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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

last modified: 2015-04-12 01:39:56 Contributors

侯爵 (Marquess; Marquis, fem. : Marquise; Marchioness)

오등작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

Contents

1. 개요
2. 중국의 후작
3. 유럽의 후작
4. 실제 후작
5. 각종 매체에서의 후작


1. 개요

오등작의 두 번째 작위공작보다는 낮고 백작보다는 높다. 중세기에 공작은 왕족이 아니면 거의 수여받기 힘든 작위였기 때문에 ,일반적인 귀족들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작위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었다.

2. 중국의 후작

동아시아 역사에서 아무개를 뭐시기후에 봉했다는 기록이 바로 후작 작위를 내렸다는 의미이다. 이 경우에는 국가에서 정식으로 봉한 작위이며 실질적으로 방백이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셈이다.

후(侯)는 골문자에서 '화살촉'의 모습에서 따온 것이며, 고대에는 한 부족이나 도시국가의 지배자를 뜻하는 문자였다. 사실상 (王)과 대등하였으나, 주나라가 왕(王)을 독점하면서 후(侯)의 권위는 격하되었다. 그럼에도 후(侯)의 칭호는 오등작 가운데서도 가장 유례가 길고 전통이 공고한 지위였기 때문에 제후의 칭호로서 상징성이 컷으며, 천자 아래의 봉건제 지배자들을 가르키는 말은 '여러 후'이라는 뜻에서 제후(諸侯)가 되었다. 실제로 현대의 금문 연구에 따르면 오등작에서 실질적으로 주요하게 쓰인 것은 후(侯) 뿐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후 가운데 세력이 큰 것이 공(公), 후 밑에 배치되는 소영주가 백(伯)이다.

춘추시대에서는 공작을 제수받은 경우가 (상)나라의 혈통을 이어받은 송나라 공실 뿐이었다. 1급 개국공신이었던 태공망 여상이 분봉받아 세운 , 여상에 못지않는 공훈을 세운 주무왕 희창의 동생이었던 주공이 분봉받아 세운 나라도 모두 후작으로 제수받아 만들어진 케이스. 제후가 아니라면 주나라 왕실에서 일함으로써 받을 수도 있었는데 이 경우에는 경사(卿士)로써 일하는 인물들이여야만 후작위에 오를 정도로 매우 높은 직책이었다. 비록 동성제후국이라도 개국공신이 아니라면 후작을 받기가 어려웠다. 일례로 나라는 동성제후국이지만 개국공신은 아니었기 때문에 정나라 제후는 정백으로 불렸다.

예외적으로 중국의 경우 중앙정부가 막장이라서 스스로 세력을 길러 지방의 군벌이 된 제후가 스스로를 어디어디후(侯)로 자칭한 경우도 있었다. 한나라가 되면 제후의 칭호가 간략화되어 오등작이 사라지고 왕, 공(황족)과 후(공이 있는 자)만 남는다.[1] 또한 등급이 나뉘어 실제 영지를 봉작받은 열후와 영지가 없이 후작위만 받은 관내후로 구분되었다. 열후 역시 영지의 등급에 따라 현후, 향후, 정후로 나뉜다. 현후는 1개 현을 봉지로 받은 제후, 향후, 정후는 현 밑에 소속된 하위 행정구역인 향이나 정을 봉지로 받은 제후이다. 향후나 정후는 봉지명+향후, 봉지명+정후 같은 형식이며, 현후는 그냥 봉지명+후의 형식이다.

3. 유럽의 후작

유럽을 기준으로는 원래 변경에 영지를 소유한 백작들을 높여 부르던 변경백(Markgraf)이란 호칭이었다. 이후 변경지역의 중요성이 강조되며 변경백과 별도의 정식 작위의 하나로 인정은 받았다. 변경백과 후작은 백작이 동시에 또 다른 백작위를 겸할 수 없다는 봉건법의 금제에서 벗어나 두 개 이상의 백작위를 동시에 소유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기에 비교적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변경이란 개념 자체가 서서히 변화되고 기존 후작들이 공작위로 승격되거나 후작령이 하나 둘 폐지되었고, 하급귀족들이 후작을 자칭하는 경우도 늘어서 나중에는 후작이란 지위 자체가 붕 떠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실존인물 중 후작으로 유명한 인물이 그나마 사드 후작 정도.

이를 어설프게 이해한 상태에서 작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며 양판소를 까는 이들이 있는데 사실 이런 비판을 하는 이들 역시 유럽의 시대상이나 작위에 대해서 제대로 모르고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 일단 일반적으로 '양판소'라 불리는 작품들을 보면 대부분 중세의 기사 및 기사도가 등장하는데 이러한 사회상은 분명히 중세의 봉건시대의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작품에서 묘사되는 국가체제는 근대의 모습에 가깝다. 국가에 상비군에 준하는 체제가 있다던가, 재무대신이나 외무대신 등 관료제에 준하는 것으로 보이는 직위가 있다던가, 궁정에서 대규모 무도회가 열린다던가, 국왕에게 결재서류가 쌓여있고 골머리를 썩이는 모습 등등 양판소에서 자주 보이는 모습은 근대 절대왕정 시대의 모습이다. 결국 대부분 양판소의 배경은 이러한 시대상들이 혼합된 모습으로 기본적인 배경 설정부터가 다르기 때문에 실제 유럽의 사회상과 이러한 작품들의 사회상을 그대로 비교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양판소에서 후작 작위를 지닌 인물이 주역급 캐릭터는 커녕 단역 캐릭터에서도 찾아보기가 좀 많이 힘들며, 주인공과 대치하는 귀족은 대부분 공작가家 인물로 떡칠을 해서 안 나오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그나마 나오는 작품은 공작과 같이 다니며 백작과 자작의 따까리 관계처럼 취급되는 경우가 은근히 있다. 후작 직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관료인 경우가 많은데, 현실 역사에서 유럽의 후작들은 대부분 자기 지역에서 한가락하는 대영주였지 관료가 아니였다는 차이가 있다.

그 외에 후작 작위를 지닌 인물이 왕위를 욕심내거나, 권력욕으로 인해 악역을 맡는 작품들도 찾아볼 수 있다.
후장으로 알아들으면 곤란

4. 실제 후작

  • 사드 후작
  •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前 IOC 위원장. 1991년 사마란치 후작이 됨)
  • 비센테 델 보스케 (2010년 월드컵 우승 당시 스페인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2011년 델 보스케 후작이 됨)

5. 각종 매체에서의 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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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유비가 받았던 의성정후나 여포가 받았던 온후 같은 칭호가 여기에 해당한다.
  • [2] 당초 로엔그람 백작가를 하사받았는데 암릿처 성계 회전 이후 황제 프리드리히 4세가 승하하면서 리히텐라데와 손잡고 정권을 장악하면서 후작으로 승격되었고 립슈타트 전역에서 귀족연합군에게 승리를 거둔 후 리히텐라데를 숙청하고 제국재상을 겸임하면서 공작으로 승격되었다.
  • [3] 프리드리히 4세가 승하하고 에르빈 요제프 2세를 옹립하면서 제국재상에 취임하고 작위도 공작으로 승격되었다.
  • [4] 아이젠슈타인이 사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