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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역사가 된 것들/정치와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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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치와 행정

1.1.1. 각종 사건들

시대순으로 나열(단, 제6공화국 이후는 가나다순).

1.1.1.1. 고대-광복 이전

  • 봉상왕
  • 고국원왕
  • 재위 기간이나 남은 기록이 너무나도 적은 백제의 군주들 - 삼근왕, 법왕은 짧은 재위기간에 상대적으로 기록이 많으므로 제외한다. 기루왕도 긴 재위기간에 상대적으로 기록이 적을 뿐이므로 제외한다.
  • 진사왕 - 사냥놀이에 방심하다가 근초고왕-근구수왕-침류왕의 전성시대를 끝내버린 인물.
  • 아신왕 - 이 시기에는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의 침략 때문에 국가 존속의 위기가 도래했다. 심지어 국가 막장 테크까지 탔다.(…)
  • 개로왕
  • 동성왕의 말기 행보
  • 안원왕
  • 의자왕의 말기 행보
  • 후기 신라의 왕권다툼
  • 궁예의 말기 행보
  • 천추태후
  • 헌종
  • 복수법 - 개인적 원한을 이유로 살인까지 가능했던 희대의 흑역사. 한국 판 카눈(Kanun).
  • 이자겸의 난
  • 묘청의 난
  • 무신정권
  • 대원간섭기
  • 창왕 - 어린 나이에 오른 고려 33대 임금이었지만 이성계파의 압력으로 인해 권좌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 공양왕 - 고려왕조의 최후를 지켜본 임금이면서 결국 조선왕조 개국 이후에는 공양군으로 강등되었다.
  • 제2차 왕자의 난
  • 이종무의 쓰시마 섬 정벌 - 이 때까지만 해도 쓰시마 섬은 조선왕조가 지배한 적이 있었으나, 현재는 일본 영토로 편입되는 바람에 흑역사가 되었다.
  • 문종을 비롯한 짧은 재위기간에 서거한 조선왕조 임금들 - 대표적으로 5대 문종, 8대 예종, 12대 인종 등이 있는데 이들 임금들은 즉위한지 1,2년도 못 가서 짧은 재위기간에 서거하였다.
  • 단종 - 조선왕조 개국 이래 최초로 즉위한 최연소 임금이었지만 숙부인 수양대군에 의해 권좌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결국은 강원도 영월에서 유배살이를 하였다가 사망하였으며 노산군으로 강등되기까지 하였다. 이후 숙종 시절에 들어서 명예회복을 하였으며, 이후 민중들한테 동정심을 받았다.
  • 세조 - 업적이 있긴 했으나(경국대전 편찬) 자신의 야욕을 위해 김종서와 친 동생을 죽이고(안평대군, 금성대군), 단종을 폐위시킨 후 교살하였으며, 사육신 사건도 유명하다. 또한 금성대군의 유배지인 순흥에 반역죄를 물어 순흥의 주민들을 닥치는대로 살육했으며 형수인 문종의 능을 파해쳐 더더욱. 단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는 김영철이 연기를 했는데 극강의 평가를 받았다. 이 사건을 다룬 것이 바로 계유정난이다.
  • 연산군
  • 선조의 임진왜란 시기와 재위 후반
  • 광해군 - 다만, 이쪽은 철저한 폭군이었던 연산군과는 달리 당쟁의 소용돌이에서 희생된 측면이 강하다.
  • 인조
    • 이괄의 난
    • 정묘호란
    • 병자호란 - 삼전도의 굴욕
    • 소현세자 - 인조의 장남이자 효종(봉림대군)의 형으로 봉림대군과 함께 으로 압송되었지만 에서 지나치게 잘 나간 것이 화근이 되어서 인조의 의심과 미움을 받았다. 결국 1645년 귀국(2.18)하기가 무섭게 병사(4.26)하는데, 인조가 독살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야사에서는 돌벼루에 머리를 맞아 쓰러져 죽었다는 말이 나돌았을 정도.
  • 숙종 - 조선 중기 중흥을 이끌었고 성대를 이룬 왕이었지만 3차례의 환국을 일으키며 많은 피를 불러왔다.
  • 영조 - 조선 후기 중흥을 이끈 업적이 많은 왕이지만 바로 아들인 사도세자를 죽여 큰 흠집을 남겼다. 사도세자를 죽인 이유는 여러가지 복잡한 정치적, 개인적 갈등도 있기에 현재까지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순탄치 못한 재위 과정을 겪은 탓인지 편집증이나 의심, 질투가 심해 이런 큰 인격적 결함도 한 몫을 했다는 분석도 있다. 어쨌든 이 때문에 나름 업적이 많음에도 영조를 존경할만한 국왕으로 꼽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 사도세자 - 정조의 아버지이자 영조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죽지 않았다면 영조의 후계자로 왕이 될 뻔도 하였지만 결국 뒤주 속에서 사망하였다. 대신 그 아들 정조영조의 후임으로 왕위에 올랐다.
  • 세도정치
  • 임오군란 - 흥선 대원군의 지원을 받은 구식군대가 일단 궁궐을 장악하는데는 성공했으나 결국 명성황후의 극비요청으로 흥선 대원군에 납치되어 정계에서 실각되고 명성황후가 복위하면서 사실상 흑역사가 된 것이나 다름없다.
  • 갑신정변
  • 고종 - 수난과 시련을 겪었던데다가 1905년 을사조약, 1910년 경술국치까지 겪게되고 1907년 친일파들에 의해 결국은 자신도 왕좌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 대한제국 - 줄타기 외교를 해서 힘을 키우겠다는 발상은 좋았는데,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이기는 바람에... 망했어요.
  • 순종 -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이자 사실상 망국을 지켜보게 된 비운의 왕. 결국에는 자신도 경술국치로 왕좌에서 내려오게 되어 이왕(李王)으로 강등되었다.
  • 을사조약
  • 일진회
  • 조선통감부
  • 중추원 - 독립협회가 주도한 한국 최초의 근대식 의회와 일제강점기의 조선총독부 자문기관을 포함한다. 후자는 그야말로 악질 친일파 집단이면서 동시에 한 것도 없어서 이미지가 약하다는 점에서 포함된다. 그리고 전자는 모든 점에서 흑역사이다. 일단 설립 과정과 전개부터가 병크성이 강했고, 현대 역사학 관련 서적에서 어지간하면 언급을 꺼려서 설립 자체를 부정하는 경우도 많다는 점에서 흑역사의 본질적 의미에도 부합한다.[1]
  • 일제강점기
    • 경술국치
    • 무단통치(헌병경찰 강압통치)
    • 문화통치
    • 1914년 부군면 통폐합 - 일제가 기존의 대한제국 체제의 행정구역을 임의로 뜯어고쳤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북한지역에 이것을 서류상으로만 부활시켰다. 한성부 성저십리에 속했던 도성 외 지역이 고양군에 편입되었으며, 심지어 산이나 고개로 분리되어 있어서 생활권역이 아예 다른 지역을 통폐합한 곳도 있으며(안산+시흥+과천, 괴산+증평 등), 새로 설치한 행정구역명은 원래 있던 두 지역의 머릿글자를 하나씩 뽑아다 지명을 짓는 형태로 굉장히 성의없이 만들었다. 대표적으로 부천(인천+부평), 구리(구지+망우리), 인사동(인동+사동) 등. 이때 정립된 행정구역의 큰 틀은 2014년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행정구역 개편 담론에서 행정구역 체계 전면 개편이 거론되기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산미증식계획
    • 만보산 사건
    • 위안부 및 정신대 징집
    • 조선총독부 - 청사는 1995년까지 존속되었다가 그 해 광복절에 철거되었다. 완전히 철거된 것은 1996년 2월경.
    • 지원병 및 학도병 강제징병 제도
    • 창씨개명

1.1.1.2. 미군정기

  • 미군정청
  • 인민위원회
  • 4개국의 신탁통치 결정
  • 신탁통치 오보사건
  • 대구 10.1사건
  • 송진우 암살 사건
  • 여운형 암살 사건
  • 장덕수 암살 사건
  • 38선 남북 분단 - 북위 38도를 경계로 남북으로 나뉘며 이후 남북에 별도의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두 쪽 모두 싸움하다 결국 국토가 쑥밭이 되고 민족이 개판 오분전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모든 것의 원흉이 되었다
  • 4.3 사건 - 제주도에 열린 헬게이트. 이 한마디로 가능하다. 아마 대한민국 정부와 자칭우익 단체들이 양민학살 사례에서 국내외로 가장 감추고 싶어하는 과거일 것이다. 그나마 정부는 민주화 이후 노무현 정부 때에 이르러 대통령과 국가차원에서 공식 사과했으며 현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4.3사건의 피해를 기억하자는 분위기이지만(항목에 나와있는데 4.3사건을 기념일로 지정 및 추후 지원하겠다는 공약이 있었다) 자칭우익단체란 집단들은 그런 거 없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 김구의 방북 및 통일정부 수립 논의 - 남북분단 이후 백범 김구가 1948년 김일성과 만나기 위해 방북하여 남북 통일정부 수립을 논의하려고 하였으나 결국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아무런 성과없이 쓸쓸히 귀남(歸南)하였다. 이후로 김구는 이를 계기로 이승만과의 갈등과 이승만을 지지하는 극우세력의 비난과 표적이 되었고 이듬해인 1949년 6월 안두희에게 암살당한다.

1.1.1.3. 제1공화국

  •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 대통령과 정부기관이 반민특위를 공격함에 따라 친일파 제거로 인한 민족문화 정화의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되어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다.
  • 6.25 전쟁(한국전쟁)
  • 국민방위군 사건 - 해당항목 참조. 전쟁 중인 국가의 믿겨지지 않는 수준의 부패가 빚어낸 초특급 병크.
  • 서북청년회
  • 보도연맹 학살사건 - 진영논리가 극심한 정부가 어느정도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건.
  • 부산정치파동(발췌개헌, 5.26 정치파동. 1952.5.26)
  • 호헌동지회 발족(1954.11) - 약칭으로 '호동(護同)'이라고도 한다. 1954년 11월 29일 대통령의 중임제한규정 폐지 등을 골자로 한 제 2차 개헌안이 통과되자(사사오입 개헌파동), 대여투쟁을 펴기 위해 제1야당인 민주국민당과 무소속동지회 및 순무소속 위원 등 60여명이 구성한 야당계 단일 원내교섭단체이다. 대여 투쟁, 자유당 분열/와해 공작, 자유당 소장파 의원들 탈당 유도 등의 활동을 하고 해산하였다.
  • 대구 매일신문 테러 사건(1955.9) - 정권에 비판적인 신문사의 사설 때문에 대구매일신문사가 테러를 당하고 주필 최석채가 구속된 필화사건으로서 대법원판결에서 무죄로 석방되었다.
  • 견통령 사건(1955) - 대구 매일신문사에서 대통령(大統領)을 한자로 써야 하는데 식자공의 실수로 큰 대(大)가 견(犬)으로 바뀌어서 견통령(犬統領)이라고 발행되어 나가는 바람에 그 신문사는 정간 처분을 받고 사장이 구속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 사건 이후로 많은 신문사들이 똑같은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활자에서 개 견(犬)자를 없애 버리거나 대통령(大統領)을 하나로 묶어 놓은 활자를 따로 만들었다.
  • 가짜 이강석 사건(1957) - 재수생이던 강성병이 자신의 외모가 당시 이승만의 양자 이강석과 닮았다는 것을 이용해서 나 이강석이오 한 마디로 도지사와 경찰서장 등을 등쳐먹고 다닌 사건. 그리고 이건 이를 패러디한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과 관련하여 경무대 똥통사건으로 이어진다. 그야말로 흑역사의 연쇄.
  • 진보당 사건 - 1958년 1월 위원장 조봉암을 비롯한 진보당의 전간부가 북한의 간첩과 내통하고 북한의 "평화통일론"을 주장했다는 혐의로 국가기소된 사건으로 조봉암이 처형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평화통일론" 등 통일정책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가 동결되었고, 혁신정당의 활동이 크게 위축되었다.
  • 보안법파동(2.4 파동. 1958.12.24) - 민주당의 진출에 당황한 자유당은 차기 정/부통령 선거에 대비하기 위하여 지방자치법과 국가보안법을 개정하여 야당의 국회단상 발언마저 봉쇄하려 하였다. 이 때 자유당은 야당의 반대를 억누르기 위해 무술경관을 동원, 법안을 통과시켰다.
  • 경향신문 폐간사건(1959.4) - 당시 야당지였던 경향신문을 폐간시켜 야당과 언론을 탄압하였다.
  • 3.15 부정선거 - 이승만이 이끄는 자유당은 1960년 3월의 선거에서 부정선거를 감행하여 정권의 연장을 기도하였다. 자유당 정권은 국민 전체의 이익보다는 일당의 집권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민주주의 기본원칙마저 어기면서 부정부패, 부정선거를 자행하였다.

1.1.1.4. 제3공화국, 제4공화국

  • 4대 의혹 사건 - 5·16군사정변 뒤에 일어난 4가지 부정사건. 증권파동, 워커힐사건, 회전당구기(파친코)사건, 새나라자동차사건을 가리킨다.
    • 증권파동 - 1961년부터 정부의 적극적인 육성책과 국영기업체의 배당률상승 전망 등으로 주식시장은 활기를 띠었으나, 주식의 공급은 적어 투기자금이 증권시장에 집중되어 주가를 계속 상승시키게 되면서 일어났다. 이 가운데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는 증권업자와 연합하여 통일, 일흥, 동명 등 3개의 증권회사를 세워, 증권거래소를 실제적으로 장악하고 주식을 사들여 주가를 폭등시키켰다. 1962년 5월 마침내 과열투기 사태가 빚어져 결재일에 주식거래대금을 결재하지 못하자 증권파동이 일어났다. 군사정부는 금융통화위원회를 통하여 대출을 승인해주는 등 이를 수습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결국 사태를 초래한 증권회사를 비롯하여 5,300여 명에 이르는 영세한 일반투자자들에게 엄청난 재산 손실을 가져다 주었다.
    • 워커힐 - 중앙정보부가 외화 획득의 방편으로 주한 유엔군의 휴양지를 건설하기 위하여 1961년 서울특별시 성동구 광장동에 워커힐호텔을 지으면서 비롯된 것이다. 이들은 호텔건립공사가 자금난에 허덕이자 정부주금(政府株金) 5억 3,590여 만원을 빌려주어 호텔을 짓도록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막대한 공작자금을 유용하였다. 또한 공권력을 휘둘러 교통부장관과 각 군에 여러 장비를 제공하게 하고 인력을 동원하여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 새나라자동차 - 중앙정보부가 자동차공업을 육성시킨다는 명목으로 새나라자동차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일본자동차 400대의 수입과 판매를 담당하게 하였으나, 수입허가 과정에서 공권력이 남용되어 횡령 등 부정행위가 행해진 사건이다. 결국 국산자동차공업의 발전은 이루지 못하고 막대한 예산만 낭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사건들은 정치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저지른 것으로 알려져 1964년 초 제3공화국 국회에서 국정감사를 받기도 하였으나, 그 진상이 명백하게 규명되지 않은 채 부정적인 정치유산으로 남게 되었다.
    • 회전당구기(일명 파칭코) - 군정하에서 1961년 12월 재일교포 김태준(金泰俊) 등이, 빠징고라고 하는 도박성을 띤 회전당구기 100여 대를, 재일교포 재산을 반입하는 것으로 속여 국내에 들여온 사건이다. 그 뒤 계엄 상황하에서도 빠징고 도박이 성행하여 여론이 들끓자 정부는 영업허가를 취소하고 김태준 등을 관세법 위반으로 체포하는 것으로 사건을 매듭지었다.
  • 김두한국회 오물 투척사건
  • 동백림 사건
  • 일본 원조미 매각사건 - 1969년 일본은 한국의 식량난을 돕는다는 명복으로 3차례에 걸쳐서 총 100만톤이 넘는 쌀을 제공했다. 30년 분할 무이자에 현물 상환 조건. 이것만 보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우선 일본에서는 쌀 주권 문제로 이런 식으로 쌀을 외국에 보내는 것을 불법으로 처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본국회에서는 청문회까지 열렸는데, 이 사건의 주역은 기시 노부스케와 당시 총리 사토 에이사쿠 형제였다. 한국은 한국대로 문제인데, 이렇게 들어온 쌀을 속칭 푸대갈이를 해서 한국쌀로 둔갑시켰서 돈 받고 팔았다. 원조물자로 장사를 하거나 착보하는 것은 소말리아 군벌이나 북한 정도나 하는 짓이다. 이 쌀이 당시 일본돈 1300억엔 가치.
  • 정인숙 살해사건 - 고급 요정 출신이었던 정인숙 살인사건과 관련된 정치인 성 스캔들. 정일권을 포함해서 당대의 유력인사들이 수두룩하게 엮이면서 일파만파로 커졌다.
  • 10.2 항명 파동
  • 양공주 -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관리되어진 주한미군용 위안부.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빼도박도 못할 흑역사다.
  • 서울시 무허가 건물 정리 계획
  • 막걸리 보안법 - 술 마시다가 농담삼아 정치인을 까도 잡아갔던 시절이 있었다. 진짜 사실로 술주정 중에 나온 헛소리을 근거로 반공법 위반을 이유로 처벌을 받았을 정도. 이와 비슷한 사례로 최재성 민주당 의원은 학생시절 '6.25전쟁 실태 규정'이라는 문건때문에 조사를 받았는데 당시 수사관들은 그가 음력이 아닌 양력 생일을 쓴다는 걸 트집잡았다. 그의 양력 생일은 9월 9일로 북한의 태양절과 같기 때문이란다.(태양절, 즉 김일성의 생일은 4월 15일이다. 9월 9일은 북한정권 수립 기념일.) 여기에 집의 벽돌색이 빨간색인 것도 문제 삼았다.
    • 코리아게이트 - 한국인 로비스트 박동선이 미국의원들을 상대로 로비를 하다가 걸린 사건. 한국을 위한 로비였다고 자랑스러운 한국인 운운하지만, 결국 내용이 주한미군철수반대, 유신정권이었던 한국에 대한 인권문제 거론 반대 등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고려해도 좋은 평가가 나올 수가 없다. 박동선 개인도 이권을 받고 활동한 전문 로비스트이다. 그리고 이것이 김형욱의 미국의회 발언과 프레이저 보고서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면 결국 목적달성도 실패이다.
  • 윤필용 사건
  • 김대중 납치사건
  • 최종길 교수 의문사 사건
  •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
  • 민청학련 사건
  • 인민혁명당 사건
  • 3.1 민주구국선언 사건
  • 신민당 전당대회 각목 난동 사건
  • 김영삼 총재 의원직 제명 파동
  • 10.26 사건
  • 12.12 군사반란
  •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1.1.1.5. 제5공화국

1.1.1.6. 제6공화국[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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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7년 대통령 선거때의 야권 단일화 실패 - 김대중, 김영삼 두 후보의 단일화 실패로 결국 노태우 당선. 물론 당시 항공기 공중 폭파사건의 영향도 컸다.
  • 12.12 증시부양 조치: 89년 4월 1일 1009p을 정점으로 해서 종합주가지수(現 코스피 지수)가 하락세를 보이자. 정부당국에서 12.12 부양 조치를 발표하며 주식시장 부양에 나섰다. 하지만 효과는 단기적에 그쳤고 다음해인 1990년에 주가지수는 700선이 붕괴되면서 많은 개미들이 손해를 봤다.
  • 꼬마 민주당 - 1990년 6월 15일 3당 합당을 반대하는 이기택, 노무현 등의 통일민주당 잔류세력과 박찬종, 등의 무소속 의원 등을 중심으로 창당했다.
  •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 - 1990년 국군보안사령부(현 국군기무사령부)에서 복무하던 윤석양 이병이 "국군보안사령부에서 주요 민간인들을 사찰하고 있다"라고 폭로하였던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국군보안사령부는 국군기무사령부로 명칭을 변경하였고 서빙고 분실도 폐쇄되었다.
  • 이문옥 감사관 구속 사건 - 1990년 당시 재벌부동산 투기가 문제가 되었다. 감사원 공무원인 이문옥 감사관이 "재벌의 비(非) 업무용 부동산(투기가 목적) 보유 현황을 조사하다가 외압으로 중단되었다"라고 폭로하였던 사건이다.
  •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 - 대학교 운동권의 대표적 실책으로 꼽히나 사실은 노태우 정권의 공안조작 사건이었음이 23년 만에 뒤늦게 밝혀졌다.
  • 정원식 계란 투척 사건 - 대학교 운동권 학생들의 과격한 의사표시 행위로 인해 운동권이 사회적으로 철저히 매장당한 사례. 그리고 덕분에 민자당은 1991년 광역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었다.(564/868)[4]
  • 수서 비리 - 서울특별시 강남구 수서동 개발과 관련하여 장병조 청와대 비서관, 민주자유당의 이태섭 김동주 오용운 의원, 평화민주당의 이원배 김태식 의원 등이 뇌물을 받은 혐의로 사법처리된 사건이다.
  • 흑색선전 유인물 배포 사건: 안기부 요원들이 홍사덕 의원을 낙선시킬려고 흑색선전물을 뿌렸다가 민주당 선거운동원에게 걸린 사건이다.
  • 군 부재자투표 부정 폭로 사건 - 1992년 3월, ROTC로 복무하고 있던 이지문 중위가 "군 부재자 투표에서 노골적으로 집권 여당인 민주자유당 후보를 찍으라고 하고 있다"라고 폭로한 사건이다.
  •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의 기표용구 - 인주 번짐에 의한 무효표 처리를 방지하기 위해 원 안에 사람 인(人)을 넣었는데 그게 김영삼의 'ㅅ'을 암시한다고 항의가 빗발치는 바람에 결국 1994년 지금의 점 복(卜) 모양으로 교체되었다.
  • 초원복집 사건 - 통일국민당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자당측의 불법선거 운동 지시를 폭로했다가, 오히려 역풍을 맞은 사건.
  • 1994년 대통령 김영삼북한 김일성간의 남북정상회담 - 1994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그 해 7월 25일 평양에서 개최하기로 하였으나 7월 8일 김일성의 심장마비 급사(急死)로 인해 흑역사가 되었다. 이후 2000년 대통령 김대중김정일, 그리고 2007년 대통령 노무현김정일간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성사가 이루어졌다.
  • 1995년 도농복합시화 통폐합 이후 폐지되었던 전국 시군구 및 지자체 - 1995년 정부의 도농 복합화의 일원으로 당시까지 수많게 존재해있던 전국 시군을 통폐합하여 하나의 도농지역으로 편입시켰던 정책으로 대부분은 통폐합을 이루었으나 강원도 속초시 & 양양군, 충청북도 청주시 & 청원군, 전라북도 전주시 & 완주군, 전라남도 목포시 & 무안군 & 신안군 등은 통합이 무산되었다. 한때 경기도 안양시 & 군포시 & 의왕시성남시 & 광주시 & 하남시, 수원시 & 화성시 & 오산시 등도 통폐합을 추진한 적이 있었으나 지역민들간의 반대로 역시 무산되었다. 이후 제주특별자치도 출범에 따라 옛 북제주군과 남제주군이 제주시서귀포시로 통합되고 경상남도 창원시 & 마산 & 진해 등이 통합을 이루었다.[5]
  • 노동법 날치기 사건 - 1996년 크리스마스날 새벽에 신한국당 의원이 노동법,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기습적으로 처리했다. 이 날치기 사건으로 인해 양대노총이 총파업한건 물론이고, 지지율이 크게 떨어지면서 결국 노동법 개정안 통과를 철회해야 했다. 거기에 한보 사태가 일어나면서 김영삼 대통령은 식물대통령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하지만 "그 노동법"은 외환위기로 인해 국제통화기금한테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통과되었다.
  • 총풍사건
  • 경기도 성남시, 하남시, 광주시 통합 - 2010년 정부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추진되었던 것으로 한때 이 지역도 한성시 라는 이름으로 통합을 하려는 듯 했으나 결국 이루지 못하고 흑역사되었다. 현실상 통합에 성공한 지차체는 현재의 창원시(창원 + 마산 + 진해)가 유일하다. 나머지 충청북도 청주시청원군, 전라북도 전주시완주군, 전라남도 목포시무안군, 신안군 등도 통합을 추진했지만 해당 시군민들의 반대로 모두 무산되었다. 그러나 청주시청원군은 2012년 6월 27일 주민투표 결과에 의해 사실상 통합되었다.
  • 조폐공사파업 유도 사건
  • 옷로비 사건
  • 새천년 NHK 사건
  • 여성가족부 -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대북송금 사건
  • 대연정 파동
  • 연예병사
  • 세종시 계획 - 서울의 과밀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세종시를 정수도로 지정하려 했으나 관습헌법이라는 뭔가 의미불명의 법에(...) 따라 위헌으로 판결되어 흑역사화. 야 서울 부동산값 보존이다 신난다~
  • 백년 정당을 기치로 내걸었으나, 한 시도 내우외환이 끊기지 않다 공중분해된 열린우리당
  • 과학기술부 - 이전에는 과학기술처로 불렸으나 후에 부(部)로 승격되었고 한때 부총리급 기관으로까지 갔었으나 2008년 이명박 정부들어서 옛 교육인적자원부와 통합하였다. 그러다가 2013년 미래창조과학부로 출범하게 되면서 과학기술 부서의 지위를 되찾았고, 2017년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다시 개칭되어 분리 및 부활 가능성을 점치는 의견도 있다.
  • 국정홍보처 - 예전에 공보처로 불렸던 부서였으며 이후에 국정홍보처로 변경되었다가 이명박 정부 이후 폐지되었다.
  • 쌀 직불금 사건 - 농지에서 직접 농사를 짓는 소작농영농인들에게 돌아가야 할 쌀 직불금을 악덕지주정치인들이 가로채어 차지한 사건
  • 연례 행사처럼 이어지던 보도블럭 갈아엎기. - 자치단체들이 예산을 남길 경우 다음 해 예산이 깎일 걸 우려하여 멀쩡한 보도블럭을 갈아엎는 데 예산을 사용하였다. 요태까지 그래와꼬 아패로도 캐속
  • 이명박 정부 들어서 통폐합 또는 폐지되었던 정부 부처들 - 대표적으로 옛 과학기술부, 정보통신부, 해양수산부, 국정홍보처 등이다. 과학기술부는 옛 교육인적자원부와 통합하여 현재의 교육과학기술부로, 정보통신부는 완전히 폐지되어 현재의 방송통신위원회지식경제부 등으로 일부 소관이 분할 이관되었고 해양수산부는 현재의 농림수산식품부국토해양부로 분할되었다
  • 이명박 정부의 예산안 날치기 - 그것도 3년간 날치기. 3년간 국회에서 공성전이 벌어졌다. 거기다 2010년 김무성 원내대표의 "이것이 정의다." 발언에 무색하게 사회약자 계층에 대한 예산들이 죄다 전액삭감되고 3년간 1조에 달하는 형님예산 논란이 일었다. 여기에 템플스테이 예산 삭감으로 불교계에서 난리가 나 고흥길 정책위원장이 결국 사퇴하였다.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김성회 의원의 민주당 강기정 의원 폭행과 이에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전화로 치하했다는 게 밝혀져 더욱 논란이 되었다. 민주당에서도 강기정 의원의 국회 경위 폭행으로 고소당하는 등 여야 모두 크나 큰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회는 다른나라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 사건 - 총리실 소속 공직자윤리지원관실이 공직자가 아닌 민간인 김종익씨를 불법 사찰한 사건. PD수첩에 보도되면서 사건의 전모가 밝혀졌다. 이 사건으로 사찰을 주도한 이인규 전 청와대 공직윤리지원관이 구속되었다. 김종익씨만 아니라 한나라당 남경필, 정두언, 정태근 의원이 사찰되었다는 정황이 드러났으며 사찰의 배후에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이 있다는 의혹이 일었다. 또한 총리실에서 조직적으로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디가우징까지 했으며 이과정에서 대포폰까지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이인규가 수감되면서 사건은 묻히는가 싶더니 2012년 사건 은폐했던 장진수 전 청와대 주무관이 이번 사건에 청와대가 개입했음을 폭로하면서 다시 세상 밖으로 드러나게 된다. 특히 장 전 주무관에게 5천만원이 건네졌는데 이것이 청와대에서나 사용되는 관봉 형태임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이에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이 기자회견을 하였는데 이게 또 압권. 자기가 사찰문건 폐기한 몸통이라며 호통을 치고 한명숙 민주당 대표에게 끝장토론을 하자더니 마지막엔 엘리베이터 앞에서 자빠지기까지... 오죽하면 청와대에서 저거 낮술처먹고 기자회견 한 게 아니냐며 황당한 반응을 보였다. 결국 몸통 이영호는 구속수감되었다. 여기에 파업중이던 KBS 새노조가 2천여건의 사찰 문건을 폭로하였는데 여야 국회의원들은 물론, 김제동, 김미화, 윤도현같은 연예인들, 삼성재단 같은 기업들, KBS와 MBC, YTN같은 언론까지 무차별적인 사찰을 하였음이 밝혀졌다. 심지어 한 공무원의 불륜을 분단위로 사찰한 기록까지 존재할 정도니 흠좀무. 또한 BH하명이라는 문구로 청와대가 직접 지시한 것이 드러났다. 이에 청와대는 참여정부도 했다며 물타기 하고 있으나 이는 정상적인 감찰행위를 불법적인 사찰행위와 같다고 우기는 짓이다. 결국 검찰도 참여정부의 감찰은 수사범위가 아니라고 밝히기에 이른다. 여기에 검찰들의 수사의지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장진수의 핸드폰에 저장됐다가 삭제된 5천만원 관봉 사진을 15일간 복구 하지 못했는데 장진수는 단 10분만에 복구해버렸다. 이에 당시 사찰에 주도한 것으로 보여지는 권재진 전 민정수석이 법무부장관인데다 대통령의 측근인 한상대 검찰총장 때문에 검찰이 정권의 눈치를 보는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으며 결국 수사에 참여했던 검사가 민주통합당에 찾아가 검찰은 수사의지가 없으니 도와달라고 사정하는 일까지 일어난다. 그야말로 한국판 워터게이트 사건. 이코노믹스지는 이를 가지고 이명박을 남의 뒤꽁무니나 뒤지는 개라고 깠다.
  • 대통령 노무현 안양교도소 독방 - 2009년 전직 대통령 노무현이 검찰조사를 받게 되었을 때 안양교도소에서 검찰이 노무현을 구속확정했을 경우를 대비하여 독방을 준비하였다고 하지만 결국 노무현이 서거하였고 이에따라 기소종결되면서 흑역사가 되었다. 만약 현실이 되었다면 전노 두 대통령에 이어서 3번째로 교도소에 수감될 뻔한 전직 대통령이었지만...
  • 서울특별시의 무상급식 민투표 - 2011년 8월 당시 서울특별시장 오세훈이 무상급식 정책에 반대하여 시민투표로 해결하자는 주장에 따라 서울특별시 지역에 한해서 투표를 실시하였지만 투표율 미비로 개표가 되지 못하여 결국 흑역사로 마무리 짓고 말았다. 이 문제로 오세훈은 책임을 지고 서울시장직을 사임하였다
  • 오세훈 시장 시절 시도하려했던 서울특별시 정책들 - 당시 오세훈은 서울시장 시절 서울특별시를 디자인의 명품도시로 만들겠다는 자임하에 디자인 문화와 관련된 정책들을 추진했으나 오 시장이 무상급식 투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하게 되고 후임시장이 된 박원순이 취임하면서 전면 파기되었거나 계획이 수정되었다
  • 전주시 & 완주군의 시군통합과 통합 전주시 출범 - 1992년부터 시작하여 1995년 도농통합 시행 그리고 2013년 6월까지 3차례나 통합을 시도했지만 보수적인 완주군민들(특히 노인층, 농민층)이 완강히 반대하게 되어서 무산되었다. 그리하여 2014년 7월로 예정된 통합 전주시 출범도 무산되었다.
  • 정보통신부 - 이전에 체신부라는 부서로 불렸고 후에 정보통신부로 명칭을 변경하여 한국의 정보통신 기술을 담당하였던 부서였으나 2008년 이명박 정부 들어서 폐지되고 각각 방송통신위원회지식경제부 등으로 이관되었다. 2013년 미래창조과학부를 거쳐 2017년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개편되면서 옛 과학기술부와 함께 지위를 되찾았다.[6]
  • 재정경제부 - 1998년 김대중 정부 들어서 옛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이 통합되어 만들어진 경제 총괄부서로 2003년 노무현 정부까지도 이어졌으나 2008년 이명박 정부들어서 다시 분할되어 재정 및 재무분야는 옛 기획예산처와 통합하여 기획재정부로, 경제 및 경영분야는 옛 산업자원부로 이관하여 지식경제부로 분할하였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옛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의 부활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 증평군괴산군 증평읍·도안면 시절 - 문화와 생활권이 다른데 일제가 억지로 통합시키는 바람에 흑역사 판정.
  • 청주시청원군의 통합 - 오랫동안 두 지역간 신경전이 벌어졌을 정도로 민감한 부분이며 1995년부터 도농 통합화에 따라 통합을 추진하였지만 청원군민들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2000년대 들어서 양 지역간의 통합운동이 일어나고 주민투표까지 하였지만 결국 통합무산으로 확정되어 흑역사되었다. 그러나 2012년 6월 27일 주민투표를 통해서 결국 통합을 이루게 되었다.
  • 총무처[7]
  • 특채 비리 사건(통칭 똥돼지 사건) - 모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이 특채를 통해 5급 공무원이 되자 논란이 된 사건. 당시 행정고시의 명칭을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으로 변경함과 동시에 특별채용을 신설하였는데, 빽 논란이 일어 특채는 폐지되었다.
  • 한줄서기 -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지하철 회사들을 비롯한 여러 에스컬레이터 관련 회사들은 부품값이 많이 든다고 주장했었다. 특히 서울도시철도공사.
  • 한나라당 - 19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급변경한 가장 큰 이유가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선관위 공격 사건 등 여러가지 사건으로 이미지가 너무 안 좋아져서였으므로 한나라당이라는 이름은 자연스레 흑역사화. 이후 19대 총선에서 웬 듣보잡 당이 한나라당이름을 달고 갑툭튀했지만 1명의 당선자도 못 내고 정당 등록 취소를 먹음으로서 두 번째 흑역사를 연출했다(...).
  •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 - 자유당 시절 3.15 부정선거 당시에나 나올 법한 방식의 부정이 21세기에, 그것도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에서 일어났다. 부정 방법이 진보하긴 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면서 당내의 무능력과 패권주의의 문제점을 상기시켰다.
  • 청와대 대변인 성추문 의혹사건
  •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의혹 - 이로써 자유당 시절 3.15 부정선거 당시에나 나올 법한 방식의 부정이 21세기에 2번이나 일어나버렸다. 역대 최악의 대선 후유증을 남겼다. 2015년 2월 9일 항소심에서 대선개입이 인정되어서 의혹이라고 하기도 뭐하다.기사
  • 통합진보당 그 자체 - 종북논란으로 꾸준히 논란거리가 되었다가 아래의 내란음모 수사 사건으로 대차게 망하고 통합진보당 해산심사 청구를 통해 헌법재판소의 철퇴를 맞아 12월 19일자로 해산되며 흑역사화되었다
  • 4대강 정비 사업 -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추진되던 이 사업은 초기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으로 내세웠던 한반도 대운하의 축소판이며 사업 부지 주변에 토지를 매입해둔 개인과 기업을 위한 것이었다는 의혹과 반대여론에 직면했고 의혹을 제기하는 좌파와, 의혹을 부정하고 4대강 사업의 순기능을 주장하던 우파 사이에서 격렬한 논쟁거리가 되었다. 결국 2013년 7월, 감사원에서 4대강 사업은 대운하 재추진을 염두에 두고 4대강 사업을 설계했다고 발표했다. 한편 감사원의 감사 결과도 이명박 정권 당시의 1차 감사결과와 정권교체 이후의 2차 감사결과가 판이하게 다르며 감사원이 정치권에 휘둘렸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 용산국제업무지구
  • 중구(인천) 용유도-무의도 에잇시티 개발 - 317조원을 들여서 단군이래 최대의 사업이라고 떠벌리고 조감도도 크고 아름다웠지만, 결국 2013년 대차게 망했어요. 지역 언론의 보도.
  • 창조경제 - 박근혜 정부의 공약이자 야심차게 추진한 경제 모델이었으나, 박근혜 -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사실은 국가원수와 비선실세, 기득권층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사회와 대중을 착취하고 속박하기 위한 허울이었음이 드러났다.

1.1.1.7. 정부지방자치단체 캐릭터

  • 코레일 마스코트 '치포치포' - 캐릭터 자체는 귀여웠지만 'KTX-mini'라는 캐릭터들이 나오면서 묻혔다. 지금도 일부 역이나 기차에는 치포치포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참고로 캐릭터 자체의 모티브는 새마을호로 보인다.
  • 서울특별시 대표 캐릭터 범이
  • 창원시의 마스코트 (구)창이 - 대충 그린듯한 약간 병맛나는 디자인이었다(어디까지나 당시 마스코트와 비교해서). 그 후 '창이와 원이'로 변경되었으며 통합된 현재에는 '피우미'로 바뀌었다.
  • 해양수산부의 마스코트 '바다랑', 건설교통부의 마스코트 '토리&도리' - 해양수산부와 건설교통부가 국토해양부로 합쳐지면서 이 마스코트들은 흑역사가 되었다. 지금은 '누리&아라'로 변경되었다.
  • 그 밖에 단체장이 바뀌면서 버려진 지자체 마스코트들
  • 부천에 있던 둘리의 거리. 공식 마스코트는 아니지만 부천시에서 둘리를 통해 만화 도시의 이미지를 밀고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둘리의 거리' 이름만 만들어놓고는 사후 관리가 부실하여 유흥가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되자 둘리나라 측이 '둘리의 거리'라는 이름을 폐지할 것을 부천시에 요청하여 현재는 공식적으로 '둘리의 거리'라는 이름은 사라진 상태.

1.2. 북한

1.3. 중국

1.4. 일본

1.6. 그 외

2. 사법

2.1. 대한민국

  • 김준규 검찰총장 - 후보 청문회때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난데다 검찰총장이 되고난 후 기자들에게 촌지를 돌렸다. 여기에 스폰서검사 논란에 한명숙 사건까지 겹치면서 검찰 이미지는 땅으로 떨어졌다.
  • 검 - 모 그룹에서 '명절 떡값'을 명목으로 검사들에게 돈을 뿌렸던 사건.
  • 스폰서검사 - 역시 모 그룹(...)에서 영향력 있는 엘리트 검사들에게 비밀리에 대규모의 금전적 지원을 하고 있었음이 밝혀진 사건.
  • 신영철 대법관 - 서울중앙지법 판사들의 촛불 시위 재판에 외압을 행사한 혐의로 윤리위원회에 회부되었다. 후에 그는 사퇴결심을 굳힌 것으로 보도 되었지만 아직 사퇴하지 않고 있다.
  • 인민혁명당 사건 - 스위스의 국제법학자협회는 형이 집행된 1975년 4월 9일을 사법 역사상 암흑의 날이라고 규정하였다.
  •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 - 위장전입에 스폰서 의혹으로 낙마하고 말았다.
  • 춘천 파출소장 딸 살인사건
  • 한명숙 뇌물수수 사건 - 처음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이사로부터 5만 달러를 수수했다는 이유로 검찰이 기소하였으나 재판에서 곽영욱의 계속되는 증언 바꾸기에 검찰이 강압수사를 벌였다는 내용의 발언을 하여 무죄판결. 이 때문에 검찰은 유력한 대선주자인 한명숙을 향한 정치공세를 펼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받았다. 다시 별건수사 논란에도 불구하고 건설업자 한모씨로부터 9억원을 수수했다고 기소했으나 이번엔 한모씨가 검찰의 겁박에 못이겨 거짓진술을 했다고 재판에서 진술하며 검찰은 씻을수 없는 오명을 얻었다.
  • 탈북화교 공무원 간첩의혹 - 검찰의 조직적인 조작 행적이 발각되면서 우려했던 공안정국 부활이 현실화되었다.

2.2. 일본

  • 아시카가 사건의 구식 DNA 수사 - 최초의 DNA 수사로 잡은 범인이 17년 후 무죄로 밝혀짐.

2.4. 독일

2.5. 법률

2.5.1. 국내

  • 사회보호법 - 지강헌 인질극 사건 이후 1991년 보호감호제도를 규정하고 있는 사회보호법에 대해 위헌판정이 내려졌고, 2005년 6월에서야 폐지되었다.
  • 성범죄의 친고죄 조항
  • 전기통신기본법 제 47조 1항 - 미네르바 사건때 미네르바를 처벌할 근거로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를 통해 허위 사실을 유포하면 처벌된다는 조항. 그러나 미네르바에 의해 위헌소송이 제기되었고 결국 헌법재판소에서 위헌판결을 받았다.
  • 행형법 - 현재는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로 변경되었고 내용도 전부 뜯어고쳐졌다.
  • 호주제 - 2005년 3월 위헌선언. 이에 따라 2007년 새로운 신분등록제도로 가족관계등록법이 제정되었으며 종전 호주제 하에서 호적의 소재지인 본적제도도 호주제와 함께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니 본적 드립좀 그만쳐
  • 혼인빙자간음죄

2.5.2. 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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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다만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중추원이 존재하는데, 이는 멀쩡한 중앙정부기관이기 때문에 주의. 근대 이후 중추원이 워낙 흑역사라서 중추원하면 근대 이전의 중추원만 언급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 [2] 물론 2번 항목 한정
  • [3] 노태우 전 대통령 이후에 집권한 대통령들도 헌법 상으로는 6 공화국에 포함된다. '제~공화국'의 표기 자체가 헌법개정을 기준으로 한 것이기 때문.
  • [4] 정원식 전 국무총리는 이후에 잠시나마 부산 브니엘학원의 이사장이 되었고 거기서 저지른 심각한 병크는 연쇄작용이 되면서 12년 후에 제대로 나비효과가 되어 부산시 사상 최초 진보교육감 탄생에 약간이나마 기여를 하게 된다 (...) 그야말로 아이러니의 극치...
  • [5] 의외로 옛 직할시 승격에 따라 통합된 곳도 있었는데 광주광역시는 옛 광주시와 광산군이 직할시 승격으로 통합되어 광산구로 편입되었고 대전광역시도 대전시와 대덕군이 직할시 승격으로 통합되어 대덕구로 편입되었다.
  • [6] 일각에선 2차 조직개편을 통해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로 재분리, 부활시킬 것이란 추측도 있었다.
  • [7] 현재의 행정안전부로 통합.
  • [8] 패망 이후 현재의 자위대로 변경.
  • [9] 호소카와 모리히로, 하타 쓰토무
  • [10] 농담이 아니고 인구,환경,하는 행적모두 안습이며 흑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