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last modified: 2015-03-29 20:27:05 Contributors

일본프로야구
세리그 / 퍼시픽리그(Pacific League)
Rakuten1.png
[PNG image (Unknown)]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Tohoku Rakuten GoldenEagles)
S-Lions.PNG
[PNG image (Unknown)]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Saitama Seibu Lions)
Buffaloes.PNG
[PNG image (Unknown)]
오릭스 버팔로즈
(Orix Buffaloes)
C-Marines.png
[PNG image (Unknown)]
치바 롯데 마린즈
(Chiba Lotte Marines)
H-Fighters.PNG
[PNG image (Unknown)]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Hokkaido Nippon-Ham Fighters)
S-hawks.png
[PNG image (Unknown)]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Fukuoka Softbank Hawks)

softbank_mascot.png
[PNG image (Unknown)]
로고 마스코트
해리 호크(左)&허니 호크(右)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Fukuoka Softbank Hawks
福岡ソフトバンクホークス
구단 법인명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株式会社福岡ソフトバンクホークス)
창단 1938년
연고지 후쿠오카후쿠오카
현재 연고지로 이전 1989년
구단 연고지 변천 오사카 부 (1938~1988)
후쿠오카 현 (1989~)
구단명 변천 난카이군 (1938~1944)
킨키니혼군 (1944~1945)
그레이트링[1] (1946~1947)
난카이 호크스 (1947~1988)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1989~2004)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05~)
홈 구장 사카이 오하마 구장 (1938~1939)
난카이 나카모즈 구장 (1939~1947)
고시엔 구장 (1948~1949)
오사카 구장 (1950~1988)
헤이와다이 구장 (1989~1992)
후쿠오카 야후 옥션! 돔 (1993~)
2군 구장 후쿠오카 간노스 야구장 (1989~)
모기업 소프트뱅크
감독 쿠도 키미야스 (工藤 公康)
일본시리즈 우승
(6회)
1959, 1964, 1999, 2003, 2011, 2014
퍼시픽리그 우승
(16회)
1951, 1952, 1953, 1955, 1959, 1961, 1964, 1965, 1966, 1973,
1999, 2000, 2003, 2010, 2011, 2014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2회)
2011, 2014
플레이오프 우승
(1회)
1973
세리그/파리그 교류전 우승
(4회)
2008, 2009, 2011, 2013
공식 홈페이지/한국어 공식 홈페이지

Contents

1. 개요
2. 홈구장 : 후쿠오카 야후옥션 돔
3. 인기
4. 구단 역사
4.1. 초창기 (1938~1949)
4.2. 난카이 호크스 전성기 (1950~1977)
4.3. 길고 길었던 암흑기 (1978~1997)
4.3.1. 구단 매각과 후쿠오카 이전(1988)
4.4. 강팀으로의 재도약 (1998~2003)
4.5. 가을 야구의 비극 (2004~2010)
4.6. 2008년 이후의 동향
4.6.1. 2008년 시즌
4.6.2. 2009년 시즌
4.6.3. 2010년 시즌
4.6.4. 2011년 시즌
4.6.5. 2012년 시즌
4.6.6. 2013년 시즌
4.6.7. 2014년 시즌
4.6.8. 2015년
5. 유니폼
6. 이야깃거리
7. 주요 선수들
7.1. 현역
7.1.1. 감독
7.1.2. 투수
7.1.3. 포수
7.1.4. 내야수
7.1.5. 외야수
7.2. OB
7.2.1. 투수
7.2.2. 포수
7.2.3. 내야수
7.2.4. 외야수
7.3. 준영구결번
7.4. 구단 출신 메이저리거

1. 개요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의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후쿠오카 현. 한국에선 소프트뱅크 호크스라고 알려져 있으나[2] 공식 이름은 한 번도 '소프트뱅크 호크스'인 적이 없다.[3]

2. 홈구장 : 후쿠오카 야후옥션 돔

Example.png
[PNG image (Unknown)]


후쿠오카 돔 항목 참조.

3. 인기

퍼시픽리그 최고의 인기팀으로 엄청난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2014년 기준으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팬은 279만명인데 연고지인 후쿠오카시의 인구수가 150만명(...)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수치.출처 요미우리 자이언츠(889만명), 한신 타이거즈(608만명), 히로시마 도요 카프(292만명), 주니치 드래곤즈(288만명)에이어 5번째로 팬이 많은 구단이며 1~4위 구단들이 센트럴리그 소속 구단이라는 것을 보면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퍼시픽리그 구단중 1위의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고 볼수있다. 2014년 일본시리즈 우승을 한후에 열린 시내 퍼레이드에서 무려 35만명의 시민이 우승 퍼레이드를 지켜보기 위해 시내로 나왔다는 것도 이러한 인기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수 있다.기사, 카퍼레이드 영상(유스트림)

이러한 인기를 바탕으로 후쿠오카 돔뿐 아니라 2군 홈구장이자 1군 연습구장인 후쿠오카 간노스 야구장의 경우에도 평균관중수가 1천명을 웃도는 관중동원을 보여주고 있다.

4. 구단 역사

4.1. 초창기 (1938~1949)

1938년, 난카이 전기철도를 모회사로 한 난카이군 으로 시작한 구단. 현재는 후쿠오카를 연고지로 하지만 초기부터 89년까지 긴 시간을 오사카에 거점을 둔 구단이였다.

초창기 난카이군에서 1944년 모회사가 킨키 일본 철도와 통합되는 바람에 킨키일본군으로 개명당했다가 1946년 킨키 그레이트링, 그리고 1947년 다시 난카이 철도의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한 모회사에 의해 다시 난카이 호크스로 개명되었다. 현재까지 구단명칭 호크스는 이때 난카이로 바뀌면서 처음으로 붙은 명칭으로 난카이 전기철도의 표장에 들어가 있는 매에서 유래했다.

4.2. 난카이 호크스 전성기 (1950~1977)

난카이 호크스 시절인 1947년부터 1988년을 반으로 뚝 잘라, 전기를 전성기 후기를 흑역사로 구분하는 올드 팬들이 많다(...). 이는 모 회사가 잘나갈때 함께 잘나가다 몰락할때 같이 주저 앉은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실제로 난카이 호크스는 23년동안 장기 집권한 츠루오카 카즈토 감독 아래 1951년, 1952년, 1953년, 1955년, 1959년, 1961년, 1964년, 1965년, 1966년 리그 우승과 1959년, 1964년 일본시리즈를 우승하는 등 1960년대까지 전성기를 구가하며 퍼시픽 리그를 휘어 잡았다. 이 시절에 수립한 1955년 퍼시픽리그 우승 당시의 99승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일본프로야구 한시즌 팀 최다승 기록이다. 하지만 일본시리즈 우승은 못했다

4.3. 길고 길었던 암흑기 (1978~1997)

그러나 1973년 퍼시픽리그 우승 이후 휘청하더니 1977년 당시 선수 겸 감독이었던 노무라 카츠야가 팀을 떠난 후 저주에 시달려 80년대에는 공인 퍼시픽 리그 동네북으로 전락한 아픈 과거가 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노무라 카츠야가 팀을 떠난 1978년부터 1989년 다이에가 인수하여 팀 리빌딩을 전념하던 1997년까지 무려 20년 동안 A클래스(1위부터 3위까지)에 한번도 못올라갔다. 이정도면 엘롯기는 장난. 참고로 20년 연속 B클래스는 도통 깨질 기미가 안보이는 일본프로야구 최다기록(...).[4] 숫자로 써보자면 6-5-6-5-6-5-5-6-6-4-5-4-6-5-4-6-4-5-6-4. 참고로 6이 꼴찌. 잠깐 눈물 좀 닦고(...)

4.3.1. 구단 매각과 후쿠오카 이전(1988)

1988년에 모회사인 난카이 전기철도가 구단 운영 포기를 선언하면서 소매유통업체인 다이에가 구단을 인수하게 되고 이미 팬이 떨어질대로 떨어진 오사카를 뜨기로 결정한다 그 당시 난카이는 창단 5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였지만 결국 창단 50주년 기념으로 구단을 매각해버렸다(…). 여담으로 매각조건에 '호크스' 라는 팀명을 유지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사진을 보면 시즌 중반까지 매각이나 운영포기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매각 작업이 상당히 급박하게 돌아간것으로 보인다. 그렇지않고서야 팔려고 내놓은 구단을 창단 50주년 드립을 치면서 기념을 할 리가.

이 급작스러운 구단 매각의 내막에는 구단주이자 난카이 전기철도 회장이었던 가와카츠 덴의 노환으로 인한 사망이 있었다. 팀이 장기적인 부진에 빠지자 난카이 전철 이사회와 노조는 "적자만 내고 그룹 이미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 구단을 매각하라"고 요구해왔다. 하지만 가와카츠는 꿋꿋하게 "내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 까지는 절대 구단만큼은 못 판다."라고 완강하게 버티면서 호크스에 대한 애착을 보였다. 결국은 가와카츠의 눈에 흙이 들어가자마자(...) 구단을 팔아버렸다.

<오사카구장의 안습했던 모습>[5]

난카이 시절의 홈구장이었던 오사카구장은 구단 매각 후 더 안습을 달리게 됐는데. 시내 중심지, 난카이철도의 본거지인 교통의 요지 난바 인근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팀이 도망가면서 방치가 돼버린다. 심지어는 야구장 안에 '주택박람회' 같은 전시회를 해놔서 야구장 안에 견본주택(모델하우스)이 늘어선 정말 굴욕아닌 굴욕적인 장면도 연출되었다.[6][7]

구단매각의 이유 중 하나가 간사이공항의 개통에 따른 난바역 주변 재개발이라는 명목도 있었으나 거품경제 붕괴 후로는 손을 못대고 방치에 방치를 거듭. 결국 21세기가 다 다가와서 헐리고, 지금은 난카이 그룹 계열 쇼핑센터가 자리잡고있다. 다만, 호크스에 대한 대우는 떠나간 프랜차이즈 치고는 어느 나라보다는 대우가 후한게 오사카 구장 자리에 들어선 쇼핑센터에 난카이 호크스 기념관도 있고, 관중석 일부도 보존되어있단다. 전주구장에 쌍방울레이더스 기념비 하나만 세워주면 안되겠니?[8]

난카이의 여담을 하나 더하자면, '아부상' 이라는 만화책이 있는데, 여기 주인공이 난카이 호크스에 있는 것으로 설정이 되어있어서 야구장에 광고판 까지 있었다. 때문에 난카이 호크스 해단 관련 동영상에 작가가 꾸준히 등장하며, 마지막 경기 때는 중계도 함께 했다. 아부상은 호크스가 후쿠오카로 이전하고 다이에와 소프트뱅크의 손을 걸친 지 한참이 된 지금까지도 연재되고 있으며 주인공은 은퇴 뒤 현실에서 영구결번까지 되었다.(...) 결과적으로 80년대까지는 관서지방에 한큐 브레이브스,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 카이 호크스 의 퍼시픽리그 3팀이 존재했으나, 지금은 그 조상도 애매해진 오릭스 버팔로즈(구 한큐 브레이브스)만 남아있게 되었다.

호크스 구단을 매입한 다이에는 당시 재개발 사업이 한창인 기류에 편승하여 1989년 후쿠오카로 구단을 이전하여 팀명을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로 개명하였다.

잠시 새 연고지인 후쿠오카에 대해 설명하자면 1950년 니시테츠 클리퍼스와 니시닛폰 파이리츠로 일본 프로야구에 참여, 그러나 1년만에 센트럴 리그로 참여하던 니시닛폰이 해체되고 니시테츠 라이온즈로 리그에서 뛰었다. 그러나 검은 안개 사건으로 구단은 서서히 망해버리고 세이부에게 팔림과 동시에 연고지를 이전하여 빈 터가 되어버렸다. 자세한 것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참고. 아무튼 후쿠오카에는 크라운라이터 라이온즈 연고이전 이후 10년만에 프로야구팀이 생겼다.

그 후 1993년 당시 돈으로 800억엔을 투입하여 돔구장을 짓는 돈지랄을 과시하면서 지금의 홈구장인 후쿠오카돔으로 홈구장을 옮겼다. 그러나 거품경제가 붕괴되고 일본에 불경기가 찾아오면서 소매업이 주력이었던 다이에가 파산을 하게 되고 이온으로 흡수되면서 구단 매각을 선언[9], 2004년 시즌이 끝나고 재일동포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오너가 구단 운영을 선언하여 2005년 시즌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탄생하게 된다.

4.4. 강팀으로의 재도약 (1998~2003)

1990년대 들어 이 팀의 GM네모토 리쿠오 전무[10]의 공격적인 선수 영입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세이부 라이온즈의 투타의 주축이었던 쿠도 키미야스를 FA로, 아키야마 코지를 대형 트레이드로 영입한 것이나, 큐슈 지역 거물 유망주였던 조지마 겐지를 과감하게 영입한 것은 현재도 자주 회자되는 얘기. 또한 오 사다하루 감독의 지도력으로 난카이 시절의 암흑기(...)에서 벗어나면서 팀이 다 리빌딩 된 이후 충실한 유망주 육성으로 많은 프랜차이즈 스타를 배출하며 퍼시픽 리그의 강호로 떠올랐다. 1998년부터 현재까지 그간의 울분을 풀듯, A클래스에 연속으로 들어가며 완전한 부활에 성공한다. 97년까지 20년 연속으로 B클래스에 머물던 팀이 98년 이후 16년 동안은 딱 2번을 제외하고는 전부 A클래스를 기록했다. 그나마 그 두번의 B클래스도 9월까지 2위를 유지하다가 시즌 막판 1달동안 분위기를 잘못타서 최하위로 떨어진 2008년[11] 하고 3위와 불과 1게임차이로 4위로 밀린 2013년.

1999년 선동열, 이종범, 이상훈 등의 한국인 삼총사가 있던 주니치 드래곤즈를 물리치고 1964년 이후 35년만에 일본시리즈 우승을 한 것을 시작으로, 2000년 퍼시픽 리그 우승,[12] 2003년 한신 타이거즈와 7경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다시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한다. 현재도 '산요(山洋) 신칸센 시리즈', '호응(虎鷹) 시리즈' 등으로 불리며 역대 일본시리즈 명승부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여담으로 이 때 맞붙은 감독은 호시노 센이치.

이 시기의 성적은 3-1-1-2-2-1. 그 전까지 20자리 비밀번호를 찍었던 팀이라는 게 안 믿겨질 정도로 환골탈태했다.

4.5. 가을 야구의 비극 (2004~2010)

2(*)-2(*)-3-3-6-3-1(*)

별표 표시를 한 건 페넌트레이스에서 1위 해놓고도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해서 일본시리즈를 못간 해이다. 보시다 시피 원래대로라면 1을 세 번을 찍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놈의 플레이오프에 발목이 잡혀서.

그놈의 포스트시즌제도가 문제인데, 2004년에 클라이맥스 시리즈 제도가 도입된 이래 2008년을 제외하고는 모두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참가했는데 2010년까지 단 한번도 일본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했다 (...). 이를 두고 호크스 팬들은 플레이오프의 비극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다른 팀 팬들은 가을의 풍물시라고 비웃는다 2004, 2005년에는 정규시즌 1위였으나 각각 세이부 라이온즈, 치바 롯데 마린즈에게 두번다 2승 3패로 일본시리즈 진출권을 내주는 참사가 벌어졌다.

퍼시픽 리그측에서는 이거 1위하고 두번이나 마지막 경기까지 가서 발리니 불쌍하지 않음? 이라고 해서 정규시즌 1위팀에게는 무조건 1승을 주는 어드밴티지를 적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근데 2006년시즌에는 역으로 호크스가 3위로 레귤러 시즌 통과. 이건 뭐 제도가 바뀌니 역으로 호크스에 불리한 규정이 되고 말았다(...). 결국 2006년도는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 격돌했으나 어드밴티지 1승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패퇴했다.

역사적 명승부로 꼽히는 플레이오프 최종전에서는 유리어깨로 소문난 에이스 사이토 가즈미가 4일휴식 후 등판을 강행하며 [13] 최후까지 저항했지만 사이토의 역투에도 불구하고 양팀 모두 9회까지 1점도 내지 못했고, 결국 9회말 투아웃 1,2루 상황에서 니혼햄의 이나바의 2루방향 타구를 2루수가 호수비로 막아냈지만 2루 송구가 옆으로 빗나가며 1루 주자가 2루에 세이프되는 사이 2루 주자가 그대로 홈까지 내달리며 결승점, 소프트뱅크는 또다시 패전하고 만다. [14]


사이토는 결승점이 들어오는 순간 마운드에 쓰러져 대성통곡했고 팀동료들이 부축해주기 전까지 일어나지도 못하는 찡한 장면을 연출했다. 포수 마토바 나오키는 홈플레이트에 주저앉은 채로 울음을 터뜨렸고 4번타자 마츠나카 노부히코는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고 망연자실한 채 그라운드를 떠나지 못했다.

saitoh2.jpg
[JPG image (Unknown)]


통곡하면서 동료들의 부축으로 간신히 그라운드를 떠나는 사이토[15]

2007년에는 치바 롯데에게 밀려서 아예 1스테이지에서 탈락. 2008년은 9월1일까지 2위를 달리고 있었으나 9월 이후로 6승 21패를 꼴찌까지 수직낙하하면서 진출 못했고 2009년 또 다시 클라이막스 시리즈 진출 후 이와쿠마다나카 단 두명의 투수에게 틀어막히면서 도호쿠 라쿠텐에게 1스테이지에서 발렸다.

안습의 절정은 2010년으로 정규시즌 1위로 1승 어드밴테이지까지 먹고 진출했으나 1승만 남긴상황에서 충격의 3연패로 또 일본시리즈에 못갔다. 이로써 호크스는 04년부터 10년까지 7년간 총 6번을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지만 단 한번도 일본시리즈에 가지 못했다. 잠시 눈물좀 닦고(...). 결국 2010년 시즌 끝나고 긴장감 없는 요코하마로부터 FA를 선언한 우치카와 세이이치와 사이타마 세이부의 주전포수 호소카와 토오루, 오릭스에서 자유계약으로 풀린 알렉스 카브레라 등을 지르면서 절치부심. 우치카와가 역대 FA 최고 성공사례 중 하나라고 해도 무방할만한 성적을 찍어주면서 팀 타선의 중심으로 활약한 덕분에 7수만에 일단 클라이맥스 시리즈의 저주는 풀었다.

결국 2011년에서는 일본시리즈의 저주도 풀었지만 정작 아시아 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면서 일본 프로팀이 단 한 번도 내준 적이 없던 아시아 시리즈 우승컵을 내준다(...). 이것도 저주라면 저주겠다(...). 괜찮아.. 2013년엔 얘네들도 우승 못했어... 더군다나 결승도 아닌 4강에서...

4.6. 2008년 이후의 동향

4.6.1. 2008년 시즌

오 사다하루 감독이 마지막 해를 선언한 이해에, 팀 주력들이 줄부상및 부진크리와 베이징 올림픽 차출 크리로, 9월부터 시즌 끝날 때까지 한달동안 6승 21패의 기록적인 수직낙하를 보이며, 2위에서 한달만에 6위까지 굴러떨어지는 역사적 수모를 기록 2008년에는 결국 최하위로 시즌을 끝내고 말았다. 이에 대한 책임 및 건강상의 이유로 인해 오 사다하루 감독이 사임하고 후임 감독으로 아키야마 코지가 부임하게 된다.

4.6.2. 2009년 시즌

2009 시즌에는 2위를 줄곧 유지하다 시즌 막판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역전을 허용하면서 3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리고 클라이막스 시리즈에서 또 1스테이지 참패. 라쿠텐에서 내보낸 투수는 딱 두 명. 이와쿠마와 다나카. 이 정도면 저주다.

4.6.3. 2010년 시즌

2010년 시즌 역시 투타 모두 안정적인 성적을 보이며 상위권을 엎치락 뒤치락 하더니, 막판에 수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 직접대결 3연승으로 한방에 추격후 계속해서 연승 + 사이타마 세이부의 캐삽질 6연패로 4.5게임차를 뒤집어, 2010년 퍼시픽리그 우승팀이 되었다. 참고로 직접대결 3연승 직전에 세이부는 매직넘버 4를 남겨두고 있었다. 그리고 클라이막스 시리즈에 1차전에서 혈전을 벌이고 기어올라온 3위 치바 롯데 마린즈를 맞아, 어드밴테이지 1승을 가진 상태 + 홈에서 모든 경기를 하는 상황에서 3승 1패로 1승만 더하면 드디어 저주를 깨는 일본시리즈 진출직전까지 갔었으나 4차전부터 포풍 3연패를 당해 최종스코어는 어드밴테이지 1승먹고도 3승 4패로, 또 일본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이정도면 굿이라도 해야 할 지경이다(...).

시즌 종료후 FA로 풀린 우치카와 세이이치와 교섭하여 입단시키는데 성공했다.

참고로 치바 롯데와 클라이맥스 시리즈를 벌이던 당시, 구단주인 손정의 회장이 직접 구장을 방문해 이기면 페라리 쏜다 라고 말한 사건도 유명하다. 결국 포풍 3연패로 페라리의 주인은 안 나타났다.

4.6.4. 2011년 시즌

시즌전부터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힌 팀 답게 초반부터 선두를 달렸다. 특히 교류전에서는 10연승을 깔고 시작해서 끝나고 나니 18승 2무 4패. 승률 .858 이라는 캐사기 우승을 달성했다. 단 교류전에서 힘을 좀 뺐는지, 이후 조금 버벅이면서 전반기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 동률 선두로 마감했다. 후반기도 사실상 이 두팀의 싸움이 될것으로 예상 되었었다 그도 그럴게 전반기 종료시점 기준으로 2위와 3위인 치바 롯데 마린즈와 승차가 12.5(...).

그러나 막상 후반기 되니 홋카이도 닛폰햄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수직낙하에 가까운 곤두박질을 치기 시작하여 일찌감치 매직넘버를 켰고, 결국 10여경기 남은 시점에서 우승을 확정짓고 정규시즌 2연패를 달성하였다. 시즌 종료 후 2위인 홋카이도 닛폰햄과의 게임차만 무려 17.5, 3위인 세이부와는 20.5. 이로써 7번째 플레이오프 진출 확정.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예상을 뒤집고 홋카이도 닛폰햄을 2연승으로 꺾고 올라온 3위 사이타마 세이부를 상대로 한단계 위의 전력을 과시하면서 깔끔하게 3연승으로 일본시리즈 진출확정. 플레이오프, 클라이맥스 시리즈 7수만에 돌파에 성공하면서 일단 클라이맥스 시리즈와 관련된 저주는 풀었다. 그리고 맞붙는 상대는 주니치 드래곤즈. 12년만에 리턴매치다! 치열한 투수전 끝에 7차전 홈에서 승리하며 8년만의 일본시리즈 우승에 성공했다.

2011 아시아 시리즈에서는 퉁이 라이온즈에 6대5로 승리를 거두었으며 삼성 라이온즈에 9대0 완승, 오스트레일리아의 퍼스 히트를 3대2로 누르고 결승전에 진출했다. 그러나 결승전에서는 심판의 오심의 도움(김상수 2루 세이프 과정)에도 불구하고 정형식에게 역전타를 얻어맞아 5대3으로 패해 2007년 SK 와이번스 이래 4년 만에 예선에서 3경기 전승하고도 준우승하는 팀이 되었다. 더군다나 기자들과 네티즌들에게 신나게 까였는데 기자들은 "대한민국 왕자의 ‘하극상’에 무너졌다", 이에 네티즌들은 "일본 야구 역사상 최악의 패전이다", "1년간 쌓아온 것이 단 1경기에 무너졌다" 게다가 이번 아시아 시리즈에서는 지금까지 4번의 우승을 일본 팀들이 모두 차지했기 때문에 이번 결승전 패배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결승전이 열리기 직전에 선수들이 흡연을 해버리는 것이 들통나 더욱 까였고 일본시리즈 우승팀에도 불구하고 일본 야구 팬들에게 두고두고 씹혔다. 그나마 오승환을 상대로 2점을 내긴 했지만 무사 만루에 분위기 한창 올랐을 때 병살타를 치고 2점 밖에 못 낸거라(...).

그리고 2년 뒤 어느 구단이 더 처참한 성적표를 들고 오게 된다.[16]

문제는 투수왕국 호크스가 1,2,3선발 스기우치, 와다, 홀튼이 전부 한번에 이적하는 바람에 다음 해 투수진이 절망적인 수준으로 추락했다. 1선발을 2011년 처음 선발전환한 셋츠 타다시에게 맡겨야 할 실정. 세이부의 FA 호아시 카즈유키를 따내는 데 성공해서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이긴 했는데 그래도 구멍을 메우기엔 부족한 느낌을 감출 수 없다. 2011년에 우승해서 정말 다행인 듯.

4.6.5. 2012년 시즌


하지만 저 선수들이 빠져나간 대신 메이저리그 119승 & 다승왕 출신이라는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래드 페니를 연봉 400만달러 + 옵션 350만달러[17]이라는 크고 아름다운 조건으로 영입했고[18] 타선엔 파워툴만큼은 미국에서도 최고로 평가받던 공갈포 AAAA리거 윌리 모 페냐를 추가했다. 강력한 타선과 불펜만큼은 건재하니 새롭게 개편된 선발진의 활약 여하에 따라 여전히 상위권을 노릴 수 있는 전력으로 전망되었다.

메이저리그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1, 2, 3 선발에 주전 유격수까지 털린채로 지난 해 4선발이었던 셋츠 타다시를 에이스로 내세워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그래도 처음에는 오릭스와의 개막 3연전을 싹쓸이하면서 선두권을 유지했으나 다승왕이었던 홀튼과 좌완 에이스 와다, 스기우치의 공백을 메워줄 것을 기대하고 데려온 브래드 페니와 호아시 카즈유키는 사이좋게 먹튀 인증. 철벽 계투조를 형성했던 마하라와 폴켄보그가 부상으로 각각 시즌 아웃과 시즌 도중 장기 이탈. 2011년에 양대리그 수위타자에 MVP를 획득하면서 돈이 아깝지 않은 활약을 보여줬던 우치카와 세이이치마저 이유를 알 수 없는 부진의 늪에 빠지는 등 악재가 연달아 터졌다. 그러면서 그동안 호크스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던 인터리그에서 간신히 꼴찌를 면하는 등 리그 5위까지 추락. 2011년의 성과는 현실에서 프로야구 매니저를 하는 듯한 사기에 가까운 선수빨 덕분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샀다.

그러나 7월경부터 젊은 야수들을 과감하게 기용하면서 전열을 재정비했다. 스기우치, 와다, 홀튼의 이탈에 페니와 호아시까지 먹튀가 된 선발진은 부상에서 부활한 오토나리와 갑툭튀한 고졸신인 다케다 쇼타의 맹활약으로 메우고 마하라와 폴켄보그의 연달은 부상으로 생긴 마무리 공백을 전년도 일본시리즈에서 MVP급의 활약을 보여준 모리후쿠[19]로 대체하는 등 수습에 들어가 8월중순부터 7연승을 거두면서 폭풍질주, 다시 순위경쟁에 뛰어들었다. 올라갈 팀은 올라간다. 한대 선두권도 넘보기는 했으나 8월 말에 사이타마 세이부가 질주를 하고 9월달에 홋카이도 닛폰햄이 상승세를 타면서 결국은 3위로 정규시즌을 마감. 클라이맥스 시리즈 제1스테이지에서는 2위였던 사이타마 세이부를 꺾고 파이널 스테이지에 진출했으나,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또다시(!) 홋카이도 닛폰햄에게 스윕을 당하면서 탈락. 뭐 일단 그 전해에 일본시리즈 우승까지는 해 봤으니 그렇게 안타깝지는 않으려나.

4.6.6. 2013년 시즌

전년도 시즌 후반기에 혜성과 같이 나타나서 팀을 구원했던 고졸신인 다케다가 2년차 징크스에 빠지고, 투수진의 한 축을 이루던 오토나리가 부상으로 1, 2군을 왔다갔다 하는가 하면, 20홈런을 날리면서 쏠쏠하게 활약해준 윌리 모 페냐도 예전의 공갈포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게다가 어려운 상황에서 팀의 정신적 지주가 됐던 고쿠보는 은퇴한 상황. 팀 순위도 한 때 최하위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교류전에 들어오자 전년도에 FA 먹튀가 된 호아시가 귀신같이 부활하고 윌리 모 페냐의 공백은 신 외국인 브라이언 라헤어가 메워줬으며, 그동안 약간 실망스러운 성적이 이어진 중견수 하세가와가 교류전에서 4할대 타율을 기록하면서 수위타자를 차지했다. 시즌 초에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외야수 야나기타, 요시무라, 투수 이와사키 등이 적절하게 활약해 주면서 2년만에 교류전 우승을 차지하고 다시 상위권으로 뛰어 올랐다. 교류전 종료 후에는 라쿠텐, 롯데와 더불어 상위권을 형성했으나, 2012년에 팀 투수진의 주축들이 빠져나간 공백은 여전히 메우지 못했고 올스타 브레이크 때는 다시 5위로 추락했다. 올스타전 이후 8월 초에 잠시 반짝했지만 에이스인 셋츠 타다시 외에는 믿을만한 투수가 없는 상황에서 서서히 힘이 빠지면서 3위 싸움으로 밀려났다. 결국 시즌 최종전에 패하면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게 퍼시픽리그 3위 자리를 내 주고 2008년이후 5년 만에 포스트시즌 탈락의 쓴잔을 마셨다.

2008년 시즌 이후 오랜만에 B클래스로 떨어지면서 2013년 시즌 종료 후 구단에서 대대적인 투자를 할 것이란 소식이 알려졌고 실제로 45억엔(약 450억원)을 풀어서 외국인 선수와 FA선수를 잡을 것이란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MLB 보스턴 레드삭스오클랜드 어슬레틱스등에서 뛴 베테랑 좌완 불펜투수 카지마 히데키를 1년 5500만엔에 잡았고#, FA를 선언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포수 츠루오카 신야와 주니치 드래곤즈의 투수 나카타 켄이치를 영입하였다. 외국인 선수로는 올해 활약이 미미했던 비센테 파디야, 윌리 모 페냐(오릭스 버팔로즈행), 브라이언 팔켄보그(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행)를 떠나보내고 한신 타이거스에서 준수한 활약을 한 선발투수 제이슨 스탠드릿지와[20],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선발 투수 브라이언 울프, 히로시마 도요 카프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구원투수로 활약한 데니스 사파테를 영입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최근 오릭스 버팔로스와 결별 후 MLB 진출과 NPB 잔류 사이에서 고민하던 이대호를 잡으려고 호크스가 3년 14~15억엔을 제시했다는 보도가 나왔으며#, 2013년 12월 3일 기준으로 이대호가 호크스와의 계약에 합의하고 세부 조정에 들어갔다는 보도가 나왔다.# 12월 23일 이대호와 3년 19억엔 계약을 맺었다.

4.6.8. 2015년

3년만에 일본시리즈 우승 후 2년 연속 우승과 통산 7회 우승을 위해 야심찬 준비들을 하였다. 삼성 라이온즈에서 2년동안 에이스 역할을 해주며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견인한 릭 밴덴헐크를 2년 4억엔에 영입하였고, 2007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2014년까지 있던 마쓰자카 다이스케에게 러브콜을 보내 4년 16억으로 영입하는데 성공하였다.

5. 유니폼


2005~ 홈 유니폼


2005~ 원정 유니폼

소프트뱅크가 새 주인이 된 후 홈경기 땐 SoftBank HAWKS가 써진 백색 유니폼을, 원정 시엔 SoftBank가 써져 있는 검은색 유니폼을 입고 경기한다.

난카이 시절에는 녹색 계열의 유니폼을 별다른 디자인 변화 없이 정말 오랜 기간동안 입었다.(사진) 다이에로 매각된 뒤 후쿠오카 돔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빙그레 이글스이쪽도 마스코트가 조류와 비슷한 오렌지색+검은색 유니폼을 입었는데, 매의 눈(?)을 형상화한듯한 새대가리 헬멧이 압권이었다. (사진) 후쿠오카 돔으로 홈구장을 옮긴 뒤에는 일류 디자이너를 고용해 검은색과 빨간색을 위주로 하는 심플한 디자인으로 바뀌었고, 이 역시 소프트뱅크로 팀이 매각되기 전까지 큰 디자인의 변화 없이 10년 가까이 입었다.

6. 이야깃거리

  • 독설로 유명한 노무라 카츠야가 감독겸 선수로 뛰기도 한 팀이기도 하다. 소프트뱅크의 전신인 난카이 호크스에서 플레잉감독으로까지 뛴 난카이 구단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레전드이고 양대리그 분립 이후 최초의 타격 3관왕이자 통산 홈런, 타점 2위. 하지만 부인인 사치요와 난카이 구단과의 불화로 인해 난카이는 공식 자료에서 노무라의 존재를 언급하지 않는다. 후쿠오카로 이전하고 나서는 팬 베이스와 팀 컬러가 완전히 바뀌어서 그냥 언급하기가 어색해져서 언급을 안 하게 됐다. 안습.

  • 2000년대 전후로는 다른 팀에 비해 들어오는 신인들이 대박을 많이 터뜨려서 유망주들의 선호구단으로 자리잡았었다. 대표적으로 죠지마 켄지, 츠나카 노부히코, 쿠보 히로키, 이구치 타다히토의 토종 거포들의 활약과, 사이토 가즈미, 와다 츠요시, 스기우치 토시야, 라카키 나기사, 하라 타카히로 등의 싱싱한 투수진들을 겸비한 매우 강한 구단이였다.

  • 하지만 게임에서는 가장 안습인 팀이기도 했다. 이유는 주요 선수들이 부상당하기 쉽다. 어느 정도라면 5경기 뛰고 전치 일주일은 기본일 정도. 가장 강력한 건 스페랑카 타무라 히토시. 코나미의 야구게임인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에서는 특수능력인 부상정도 1이 4명이나 걸리기도 했다. 2도 3명 정도 되고.[21] 이러한 부상병동의 특징은 지금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로 옮아간 듯 하다.(...)

  • 퍼시픽 리그 구단 중 가장 인기가 좋으며, 센트럴 구단이라도 도쿄 야쿠르트와 요코하마 디엔에이 인기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보다 뒤쳐지면 뒤쳐졌지 앞서진 않는다. 히로시마는 팬들의 충성도는 몰라도 팀성적과 홈구장 수용능력 때문에 관중동원 실적에서는 소프트뱅크에게 밀린다. 그리고 후쿠오카 팬들은 중간에 10년 가까이 홈팀을 잃어버렸던 역사가 있기 때문에 팬들의 팀에 대한 충성도에서도 히로시마 못지 않다. 하지만 본거지가 일본 서쪽 끝에 박혀있기 때문에 예전 홈이었던 오사카를 제외하면 원정에서의 관중동원 능력은 그다지 높지는 않은 편.

  • 호크스 3군의 경우 초청 팀 자격으로 2012년부터 한국프로야구 퓨처스리그에서 초빙 경기를 20경기 가량 갖는다. 또한 한국 대학 팀들하고도 교류전을 치르고 있다.

  • 이 팀은 교류전의 최강자이다. 2005년부터 2014년까지 10년동안 교류전 우승만 4회, 교류전에서 승률 5할을 못 넘긴 것도 단 두 해밖에 없으며, 통산성적에서 센트럴리그 6팀 모두를 상대로 우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요코하마, 야쿠르트, 히로시마는 거의 영양간식 취급이고 요미우리도 이 팀에게는 맥을 못춘다.[22] 통산 승리도 2위팀과 무려 20승 가까이 차이가 난다. 이 쯤되면 리그를 바꿔보는 걸 고려해야하지 않나 싶을 정도.

7. 주요 선수들

7.1. 현역

7.1.2. 투수

  • 11. 나카타 켄이치
  • 16. 히가시하마 나오
  • 17. 브라이언 울프
  • 18. 마쓰자카 다이스케
  • 19. 모리후쿠 마사히코
  • 20. 데라하라 하야토
  • 21. 이와사키 쇼
  • 25. 다쓰미 신고
  • 28. 오토나리 켄지
  • 29. 오바 쇼타
  • 30. 다케다 쇼타 : 2012년 후반기에 갑툭튀해서 8승을 올린 고졸신인. 페니와 호아시가 먹튀하면서 만들어낸 구멍을 메우면서 호크스의 플옵진출에 절대적으로 공헌했다. 결과 2012년에 겨우 11경기에 등판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인왕 획득.
  • 34. 야마다 히로키
  • 38. 모리 유이토
  • 41. 센가 고다이
  • 44. 릭 밴덴헐크
  • 47. 호아시 카즈유키
  • 50. 셋츠 타다시
  • 53. 이가라시 료타
  • 55. 제이슨 스탠드릿지
  • 58. 데니스 사파테
  • 61. 김무영

7.1.3. 포수

  • 8. 츠루오카 신야
  • 12. 다카야 히로아키
  • 27. 호소카와 토오루

7.1.4. 내야수

  • 2. 이마미야 켄타
  • 3. 츠나카 노부히코
  • 5. 마츠다 노부히로
  • 10. 이대호
  • 36. 아카시 켄지
  • 46. 혼다 유이치

7.1.5. 외야수

  • 1. 우치카와 세이이치
  • 6. 요시무라 유키
  • 7. 나카무라 아키라: 2014년 퍼시픽리그 최다안타왕. 2014년 일본시리즈 4차전에서 오승환에게 끝내기 스리런 홈런을 친 선수
  • 9. 야나기타 유키
  • 23. 기도코로 류마
  • 24. 하세가와 유야
  • 43. 에가와 도모아키

7.2.1. 투수

  • 스기우라 타다시 (1958 - 1970)
    일본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잠수함 투수 중 하나로 꼽힌다
  • 조 스탠카 (1960 - 1965)
    진 바키와 함께 일본프로야구 외국인 선수 중 유이한 100승 투수.
  • 에모토 타케노리 (1972 - 1975)
    데뷔는 난카이에서 했지만 밑에 나오는 에나츠 유타카와의 맞트레이드로 한신 타이거스로 이적. 선수생활은 한신 시절이 훨씬 길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한신 OB로 간주되고 있다.
  • 마우치 신이치 (1973 - 1983)
    밑에 있는 야마우치 카즈히로, 야마우치 다카노리와 더불어 동일한 시기에 난카이에서 활동하면서 . 심지어 등번호도 위에서부터 18-19-20으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 에나츠 유타카 (1976 - 1977)
    난카이에서 노무라 카츠야의 권유로 마무리 투수로 전향하여 통산 201승 193세이브를 올린다. 소속한 팀마다 팀을 우승으로 이끌어 우승청부사라는 별명이 붙었다.
  • 김기태(재일교포) (1977 - 1984)
    일본명 가네시로 모토야스. 에나츠와 비슷한 테크로 선발투수에서 구원투수로 전향.
  • 마우치 카즈히로[24] (1981 - 1990)
  • 마우치 타카노리 (1981 - 1992)
  • 리치 고시지 (1990)
  • 카타베 켄이치 (1992 - 2002)
    아이돌 그룹 HKT48 멤버 와카타베 하루카의 아버지.
  • 쿠도 키미야스 (1995 - 1999)
  • 사이토 가즈미 (1996 - 2010)
  • 맷 랜들 (1999 - 2000)
  • 스기우치 토시야 (2002 - 2011)
    2011년 시즌 종료 뒤 FA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이적
  • 아라카키 나기사 (2003 - 2014)
    오키나와 수산고 3학년 때인 1998년 고시엔에서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를 뿌리면서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 해 드래프트에서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지명을 거부하여 그의 교섭을 담당했던 미와타 가즈토시가 자살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라카키 본인은 드래프트 전부터 뜻하던 구단(호크스)이 아니면 프로에 갈 뜻이 없다면서 오릭스에게 지명해도 가지 않을 것이라는 의사를 밝혔지만 오릭스 구단 측에서 생까고 그냥 지명. 그리고 나서는 스카우트이던 미와타에게 "너님이 책임지고 데려오셈"하고 압박을 줬다. 결국 구단의 무리한 강행지명이 비극을 불렀다. 고3때 원하는 구단에 지명을 받지 못하자 대학으로 진로를 바꿔서 드래프트 재수에 나섰고 결국 역지명 제도를 이용해서 원하던 호크스 입단에 성공했다. 그러나 프로에서는 기대만큼 큰 활약을 보이지는 못했다. 특히 제구 불안이 문제였는데 1이닝 3폭투(일본프로야구 최다기록 타이), 1경기 5폭투(일본프로야구 1경기 최다폭투 신기록) 등 다양한 폭투 관련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일본 야구 팬들은 폭투 자체를 ARAKAKI라 부르기도 한다.(...) 참고로 한국프로야구에서는 2011년 시범경기에서 고효준이 1이닝 3폭투를 기록한 적이 있는데, 시범경기라 비공식 기록으로 취급된다. 그나마 2011년 이후로는 부상으로 1군 마운드에도 많이 서지 못하고 재활과 2군 등판을 반복하다가 결국 2014년 올스타전 직후에 야쿠르트로 트레이드 되었다. 국내야구팬들에게는 2004년 이승엽에게 치바 마린 스타디움 장외탄을 맞으며 존재감을 준 적이 있다. 물론 그렇다고 아주 폭망한 유망주라는 건 아니고 3시즌 정도는 활약했는데, 선발 4인방 중 나머지 3명이 부진했던 2004년에는 에이스 노릇을 하며 탈삼진왕이 되기도 했다. 구질로는 규슈 공립대학 4학년 때 156km/h까지 뿌렸던 강속구와 배니쉬(vanish)볼이라고 불리는 세로로 떨어지는 슬라이더가 위력적이다. 2007년까지는 일본프로야구 선발투수 중 평속 최상위권에 있던 선수. 피칭 영상
  • 브랜든 나이트 (2003 - 2004)
  • 하라 다카히로 (2004 - 2012)
    2005년부터 7년동안 180세이브를 올린 마무리 투수였지만 부상으로 2012년 한해를 공치고 나서, FA로 호크스에 복귀한 데라하라 하야토의 보상선수로 오릭스가 지명하는 바람에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오릭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아무리 부상이 있다고 해도 팀의 마무리 투수였던 선수를 그렇게 간단하게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하냐는 까임에 프런트의 답변은 재활때문에 2013년에도 시즌 초반에는 등판 가능성이 낮고 FA 자격 취득이 1년밖에 안 남은지라 설마 데려가겠냐는 생각에 차라리 유망주 한명을 더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전략적 선택을 했는데 정말로 데려갈 줄은 몰랐다고(...) 스기우치 건 때도 그렇고 프런트의 병신인증. 에라이 결국 자신을 버린 소프트뱅크의 처사에 마음이 상했는지 2014년 시즌 후에 FA 자격을 취득했음에도 사용하지 않고 오릭스에 남기로 했다.
  • 양야오쉰 (2006 - 2013)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조별예선 1라운드 한국전 선발로 나온 대만 국적의 왼손 투수.
  • 크리스 니코스키 (2007 - 2008)
  • 릭 구톰슨 (2007 - 2008)
  • D.J. 홀튼 (2008 - 2011)
    이 팀에 있었을 당시 2011년 다승왕에 등극했던 적이 있다. 2012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한 뒤 2년 뒤 KIA 타이거즈로 오면서 한-미-일 야구를 전부 다 경험하게 되었다.
  • 저스틴 저마노 (2009)
  • 라이언 팔켄보그 (2009 - 2013)
    2008년 LA 다저스 시절 7월 6일 샌프란시스코 전에서 박찬호의 승리투수를 날리기도 했던 선수로, 2009년 소프트뱅크에 입단한다. 2M의 장신에서 뿌리는 평속 148~150km/h의 직구, 각도 큰 커브에다 2011시즌 기준 피안타율 .098의 구질이자 본인 입으로 일본에 와서 완성시켰다는 스플리터로 2013년까지 소프트뱅크에서 5년 간 셋업맨과 마무리투수로 활약한다. 가장 좋았던 2009~2011년에는 FIP이 1.55, 0.83, 1.58로 최상급의 스탯. 다만 원래 부상이 잦은 편이라 연투로 굴리기 힘든 스타일이었는데, 2012~2013년에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잔부상에 시달렸고 FIP도 2.47, 3.40(ERA 1.57, 2.04)이었으니 어떻게 보든 하락세가 분명했다. 결국 소프트뱅크는 그를 내보내고 후임으로 데니스 사파테를 영입한다. 물론 이 영입은 성공. 2014년에는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뛰게 되는데, 구위는 감소했으나 마무리로 20세이브를 올리며 나름대로 괜찮은 활약을 한다. 재밌는 건 다나카 마사히로가 이 사람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스플리터 던지는 법을 터득해서 크게 흥했다는 점.피칭 하이라이트

7.2.2. 포수

  • 노무라 카츠야 (1954 - 1977)
    현역 시절에는 난카이의 감독-4번 타자-포수로 팀을 이끌었지만 구단과의 불화로 선수생활 말년에는 이팀 저팀 떠돌아다녀야 했다. 선수로서나 감독으로서나 레전드. 일본프로야구 통산 안타, 홈런, 타점 2위. 콩라인
  • 조지마 겐지 (1995 - 2005)

7.2.3. 내야수

  • 츠루오카 카즈토 (1939, 1946 - 1952, 감독재직 1946 - 1968)
    과거 난카이 시절 23년 간 팀을 이끌던 명장. 선수 생활도 난카이에서만 한 진정한 호크스맨.
  • 쿠보 히로키 (1994 - 2003, 2007 - 2012)
    현 일본야구국가대표팀 감독.
  • 이구치 타다히토 (1997 - 2004)
  • 카와사키 무네노리 (2000 - 2011)
  • 훌리오 술레타 (2003 - 2006)
    시카고 컵스 시절에는 최희섭과 1루 경쟁을 벌였다. 2003년 6월에 다이에에 입단하는데, 시즌 성적은 평범했으나 재팬시리즈 1차전에서 끝내기 안타를 치는 등 팀의 재팬시리즈 우승에 기여한다. 이후 3년 간 109개의 홈런을 때려냈고, 특히 2005년에는 팀 동료 마츠나카와 홈런왕 경쟁을 벌이며 홈런 43개를 기록한다. 2007년에는 치바 롯데로 이적하지만 부상 등이 겹치며 고전한다. 파나마 국적으로 홈런을 친 뒤에는 항상 카메라 앞에서 파나마웅가(파나마운하)!!!라고 외치는 세레머니로 파나마 관광홍보대사를 자처했다. 197/113의 거구로 아주 터프한 탓에 6번이나 퇴장을 당했는데, 거대한 체격에서 날리는 마운드를 PRIDE로 만드는 얼음 파운딩이 수준급이라 투수 입장에서는 꽤나 공포스럽다.영상1 영상2
  • 토니 바티스타 (2005)
    메이저리그 통산 221홈런의 3루수. 소프트뱅크에서 2년 간 총액 1500만 달러에 영입한다. 2005시즌 성적은 27홈런 90타점 OPS.757로 엄밀히 말해 전년도 메이저리그 성적보다는 OPS가 3푼가량 높은 성적이긴 했으나 팀은 만족할 수 없었고, 잔여 연봉인 500만달러를 내주며 방출 시킨다.
  • 로베르토 페타지니 (2010)
  • 이범호 (2011)
  • 렉스 카브레라 (2011 - 2012)
    2002시즌에 55홈런을 때리며 한 시즌 홈런 타이기록을 세웠던 거포. 세이부 라이온즈 시절에는 3연타석으로 삿포로돔 천장에 타구를 맞혔던 적이 있을 만큼 압도적인 파워를 자랑했다. 소프트뱅크에서는 나이 40에 통일구 크리를 맞으며 고전했으나, 어찌됐든 일본프로야구 통산 357홈런 ops.990의 역대급 용병타자. 문제는 미첼 리포트 명단에 올라가 있던 선수로, 2014년에는 멕시칸리그에서 7할 가까운 장타율을 찍던 중 금지 약물 사용으로 리그에서 영구 퇴출 당한다.

7.2.4. 외야수

  • 로세 요시노리 (1955 - 1977)
    한큐 브레이브스의 '세계의 도루왕' 쿠모토 유타카의 뒤로 일본프로야구 통산 도루 2위를 기록한 리드오프. 콩라인 사실 선수생활은 이쪽이 먼저였고 후쿠모토의 롤모델도 이쪽이었지만 왠지 인지도가 떨어져서인지(...) '음지의 도루왕'이라는 비운의 별명이 이후에 붙여졌다. 이쪽도 츠루오카 카즈토처럼 선수, 코치, 감독 생활을 모두 호크스에서 보냈다.
  • 사와 케이지 (1956 - 1964)
    선수 생활은 난카이에서 했지만, 그보다는 닛폰햄 파이터즈의 장기집권 감독으로 더 유명했다. 이쪽도 별명은 '오야붕'
  • 도타 히로미츠 (1970 - 1988, 1991 - 1992)
    40대에 홈런왕을 차지한 '불혹의 거포'. 일본프로야구 통산 홈런, 타점 3위에 랭크되어 있는 강타자로 그 위에는 오 사다하루노무라 카츠야 밖에 없다. 일본프로야구 통산 홈런, 타점 2, 3위를 배출한 무시무시한 팀이다.
  • 라이 히로마사 (1975 - 1985)
    재일교포로 한국명 박종률. 호크스의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중반까지 리드오프를 맡았던 선수다. 빠른 발에 통산 2,000 안타를 기록할 만큼 컨택트 능력이 좋았다. 현재 일본프로야구에서는 최고의 타격코치로 손꼽힌다. 훗날 오릭스 블루웨이브에서 타격코치로 재직했을 때 스즈키 이치로를 지도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 마모토 카즈노리 (1983 - 1995)
    일명 카즈 야마모토. 사사키 마코토와 더불어 80년대 중반 ~ 90년대 초반의 호크스 타선을 대표하던 강타자.
  • 사키 마코토 (1984 - 1993)
    1980년대 중반~90년대 초반, 팀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였으나 당시 에이스였던 무라타 가쓰요시와 더불어 아키야마 코지, 와타나베 도미오 등이 엮인 2대3 트레이드로 세이부 라이온즈로 트레이드 되었다. 이른바 세기의 트레이드의 주인공.
  • 오오미치 노리요시 (1988 - 2006)
    난카이 호크스의 유니폼을 입은 경험이 있는 최후의 현역 선수. 아울러 팀이 다이에의 팀 인수로부터 소프트뱅크로의 매각 때까지 15년간 한번도 팀을 떠난 적이 없는 다이에 호크스 시절 역사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 아키야마 코지 (1994 - 2002)
    1993년 시즌 후 위의 사사키 마코토가 포함된 이른바 세기의 트레이드로 세이부에서 다이에로 이적. 그 후 9시즌 동안 뛰면서 리그 우승 2회, 일본시리즈 우승 1회에 공헌했고, 2009 ~ 2014년까지 소프트뱅크 감독으로 리그 우승 3회, 일본시리즈 우승 2회를 달성했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 빈 미첼 (1995)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왕, 타점왕, MVP를 수상한 경력이 있는 거물급 용병. 일본으로 오기 직전 해에도 타율 .326, 30홈런을 기록했었다. 그러나 지랄맞은 성질 때문에 어떤 팀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선수였다. 메이저리그 파업 여파로 94년 시즌이 중단되고 95년 시즌도 개막이 불투명해지자 다이에 호크스와 계약했다. 개막전에서 만루홈런을 날리면서 일본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으나 메이저리그가 재개되자 태업을 일삼다가 결국 시즌 중반에 멋대로 귀국해버렸다. 일본에서의 성적은 37경기 출전 타율 .300, 8홈런, 28타점. 일본야구 용병 사상 최악의 먹튀 중의 하나로 당시 다이에 호크스의 무모한 돈지랄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였다. 메이저리그에 복귀해서는 99년까지 뛰었다.
  • 페드로 발데스 (2001 - 2004)
    LG 트윈스에서 뛰기 전인 2001 ~ 2004년에 다이에에서 활약했다. 타출장 3/4/5 정도에 홈런 20개가량을 쳐줬던 중장거리포. 2003시즌에는 팀의 100타점 4인방 중 한 명으로 재팬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 타무라 히토시 (2007 - 2012)

7.3. 준영구결번

  • 1. 아키야마 코지
    역대급 선수이다보니 호크스 구단에서 당연히 아키야마의 1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하겠다고 했지만 본인이 고사하고 아키야마가 은퇴한 그 다음 시즌인 2004 시즌에 시바하라 히로시(柴原洋)가 아키야마에게 허락을 받아 1번을 쓰고 시바하라가 은퇴한 후에는 우치카와 세이이치가 그 번호를 물려받았다.

  • 9. 코쿠보 히로키
    1990년대 말~2010년대에 호크스의 전성기를 이끈 3루수. 2013년부터는 일본야구 대표팀의 감독을 맡고 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무상 트레이드로 잠시 호크스를 떠났던 2004~2006 시즌에 결번으로 처리했는데 후에 코쿠보가 호크스로 복귀하면 다시 이 번호를 쓰기로 약속했다. 결국 2012 시즌이 끝나고 코쿠보가 은퇴하면서 2013년부터 9번을 영구결번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일단 공식 발표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2015 시즌부터 일본시리즈에서 선두타자로 맹활약하던 야나기타 유키가 이 번호를 물려받는다고 한다. 9번도 1번과 같이 팀내 주축 선수에게 물려주는 영광의 번호로 취급할 모양.

  • 15. 후지이 마사오
    1999 시즌 '불꽃의 계투'라는 별칭으로 불리면서 오래간만에 호크스가 일본시리즈를 우승하는데 공헌한 투수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0년 10월에 요절하게 되는데, 이후 그가 사용하던 15번을 단 선수가 없어 사실상 결번처리를 했다.

  • 90. 카게우라 야스타케
    실존 선수가 아니라 만화 캐릭터에게 영구결번을 준 특이한 케이스. 미즈시마 신지(水島新司) 만화 '아부상(あぶさん)'의 주인공으로, 이 만화가 연재된 1973년부터 현재까지 영구결번으로 지정돼 있다.

7.4. 구단 출신 메이저리거

  • 무라카미 마사노리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사상 최초의 아시아출신 메이저리거이다. 난카이 호크스 입단후 꽤 촉망받는 신인이었으며, 그 자질을 높게 평가해서 1년차 시즌인 1963년 시즌 후에 미국 야구 배워오라고 샌프란시스코 산하 마이너리그 팀에 야구 유학을 보냈는데 거기서 꽤 쓸만한 활약을 해서 자이언츠 구단이 메이저리그로 콜업을 해버렸다(...) 중간 계투로 2년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뛰면서 통산 6승 1패, 방어율 3.43의 성적을 남겼다. 여기에 고무된 자이언츠 구단은 무라카미를 더 데리고 있고 싶었으나 문제는 여전히 난카이 호크스와 계약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상태였다는 것. 심지어는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있던 시절에도 여전히 일본에서는 난카이 소속 선수로 등록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이중계약(...) 여차하면 난카이 구단과 자이언츠 구단 사이에 분쟁이 일어날 수도 있었으나 애초에 난카이 구단이 무라카미를 보낸 것도 자기 팀 소속 선수로서 야구유학을 보내기 위한 것이었고, 마이너리그에서의 활약에 고무된 자이언츠 구단이 멋대로 메이저리그까지 콜업을 해버린 것이다. 양 쪽이 서로의 제도에 대해서 무지하고 통신이 발달되지 않았던 1960년대니까 일어날 수 있었던 일. 결국 원 소속구단인 난카이 구단의 무라카미에 대한 소유권이 인정되었고 난카이 구단은 돈들여서 야구유학 보낸 유망주를 써먹지도 못할까봐 부랴부랴 무라카미를 귀국시켰다. 난카이 구단의 근시안적인 소인배 근성 때문에 이렇게 사상 최초의 아시아출신 메이저리거는 불과 2년만에 짧은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마감해야 했다. 그 후 두 번째 아시아출신 메이저리거가 나타날 때까지 무려 3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야 했다. 일본에서는 18년간 3개구단에서 뛰면서 통산 103승 82패 30세이브, 방어율 3.64의 성적을 올렸다.
  • 죠지마 켄지 (시애틀 마리너스→일본복귀후 한신 타이거즈)
  • 이구치 타다히토 (시카고 화이트삭스필라델피아 필리스샌디에이고 파드레스필라델피아 필리스→일본 복귀 후 치바 롯데 마린즈)
  • 와다 츠요시 (볼티모어 오리올스[25]시카고 컵스)
  • 카와사키 무네노리 (시애틀 매리너스토론토 블루제이스)

----
  • [1] 차륜(車輪)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난카이가 철도회사이니 당연히 나올 이름. 하지만 2년 밖에 쓰지 못한 이유는 그 당시 영어 속어로 여성의 성기를 지칭했다고 하니...철컹철컹
  • [2] 이 명칭은 원칙에서 벗어난 표기다. 한국 스포츠 언론에서는 팀명을 2어절로 쓸 때 3어절 이상이 되면 팀명에 지역명이 있으면 지역명 + 기업명 표기를(예: 부산 KT), 지역명이 없으면 주 기업명 + 팀명 명(예: 퉁이 라이온스)로 하는 원칙이 있다. 즉, 타종목 원칙에 맞춘다면 현지 표기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가 된다.
  • [3] 크라운라이터 라이온즈를 빨리 잊게 하려고 그랬는지 연고이전 직후부터 후쿠오카를 붙였다. 허나 응원가에서는 소프트뱅크 호크스라고 부른다.
  • [4] 그 기록을 깰 가장 유력한 후보로 센트럴리그의 동네북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와 자급자족형 구단 히로시마 도요 카프가 있다. 참고로 히로시마는 2012년까지 14년 연속 B클래스였다가 2013년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하면서 결국 비밀번호를 끊었다. 요코하마는 사정이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면 정말로 기록을 깰 지도...
  • [5] 이 구장은 1998년에 철거되고 2003년에 그 자리에 난바파크스(なんばパークス)라는 쇼핑몰이 들어섰다.
  • [6] 화차(소설)에 이런 기묘한 상황이 등장 하기도한다.
  • [7] 웃을 수만은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동대문운동장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청계천 지역에서 장사하던 노점상이 청계천 공원화 이후 갈곳이 없어지자 폐쇄된 동대문운동장에서 풍물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장사를 했었다.
  • [8] 하지만 난카이 구단과 등을 돌리고 원수 사이가 된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레전드인 노무라 카츠야에 관한 기록은 지금도 유니폼 한 조각, 사진 한 장 조차 전시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1959년의 일본시리즈 우승장면 사진에서도 노무라는 교묘히 지워놨을 정도. 노무라 카츠야가 난카이 호크스에 어떤 존재였는가를 생각하면...하다 못해 롯데 자이언츠는 최동원의 유니폼을 전시하는 성의는 보였다. 난카이의 뒤끝은 한국 롯데보다 더 지독하다...
  • [9] 다이에의 매각과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의 해체 때문에 NPB 일각에서는 10개 구단으로 프로야구를 재편하고 단일리그제로 환원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때문에 2004년 선수회와 팬들을 중심으로 거센 반대운동이 있었다. 후루타 아츠야, 이와쿠마 히사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오릭스 버팔로즈 등 항목 참조.
  • [10] 이전에는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세이부를 강팀으로 육성한 바가 있었다.
  • [11] 참고로 같은 기간동안 A클래스를 딱 2번 기록한 안습 오릭스 버팔로스의 마지막 A클래스가 이 해이다.
  • [12] 당시 요미우리 자이언츠나가시마 시게오오 사다하루가 일본시리즈에서 만나 "ON 시리즈"라 부를만큼 드림매치였다. 결과는 나가시마의 요미우리가 4승2패로 우승했다.
  • [13] 당시 사이토는 다르빗슈, 와다 츠요시, 루세 요시히사 등에게도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평가받는 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하나였지만, 고질적인 유리몸으로 인해 6일 로테이션을 엄수하고 있었다.
  • [14] 이 결승점 득점 과정은 만화 다이아몬드 에이스 22권의 도쿄 지역예선 결승전 9회말에 그대로 오마쥬된다. 그리고 이 장면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곡이 Second Heaven이다.
  • [15] 사이토 가즈미는 이후 어깨부상이 악화, 2007년에 6승을 올린 후 5년간의 재활끝에 은퇴하고 만다. 현재는 소프트뱅크 코치로 재직중.
  • [16] 그 대회에서 도호쿠를 꺾은 상대는 2년 전 후쿠오카에게 패한 퉁이 세븐일레븐 라이온스다. 적어도 우린 퉁이는 이겼다
  • [17] 다음해 연봉 450만달러의 옵션도 있다.
  • [18] 개막전 1패 후 본인이 미국으로 돌아가 버리면서 매니 아이바, 브라이언 배니스터에 이은 초먹튀 인증.
  • [19] 전년도 일본시리즈에서 노아웃 만루를 무실점으로 막는 큰 활약을 보였다. 1,2차전 홈경기를 패배한 후 분위기를 다시 호크스쪽으로 끌어오는데 결정적인 활약이었다.
  • [20] 스탠드릿지의 퇴단으로 빈 한신의 외국인 투수 슬롯에 오승환이 들어갔다.
  • [21] 이 수치가 높을 수록 부상당하기 어렵다. 카네모토 토모아키는 5거나 아예 철인이란 전용 특기가 있다.
  • [22] 2014년까지 통산 상대전적은 다음과 같다. 요미우리 - 26승18패, 히로시마 - 29승3무12패, 주니치 - 24승2무18패, 요코하마 - 29승1무14패, 야쿠르트 - 26승2무16패, 한신 - 21승3무20패. 그나마 한신이 5할가까운 승률로 체면치레는 했는데 얘들은는 정작 정작 중요한 무대에서... 소프트뱅크를 상대로 맥을 못 췄다.
  • [23] 괄호 안은 재적연도
  • [24] 마이니치-다이마이의 강타자이자, 오치아이 히로미츠 항목에서 언급되는 이와는 동명이인의 투수이다. 한자가 다르다.(타자:山内一弘, 투수:山内和宏)
  • [25] 계약은 했으나 부상으로 계약기간 내내 한 경기도 등판 못하고 방출. 그 후 시카고 컵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트리플A에서 뛰다가 메이저리그로 승격하여 컵스에서 메이저리그 데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