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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미히토

last modified: 2019-05-17 10:37:51 Contributors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친왕(秋篠宮文仁親王) 후미히토 친왕의 문장

不(ふ)味(み)人(ひと): (밥)맛 없는 사람[1]
오메가 루갈?

Contents

1. 개요
2. 성장기
3. 후미히토에 대한 평가
3.1. 일본 황실망나니
3.2. 실제 성향이 극우인가?
4. 트리비아


1. 개요

일본황족. 아키히토 덴노와 미치코 황후의 2남 1녀 중 차남이자 나루히토 황태자의 남동생[2]. 아키히토 덴노의 장손 히사히토 친왕의 아버지이며, 궁호는 아키시노노미야(秋篠宮).

궁호[3]는 아키시노노미야(秋篠宮)이며, 칭호[4]는 아야노미야(禮宮). 궁호는 황실의 옛 땅인 야마토 북서부의 아키시노(秋篠)에서 유래했다.

일본 황위 계승 서열 1위. 2017년, 2019년 5월 1일에 형 나루히토가 새 덴노가 되면 황사(皇嗣)라 불리기로 결정되었다. 사실상 황태제인 것.[5]

2. 성장기

가쿠슈인에서 수학하였으며, 1984년 4월 가쿠슈인 대학 법학부 정치학과에 입학하였다.[6] 대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영국옥스퍼드 대학교로 유학을 갔고, 1996년 조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류 외에 메기도 연구했다. 그가 쓰는 도장의 문양은 매화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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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1990년 6월 29일 가쿠슈인 대학 1년 후배인 가와시마 키코와 결혼했다. 당시 이 둘은 대학에서 캠퍼스 커플로 만나 동아리 활동 등을 함께 하며 꽤 오랫동안 교제한 사이로, 나루히토 황태자가 결혼한 다음에 결혼할 생각이었지만 예상과 달리 황태자의 결혼 문제가 빨리 해결되지 않자 참다 못한 후미히토 친왕이 청혼했다고.[7] 1991년 10월 23일 장녀 마코 공주를, 1994년 12월 29일 차녀 카코 공주를, 2006년 9월 6일 장남 히사히토 왕자를 낳았다.

2008년에는 아버지 아키히토 덴노와 공동 저작으로 사이좋게 논문을 냈다.# 저자 목록을 살펴보면 "아키히토, 후미히토 A. 등"(Akihito, Fumihito A et al.)이라고 적었는데, 일본 황실은 성(姓)이 없어서 덴노는 '이름'만 올렸고, 후미히토 친왕은 궁호인 '아키시노노미야'를 '성씨'로 등재했다. 참고로 저자 주소는 Imperial Residence(皇居:일본 황궁). 몰라 뭐야 이거 무서워

3. 후미히토에 대한 평가

3.1. 일본 황실망나니

일본 사회에서 나름대로 존경받는 애처가인 형 나루히토 황태자하고는 달리, 후미히토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나쁘다.

일본극우주의자 및 국수주의자와 가깝게 지내면서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늦둥이 아들 히사히토 친왕이 태어났기 때문에 황태자 부부의 무남독녀 도시노미야 아이코 공주여왕 즉위가 사실상 물건너가면서, 더더욱 평이 나빠졌다. 게다가 마사코 황태자비의 안타까운 삶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아이코 공주는 황태자 부부가 천신만고 끝에 낳은 친딸이라는 점이 더욱 부각되기 때문에, 당연히 히사히토 친왕의 탄생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그런 이유로도 자연스럽게 그의 아버지인 후미히토 친왕을 나쁘게 생각한다.

난봉꾼이라는 소문도 자자하다. 공식적으로는 가쿠슈인 대학에서 키코 비를 만나 교제하다가 결혼한 과정이 아름답게 선전되어 왔지만, 사실 키코 비와 함께 활동했다는 동아리는 후미히토 친왕의 하렘이었다는 것. 후미히토 친왕은 마음에 드는 여학생을 보면 꼬붕(…)을 시켜 동아리에 가입하게 했고, 그녀들 중에서 끝까지 후미히토 친왕의 곁에 남았던 여학생이 가와시마 키코였다는 것.[8] 결혼 전에 두 사람이 낙태를 몇 차례 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후미히토 친왕은 키코를 잠시만 데리고 놀다가 버릴 생각이었으나 키코의 아버지 가와시마 타츠히코(川嶋辰彦) 교수가 책임지라며 강력히 반발하는 바람에 결혼에 이르렀다고도 한다.

심지어 이미 고등학생 시절에 키코를 알았다는 말도 있다. 가쿠슈인 고등과 시절 사진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후미히토 친왕은 인근 명문 여고 몇 군데에 "예쁜 여학생들의 사진을 달라"고 요구했고, 다른 학교들은 모두 거절했으나 가쿠슈인 여자 고등과만은 그 요구에 응하여 몇몇 여학생들의 사진을 제출했는데, 그 중에 가와시마 키코의 사진도 있었다는 것.

또한 일본 국내뿐 아니라, 태국에 나가서 성매매를 했다는 의심을 받는 내용의 이야기도 떠돈다고 한다. 태국 여성과의 스캔들로 떠들썩하기도 했다. 2003년 키코 비, 마코 공주, 카코 공주와 함께 간 태국 순방에서까지 그 여성을 만났다고도 한다. 일본에서는 부정적인 황실 관련 보도를 금기시하여 화제가 잘 되지 않지만,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심심치 않게 얘기가 돈다. 그래서 우익 세력 말고는 엄청나게 씹어대는 인물이기도 하다. 과연 밥맛 없는 사람이자 국민 망나니[9]

그리고 젊은 시절, 황실 가족 모임에서 술에 취해 시녀를 희롱하다가 형 나루히토 황태자로부터 질책을 듣자, 지가 잘났다며 난동을 부린 적이 있었다. 그때 새댁이었던 키코 비는 남편의 포악한 행동을 보고만 있었으며, 여동생 노리노미야 사야코 공주가 달려와 두 오빠의 다툼을 말렸다고 한다. 딸들과는 사이가 좋은 듯도 하지만, 두 딸 모두가 만 20세 생일의 성년 기자회견에서 아버지의 성격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큰딸 마코 공주는 "아버지께서 예전에는 화를 잘 내셨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말했고, 작은딸 카코 공주도 자신의 단점에 대해 말할 때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도화선이 짧은 점이 있어, 사소한 문제로 말다툼을 하기도 합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양반이 덴노가 된다면, 황실과 우익이 긴밀하게 연계되어 뒷골 땡기는 일이 날 수도 있다. 까놓고 말해서 우경화에 적대적인 아키히토 덴노가 두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도 요런 양반이나 이런 양반이나 저런 양반들이 나대고 총리대신에 도쿄 도지사를 해먹으며 날뛰는데, 우익 성향의 덴노가 즉위한다면… 그건 미친 짓이야 난 거기서 나가겠어

실제로 그는 히사히토 친왕이 태어난 후로 공공연하게 형님 나루히토 황태자에게 적대감을 드러낸다. 이 때문에 황태자 부부는 아카시노노미야 일가의 행사에 전혀 참여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는 나루히토 황태자와 후미히토 친왕 사이의 갈등이 심각성을 반증하고 있는 상황.

대표적인 예로는 '덴노 정년론'의 주장. 일단은 건강이 나쁜 아키히토 덴노를 고려한 효심의 발언 같지만, 그 이상도 겨누었을 가능성이 크다. 왕위를 계승 중입니다 오죽하면 아키히토 덴노가 사망하면 일본 황실에서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심각한 내분이 일어날 것 같다는 예상까지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나루히토 황태자와 후미히토 친왕은 나이 차가 적어서, 정년제를 시행하면 자기도 덴노 몇 년밖에 못한다. 설마 히사히토 친왕의 치세에 인세이하려고??

2013년 3월에 한 일본의 종교학자가 황실을 위해서 나루히토 황태자가 퇴위하라라는 주장을 했다. 명목상 개인의 의견이라지만, 일본에선 황실을 대상으로 의견을 내는 것조차 어렵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게 절대로 한 개인의 의견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3.2. 실제 성향이 극우인가?

나루히토 황태자와 후미히토 친왕이 대립한 경우, 나루히토 황태자는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후미히토 친왕은 상당한 보수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런데 이것만 갖고는 그가 정말 우익 세력에 동조하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다시 말해, 나루히토 황태자가 황실이 개혁하기를 바라는 것에 비해 후미히토 친왕은 요태까지 그래와꼬 아패로도 계속 여지껏 해온대로 황실을 이끌어나가고자 하는 생각일 뿐, 일본의 우경화는 탐탁치 않게 바라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아키히토 덴노도 수 차례에 걸쳐 극우질 했다가 황실이 망할 수도 있으니 일본의 우경화를 반대하는 발언을 직설에 가깝게 했으나, 아들 출산 문제를 놓고 황태자 부부와 갈등을 빚는 등 황실 내부 문제에는 매우 보수적이다. 한 마디로 현 덴노인 아키히토 덴노도 황실 현안에는 보수적으로, 대외 정책에는 진보적으로 성향을 달리한다는 말. 따라서 후미히토 친왕 역시 아버지처럼 이러한 상황별로 두 갈래의 성향일 수도 있다. 그렇게 따지면 후미히토 친왕이 진심으로 우익 세력을 가까이 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입지를 위해 우익 세력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한 마디로 의심이 가는 정황이 많지만, 후미히토가 극우에 속한다는 명확한 증거는 아직 없는 셈.

4. 트리비아

아키히토 덴노의 숙모 다카마츠노미야 키쿠코(高松宮喜久子) 비[10]는 자녀를 낳지 못해, 조카 아키히토 덴노의 자녀들을 손주처럼 귀여워하며 애정을 쏟았다고 한다. 키쿠코 비는 어린 시절 배운 '아리스가와 류 서도'[11]를 후미히토 친왕에게 가르쳤는데, 어린 후미히토 친왕은 교본에 없는 글자를 묻는 등 종조할머니 키쿠코 비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기도 하였지만, 이를 통해 종조할머니와 조카손자가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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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판 박대기라고 알려진 이 짤방의 주인공이다.(…) 부제는 '왕자의 굴욕'. 그렇잖아도 백발인데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늘 백발인지라 실제 나이보다 10년은 넘게 늙어 보이고, 가끔 검게 염색을 해도 얼마 못가 다시 백발로 돌아가니… 모발의 멜라닌 색소가 많이 모자란지 새치머리만 잔뜩 나는 듯하다.(…) 참고로 30대에 이미 머리가 백발이었는데 콧수염은 또 검어서(…) 엄청난 괴리감을 보이기도. 소문에 따르면 백발로 온 노안을 감추려고 콧수염을 길렀다고 한다. 그런데 더 이상해졌다. 안습


하지만 나이 마흔 먹고 낳은 히사히토 친왕을 의식했는지 최근에는 분노의 염색을 해서 최대한 검은 머리를 유지하려고 한다. 할아버지 같던 아버지가 젊어졌어요 옆의 커트머리를 한 여성이 아내 키코 비.


그런데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얼굴 자체가 노안같기도 하고 이래저래 애매하다.(…) 어쩌면 노안컨셉일지도 사실 내일 모레 50임을 감안하면 오히려 동안에 가깝다고 봐 줄 수도 있다.

참고로 위 사진은 2013 도쿄국제도서전 개최 첫날인 7월 3일에 찍었는데, 예고도 없이 한국관에 들러서 박경리토지 일본어판을 읽는 모습이다. 안경을 끼고서야 책을 볼 만큼이면 과연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구려

그런데 후미히토 친왕이 그 사이 도서전에 자주 왔어도 특정 국가 부스의 방문은 이번이 처음인데다, 한국관에 느닷없이 오더니만 조선 통신사 행렬도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는 여러 책들 가운데 토지를 직접 집어서 안경까지 써가며 유심히 훑어봤다고. 게다가 이렇게 머무른 시간이 총 20여 분으로 상대적으로 길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후미히토 친왕이 한국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듯하다.

애초에 큰딸은 졸업 작문에다 "한국에 인연을 느꼈다"며 쓰고 작은딸이 학교에서 소녀시대 춤을 따라 해도 그냥 내버려 둔 것만 봐도, 한국에의 인식이 어느 만큼 긍정적일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일본 내 소문인데, 가쿠슈인 대학 시절에 친하게 지낸 한국인 여자친구도 있었다고. 만약 그가 극우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면… 본격 극우파 따위, 쓰고 버리는 사냥개일 뿐! "너희는 내 아들을 덴노로 만들기 위한 장기말일 뿐이다!"

하지만 개별적인 한국인 한둘이나 한국 소설에 호감이 있더라도 한국 전체에 우호적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려우니, 이런 건 그냥 사소한 일화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보단 딸내미들과 대화가 안 통하니 어떻게든 딸내미들이 좋아하는 걸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눈물나는 평범한 일본인 아빠 A로 봐도 될지도(…)

그리고 우리나라도 일본을 극성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이 막상 같은 학교에 일본인이 있거나 회사에 일본인이 있다고 해서 어디서 감히 일본인이 나에게 말을 거는가!! 하고 말도 못붙이게하면서 괴롭히는 사람이 없듯이 일본도 우익이라고 해서 한국인을 모두다 무조건 적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거나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멀쩡한 학생을 괴롭히거나 위해를 가하는 일은 없다.


일본 황실에서는 최장신. 178cm라서 꽤나 특출나(…) 보일 정도.[12] 뮤지션들이 모임에서의 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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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웃고 넘어갈 수만은 없으니, 실제 일본에서 우익 세력을 빼고는 후미히토 친왕을 엄청나게 씹어댄다고 한다.(…) 자세한 건 아래 참고.
  • [2] 사실은 미치코 황후의 아들이 아니라는 카더라도 있다. 궁에서 공연했던 다카라즈카 배우의 아들이라는 가쉽이 떠도는데, 실제 사진을 보면 닮았다. 여동생 구로다 사야코 또한 미치코 황후의 친딸이 아니라는 소문이 있다. 하긴 이 모녀는 너무나도 안 닮았다.(…) 다만 이 모녀는 사이가 대단히 애틋하다고.
  • [3] 황태자 아래, 즉 덴노의 차남 이하인 남성 황족이 결혼하여 가장(家長)이 될 때 주어지는 이름. 자녀들은 아버지의 궁호를 따르며, 장남이 아버지의 궁호를 계승한다. 차남 이하는 결혼하면서 새로운 궁호를 다시 받는다.
  • [4] 덴노의 자녀와 황태자의 자녀에게 주어지는 개인 이름. 나루히토 황태자의 칭호는 히로노미야(浩宮)였고, 구로다 사야코의 칭호는 노리노미야(紀宮)였다. 그리고 나루히토 황태자의 무남독녀 아이코 공주의 칭호는 도시노미야(敬宮).
  • [5] 현행 황실전범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은 '황태자'와 '황태손'뿐, '황태제'는 없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 [6] 공부를 퍽 못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후미히토 친왕의 점수가 커트라인이 되어, 1984년 당시 가쿠슈인 대학의 입학생 수가 많았다고 한다. 더불어 그의 장녀 마코 공주와 차녀 카코 공주도 아버지를 닮아 공부를 못한다고 한다.
  • [7] 가쿠슈인 대학 근처 횡단보도의 신호등 아래에서 청혼하여 일명 '신호등 아래의 청혼'으로 유명했고, 문제의 그 장소도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 [8] 가와시마 키코는 후미히토 친왕을 만나 그가 왕자임을 알게 된 후, 이전까지 쓰던 보통의 말씨를 일본 황실 특유의 말씨로 싹 바꾸었다고 한다. 즉 그때부터 황실로 시집가기로 마음먹었던 것.
  • [9] 더군다나 키코 비가 후미히토 친왕을 상당히 내조한다는 점에서 본다면… (자세한 사항은 키코 비 항목 참조) 카사노바
  • [10] 다이쇼 덴노의 3남 다카마츠노미야 노부히토 친왕의 아내.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손녀이기도 하다. 자녀가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노부히토 친왕에게 동성애 성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다.
  • [11] 키쿠코 비의 외가인 방계 황족 아리스가와노미야 가문에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서예 기법. 아리스가와노미야 가문의 마지막 당주 다케히토 친왕의 자녀들 중 차녀 미에코(實枝子) 여왕만이 유일하게 생존하여 이를 배웠고, 미에코는 훗날 자신의 딸 키쿠코에게 이를 전수했다.
  • [12] 그 다음으로 키가 큰 사람은 형수인 마사코 황태자비. 여담이지만 황태자비가 황태자보다 더 키가 크다. 진짜로 윤종신 전미라 부부 느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