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헨리 5세

last modified: 2016-07-03 11:36:09 Contributors

Contents

1. 영국의 왕
1.1. 소개
1.2. 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끌다
1.3. 사망
1.4. 평가
1.5. 트리비아
2. 강철의 누이들의 등장인물

1. 영국의 왕

역대 잉글랜드 국왕
랭커스터 왕조 랭커스터 왕조 랭커스터 왕조
헨리 4세 헨리 5세 헨리 6세


왕호 헨리 5세(Henry V)
별칭 몬머스의 헨리
(Henry of Monmouth)
생몰년도 1386년 9월 16일 - 1422년 8월 31일
재위기간 1413년 3월 21일 – 1422년 8월 31일
대관식 1413년 4월 9일

1.1. 소개

세익스피어의 극에 나오는 모습과는 달리 진지하고 성실한 성격이었으며, 능력이 대단해 헨리 4세가 병에 들었을때 잠시 아버지 대신에 왕의 일을 했는대 이때 너무 유능해서 회복한 헨리 4세는 아들을 견제해 이후 헨리 5세에게 아무런 공직도 주지 않았을 정도다. 결국 그는 건강이 좋지 않은 아버지가 서거하기를 그냥 기다렸다[1].

1.2. 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끌다

즉위했을 때가 한창 프랑스백년전쟁으로 투닥대던 시기라 그는 왕위에 오르고 대부분의 시간을 프랑스군과 치고받으며 지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부르고뉴 공작 용맹공 장(Jean sans Peur/John the Fearless)이 이끄는 부르고뉴 파와 오를레앙 공작 샤를이 이끄는 아르마냑 파[2]가 실권을 두고 암투를 벌이고 있었다. 대립이 격화되어가는 와중에도 프랑스 국왕 샤를 6세는 이들을 제어하지 못하여 국내의 혼란은 지속되었다. 양 파벌은 서로를 누르기 위해 심지어 잉글랜드의 헨리 5세에게 손을 벌리기까지 했고 헨리 5세는 이러한 대립을 잘 이용하여 장차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얻기 위한 발판으로 삼고자 했다. 그리고 1415년, 헨리 5세는 잉글랜드 군을 이끌고 드디어 프랑스 땅에 상륙하게 된다.

그는 용맹공 장에게 자신이 정당한 프랑스 왕위의 상속권을 가진 자임을 주장하며 그에게 협력할 것을 요구했다. 용맹공 장은 처음엔 잉글랜드 군과 결탁하고자 하는 조짐을 보였으나 일단 아르마냑 파와 동맹을 맺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 속에서 헨리 5세의 잉글랜드 군과 아르마냑 파가 주도하는 프랑스 군이 충돌, 그 유명한 아쟁쿠르 전투가 발발했다.

프랑스의 영국군은 진이 쭉 빠져 프랑스에게 언제 쓸려나갈지 몰랐으나 프랑스군이 아쟁쿠르 전투에서 알아서 자폭해준 덕분에 프랑스 기사들을 철저히 발라버리고 승자가 되었다. 이때 헨리는 프랑스군 포로를 모조리 학살하도록 지시했으며, 자신의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날 수 있는 극소수의 사람만이 간신히 생환할 수 있었다. 한편 아쟁쿠르 전투로 인해 사망한 프랑스 군 지휘관 중에는 용맹공 장의 동생들도 있었으나 정작 용맹공 장 휘하의 부르고뉴 군은 이 전쟁에 개입하지 않았다.

이후 헨리 5세는 프랑스의 동맹국이었던 제노바의 해군을 격파하고 외교적으로 신성 로마 제국과 프랑스를 갈라놓아 프랑스를 고립시킨 뒤, 1417년 다시 프랑스로의 원정을 재개했다. 그런데 이 때 아르마냑 파와 부르고뉴 파는 다시 내부 항쟁에 돌입해 있었다. 아르마냑 파는 아쟁쿠르 전투에서의 처참한 패배로 인해 세력이 많이 약화되어 있었으나 파리의 지배권은 여전히 아르마냑 백작 베르나르 7세에게 있었고, 부르고뉴 파는 라이벌인 아르마냑 파를 찍어누르고 프랑스 정국의 주도권을 쥐고자 했다. 헨리 5세는 이들의 분쟁이 더욱 격화되도록 교묘히 유도하여 그들이 힘을 합쳐 자신에게 대항하는 것을 막으며, 프랑스 군을 각지에서 격파, 점차 남진하여 파리를 포위하기에 이르렀다.

1418년, 부르고뉴 군이 폭동을 일으켜 파리를 무력으로 탈취했고 라이벌인 아르마냑 백작 베르나르 7세가 부르고뉴 군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샤를 6세의 아들이자 원래 왕위계승권자인 도팽 샤를은 원래 부르고뉴 파와 사이가 좋지 않았기에,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살아남기 위해 파리를 떠나 시농으로 도피했다.

이후 도팽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용맹공 장에게 회담을 신청했고, 몽트로 다리에서 양자가 회동하기로 약속이 맺어졌으나, 회담 장소에서 용맹공 장이 도팽 샤를의 부하에게 암살당하고 말았다(1419년). 이에 격분한 용맹공 장의 아들 선량공 필립은 영국군과 연합하여 도팽 샤를을 적대하게 되었고, 따라서 파리 역시 헨리 5세의 세력권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후 1420년 5월, 헨리 5세는 샤를 6세와 트루아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샤를 6세의 딸인 발루아의 카트린느와 결혼하고 샤를 6세의 뒤를 잇는 프랑스 왕위계승자이자 프랑스 왕국의 섭정으로서의 자격을 획득하였다.

당시 프랑스의 왕이었던 샤를 6세는 헨리 5세보다 나이도 많고 병약했기 때문에 헨리 5세로서는 샤를 6세만 죽으면 자신이 영국과 프랑스 두 나라의 왕이 될 거라고 여겼다. 비록 도팽 샤를과 그를 지지하는 아르마냑 파가 트루아 조약을 인정하지 않고 반항하고 있었지만, 프랑스 내의 다른 주요 파벌인 부르고뉴 파는 헨리 5세의 즉위에 찬동하고 있었고 헨리 5세 본인이 이미 아쟁쿠르 전투에서 포로로 잡힌 프랑스 포로들을 대부분 학살하여 자신에게 대항하는 세력이 커질 가능성을 미리 차단해 놓았기에 명분으로나 실력으로나 그가 프랑스 왕위를 계승하는 것은 명백한 운명처럼 보였다. 그런데....

1.3. 사망

아들 헨리 6세가 태어나고 얼마 뒤 사망. 문제는 헨리 5세가 사망한 시점에 샤를 6세는 살아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을 아들 헨리 6세는 아직 열 살도 안 된 꼬마....일이 이렇게 되자 트루아 조약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아르마냑 파의 목소리는 점차 힘을 얻게 되었고 이에 힘입어 도팽 샤를은 자신이 정당한 프랑스의 왕위계승자임을 주장했다. 그러나 부르고뉴 파는 이러한 도팽 샤를의 주장을 트루아 조약 위반이라고 비난했다. 비록 도팽 샤를이 프랑스의 왕위를 주장했으나 전통적으로 프랑스의 왕이 대관식을 올렸던 랭스[3] 는 영국군 + 부르고뉴군의 점령 하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그는 대관식도 치르지 못한 채 시농 성에서 골치를 썩이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프랑스의 성처녀 잔 다르크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1.4. 평가

결국 갑작스러운 자신의 죽음, 그리고 뒤를 이은 아들 헨리 6세의 어린 나이와 무능, 잔 다르크로부터 시작된 도팽 측의 반격으로 인해 자신이 거둔 가장 커다란 성과가 무효화되고 만 셈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동안 견원지간처럼 으르렁거렸던 영-불관계로 인해 프랑스 군을 격파하고 그 왕위계승권까지 한때나마 차지했던 헨리 5세는 오랫동안 영국인들에게 영웅으로 숭배되어 왔다.

1.5. 트리비아

  • 역사적으로 유명인물인데 공간 특성 때문인지 누군가의 창작물에 나오는 신사숙녀들의 왕보다 항목 내용이 지극히 부실하다. 지못미 셰익스피어.

  • 셰익스피어가 이 사람을 주인공으로 '헨리 5세' 라는 희곡을 썼는데 이 희곡의 한 구절, 정확히는 4막 3장의 'St. Crispin's Day Speech(성 크리스핀 데이의 연설)' 이 유명하다. 아쟁쿠르 전투만 언급되면 빠지지 않는 유명한 장면이다.

And Crispin Crispian shall ne'er go by,
크리스핀 데이는, 오늘로부터 세상이 끝나는 그 날까지,
From this day to the ending of the world,
우리를 기억하지 않고서는...
But we in it shall be remembered-
절대로 이어지지 못하리라.
We few, we happy few, we band of brothers;
적은 우리, 적지만 행복한 우리, 우리는 한 형제들이다.
For he to-day that sheds his blood with me
오늘 나와 함께 피 흘리는 자는
Shall be my brother
모두 나의 형제일지라.

성크리스핀데이의 연설이 담긴 동영상과 영어본문과 해석이 담긴 블로그. http://leonpero.tistory.com/494]

영국의 영웅인지라 영화로도 여러번 제작 되었는데, 그 중 1989년도 버전은 처절한 젱쿠르 전투씬으로 유명하며, 헨리 5세의 인간적인 면이 많이 부각되었다. 특히 전투가 끝난 후 병사들이 부르는 성가속에서 죽은 병사의 시신을 옮기는 장면이 유명하다.

2. 강철의 누이들의 등장인물

이름의 유래는 아마 1번? 에드워드 8세겠지
대 에린 섬과 결속국가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Erin Island & Commonwealth States), 통칭 연합왕국의 국왕.
독립전쟁 당시 선왕 에드워드 4세의 서거로 갑작스럽게 왕위를 이어받았으며, 왕국국방회의 의장명령으로 전쟁 종결을 결정하였다. 이후 연합왕국과 공화국은 비교적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지만, 그 덕에 반대파들에게 정신적 결함이 돌출, 일부 귀족 가문과 궁내부대신들이 이를 부풀려 유포하고 의회에서 비밀회의를 개최해서 국가 통치권을 현 내각에 위임한다는 결의안을 통과시킨다. 그리고 이 쿠데타 세력은 미테란트 침공을 개시하였다.
카린 드 세일리언 공주가 미테란트에서 데려온 한얼이, 제레미, 프레이, 크리스틴과 연합왕국 해군의 일부 인사들이 손을 써서 탈출한 데임 마리오넷 클레이턴이 왕국국방회의를 제압하고 구출해준 덕에 반년간의 연금상태에서 풀려난다.
이는 남부방면 전역을 종결시키기 위한 미테란트의 공작이었지만 당시 불안한 연합왕국의 내정 탓에 조기 종결은 물건너가고 말았다.

그가 가진 정신적 결함이란게, 바로 흑발 페티쉬다. 카린과 마리오넷 둘 다 한숨을 쉴 정도로 심각한 흑발 페치. 제레미가 엄마한테 들었다는 걸로 봐선, 최소한 30년 전 부터 저런 취향인 것 같다.
국왕 구출과 왕국국방회의 제압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했기 때문에 팀을 나누어야 했는데, 국왕이 연금되어있는 윈저 별궁의 대마법 보호장치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한얼이가 메이드로 변장하고 별궁에 침투, 국왕을 구출하는데 성공하나 그 과정에서 코카인에 취한 국왕이 한얼이를 덮쳐버렸다. 그것도 남자인걸 아는 상태에서.(..) [4]
다행히 삽입(...)까지 가진 않았지만, 전격 마법을 두번이나 맞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하악하악거리며 달려드는 모습에 한얼이는 패닉에 빠져버렸다. 크리스틴이나 마리오넷 둘 중 한 명만 없었더라도 청년막 강간당해버렸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때 상당한 충격을 받았지만 느끼진 않아서 음란한 여성인격이 등장할 가능성은 낮다. 3기의 페퍼횽이라든가 강철의 누이들 2를 기대합시다

상황이 대강 진정된 후 비공식적으로 접견했을 때, 한얼이에게 자기 곁에 남아달라고 했다가 제레미한테 죽을 뻔 했고, 결국 프레이의 특기인 '권능언령 발기불능'으로 단죄당했다.[5] 내가 고자라니! 그런데 이때 흑발이 아닌 짙은 고동색 머리카락의 매력을 설파한 것으로 볼 때, 페티시즘의 범위가 넒어진 게 아닌가 싶다.(...)

그 후에 카린 공주가 미테란트군에 의용군으로 참전하는데 대해 보낸 친전에, 정신 못차리고 한얼이에게 부마(사위) 자리(에린공Prince of Erin)와 제 1후궁(!)(홈우드 백작Count of Holmwood ) 자리를 제안해서 한얼을 비롯한 여러 사람을 경악시켰다. 과연 신사들의 왕

사실 왕으로서의 자질은 상당히 훌륭하다(고 한다). 평상시엔 상당한 인격자이며,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6]고 한다. 단지 그 취향이 괴악할 뿐.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 왕이면서 어떻게 된 영문인지 공산주의자와 사이가 좋다. 그래서인지 은 아예 빨갱이가 됐다. 지못미

----
  • [1] 임종의 자리에서 헨리 4세가 숨을 거뒀다고 생각한 헨리 5세가 왕관에 손을 대자, 헨리 4세가 눈을 뜨더니 "그건 아직 네 것이 아니다. 내 것도 아니었지만."이라고 말하고 숨을 거뒀다는 일화가 있다(....). 아빠 안 잔다 나 아직 안죽었어
  • [2] 오를레앙 공작 샤를의 아버지 루이 1세가 용맹공 장에 의해 암살당한 이후, 샤를의 장인인 아르마냑 백작 베르나르 7세가 불과 14세의 나이로 작위를 승계한 어린 공작을 재정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지원하며 파벌의 핵심인사로 떠올랐기에 파벌의 명칭이 아르마냑 파로 굳어졌다. 양측의 대립이 루이 1세 생존시부터 있었던 일이기에 이 시점의 파벌까지도 소급하여 아르먀낙 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 [3] 프랑크 왕국의 실질적인 창업주 클로비스 1세가 랭스에서 대관식을 치른 이래, 프랑스의 왕은 랭스에서 대관식을 치르는 것이 전통이 되었다. 베르됭 조약과 메르센 조약으로 프랑크 왕국이 분열되면서 실제 로마가 있는 이탈리아도 아니고 명목상 로마의 황제인 신성 로마 제국도 아닌 프랑스로서는 랭스의 대관식을 통해 프랑크 왕국으로부터 이어지는 나름의 정통성을 확보했던 것이다.
  • [4] 한얼이는 그때 마법 관련 트러블로 자진삭제 된 상태였는데, 그걸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도 "아무렴 어떠랴? 내 그대처럼 마음에 쏙 드는 흑발은 처음 보았느니라. 짧게 자른 흑발, 초롱초롱 빛나는 갈색 눈동자. 아아, ?흑발 밖에 없다는 야마토 에서조차 그대처럼 흑발이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미소년 은 보기 어려우리라. 처음에는 좀 아프겠지만 곧 기분이 좋아지리라. 자아, 참도록 하여라"(...)라면서 덮치려고 했다. 그것도 ?코카인 때문에 아주 꼴사나운 표정으로.(..)
  • [5] 6개월 한정
  • [6] 페티쉬의 정체가 밝혀지기 전에 이 언급이 있었기 때문에, 한때 독자들 사이에서 게이 의혹이 일었다. 그리고 한얼이 때문에 결국 현실화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