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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니즘 제국

last modified: 2015-04-08 09:33:25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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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개요
2. 역사
2.1. 알렉산드로스의 정복
2.2. 헬레니즘 제국
2.3. 멸망
3. 통치

1. 개요

알렉산드로스 대왕마케도니아그리스, 소아시아, 이집트, 페르시아, 그리고 지금의 파키스탄 변경까지를 날림으로 병합하여 건설한 제국 및 그 땅을 물려받은 디아도코이들이 지배한 영역을 총칭하는 표현.


2. 역사

2.1. 알렉산드로스의 정복

알렉산드로스가 이렇게 단기간에 대확장을 이룩한 것은 물론 자신의 역량도 있지만 당시 적대국이던 페르시아가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었으며 이에 제국을 구성하던 지역들이 독립을 열망하던 상황이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이집트의 경우는 거의 무혈입성으로 차지했으며 그 넓은 페르시아의 땅도 다리우스 3세와의 단 몇 차례 전투만으로 적 주력을 이김으로써 자잘한 저항 없이 편입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페르시아를 차지한 뒤 알렉산드로스는 더 큰 고전에 직면하게 된다. 아프가니스탄에 도사리던 페르시아군 잔당 저항은 주력 이상으로 버거운 상대였으며, 비문명권인 중앙아시아 스키타이족에게도 굉장한 고전을 면치 못했다.[1] 세간엔 인도를 정복했다고 잘못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현재의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그것도 변두리 정도만을 찔렀을 뿐이다. 심지어 인도 변경의 왕중 하나인 포루스 왕과의 전투에서 알렉산드로스군은 대다수가 전의를 잃을 정도의 지독한 고전을 했으며[2], 그로부터 얼마 후 부하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천하의 알렉산드로스조차 고집을 꺾고 철군하지 않을 수 없었다.수정전에 포루스를 변경 소군주로 기입되어 있었는데 포루스를 소군주로 치부하기엔 무리가 있다. 찬드라굽타[3]도 포루스와 동맹을 맺은 것을 보면 포루스의 세력은 북인도의 강력한 군주들도 쉽게 복속시키지 못할 정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알렉산드로스의 제국 건설은 오히려 키루스 2세가 행했던 페르시아 제국 건설에 비해 면적은 넓으나 위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페르시아를 건설했던 키루스 2세는 메디아, 리디아, 신 바빌로니아, 박트리아 등등 주변이 적국으로 둘러싸인 상황에서 어떤 나라 할 것 없이 치열한 저항과 부딪쳐나가며 제국을 확장시켰고, 알렉산드로스처럼 적군 최종보스 몇몇을 쓰러뜨려 복속시키는 것만으로 제국령을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알렉산드로스 본인조차도 키루스 2세의 무덤 앞에 나아가 그의 용맹에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4].

2.2. 헬레니즘 제국

결국 페르시아를 건설한 키루스 2세와 달리 알렉산드로스의 군사력에 의한 통합은 일시적이었기에, 알렉산드로스 대왕 개인이 사망한 이후 그 가족과 후계는 비참한 최후를 당하고 부하인 장군들은 곧바로 땅따먹기에 돌입하여 제국은 마케도니아의 카산드로스(안티고노스) 왕조, 소아시아의 리시마코스 왕조, 시리아-이란셀레우코스 왕조, 이집트프톨레마이오스 왕조로 분할되었다. 그 뒤로는 더욱 잘게 분열하거나 왕조가 교체되거나 했으며, 크게 프톨레마이오스와 셀레우코스의 양강 구도가 정착되었다.

2.3. 멸망

사실 헬레니즘 국가의 쇠퇴 계기는 지배층의 군사력을 유지시켜주던 그리스-마케도니아의 이주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헬레니즘 국가는 '그리스 민족'이 지배층을 차지하였는데, 그리스-마케도니아의 인구가 헬레니즘 세계로의 유출로 줄어들면서 유입 인구가 줄어들었다. '왕의 친구'로서 지배관료가 될 그리스 지식인도, 군사력을 담당할 그리스 용병도 줄어들면서 헬레니즘 국가들은 위기에 봉착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등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토착민을 기용하거나 켈트 족 등 다른 용병을 써서 해결하려 했지만 이는 완전한 해결책은 되지 못했고, 그리스 인의 배타적인 우위권을 놓고 정치적 마찰을 불러오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지중해 동부의 그리스 식민지들은 로마에게 정복당하고, 페르시아 지역에 있던 식민지들은 파르티아에 병합당하여 기원전까지 그리스-마케도니아계 국가들은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한 때 제국을 건설했던 그리스 인은 로마 제국파르티아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되는데, 동방으로 이주했던 그리스인은 서서히 정체성을 상실하고 동화되어 사라진다.

가장 동방에 위치한, 인도로 이주한 박트리아나 인도-그리스 왕국의 그리스 인들 역시 오랜 기간 동안 왕조를 유지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불교로 개종하고 소수의 그리스 인이 인도 토착민 사회에 동화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소멸하게 된다.



3. 통치

헬레니즘 제국의 통치는 기본적으로 '그리스인 왕조'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마케도니아 인이기도 했지만 이 무렵에는 마케도니아 인 자체가 그리스 어도 쓰고 그리스 문화에 동화되어서 거의 그리스 화 되었으므로 그냥 그리스 인으로 퉁친다.(…)

그리스 인은 헬레니즘 시대에 제국 각지로 이주하였다. 그들이 고향에서 살던 폴리스와 마찬가지로 군데군데 그리스인의 식민지 도시를 건설하였다. 그리스 인 식민 도시는 신전, 운동장 등 전형적인 그리스 식 문화 시설이 들어섯다.

이 그리스 계 식민 도시들을 중심으로 헬레니즘 제국의 통치가 이루어졌으며, 제국의 인재풀은 주로 그리스 인이었다. 그리스 인은 역시 그리스 인들이 왕조를 이어가는 헬레니즘 제국의 왕의 신하이자 그들의 조언자, 지지자로서 통치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왕의 측근으로서 왕의 통치를 보좌하는 이들은 "왕의 친구"라 불렸다.

또 헬레니즘 제국의 왕들은 그리스 인 이외의 민족에게는 그들의 전통과 문화를 존중하여 통치하였다. 이런 이중적인 구조의 대표적인 사례는 이집트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이다. 이들은 알렉산드리아그리스인들의 대표자이기도 했지만, 이집트에서는 이집트 전통의 파라오로서 이집트인을 다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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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하지만 스키타이는 아케메네스조의 전성기를 이룬 다리우스 1세마저도 복속시키지 못했다. 그에 비하면 알렉산드로스는 성공적인 전투를 치룬 편
  • [2] 포루스와 알렉산드로스가 맞붙은 히다스페스 전투에서 마케도니아군의 손실은 1000명 가량, 포루스군은 12000명에서 20000명까지 손실을 입을 정도로 교환비 자체는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고대 전투의 전사자는 전투 중이 아니라 전투 결과가 판가름난 후 패배측이 도주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이것만으로 마케도니아군이 고전하지 않았으며, 압도적으로 이겼다고 보기는 힘들다.
  • [3] 인도 최초의 통일 왕조인 마우리아 왕조의 시조. 사실상 통일은 그의 손자인 아소카 왕 때의 일이나, 찬드라굽타가 통일의 기반을 거의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소카 왕은 그저 조부의 강성한 기반을 잘 이용한 것 뿐이다.
  • [4] 키루스 2세는 아프가니스탄 원정 도중에 전사했다. 알렉산드로스 역시 이 지역에서 엄청난 고전을 겪어야 했다.역시 제국의 무덤 아프가니스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