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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6세

last modified: 2015-03-23 00:55:16 Contributors

역대 잉글랜드 국왕
랭커스터 왕조 랭커스터 왕조 요크 왕조
헨리 5세 헨리 6세 에드워드 4세


왕호 헨리 6세
(Henry VI of England)
생몰년도 1421년 12월 6일 ~ 1471년 5월 21일
재위기간
(영국의 왕)
1422년 8월 31일 ~ 1461년 5월 4일
1470년 10월 30일 ~ 1471년 4월 11일(복위)
재위기간
(프랑스의 왕)
1422년 10월 21일 ~ 1453년 10월 19일
대관식
1429년 11월 6일(잉글랜드)
1431년 12월 16일(프랑스)
서명

백년전쟁 말기의 잉글랜드 왕.

Contents

1. 태어난지 9개월 만에 왕위에 오르다
2. 잔 다르크와의 악연
3. 패배한 백년전쟁
4. 유배, 그리고 사망
5. 가족관계


1. 태어난지 9개월 만에 왕위에 오르다

잉글랜드 왕 헨리 5세프랑스샤를 6세의 딸 카트린 사이에서 태어났다. 헨리 5세 사망 직후 잉글랜드 왕으로 즉위했는데 그 때가 1422년이었다(…). 이해가 안가는 분들은 잠시 위의 출생년도를 보자. 그러니까 한살도 되기 전에 잉글랜드 왕이 되었는데 정확하게는 생후 9개월이었다. 그리고 잉글랜드 왕이 된지 2개월 지나고 나서 외할아버지 샤를 6세가 갑자기 정신병으로 죽어버리는 바람에 트루아 조약에 의거하여 프랑스 왕까지 되었다. 이때 그의 나이는 고작 생후 11개월이었다. 흠좀무.

옹알이도 못하는 나이에 잉글랜드, 프랑스 두 나라의 왕이 된지라, 성년이 될 때까지 베드포드 공 존과 글로스터 공 험프리가 사실상 왕권을 휘어잡고 놀았다.

외숙부인 샤를 7세가 트루아 조약의 비적법성을 주장하며 대관식을 올리자 자기 자신도 1431년 파리로 가서 프랑스왕 대관식을 올렸는데 이때 나이가 10살이었다.(…)

2. 잔 다르크와의 악연

이런 화려한 어린 시절의 스펙과 다르게 그의 어린 시절은 잔 다르크와의 안 좋은 추억으로 얼룩져있다.(…) 이는 당시 왕권을 휘어잡고 있던 베드포드 공과 글로스터 공도 마찬가지, 결국은 이 두사람과 교황청이 작당해서 잔 다르크를 화형대 너머로 관광보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헨리 6세'에서는 아무리 셰익스피어가 영국인이고 헨리 6세가 주인공이라고 해도 잔 다르크를 철저히 악마와 결탁한 마녀 내지 악녀로 묘사한다.(...)

많은 사람이 영화 잔 다르크 덕분에 헨리 6세가 잔 다르크를 화형대로 보내는데 가장 큰 일조를 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데, 잔 다르크가 죽은 년도가 1431년, 그러니까 헨리 6세가 성년이 되어 왕권을 잡기도 전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잔 다르크의 이단심문과 화형에 관한 것은 당시 국왕대리였던 베드포드 공과 글로스터 공의 역할이 가장 컸다.

3. 패배한 백년전쟁

이후 성년이 되어 잉글랜드 왕과 프랑스 왕으로서 자리를 잡았지만, 전장에서 능력있는 지휘관이었던 베드포드 공은 헨리 6세가 성년이 되기 전에 사망했고, 글로스터 공은 윈체스터 주교와의 권력 투쟁 끝에 쫓겨나기에 이르렀으며 인물다운 인물로 새롭게 떠오른 요크 공 리차드는 결국 전황을 뒤집지 못하였다. 얼마 안가 칼레를 제외한 모든 프랑스의 잉글랜드령을 잃으며, 좆ㅋ망ㅋ했다.

백년전쟁 뒤에는 사자후버프받은 프랑스가 칼레마저 뺏어갈까 두려워서 앙주 등의 비옥하고 부유한 영토를 그냥 거저 돌려주는 등 친프랑스인 정도가 아니라 비상식적인 정책을 고수하였는데 문제는 이게 잉글랜드 귀족들의 불만을 사서 장미전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여담으로 칼레는 1558년 메리 1세 때 잃음으로서 결국 영국은 프랑스 내 모든 영토를 상실하고 만다.

4. 유배, 그리고 사망

장미전쟁 중에는 먼 친척이었던 요크 공 리차드의 아들 8촌 동생 에드워드 4세[1]에게 밀려 잠시 런던탑에 유폐되기도 했는데, 이때 정신착란증세를 심하게 보였다고 전해진다. 이 후 잠시 세력을 키우는 한편 에드워드 4세의 심복이었던 워릭(Warwick)백을 끌여들여 에드워드 4세를 밀어내고 도로 왕좌에 오르기도 하였지만 정신착란의 후유증으로 제대로 된 판단과 통치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이 정신착란은 그의 외할아버지 샤를 6세에게 물려받았다고 하기도 한다.

결국 다시 에드워드 4세에게 밀려 런던탑에 유폐되었고 1471년 5월 23일 에드워드 4세 추종세력에 의하여 암살당했다.[2] 참고로 부인 앙주의 마르그리트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외아들 프린스 오브 웨일즈(웨일즈 대공) 에드워드는 전황이 불리해지자 어머니와 함께 외가인 프랑스로 망명, 1470년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의 딸 앤 네빌과 혼인하였다. 이 후 1471년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 에드워드 4세와 맞서 싸웠으나, 튜크스베리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에드워드가 사망하면서 랭카스터 왕조의 후계는 단절되었으며 그의 어머니 마르그리트는 이 때 포로가 되었지만 그의 사촌이었던 프랑스 왕 루이 11세에 의해 석방되어 프랑스로 돌아가 살다 1482년 죽었다.

5. 가족관계

참고로 그의 어머니 카트린은 오웬 튜더와 재혼하여 에드워드 튜더를 낳았는데 장미전쟁을 종식시키고 튜더 왕조를 연 헨리 7세는 에드워드 튜더의 아들이다. 에드워드 튜더는 비록 사생아였지만 그의 이부형이었던 헨리 6세에 의해 적자로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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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현재 한국에서는 팔촌이 멀지만 그래도 친족으로 인정하여 팔촌 내로는 결혼을 못할 정도지만 서양에서는 오촌만 넘으면 좋게 봐도 먼 친척으로 보고 사실 남으로 본다.
  • [2] 공식적인 사인은 우울증이었으나, 1911년 발견된 헨리 6세의 유골은 두개골에 머리카락이 피로 엉겨붙어 있어 머리에 강한 도구로 찍혀 죽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에드워드 4세의 아들이었던 에드워드 5세와 리처드 형제도 그들의 숙부 리처드 3세에 의해 폐위되어 런던탑에 갇혔다가 죽음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