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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

last modified: 2015-04-12 00:51:59 Contributors

水原 華城行宮 / Hwaseong Haenggung Palace

hwa12.jpg
[JPG image (Unknown)]


정문인 신풍루에서 바라본 화성행궁.



Contents

1. 개요
2. 역사
2.1. 복원 논란
3. 기타


1. 개요

경기도 수원팔달구 남창동에 위치한 행궁. 조선 22대 임금 정조가 세운 수원화성 내부에 건립된 행궁으로, 건립 당시는 21개의 건물 576칸 규모로 지어졌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엄청난 훼손을 당했지만 지금은 복원사업을 통해 옛 모습을 상당부분 되찾았다. 현재도 복원이 진행중이며 2003년 7월 말 봉수당, 득중정, 궁녀와 군인들의 숙소 등 482칸의 복원을 완료한 1단계 공사가 끝났다. 수원시나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의 복원 지원도 적극적인 편이라 조만간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주로 조선의 국왕이 머물던 임시 처소로서, 정조 이외에도 순조, 헌종, 고종 등 역대 왕들이 화성행궁을 찾아 이곳에 머물렀다. 평소에는 수원 부사 또는 유수가 집무하던 관아로서도 활용되던 곳이다. 화성 행궁은 조선시대에 건립된 행궁 중 규모가 가장 크며, 수원 화성과 더불어 함께 정치적, 군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건축물이다.

화성행궁은 조선 후기 정치와 군사 및 사회문화의 변화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산이며 발굴조사 및 복원정비사업을 통해 조선시대 행궁의 모습을 재현할 수 있게 된 중요한 문화유적으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크다.

2. 역사


화성행궁은 처음부터 별도의 독립된 건물로 일시에 건축된 것이 아니라 행궁과 수원부 신읍치의 관아건물을 확장·증측하는 가운데 조성되었다. 주로 수원화성을 건설하는데 관심을 기울이던 정조 시기에 많이 증축되었다. 이 때문에 각 건물마다 지어진 시기가 다른데, 그 과정이 성성역의궤에 잘 기록되어 있다.

정조 서거 직후인 순조 1년(1801)에는 행궁 옆에 화령전을 건립하여 정조의 진영을 봉안했다.

일제강점기동안 화성 행궁의 건물들은 무참히 헐려나갔으며, 그 부지에는 신풍초등학교를 비롯한 많은 근대 건물들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1997년에 수원화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후로는 수원시에서 1999년부터 복원사업을 펼쳤고, 꾸준하게 화성 행궁지의 건물들을 매입하여 철거한 뒤 행궁 건물들을 복원해 나갔다. 2011년인 지금은 이미 1차적으로 복원이 완료되어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관람료는 1,500원정도다. 2007년 6월 8일에 사적 제478호로 지정되었다.

2.1. 복원 논란

수원시와 수원교육지원청은 행궁 복원 2단계 사업을 2014년까지 완료하려고 계획을 잡았다. 이를 위해서 신풍 초등학교를 2013년까지 광교신도시폐교 후 재 신설이전하겠다고 한 것.[1] 그러나 신풍초등학교 역시 2014년 기준 117년이나 이어진 학교인데다[2] 사실상 학교 이전이라기보다는 폐교나 다름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학교 관계자 및 동문들은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아.. 역사의 비극..[3]

그러다가 2012년 12월 28일 수원시와 신풍 초등학교 간의 합의가 이루어져 수원교육지원청에서 171억원 가량의 신풍초등학교 분할납부방식의 토지매매계약을 체결하고, 올 5월까지 계약금과 매매대금 86억 7200만원을 지급하면서 늦게나마 2차 복원을 잡았고, 2013년 3월부로 신풍초는 광교신도시로 이전되었고, 기존 교사(校舍)는 더 이상 신입생을 받지 않고 재학생들이 졸업하는 2018년 2월까지 분교장으로 운영된 뒤 폐지된다.# 기사참조

이에 맞춰 화성행궁 2단계복원사업은 2020년 12월 우화관 복원과 함께 끝난다.

3. 기타

무예24기 보존회의 공연이 이루어지는 장소이기도 하며 대장금 등의 사극 촬영지로서 자주 쓰이고 있다.

화령전의 정문은 닫아놓은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닫든지 말든지 화성행궁을 통해 화령전까지 갈 수 있다.

화성행궁에 큰 행사가 있어 교통이 통제되면 정말 헬게이트가 열린다. 역시 헬게이트 종로[4] 게다가 3월 말~10월까지 매주 토요일은 행궁동 '생태교통마을' 행사 진행으로 주요 구간은 교통이 통제된다. 장안문과 팔달문을 잇는 종로 자체는 1.3km 정도밖에 안 되는, 성인 남자 기준으로 10~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이니 이럴 땐 그냥 속편하게 걸어다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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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일제강점기때에 관아지, 객사지, 향교지를 학교로 전용하거나 면사무소를 올려버리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국유지인데다가 대다수의 관아, 객사, 향교는 마을의 중심지에 소재했기 때문이다.
  • [2] 즉 신풍초등학교 교사(校舍)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할 수 있다. 어디다 옮겨서 지으면 안되나? 실제로 건물을 보면 일제강점기의 양식이라는 게 건축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강하게 풍겨온다.
  • [3] 물론 이전 명분에는 도심 공동화로 인해 이 학교 및 주변 학교들이 텅텅 비어간다는 이유도 포함.
  • [4] 장안동 정류장에서 팔달문 정류장까지 30분 가까이 걸린 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