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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헤 포사다

last modified: 2015-02-17 09:43:02 Contributors


이름 호르헤 포사다 (Jorge Rafael (Villeta) Posada)
생년월일 1971년 8월 17일
국적 푸에르토 리코
출신지 산투리세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양타
프로입단 1990년 드래프트 24라운드
뉴욕 양키스 지명
소속팀 뉴욕 양키스(1995~2011)

뉴욕 양키스 영구결번
No.20

Contents

1. 선수 이력
2. 특이 사항

1. 선수 이력

1990년 드래프트에서 24라운드로 뽑혀 양키스에 입단한다. 드래프트 순위와 나이를 보면 알 수 있듯 즉전감은 아니었다. 지명 당시에는 포수와 내야수(주로 2루수)를 봤으나 포수로 쓰기엔 송구 능력이 떨어지고, 내야수로 쓰기에는 어린 나이를 감안해도 돌글러브 기질이 심했다. 그러나 포수를 볼 수 있으면서 타격이 괜찮아 로우 A부터 트리플 AAA까지 차곡차곡 한 단계 밟아 나갔다. 그러나 당시 양키스 포수 자리에는 마이크 스탠리, 지라디 등이 버티고 있었기에 메이저리그에서도 95년 1경기 출전[1], 96년 8경기 출전 [2], 97년 60경기 출전 등 점점 출전시간을 늘려나가야 했다.

그리고 주전을 꿰찬 98년, 111경기에서 17홈런으로 포수로서 상당한 장타력을 뽐냈다. 그러나 당시 AL엔 퍼지가 NL엔 피아자 데이비드 웰스와는 배터리 궁합이 잘 맞았는지 이 해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기도 했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의 양키스 왕조의 월드시리즈 3연패에 일조했고, 2000년에는 28홈런을 치는 등 타격이 진일보해 이후 4년 연속으로 올스타 출전, 실버슬러거 수상에 성공했고, 2003년에는 MVP 투표에서 3위까지 할 정도로 기량이 만개했다.
2007년 시즌이 끝난 뒤 FA 자격을 취득해 4년 5240만 달러에 잔류했다.[3]

그러나 포수가 워낙 단명하는 포지션이기도 한 탓에 이후 자주 부상에 시달리게 되는데, 타격보다 수비의 쇠퇴가 두드러진다. 2009년에는 A.J. 버넷과의 불화설이 있었는데 당사자들은 이를 부인했으나 실제로 포사다가 마스크를 쓸 때보다 수비형 백업포수 세 몰리나와 배터리를 이룰 때 버넷의 성적이 훨씬 좋았던 것도 사실이고 버넷의 커브를 포사다가 블로킹하기 힘들어하기도 했다. 예전 데이비드 웰스의 알콜 커브를 받아내던 모습을 생각하면 격세지감.[4] 블로킹 뿐만 아니라 2루 송구도 나빠졌다. 그렇지만 수비 하는 내내 블로킹과의 싸움을 하다가도 장타로 게임을 뒤집는 등 지명타자로서의 가치도 충분하다. 로빈슨 카노가 클린업 울렁증을 극복 못했을 시기에는 간혹 5번 타자로서도 출전했을 정도다.

사실 양키스 측에서는 계약기간 내내 포사다를 포수로 쓸 생각은 아니었고 계약 후반에는 트레이드로 데려온 닉 스위셔와 함께 1루수와 지명타자 슬롯에도 활용할 계획이었는데 2008시즌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는 대참사가 터지자 보스가 덜컥 마크 테세이라를 질러버렸고 지명타자에는 마쓰이 히데키가 있는터라 포수 마스크를 길게 쓰게 된 면도 있다.

2011시즌엔 양키스에는 수비형 백업포수인 프란체스코 서벨리가 있고 팜에는 베네수엘라산 대형 공격형 포수 재능 헤수스 몬테로와 상당한 수준의 수비형 포수 유망주인 오스틴 로마인이 대기하고 있는 상태였으며,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논텐더로 풀린 포수 러셀 마틴마저 데려왔기 때문에 2011시즌의 포사다는 주로 지명타자로 나서게 되었다. 2010 시즌까지 통산 올스타 출전 5회, 실버 슬러거 수상 5회.

결국 2011년에는 스프링캠프부터 포수 마스크를 빼앗기고 팀 연봉만 잡아먹으면서 지명타자로 나설만큼 타격 컨디션을 유지하지도 못해서 팀의 잉여가 되었고 연봉 포기하고 은퇴하라는 압박을 받기도 했다. 9번 지명타자로 나서라는 조 지라디 감독의 명령에 불응하여 스캔들이 불거지기도 했고 앤드루 존스가 지명타자로 출전하는 경기도 많아지며 플래툰 시스템으로 인해 고생하기도 했다. 2011년 3천안타를 달성한 데릭 지터와 602세이브로 올타임 세이브 리더가 된 마리아노 리베라를 축하하는 모습에 양키스 팬들은 세월이 이리도 빨리 지나갔다는 데에 탄식을 내뱉었다고. 그래도 경기 중간중간 팀에 파이팅을 불어넣고 루키 헤수스 몬테로를 불러앉혀놓고 이리저리 가르쳐주기도 했다. 가끔 승부가 많이 벌어졌을 때 2루나 1루로 출전시켜달라고 감독에게 땡깡부리는하는 모습은 양키스 덕아웃에서 닉 스위셔와 함께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으며[5], DH로든 대타로든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양키 팬들은 기립박수로 그를 맞아줬다. 특히 포수들이 잇따라 부상을 당하면서 백업포수가 없이 나선 러셀 마틴마저 부상을 당했을 때 LA 에인절스 원정에서 DH를 보던 몬테로가 포수 장비를 준비하고 CC 사바시아가 타격에 들어서게 생겼을 때 홀연 마스크를 쓰고 나타났을 땐 LA까지 따라온 양키 팬들은 물론 일부 앤젤스 팬들까지 환호를 보내기도 했다. 포사다의 2011 첫 포수 출전. 물론 그날은 댄 해런에게 완봉으로 졌지만

2. 특이 사항

2010년 야후 스포츠에서 자신이 공을 받은 투수들에 대해 이야기 했다. [6] 최고의 직구(구속으로만)로는 카일 판스워스스캇 프록터, 최고의 커브로는 라부 히데키, 최고의 슬라이더로는 조바 체임벌린, 최고의 체인지업은 미 키CC 사바시아, 최고의 커터는 마리아노 리베라, 받기 어려운 구질로는 로저 클레멘스의 스플리터와 앤디 페티트가 마이너리거 시절 던지던 너클볼 등을 꼽았다.

가장 영리한 투수로는 마리아노 리베라, 엘 듀케 랜도 에르난데스, 클레멘스 등을 꼽았다. 빅게임 피쳐의 자질을 가진 선수는 역시 앤디 페티트라고.

서적 시멜로 이야기에서 나오는 '2루수에서 포수로 포지션을 전향하고, 스위치 타자로 타법을 바꾼 그 선수'가 맞다.[7] 다만 책 내용 중에 일부분은 사실과 다른데 아버지가 나무 뱃을 쓰게 했다던가, 스위치 히터를 시켰다는 이야기는 사실이지만 아버지가 포수로 전향을 시켰다는건 사실이 아니다. 아버지가 아니라 구단이 바꾸도록 한것.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기사 #

게선생님처럼 타격시에 장갑을 끼지 않는다.

양키스 팬들이 Core 4라고 부르는 프렌차이즈 스타 4인방(데릭 지터, 마리아노 리베라, 호르헤 포사다, 앤디 페티트) 중 한 명이다. 박찬호의 말에 따르면 휴스턴에 잠깐 갔다와서 그런지 앤디 페티트의 라커가 4인방 '중에서는' 가장 작다고 한다(...)

2008년에 마운드 운용에 대해 간섭하는 듯한 발언을 해 고액연봉 베테랑 + 장기 부상자가 선수단에도 왈가왈부하냐고 까였는데 그 이후로는 그런 일이 없다. 양키스의 정규시즌 중에 이벤트성으로 조 토레 감독 대신 감독 대행을 맡기도 했다.

2011년 시즌이 끝나고, 지라디와 데릭 지터 등이 참석한 가운데 1월 24일 은퇴식을 가졌다. 17년동안 양키로 있을 수 있게 해준 팀과 팬들에게 감사하다고.

2012년 시즌이 끝나고 주류 광고를 하나 찍었다.

2015년 2월 17일, 전 날 앤디 페티트에 뒤이어서 버니 윌리엄스와 함께 영구 결번자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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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교체 선수로 출전해 조 아우사니오의 공을 받았다
  • [2] 첫번째 선발출장을 한 해로 로저 클레멘스의 공을 받았다
  • [3] 총액으로는 못 미치지만 평균 금액은 마이크 피아자의 메츠 계약을 뛰어넘는 계약이었다.
  • [4] 과거 마이크 무시나의 너클커브를 받아낼 때도 이리저리 고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버넷도 마찬가지.
  • [5] 실제로 8월 25일 오클랜드와의 홈경기에서 메이저리그 커리어로는 처음으로 2루 대수비로 등장해서 1이닝 동안 타구처리를 해내는 등 홈팬들에게 여러가지 즐거움을 주었다. 여담으로 이 날 양키스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1경기 3개의 그랜드슬램으로 기록을 세운터라 점수차이가 큰 상태여서 포사다와 팬 모두에게 추억을 만들어준 셈.
  • [6] 원문은 여기.
  • [7] 시멜로 이야기의 저자 아킴 데 포사다와 호르헤는 사촌지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