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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흔

last modified: 2017-04-25 20:05:08 Contributors



푸이그가 배워야 할 배트 던지기 참고
배트 머리에 붙이고 균형잡기 아니다 유니콘도 아니다

두산 베어스 No.22
홍성흔(洪性炘)
생년월일 1976년 12월 12일[1]
출신지 강원도 횡성군
학력 공릉초-서울중앙중-서울중앙고-경희대학교
포지션 지명타자, 좌익수, 포수, 1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9년 1차 지명(OB)
소속팀 두산 베어스(1999~2008)
롯데 자이언츠(2009~2012)
두산 베어스(2013~2016)
응원가 입장시 : Diana Boncheva 《Beethoven Virus》[2][3]
타격시 : 싸이《챔피언》[4]
4 Non Blondes 《What's up[5]

1999년 한국프로야구 최우수 신인
김수경(현대 유니콘스) 홍성흔(두산 베어스) 이승호(SK 와이번스)

2001년 한국프로야구 포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박경완(현대 유니콘스) 홍성흔(두산 베어스) 진갑용(삼성 라이온즈)
2004년 한국프로야구 포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김동수(현대 유니콘스) 홍성흔(두산 베어스) 진갑용(삼성 라이온즈)

2004년 한국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MVP
김원형(SK 와이번스) 홍성흔(두산 베어스) 최영필(한화 이글스)

2006년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 미스터올스타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홍성흔(두산 베어스) 정수근(롯데 자이언츠)

2008 ~ 2011년 한국프로야구 지명타자 골든글러브 수상자
양준혁(삼성 라이온즈) 홍성흔(두산 베어스->롯데 자이언츠) 이승엽(삼성 라이온즈)

2010년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 미스터올스타
안치홍(KIA 타이거즈) 홍성흔(롯데 자이언츠) 이병규(LG 트윈스)

두산 베어스 등번호 22번
최기문(1996~1998) 홍성흔(1999~2008, 2013~2016) 성영훈(2009~2010)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49번
마해영(2008) 홍성흔(2009~2012) 홍성민(2013~)

Contents

1. 개요
2. 플레이 스타일
3. 두산 베어스 시절(2008년까지)
4. 롯데 자이언츠 이적
4.1. 2010 시즌
4.2. 2011 시즌
4.3. 2012 시즌
5. 두산 베어스로 복귀 후
5.1. 2012년 FA
5.2. 2013 시즌
5.3. 2014 시즌
6. 은퇴
7. 별명
8. 통산 병살타
9. 기타 사항들
10. 역대기록

1. 개요

"우리 연봉은 우리 팬들이 주는 겁니다. 우리의 제일 큰 구단주 분들이시죠. 잘 보여야 합니다. 팬들이 없으면 우리도 없는거에요."

1999년 두산 베어스에서 데뷔했고 2009년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했다가 2013년 FA를 통해 두산으로 복귀, 2016년 은퇴한 전(前) 야구 선수.

포지션은 포수였지만, 부상으로 수비에 어려움이 생기면서 2008년부터는 지명타자로 출장 중이다.

1999년 신인왕, 골든글러브 6번[6] 수상, 국가대표 수차례 차출 등 경력이 매우 화려하다. 다만 논란의 여지가 있는 골든글러브 수상이 많다는 것이 흠.

여러 의미로 베어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이기도 한데, 무엇보다도 두산(+OB) 베어스 31년 역사상 최초의 외부 FA 영입 선수이다. 다만 원래 두산에서 10년간 뛰었던 프랜차이즈 스타인지라 친정 팀 복귀의 느낌이 강하다.

딸이 아역 배우 홍화리다.

2. 플레이 스타일

컨택형 교타자지만 10개 중반 정도는 충분히 쳐줄 장타력을 겸비하고 있다. 다만 IsoP(절대장타율)이 낮은 편이라 2사 이후에는 투수에게 큰 부담이 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적극적인 타격을 선호하고 타고난 선구안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어서 이병규와 함께 대표적인 배드 볼 히터로 꼽힌다.

워낙 공격력이 좋았던 탓에 수비가 묻힌 감이 있지만, 위에서 언급했듯 국가대표에 포수로 수차례 차출되는 등 괜찮은 수비력을 가지고 있었다. 김태형, 진갑용, 최기문, 이도형 등등 걸출한 포수자원이 넘쳐났던 포수왕국 두산에서 살아남은 선수다. 물론 박경완, 김동수보다는 한 수 아래라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부상으로 2008시즌 이후로 포수로서의 기량은 완전히 쇠퇴했고, 1루수좌익수 등의 포지션으로 이동해보기도 했지만 실패하여 지명타자로만 나오게 되었다. 빅터 마르티네즈와 비슷한 케이스. 가끔 크게 이기고 있거나 크게 지고 있던 경기에서 1루수로 포지션을 바꾸고 뛴적은 있지만, 1루수로 선발 출장한 경기는 단 1경기밖에 없다.[7] 발은 느린 편이지만 그렇다고 이대호김태균같은 뚱보 선수들 수준은 아니다.

그의 1루 수비. 공격일변도의 야구를 추구했던 로이스터 감독조차 이 한 경기 쓰고 바로 봉인했다.

타격자세에 들어가기 전에 양팔을 흔들흔들 거리면서 어깨가 열리지 않게 하기 위한 일종의 자기 암시를 거는 행동을 하는데 롯데에 들어와서 시도했기 때문에 반 자동적으로 갈매기 타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홍성흔 하면 빠지지 않는 트레이드 마크. 그러나 박진감 있는 경기를 위한 스피드룰(12초룰)이 도입됨에 따라 갈매기 타법을 자주 보기는 힘들어졌다.

커리어 하이는 2010 시즌으로 이대호와 함께 팀 타선을 이끌며 5개 부분에서 2위를 차지했다. 이해 장타율과 OPS가 무지막지하게 올라갔으며, 절대장타율도 2009시즌 대비 0.109 상승한 0.271로 리그 2위인 리그 최강의 타자로 발돋움했다. 이해에는 눈야구도 가능해져서 1.19의 BB/K, 0.435의 훌륭한 출루율을 기록했다. 2011년부터 성적이 다시 떨어졌다는 점에서 플루크라고 의견이 많지만, 2011년부터 외야수 훈련을 병행해 타격 훈련량이 떨어진데다 노쇠화가 겹쳤기 때문이라는 반론도 있다.

실제로 2013시즌이 종료된 시점에서 2012, 2013년의 기록을 보면 2010시즌은 타격의 변화를 통한 브레이크아웃 시즌이자 커리어하이 시즌일 뿐 플루크라고까지 몰아붙이기는 어렵다. 홍성흔의 커리어는 그게 플루크 소리 들을 정도로 형편없지 않다. 즉, 2011시즌의 급격한 장타력 감소는 난생 처음하는 외야수 훈련 탓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2012년은 부상으로 기복이 있었지만 시즌 초에는 날아다녔으며, 장타력은 명백히 2011년에 비하면 좋아졌다. 2013년 역시 노쇠화와 친정팀 잠실구장의 영향 등으로 홈런은 줄었지만 전반기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후반기에 제대로 부활하며 여전히 중심타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2014년에도 5월에 그야말로 폭주하며 2012년 초반을 넘어 2010시즌을 떠올리게 하는 활약을 했으나 이후 다시 부진. 2010시즌을 재현하기에는 나이 탓에 시즌 내내 꾸준함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 많이 아쉽지만 10시즌 이전의 홍성흔과 이후의 홍성흔은 완전히 다른 유형의 타자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은근히 묻힌 사실이지만, 2010시즌 김현수와 함께 3시즌 연속 타율 0.330 이상 기록에 도전하는 단 둘뿐인 선수였는데, 부상으로 시즌 타율이 .358에서 멈추게 되면서 이 전무후무한 기록을 확정지었다.[8] 참고로 한국 프로야구에서 3시즌 연속 타율 0.330 이상은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9] 그리고 이대호, 김현수와 함께 2년 연속 타율 0.350 이상을 기록한 선수이기도 하다. 2013시즌까지 한국프로야구에서 한 시즌이라도 .350 이상 쳐본 선수는 30년 역사에서 19명뿐이다. 하지만 2014시즌에는 5이다.[10]

또한 양준혁, 장성호 단 두명만 달성한 2000안타-200홈런-1000타점에 가장 근접해있는 선수이기도 하다. 2013년 만 36의 나이로 통산 1,800안타 고지를 넘었고 2014년 5월 1,000타점, 9월 12일 200홈런을 돌파했다. 갑작스런 슬럼프나 큰부상만 없다면 2015시즌에 남은 2000안타 고지도 점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타격능력과 데뷔시절부터 공격력만은 못했다고 평가받는 수비실력을 고려했을때 처음부터 포수가 아닌 코너 외야수(좌익수, 우익수)나 1루수였다면 양준혁, 김동주에 버금가는 전설적인 대 타자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 하고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지금 커리어로도 일세를 풍미한 훌륭한 타자다.

3. 두산 베어스 시절(2008년까지)


오오 저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라

2013시즌부터 다시 볼 수 있게 된 두산 베어스 얼굴 마담 시절.

경희대학교 졸업 시즌이던 1998년에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제3의 포수로서 금메달을 땄다.[11] 이듬해인 1999년 두산 베어스에서 데뷔, 그 해 역대 포수로서는 두 번째로 신인왕을 수상하며[12] 김태형, 진갑용 등과의 주전경쟁에서 승리, 2007시즌까지 두산의 주전 포수로 자리잡으며 2008시즌까지 두산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포수지만 준수한 타격으로 대표적인 공격형 포수로 꼽혔다. 특히 2004년 정규 시즌 133경기 전경기에 출장하여 165안타로 최다안타 타이틀을 획득했다. 또한 평균 이상의 수비력과 파이팅 넘치는 모습, 그리고 잘생긴 얼굴로 인해 두산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2003년 부상을 당하며 포수 수비 능력이 떨어지기 시작, 결정적으로 2007년 초 김주찬의 타구가 영 좋지 않은 곳에 맞아 고간허벅지 부상으로 인해 주전으로 출전하지 못하게 되고,[13]# 이때 이대호에게 도루를 허용할 정도로 포수능력이 떨어지고[14] 결국 채상병에게 밀려 주전 포수 자리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그리고 2008년 김경문 감독은 포수로서의 홍성흔은 부상 이후 예전의 기량을 되찾지 못한다고 판단, 포수에서 지명타자1루수로 전향하여 타격능력을 살리겠다고 말했으나[15] 포수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홍성흔이 이에 반발한다. 이후 트레이드설까지 제기되었지만[16] 결국 홍성흔 스스로 지명타자로 전환하여 3할 3푼 8홈런 63타점이라는 뛰어난 타격을 보이며 두산이 2위자리에 오르는데 큰 보탬이 되었다. 그것도 초반에 훈련을 제대로 못해 거의 한달을 날렸음에도 말이다.
포수 자리에 관해선 시즌 중반에 채상병이 부상으로 잠시 이탈했을 때 몇 경기 잠깐 포수 마스크를 쓴 적도 있었지만 그다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다. 그 뒤론 예전처럼 포수로 복귀하겠다고 강하게 주장한 적이 없었는데, 아마 부상으로 인해 약해진 허벅지와 그 동안의 공백으로 인해 더이상 실전에서 포수를 보긴 어렵다고 본인도 느낀 듯하다.
근데 포수를 포기한 이후 타자로서의 성적을 보면 오히려 포수자리에 대한 미련을 좀 더 빨리 버렸더라면 두산 타선은 정말 후덜덜해졌을 듯도 하다. 2009년이나 2010년 기준의 김현수-김동주-홍성흔이라면.[17] 하지만 어쩌면 이후 포텐이 터져버린 최준석이나 이성열의 모습을 볼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신인 시절 주전이었던 김태형을 은퇴시키고 진갑용삼성 라이온즈로 보냈으며 이도형마저 한화 이글스로 보낸 장본인이다. 자기도 결국 롯데 자이언츠로 갔다 만약 진갑용과 이도형이 두산의 주전 포수로 자리잡았더라면 프로야구판의 전체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18]. 다만 최기문은 홍성흔과 관련이 없다. 최기문은 1998 시즌 종료 뒤에 차명주와 트레이드로 이적했는데, 이때는 홍성흔이 입단하기 전. 물론 당시에도 포수 자원이 넘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적했다고 볼 수 있다. 최기문을 밀어냈더니 홍성흔이 나타났다

이후 2015년 1월, 딸하고 출연한 해피투게더에서 블래스 신드롬 때문에 포수를 관두고 타자로 전향했다고 밝혔다. #

4. 롯데 자이언츠 이적


다시는 볼 수 없는 롯데 자이언츠 시절

2008시즌이 끝난 후 FA를 선언한 후 가장 마지막에 롯데 자이언츠와 4년간 최대 30억원, 두산 시절보다 50% 인상된 연봉 2억 7,900만 원에 계약했다.[19] 두산에선 '당연히 남을 줄 알았는데 당황스럽다' 라고 말했지만 홍성흔과의 계약 문제로 인한 기사가 없었던 점을 보면 잡을 팀이 없으리라 생각하고 싸게 계약하려다 뒤통수를 맞은 듯. 또 다른 프랜차이즈 선수 안경현과 더불어 홍성흔마저 사라지자 분노한 두산팬들이 대거 달까(김경문 안티)로 돌아섰다. 안 그래도 김경문 감독과의 불화설을 비롯하여 각종 음모론이 나돌던 판에 의혹을 증폭시킬만한 사태가 터진 셈. 물론 두산 베어스 갤러리에서는 2011년 현재 홍성흔 김경문 모두 배신의 아이콘으로 등극하여 둘 다 까고 있다.[20] 그리고 또 하나는 홍성흔이 팀 분위기메이커여서 선수들이 김경문보다 홍성흔을 더 좋아했다. 그래서 김경문이 내쫓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롯데에서는 합류 전부터 팬들이 응원가까지 새로 만들어주며[21] 큰 환영을 받았다.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이 김주찬임을 감안할 때 홍성흔 이적의 일등공신은 김주찬일지도...(응?)

09 시즌 롯데에서의 시작은 생각한 것처럼 뛰어난 활약을 못해줬다. 그 원인은 제리 로이스터의 노피어 정신에 따른 큰 궤적의 홈런 스윙시도. 원래 똑딱거리던 양반을 보고 큰 스윙을 하라니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거기다 잘 맞은 타구는 계속 야수 정면으로 날아가는 등 불운이 겹쳐셔 마음이 급해지자 근성있는 헤드퍼스트 슬라이등 등으로 어떻게든 커버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지나친 근성플레이로 허벅지에 부상을 당한 이후에 잠시 엔트리에서 빠져야 했다. 그러나 다시 복귀한 이후로는 다시 예전처럼 똑딱거리면서 어느 사이엔가 다시 3할 타율을 찍는 모습을 보여주더니, 2009년 8월에는 타율 1위까지 올라왔다. 롯빠들은 이번 FA는 대성공이라면서 좋아하고 있다. 현재까지 KBO 역사상 가장 성공한 FA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에도 활약은 계속 이어져 8월말까지 3할 8푼대의 경이적인 성적을 내며 드디어 또다시 4할 타자가 나오는 것 아닌가 하는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또한 마찬가지로 3할 8푼 타율을 찍은 LG 트윈스박용택 선수와의 타격왕 경쟁이 불붙으며 시즌 후반의 점입가경이었다. 허나….

2009 정규시즌은 타율 0.371(리그 2위), 홈런 12, 타점 64, OPS 0.968(리그 7위) 로 데뷔 후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고, 골든글러브 지명타자 부문도 수상.

4.1. 2010 시즌

2010 시즌부터 외야수 전업을 할 예정이었으나 여전히 지명타자로만 출전했다[22].

2010 시즌 전에는 타율보다는 장타에 신경쓰겠다고 표명하였고, 스프링 캠프때부터 기존 타격폼에 비해 스윙이 상당히 큰 폼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시범경기때에는 바꾼 타격폼에 적응하느라 페이스가 극도로 좋지 못해서 롯데 팬들은 '에휴... 그럼 그렇지 우리가 무슨 FA대박...' 이라 자학했지만 정규 시즌에 들어서자마자 무지막지한 장타와 타점생산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꾸준히 약점으로 지적되어온 장타력이 지난 시즌보다 엄청나게 상승하였고, 게다가 컨택 능력도 거의 떨어지지 않았다. 08/09시즌보다 더 좋아진 모습으로 진화해서 타율/출루율/장타율 등 도루를 제외한 모든 공격부분에서 최상위권을 마크하고 있다. 병살타도 최상위권 현재 KBO 최고 타자의 포스를 보여주고 있을 정도. 똑딱이와는 다르다 똑딱이와는!| 그리고 홍성흔을 거르고 싶어도 홍성흔 뒤에 나오는 타자는 이대호. 도루를 제외하고 이 둘이 KBO 타격 스탯의 1, 2위를 거의 나눠먹고 있는 상황이다. 홍성흔 본인도 '나에게 이런 장거리 타자로서의 면모가 있는 줄 몰랐다'며 놀라워하는 중. 결과적으로는 "장거리 타자로서의 재능이 있다"라고 본 로이스터의 판단이 정확했던 셈.

4월 무지막지한 타격과 장타력을 뽑내며 리그 수위 타자가 되나 싶었다가 5월 중순 약간의 슬럼프를 거치며 팬들을 애가 타게 했으나 5월에 0.315, 9홈런, 25타점[23]을 기록하며 슬럼프를 극복하고 7월 현재 팀의 중심타자로 활약 중이다. 특히 현재까지 홈런과 타점 모두 자신의 역대 기록을 넘어 커리어 하이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다.
5월 25일 두산전부터 29일 SK전까지 5경기 연속 홈런으로 1988년 김민호가 세웠던 팀의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7월 1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커리어 최초 한시즌 20홈런을 기록했다.
7월 30일 LG전에서 역대 두번째 최소경기(93경기) 100타점을 넘었다.[* 1위는 이승엽이 세운 89경기 100타점.
8월 15일 기준 타율 0.356(리그 2위), 홈런 26(리그 공동 2위), 타점 113(리그 1위), OPS 1.049(리그 2위)를 기록중. 8월 14일 이대호가 타점에서 1개 차, 안타에서 1개 차, 득점에서 3점 차까지 따라 붙었다. 이로써 전무후무한 7콩왕 달성이 턱 앞 턱 밑까지 추격한 셈인데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매우 주목된다. 만약 7콩왕이 된다면 무관의 제왕 기요하라 카즈히로에 버금가는 수준. 부상으로 인해 이 기록은 사실상 확정. 시간이 지나면서 따라잡히고 있는 부분도 있지만 애초에 압도적이었던 타율, 타점, 최다안타 등은 그대로 2위로 마감할 듯. 타율 1위 이대호가 부진할 경우 그대로 타율 1위도 가능하다.

8월 15일 KIA전에서 9회초 1사 2루 2:2 동점 상황에서 윤석민의 공에 맞아 손등 골절상을 입었다.*해당기사 기사에 나온 바에 의하면 회복에 4주, 재활에 1주 총 5주 정도 걸린다는 듯. 시즌 아웃 확정. 재활군에 머무르지 않고 1군 선수단과 같이 동행하는 모양. 이는 로이스터 감독의 지시라도 한다. 다만 시즌 막판에 복귀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일단 여유를 가지겠다고는 하지만 재검사를 받을 경우 회복 기간이 단축될 수 있다고.

훗날 홍성흔이 말하길 시간이 지나면서 경기에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분해진다고 말했다.

9월 18일 한화전에 1군으로 오랜만에 다시 출장했지만 3타석 무안타, 9월 19일 역시 한화전에 출장하여 4타석 무안타를 기록하면서 7연속 무안타로 타율이 0.350으로 떨어져 이대호에게 타율 1위자리를 양보하였다.

2010시즌 정규시즌 기록은 타율 0.350(2위) 홈런 26(4위) 타점 116(2위) 득점 88(3위) 안타 151(2위) 출루율 0.427(3위) 장타율(2위) OPS 1.027(2위). 3년 연속 타격 2위와 5개 부문에서 2위를 달성했다. 이쯤되면 우수한 콩라인 멤버

결국 떨어진 타격감은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준플레이오프에도 부활하지 못해서 21타수 3안타라는, 페넌트레이스 성적을 봤을 때 참 아쉬운 성적을 남기고 말았고, 더욱이 2009시즌까지 포스트시즌 타율이 0.304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준플레이오프 전에 자신이 히든카드인지 뻥카드인지 두고보면 알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가 뻥카임이 드러나 홍뻥카라는 치욕적인 별명이 붙어지고 만다. 그리고 더불어 포스트시즌 병살타 신기록까지 작성했다.

홍성흔은 2010년 준플레이오프에서 21타수 3안타 1희생플라이 2볼넷 1타점 2득점, 타율&장타율 .143, 출루율 .208에 그쳤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으로 앞서다 내리 3연패를 당하여 탈락했다.

4.2. 2011 시즌

2011시즌부터 조성환의 뒤를 이어 롯데 자이언츠의 주장을 맡았다.#

이대호의 발목부상이 완쾌되지 않은 이유로 이대호가 지명에 들어갈 경우가 생김에 따라 좌익수로의 출장도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고 2월 15일 두산과의 연습경기에 첫 좌익수 출장 예정이었다.관련기사 ...이었으나 시범경기 전 교통사고가 났었다. 자세한건 홍성흔 교통사고 항목 참조.

시범 경기에서는 좌익수로 선발 출장하여서도 전혀 녹슬지 않은 타격감을 선보였다. 시범경기 타율 0.514(1위), 타점 11(1위), 안타 19(1위), 출루율 0.550(1위), 장타율 0.676(1위)으로 시범경기이긴 하지만 5관왕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벤트전에서 1위를 하는것은 의 전통

거기다 왠지 모르게 김주찬이나 손아섭보다 더 나은 수비를 보여주기도 했다.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이렇게 된거 마무리 투수도 한번 시켜보는게 어떻겠냐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개막이후 수비에서 약점이 확연히 드러났는데 실책만 없을 뿐 그냥 잡기 어려울거 같으면 바운드 처리하는 등, 큰 실책만 없다 뿐이지 외야의 폭탄이 될 소지는 아주 컸다.
더군다나 당시 김주찬이라는 외야진의 폭탄이 있는데 양사이드에 폭탄을 달고 있는 셈이었기에 다시 외야로 돌아간 전준우만 이리뛰고 저리뛰고 개고생했다.

거기다 문제는 애초에 시즌 시작 전 양승호 감독은 주전이 아니라 간간이 백업 수준으로 나올 것이라고 했는데 현실은 주전 좌익수로 계속 나오고 있다. 이런 탓인지는 몰라도 10시즌 때와 다르게 장타율이 급감하였다. 실제로 좌익수로 뛴 11시즌 들어서 체중이 8kg 정도 빠졌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5월 17일에서야 첫 홈런을 쳐냈다. 게다가 장타율은 0.340. 장타율이 급격히 올라간건 롯데로 이적한 이후라고는 하나 그래도 두산에서 있을때도 장타율이 4할을 넘었다는걸 생각하면....

다행이도 손아섭이 복귀하면서 좌익수는 안 갈수 있겠거니 했는데 이번에는 김주찬이 다치는 바람에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봐야 할 듯.

롯데 vs. LG 경기가 있었던 네이버 중계댓글에서 롯데팬들이 이병규가 좌익수 수비보면서 라면수비한다고 공격을 했으나, 되레 "홍성흔 좌익 수비하는거 보다가 이병규가 수비하는 걸 보니 "니네가 할 소리가 아니지", 눈이 정화된다고 역공당했다.

5월 17일, 문학 SK 전에서 전준호의 직구를 받아쳐서 시즌 첫 홈런을 드디어 신고했다! 그라운드를 돈 직후 홍성흔은 어찌나 감격스러웠으면 덕아웃에 들어가 김무관 코치와 포옹을 했다. 이날은 박종윤이 만루홈런을 친 날이기도 했다.

6월 9일 삼성전에서 이우선의 공을 받아쳐서 그랜드슬램을 기록했다. 결국 롯데는 이날 장원삼이우선을 털어버리면서 13:7로 이겼다.

시즌이 지나면서 조금씩 살아나는지 슬금슬금 3할 타율 가까이 올라갔지만 장타율은 완벽히 망하고 말았다.

7월 23일 타율 0.301, 홈런 4, 타점 38, OPS 0.754을 기록하여 드디어 3할대 타율로 복귀했다. 아마추어 하나 때문에 여기까지 오는데도 참 많이 걸렸다.

김주찬과 손아섭이 조원우 외야수비코치의 조련덕분에 수비가 일취월장한 터라 이제 남은 건 홍성흔 차례라고 칭찬을 들었다. 근데 홍성흔은 성흔스키에서 탈출하기 힘들지도

2011시즌 타율 .306을 기록, 4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했다.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플레이오프에서 19타수 7안타 3볼넷 2도루 1타점 3득점 타율 .368, 장타율 .474, 출루율 .455를 기록하였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4.3. 2012 시즌

3월 17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새로운 타법을 보였다.

그리고 3월 31일 SK 와이번스 전에서 드디어 4번 타자로서의 첫 홈런을 쳤다! 하지만 롯데는 스코어 2:3으로 패배해 버리고 말았다.

시즌전 이대호라는 핵우산이 사라진 것[24]4번 타자로의 부담을 떨칠수 있겠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시즌이 개막되자 그런 거 없다를 보여주며 맹타를 휘둘렀다. 하지만 이후 미친듯한 삽질로 강민호한테 4번타자 자리를 내주고 5번타자로 밀려나게 되었다.

6월 9일 미세골절 부상으로 문규현과 함께 1군에서 말소되었다.

7월 5일, 7월 6일 연속으로 우천으로 결장되었다. 대신 7일에는 3타점으로 MVP가 되었다. 4일날에는 황재균에게 우천 세레머니를 시키고 선수들을 피신, 호탕하게 홍낄낄거리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7월 24일 화요일. 한밭 야구장에서 한화 이글스와의 주중 3연전 첫경기에서 류골퍼에게 4타석 연속 삼진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8월 21일 대구구장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5월 27일 잠실 두산전 이후로 오랜만에 장원삼을 상대로 4회초 솔로 홈런과 8회초 만루 홈런을 때려내며 승리의 주역이 되었다. 팀은 5:3으로 승리.

9월 8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솔로홈런 포함 2득점으로 전준우와 함께 이날 롯데 자이언츠 60승의 주역이 되었다. 결과는 0:3으로 승리.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이후 두산 베어스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1차전 때 강민호가 부상으로 입원하면서, 남은 포수 자원이 용덕한밖에 없는 상황이라 급하게 백업 포수로 뛸 준비를 하게 되었다.홍성흔, 4년 만에 포수 마스크 쓴다
다행히도 준플레이오프에서 홍성흔이 포수로 출장할 일은 없었고 홍성흔은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전 경기에서 선발 지명타자 겸 4번타자로 출장하여 15타수 6안타 1득점 1도루 3볼넷, 타율, 장타율 .400, 출루율 .50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홍성흔은 SK 와이번스와의 2012년 플레이오프 전 경기에서 선발 지명타자 겸 4번타자로 출장하여 18타수 4안타 2홈런 3볼넷 3타점 3득점, 타율 .222, 장타율 .556, 출루율 .333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홍성흔은 2012년 포스트시즌에서 33타수 10안타 2홈런 6볼넷 1도루 3타점 4득점, 타율 .303, 장타율 .485, 출루율 .410을 기록했다.

5. 두산 베어스로 복귀 후

5.1. 2012년 FA

시즌 종료 후 FA를 선언하였다. 구단은 최종 3년 25억 원(보장 22억 원, 옵션 3억 원)을 제시한 반면, 홍성흔은 4년에 34억 원을 원하여 협상이 결렬. 홍성흔이 4번타자로 분발하긴 했으나 역할을 다했는지에 대해선 이론이 있고, 나이를 생각해보면 4년계약만료시 2016시즌 홍성흔은 41살이 된다.

거기다 정현욱을 영입한 LG, 김주찬을 영입한 기아 등은 물론이고 선수 영입이 없었던 한화나 SK, 삼성 등의 구단도 시장 시작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모두 FA 영입 종료를 사실상 선언했고 NC 역시 이호준을 영입해서 홍성흔의 자리가 마땅찮아졌다. 지난 시즌 무리한 넥센은 당연히 영입할 리가 없고 막상 시장에는 나왔는데 갈 곳은 하필 두산밖에 없는 상황. 롯데 팬들은 홍성흔이 두산에 가든 다시 돌아와서 헐값으로 계약하든 차라리 잘 됐다는 의견인 반면, 두산 팬들은 김태룡 단장이 홍성흔 영입에 뛰어든 것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결국 4년간 총액 31억원의 계약으로 두산에 복귀하였다. 김진욱 감독은 타선의 구심점이 될 선수가 필요했다고 하면서, 홍성흔을 주장에 임명하겠다 밝혔다. 김동주는 어쩌고...김동주 돌진욱 불화설?[25]

홍성흔의 보상 선수로는 김승회가 지명되었다.

5.2. 2013 시즌

두산으로 다시 복귀한 이후 상당히 까였는데, 김동주 건과 자신에 대해 불필요할 정도로 언론플레이를 해서 두산 팬들과 김동주 팬들에게 입좀 그만 털고 제발 가만히 있으라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두산에 다시 오고서 부터 김동주의 인터뷰까지 대신 해주고 있다며 니가 무슨 김동주 전령이냐는 비아냥도 나왔다. 기사만 보고 판단하는 건 가려서 들을 필요는 있지만, 그걸 감안해도 필요 이상으로 언론에 입을 털고 김동주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자기가 먼저 이야기를 하는 등 쓸데없이 나선다고 욕을 먹었다. 아직 국동주 이야기가 나오기 전이라 그랬다 다만 초창기부터 두산을 좋아하던 팬들은 홍성흔을 지지해주는 편으로, 현재의 두산 팬들과 대조되는 모양새다.

게다가 집중적인 훈련이 필요한 전지훈련 기간에 이광용의 옐로우카드에 출연한 건으로 대다수 두산팬들에게 욕을 먹었다. XTM 야구 해설위원 이숭용은 이러한 홍성흔의 태도를 2012년 11월 26일 사사구 46회 방송분에서 비판하였고, 두산팬들의 많은 지지를 얻었다. 정신차려

시즌 개막 후에는 간간히 장타를 치긴 했지만, 타격감이 아직 올라오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LG와의 더비매치 첫날인 4월 5일, 볼 판정에 항의하고 퇴장당했다. 자세한 것은 두산 베어스/사건사고 참조. 이후 8일 상벌위에서 출장정지 없이 100만원 벌금으로 끝났으니 시즌 초반부터 팀 전력의 누수는 없게 되었다.

4월에는 거하게 삽을 퍼서 두산팬들에게 '저 퇴물 왜 데려왔냐, 김승회 돌려 놔라' 등 욕을 거하게 먹었지만 차차 타격감과 장타력을 되찾으면서 두산의 중심타자 역할을 톡톡히하자 팬들의 마음도 어느정도 호의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김동주와 김승회가 부진한 영향도 있고...그러나 그것도 잠시, 찬스에서 영웅 스윙을 붕붕 돌리며 찬스를 말아먹는 것을 반복하며 먹튀라고 욕을 먹고 있다. 오죽하면 롯데의 첩자 아니냐고 해서 붙은 별명이 비밀 갈매기, 비갈(...) 또한 부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출장하여 풀스윙을 붕붕 돌린다고 붙은 별명이 풀스윙+공무원의 합성어인 풀무원.

아무리 분위기 메이커가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이미 지명타자는 최준석과 김동주가 있는데, 수비도 안 되는 30대 후반의 선수를 왜 데려왔는지는 의문.근육질 치어리더


하지만 7월 13일 KIA전에서 헨리 소사를 상대로 기습번트 후 슬라이딩으로 허슬두의 모습을 보여주는 등 그냥 까일만한 선수는 아님을 입증했다.

8월 3일 SK전에서 최준석-홍성흔-오재원으로 이어지는 백투백투백 홈런을 치고 9회초 투런홈런을 치는 등 5타수 4안타 3타점 2홈런의 맹타를 휘둘렀지만 팀은 5:7로 패배했다.

사실 전반기의 부진과 두산팬들에게 박힌 미운털[26] 때문에 욕먹는 부분이 많은거지 후반기 들어서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54경기 연속 출루[27]에 타율도 3할 가까이 되는데다 김현수에 이어 팀 내 홈런, 타점 2위로 상당히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최준석이 부진하고 윤석민이 주전 경쟁에서 밀리고 김동주는 선수 생명이 사실상 끝난 상황에서 충분히 좋은 영입이라 불릴 만했다.[28]그리고 졸지에 사기당한 롯데팬들은…

넥센 히어로즈와의 2013년 준플레이오프에서 전 경기 선발 지명타자 겸 5번타자로 출장하여 18타수 3안타 1홈런 5볼넷 1타점 3득점, 타율 .167, 장타율 .389, 출루율 .348를 기록했고, 팀은 2연패 뒤 3연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LG 트윈스와의 2013년 플레이오프에서 1, 2, 3차전에 선발 지명타자 겸 5번타자로 출장하여 9타수 1안타, 타율&장타율&출루율 .111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1, 2, 3차전은 선발 지명타자 겸 5번타자, 5, 6, 7차전은 대타로 출장하여 16타수 3안타 1홈런 1타점 3득점, 타율&출루율 .188, 장타율 .375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앞서다 내리 3연패를 당하여 준우승에 그쳤다. 2013년 포스트시즌 전체 성적은 43타수 7안타 2홈런 5볼넷 2타점 6득점, 타율 .163, 장타율 .326, 출루율 .250으로 극심한 부진을 보였다.

시즌 동안 영웅스윙으로 만든 이닝 종료상황으로 인해 TV, 인터넷으로 시청하는 팬들에게 계속 에그타 광고를 보여줘서 홍그타, 홍에그 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홍성흔은 2013년 정규시즌에서 타석에 들어올 때 선행주자가 가장 많았던(416명) 선수였는데, 득점권 타율은 0.297로 리그 중심타선 평균 수준은 해줬지만 정작 장타율이 최하위권(0.366)이었기 때문에 주자를 많이 불러들이지도 못했고, 전매특허인 병살타는 여전했으니 가뜩이나 불만이 쌓여 있던 팬들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선행주자가 가장 많았던 선수 주제에 70타점을 겨우 넘긴 건 다 이유가 있었던 것. 이런 탓에 승패와 무관한 상황일 때, 또는 주자가 없을 때만 쓸데없이 홈런을 쳐서 스탯관리를 하며 지명타자 자리를 꿋꿋하게 지켜냈다고 홍무원이라는 좋지 못한 별명을 얻었다.

투수 골든 글러브만큼은 아니지만, 2013년에도 홍성흔이 지명타자 골든 글러브를 탈 수 있을 것인지 상당한 관심이 모아졌다. 2013년 홍성흔이 기록한 성적은 0.299의 타율에 15홈런 72타점으로 준수한 성적이긴 하지만, 2013년에 최고령 타격왕, 최고령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한 이병규와 신생팀에서 후배들에게 좋은 모범을 보이면서 훌륭한 성적을 낸 이호준과 비교해서[29] 게다가 이분은 어린 선수들을 펄녀로부터 보호까지 해 주니 압도적인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 게다가 2001년 이래 3할 이하의 타율을 기록한 타자가 지타부분 골글을 탄 바가 없기에 상당한 각축이 예상된다. 근데 언제 기자들이 기록 제대로 보기나 했나 그냥 지들 꼴리는 대로 투표했지 결국 골글은 최고령 타격왕을 차지한 이병규에게로.

5.3. 2014 시즌

타출장 .315/ .405/ .497, 20홈런, 82타점을 기록하여 팀내 최다 홈런 등 꽤나 준수한 활약을 했다. 홈런과 타점 등 클래식 스탯을 중요시 하는 한국프로야구 특성상 이승엽이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것이 당연해 보였고 실제로도 압도적인 표 차이로 이승엽이 수상하였지만 4할이 넘는 출루율을 기록하여 세이버메트릭스의 관점으로 볼 때는 지명타자 중 가장 좋은 활약을 하였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6. 은퇴

2016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하였다. 본인은 현역 생활에 대한 의지가 강했지만, 구단에선 내년 시즌을 앞두고 그를 전력외로 구분하였기에 결국 홍성흔 측에서 은퇴를 결심한 것.

그 뒤 2017년 4월 30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홈 경기에서 은퇴식을 치르게 되었다.

7. 별명

보통 팬들에겐 포지션을 뒤에 붙여 홍포라는 별명으로 불리지만 오버를 많이 떤다고 하여 오버맨, 홍오바. 그리고 돌출된 으로 인해 홍턱, 턱성흔 등의 별명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 턱은 밭을 갈 때 쓴다 카더라.# 두 특징을 모두 합친 '오버 더 턱'이란 별명도 있다.

턱돌이#만 합류하면 턱 삼신기가 모여서 롯데가 우승할 것이라는 개그가 떠돌았다. 하지만 일본산 턱돌이 카도쿠라 켄이 등장해서 다시 안개속으로 빠져 들기도 했다.

아무튼 2008년, 2009년, 2010년 연속 타격 2위를 하는 바람에 타격왕 부문 콩라인 가입이 확정됐다.[30]콩성흔 심지어 2010년에는 타율-장타율-타점 트리플 달성했다.

영웅심리라는 별명도 생겼다. 히어로즈의 턱돌이와는 관련 없고 SK 와이번스 김성근 감독이 성균관대 강연에서 홍성흔은 영웅심리가 있다는 말을 하게 되었는데 처음엔 롯데팬들은 반발하였으나 결국 현실임을 깨닫고 오버할 때나 어이없는 스윙, 과도한 주루플레이 등을 할 때 놀리는 용도로 주로 쓰인다.

2010년 준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에서 히든카드가 되겠다고 했으며, 5차전 이전에 "뻥카인지 히든카드인지 보여주겠다."란 발언을 했으나 5차전에서조차 부진하여 병살타도 1개 기록하면서 '홍뻥카'라는 굴욕스런 별칭도 얻었다.
이후 나온 기사를 보면 본인 스스로 개뻥카라며 자조하는 듯했다.#해당기사

2011년 시즌 개막 전에 부산에서 운전중 유턴을 하다, 오토바이와의 사고가 있었다. 오토바이측의 과실이라고는 하지만 이로 홍턴이라는 불명예 별명이 생겨버렸고, 2012년 시즌 종료 후 두산으로 '유턴'했다. 이래저래 '턴'에 사연이 많은 선수….

외야수로 출장하고 난후 불암콩콩코믹스 에서 롯데 외야진을 발레리노로 묘사한 장면이 나왔는데 거기서 홍성흔의 명칭은 성흔스키 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2012년 올스타전 투표와 관련해서 '국민타자' 이승엽에 빗대 자신을 '시민타자'라고 비유하면서 (부산)시민타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하지만 삼성 라이온즈두산 베어스 팬들은 까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여담으로 2013년에 이승엽이 포스트시즌뿐만 아니라 한국시리즈에서도 부진하면서 '읍민타자', '리민타자'라고 까이며 홍성흔보다 격하당했다.

두산 베어스 복귀 이후로는 언제나 지명타자 자리를 철밥통처럼 차지하고 있다 하여 홍무원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사실 2014시즌 이후로는 홍무원이라는 말이 엠팍에서도 공공연히 보일 정도로 많이 쓰인다. 특히 김동주가 없는 이 시점에서는 더더욱... 안 그래도 안좋은 별명인데 여기에 스윙까지 합쳐 풀무원이라 불리기도 한다(...) 게다가 이 홍무원과 풀무원은 기사까지 나오면서 공식별명으로 확인사살 당했다. #

2014년 5월 그가 4경기 연속 홈런을 쏘아올리는 등 맹타를 휘두르자 돡갤 등지에서는 홍제폐하, 고위 홍무원, 주장님, 홍통령, 그가 야구 그 자체라는 뜻으로 더 베이스볼(...) 등의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3,4월만 해도 주구장창 까이더만

8. 통산 병살타

워낙 공격적인 스윙을 하고 있으며 발도 워낙 똥차다 보니 병살타 숫자가 어마어마하다. 병전드
딱 두시즌을 제외하고 매년 두자릿수의 병살( 그 두시즌조차 각 8개)을 기록해 주셨다.

2010시즌까지 통산병살타가 154개로 두산의 두목 곰과 함께 유력한 1위 후보였다. 당시 1위는 172개의 안경현(은퇴), 2위 양준혁(은퇴) 166개, 3위 마해영(은퇴) 157개, 김동주(은퇴) 157개, 홍성흔 5위 154개[31]

통산 병살 순위 5위중 3명이 두산 프랜차이즈 출신이라는 점이... 과연 콩산의 전설은 이렇게 탄생한 것인가

2011년 9월 3일 LG전에서 역사에 남을 3연속 병살타를 달성하며 통산 1위에 등극했다.[32]

9월 8일 종전 김기태 전 엘지 감독이 가지고 있던 5경기 연속 병살타기록[33]을 넘어서 8월 30일~9월 8일 7경기 연속 1개 이상 병살타 기록라는 신기록을 달성했다.

2012시즌이 종료후 통산병살타 1위는 홍성흔(186개), 2위는 김동주(182개), 3위는 안경현(은퇴, 172개)...[34] 거기에 포스트시즌만으로 계산해도 2011 시즌 플레이오프에서까지 적립한 병살타를 포함해 10개로 포스트시즌 통산 1위다. [35]
물론 두산의 두목곰 역시 무시무시한 페이스로 병살을 치고 계신 관계로 두산 프렌차이즈 출신 두 선수의 병살왕 경쟁이 과연 어떻게 끝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를...줄 알았지만 김동주가 부진으로 2군에서 올라오지 못하는 동안 홍성흔이 전인미답의 200병살을 달성하고 병살왕 자리를 확고히 지켰다(...). 2013시즌 종료 기준으로 통산 병살타 201개로 병살타 부문 단독 1위에 등극하셨다. 그리고 2014시즌 종료 기준 214개 병살타 기록으로 아웃카운트로 환산하면 428아웃, 15.8게임을 삭제시켰다. 김동주의 186병살타와 합하면 아웃카운트는 딱 800개, 둘이 합쳐서 29.6게임을 삭제시켰다.(...) 지못미 두산

2014 시즌 종료 후 김동주가 은퇴했기 때문에 병살왕 경쟁은 정성훈과 계속할 예정. 문제는 정성훈이 병살 확률이 적은 1번 타자로 전향.... 확고부동한 병살왕 2015년 4월14일 기준 통산 병살타 217개를 기록 그 압도적인 위용을 보여주고 있다.

9. 기타 사항들

  • 트위터를 하지 않는 몇 안 되는 롯데 선수였다.[36] 오히려 선수단의 트위터 등 SNS 이용을 금지시켰던 주장이었다. 본인은 기자들이 알아서 써주기 때문에 트위터가 필요없으니까 트위터 금지시키는 주장이 트위터 하면 이상하잖아? 하지만 볼판정 갖고 항의하지 말라는 주장이 항의하다 퇴장당하고 벌금먹었지.

  • 스포츠 스타 여럿[37]을 보내버린 치명적인 온라인게임 리니지를 아내와 즐겨한다고 알려졌다. 직접 NC소프트를 방문 했을 정도. 그럼에도 최고의 타자로 군림하는 걸 보면 자기관리 하난 정말 철저한 듯 하다. 다만 게임 내에서 평판은 그다지 좋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 3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염색한 머리를 고수하고 있다.

  • 2009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로 분장해서 공연을 했다. 역시 홍오바.# 동영상 : # 2015년 1월 15일 해피투게더에 딸 홍화리와 같이 나와 또 췄다.

  • 올스타전에서는 2009년에는 가발을 쓰더니[38] 2010년엔 최다득표 감사[39] 라고 마킹된 유니폼을 입고 수염도 달고 나왔다. 쇼맨십이 있는 듯. 그리고는 그 수염쓴 상태로 류현진에게 2점 홈런을 날렸다. 게토레이가 미지근해 지기 전에 홈런을 치고 오겠소.[40] 2006년 및 2010년 올스타전 MVP 수상.##

  • 1남의 1녀의 아버지이며, 본인의 미남 유전자를 고대로 받은 장녀 홍화리는 상당히 큐트하고 예쁜 외모를 가지고 있어 팬들로부터 화리여신으로 추앙받고 있다.긔엽긔덤으로 턱은 절대 아빠를 닮지 말라고 염원하고 있다. 홍화리 양은 2014년 2월 22일부터 왕가네 식구들 후속으로 방영되는 참 좋은 시절에서 강동주 역으로 출연, 아역 배우로써 커리어를 시작했다.홍성흔의 노후연금계획중 하나라 카더라 2014년 12월 31일 열린 KBS 연기대상에서, 강동주 역으로 청소년 연기상 여자 부문을 수상했다. 홍성흔도 직접 관객석에 앉아 딸의 수상을 지켜봤다.
    2014년 5월 30일 롯데와 두산 경기에서 시구를 맡았는데 그야말로 베테랑 투수급의 포스를 뿜는다.홍드로 언니, 보고 있어요?


데스노트를 쓸 줄 안다 카더라. 실제로 서건창은 방송 다음날인 2014년 5월 6일 교체 선수로 나와 삼진을 당했다.

  • 2010 올스타전 인터뷰 캡쳐사진. 왼쪽의 두 명은 조성환카도쿠라 켄. 턱브라더스 오오!! 경국지턱! 오오!!

  • 헤드앤 솔더광고를 찍으셨다. 그의 오버...

  • 2011년 9월 6일 MBC FM4U 정오의 희망곡에 문자사연을 올린 게 당첨이 되면서 전화연결까지 했다. DJ인 은 홍성흔의 부인과 친분이 있던지라 이야기하는 동안 홍성흔을 형부라고 지칭했다. 롯데 팬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하면서 우승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는 등 유창하게 멘트를 날리고. 현영에게 자기 응원가를 가르쳐주고 퇴장. 청취자들은 병살타왕 등극에 대한 말을 많이 한 것 같은데 아마 기분 탓이겠지

  • 기자들과 유난히도 친한관계를 유지하기에, 기자단 투표에 의해 결정되는 상, 대놓고 말하면 골든글러브에서 객관적인 지표의 차이를 뒤엎고 상당한 표차로 수상을 하는 경우가 유독 잦다. 2001년 포수로서 20-20을 해낸 박경완을 제치고 수상을 한다든지, 2004년 홈런왕[41][42]인 박경완을 제치고 수상을 한다든지왠지 희생자가 반복되는 것 같으면 눈의 착각, 2011년 골든글러브에서 주요 지표[43]에서 앞선 김동주를 162표 차이로 누르고 수상을 한 예가 좋은 사례.

  • 2013년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에 SBS ESPN에서 특별기획으로 방송한 김성근의 돌직구에서 제대로 디스당했다. 두산의 전반기 결산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홍성흔의 이야기가 나오자 김성근이 "홍성흔은 자기 할 일이나 똑바로 했으면 좋겠다"라고 정면으로 디스한것.그리고 뉴스 댓글은 잘깠다는 두산팬들의 환호로 가득찼다 그 방송 덕분이었는지는 몰라도 후반기엔 비교적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다. [44][45]

  • 2000년 어린이날 행사때 함께 짝을 이룬 초등학생 야구 선수가 있었는데 그 선수가 바로 최재훈이었다.#

  • 2014년부터 홈런을 친 후 손 대신 턱(...)으로 하이파이브를 하는 세레머니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10호 이후로 평범하게 하이파이브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5월 19일 라디오볼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밝혔는데, 부인이랑 딸이 가정교육에 문제가 된다면서(...) 턱 세레머니를 금지시켰다고 한다.

  • 딸의 주장에 의하면, 같은 팀 외국인 선수를 많이 데려온다고 한다. 이유는 불쌍해서;;;

오늘 이 항목을 엔하위키에서 처음 본 거라면 3시간 후에 투구게 항목을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10. 역대기록

  • 타자 기록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9 두산 베어스 111 353 .258 91 14 1 16 63 47 3 25 .439 .304
2000 127 438 .290 127 13 2 10 59 55 10 35 .397 .340
2001 122 408 .267 109 18 1 8 48 50 9 32 .375 .318
2002 127 432 .289 125 17 0 18 70 51 5 42 .454 .350
2003 73 241 .290 70 12 0 7 36 20 2 15 .427 .326
2004 133 501 .329
(3위)
165
(1위)
27 2 14 86
(5위)
62 10 46 .475 .384
2005 115 394 .272 107 17 0 11 74 41 2 32 .398 .324
2006 119 390 .287 112 16 0 10 56 36 1 30 .405 .336
2007 80 231 .268 62 11 0 5 39 21 0 34 .381 .354
2008 114 423 .331
(2위)
140
(4위)
19 2 8 63 45 8 29 .442 .370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9 롯데 자이언츠 119 426 .371
(2위)
158
(4위)
33
(1위)
0 12 64 71 9 54 .533 .435
(5위)
2010 111 431 .350
(2위)
151
(2위)
28 1 26
(4위)
116
(2위)
88
(3위)
2 61 .601
(2위)
.427
(3위)
2011 132 474 .306 145 24 2 6 67 70 2 56 .403 .376
2012 113 390 .292 114 20 0 15 74 48 4 49 .459 .369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3 두산 베어스 127 469 .299 140
(5위)
21 0 15 72 61 5 63 .439 .379
2014 124 447 .315 141 19 1 20 82 63 5 68 .497 .405
통산(16시즌) 1847 6448 .304 1957 309 12 201 1069 829 77 671 .449 .366

역대수상
년도 수상내용
1999년 프로야구 최우수 신인상
2001년 골든글러브 포수부분 수상
2004년 골든글러브 포수부분 수상
2006년 미스터 올스타 선정
2008년 골든글러브 지명타자부분 수상
2009년 골든글러브 지명타자부분 수상
2010년 골든글러브 지명타자부분 수상
미스터 올스타 선정
2011년 골든글러브 지명타자부분 수상

보유기록
기록 기록 내용
.350 2년연속 .350을 기록한 두번째 선수[46]
콩라인 08~10년 3시즌 연속 타격 2위[47]
병살타 통산 병살타 1위 달성(214개 / '14 시즌)[48]
병살타 KBO 사상 최초 통산 200병살타 (13.09.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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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양력 기준. 음력으로는 10월 21일이다. 여담으로 부인은 5월 21일, 장녀 홍화리는 2월 21일생으로 장남을 뺀 가족들의 생일이 모두 21일이다.(장남은 9월 23일생)
  • [2] 롯데로 가기 전의 두산 시절에는 Suvivor의 Eyes of Tiger
  • [3] 사실 두산 시절 마지막 가을야구였던 2008년 플레이오프 6차전부터 Beethoven Virus를 등장음악으로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걸 아는 두산 팬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두산으로 돌아온 2013년에도 이 음악을 등장음악으로 쓰고 있다.
  • [4] 두산 컴백 후 사용하는 응원가. 샘플링된 원곡은 Harold Faltermeyer의 Axel F. 참고로 롯데 이적 전까지 두산에서 쓰던 원래 응원가는 동요 '꼬부랑 할머니'였다.
  • [5] 롯데 자이언츠 시절부터 불리던 응원가. 원래 가사는 홍~성~흔~ 홍~성~흔~ 화이팅! 롯데의 홍성흔!이고, 이적 후 응원가가 위의 것으로 바뀌었지만 2013년 여름부터 조지훈 응원단장으로부터 사용허가를 받았는지 뒷부분만 "두산의 홍성흔"으로 바꿔서 다시 사용하고 있다. 우주게이 히맨?
  • [6] 포수 2차례, 지명타자 4차례(4년 연속). 포수 및 지명타자 1차례는 두산 소속으로, 나머지는 롯데 소속으로 수상한 것이다. 그러나 2008년과 2010년 지명타자 골글을 제외한 4번은 논란의 여지가 많은 수상이다. 피해자는 박경완이 2번, 페타지니와 김동주가 각 1번.
  • [7] 2009년 6월 28일, 한화와의 경기에서 7이닝 동안 1루수로 뛰었다.
  • [8] 그리고 상기됐듯 이해 전무후무한 5개 부분 2위를 차지했다.
  • [9] 역사상 이 기록에 가장 근접했던 선수는 단 한 명, 전설적인 교타자 장효조밖에 없었다. 0.369, 0.324, 0.373, 0.329, 0.387(1983년~1987년).
  • [10] 백인천(1982년), 장효조(1983년, 1985년, 1987년), 김종모(1983년), MBC 김상훈(1988년), 이정훈(1992년), 이종범(1994년), 마해영(1999년), 양준혁(2001년), 김현수(2008년, 2009년), 김동주(2009년), 정근우(2009년), 박용택(2009년), 홍성흔(2009년, 2010년), 이대호(2010년, 2011년), 김태균(2012년,2014년),채태인(2013년),서건창(2014년),손아섭(2014년),강정호(2014년),최형우(2014년)
  • [11] 홍성흔은 당시 국가대표로 뽑혔던 야수들 중에서는 신명철이나 강봉규에 비해 살짝은 낮은 평기를 받았으나 결과적으로 이 둘보다 월등한 커리어를 쌓았다. 한편 신명철과 강봉규가 그토록 유망주 딱지가 붙어있다 삼성 라이온즈에서 뒤늦게 만개했다.
  • [12] 첫번째 신인왕 포수는 1990년 김동수.
  • [13] 그래도 기능에 손상은 없었던 모양인지 이 부상 이후에 화철이를 가지게 됐다고. 참고로 이전 버전에서는 화리여신으로 기재되어 있었으나, 2005년생이다. 따라서 화철이라고 해야 정답.
  • [14] 물론 단독 도루는 아니고 풀카운트 상황에서의 히트&런 작전이었던 상황에서 잡지 못한 것이었는데, 공이 안 좋게 왔고 타자가 스윙하면서 방해했다곤 해도 홍성흔 자신도 충분히 주자를 잡을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황당해 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긴 했다.
  • [15] 사실 김경문 감독 부임 이후부터 제기되었던 문제이다. 김경문 감독의 부임 첫해인 2004년, 홍성흔은 2003년에 당했던 부상 후유증으로 경기의 절반 가량은 지명타자로 나서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당시 본인의 커리어 하이를 찍게 되고 3년 만에 포수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였다. 하지만 이후 포수로서 경기 출장 시간이 늘어나면서 고질적인 발목 부상으로 고생하고 2006년 시즌 후에는 발목수술을 받았다. 주전 포수가 경기에 꾸준히 출전하지 못하는 상황이 답답하고 홍성흔의 타격 재능이 부상에 발목잡히는 것이 안타까웠던 김경문 감독은 홍성흔에게 지명타자 전향을 제의한다. 구체적인 제안은 2006년에 이미 있었으나 홍성흔의 완강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 [16] 이 때문에 전지훈련도 못 가서 학교 등지에서 홀로 연습을 했다고 한다.
  • [17] 2009 시즌 이 세 타자는 모두 3할5푼이상의 타율을 기록했다.
  • [18] 물론 반론도 있다. 병살타로 악명높았던 이도형은 그 후로도 공인된 뜬금포였고 진갑용은 두산에서 내쳐질때만해도 수비 잘하는 포수가 아니었다. 지금의 강민호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전부 젊은 시절 진갑용이 지적받았던 부분이었다. 그리고 진갑용은 삼성으로 이적하고 이듬해인 2000년 이후 조뱀을 만나 만개했다. 진갑용은 두산을 떠나면서 이악물고약빨고 훈련에 매진해 지금의 경지에 오른 것인데 만약 두산에 계속 남았다면?
  • [19] 엄밀히 말하면 표면상의 액수. FA 제도가 이상한 덕분에 벌어지는 촌극인데 절대로 저 연봉일리가 없다.
  • [20] 롯데로 이적하는 과정에서 구단측과 마찰이 있었고, 김경문 당시 감독, 김현수를 깎아내리는 태도로 인해 두산 베어스 팬들은 이적 후 홍성흔을 흑역사 취급 중.
  • [21] 영입 확정한 그날 새벽에 열혈롯빠가 작곡하고 미디찍고 보컬넣어서 완성해서 올렸다 -_-;;;; 롯데의 홍성흔 오오오오~ 홍성흔 오오오오~ 라는 가사. 경기장에서 다 같이 부르기에는 좀 빨라서 응원단장이 <What's Up>에 입힌 홍~성~흔~ 홍~성~흔~ 화이팅! 롯데의 홍성흔!으로 바뀌었다.
  • [22] 예전에도 외야 수비 연습 몇번 해보았다. 외야 중에서도 좌익수 백업용으로 수비 연습을 하였으나, 상반기가 끝난 시점에서는 지명타자로만 출전했다. 그런데 당시 포수에 미련을 못버렸는지 포수 연습도 가끔 했던 모양이다. 롯데 불펜진 연습중 공을 받아주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 [23] 타율은 좀 내려갔지만 4월에 비해서 장타율이 1할 정도 올라갔다!!!
  • [24] 반대로 최형우최진행적절한 핵우산을 얻었다.
  • [25] 다만 김동주가 국동주라는 별명을 남기고 은퇴하면서 팀케미 관련 구설수를 남기면서, 이 영입은 재평가를 받았다.
  • [26] 롯데로 이적한 이후 당시 자신은 두산프런트의제시 금액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연락을 끝까지 기다렸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다거나, 와이프가 이적 소식을 듣자마자 섭섭해서 눈물을 흘렸다거나 하는 인터뷰로 두산 구단에게 섭섭하다는 뉘앙스의 언론플레이를 자주 해 비난을 많이 받았다.
  • [27] 페넌트레이스 마지막 경기까지 출루를 했으므로 다음시 즌 첫 경기로 기록이 연결되게 되었다. 최다는 펠릭스 호세의 63경기.
  • [28] 그러나 최준석이 타격감 좋을 때 한창 벤치에 앉아 있다가 정작 타격감이 떨어지니 기용빈도가 늘어난 것은 아쉽고(물론 최준석의 내구력 문제로 해석할 수도 있으므로 지나친 확대해석은 자제해야 한다.) 윤석민은 오히려 예상치 못한 불운한 부상을 겪은 것이며 부상이 없었다면 상당한 포지션 중복이 있었을 것이다. 포스트시즌 포함 짧은 기간 좋은 모습을 보여준 오재일 역시 기회를 충분히 부여받지 못했다. 1~2루 겸업이 가능한 오재원을 감안하면 연쇄적으로는 2루의 최주환도 피해를 보았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홍성흔은 그렇게 비난받던 전반기에도 돈값은 못했지만 최악의 성적은 아니었고, 후반기에 부활하며 충분히 제몫을 다했지만 이런 팀의 풍요로운 내야상황과 보상선수로 빠져나간 그래서 롯데에서 구르다 망가진김승회 그리고 풀스윙등의 외적 요인에 의해 두산 팬들에게 억울하게 비난받은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가 만일 (그가 빠져나가 결과적으로 타선이 붕괴된)롯데에 남았다면 동일한 성적을 기록해도 이렇게 비난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 [29] 타율에서 조금 밀려서 그렇지 홈런과 타점에서는 오히려 홍성흔을 앞섰다.
  • [30] 심지어 이말년에 황신과 같이 출연했다!!
  • [31] 2011 시즌 전지훈련 인터뷰에서 해설자로 데뷔한 안경현 위원은 홍성흔 선수에게 경기 결과에 상관 없을 때는 병살타 좀 쳐서 자기 기록을 깨달라는 부탁을...
  • [32] 첫번째 병살은 매우 일반적인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지만... 두번째와 마지막 상황을 보면 우주적인 기운이 돕고 있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스트랄한 병살을 연출했다. 특히 세번째의 경우 이대호를 대주자 정훈으로 바꾸는 초강수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 [33] 1997년 5월 31일 군산 삼성전~6월 6일 사직 롯데전
  • [34] 3명 다 두산 출신이다..
  • [35] 참고로 2011년 시즌 병살타 1,2,3위는 홍성흔, 강민호, 이대호... 다 롯데 자이언츠 선수...
  • [36] 2012년 1월 10일 가짜 홍성흔 트위터가 적발됐었다.
  • [37] 대표적으로 고종수으로 알려졌지만 정작 고종수는 이렇게 밝혔으니 인터넷의 루머란 지긋지긋하다.
  • [38] 참고로 이 가발은 전지훈련 갔다가 조성환과 같이 산 거다.. 올스타전 나가면 쓰자고 산 건데 조성환은 잃어버렸다고 한다. 과연 잃어버린 걸까
  • [39] 역대 올스타전 최다득표를 기록하였다.(818,269표) 이 유니폼 홍성흔이 직접 준비한 거라고..
  • [40] 10시즌 올스타전 최종 성적은 5타수 4안타 2홈런 3타점
  • [41] 홈런왕이 골든글러브를 못탄건 역대 딱 두 번뿐이며, 나머지 한번은 MVP가 골든글러브를 타지 못한 초유의 경우인 98우즈다.
  • [42] 물론 홍성흔이 타율과 안타는 박경완보다 높았지만 출루율은 5푼 장타율은 1할 2푼이나 차이가 난다.게다가 홍성흔은 당시 지명타자로 많이 나왔기 때문에 '포수' 골든글러브를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 [43] 타율에서 2푼차이로 홍성흔이 낫지만, OPS는 0.090이 차이가 나는 상황. 심지어 도루에서도 김동주가 앞선다
  • [44] 영웅스윙 발언과 이 돌직구 발언을 통해 김성근이 홍성흔을 싫어하나? 라고 의문을 가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원래 김성근 감독은 자서전을 통해 홍성흔이 이타적인 타자고, 팀을 위해 희생한다라고 평가를 내린 적이 있었다. 즉 홍성흔을 비판하기 시작한건 최근의 일이고 각각 모래알 발언과 07, 08년으로 김성근 감독이라면 치를 떠는 롯데팬들과 두산팬들 조차 인정했으니 그리고 두산팬들은 환호했으니 이건 홍성흔 본인에게 문제가 있는게 맞다.
  • [45] 그러나 김성근의 의견이 무조건 옳다고만은 할 수 없다. 홍성흔은 지명타자 전향으로 인한 체력문제 해결로 급격한 타율 향상을 경험했지만, 그가 중심타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은 롯데 이적 후 소위 영웅스윙으로 불리는 풀스윙을 완성하면서부터이다. 그의 스윙 변화는 삼진과 병살을 늘렸지만 장타를 늘리는 동시에 다른 어떤 공격스탯에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 나이로 인한 노쇠화를 감안하면 2012년 이후의 모습도 나쁘지 않다. 그의 과도한 부담감으로 인한 찬스에서의 부진과 포스트시즌에서의 부진을 비판한다고 해도, 그것이 스윙 변화와 필연적으로 관계가 있다는 근거는 따로 제시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홍성흔은 저 말 듣고 후반기에 상당히 잘했다. 포스트시즌에 역시나 삽퍼서 그렇지
  • [46] 첫번째는 사서쓰김현수, 세번째 선수는 이대호.물론 공식 기록은 아니다.
  • [47] 3년 연속 타격 2위를 기록한 것은 사실이나,이걸 공식기록으로 인정해주진 않는다(...)
  • [48] 이쪽은 공식 기록.
  • [49] 잠실구장, 對한화, 4회말, 상대투수 송창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