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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나우두

last modified: 2015-04-15 23:21:15 Contributors



전설의 반달컷


전체 이름 Ronaldo Luís Nazário de Lima
(호나우두 루이스 나자리우 지 리마)
생년월일 1976년 9월 22일
신체 조건 183cm, 90kg
국적 브라질(Brasil)
출생지 히우지자네이루(Rio de Janeiro)
포지션 스트라이커(Striker)
클럽 경력(1993~2011) 크루제이루 EC(1993 - 1994)
PSV(1994 - 1996)
FC 바르셀로나(1996 - 1997)
인테르나치오날레(1997 - 2002)
레알 마드리드 CF(2002 - 2007)
AC 밀란(2007 - 2008)
SC 코린치안스(2009 - 2011)
국가 대표팀 경력(1993~2011) 브라질 U-17(1993)
브라질 U-23(1996)
브라질(1994 - 2011)
국가 대표 성적 98경기, 62골
등 번호 9[2]

2002 UEFA BEST 11
FW
호나우두
FW
티에리 앙리
MF
이미언 더프
MF
지네딘 지단
MF
미하엘 발락
MF
클라렌스 세도르프
DF
호베르투 카를로스
DF
리스티안 키부
DF
알레산드로 네스타
DF
카를레스 푸욜
GK
슈튀 레츠베르

1996 FIFA 올해의 선수상
수상
호나우두
2위
조지 웨아
3위
앨런 시어러
1997 FIFA 올해의 선수상
수상
호나우두
2위
호베르투 카를로스
3위(공동)
데니스 베르캄프
지네딘 지단
1998 FIFA 올해의 선수상
수상
지네딘 지단
2위
호나우두
3위
다보르 슈케르
2002 FIFA 올해의 선수상
수상
호나우두
2위
올리버 칸
3위
지네딘 지단
2003 FIFA 올해의 선수상
수상
지네딘 지단
2위
티에리 앙리
3위
호나우두
1996 Ballond'or
수상
마티아스 잠머
2위
호나우두
3위
앨런 시어러
1997 Ballond'or
수상
호나우두
2위
레드라그 미야토비치
3위
지네딘 지단
1998 Ballond'or
수상
지네딘 지단
2위
다보르 슈케르
3위
호나우두
2002 Ballond'or
수상
호나우두
2위
호베르투 카를로스
3위
올리버 칸
1998 UEFA 클럽 올해의 선수상
수상
호나우두
2002 FIFA 월드컵
골든 볼
올리버 칸
실버 볼
호나우두
브론즈 볼
홍명보

"나의 장점은 드리블도 스피드도 아닌 축구에 대한 열정이다."

"내 인생에는 어려운 일들이 계속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겨낼 수 있도록 정신적인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데, 이렇게 내 정신을 다듬는게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Il Fenomeno[3] (경이로운 존재)[4]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5][6]

펠레 세대 이후 카나리아 군단의 황금기를 상징했던 전설적인 공격수[7][8]

지네딘 지단과 함께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10년의 세월 동안 축구판에 군림한 최고의 아이콘[9][10]

호날두와는 다르다! 호날두와는![11]

Contents

1. 개괄
2. 청소년 시절
3. 프로 시절
3.1. PSV
3.2. 바르셀로나
3.3. 인테르
3.4. 레알 마드리드
3.5. AC 밀란
3.6. 귀향
3.7. 2011년 은퇴와 이후 근황
4. 국가 대표, 4번의 월드컵
5. 선수들의 평가
6. 경력
6.1. 득점 기록
6.2. 개인 수상
6.3. 우승 기록
7. 호나우두의 양면성
7.1. 호나우두의 약점
7.2. 팬들의 무분별한 찬양
8. 평가
9. 여담

1. 개괄

브라질의 前 축구선수. 흔히 호나우두라는 애칭으로 잘 알려진 선수로, 90년대 국내 축구 팬들 사이에서 축구 황제라는 별칭으로 통한 슈퍼 스타이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국내 한정이며, 해외에서는 엘 페노메노(Il Fenomeno)로 통한다. 풀이하자면 천재라는 뜻인데, 요즘 뭐만 했다 하면 언론에서 떠받들어 주는 흔한 천재가 아니라, 야구 선수 류현진을 '괴물'이라 일컫는 것과 같은 뉘앙스이다. 즉, 축구를 잘하는 선수에게 막 쓰던 걸 자신만의 고유명사로 만든 것이다.

플레이 스타일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전통적인 스트라이커인데 183cm의 단단한 선수가 전성기 때의 카카처럼 달리며 마라도나처럼 드리블하고 아드리아누처럼 슛을 때린다. 이러한 호나우두의 플레이 스타일은 현역 시절 엄청난 피지컬과 미친 주력으로 상대 선수 3~4명을 농락하면서 그라운드를 누비고 다녔던 럭비선수 조나 로무를 연상케 했다.쉽게 말하지면 존나 빠른데 드리블도 존나 잘하고 슛도 존나 잘 때리며 피지컬도 존나 좋다.[12] 아쉬운 점은 이런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준 기간이 짧았다는 점이다.[13]

90년대 해외 축구를 본 올드 팬들에겐 거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선수로 심지어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호나우두라고 부르는 것을 황제에 대한 모독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마저 있을 정도다. 어차피 둘다 이름이 Ronaldo로 똑같지만, 그 정도로 당시 팬들이 각별하게 여긴 선수였다(발음상의 문제도 있긴 있다.). 물론 해외에서의 지지도 별다를 바 없어 은퇴한 지금도 브라질 내에서 전 스포츠 종목의 전, 현직 선수들 중 가장 큰 스타로 뽑힌다. 전 세계 팬들의 투표에 의해 2000~09 최고의 선수로도 뽑히기도 했고.[14]

그 밖에 국내 한정 별명으로 호돈신(호나우도+돼지 돈(豚)+신)이 있다. 본래 호돈이란 말이 나왔을 때 팬들은 극히 꺼려했으나 이제는 체념하고 사용하는 중이다. 호멘도 있다.(호나우도+아멘) 매주 일요일 아이러브사커에는 호멘을 찬양하며 기도하는 글이 올라온다. 댓글도 모두 호멘으로 통일.

2. 청소년 시절


브라질의 벤투히베이루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대부분의 브라질리언 축구인들이 그렇듯이 빈곤에 시달리던 어린 시절 유일한 희망은 축구공이었다. 벌어진 앞니 때문에 내성적이고 수줍은 모습을 많이 보였지만, 축구를 할 때는 생기가 넘쳤다고 한다.

1986년 유소년 축구 팀에 입단하여 경이로운 득점력을 보이면서 지역 전체로 활약상이 퍼져 나갔다.

1990년 14세의 나이로 브라질 2부 리그의 상 크리스토방과 정식계약을 맺었다.[15] 당시 감독이었던 알프레두 감독은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마다 선수들에게 "호나우두에게 패스해!"라고 외칠 정도로 골 잔치는 상 크리스토방에서도 이어졌다.[16] 그에게 골을 넣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전 브라질 대표 자일지뉴는[17] 그런 호나우두의 재능을 알아보았고 후견인이자 에이전트로 나섰다. 자일지뉴의 후원으로 좀 더 체계적으로 성장해간 호나우두는 브라질 U-17대표에 선발되었고 1993년 남미 청소년 대회 득점왕을 차지하였다.
이런 활약에 브라질 명문 클럽들은 영입경쟁을 펼쳤고 크루제이루가 호나우두를 영입하게 된다. 크루이제루 청소년 팀에서도 활약은 이어졌으며 16살에 1군에 합류했다.

1993년 성인 대표팀으로 뽑히고 1994년 만 17세의 나이로 A 매치 데뷔전을 치룬다. 94년 미국 월드컵에 엔트리에는 포함되었으나 경기는 출전하지 못했다. 크루이제루에서 뛴 60경기에서 58골을 넣으며 그는 자신의 가치를 높였고 1994년 여름, 네덜란드의 PSV로 이적했다.[18]

3. 프로 시절

3.1. PSV


PSV 측에서는 불과 몇 년 전 네덜란드를 쓸어버렸던(...) 호마리우에 대해 상당한 추억을 가지고 있었고, 같은 브라질 출신 공격수인 호나우두가 제2의 호마리우가 되어 주기를 바랐다. 그리고...에레디비지에 입성한 호나우두는 데뷔시즌인 94/95 시즌, 32경기에 출전해 30골을 몰아치며 대활약했다.

95/96 시즌 중반 부상으로 96년 생애 첫 무릎 수술을 받았다.[19] 그 부상 와중에서 19경기 12골은 넣어주었으니 거의 경기당 1골을 몰아친 셈이다. 부상 회복 이후 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 올림픽 대표로 출전하게 된다. 비록 준결승전에서 브라질이 탈락하긴 했으나 호나우두는 자신이 출전한 경기는 준결승을 제외하곤 모두 이기며 자신의 존재를 세계에 알렸다.[20]

3.2. 바르셀로나


충공깽 그 자체였던 바르셀로나 시절

올림픽 무대에서의 활약을 통해 호나우두는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게 된다. 단 1시즌밖에 뛰지 않았지만 49경기 47골을 넣었으며 바르셀로나 일원으로 뛴 모든 경기는 팬들로 하여금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했다. 이 기록은 2010년 리오넬 메시에 의해 경신되기 전까지 바르셀로나 1시즌 최다 골 기록이었다.[21] 컵 위너스 컵에선 5골로 득점왕을, 리그에선 34골로 '피치치'(라 리가 득점왕)를 수상했다.

특히 1996년 5월 19일 캄포스텔라와의 리그 경기에서는 지금도 간간이 회자되는 6명 제끼고 단독 돌파 드리블&골을 작렬시켰고, 이 골은 이틀간 각종 TV 프로에서 180회 이상 반복 재생(...)되는 등 스페인 전역에 폭풍을 일으켰다. 지금의 바르샤가 차비 에르난데스이니에스타에게서 시작되는 오곡성 패스 패스 플레이를 시작으로 메시의 돌파로 마무리짓는 방식이라면, 당시 바르셀로나의 공격은 호나우두의 개인 기량에 크게 의존했다. 그야말로 원 맨 쇼를 1년 내내 펼치던 그는 마티아스 잠머와 단 1표 차로 발롱도르 2위를 기록하고 FIFA 올해의 선수상[22]을 수상하며 세계 최고의 선수임을 공인받았다. 이때 나이가 20살. 역대 최연소 수상 기록이다.

이 당시 호나우두에 대한 평가는 이러하였다.

-"마라도나 이후 최고의 카리스마."-

당시의 플레이를 감상해보자


데뷔 시즌 득점왕이라는 충공깽스런 모습 등 시즌 내내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바르셀로나는 물론이요, 스페인 전역을 데꿀멍하게 만들었으나 본인이 이적을 원했기에 바르셀로나에서의 짧은 경력을 마무리한다. 다음 행선지는, 자신이 갓 브라질을 떠날 때부터 계속해서 러브 콜을 날렸던 모라티 구단주의 인테르였다.

이 시절 호나우두는 골 수도 골 수지만, 흔히 얘기되듯 호나우두 원 루트라고 해도 좋을 만큼 공격에 깊은 관여를 했고 매우 성공적이었기에 여지껏 인구에 회자될 만한 플레이를 보여줬다. 하지만 이 때 호나우두가 무조건적으로 찬양되기에는 수비전술이나 공격효율 등의 한계가 엿보인 건 사실이다. 호나우두가 영입된 바르셀로나는 지난 시즌보다 실점이 늘어나 리그 최소실점 6위팀이 되어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23] 잠그는 팀에는 다른 타입의 공격수들보다 고전하는 호나우두의 근본적 약점과 더불어 상대편에게도 기회를 안겨주던 특성을 시사한다.[24]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의 호나우두가 월드 클래스는 기본이고 지단이나 호마리우와 더불어 세계 최고를 겨뤄 볼만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여담이지만 호나우두를 버리고 히바우두를 먹은 바르셀로나는 다음해 리그 타이틀을 차지한다. 다다음해도. 심각한 뻘짓은 아니었던 것 같다.

3.3. 인테르


바르셀로나를 떠나 그는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인테르에 입단하게 된다. 인테르 구단 프런트도, 선수단도 그의 입단을 마음껏 반겨주었다.
등번호의 얽힌 일화가 유명한데 당시 인테르 주전 공격수였던 이반 사모라노가 호나우두의 9번을 달고있었다. 97-98 시즌에 호나우두는 10번, 사모라노는 9번을 달고 뛰었지만, 프랑스 월드컵 이후 이탈리아의 전설의 10번 로베르토 바조가 온 이후 호나우두가 10번을 바조에게 양보하며 호나우두의 등번호가 없어지며 상황이 꼬이기 시작한다. 설상가상으로 나이키에서 호나우두의 R9 마케팅을 하고있어 9번을 달라고 구단에 압박까지 들어와 계약에 지장이 갈수있는 매우 난감한 상황이 닥치자, 사모라노가 9번을 호나우두에게 양보하여 훈훈하게 마무리되고, 사모라노 본인은 그 유명한 1+8번을 달게 되었다.[25] [26] 그러나 스펀지에서는 전후사정 설명없이 호나우두가 닥치고 강제로 등번호를 뺏어가버렸다고 설명했다
리그 32경기 동안 25골을 넣었고, 팀에게 UEFA 컵 우승을 안겨주었다.[27] 당시 세리에 A는 세계 최고의 리그 자리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었으며, 특유의 견고한 수비와 거친 몸싸움으로 공격수의 무덤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그러나 호나우두는 하나의 사기캐로 군림하며 상대 수비진을 농락하는 존재였다.


1997년 그는 다시 한번 FI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그해에 발롱도르도 차지했다. 이때 차지한 발롱도르는 역대 최연소 수상 기록이다.[28] 이로써 호나우두는 FIFA 올해의 선수상, 발롱도르 모두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수상하게 되었다.[29] 이런 호나우두를 두고 이탈리아에선 "신이 내린 재능(Il Fenomeno)"이라고 칭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페인팅, 그러나 결과적으로 선수생명을 갉아먹는 원인이 된다

허나 이어지는 99/00 시즌에 부상으로 경기장을 떠났고 2년이란 시간을 병상과 재활 센터에서 보냈다.

애초에 호나우두의 인터 밀란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냉정하게 말해 제대로 공헌한 적은 첫 두 시즌뿐이었고, 그나마 부상으로 절반은 날려먹은 2번째 시즌을 제외한다면 제대로 활약한 때는 루키 시즌인 97/98 시즌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9년 11월 21날 벌어진 레체와의 경기에서 무릎 부상으로 쓰러졌고, 2000년 4월 12일 SS 라치오와의 코파 이탈리아 결승 제1차전 경기에서 복귀했으나 경기를 뛴지 7분만에 부상 재발로 실려 나가 2년을 고스란히 까먹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타가 인정하는 대인배 구단주 마시모 모라티는 '호나우두는 나의 양아들이다'라는 말까지 해가며 재활을 지원했다.

02년도 봄쯤에 그라운드에 나타나 인터 밀란에서 세심한 출장 시간 조절을 받으며 서서히 몸을 데운 호나우두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출전해 득점왕까지 차지하며 부활을 알렸다. 그러나 그는 '왕자의 귀환이 스쿠데토를 쥐세페 미아자로 가져올 것'이라는 인터밀란 팬들의 염원을 저버리고 레알 마드리드와의 염문설을 뿌리며 모라티 구단주를 압박, 이적 승낙을 받아낸다. 격앙된 인테르 팬들은 호나우두를 배은망덕한 놈이라며 맹비난했으며 후에 그가 AC 밀란과 계약으로 밀라노로 복귀할 때 '너같은 놈은 관광객으로라도 밀라노에 발을 들여놓으면 안 된다'라는 플래카드를 경기장에 걸어놓으며 성대한 귀환식을 열어주었다.

3.4. 레알 마드리드


02/03 시즌 호나우두는 레알 마드리드는 갈락티코스 정책의 일환으로 이적하게 된다. 첫 시즌 23골을 넣으며 라 리가 우승을 일구었고 2002년 FIFA 올해의 선수상과 발롱도르를 수상하게 된다.[30]

전설의 3샷 3킬[31]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챔피언스 리그 8강전은 일명 "3샷 3킬"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된다.[32][33]

03/04 시즌에는 리그에서 24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을 차지하였다. 이 시즌에 특이할 만한 점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전에서 자신의 축구인생에 최단 시간(14초) 골을 기록한 것.[34]

하지만 05/06 시즌 갑자기 불어난 체중으로 인해 경기력이 하락하기 시작한다.[35] '호돈신'이라는 별명이 이때부터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결혼식 때 팀 전체를 파리로 데려가거나, 생일 파티 때 여자들과 팀 동료 전원을 데려오는 등 파티와 노는 걸 좋아했던 호나우두가 팀을 탈선시킨다는 여론이 제기되었다. 그 때문인지 갈수록 더 게을러지고, 이전의 제한된 활동량보다 더 감소되고, 시즌 초반이었다면 무조건 넣었을 결정적인 찬스도 많이 날려 먹고, 그의 장기인 스피드와 득점력이 상당히 퇴화되었다. 그 덕분에 평소 호나우두의 불성실한 태도에 불만을 갖고 있었던 카펠로 감독과의 사이가 아주 안좋았고,[36] 레알 마드리드의 팬들로부터 야유와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계약기간 만료일인 2008년 6월 20일까지 채우지 못하고 2007년 2월 다소 굴욕적인 액수인 90억원[37]에 ac밀란으로 이적했다.

3.5. AC 밀란


06/07 시즌 그는 AC 밀란으로 터를 옮기게 된다.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AC 밀란 의료진들의 도움을 받아 체중 감량에 성공했고 잔부상을 치료하였다. 이후 그라운드에 복귀해 14경기 7득점 4도움을 기록하며 경기력을 향상시키기 시작한다. 하지만 07/08 시즌을 앞두고 부상을 다시 한번 발목을 잡았다. 반년이 지난 후 칼리아리 원정에서 시즌 첫 경기를 치뤘다. 이후 후배인 카카, 알렉산드르 파투 등과 좋은 호흡을 보이며 좋은 모습을 이어갔다. 하지만 2008년 2월 13일 리보르노와의 홈경기에서 그는 또다시 그라운드 위에 쓰러졌다. 왼쪽 무릎 슬개건이 끊어진 것. 이는 인테르시절 그를 괴롭힌 부상과 동일했고, 호나우두는 실려나가며 그때랑 똑같아라며 울먹였다고 한다. 재활에 걸린 시간은 13개월. 결국 AC밀란은 호나우두와 계약을 해지했다.

3.6. 귀향


2008년 12월. 그는 고국 브라질의 코린치안스로 돌아왔다. 그는 "다시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라고 밝히며 욕심없이 순수하게 축구를 즐기는 모습[38]을 보여주고 싶었던 듯 하다.

하지만 슬슬 호나우두도 은퇴 시기가 다가왔는데 09 시즌엔 대표팀 선발 얘기까지 나올 만큼 좋은 활약상을 보여줬으나, 10 시즌에는 주전 경쟁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출장하더라도 비만으로 지극히 느리고 부지런하지 못한 플레이를 보여 팬들의 원성을 샀다. 사실 팬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원인은 그의 지나치게 높은 주급에서 기인할 것이다.저 주급으로 데려올 수 있는 팔팔한 신인이 몇 명이냐 이 소리 그도 자신의 몸상태를 의식했는지 2010년 5월엔 "몸이 멈추라고 명령한다"는 발언을 해 은퇴하려는게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3.7. 2011년 은퇴와 이후 근황


그리고 2011년 2월 14일 은퇴 기사가 떴다. 2월 15일 기자회견을 통해 은퇴를 공식 발표. 이로써 축구 천재의 기나긴 여정에 마침표가 찍혔다. 라이언 긱스의 "몸은 느려지는데 머리는 빨라진다."라는 말과 비슷하면서도 대조적이게 "머리로는 수비수를 어떻게 따돌리는지 알고 있는데, 몸은 따라주지 못한다."고 했다.


그 뒤로 조용하다 12년 9월 뜬금없이 TV 쇼 프로에 출연했다. 그런데 나온 프로가 다이어트 프로그램.(...) 갑상선 기능 저하로 인해 선수시절부터 체중조절에 애를 먹었던 호나우두는 118kg 뚱보가 되었던 것. 어쨋든 멋지게 다이어트에 성공한 모습을 보였다. 허나 그것도 잠시 13년 여름께부터 서서히 살이 붙는 것처럼 보이더니 13년이 끝나갈 무렵 마치 WWF 프로 레슬러 빅 보스 맨과 흡사해졌다.망했어요 갑상선 질환과 폭식습관 그리고 줄어든 운동량으로 인해 체중조절은 불가능해 진 듯.

그 외 브라질 축구 리그 캠페인 홍보 대사&2014 월드컵 조직 위원장&축구 해설 위원을 맡더니, 에이전트 공부도 해서 9ine이라는 에이전시 회사를 설립했는데, 첫 고객이 네이마르라고 한다. 이후로 고객 명단에 다미앙, 앤더슨 실바, 브라질 가수, 포커 세계 챔피언 등도 합류. 이제는 은퇴 이후 에이전트가 된 그의 앞날을 기대해보자.

브라질 월드컵 조 추첨식 때 오래간만에 브라운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SBS 통역사에 의해 졸지에 축구공(...) 취급 받았다

4. 국가 대표, 4번의 월드컵


국가대표 커리어 끝판왕

셀레상의 호나우두는 브라질 축구계는 물론, 월드컵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꼽힌다.

94년 미국 월드컵에선 엔트리에 들었으나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39] . 그러나 브라질은 호마리우의 활약으로 4번째 우승을 차지했고, 호나우두는 생애 첫 월드컵 우승을 경험하게 된다.

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선 주전 스트라이커로 출전, 브라질, 헝가리, 나이지리아, 일본으로 구성된 D조에 소속되어 꿀조라는 평가를 받는다. 나카타 히데토시가 이끌던 황금세대 일본과의 첫 경기, 브라질은 파상공세를 퍼붓고 이에 경기 내내 브라질 아나운서가 매우 찰진 음성으로 골키퍼 까와~구치를 연호할 정도로 일본은 힘든 경기를 펼치나 실점만은 기어코 막아낸다. 끝내 포백에 더블 볼란치로 단단하게 정비한 일본의 골문은 열리지 않고 오히려 브라질의 골문이 열리며 1:0 패배. 이후 경기에서 월드컵 수비수 호나우두와는 또다른 두 살 형 수비수 호나우두와 함께 출전해서 호나우딩요였던 호나우두(...)는[40] 헝가리 상대로 선취골을, 나이지리아 상대로도 선취골이자 결승골을 넣는다. D조는 승점셔틀이었던 헝가리를 제외한 일본, 나이지리아, 브라질은 서로 6점을 기록하게 되고 브라질은 똥줄을 태우다 득실차로 간신히 올라간다.[41]

가나와의 8강전에서 호나우두는 2골을 넣으며 승리를 이끌었고, 검은 돌풍 나이지리아와 4강에서 다시 한 번 맞붙으며 희대의 명경기를 연출한다. 브라질은 시작하자마자 콘세이상의 수비벽 맞은 뽀록 프리킥이 터지며 경기를 리드한다. 허나 나이지리아의 공세 앞에 호베르투 카를로스의 자책골이 터지며 원점으로 돌아오기 무섭게 호나우두의 슈팅을 골키퍼가 펀칭한 걸 베테랑 베베토가 주워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닝요의 환상적인 슴가 어시를 콘세이상이 받아먹으며 승부는 기운 듯 보였다. 허나 경기 내내 '브라질? ㅋㅋ 그거 먹는 거임?' 하며 공격적이고 소울 넘치는 아프리카 축구로 일관한 나이지리아는 역습의 역습으로 멋진 추격골을 터트리고, 점점 쫄린 브라질이 움츠러드는 것을 몰아붙이며 90분에 롱 드로인에 이은 문전 혼전 상황에서 은완코 카누가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승부는 연장까지 간다. 이후 길게 갈 것도 없이 연장전 4분 만에 환상적인 뽀록성등짝 패스를 받아 카누가 역전 골든 골을 터트린다.[42]

3, 4위전에서 브라질은 포르투갈을 맞아 5:0으로 분풀이를 한다. 호나우두는 선취골을 기록하며 동메달을 차지한다.

주요 성인 대회에서 그의 국가 대표 커리어가 시작된 것은 97년도 볼리비아 코파 아메리카였다. 준결승에서 만난 페루를 7:0으로 짓밟는 위엄 넘치던 팀이던 브라질은 6경기에 3골만 먹히고 22골을 처넣으며 가볍게 전승우승, 호나우두는 볼리비아와의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기록하고 파라과이와의 준결승에서 희대의 또라이골키퍼 칠라베르트에게 페널티킥을 막히며 아쉽게 해트트릭을 실패하는 등 주전 스트라이커로서 5골을 기록하며 활약했다.[43]

12월에 열린 사우디 아라비아 컨페더레이션스 컵에서도 브라질은 5경기 4승 1무, 12골을 넣고 난적 멕시코에게만 2점을 내주며 당연한 듯 우승한다. 특히 호주와의 결승전은 결승전인지 양학의 현장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브라질이 시종일관 호주를 썰어대며 6:0의 참극을 만들어냈다. 23분경 비두카가 카푸에게 장절한 로우 킥을 날리며 퇴장당한 이후 호주는 아무것도 못했고, 이 경기에서 호나우두는 호마리우와 사이 좋게 3골씩 해트트릭을 기록한다...호나우두는 대회 총 4골을 넣었지만 동료 스트라이커였던 호마리우가 득점왕과 실버볼을 차지한 것에 비해 4골로 브론즈 슈를 차지하며 살짝 후달리는 모습을 보여줬다.[44]

98년 프랑스 월드컵은 그가 브라질의 주전 스트라이커였다. 그는 조별 예선 모로코와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었고, 칠레에게 4:1로 승리한 16강 경기에서 3, 4번째 골을 넣었다. 그리고 1:1로 비겨 승부차기로 브라질이 진출한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황금 같은 선제골을 터뜨렸고 승부차기에서도 첫 번째 키커로 나서 골을 성공시켰다만, 결승전에선 별 활약을 못 보여주고 지단의 프랑스에게 3:0으로 떡실신하며 우승 컵을 넘겨준다. 호나우두는 결승전 내내 무기력한 플레이로 일관하며 패배의 주범 혹은 2인자로 지목된다. 그러나 당시에는 결승전이 시작하기 전 MVP를 선정하였고 또 결승전을 감안하더라도 대회 내내 좋은 활약이었기에 호나우두는 골든 볼을 수상한다.[45] 여담이지만 결승전 경기 종료 이후 호나우두의 몸상태가 많이 안 좋았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정확히 말하자면, 몸상태보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몸 상태의 악화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데이비드 옐롭의 저서인 '누가 월드컵을 훔쳤나'를 읽어보면, 그 당시의 심정을 결승전이 끝난 며칠 후 호나우두는 이렇게 토로한다. "브라질 국민 전체가 나에게 기대 오는 것만 같았다." 사실 호나우두는 98년 월드컵 내내 여러 번에 걸쳐 진통제 주사를 맞은 상태였고, 이러한 진통제로 쓰이는 약물들이 혼합해서 사용되어 온 결과 결승전을 앞두고 발작 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웃기는 것은 이러한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선수 보호보다는 브라질 축구 협회의 이익을 위해서 호나우두가 뛸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있었다. 나이키는 호나우두의 선발출장시 90분을 다 뛰어야 한다는 조건을 계약에 넣었고, 당시 브라질 축구협회장 텍세이라는[46] 불과 결승 시작 40분 전 담당 의사의 번복을 듣고는 선발 명단에서 제외되어 있었던 호나우두를 투입하라는 어처구니없는 명령을 내리게 되고 결국 우리가 아는 대로 브라질은 결승에서 패배하고 만다. 한 마디로 불세출의 스타가 어떻게 상업적인 욕망에 의해 이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하나의 사례였다.

97년 대회에 이어 99년에 열린 파라과이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브라질은 6경기 전승, 17골 2실점을 기록하며 최종 보스로 군림했다. 첫 경기부터 베네수엘라에게 7:0으로 악몽을 선사했고 결승전도 3:0 스코어로 우루과이를 발라먹으며 손쉽게 우승했다. 주전 스트라이커였던 호나우두와 히바우두는 사이 좋게 5골씩을 넣고 득점왕도 나눠 먹었다. 국가 대표 호나우두의 절정기였다.

멈추지 않는 상승세였지만, 상술했듯 호나우두는 99년 말부터 시작해 2년이 넘는 기간을 부상으로 신음하지만 정말 불사조처럼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딱 앞두고 컨디션 조절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시점에서 부상에서 회복해 버린다. 호나우두에게 이제 자신이 누구인지 다시 한번 세계에 알릴 기회가 찾아왔다. 브라질이 월드컵 역사상 최악으로 꼽혔던 남미예선을 힘겹게 통과하고 맞이한 월드컵에서 호나우두는 조별 예선 첫 경기 터키 전부터 시작하여, 중국, 코스타리카, 16강전 벨기에, 4강전 (다시) 터키, 결승전 독일과의 경기에서 골을 기록, 총 8골로 득점왕과 함께 실버볼, 그리고 이 활약에 힘입어 발롱도르를 차지했다.[47]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일본과 가나와의 경기에서 3골을 터뜨리며 월드컵 통산 15호골을 기록하여 쥐스트 퐁텐느와 게르트 뮐러 기록을 차례로 넘기며 월드컵 통산 최다 골을 기록했다. 19경기 15득점, 경기당 0.78골. 그렇지만 그후 8강전에서 지네딘 지단의 크로스를 받은 티에리 앙리의 골로 프랑스에게 1:0으로 패배하며 기록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에는 실패했다.끝까지 지단의 프랑스가 발목 이 때 브라질 국민들 반응도 웃겼는데 월드컵 통산 최다 골을 기록했을 때 찬양 일색이던 사람들이 8강에서 무기력한 경기력으로 탈락하자 귀국하던 대표팀에게 한 아줌마가 '호나우두 당신은 살부터 좀 빼라'(...)고 독설을 날렸던 것. 여담으로 호나우두의 월드컵 통산 최다 골 기록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독일의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경신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기록이 브라질과의 4강전에서 깨져버린 데다가 이 경기에서 브라질은 7-1이라는 치욕적인 점수로 대패를 하고 말았는데, 심지어 그 경기장에서 호나우두는 해설을 하고 있었다(...). 최다 골 타이틀도 빼앗기고 브라질도 대패한 상황에서 호나우두는 착잡함을 감추지 못하였다.

2011년 6월 8일에 열린 브라질과 루마니아의 친선 경기에서, 호나우두는 전반 30분 프레드와 교체되며 세인의 경악을 자아낼 정도로 뚱뚱보가 된 모습으로 나타났다.솔직히 행복해 보였다. 먹을 거 맘대로 먹고 사는 거 같아서 35세의 위대한 스트라이커는 후배들의 아낌없는 패스를 몰아받으며 은퇴 경기를 골로 장식할 절호의 기회를 잡지만 결국 골을 넣진 못했다. 후반 시작과 함께 호나우두는 네이마르와 교체되며 마지막 국대 경기를 끝냈고 그에겐 국가 대표 98경기 62골이라는 기록이 남겨졌다. 그리고 이 경기를 끝으로 그는 프로 팀과 국가 대표 팀에서 모두 은퇴하게 된다.

이처럼 호나우두는 클럽에서도 잘해왔었지만 국가대표로서는 자신이 출전한 거의 모든 메이저급 국가대표간 대회에서 득점왕을 하거나 mvp로 임명되는등 매우 빼어난 활약을 해왔다. 짧은 전성기라서 아쉬운 클럽 커리어에 비해 국대에서의 그는 커리어로 따지면 마라도나를 능가하는 대활약을 하며 역사에 그 이름을 남겼다.

5. 선수들의 평가


  • 마시모 모라티 - "단 70%만 예전으로 돌아온다해도 축구사에 비교 대상이 없습니다."


  • 요한 크루이프 - "이 시대 사람들은 마라도나 이상의 선수와 함께 호흡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해야 한다."


  • 주제 무리뉴 - "호나우두가 지난 20년 동안 최고의 선수였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는 지난 20년 동안 최고라는 타이틀을 놓지 않았던 선수다."


  • 에릭 칸토나 - "어느 날 히우지자네이루에서 등장해, 네덜란드와 카탈루냐에서 별이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우상이 되었고 스페인에서 신이 되었다."


  • 지네딘 지단 - "호나우두는 내가 함께 뛰어본 공격수 중 단연 최고였다. 단순히 공격수로서가 아니라, 모든 포지션을 통틀어서도 최고였다."


  • 카카 - "내게 있어 호나우두는 당신들이 함부로 거론할 만한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축구 역사상 가장 환상적인 선수입니다."


  • 파올로 말디니 - "언제나 호나우두와 함께 뛰어보고 싶었다. 호나우두는 챔피언이고 용감한 선수다. 호나우두는 마라도나 이후로 내가 만나본 최고의 적수였고 언제나 공정하고 정직했다. 그는 세계 최고의 선수이며, 그의 기술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


  • 지안루이지 부폰 - "호나우두는 펠레, 마라도나와 함께 축구의 신전에서 영원히 빛나는 존재로 기억될 것이다."


  • 프란츠 베켄바워 - "호나우두를 90분 간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 지쿠 - "부상없는 호나우두는 펠레와 동급이다."


  •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 "호나우두는 역대 최고의 선수이며 그는 축구 역사상 가장 완벽한 선수다."


  • 알레산드로 네스타 - "호나우두는 내가 상대한 공격수 중 가장 힘들었다. 막는 게 불가능했다."


  • 리오넬 메시 - "호나우두는 나의 영웅이었다. 그는 내가 여태까지 본 공격수 중에서 최고의 공격수였다. 엄청난 스피드를 자랑했고,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골을 넣을 수 있었다. 지금껏 지네딘 지단, 호나우지뉴, 히바우두 등 좋은 선수들을 접했지만, 호나우두는 차원이 달랐다. 여태껏 내가 만났던 선수들 중 누구보다도 뛰어난 슈팅을 할 수 있었던 선수가 바로 호나우두였다."


  • 루카스 포돌스키 - "그는 나의 우상이었으며 어린 시절 나의 영웅이었다. 그는 내가 프로축구 선수가 되는 데 강한 인상을 심어준 단 한 사람이었다."


  • 카림 벤제마 - "호나우두는 나에게 많은 방면에서 영감을 주었고 내게 골을 넣어야 한다는 의지를 심어준다. 골문 앞에서 보이는 호나우두의 움직임은 늘 배울 게 많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호나우두의 뒤를 쫓았고 아직도 매 경기가 시작되기 전 호나우두의 영상을 본다."


  • 마르코 반 바스텐 - "그가 나보다 위대한 선수입니다. 난 그가 PSV에서 뛰던 시절부터 나보다 더 위대한 선수라 생각했고, 심지어 그의 실력에 질투심을 느끼기까지 했죠."


  • 파비오 칸나바로 - "호나우두는 대단하다. 그는 내가 상대해 본 선수 중에서 가장 막기 힘든 선수였고 내가 그와 마주서야 할 때 나는 항상 그가 나를 제치고 언제든지 골을 넣을 수 있다는 느낌을 받고는 했다."


  •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 - "내가 여태까지 만나본 적이 없었던 재능의 소유자다. 아마 마라도나보다 더."


  • 호나우지뉴 - "호나우두는 나의 우상입니다. 나는 모든 것에 있어서 그로부터 영감을 받았죠."


  • 세스크 파브레가스 - "난 언제나 96/97 시즌을 기억하고 있어요. 그는 내가 본 선수 중에 가장 위대한 선수였습니다."

6. 경력

6.1. 득점 기록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지역리그FA 컵대륙대회
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
1993 크루제이루 EC 브라질 세리에 A 14 12 2 0 - - 4 8
1994 크루제이루 EC 브라질 세리에 A - - 18 22 - - 8 2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 컵대륙대회
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
1994/95 PSV 아인트호벤 네덜란드 에레디비지 33 30 1 2 2 3
1995/96 PSV 아인트호벤 네덜란드 에레디비지 13 12 3 1 5 6
1996/97 FC 바르셀로나 스페인 라 리가 37 34 4 6 7 5
1997/98 인터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32 25 4 3 11 6
1998/99 인터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19 14 2 0 6 1
1999/00 인터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7 3 1 0 - -
2000/01 인터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 - - - - -
2001/02 인터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10 7 1 0 5 0
2002/03 레알 마드리드 스페인 라 리가 31 23 1 0 11 6
2003/04 레알 마드리드 스페인 라 리가 32 24 5 2 9 4
2004/05 레알 마드리드 스페인 라 리가 34 21 1 0 10 3
2005/06 레알 마드리드 스페인 라 리가 23 14 2 1 2 0
2006/07 레알 마드리드 스페인 라 리가 7 1 2 0 4 2
2006/07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14 7 - - - -
2007/08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6 2 - - - -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지역리그FA 컵대륙대회
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
2009 SC 코린치안스 브라질 세리에 A 20 12 10 8 8 3 - -
2010 SC 코린치안스 브라질 세리에 A 11 6 9 3 - - 7 3
2011 SC 코린치안스 브라질 세리에 A - - 2 0 - - 2 0

6.2. 개인 수상


  • FIFA 올해의 선수(96, 97, 02)
  • 발롱도르(97, 02)
  •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96, 97, 02)
  • 월드컵 골든볼(98)[48]
  • 월드컵 실버볼(02)[49]
  • 월드컵 득점왕(02)
  • 코파 아메리카 MVP(97)
  • 코파 아메리카 득점왕(99)
  • 유럽 골든 부츠(97)
  • UEFA 클럽 최우수 공격수(97)
  • UEFA 클럽 최우수 선수(98)
  • UEFA 올해의 선수(98)
  • UEFA 올해의 공격수(02)
  • 네덜란드 에레디비지 득점왕(95)
  • 세리에 A 올해의 선수(98)
  • 세리에 A 최우수 외국인 선수(98)
  • 세리에 A 10년 간 최고의 선수(07)
  • 라 리가 최우수 외국인 선수(97)
  • 라 리가 득점왕(97, 04)
  • 캄페우나투 미네이루 득점왕(94)
  • 캄페우나투 파울리스타 MVP(09)
  • 브라질레이루 명예 공로상(10)
  • 레알 마드리드 명예의 전당(11)

6.3. 우승 기록


  • 크루제이루 (1993 - 1994)
    • Campeonato Mineiro (1): 1994
    • Copa do Brasil (1): 1993

  • PSV 아인트호벤 (1994/95 - 1995/96)
    • KNVB Cup (1): 1995/96
    • Johan Cruijff-schaal (1): 1996

  • FC 바르셀로나 (1996/97)
  • 인터 밀란 (1997/98 - 2001/02)
  • 레알 마드리드 (2002/03 - 2006/07)
    • La Liga (1): 2002/03
    • Intercontinental Cup (1): 2002
    • Supercopa de España (1): 2003

  • SC 코린치안스(2009 - 2011)
    • Campeonato Paulista (1): 2009
    • Copa do Brasil (1): 2009

  •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7. 호나우두의 양면성

7.1. 호나우두의 약점

다른 축구선수에게는 작성되지 않은 이 항목이 유독 호나우두의 항목에만 작성된 이유는 날조, 지나친 찬양 및 신격화와 과대포장을 지양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다.

사실상 이 부분은 작심하고 까려고 까는 만큼 어느 선수라 해도 벗어나기 어렵다. 팀 커리어 개인 커리어 국대 커리어 팀 공헌도 통틀어 귀신 중에 귀신인 펠레나 벗어날 지경. 그 다음은 상대적 약체 팀을 이끌고 메이저 대회를 여러 차례 우승하는 업적을 거둔 마라도나 정도.

국내에 절대적인 올드 팬을 보유한 호나우두지만, 호돈빠들의 무분별한 호나우두 찬양 및 신격화로 까 역시 생각보다 많았다. 메시와 호날두가 본격적으로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전까진 그야말로 난리도 아니었을 정도였다. 그냥 찬양에서만 그치면 좋았겠지만 몰지각한 빠들이 항상 그러하듯 호나우두가 마라도나나 펠레보다 뛰어나다든가, 메시는 호나우두에 비하면 월드컵 한정 별거 아니란 이야기로 어그로를 끌곤 했다.[50]자 이제부터 까 보는 시간

지금은 떡밥이 차디차게 식었지만일단 메시와 비교해 보자면, 호나우두가 바르샤에서 세운 시즌 최다 골 기록은 09/10 시즌의 메시가 더 적은 경기수로 타이기록을 달성했다. 10/11 시즌 메시가 53골을 넣으며 호나우두의 기록을 추월했으며, 호날두도 메시보단 덜 넣었지만 호나우두의 기록을 깨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에 호돈빠들은 경기력으로 물고 늘어지며 그 당시 상대적 약팀 바르샤를 호나우두 혼자서 살렸다고 말하고[51] 쟁점을 그의 우월한 월드컵 기록으로 전환시켰다. 뭐 그것도 그때까지였고 11/12 시즌 메시는 73골을 처넣으며 신 혹은 메친놈이 되고야 말았다.

호돈빠들이 가장 거품을 물고 물어뜯던 메시와의 비교를 넘어서서 그의 커리어 전체를 조망해 보자면 펠레나 마라도나 등과 비교하기에는 약점이 많다. 특히 호나우두의 유럽대항전 기록은 그에게 있어서 가장 큰 약점으로 작용한다.

부상 전 호나우두는 챔피언스 리그에 나가지 못했다. 컵위너스컵과 유에파 우승을 이끌었지만 아무래도 컵위너스컵과 유에파컵이 위상도 난이도도 낮은 건 당시 상대팀 면면을 보면 사실이다. 인테르 2번째 시즌 드디어 챔피언스 리그에 출장하게 되는데 엄청난 속도와 힘, 스피드, 볼컨트롤로 혼자서도 공간을 마구 찢어버리는 엄청난 플레이를 했다. 하지만 유효한 크로스나 패스 슈팅으로 이어지지 않고 구석으로 몰리다 우물쭈물 공이 밖으로 나가는 장면이 많았으니 아쉬움이 있다. 결국 경기는 판타지스타 로베르토 바조가 교체로 들어오고 나서야 풀리기도 했다.[52]

레알 마드리드와 밀란 시절까지 합쳐서 기록적으로 볼 때 챔피언스 리그 통산 42경기 16골은 좋은 수치다. 하지만 신격화하기엔 민망하다. 호나우두가 챔피언스 리그에서 가장 기록적으로 뛰어났던 시절은 레알 마드리드 재적시 전설적인 올드 트래포드 스리샷 스리킬을 달성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사실 그 경기 전까지의 호나우두의 조별리그 기록은 8경기 2골이다며, 이 올드 트래포드 한 경기의 기록을 뺀 수치인 41경기 13골은 더더욱 비참하기 짝이 없다. 좋은 패스와 좋은 움직임도 있었으니 여기까지라면 괜찮다고 할 수 있으나 갈락티코들의 좋은 패스들을 훌륭하게 말아먹었던 건 감점요인. 결국 이 시즌 마드리드는 맨유를 넘어서 유벤투스에게 탈락했고, 이 시즌이 호나우두가 챔피언스 리그에서 가장 뛰어났던 시즌이다.

또한 당연하게도 한 차례도 득점왕을 차지하지 못했는데, 이는 다음 세대의 아이콘인 메시와 호날두가 기본 3차례는 득점왕을 차지하고 있는 것에 비해 크게 비교된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 대강 0.4골이 약간 안 되는 경기당 득점력은 물론 좋은 기록이다. 하지만 호나우두 전 세대의 탑 스트라이커인 반 바스텐과 호마리우는 각기 경기당 0.7골과 0.63골의 기록은 남겼고, 득점률에 관해서는 본좌급에 해당하는 게르트 뮐러의 경우 유럽 대항전에서 79경기 70골로 경기당 0.89골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동시대의 라이벌들과 비교해도 인자기, 트레제게, 쉐브첸코, 마카이, 델 피에로, 라울, 앙리, 반 니스텔루이, 마르코 시모네, 자르데우보다 뒤떨어지며 클루이베르트랑 비슷하고 크레스포, 모리엔테스, 에우베르, 히바우두보다 조금 나은 정도의 기록인데, 전부 다 최소 20골 이상은 박아넣어 통산득점이 호나우두보다 많은 선수들이다. 후배 선수들도 호나우두 팬들이 호나우두와 비교한다면 절대 인정하지 않을 드록바, 벤제마, 마리오 고메스도 호나우두보다 현격히 좋은 기록을 남기고 있으며 현재진행형이다.

어쩌면 저러한 챔피언스 리그 기록은 호나우두가 심각한 부상을 입은 후의 얘기이기 때문에 불공평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게 호나우두의 또다른 약점인데, 그가 압도적인 활약상을 선보인 시기가 굉장히 짧다는 점이다. 상술된 수상 기록 역시 일견 화려해 보이지만, 잘 살펴 보면 바르셀로나에서의 한 시즌, 그리고 인테르에서의 한 시즌 반 정도의 기간에 몰려 있다. 그 외의 시기 호나우두의 수상 경력은 대부분이 02년, 즉 불사조처럼 부활했던 월드컵 기간이었다.

부상 이후 호나우두에게 냉혹해 보이는 평가가 필요한 이유는 그와 비교되고 평가되곤 하는 대상들이 축구적으로 엄청나게 높은 위치의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펠레와 마라도나는 커리어 기간 내내 축구판을 호령하다시피 한 괴물들이다. 호나우두 바로 전 세대의 탑 스트라이커 마르코 반 바스텐은 호나우두처럼 20대 초반 당한 무릎부상으로 나이 30도 못되어 실질적 은퇴를 하게 됨에도 불구하고 마라도나를 제외한공격수가 아니긴 하지만 동시대 공격수들을 압도하며 발롱도르[53]를 꾸역꾸역 삼켰다.[54]

호나우두에게 제기해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약점은 그의 제한적인 능력이 제기하는 문제점이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호나우두는 120경기에 출장해 82골을 기록하는 좋은 득점 능력과 순간적인 축구 센스를 과시했다. 그러나 전성기 시절에 비해 몹시 저하된 운동 능력은 그의 장기였던 수비수 뒷공간을 잘라먹기, 빼어난 드리블과 보디 밸런스로 상대 수비를 떨쳐 버리기 등에 많은 문제점을 야기했다. 호나우두가 득점왕을 차지하기 전 해에 득점왕을 차지하고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던 로이 마카이도 골 장면에만 관여하는 스트라이커였지만 이 마카이도 국대에서는 항상 판 니스텔루이에 밀렸던 실정이다. 즉 이런 골 장면에만 관여하는 공격수들은 게임 자체에는 기여하는 바가 적으며 선제골보다 추가 골에 능하다는 약점, 공중 볼에 약한 호나우두 개인의 약점까지 생각해 본다면, 레알 마드리드 시절의 그는 분명 뛰어나지만 우승을 노린다면 과연 호나우두였어야 했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만했다.[55]

이는 다시 말하자면 물론 드리블 능력은 출중하지만 전성기 시절에서조차 호나우두는 가히 독보적인 수비 뒷공간을 잘라들어가는 능력으로 인해 재미를 보던 공격수였다. 그러나 이 말은 스페셜 영상과는 달리 뒷공간을 잠그면 공중전 능력과 활동량의 부재로 그 천부적인 득점감각에도 불구하고 팀에게 갑갑함을 강요하는 측면이 있었으며 부상 이후에는 활동량이 급격히 줄어들고 활동범위도 훨씬 제한되며 뒷공간 잘라들어가는 능력도 감퇴한 호돈으로 화하고 말았다. 수비가 단단하고 중원이 탄탄한 강팀과의 맞대결에선 훨씬 힘들 수밖에 없었으며 이것이야말로 20골을 넘게 박아주던 공격수가 베르나베우에서 자주 커다란 야유를 받곤 하던 원인이었다. 레알에 우승을 안겨준 반 니스텔루이와의 차이점은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

호나우두는 다른 약점도 있는데 펠레나 호나우두를 비롯 크루이프나 베켄바워 등 다른 축신들이 축구 전체를 이해하는 능력이 빼어난 데 비해 개인 전술이나 공격 전술이 아닌 축구 전체를 이해하는 능력은 그렇게 뛰어나지 못했고 동시대 월드 클래스 선수들보다도 많이 떨어졌다.[56] 상술된 호나우두와 긱스의 발언이 대조되는 것은 참고할 만하다. 이는 갈락티코 시절 피지컬이 약화된 호나우두가 그냥 골 넣는 기계로 전락하게 된 원인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그 시절 호나우두가 많은 골을 넣고도 비난을 받았던 것도 상기할 만하다. 뭐, 그렇지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몹시도, 아주 아주 빼어나고 위대한 선수이다.[57] 그리고 동시대 스타 공격수 중 그 식견이 호나우두만 못한 이도 많았다.

7.2. 팬들의 무분별한 찬양

가만히 있어도 역대급 공격수로 인정받는 호나우두를 비난받게 하는 제일 큰 문제점 10년 뒤에는 리오넬 메시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항목에도 이 내용이 추가 될 수도 있다

호나우두가 활약하던 당시의 팀들을 호나우도 원 맨 팀으로 몰아간다거나, 호나우두가 불리한 자료는 쏙 빼놓는다거나, 선수의 기량이나 업적을 평가하는 잣대를 이중적으로 사용하는 작태를 보이며 호나우도를 메시나 호날두와 같은 당대 최고의 선수들은 물론, 마라도나나 펠레, 크루이프 등 역대 최고 수준의 선수들보다 한 단계 높은 신적인 존재로 추켜올리는 태도 덕분에 까도 적지 않다.

팬들의 행태 중 가장 골아픈 것이 펠레 - 마라도나 - 호나우두라는 계보를 작성하는 것이다. 흔히 월드컵 성적과 코파 아메리카 성적 등으로 뒷받침된다. 호나우두는 분명 그 부분에서 괄목할 만한 선수다. 하지만 다른 부분에선 미진한 점도 있기에 펠-마-호라는 계보가 작성되면 예를 들어 공미로서 발롱도르, 득점왕 3연패를 이룬 플라티니도 저 계보에 들어가야 하는 것인가 등등 수많은 논란거리가 일시에 산적하게 된다. 즉 무리수이며, 대강 11년 이후로는 메시가 너무 올라가 버리는 탓에 저런 드립도 생명력을 다했다.

팬들은 웹에 만연한 호나우두에 대한 찬사를 무분별하게 퍼가고 퍼오며 역대최고로 추키나 근거 없는 낭설이나 한 때의 립서비스에 불과한 것이 많다. 카펠로 감독만 해도 기자가 당신 제자들 중에 호나우두가 최고의 스트라이커였다면서요? 하고 묻자 답하길 아 그랬지, 근데 그거 구라여. 그 때 좀 치켜세워주려고 그랬지 사실 내 제자중 최고 스트라이커는 반 바스텐이었다고 말한 것처럼 립서비스는 그냥 립서비스다.

펠퇴호탄 등도 대표적 낭설인데, 호나우두는 1976년생이고 펠레는 그 이듬해인 1977년에 뉴욕 코스모스 소속으로 은퇴했다. 물론 딱 1년 차이 나는 정도야 헷갈릴 수도 있고 웃으며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웹을 배회하는 펠퇴호탄설은 아예 펠레가 은퇴한 날에 호돈이 태어났다는 것인데 연도부터 어긋남은 물론 펠레의 은퇴일 10월 1일이고 호나우두의 생일은 9월 22일이기에 사실이 아니며 펠레의 국가 대표 은퇴일조차 1971년 7월 18일이다. 하지만 한국 인터넷에선 펠레 은퇴만 검색해도 이 펠퇴호탄설과 함께 시대는 두 황제를 동시에 허락하지 않았다는 식의 매우 높은 수준의 낭만성을 지닌 영웅 서사시가 쉬이 발견된다.옛날 전설, 영웅담, 서사시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현대에 살면서도 잘 알 수 있다.

사실 이것 역시 빠가 까를 만든다의 한 예시라고 할 수 있겠다.솔직한 말로 이 문서에 호나우두를 까는 항목은 섣부른 찬양으로 수정이 거듭되며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한 단락씩 늘어났다.

사실 201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거의 필요가 없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 항목이 작성된 이유는 한국 웹에 영웅 서사시급으로 휘황찬란한 호나우두 찬가가 무분별하게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위키 문서만 해도 그 시점에서는 근거도 없는 호나우두 최강전설이나 날조된 커리어와 립서비스로 가득찼던 시기가 있었다. 이 지나치게 길어보이는 항목만 해도 당시 연이어 벌어지는 근거가 없거나 사실과는 다른 서술[58]을 한 번에 정리할 목적으로 길게 작성된 것이며 저 기나긴 개인 커리어 부분도 어느 정도는 호나우두의 커리어를 확실히 하며 사실날조를 지양하자는 목적하에 서술되기도 했다.

호나우두는 한국 웹에서 큰 지지를 받는 선수다. 이는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80년대 출생 축빠 남성들 중에 호나우두를 영웅시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지만, 특히 대한민국에선 해외 축구 방송이 보편화된 시점에서 지단과 더불어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크루이프, 마라도나, 호마리우 등 전세대 선수들은 대부분 월드컵에서나 볼 수 있는 선수였으며 본격적인 해외 축빠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다. 국내 해축빠들 중 지금은 원로급을 차지하고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호나우두 전세대 선수들의 클럽경기까지 챙겨봤을 뿐이다.[59] 메시-호날두 투톱이 등장하기 전까지[60] 가장 높은 수준으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던 호나우두는 국내 해축빠들에게 있어서 시장이 형성되게 하는 전설의 시발점, 향수의 원형과도 같은 선수라고 할 수 있다.[61]

당시 웹상에 얼마나 호나우두 찬가가 만연했었는가 하면, 10/11 챔스 결승전 직전 네이트에서는 '1경기 1골이 부진해보였던 게 호나우두,유럽 1류 무대에서 그런 스트라이커가 있다면 그건 게르트 뮐러겠지 이래서 메시는 안 돼'라는 취지의 리플이 베플을 먹으며 엄청난 지지를 모으기도 했다. 메시: 그래 그럼 다음 시즌에는 그거보다 더 넣어줄게 ㅋ. 1경기 1골은 호나우두의 베스트 시즌 딱 한 시즌에나 가능했으며 이후에는 쳐다도 못 볼 기록이고, 11년에 이르러서는 메시, 호날두가 워낙 치고 올라가는 바람에 호나우두 찬가의 생명력이 거의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큰 지지를 얻었다.

또다른 무분별한 호나우두 찬양의 문제점은 한 선수를 찬양함에 있어서 다른 선수들의 공정한 평가도 더불어 이뤄져야 하는데 호나우두 팬들의 팬심은 전 세대 선수들의 위대함을 공정하게 평가하기는커녕 단순히 호나우두를 치켜올리기 위한 재료로만 다른 선수들을 사용하며 깎아내렸다는 점도 있다. 예를 들어 2010년 전쯤까지만 해도 아이러브사커에서 게르트 뮐러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내용은 '호나우두의 실력은 게르트 뮐러의 3배'라는 크루이프의 발언이 대부분이었다.

최근 이 호나우두 팬들의 공격에 휘말리고 있는 대표적인 선수는 미로슬라프 클로제. 월드컵 통산 득점 타이 기록을 세울 때만 해도 그러려니 하는 반응이 많았으나 미네이랑의 비극이 터지고, 클로제가 호나우두의 기록을 갈아치우면서(심지어 이 장면을 호나우두가 직접 봤다!!!) 클로제에 대한 찬사가 있자, 클로제는 국대용이네[62] 임팩트가 부족하네 월드컵 경기당 0.66골이네[63]하면서 그를 깎아내리고 있다. 이를 본 클로제 팬 및 호나우두 안티들도 반격을 가하면서 최근엔 메시 VS 호나우두 못지않게 떡밥이 꽤 크다.

어쨌든 이런저런 얘기가 있어도 호나우두가 정말 대단했던 공격수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문제는 굳이 다른 대단한 선수들까지 까면서 호나우두를 무분별하게 찬양해야 하냐는 점이다. 자신들의 무분별한 찬양 때문에 정상적으로 호나우두를 인정하는 사람들까지 호빠라고 욕 먹게 하고 싶은가????? 무엇이든지 적당히 좋아해야 한다.

8. 평가

확실한 것은 호나우두는 당대에 지네딘 지단과 함께 자신의 시대에 있어 가장 빛났던 축구계의 아이콘이자, 축구 역사를 통틀어 가장 뛰어나다고 손꼽히는 스트라이커 중 한 명이다. 현재는 클로제에 의해 월드컵 통산골 2위로 밀려났지만 잠시나마 월드컵 통산 역대 최다 골이라는 위대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던 선수였다.

유럽 빅리그에서 경기당 0.72골이라는 대기록[64]을 세웠고 공식 커리어 통산[65] 616경기 414골, 경기당 0.67골이라는 대단한 기록을 남긴 선수이다.[66] 또한 수많은 축구 팬들과 축구선수들의 우상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잦은 부상으로 인한 시즌 증발로 인해 신격화되는 것에 비하면 부족해 보이는 면이 존재하는 선수이다.

결국 정론은 위의 사항들을 하나의 사실과 견해로서 참고하여 호나우두와 다른 선수와의 커리어를 비교, 시대별 축구의 흐름 등을 참고해가며 호나우두가 어떠한 선수였다 하고 비교 판단을 내리는 것은 축구 팬 개개인의 몫이 될 거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선수가 이렇게 축구적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까지 타 선수와 비교되며 팬들의 의견이 분분할 정도로 위대했고, 타 선수를 압도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던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문서에 언급된 숱한 전설들을 보라!

그 어떤 평가가 있더라도 지금 현재에 와서는 역대급 반열에 입성한 대스타인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9. 여담

팬 사인회에 상당한 시간을 들이는가 하면, 훈련 일정 때도 사인 요청에 일일이 응해주느라 다음 일정에 다소 지각하는 일이 잦는 등 유독 사인에 엄청난 신경을 썼는데 이는 어렸을 적 브라질 리그를 보러 갔다가 어떤 선수에게 사인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던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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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나이키는 세계 축구시장의 중요성을 깨닫고 1990년대 초반, 떠오르던 스타인 호나우두를 전면적으로 내세워 마케팅을 한다. R9라는 네이밍을 통해 수많은 시그내쳐 모델을 내놨는데, 그 일환으로 생긴것이 머큐리얼 시리즈이다. 이후 그 자리를 이름이 같은 호나우지뉴가 이었고, 그 이후로는 또 이름이 동일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나이키의 메인으로 CR7이란 네이밍을 통해 마케팅중이다. 그러나 나이키는 R9, CR7 둘 다 아디다스 스폰서인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어 유니폼 수익을 얻지 못해 울상이다.
  • [2] 항상 9번만 달았던것은 아니다. 팀에 이미 임자가 있는 경우에는 10번이나 11번도 달았다. 물론 다른 사정이 없다면 무조건 9번을 달았다.
  • [3] 축구계에서 호나우두를 상징하는 고유명사이다.
  • [4] 영어로 풀이하면 The Phenomenon, 특정한 현상을 뜻하는 단어로 사람을 가리킬 때 '경이로운'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 [5] 역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를 꼽을 때 게르트 뮐러, 에우제비우와 함께 반드시 언급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 [6] 2013년 월드사커가 선정한 역대 베스트 11 공격수 부문에서 4번째로 많은 득표수인 8표를 획득했다.#넘사벽인 뭐 이 정도면 역대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참고로 9표는 월드사커 측이 잘못 집계한 것이고, 정확한 득표수는 8표다.
  • [7] 베베토, 둥가, 카푸, 호나우지뉴, 호베르투 카를로스, 호마리우, 히바우두 등과 함께 사실상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브라질 특유의 공격적이고 화려한 축구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이들이 현역으로 뛸 때 무려 월드컵 3회 연속 결승 진출, 월드컵 우승 2회 - 준우승 1회,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 1회, 코파아메리카 우승 2회라는 엄청난 업적을 이룩했다. 가히 펠레 세대 이후 브라질 축구의 황금기라고 불릴 만 하다.
  • [8] 대륙간 컵에서 mvp, 득점왕은 물론, 월드컵 2연속 mvp급 대활약 및 득점왕을 차지한 호나우두는 당대에 셀레상을 대표하는 최고의 공격수였다. 물론 그 전 세대에 94년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었던 천재적인 스코어러 호마리우와 호나우두가 월드컵에서 중요한 골을 터트릴 때마다 골에 직접적인 관여를 했던 히바우두의 존재도 무시될 수 없다.
  • [9] 사실 이 시기는 리오넬 메시처럼 독보적으로 축구계에 군림했던 선수는 없었고, 각 나라별로 세계 최고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자리잡고 있었던 시기였다. 당시 축구선수의 위상과 발롱도르, 피파 올해의 선수상 포디움 횟수를 고려했을 때, 그들 중에서 그나마 돋보였던 선수가 바로 지단과 호나우두였다.
  • [10] 둘이서 사이좋게 월드컵 우승 1번(94년 월드컵은 제외), 준우승 1번, 월드컵 골든볼 1번 (둘 다 준우승할 때 받은 골든볼이었다!), 발롱도르 - 피파 올해의 선수상을 통틀어 9번의 포디움, 피파 올해의 선수상 수상 3번을 경험했다. 이 둘 중에서 어느 한 사람이 독보적인 아이콘이었다기 보다는 그냥 둘이서 당대의 축구계를 양분했다는 말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다만 월드컵에서 지단의 프랑스를 만날 때마다 털렸다는 게 함정.
  • [11] 호나우두와 호날두의 스펠링은 같지만 호날두는 포르투갈인이기 때문에 포르투갈식 포르투갈어로 읽은 것이고, 호나우두는 브라질인이기 때문에 브라질식 포르투갈어로 읽은 것이다. 한국어로 치면 남한식으론 이길동, 북한식으론 리길동이 되는 식. 그러나 축구 월간지 베스트 일레븐에서는 여전히 둘 다 호나우두라고 표기하고 있다. 물론 국외에서는 그냥 둘 다 '로날도'라고 읽는다.
  • [12] 그러나 공중전 능력과 연계와 패스가 부족하다는 약점도 있었다.
  • [13] 바르셀로나에서의 한 시즌과 인테르 첫 시즌, 그리고 2002 월드컵, 레알 마드리드의 첫 시즌이 끝. 하지만 이 기간 동안 발롱도르 2번, 피파 올해의 선수상 3번, 월드컵 우승, 준우승과 골든볼, 골든슈, 실버볼, 브론즈슈 2회 등 절대다수의 선수들은 평생 경험도 못할 커리어들을 쌓았다.
  • [14] 월드 사커에서는 00~09 최고의 선수로 호나우지뉴를 뽑았다.
  • [15] 어린 시절 응원했던 플라멩구에 입단 테스트를 받기 위해 초청장을 가지고 가던 도중 깡패를 만나 초청장을 빼앗기고 눈물을 흘리며 돌아온 적이 있다. 그래서 입단한 곳이 상 크리스토방.
  • [16] 호나우두가 골을 넣은 후 세레머니를 하지 않자 감독이 이유를 물었다고 한다. 그때 그는 "골을 넣기 위해 제가 여기 있는 것이 아닌가요?"라고 대답했다.발로텔리 before
  • [17] 역사상 최강의 팀이라고 불리우는 1970년 브라질 국가 대표팀에서 1970년 월드컵 전 경기 득점을 기록한 레전드이다.
  • [18] 대표팀 선배 호마리우의 조언이 영향을 미쳤다. 호나우두는 후에 호마리우가 지코와 함께 자신의 우상이라고 밝힐 정도였고 대표팀에서 호마리우를 처음 목격하고는 호마리우가 귀찮아할 정도로 졸졸 따라다녔다.
  • [19] 부상 악몽의 시작. 당시 의료진 말에 의하면 그의 넓적다리 근육이 지나치게 발달된 것이 문제라고 한다. 아이러니한 건 두 번의 슬개건 파열을 유발시킨 그 넓적다리 근육이 사실 초인적인 가속력의 비결이라는 것.
  • [20] 경기를 직접 구해서 본 결과 호나우두가 출전했다. 무분별한 찬양 목적의 복사 붙여 넣기의 오류.
  • [21] 마라도나와 비견될 만한 전설의 드리블 돌파를 선보이기도 했다. 다만 엄청난 스피드로 순식간에 치고 나가 득점한 마라도나와는 달리, 적당한 스피드로 달리면서 계속 따라붙은 수비수들을 다 농락하고 골을 넣는다. 과연 어느 쪽 수비수들이 더 허탈할까(...).
  • [22] 발롱도르보단 권위가 한 수 낮고, 인기상의 성격이 강하다.
  • [23] 3, 4, 5위 팀인 베티스, 바야돌리드, 소시에다드와는 1, 2골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그 위로는 레알과 데포르티보가 있는데 데포르티보는 마우로 실바가 한창 전성기였을 시절이었다.
  • [24] 연계형이 아니니까 도전하게 되고 실패란 곧 상대편의 기회로 이어지기 마련. 샤비 체제의 바르셀로나가 지겹게 공 돌리는 이유와도 조금 통하는 면이 있다.
  • [25] 물론 사모라노가 9번의 미련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했는지 다른 잡놈이였다면 축구고 뭐고 다 뒤집어 엎었겠지만 호나우두니까 인정한다면서 약간의 섭섭함을 드러냈다고 한다. 그리고 은퇴경기때 다른선수들이 그를 기리기위해 1+8번이 아닌 9번을 입고 뛰었다.
  • [26] 여담으로 이 사건으로 둘의 사이는 매우 좋아져서, 사모라노 은퇴경기때 호나우두가 모든 일정을 제쳐두고 비행기를 타고와 쉴틈도 없이 바로 사모라노의 경기에 들어와 같이 뛰었다.
  • [27] 인테르의 UEFA 컵 우승은 19년 만에 얻은 메이저 타이틀이었다.
  • [28] 마이클 오언, 리오넬 메시는 22살에 수상.
  • [29] 펠레를 제외하고 20살의 어린 나이에 세계 최고가 된 경우는 역사상 거의 전무후무하다. 거의 대부분의 축구선수들이 20살 중반부터 전성기를 맞이하기 때문. 펠레, 마라도나에 이어 역대 최고의 반열에 올라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너무 일찍부터 불꽃을 태웠다는 점이 그의 커리어에 커다란 치명상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 [30]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의 활약이 컸다. 그 해 발롱도르 고득표자들은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들이었다.
  • [31] 이 영상은 에릭 칸토나가 소개한다. 당시 호나우두의 충격이 엄청났다는 반증
  • [32] 이 경기에서 그는 레알 팬들은 물론, 맨유 팬들로부터도 기립 박수를 받았다.
  • [33] 여담이지만 세 골 모두 환상적인 골들이다. 구티의 킬패스를 폭발적인 스피드로 받아내어 골대로 완벽하게 꽂아넣은 첫 골, 환상적인 팀플레이로 맨유를 농락하며 넣은 두번째 골, 그리고 오른발 각도 생기자마자 바로 방향잡고 때린 미친 중거리골. 모두 호나우두,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골들이다.
  • [34]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호베르투 카를로스의 패스를 받은 다음, 디에고 시메오네를 특유의 재치있는 알까기로 넘어뜨리고, 마지막 골키퍼까지 농락하면서 인생골 중 하나를 집어넣었다. #
  • [35] 갑상선 기능 저하로 인해 체중이 불어났다. 또 갑상선도 갑상선이지만 마드리드 타블로이드 지에 지네딘 지단루이스 피구가 담배 한 개피씩 피고 같은 테이블에 있던 호나우두가 자기 머리통만한 샌드위치를 우걱우걱 먹는 사진도 도는 걸 보면 일단 그의 식탐도 체중 문제에 일조를 한 듯하다.
  • [36] 공격수도 많은 움직임을 통한 공간창출을 요구했던 카펠로의 주문에 따르지 않았을 뿐더러 경기의 판도를 뒤집을 수 있는 탁월한 득점센스를 상당 부분 잃었고, 주로 추가골에 능했기 때문에 팀 전력에 그다지 도움되지 않았다. 거기다가 훈련에 임하는 태도도 나태했으니... 카펠로 뿐만 아니라 어떤 감독도 싫어할 수 밖에 없다.
  • [37] 인테르에서 레알마드리드로 이적할 당시의 금액의 6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호나우두라는 이름값에 상당히 못미치는 금액이라고 할 수 있다.
  • [38] 극심한 가난을 겪으며 브라질 리그에서 추악한 일도 겪어서인지 전성기이던 90년대 후반 유럽으로 가면서 다시는 브라질로 오고 싶지 않다고 인터뷰까지 하던 그였다. 뭐 이젠 돈도 충분히 벌었고 나이도 있으니 돈이니 뭐니 걱정도 없이 그냥 축구로 순수하게 즐기고자 돌아온 듯? 도 있겠지만 브라질이 좀 잘나가기 시작하면서 과거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선수들의 페이가 올라갔다. 호나우두도 주급이 한화로 1억이 넘고 1억 5천이 안 되는 정도.
  • [39] 이 시기의 그는 호나우지뉴, 즉 작은 호나우두라고 불렸다. 왜냐면 이미 국가 대표 14경기를 뛴 수비수 호나우두가 대표팀에 있었기 때문. 그리고 약 10년 후 공격수 호나우지뉴도 똑같은 이유로 평생 호나우지뉴라고 불린다.
  • [40] 브라질도 장유유서 정신이 출중한 거 같다. 또다른 호나우두는 벤피카와 베식타쉬에서 물경 10년을 뛰지만 국제대회 기록은 올림픽이 유일.
  • [41] 반대로 일본은 2승 1패를 거두고도 탈락했다. 그리고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허정무가 이끌던 한국 올림픽 대표팀이 모로코와 칠레를 1:0으로 이겼으나 스페인에게 패한 0:3 실점으로 골득실로 밀려 일본과 똑같이 탈락했다.
  • [42] 나이지리아는 아르헨과의 결승전에서도 극적인 90분 역전 골로 우승하며 검은 돌풍을 과시한다. 참고로 이 때 감독이 조봉래(본프레레)...한국 국민들에게 익숙한 모습보다 조금 더 젊고 조금 더 잘생겼다.
  • [43] 그리고 본명도 되찾은 대회였다.
  • [44] 이때의 브라질 공격진은 몹시 화려했는데, 그 면면이 호나우두, 호마리우, 히바우두, 베베토, 데니우손 등이었다. 누굴 없애려고...
  • [45] 02년도 결승전 이전에 골든 볼을 결정하기에 아쉽게 호나우두 대신 올리버 칸이 받게 되고 그로 인해 결승전 이후에 수상하기로 바뀌었다는 얘기하지만 호나우두도 딱히 손해 볼 거 없고 룰의 변경도 98년의 사례와 02년의 사례가 연이었기에.
  • [46] 아벨란제의 사위였다.
  • [47] 8강전이었던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는 골을 기록하지 못 하였으며, '월드컵 득점왕은 6골을 넘기지 못한다'라는 징크스가 생긴 이후 이 징크스를 깬 유일한 사례이다. 2006년과 2010년에는 5골 득점자가 득점왕을 하였다.
  • [48] 프랑스와의 결승전 때 지단이 헤딩으로만 두 골을 성공시키는 바람에 월드컵 우승은 실패했지만 대회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지단이 아닌 호나우두가 수상했다. 그러나 다음 월드컵 때 호나우두는...
  • [49] 이때 골든 볼은 올리버 칸이 수상했는데, 결승전 결과는 호나우두의 승리였다. 이 때문에 골든볼 투표를 월드컵 결승전 이후에 실시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 [50] 호돈빠들은 메시의 아르헨티나가 2010년 월드컵 8강에서 탈락하는 순간 축배를 들었다고 한다.
  • [51] 바르샤는 소위 드림팀 1기가 챔스 결승에서 밀란에 대패한 후 리빌딩중이지만 약팀 운운은 어불성설이다. 물갈이 과정에서 4위, 3위를 했으니 4연속 우승에 챔피언스 리그까지 제패하던 1기 시절에 비하면 위기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허나 바르샤는 호나우두 입단 전 리그 3위, 호나우두 영입시 준우승, 호나우두 방출 후 리그 2연패의 기록을 세웠다.
  • [52] 더 이상 자세한 서술이 불가능한 건 이 시즌 겨울에 장기부상을 끊고 호돈으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 [53] 당시 발롱도르는 유럽국적의 선수한정이었다. 이러한 국적제한은 1995년에 최초로 풀리게 된다.
  • [54] 하지만 반 바스텐은 호나우두와는 반대로 클럽에 비해 국가대표 활약이 초라했다. 전성기 때 제대로 자신의 활약을 보여준 때는 1988년 유로 한번이었고, 90년도 월드컵을 포함한 기타 국제 대회에서는 이렇다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는 반 바스텐이 자신의 대선배 크루이프와 발롱도르 숫자로는 동률이더라도 국제대회 활약에서 크게 밀려 그와 비교시 상대적으로 저평가를 받게 될 수 밖에 없는 원인이 된다. 단 이 문서에 꾸역꾸역이라고 서술된 건 반 바스텐은 끈질긴 부상의 악령과 싸우며 형편 될 때마다 정말 꾸역꾸역 발롱도르를 삼켰기 때문이다.
  • [55] 마드리드는 호나우두 첫 해 86득점 42실점으로 우승을 차지하지만 다음해 72득점 54실점으로 실망스럽게 4위, 그 다음 시즌은 바르셀로나의 73득점 29실점에 비해 71득점 32득점으로 득실은 별 차이가 없었지만 승점은 차이가 났는데, 홈에선 심심찮게 5골 이상 득점했지만 원정에서 부진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다음 시즌은 66골 40실점으로, 5골 이상을 넣은 경기는 한 경기도 없었으며 2위 바르샤의 78골 33실점보다 득실이 나빴는데도 우승에 성공한다. 그리고 이때 마드리드의 스트라이커는 포스트 플레이에 능한 판 니스텔로이였다.
  • [56] 부상 전에는 이런 거 몰라도 골 넣고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단 최상위 리그에서 우승하지 못했다는 건 아쉬운 점.
  • [57] 거기다 그를 2년여간 그라운드도 못 밟게한 무릎 부상을 고려하면 레알에서의 기록은 오히려 왜 그가 아직까지도 모두의 우상으로 추앙받는지 보여준다. 남들같으면 축구를 접어야할 부상을 앓고도 동시대 한창 전성기를 누리던 공격수들인 앙리나 셰브첸코와 비교해도 공격수들의 중요한 평가척도중 하나인 골결정력만큼은 절대로 밀리지 않았다.
  • [58] 대표적으로 호나우두가 출전하지 않아 브라질 올림픽 패배 등이 있다.
  • [59] 악질빠들은 호나우두를 지나치게 고평가하며 반론이 나올라 하면 오래 살다 보니 호나우두가 이런 평가를 받는다며 호나우두 보지도 못한 놈들아 같은 태도를 유지하지만, 정작 그 전 세대 축빠들에게 호나우두 >>>> 반 바스텐이란 명제를 들이대면 반 바스텐 보지도 못한 놈반보못들이라며 화를 내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반 바스텐 본인이 호나우두 >>>> 반 바스텐임을 인정했다. 이것도 깊이 파고들면 호나우두의 플레이가 자신은 불가능한 플레이라면서 칭찬하는 것이다. 반 바스텐 항목에도 있듯이 반 바스텐은 호나우두와 유형이 전혀 다른 선수였다.
  • [60] 호나우지뉴 같은 괴물도 있었으나 지뉴는 전성기가 너무 짧았다.
  • [61] 당시 나이키를 등에 업고 브랜드 효과를 더욱 발휘하기도 했으며, 지단의 경우 그의 경기조율 능력이나 압박을 버텨내는 육체적 능력에 비해 스탯생산력은 낮았기에 암암리에 저평가를 받곤 했다. 잘한다 잘한다 하니 그저 잘하는구나 했지 대중들이 경기 자체를 보는 눈은 지금이 더 올라갔고 풀경기 보는 팬들은 상당히 드물고 하이라이트를 많이들 이용하던 시절이다.
  • [62] 잠시 국대에서만 잘하던 시절이 있었으나 이는 부상과 그로 인한 부진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는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호나우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클로제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절대 클럽에서 호나우두보다 무조건 떨어진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짧지만 단순히 클럽에서의 활약을 중심으로 발롱도르까지 차지했던 호나우두에 비하면 임팩트나 활약상 그리고 경기당 골수에서 호나우두한테 밀리는건 사실이다.
  • [63] 호나우두는 월드컵 19경기 15골로 경기당 0.79이다. 그러나 경기당 득점률로 따지면 호나우두도 13경기 14골로 경기당 1.07을 기록한 게르트 뮐러나 6경기 13골로 경기당 2.17골을 기록한 쥐스트 퐁텐 앞에서는 닥치고 버로우 해야 한다? 80년대 이후로 정착된 압박수비로 인해 저조해진 득점률을 보라 참고
  • [64] 이것이 얼마나 대단하냐면 현재 뛰고 있는 선수 중에 유럽 빅리그에서 통산 경기당 득점률로 호나우두를 뛰어넘는 선수는 사실상 메시와 호날두 둘뿐이다. 또한 남들 같았으면 축구를 접었어야 할 부상을 두 번이나 겪고도 은퇴할 때까지 커리어를 이어갔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이 대단한 기록이다. 물론 이 분도 마찬가지. 찾아보면 다른 현역 선수들도 있을수 있으나 대부분 이들과 비교하기에는 통산 경기수나 골 수가 현격히 적은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혹시 있으면 추가바람.
  • [65] 국대 포함
  • [66] 현역 중 오직 메시만이 호나우두의 득점률을 뛰어넘는다. 또한 1990년대나 2000년대까지 활약한 선수들 중에 개인 공식 커리어 통산 경기당 득점률로 호나우두를 능가하는 선수는 메시, 호마리우(0.77골), 반 바스텐(0.69골) 밖에 없다.그 이전의 년대는 너무 별난 득점률을 가진 선수들이 많아서 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