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홍진기

last modified: 2017-11-01 03:20:23 Contributors

洪璡基
1917∼1986.

Contents

1. 소개
2. 일생
3. 자녀들
4. 기타

1. 소개

홍진기(洪璡基, 1917년 3월 13일 ~ 1986년 7월 13일)는 일본제국의 관료이자 언론인이다. 해방이후에는 한국의 관료, 법조인을 역임했다. 호는 유민(維民)이다. 일제 강점기에 창씨개명으로 인해 도쿠야마 신이치(德山進一)라는 이름을 썼다. 배우자는 중추원 참의를 역임한 김신석의 딸인 김윤남이다.

당시 천재라 불리었으며 일제 강점기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논문이 일본 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조선인 차별정책에 의해 그의 꿈인 교수가 될 수 없게되었고 이후 법을 공부하여 전주에서 판사를 역임하였다.[1] 해방 이후 홍진기는 미국과 일본의 주도로 진행되던 대일강화조약에서 조약이 한국에 불리하다고 파악하여 정부를 설득 '대일강화회의 준비위원회'가 구성되도록 하였다. 이는 일본의 부당한 외교적 침탈을 저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구보타 망언 사건에서도 한국 측 대표로 일본의 부당한 주장에 반박하여 미일조약에 한국 내에 있는 귀속재산의 처리와 일본에 있는 한국 국민에 대한 인권 등에 대해 명시될 수 있도록 하여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독도에 대한 소유권이 미일간 협약에서 일본측으로 귀속되는 상황이 오자 이에 대한 국제법 논리로 대처하였으며 이후 독도에 접안시설과 태극기 계양을 건의하여 성사시켰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전주지방법원 판사를 역임했던 경력으로 인해 친일인명사전에 등록 되어있다.

2. 일생

1917년 경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아주 잘했는데 그 어머니가 왕십리에서 채소장사를 하면서 홍진기를 뒷바라지해 그를 경성제일고보에 보냈고, 그 뒤 홍진기가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에 진학한 후에는 그 어머니가 학교 근처인 청량리로 이사하여 거기서 하숙을 치면서 홍진기의 학비를 댔다고 한다.

1940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그 해 일본국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였다.[2] 그가 경성제국대학 법학과의 조수(조교)로 일하면서 쓴 논문은 일본 학자의 호평을 받았다.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3년 전주지방법원 판사로서 법조계에 몸담았다.

8.15 광복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정권에 협력하여 법무부 소속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그러다가 1958년 법무부장관으로 승진하였다.

법무부 장관으로 재직하며, 이승만 정권에 비판적이던 경향신문을 강제로 폐간조치하고, 이승만의 라이벌이었던 죽산 조봉암 선생을 이적행위자와 공산주의자로 몰아서 처형하기도 하였다.[3]

1960년 내무부장관으로 재직하던 중 4.19 혁명을 맞았다. 이 때 시위대에 서슴지 않고 발포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5.16 군사정변 이후 재판을 받아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나중에 감형되었고, 박정희의 특사로 소리소문없이 석방되었다.[4]

그 뒤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과의 친분에 힘입어 1964년 중앙라디오방송주식회사의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언론인으로서 활약하였다.

1965년 중앙일보의 창간을 진두지휘하였으며,[5] 이후 1967년 맏딸 라희와 이병철의 3남 이건희가 결혼하며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과 사돈 지간이 되었다.[6] 1968년에는 중앙일보사 대표이사 사장이 되었고, 1971년에는 주식회사 동양방송의 대표이사까지 겸임하였으며, 1980년 중앙일보 회장으로 취임하여 1986년 타계할 때까지 재직하였다.

3. 자녀들

자식들 인물이 다들 좋고 공부를 잘 하여[7] 막강한 혼맥을 구성했다. 맏딸 홍라희는 이건희에게 시집 보냈고,[8] 장남 석현[9]신직수의 딸과 결혼을 시켰다.[10]

그리고 막내 딸 라영[11] 역시 노신영의 아들과 결혼을 시켰다.[12]

둘째 아들 석조는 공부를 아주 잘하여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재학중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검찰에서 고검장까지 되었는데,[13] 삼성 도청테이프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물러났다.[14] 홍석조는 지금 현재 국내 편의점 업계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CU의 회장인데, 가맹점주들에게 가혹하게 대하여 원성이 자자한 상황이다.

4. 기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기도 했다.

2003년 서울대는 새로 단장한 법학동 로비를 '유민홀'이라 명명했는데, 물론 여기서 '유민'은 홍진기의 호다.[15]

----
  • [1] 판사재임 기간에 홍라희 여사를 얻었는데 전라도의 기쁨을 의미하는 '라희'의 한자음에서 이름이 차용되었다.
  • [2] 이른바 개천룡, 즉 신분수직상승의 예가 일제 하에서도 없지는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겠다.
  • [3] 이때 창랑 장택상은 조봉암의 석방, 구명운동을 폈고, 홍진기의 법무장관 집무실에 찾아가 도움을 약속 받았으며, 법정에서 조봉암을 변호하기도 했는데, 결국 조봉암이 처형되자 홍진기에 대해 대단히 분개했다고 한다.
  • [4] 홍진기와 함께 기소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던 홍진기의 전임내무장관 최인규는 실제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러나 그 반면에 홍진기는 풀려났다. 삼성 이병철의 돈으로 사형집행을 면했다는 음모론도 있다.
  • [5] 이 과정에서 한국일보 핵심 기자들을 대거 빼오는 바람에 한국일보는 그 뒤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일보와 중앙일보의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이유다. 그리고 홍진기는 경향신문을 폐간시킨 전력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경향신문과 중앙일보 역시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
  • [6] 그 뒤부터 홍진기는 이병철에게 최고의 조언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건희가 이병철의 후계자가 된 데에도 홍진기의 영향력이 컸다 한다.
  • [7] 여섯 자녀 중에 막내 빼고 다섯 명을 서울대에 보냈다.
  • [8] 이건희 자식들의 인물이 좋은 게 홍진기-홍라희의 유전자 덕분이라고 한다.
  • [9]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나와서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그 후 홍진기의 뒤를 이어 중앙일보 회장을 역임하였고, 주미대사까지 역임하였다. 삼성그룹 차원에서 유엔 사무총장까지 밀려고 했는데, 비리 탈세 혐의가 드러나서 석달 감옥살이를 한 후에 꿈을 접어야 했다. 윤전 부문 계열사 (주) 중앙기획을 위장 폐업하고 노동자 123명을 불법으로 내쫓아 물의를 빚기도 했다
  • [10] 신직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단장하던 시절에 법무참모였고, 박 전 대통령이 쿠데타로 집권한 직후 36세의 젊은 나이로 검찰총장이 되어 8년 동안 검찰을 장악했다가, 그 후에 3년 동안 법무부 장관을 하고, 그 후 중앙정보부장을 역임했다. 그 유명한 1,2차 인혁당 사건을 만들어낸 것이 신직수였다.
  • [11] 홍진기의 여섯 자녀 중에 유일하게 서울대를 가지 못했는데, 이대 불문과에 수석입학했다. ㄷㄷㄷ
  • [12] 노신영은 군사정권 시절 외교부장관과 안기부장, 그리고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외무부 장관 시절 직원숙정을 할 때 정통 외교관료들을 많이 보호해서 외무부 내에서 신망이 높았다. 안기부장 시절에 천안 독립기념관 건립사업을 추진해서 결국 성공시키기도 하고, 대학 졸업정원제 폐지를 주장하여 결국 관철시키기도 하였다. 아웅산테러사건과 KAL기 격추사건을 못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신임이 워낙 두터워 해임되지 않았다. 국무총리 시절에는 전두환의 후계자로 물망에 올라 노태우와 경쟁하기도 했다.
  • [13] 광주고검장까지 역임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고 한다. 하버드대학교 로스쿨에서 JD 학위를 받았고, 검찰총장도 유력했다고 한다.
  • [14] 일설에 의하면 홍석조는 검찰내부에 삼성 돈을 뿌리고 다니는 역할을 담당했다고 한다. 고검장에서 물러난 계기가 되었던 그 도청테이프 내용에 보면,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이 삼성 이학수 부회장을 만나 이건희 회장의 지시를 받는데, 거기서 이번 명절에 홍석조더러 검찰 안에 똑똑한 쥬니어들에게 돈 좀 주라고 하는 말이 나온다. 그 후 검찰총장이 된 임채진은 인사청문회에서 애매모호한 답변으로 화제가 되었는데, 그건 대략 다음과 같다. 임채진에게 노회찬 의원이 삼성 베네스토 골프장에서 삼성 사장들하고 골프치면서 로비받은 적 있느냐고 질문하자, 임채진이 거기에 기억이 안 난다고 대답한 것이다. 그가 삼성장학생이라는 뒷소문은 김용철 변호사가 기자회견을 열어 폭로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이때부터 이미 검찰은 삼성에 의해 완벽하게 장악되어 그 후 검찰에 뭔가 아쉬운 일이 있는 재벌들은 검찰이나 국회의원이 아니라 삼성에게 청탁을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 [15] 서울대 법대가 경성제대 법학과의 후신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