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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last modified: 2019-06-07 14:15:36 Contributors

일본프로야구
세리그 / 퍼시픽리그(Pacific League)
Rakuten1.png
[PNG image (Unknown)]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Tohoku Rakuten GoldenEagles)
S-Lions.PNG
[PNG image (Unknown)]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Saitama Seibu Lions)
Buffaloes.PNG
[PNG image (Unknown)]
오릭스 버팔로즈
(Orix Buffaloes)
C-Marines.png
[PNG image (Unknown)]
치바 롯데 마린즈
(Chiba Lotte Marines)
H-Fighters.PNG
[PNG image (Unknown)]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Hokkaido Nippon-Ham Fighters)
S-hawks.png
[PNG image (Unknown)]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Fukuoka Softbank Hawks)

nipponhammascot.png
[PNG image (Unknown)]
팀 엠블럼 팀 마스코트
브리스키 베어(좌, 약칭 B.B)와 폴리 폴라리스(우, 약칭 P.P)[1]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Hokkaido Nippon-ham Fighters
北海道日本ハムファイターズ
구단 법인명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株式会社北海道日本ハムファイターズ)
창단 1946년
연고지 홋카이도 삿포로
현재 연고지로 이전 2004년
구단 연고지 변천 도쿄 도 (1946~2003)
홋카이도 (2004~)
구단명 변천 세네터스 (1946)
도큐 플라이어스 (1947)
규에이 플라이어스 (1948)
도큐 플라이어스 (1949~1953)
도에이 플라이어스 (1954~1972)
닛타쿠홈 플라이어스 (1973)
닛폰햄 파이터스 (1974~2003)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2004~)
홈 구장 고라쿠엔 구장 (1948~1953, 1964~1987)
코마자와 구장 (1953~1961)
메이지진구 야구장 (1962~1963)
도쿄돔[2] (1988~2003)
삿포로 돔 (2004~)
2군 구장 카마가야 파이터즈 스타디움 (1997~)
모기업 닛폰햄
감독 쿠리야마 히데키 (栗山 英樹)
일본시리즈 우승
(2회)
1962, 2006
퍼시픽리그 우승
(6회)
1962, 1981, 2006, 2007, 2009, 2012
퍼시픽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3회)
2007, 2009, 2012
플레이오프 우승
(2회)
1981, 2006
세리그/파리그 교류전 우승
(1회)
2007
아시아 시리즈 우승
(1회)
2006
공식 홈페이지

Contents

1. 개요
2. 구단 역사
2.1. 창단시부터 2003년까지 - 안습의 비인기구단
2.2. 2004년 홋카이도 이전 이후
3. 홈구장 - 삿포로 돔
4. 시즌별 성적 및 이야깃 거리
4.1. 2008년 시즌
4.2. 2009년 시즌
4.3. 2010년 시즌
4.4. 2011년 시즌
4.5. 2012년 시즌
4.6. 2013년 시즌
4.7. 2014 시즌
5. 팀 특징
6. 대표적인 선수들


1. 개요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의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홋카이도. 모기업은 일본의 식품회사인 닛폰햄이다.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주로 니혼햄이라고 하지만[3] 일본인은 모회사 이름에 따라 닛폰햄이라고 한다. 실제 발음은 닛폰하무(にっほんハム)... 팀 명칭인 파이터즈는 싸움꾼이란 뜻으로, 팬 공모로 지은 팀 명칭이다. 2013년 3월 14일 2013 WBC 일본 대표팀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경기에서는 라디오 중계를 하던 자이언츠 해설자가 니폰이 이름이고 햄 파이터즈가 닉네임인줄 알았다고 개그를 쳤다.[4]

2. 구단 역사

2.1. 창단시부터 2003년까지 - 안습의 비인기구단

1936년부터 1940년까지 존재했던 야구단인 세너터스의 부흥을 위해 1945년 11월 6일에 세너터즈의 중심인물인 요코자와 사부로가 세너터즈 재건을 목표로 창단한 구단이다. 그 후 1947년 철도회사인 도큐에 매각되어 도큐 플라이어즈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1954년 영화회사인 토에이에게 구단이 매각되어 토에이 플라이어즈, 1973년 부동산회사인 닛타쿠홈에게 매각되어 닛타쿠홈 플라이어즈, 이듬해인 1974년 일본의 식품회사인 닛폰햄 파이터즈가 되었다가 2004년 홋카이도로 연고지를 옮기면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장훈이 이 팀에서 데뷔하였으며, 장훈의 활약으로 1962년 일본시리즈에서 한신 타이거스를 꺾고 첫 우승을 차지한다. 그 외에도 스기 카츠오, 오자키 유키오, 백인천 등이 활약하여 1960년대 퍼시픽리그를 대표하는 팀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장훈이 197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하면서 전력이 급강하, 에나츠 유타카를 앞세워 1981년 리그 우승[5]과 1982년 플레이오프 진출[6]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 한동안 밑바닥에서 지냈다. 특히 도쿄돔을 홈구장으로 쓰던 1990년대의 닛폰햄 파이터즈는 그야말로 안습. 그나마 도쿄돔 후기에는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타오카 아츠시, 먼 오반도, 다나카 유키오, 이젤 윌슨 등 강타자들이 포진한 '빅뱅 타선'이 위력을 발휘했으나 에이스 카네무라 사토루 정도를 빼면 안습하기 그지없는 투수진 탓에 신통한 성적은 못 거뒀다.

장훈을 영입하기 위해서 당시에 외국인은 드래프트 지명으로 외국인을 영입을 할수 없어서 구단주가 직접 그 규정을 고치고 외국인도 일본에 오랫동안 살면 일본인과 똑같이 드래프트 지명를 할수 있게 규정을 바꾸게 되었다. 그래서 재일교포나 혼혈인이 꽤 있는 팀 중 하나. 1990년대 후반 에이스 역할을 했던 가네무라 사토루와 이와모토 츠토무 등이 재일교포로 유명했고, 다르빗슈 유도 아버지가 페르시아인이며, 특히 멜 슬레지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백인천도 이 팀에서 데뷔했다. 1959년에 데뷔한 장훈의 뒤를 따라 1963년 1군으로 입성하여 포수에서 중견수로 포지션을 바꾼후 평범한 활약을 보이다 나중에 다이헤이요클럽 라이온즈(지금의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로 이적하게 된다.

2003 시즌까지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텃밭인 도쿄 돔을 같이 쓰는 바람에, 그냥 만년 비인기 구단이였다. 아예 도쿄를 한정으로 나름대로 독자적인 팬베이스를 확보하던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와는 달리 그냥 붕 떠있는, 비록 퍼시픽 리그에서 도쿄를 대표하는 구단이라는 상징성은 있었지만 팀 성적이 안습해서 상징성만으로는 운영을 할 수 없었다. 당장에 교진과 파이터즈 도쿄돔 중계를 놓고 비교해 보더라도 관중 수가 눈에 띄게 차이가 있었다.

예전에는 요미우리와의 비교는 커녕 야쿠르트 스왈로즈와 비교해도 미안할 정도로 비인기 팀으로, 이전 전인 2003년 총동원 관중수는 131만에 불과했다. 이는 2011년 한국의 롯데 자이언츠(135만)보다도 못한 수치. 도쿄돔사직구장의 두 배인 55000명이 수용 가능한 구장인데다, 일본은 경기수가 한국야구보다 많고, 일본의 수도라는 거대 세일즈 시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얼마나 비인기팀이었는지 알 만하다. 참고로 동시기 요미우리는 376만, 야쿠르트는 184만. 그나마도 경기장을 찾은 열혈팬은 있었지만, 일반팬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 (게다가 2000년대 중반 이전의 일본야구는 관중 부풀리기가 일상화되어 있었고 교진만 해도 실집계로 전환한 후에는 300만을 밑돌고 있다) 반면, 2011년에는 199만으로 일본 양대 리그 전체에서 5등 정도의 나름대로 중상위의 인기팀이 되었다.

연식글로브의 파쿠만사가 교진을 좋아는 여자와 같이 경기를 보러 갔더니 하필이면 닛폰햄 경기였다 카더라.

2.2. 2004년 홋카이도 이전 이후

닛폰햄은 이를 타파하고자 2004년에 연고지를 옮기기로 결정하고 장소를 물색 중에 2002년 월드컵 당시에 지어놓은 삿포로 돔이 비어있는 것[7]을 보고 홋카이도로 연고지를 옮기는 용단을 내렸다.[8]

여기서부터 닛폰햄의 역사는 다시 써도 될 정도로 이는 큰 변화였다. 야구에 별 관심 없거나 막연하게 TV에서 중계해주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경기를 보면서 미지근하게나마 그 쪽 팬이였던 홋카이도 지역주민을 단번에 자신들의 팬으로 흡수하였고, 이 시기에 모기업 지원까지 빵빵하게 받아 리빌딩을 거친 뒤로는, 일약 퍼리그 3강에 들어갈정도의 전력을 갖추게 됐다.

2004년의 연고지 이전 이후, 트레이 힐먼 감독(2013 시즌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벤치코치) 체제 아래 다르빗슈 유 등의 젊은 선수를 영입하는 등 팀 리빌딩을 시도한 것이 결실을 맺어 2006년 마침내 44년 만에 일본시리즈 정상에 오르게 된다. 당시 상대팀은 주니치 드래곤즈로 최종성적은 4승1패. 그러나 이듬해인 2007년 이 두 팀은 다시 일본시리즈에서 격돌하여 반대의 성적으로 주니치 드래곤즈가 우승한다.[9]

홋카이도 이전 후에는 항상 우승권에 발을 걸칠 정도였고, 60년 간 두 번밖에 못한 파리그 우승을 불과 9년 사이에 네 번 이룩하였고, 44년만에 팀의 2번째 일본시리즈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때문에 지금은 북해도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존재가 되었다. 깍두기의 대 반란

파이터즈의 연고지 이전 성공으로 지방도시 야구단도 성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고, 이듬해에 창단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미야기 현에 정착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3. 홈구장 - 삿포로 돔

삿포로 돔 항목 참조.
홋카이도에 있는 아사히카와,오비히로,하코다테 등에서도 홈경기를 치르는데 2013년 조명탑을 설치한 아사히카와 스타르핀 구장 이외의 곳은 야간경기가 불가능하다.

4. 시즌별 성적 및 이야깃 거리

4.1. 2008년 시즌

놀랍게도 치바 롯데 마린즈반 게임 차로 극적으로 제치고 정규리그 3위를 확정, 클라이맥스 시리즈 1스테이지에 진출하여 정규리그 2위 오릭스 버팔로즈에 1차전 4:1, 2차전 7:3으로 승리하여 클라이맥스 시리즈 2스테이지에 진출했지만, 퍼시픽리그 정규리그 1위로 1승 어드밴티지가 부여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선발투수쿠이 히데아키가 6차전에서 완봉승을 거두는 등 철저하게 발리면서 2승4패(1승 어드밴티지로 인한 1패 포함)로 패해 일본시리즈 진출에는 실패했다.

4.2. 2009년 시즌

팀의 주축 선수인 외국인 용병 터멜 슬레지 등 6명의 선수가 2009년 8월 19일경에 인플루엔자 A에 감염되어 몇몇 경기에 못나왔음에도 불구하고 82승60패2무로 거뜬히 퍼시픽리그 1위를 확정지으며 클라이막스 시리즈 2스테이지에 직행하고 1승 어드밴티지도 가져가게 되었다. 몰라 뭐야 그거 무서워. 그리고 이번에는 2스테이지에서 한창 상승세를 타고 올라온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즈를 4승 1패(어드밴테이지 1승 포함)으로 돌풍을 잠재우며 일본시리즈 진출을 확정 지었다. 그리고 일본시리즈에서는 센트럴 리그 우승팀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28년 만의 혈전끝에 2승 4패로 우승에 실패했다.

4.3. 2010년 시즌

전년도에 비해서 타선이 전체적으로 변비기미(...)였으며, 투수도 다르빗슈 혼자 분전했다는 인상이 강했다. 물론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고, 요 몇년간 강호였기에 시종일관 우승권에 발은 걸치고 있었으나, 결국 시즌 막판에 치바 롯데 마린즈에 불과 0.5게임차로 4위에 그쳐, 클라이막스 시리즈 진출에는 실패했다. 참고로 08년에는 정 반대 상황으로 닛폰햄이 롯데에 0.5게임차로 클라이막스 시리즈에 진출한 역사가 있다. 역사는 돌고 도는것(...).

4.4. 2011년 시즌

주목을 모은 손수건왕자 사이토 유키를 3구단 경합끝에 드래프트 뽑기에 성공하여 영입하면서 시작한다. 공인구 바뀐 탓에 투고타저가 되었는데 득을 본건지 실을 본건지 모를 미묘한 상황. 여전히 다르빗슈에게 득점지원은 미미해서 1.44의 먼닭스러운 ERA를 뽑아낸 다르빗슈에게 6패(18승)씩이나 안겨줘서 사와무라상을 또 놓치게 만드는 변비타선의 지속이였다.

다만 투수력 버프는 제대로 받아서 일본 프로야구 기록인 팀 52이닝 연속 무실점이라는 변태스러운 기록을 내면서 초중반에 괴수모드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호각으로 1,2위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9월 이후 페이스가 완전히 떨어지면서 1위와 경기차가 크게 벌어지며 결국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3위인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게 2연패로 시즌을 끝냈다. 그리고 만년 2위의 주범(...) 시다 마사타카[10] 감독이 자진퇴임. 다르빗슈 유는 포스팅으로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 다음해 DTD를 시전할 유력 후보로 꼽히면서 12년 시즌을 맞이한다.

4.5. 2012년 시즌

신 감독으로 리야마 히데키TV아사히 해설자를 감독으로 앉혔다. 전 야구선수 -> 해설자 -> 감독 테크야 일반적이긴 한데 쿠리야마의 경우는 선수시절 그리 특출난 선수가 아닌 평범한 외야수로 9년만에 은퇴한 선수라는 점과, 90년에 은퇴하고 바로 해설자로 들어가서 근 20년간 단 한번도 코칭스탭을 해본적 조차 없다는 점에서 처음에는 대단히 까이던 인선이였다.

게다가 드래프트 1위 덕후인 양반이라 사실 여러모로 역부족으로 여겨지던 사이토 유키를 개막선발로 꺼낸다던가, 부진으로 1할후반을 밑돌던 거포 나카타 쇼를 .190 아래 타율을 밑돌아도 4번으로 끝끝내 우겨박는등 요상한 기용이 많았다.

그런데 나카타는 6월부터 페이스를 찾고 타율은 그냥 그랬지만 장타 양산과 신들린 좌익 수비, 보살로 4번 값을 하기 시작했고, 6년차라 더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파이어볼러 좌완 시카와 미츠오를 발굴해서 ERA 1위와 14승(5패) 활약으로 다르빗슈의 공백을 메울정도로 활약시키는 등, 시즌 끝나고 보니 잘 맞아떨어진 인선을 했다고 하여 평가가 많이 뒤집어졌다다만 단 한명 사이토 유키는 망했어요

결국 초반에 반짝하던 치바 롯데 마린즈와 FA 유실 출혈로 헤롱대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막판 뒷심을 발휘해서 꼴찌에서 1위까지 치고올라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를 모두 제치고 막판 5경기를 남긴 상황에서 4년만에 퍼시픽 리그 우승을 하였다.

우승이 결정되는 시합당시 닛폰햄은 시합이 없었고, 매직넘버 1인 상황에서 2위 세이부가 지는 바람에 우승이 결정됐다.당시에는 이거 대비한다고 연습을 공개로 돌리고 삿포로 돔을 개방했는데, 시합도 없는날인데도 불구하고 1만명 넘는 관중이 찾아왔다고. 때문에 초라할 줄 알았던 우승 세레모니 현장이 매우 훈훈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퍼시픽리그 우승 어드밴티지로 1승을 안고 홈에서 6경기를 모두 치루게 되었다. 소프트뱅크와의 경기에서 탄탄한 투수력을 바탕으로 3승을 거두면서 스윕, 3년 만의 일본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일본시리즈에서는 한수 위라고 평가되던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끝까지 호각으로 싸웠으나, 예상대로 타력 부족으로 패배하였다. 결과는 2승 4패. 하지만 쉽게 내준건 5차전 한 번 뿐이고 나머지는 끝까지 뒷심을 발휘하면서 저력을 보여줬다. 아쉬운건 4경기 다 더블에이스인 요시카와와 타케다 마사루로 졌다는 점. 그리고 6년간 3번이나 일본시리즈 가서 다 준우승 깔아줬다는것도 비극 여담으로 5차전에서 일본시리즈 사상 최악으로 평가받는 오심이 일어났었다. 타다노 카즈히토 항목을 참고할 것.

4.6. 2013년 시즌

괴물 유망주 오타니 쇼헤이가 입단하면서 기대를 모았지만, 5위 오릭스 버팔로즈와 3.5게임차 꼴찌를 차지했다. 오타니 쇼헤이는 투타 모두에서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였고, 이토이 요시오가 오릭스로 떠난 여파를 메꾸지 못했다. 결국 투-타 모두 꼴찌를 차지하며 오릭스[11]에 밀리는 원인이 됐다. 작년 망했던 나카타 쇼가 28홈런으로 분전했고 쿠바 출신의 망명선수 어브레이유도 31홈런으로 리그 1위를 찍었고, 요다이칸도 제 역할을 다했지만 그게 다였다. 투수진은 전년도 리그 MVP 요시카와 미츠오가 3.31의 방어율로 리그 6위를 차지했지만 7승 15패로 양리그 통합 최다패를 기록하며 안습한 시즌을 보냈다.

4.7. 2014 시즌

3위로 정규시즌을 마치며 1위 다툼을 하다 나가떨어진 오릭스와 클라이맥스 퍼스트 스테이지를 치르게 되었다.

클라이맥스 퍼스트 스테이지 1차전에서 7회 역전을 이루어내며 오릭스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3차전 연장 10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2위 오릭스를 물리치고 파이널 스테이지까지 진출했다.

클라이맥스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1위 호크스를 끝까지 괴롭히며 최종결전을 치뤘으나, 결국 투수진이 무너지며 패퇴했다. 안그래도 쓸만한 선발이 적은 닛폰햄이 오릭스전이 장기전이 되면서 투수들이 휴식할수 있는기간이 사라졌고, 덕분에 닛폰햄 수뇌진은 울며 겨자먹기로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체로 우와사와와 오타니등을 등판시킬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최종결전날 선발인 우와사와가 4회 2실점으로 강판, 후속인 중간계투 에이스인 카기야 투수도 솔로홈런을 얻어맞고 무너져내리며 점수차를 따라잡지 못하고 패배했다.

시즌을 리뷰하자면, 2014년 쓸만한 선발이 우라노,오타니,우와사와의 3명뿐이었던 닛폰햄은 2014년 루이스 멘도사를 영입하고, 사이토 유키의 부활을 시도, 두부멘탈타케다 마사루의 선발전향을 시도했다. 헌데 멘도사는 7승13패로 영 좋지못한 결과를 냈고, 사이토 유우키는 시즌종반에서야 가까스로 몸을 추스려서 시즌중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했고, 타케다 마사루는 변함없는 두부멘탈을 피로한 덕분에 선발에서 중간계투로 변경[12]. 4,5,6위팀이 알아서 자멸해준덕분에 3위까지는 올라왔지만 결국 만성적인 쓸만한 선발부족인 원인이 되어 튼튼한 투수층이 생명선인 단기결전에서 무너져버린 안습시즌.

5. 팀 특징

홋카이도 시대 이 팀을 대표했던 선수는 다르빗슈 유.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자주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선수다. 지금은 텍사스 레인저스 입단. 그리고 여러가지 의미로 유명한타다노 카즈히토도... 공수겸장 2루수 나카 켄스케[13],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이적한 강타자 나바 아츠노리, 한국계 네코 마코토모리모토 히초리, 지금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있는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등이 이 팀을 빛냈다.

신죠 츠요시가 마지막으로 뛰었던 팀. 현재 모리모토 히초리가 대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모리모토가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로 이적하는 바람에... 묘한 정신세계의 외야수 계보는 이토이 요시오가 이었다가 오릭스행.



2011년 1월 29일 새 유니폼을 공개했는데 의외로 멋지게 나왔다. 원정이 금색과 검정색으로 도배 되어있었으며 홈 유니폼은 완전 간지! GO! GOLD RANGER! 이 유니폼 변경의 유일한 패배자는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2009 유니폼 원정 유니폼 전면 표기가 HOKKAIDO NIPPONHAM으로 바뀌며 원정 유니폼 전면에 연고지가 표기된 제 4[14] 제 3 구단이 되었다. 그리고 보조 유니폼인 HOKKAIDO 유니폼을 매 년마다 다른 디자인으로 선보이고 있다.


2014년형 보조 유니폼.

홈과 원정 때 쓰는 모자가 다른데, 홈에선 F가 새겨진 모자를, 원정에선 H가 새겨진 모자를 쓴다. F는 Fighters의 앞글자이고, H는 Hokkaido의 머릿글자. Ham 아니다!

연고지 이전 이후에 참가한 신인 드래프트에서 뽑은 1라운더들이 대박을 치는 경우가 많다. 다른 구단이 보면 부러워한다. 다르빗슈 유, 나카타 쇼, 손수건 왕자 사이토 유키 등이 드래프트 1라운더들. 또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의 추파를 받았을 정도로 2012 시즌 일본 고교야구의 핫이슈였던 오타니 쇼헤이(大谷翔平) 역시 이 팀에 지명되어 입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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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별난 인간들이 많다 카더라 사실 이건 대부분이 신죠 츠요시 덕분이다.[15]

응원가와 관련해서도, 성우 겸 가수인 카사하라 히로코가 응원가를 부른 적이 있다. 도저히 야구 응원가 같지 않지만... (보러가기) 2015년에는 하츠네 미쿠의 파생 캐릭터인 '유키미쿠'와 콜라보레이션을 기획하여 유키미쿠가 응원가를 부른 바 있다. (오글거림 주의)

6. 대표적인 선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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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도쿄돔 시절에는 야구배트를 든 기사 모양의 마스코트 #를 사용했으나 홋카이도 연고 이전 후 홋카이도 토착종인 곰과 다람쥐를 모티브로 새로 마스코트를 만들었다. B.B의 경우 일본프로야구 마스코트 중에서도 독보적인 똘끼(…)를 보여주는 것으로 꽤나 유명하다. 신죠한테서 배웠나 보다시피 왼쪽과 FIGHTERS 폰트가 다른데, 현재 유니폼에 새겨진 건 마스코트 엠블럼 폰트다.
  • [2] 오리지널 파이터즈 팬들을 위해 매년 정기적으로 파이터즈 홈경기를 개최하고 있다. 이렇게 지역명 반대파의 근거는 하나 떨어지고...
  • [3] '日本'의 일본어 발음을 '닛폰'이라 표기하는 것을 가급적 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의 산물이라는 게 그 이유. 홋카이도 파이터즈라고 하면 눈치 안 봐도 되고 편해 아니면 번역해서 일본햄이라고 하든가
  • [4] 사실 일본에서도 햄(ハム)이라고 자주 줄여서 부른다.
  • [5] 참고로 이 해 일본시리즈 전 경기가 고라쿠엔에서 열렸다. 아직 LG와 두산이 해내지 못한 것을...
  • [6] 퍼시픽리그는 1973년부터 1982년까지 전후기리그로 나눠 운영했으며, 전후기 우승팀 두 팀이 5전3선승제로 벌이는 플레이오프를 실시했다. 1985~88년 한국프로야구 규정과 동일. 닛폰햄은 1981년 전기우승, 1982년 후기우승을 했다.
  • [7] 정확히는 축구장으로 쓰고 있었다. 콘사돌레 삿포로의 본거지이다.
  • [8] 물론 프로야구 공식전(시즌 경기)가 가끔 열리곤 했는데, 이때는 세이부 라이온즈가 제2홈구장으로 사용했다.
  • [9] 특히, 시리즈 최종전인 5차전은 일본시리즈 최초의 퍼펙트 게임이 나온 경기로 파이터즈가 희생양이었다. 이에 대한 뒷얘기는 퍼펙트 게임 항목 참조.
  • [10] 킨테츠 버팔로즈의 프랜차이즈 포수이자 2004년 킨테츠 구단 해체 당시의 감독이었다.
  • [11] 타격은 니혼햄 바로위의 5위지만 투수진은 방어율 1위를 달성.
  • [12] 닛폰햄측에선 '에이스' 타케다 마사루를 층이 얇은 중간계투로 보내서 보강하는게 목적이라고 했지만, 팬중 그 누구도 방어율이 4~6점대를 왔다갔다하는 투수를 에이스라 칭하며 중간계투로 돌리는게 강화라는 구단의 말을 신용하지않았다.
  • [13]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소속
  • [14] 요코하마 DeNA가 원정 유니폼 앞면에서 연고지 표기를 오른팔로 옮기며 하나 줄었다.
  • [15] 단순한 장난 이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 홋카이도로 막 이전한 미미한 구단이 존재감을 확보할 수 있었던 데는 이러한 팬서비스가 크게 도움이 되었다. 똘끼의 주범(...)인 신죠 츠요시가 프로야구계에서 팬서비스를 유달리 강조한 선수이기도 했고.
  • [16] 2013 WBC 대만 국가대표, 2012년 외야수 골드글러브 수상. 후쿠오카 제1고교출신이라 고교생 드래프트로 입단
  • [17] 선수와 1군 배터리코치를 겸임하고 있다.
  • [18] 2008년에서 2010년까지 캔자스시티 로얄스의 감독을 맡았고, 해임된 뒤 2013년 시즌까지 LA 다저스에서 돈 매팅리 감독 휘하의 코치로 활동하였다.
  • [19] BECK다나카 유키오의 이름은 이 선수에서 따왔다고 한다.
  • [20] 학생회의 일존 11화에서 대타 알바로 출장한 적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