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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안토니오 카마초

last modified: 2015-04-09 20:02:01 Contributors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 알파로(Jose Antonio Camacho Alfaro)
생년월일 1955년 6월 8일
국적 스페인
출신지 무르시아 지방 시에사
포지션 수비수(레프트백)
174cm
유스팀 알바세테 발롬피에
소속팀 알바세테 발롬피에 (1972~1973)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CF (1973~1974)
레알 마드리드 CF (1974~1989)
지도자 라요 바예카노 (1992~1993)
RCD 에스파뇰 (1994~1996)
세비야 FC (1996~1997)
RCD 에스파뇰 (1997~1998)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1998~2002)
SL 벤피카 (2002~2004)
레알 마드리드 CF (2004)
SL 벤피카 (2007~2008)
오사수나 (2008~2011)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2011~2013)
국가대표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Contents

1. 소개
2. 선수시절
3. 감독시절
4. 기타

1. 소개

스페인 출신의 전직 축구 선수이자 전직 축구 감독.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자 전직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다. 선수 시절의 포지션은 수비수(레프트백)이었다. 위상으로 따지면 유럽 역사에서 손에 꼽힐 만한 레프트백이고, 스페인 내에서는 아직 그의 아성에 도전할 만한 선수가 없다.

2. 선수시절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는 1974년부터 1989년까지 15년간 레알 마드리드 CF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동료들도 다들 레전드다. 비센테 델 보스케, 가르시아 레몬, 산틸랴나, 후아니토, 울리 슈틸리케 등....
1975년 2월 5일 스코틀랜드와의 UEFA 유로 1976 예선 경기(스페인은 스코틀랜드와 1-1로 비김)에 처음 출전하면서 스페인 축구 대표팀에 데뷔했다. 13년 동안 스페인 대표팀의 수비 역할을 담당했고 1982년 스페인 월드컵과 UEFA 유로 1984, 1986년 FIFA 월드컵, UEFA 유로 1988에서 스페인 대표로 출전했다. 1988년 서독과의 경기(이 경기에서 스페인은 서독에 0-2로 패함)를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3. 감독시절

감독시절 최고의 전성기가 될 수 있던 순간에 불운으로 인해 비운의 주인공이 되어야 했던 인물.
알고보면 이 인물도 한살 형인 이분처럼? 파란만장한 감독시절을 산 인물이다.
1998년 유프 하인케스가 레알 마드리드 감독직에서 사임한 후 6월 17일에 후임 감독으로 부임했지만 코칭 스태프와의 갈등으로 인해 22일만에(7월 9일) 사퇴했다.[1] 그 후 1998년 9월부터 2002 한일 월드컵 기간까지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으며 유로 2000 본선에서는 8강에 진출했다. 그리고 알다시피 2002년 한일월드컵 8강전에서 한국에게 승부차기로 패해 탈락했다.[2] 2002년 11월 29일 SL 벤피카의 감독으로 취임하여 2004년까지 맡았으며 2003-04 시즌에 포르투갈판 FA컵이라고 할 수 있는 타사 드 포르투갈 대회에서 우승했다. 하지만 그의 재임기간에 벤피카 팀의 미클로시 페헤르 선수가 경기 도중 심장마비로 쓰러졌고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소식을 들은 카마초 감독은 굉장히 슬퍼하였다. 그 뒤 2011년 중국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었지만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에서 최종예선도 진출 못하고 3차예선에서 탈락했다.[3] 그리고 2013년 평가전에서 태국에게 1:5 참패를 당하면서 1년 계약기간을 남기고 경질되었다.[4] 이 때의 실패는 카마초 감독 본인과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모두에게 상처가 되었다.

4. 기타

놀랍게도 홍명보 감독 사퇴 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차기 감독 후보로 거론되었었다. ## 하지만 후임 감독으로 선임된 인물은 카마초가 아닌 카마초의 현역 선수시절 팀 동료 중 한 사람이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스페인 대표팀은 월드컵 기간 중에 똥개한국 토종개(...)를 길렀다. 시장에서 멍멍탕(...)이 될 운명에 처한 강아지를 보고 가엽게 여긴 스페인 기자가 구해왔다고[5]. 이 누렁이는 카마초 겨땀감독의 이름을 따서 '카마친'이라고 불렸다. 카마친은 스페인 선수들에게 몹시 사랑받았지만, 비행기 검역에 걸려서 선수들이 스페인으로 돌아갈 때 못 데려갔다고 한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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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그 직후인 1998년 7월 15일 레알 마드리드 감독으로 선임된 인물은 이 인물이다.
  • [2] 여기서 대회 최종순위를 잘 보면 당시 스페인의 대회 순위는 5위. 실질적 4강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었고 어떻게 보면 이 때 당시가 카마초 감독 시절 최고의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다. 카마초 감독 당시 스페인 대표팀의 플레이를 보면(예:2002년 한일월드컵 8강 한국 대 스페인 전) 티키타카와는 다른 스타일의 플레이를 보였고, 필요하면 롱볼축구도 자유자재로 구사하던 팀이었다.
  • [3] 사실은 한국팀도 최종예선도 못 가고 3차예선에서 탈락할 뻔했었다.
  • [4] 하지만 월드컵 지역예선탈락, 태국전 참패 등의 부진을 너무 카마초의 잘못으로 돌리기는 곤란했다. 그 이전에 디에고 마라도나가 상하이 선화의 감독 물망에 올랐는데 마라도나는 "인구가 이렇게 많은데도 이렇게 축구를 못하는 종자들은 보다가도 처음본다."며 거절한 사례가 있었다##
  • [5] 그냥 시장 아줌마가 키우던 누렁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 [6] 하지만 나중에 알려지기로 몇 개월 후에 카마친을 그리워한 선수가 사람을 보내서 통역관이 맡아서 기르고 있던 카마친을 정식으로 데려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