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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주엽

last modified: 2015-04-09 22:55:03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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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현주엽(玄周燁)
생년월일 1975년 7월 27일
국적 한국
출신학교 휘문고 - 고려대학교
포지션 파워포워드
신체 사이즈 195Cm[1], 98Kg→120Kg[2]
프로입단 1998년 드래프트 1번(청주 SK 나이츠)
소속팀 청주 SK 나이츠(1998~1999)
광주/여수 골드뱅크 클리커스/부산 KTF 매직윙스(1999~2005)
창원 LG 세이커스(2005~2009)

2001-02 농구대잔치 MVP
김주성(중앙대학교) 현주엽(상 무) 김동우(연세대학교)

2005~2006 한국프로농구 이성구기념상(국내선수)
강혁(서울 삼성 썬더스) 현주엽(창원 LG 세이커스) 양동근(울산 모비스 피버스)

정규시즌
시즌 경기수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락 턴오버 FG% 3P% FT%
9 397 13.27 4.13 5.21 1.03 0.16 2.66 48.25 32.97 67.43

플레이오프
시즌 경기수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락 턴오버 FG% 3P% FT%
4 10 12.10 3.50 2.80 0.40 0.20 2.60 48.94 38.89 66.67

Contents

1. 개요
2. 선수 생활
3. 은퇴 이후
4. 여담

1. 개요


한국의 前 농구 선수. 서장훈이 키우는 예능인 뭐?하하랑 김영철이 키우는거 아니었어?
전성기 때는 한국의 찰스 바클리로 불렸던 선수. 그러나 부상과 불운으로 인해 제 기량을 다 피지 못하고 은퇴한 선수다. 별명은 매직 히포.슈퍼 파워

2. 선수 생활

어머니는 국가대표로 한 시대를 풍미한 여자 농구 선수인 홍성화. 정작 현주엽은 이 사실을 처음 농구에 입문한 중학교 1학년 때 알았다고 한다. 즉, 농구선수의 피를 타고는 났지만 시작은 늦은 편. 거기다 당시에는 살이 많이 쪘던 상태라 휘문중학교 1, 2학년때는 존재감 없이 팀내에서 연습만 하고 있었다. 이때 현주엽과 같이 구석에서 연습만 하던 1년 선배가 바로 위장 전학야구를 하다가 농구선수로 갓 전향한 서장훈이었다. 이 둘은 농구선수로 기본기를 다지고 폭풍성장까지 거치면서 동시에 잠재력이 폭발했고 휘문고는 무적이 되었다. 서장훈이 졸업한 후에도 휘문고를 혼자 이끌며 전성기를 이어갔다.

사실 이렇게 쓰면 친한 거 같지만, 실제로 두 사람의 라이벌 의식은 정말 대단했다고 한다. 그래서 고려대가 현주엽을 영입한 것은 정말 간단했다. "너, 연대가면 서장훈 그늘에 가린다." 이 말 한 마디에 현주엽은 고려대 진학을 결정했고, 이후 둘은 대학 시절 내내 치열하게 격돌했다. 그러나 승자는 간발의 차이로 항상 우승을 차지했던 서장훈이었다. 서장훈은 연세대학교 재학 시절 문경은, 우지원, 이상민 등과 호흡을 맞추어서[3] 두 차례 농구대잔치 우승에 성공하지만, 현주엽과 전희철, 양희승, 신기성, 김병철이 포진한 고려대는 끝내 농구대잔치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한다.[4]

문제가 된 것은 1998년. 1997년 한국프로농구가 출범해서 드래프트 원칙이 세워졌는데, 1993년 입학인 서장훈은 1년 유학이라는 공백기[5]로 현주엽과 졸업은 같지만, 서장훈은 거액의 계약금을 받을 수 있었고, 현주엽은 자기 마음대로 팀 선택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 이에 반발한 현주엽이지만, 끝내 만들어진 대세에 수긍하고 그를 지명한 청주 SK 나이츠에 입단한다. 서장훈과 같은 팀이 된 것. 다만, 끝내 드래프트 장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시너지 효과는 제로였다. 휘문고때 검증되었던 서-현 조합이 왜 실패했을까? 이는 현주엽이 휘문고 시절과 달리 대학 진학후 빅맨으로 전향했기 때문이다. 휘문중-고시절 현주엽은 고려대시절에 비해 가벼운 몸이었고 진짜 윤대협의 재림처럼 전천후 스윙맨으로 활동했다. 따라서 센터였던 서장훈과 활동범위가 겹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고려대학교 진학후에 팀 사정상 몸을 불리고 센터로 전향하게 된다. 당시 현주엽 입학전까지 고려대에는 연세대의 서장훈을 막을 빅맨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198Cm의 전희철은 원래 현주엽과 비슷한 타입의 전천후 포워드에 몸싸움이 약해서 서장훈과의 매치업이 안됐고, 당시 고려대 최장신이었던 2m의 유학생 재헌은 부상등을 이유로 많이 출장을 못했다. 이때문에 키는 (서장훈에 비해서) 작지만 힘과 투쟁심을 갖췄고, 골밑 플레이가 가능했던 현주엽이 서장훈과 매치업하는 빅맨으로 낙점된 것이다. [6] 이때문에 현주엽은 대학시절 4년동안 센터가 되었고, 프로에서 재결합했을땐 이미 둘의 포지션, 레인지가 완전히 겹쳐버렸다.

덕분에 이 둘을 조합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안준호 감독은 중간에 짤렸고, 새로 부임한 최인선 감독은 이 둘을 조화시키겠다는 생각을 포기한다. 평균 20득점 가깝게 올리는 선수지만, 어차피 외국인 선수도 있는 상황에서 역할이 중복된다고 보고, 현주엽을 트레이드 카드로 쓴 것. 마침 단장이 고대 출신인 이인표이기도 했고, 스타가 필요했던 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에서 현주엽을 원했고, 그렇게 1999년 12월 24일, 일명 '크리스마스 이브의 빅딜'을 통해 조상현과 현금을 얹어 골드뱅크는 현주엽을 영입했다.

골드뱅크에서 팀의 에이스로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였다. 이 때 처음으로 어시스트에 눈을 떠서 평균 어시스트가 거의 포인트가드에 맞먹는 7.6개, 5.0개를 기록할 정도. 만능 포워드로서의 자질을 유감없이 보여주면서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지만, 그도 신체 강건한 남자로 군대는 피해갈 수 없었다. 당시 신체검사에서 196Cm가 넘으면 면제였지만, 공식프로필과 달리 이에 못미쳤던 것이다.[7] 가면 가는 거라서 수긍하고 갔나 싶었는데, 문제는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 남자 농구가 금메달을 딴 것이다! 현주엽은 4Q 막판 동점 슛을 성공시키면서 맹활약하며 한국 남자 농구가 20년만의 아시안 게임 우승을 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런데, 이 당시에는 군에 있는 선수가 금메달을 땄다고 전역시키는 제도는 없었다. 그래서 계속 군대에 남았다.(...)

전역 후에는 모기업이 바뀐 부산 KTF로 돌아가서 역시 '포인트포워드'로 활약했다. 그러나 이 때부터 이미 현주엽의 무릎 상태는 좋지 않아 이미 연골이 닳아버린 상황이었고, 외국인 선수들 사이에서 4번 자리에서 투쟁할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어시스트에 주력하는 포인트포워드는 좋게 말하면 다재다능함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어정쩡함이었다. 그리고 현주엽은 불행히도 점차 어정쩡함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FA로 풀리기 직전인 2004-05 시즌 평균 14.2득점, 어시스트 7.8개를 기록하며 맹활약하고, PO에서도 평균 23점을 넣으며 분전했지만, 사람들은 그의 어시스트와 PO 활약에 주목했지 점점 줄어드는 평균 득점에는 주목하지 못했다.

어쨌든 이런 활약으로 현주엽의 FA 가치는 높아졌고, 이를 주목한 것은 포워드에 환장하던 신선우 감독이었다. 즉시 FA로 질러서 현주엽을 영입했는데, 결국 무릎이 끝내 말을 듣지 않았다. 이제 젊은 때처럼 힘과 탄력으로 외국인 선수들과 맞짱을 뜰 수도 없었고, 패스에 주력하기에는 그의 무릎 역시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냉정하게 말해 LG에서 먹튀로 전락했다. 보상 선수로 KTF로 간 송영진이 알에서 껍질을 깨면서 성장한 것에 비하면 LG의 손해.

그래도 LG의 전력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팀에 있던 첫 해를 빼고 나머지 3년 동안 모두 PO에 올랐다. 가장 유력했던 것은 2006-07 시즌. 그러나 이 해 KTF와의 PO에서 센터 파스코의 폭력 사태로 파스코가 영구제명되면서 외국인 선수가 한 명 부족하게 되며 결국 KTF에 패하고 만다. 현주엽이 가장 챔피언 결정전에 가까웠던 순간이었다. 현주엽은 끝내 은퇴할 때까지 프로와 아마가 함께 뒤던 시절의 농구대잔치[8]와 프로농구를 통틀어서 챔피언결정전을 단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하고 은퇴했다.

무릎이 좋지 않던 현주엽은 2009년 무릎 수술을 받았지만, 재활 도중 결국 선수 생활을 포기한다. 그래서 2009년 6월 24일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더 화려할 수 있었던 선수치고는 막판이 너무도 허망했다.

3. 은퇴 이후

선수 생활 당시에도 여러 염문이 많았다. 연예인과의 염문 자체는 상관없는데, 이게 자기 관리 소홀로 빚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가설을 제기하는 사람도 많다. 구체적인 이름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관심있는 사람들은 검색창에 현주엽을 치면 알아서 알게 된다. 2007년에 그래도 연예인은 아니고, 평범한 사람이랑 결혼은 했다.

은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내외적으로 어수선했던 고려대 농구부 감독 취임설이 돌기도 했으나 일선 지도자에는 딱히 마음을 두지 않은 듯.[9] 2010년 7월 스포츠의학, 재활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고...아마도 자신의 부상과 재활 실패가 정말로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문제는 은퇴하고 모아둔 돈을 삼성선물의 펀드 매니저에게 모두 맡겼다가 이게 다 날라갔다는 것. 지인 소개로 돈을 투자했는데, 이 지인하고 펀드 매너저가 짜고, 다른데 쓸 돈을 막기 위해서 현주엽을 이용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사기당한 것. 그리고 이 때 날라간 돈이 무려 17억이다. 결국 이 때문에 어떤 연락도 끊어지고, 대외 활동도 하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열린 OB 고연전이나, KBL 15주년 기념 올스타에 모두 선정되었지만 다 불참했다.

2012년 5월 12일 17억 소송에서 일부 승소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삼성선물에서 8억 7천만원을 돌려받았다고 하나, 전 재산의 30%만 남기고 몽땅 날아간 상황(...). 이 재판 과정에서 위증을 한 혐의로 2014년 10월 벌금 150만원을 선고 받았다.


이후 별다른 소식이 없다가 2014-15시즌부터 MBC 스포츠플러스의 해설자로 복귀했다. 은퇴 이후로 처음으로 농구계에 발을 담게 된 것. 데뷔 무대는 2014년 9월 17일 열린 신인 드래프트 중계였다. 이후 10월 12일 개막전에서 모비스와 LG의 경기에 해설로 한명재와 호흡을 맞췄는데, 첫 방송경기 해설이라 그런지 몰라도 재앙급의 해설을 쏟아내며 욕먹었다. 한명재 캐스터가 중계 도중 "현주엽 위원님, 말씀이 너무 없으신 거 아니에요?"라고 토로할 정도. 그러나 이후 몇 경기를 치르면서 점차 입 터지는 중. 용검 캐스터와 주로 호흡을 맞추고 있다.
이때 포인트 포워드(?)로 전향한 일화도 이야기를 해 줬는데 기량저하로 인해 득점하면서 팀을 캐리할 능력이 떨어져서 살아남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밝혔다.
그 탄력으로 서장훈과 함께 무한도전에도 출연하였고 석주일과 함께 2015년 설날 특집 아육대 농구 해설로도 출연하였다. 2월 20일 SK와 KT와의 경기에서는 서장훈[10] 용검 캐스터와 함께 많은 썰들을 풀었다.

2월 21일 무한도전 설특집 무도큰잔치에도 서장훈과 함께 출연. 처음에는 서장훈에게 댄스 신고식 안 하는 방법 좀 알려달라는 등, 영 어색한 모습을 보였으나 이내 베개 싸움에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슈퍼 파워라고 답하며 슈퍼 파워란 별명을 얻었다.[11] 그 뒤부터 배우 혁권과 함께 예능 늦둥이로 맹활약하며 큰 웃음을 자아냈다. 베개 싸움 중 여자인 슬기를 상대하게 되자, 여자라 어떻게 공격하냐고 공격하지 못 하자, 유재석이 현주엽이 지면 팀이 진다는 소리를 듣자 바로 공격을 하더니 이미지를 생각했는지 나가라면서 박슬기를 그대로 한 손으로 내팽개쳤다!!! 이미지는 이미 하늘나라로... 다행이 이 장면에서 현주엽을 욕하는 사람은 없었다... 고 할까?? 게다가 서장훈을 일반인 잡듯이 때려잡고[12][13] 단체전에서는 혼자서 5명을 이긴 박혁권을 어렵게 쓰러뜨리고는 그 역시 5명을 이기며 승승장구했다. 이어서 마지막으로 정준하를 상대하게 되었는데, 이 때를 두고 크게 지친 상황. 김영철의 이상한 로고송[14] 때문에 힘이 빠지기도 했으나 어케 버텨내고는 이기는가 했으나, 정준하눈치없게 이겨버렸다. 덕분에 새로운 영웅을 기대한 사람들을 매우 허무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무한도전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샤킬 오닐이 진행하는 인기 프로인 Shaqtin' A Fool의 KBL판으로 보이는 현주엽의 보너스원샷의 진행을 맡고 있다.

4. 여담

  • 현역 선수였던 2004년에는 얼굴이 故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닮아졌다 하여 인터넷에서 노무현주엽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었다(...).##무한도전에 출연했을 때에는 닌자 거북이와 비교당하기도 했다.
  • 역대 KBL 포워드들중 가장 높은 수치의 평균 어시스트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평균 7개가 넘는 어시스트를 두번이나 기록하였고 커리어 평균 어시스트 갯수는 5.21개로 이는 왠만한 포인트 가드들 보다도 높은 기록이다. 현주엽 보다 높은 평균 어시스트를 가진 선수들은 김승현(6.90), 강...(6.55), 크리스 윌리엄스(6.28), 이상민(6.17), 제럴드 워커(5.85), 주희정(5.57), 신기성(5.33), 김태술(5.39) 뿐이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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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실제 신장은 191-2Cm 정도라고 한다. 대체로 농구선수들은 농구화를 신고 잰 키를 공식프로필로 발표한다.
  • [2] 무한도전에서 본인이 인증
  • [3] 이 시절 식스맨으로 뛰었던게 김훈석주일이다.
  • [4] 일각에선 연세대의 최희암과 고려대의 박한 감독, 두명의 작전 능력 차이가 이런 결과를 일으켰다는 주장도 한다.
  • [5] 엄밀히 말해서는 실업팀 삼성전자와의 경기에서 당한 테러에 가까운 수비 때문에 다친 부상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휴식기에 더 가깝다.
  • [6] 그때문에 휘문고시절보다 몸을 불려서 고질적인 무릎부상을 달게 된다.
  • [7] 위에도 언급했지만, 농구선수의 공식프로필은 대부분 농구화를 신고 측정한 것이다. 이때문에 당시 프로필로는 196Cm가 넘던 상당수 농구선수들이 줄줄이 상무로 입대했다. 가장 압권은 공식프로필은 198Cm인데 신체검사에서 195.8Cm가 나와서 강제입대한 전희철이다.
  • [8] 엄밀한 의미의 농구대잔치 대회로는 2001-02 대회에서 상무의 우승으로 정상을 밟기는 했다.
  • [9] 2014년 10월 이영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로는 고려대 농구부 관계자가 집으로 찾아왔으나 아직은 지도자로 나설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 [10] 무도큰잔치 녹화 중에 자기 해설 할 때 같이 하자고 해서 일일해설로 불렀다.
  • [11] 사실은 말하기 전에 하하가 먼저 언질을 했다. 슈퍼파워라 이야기 하라고. 참고로 서장훈은 인내심, 협동심이라 답하다 유재석에게 퇴짜만 맞았다.
  • [12] 단순 베개 싸움만이 아니었다. 서장훈이 무릎 연골이 안 좋다며 변명하며 약한 모습을 보이자 현주엽은 도가니탕 몇 그릇 먹으면 바로 나아진다며 서장훈을 역관광했고 그리고 서장훈은 도가니탕 먹어야겠다며 바로 수긍했다 그리고 서장훈이 목장훈의 대명사인 목 부상으로 또 약한 모습을 보이자 그냥 있으면 바로 나아진다며 또 한 번 서장훈을 역관광시켰다. 사실상 현주엽의 맹활약 속에는 서장훈의 희생이 매우 크게 돋보였다.
  • [13] 정형돈은 현역 시절에도 몸싸움에서 서장훈이 현주엽에게 많이 졌다고 이야기해 서장훈을 도발했는데...서장훈이 좋을대로 생각하라며 삐친 모습을 보였다. 이것이 현주엽의 미래????여담이지만 서장훈은 예능에서 망가진 몸을 이용해 종종종 웃겨왔는데 그가 실제로 부상과 오랜 선수생활로 몸이 만신창이가 된 걸 생각하면 "안 좋은 몸을 갖고 투덜대다 데꿀멍하는" 걸 아예 기믹으로 잡은 듯 하다.역시 연예인
  • [14] 아이러니하게도 김영철이 이 날 무도에서 가장 웃긴 순간이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그의 무도 출연을 비교해도 그가 이만큼 웃긴 적이 없었다!!!
  • [15] 제럴드 워커는 표본이 너무 적은 관계로 빼도 무방하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