 가문은 옛 화족(백작) 가문이다.
  • [8] 시게코의 공주 시절 오시루시(お印). 오시루시란 일본 황족에게 주어지는 개인 표식. 주로 식물이며, 사용하는 물건 등에 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