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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완


KIA 타이거즈 No.70
홍세완(洪世完)
생년월일 1978년 1월 16일
신체조건 183cm 85kg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서울특별시
출신 학교 장충고-성균관대
포지션 유격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0년
소속팀 해태 타이거즈(2000~2001)
KIA 타이거즈(2001~2010)
응원가 현숙 '정말로'

2003년 한국프로야구 유격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틸슨 브리또(삼성 라이온즈) 홍세완(KIA 타이거즈) 박진만(삼성 라이온즈)

해태 & KIA 타이거즈 등번호 26번(2000~2006)
이대진(1993~1999) 홍세완(2000~2006) 장문석(2007~2009)
KIA 타이거즈 등번호 13번(2007~2010)
이기남(2005~2006) 홍세완(2007~2010) 김성계(2011~2013)

Contents

1. 개요
2. 프로 선수 시절
3. 지도자 시절
4. 기타
5. 연도별 성적

1. 개요

KIA 타이거즈유격수. 2000년대 초에 떠오른 대형 유격수였으나, 부상으로 인해 너무 이른 나이에 지고 만 비운의 선수이기도 하다. 이후 강정호가 한국프로야구의 대형 유격수 계보를 잇게 된다.

2. 프로 선수 시절

1996년 해태 타이거즈에 2차 11순위 지명을 받은 후 성균관대학교로 진학하여 2000년 입단했다.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주전 유격수로 뛰며 활약하기 시작하며 2003년에는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유격수 100타점[1]을 달성할 정도로 공격형 유격수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타순도 4번에 들어설 정도로 클러치 능력이 좋았으며, 그 시즌 골든글러브 획득.[2]

그러나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악명높은 무등야구장의 상태와 이에 따른 부상이었다. 애초에 183cm 85kg라는 대형 유격수는 수비부담이 쌓이면 장기적으로 유격수자리를 유지하기 어려운데 2003년 이후 100경기 이상 출장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다. 2002년에는 고막 파열, 2004년 이후로는 대형 내야수의 혹사테크인 무릎부상->재활->재발의 무한 루프를 타며 기아 내야진의 붕괴를 야기했다. [3]

2007년에 재활을 마치고 유격수로 복귀, 광주 삼성전에서 역전 만루홈런을 때리는 등 활약하다가, 큰 무릎부상을 입어 시즌 아웃. 2008년도 통째로 쉬었다. 2009년부터는 무릎 부상 여파 때문인지 주로 지명타자로 뛰고 있다. 6월에 최희섭이 한참 부진할 땐 1루수로 들어가기도 했다.
팀이 12년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게 되어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나 싶더니, 이번에는 손목 부상으로 인해 한국시리즈 개막을 며칠 앞두고 엔트리에서 제외, 최경환과 교체되었다.

수비 능력은 그럭저럭 평범한 유격수 수준이지만 공격력으로 상쇄하는 케이스이다. 유격수로서 수비범위는 좁지만 자신이 처리할 수 있는 공은 잘 처리하는 스타일. 즉 잡을 수 있는 공은 잡고 잡을 수 없는 공은 잡지 않는다는 것. 덕분에 수비율로 박진만을 제친적도 있다. 그러나 가히 엄청난 수비범위를 보여준 이종범 전성기를 기억하는 기아팬들은 홍세완의 수비에 불만이 있었다.

결국 누적된 부상과 수술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2010 시즌을 마지막으로 코치직을 제의받고 은퇴하게 되었다. 부상으로 인해 이른 나이에 은퇴한 게 안타깝다. 2010년 12월 26일날 은퇴를 선언했다.

3. 지도자 시절

은퇴 후 2군에서 타격 코치를 맡았다 2012년 시즌 이후 잠시 김용달 타격코치 부임 이전까지 1군 타격코치도 겸하였다. 2013 시즌부터 3군 재활코치로 보직 이동. 타격 코칭 실력에 있어서는 이건열보다는 훨씬 낫다는 평.

2013 시즌 중간에 곽현희 코치와 자리를 바꾸어 1군 트레이닝 코치로 보직을 이동했다. 트레이닝과 동시에 김용달 타격코치의 보조 코치를 겸한다. 이후 8월 17일 코치진 대개편으로 1군 메인 타격코치로 승격되었다.

4. 기타

대표적인 별명으로는 홍대리. 2003년 유격수로 100타점을 기록한 후 붙여진 별명으로 추정된다. 이 시즌 활약 이후 풀타임을 뛴 시즌이 없다보니 연봉이 거의 오르지 않아 현재는 만년 대리 신세. 2009년 연봉도 아직 6,000만원. 경기에서 안타를 치면 홍과장으로 진급하는 듯. 홍아들이란 별명도 있었는데 김성한 전 기아 감독이 전폭적으로 그를 지지하여 중심타선에 배치했기 때문이다. 그 이외에 불명예스러운 별명으로는 병살을 많이 친다고 홍병살. [4]

김상현의 혼삿길을 열어주기도 했다. 한참 홍세완이 주전 유격수로 뛰던 2002년, 김상현의 부인이 홍세완과 친구 사이였는데 홍세완을 응원하러 갔다가 경기 후 만나서 식사를 할 때 홍세완이 룸메이트 후배라고 같이 데려온 선수가 김상현.(...) 결국 그 이후 둘은 서로 눈이 맞아서 결혼했다. 그리고 본인은 김종국의 열렬한 팬과 결혼... NTR

KIA 타이거즈 갤러리인증을 남긴 적이 있다. 현재 이 글은 공지에 있다. 근데 웬 이상한 아자씨들이 몰려와서 홍어드립을 치고 있다.

5.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사사구 장타율
2000 해태 타이거즈 49 171 .240 41 6 0 5 21 24 2 17 -
2001 KIA 타이거즈 133 451 .293 132 24 1 14 72 60 8 46 .443
2002 111 401 .257 103 21 0 12 69 43 7 36 -
2003 129 487 .290 141 26 1 22 100 75 7 48 .483
2004 96 342 .295 101 20 1 15 51 57 8 56 .491
2005 90 345 .284 98 15 1 9 46 45 7 38 .412
2006 66 214 .206 44 6 0 1 17 14 0 23 -
2007 59 199 .261 52 7 0 7 27 22 0 24 .402
2008 부상으로 시즌 아웃 - 1군 기록 없음
2009 74 218 .261 57 8 0 5 27 26 2 35 -
2010 10 25 .200 5 1 0 0 1 0 0 2 -
통 산 817 2853 .271 774 134 4 90 431 366 41 325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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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유격수로 홈런왕을 차지했던 장종훈도, 30-30을 기록하며 날아다녔던 이종범유격수 시절엔 달성하지 못한 기록이며, 11년이 지나서야 강정호가 두번째로 이름을 올린다.
  • [2] 그 해 박진만도 만만치 않은 성적에 우승프리미엄까지 있었으나 역시 100타점이 많이 작용하였다.
  • [3] 이 때문에 심각한 어깨부상을 입어 송구가 약해진 김종국이나 수비가 미흡했던 손지환유격수 땜빵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게다가 그 시즌 이후부터 기아는 부진을 거듭하며 엘롯기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 [4] 하지만 실제로 병살을 그리 많이 치는 선수는 아니다. 2005년에 팀 부진과 맞물려 출장 경기 대비 병살타수가 많아 부각된 면이 많기 때문. 그리고 결과적으로 홍병살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다 홍성흔인줄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