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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삼

last modified: 2015-03-16 19:08:25 Contributors


두산 베어스 No.47
홍상삼(洪相三)
생년월일 1990년 2월 13일
학력 영일초-충암중-충암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2008년 드래프트 2차 3라운드 20번
소속팀 두산 베어스(2008~)
테마송 Sak Noel <I Am the Law(Radio Edit)>

Contents

1. 개요
2. 봉황대기 사건
3. 프로 선수 시절
3.1. 입단 후, 2009 ~ 2011 시즌
3.2. 2012 시즌
3.3. 2013 시즌
3.4. 2014 시즌
4. 기타
5. 참고항목
6. 연도별 성적

1. 개요

KBO의 유일한 두끝홈PS 한폭삼 허용투수.[1]

홍상삼은 충남 금산 서울특별시 출신 두산 베어스의 투수이자 현재 팀내의 충암고 라인의 최종보스,보약이다. 2009시즌 전반기 두산의 선발진이 모두 무너질 때 홀로 호투를 보여주며 승리를 따내는 모습 때문에 '승리의 요정'이라는 별명이 있다.

아나운서들도 이 선수 발음은 엄청 어려워 한다. 최훈 카툰에서는 삼(蔘)으로 표현된 바 있다. 별명들도 대체로 이 같은 특이한 이름에서 비롯. 잘할 때는 홍삼[2], 못할 때는 홍뿌리, 홍도라지, 홍더덕, 홍풀때기, 홍잡초 등등등. 성인 홍에 삼이 아닌 기타 잡초 내지는 삼과 유사한 식물들을 줄줄이 붙이는 양상의 별명이 추가되고 있으며 가장 못할때는 홍독초(…),火상삼,홍폭삼라 불린다.

2013년 6월 삼성 라이온즈와의 대구 3연전에서 벌어진 초유의 사건으로 두바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2경기 연속 굿바이 홈런의 줄임말이다.

유달리 시구, 시타 지도 복이 많은(?) 선수이기도 하다.

원래 같은 학년의 이형종(LG 트윈스), 최원제(삼성 라이온즈), 이대은(시카고 컵스)와 함께 서울 4대 투수 중 한 명이었고 두산 베어스에서도 1차 지명까지 고려했었다. 그러나 아래 봉황대기 사건으로 프로팀 스카우터들에게 찍혔고 결국 3라운드까지 밀렸다. 결과적으로 이대은은 미국으로 갔고 나머지 세 명 중에 그나마 프로에서 지금까지는 제일 성공한 선수가 되었다.

카메라맨이 만든 홍상삼 인생짤

이 짤 이후로 오목왕 홍상삼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위 장면은 2011년 4월 27일 9회초 2사 박한이 타석 때의 장면이다. 이날 두산은 11:0으로 깨졌다.

2. 봉황대기 사건

식빵왕 홍상삼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마지막 고교야구 경기인 2007년 봉황대기 결승 대 덕수고 때 일이다. 이 경기는 KBS N 스포츠에서 중계하였고, 캐스터는 유수호, 해설자는 이용철. 그리고 하일성 당시 KBO사무총장이 게스트로 와 있었다. 야구계의 어른들까지 왔던 이 경기에서 9회말 2아웃 아웃카운트 하나만을 남겨놓고 있던 9회말, 동료가 실책(사실 이때 홍상삼이 전진수비를 요청했으나 응하지 않았고, 그 결과는..)하고 동점을 내주자 마운드에서 무릎을 꿇으며 식빵을 부르짖어 해설자에게 신나게 욕을 먹었다. 분노의 홍상삼. 결국 교체되어 승리와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3] 그러나 충암고의 만루 찬스가 오자 덕아웃에서 짱구춤을 추는 만행(…)을 벌였다. 이런 행동들이 모두 중계 카메라에 잡혔고, 충암고가 결국 봉황대기를 차지한 뒤 대회 MVP로 뽑혔으나 위의 만행들로 인하여 경기 후 인터뷰도 전파를 타지 못했다. 마지막 동대문야구장 이야기 할 시간도 부족한데 그래도 MVP인 만큼 뉴스 인터뷰는 했다. 기사

배지헌의 칼럼에서 지적되었듯이, 대한민국 고교야구는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중요시 여긴다. 그런데 경기장에서 대놓고 욕을 하고, 춤을 추는 행위를 기자들과 야구관계자들이 좋게 봐줄 리가 없다. 그 때문에 야구팬들 사이에서도 이 건과 관계한 안티가 좀 많다고 한다.

3. 프로 선수 시절

3.1. 입단 후, 2009 ~ 2011 시즌

2009년 성적은 9승 5패, 평균자책점 5.23으로 신인치고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그 중에서도 2009년 롯데전 전적 6전 4승 무패, 평균자책점 2.70.이라는 성적, 그리고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롯데를 떡실신시키는 등 새로운 로나쌩 클럽 멤버 소리를 들었다. 이날 구위며 제구며 너무 좋아서 해설자들이 "완투도 할것 같다"란 소리도 했지만, 7회말 1사 상황에서 조성환의 타구에 팔꿈치를 맞아 그대로 아웃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2010 시즌들어 150km/h까지 나오던 직구 구속이 기껏해야 140km/h 초반 정도까지 뚝 떨어졌으며, 떨어진 구위와 함께 자신감까지 상실한 모습을 보였다. 사실 2009년 중후반부터 급격히 페이스가 떨어진 것이 2010년까지 이어지면서 그대로 소포모어 징크스를 맞이하였다. 더불어 롯데에게도 약한 모습을 보이며 로나쌩 클럽 회원 자격을 박탈당했다. 다만 9월 12일 롯데를 상대로 6이닝 무실점투를 보여주어서 다시 복귀하는 거 아니냐는 소리도 있었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0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경기 4이닝 7피안타 1볼넷 1피홈런 5탈삼진 5실점 4자책점 평균자책점 9.00을 기록했고 팀은 2연패 뒤 3연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2경기 5⅔이닝 8피안타 4볼넷 1사구(死球) 4탈삼진 6실점 6자책점 평균자책점 9.53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홍상삼은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3경기 9⅔이닝 15피안타 5볼넷 1피홈런 1사구(死球) 9탈삼진 11실점 10자책점 평균자책점 9.31을 기록했다.

김선우니퍼트를 제외하고는 특출난 선발이 없는 상황에서 페이스가 올라가기만 한다면 두산의 선발로 가장 기대되는 재목이었다. 멘탈을 고쳤다면 말이지[4]

사실, 2010년 이후로 헬게이트 급의 부진은 흑마법사윤석환 투수코치의 책임이 크다. 2008년 입단 이후 재활을 하면서 서서히 자신에게 적응될 투구폼으로 후반기 털리긴 했어도 5점대 초반에 9승이면 그럭저럭 괜찮은 투수 유망주였다.

그런데 수술하고 자기 투구폼을 맞춘지 1년이 안 되어서, 후반기 부진을 이유로 좀더 강한 직구를 위한다며 투구폼을 또 고쳤다. 어린 나이에 부상에 여러번 투구폼 교정으로 멘탈 붕괴도 일어나고, 그러면서 잊혀져가는 모습을 보면 두산팬들의 입장에선 그저 씁쓸할 뿐이었다. 별 수 있나? 상무나 경찰청가야지

3.2. 2012 시즌

홍상삼/2012년 항목으로.

3.3. 2013 시즌

홍상삼/2013년 항목으로.

3.4. 2014 시즌

홍상삼/2014년 항목으로.

4. 기타

전설의 봉황대기 사건도 그렇거니와 말이나 행동을 보면 좋게 말하면 괴짜고 나쁘게 말하면 정신이 있는건지 없는건지 모르는 행동을 한다. 기껏 선배가 챙겨놓은 포스트시즌 첫 세이브 기념구를 아무 생각없이 관중석으로 던져 버린다던가(...) 정수빈의 호수비로 간신히 살아나 놓고선 그거 일부러 그런거니 정수빈이 오히려 나에게 감사해서 밥을 사야 한다고 말 한다던지, 자기의 월미도 바이킹 제구 때문에 긴장하고 있는 선배 김재호한테 침착하라고 말한다던지...적반하장

두끝홈이나 포시 한이닝 3폭투 등 다른 투수라면 멘탈 붕괴가 올만한 사건[5]을 두고 타 팀 팬들이 그의 멘탈을 걱정하는 말을 하면 두산팬들이 홍삼 쟤는 붕괴될 멘탈 자체가 없다.라고 말하는 경우조차 있다(...). 사실 어차피 멘탈 붕괴가 오던 안 오던 그의 제구는 하늘의 뜻에 맡겨야 하기 때문에 그런면도 있고.

2013년 11월 20일 라디오 스타에 등장한 로봇틱스 한재권 박사하고 홍상삼이 닮았다.이건 백퍼 홍상삼이 노안이기에 비슷한 거다 한재권 박사 미안해요

불펜투수로 각성한 2012년부터 이상하게 이대형, 권용관에게 홈런을 맞은 것이나 두끝홈, 한 이닝 폭투 2개 등 결정적인 방화를 보여주면서 만만한 이미지가 형성되고 말았다. 비록 2011년의 일이지만 강명구의 프로 시절 유일하게 쳤던 홈런을 허용한 투수도 홍상삼이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2개의 홈런을 맞은 LG전 상대전적은 준수한 편이고, 실제로 2013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LG를 꺾은 1등공신 역할을 했다.

2014년 10월, 경찰청 야구단에 최종 합격하였다.

2015년 2월, 기사에서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을 살짝 갖고 있다고 밝혔다.

6.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9두산 베어스 30 117 9 6 0 3 5.23 114 75 96
2010 30 96⅔ 4 3 0 1 6.42 102 54 86
2011 6 21⅓ 0 1 0 0 6.33 26 12 5
2012 53 65⅓ 5 2 1 22
(3위)
1.93 35 31 69
2013 55 72 5 4 5 9 2.50 51 47 77
2014 12 21 0 3 0 1 8.57 26 22 17
통산 - 186 393⅓ 23 19 6 36 4.71 354 241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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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014년 4월 19일 한화 이글스유창식이 한 이닝 3폭투로 홍상삼처럼 실점까지 함으로써 한이닝 최다 폭투 타이 기록을 수립해 버림으로써 홍상삼은 더 이상은 한폭삼의 유일한 투수가 아니게 되었다. 딱히 명예롭지도 않은 것 같은데
  • [2] 못할 때도 홍삼이라고 불린다. 정확히는 '다른 팀의 '(...)이란 뜻으로.
  • [3] 그의 뒤를 이어 등판해 승리를 따낸 투수가 201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KIA에 지명된 이효상이다.
  • [4] 사실 모 매체에서 뿌린 클럽 사진 중에 본인으로 추정되는 사진이 있어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강민호도 있었다는 건 비밀
  • [5] 아닌게 아니라 두끝홈 이후 인터뷰에서 '뭐 이름 남기면 좋죠'라고 인터뷰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