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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저

last modified: 2015-03-10 09:57:18 Contributors

許褚

후한 말, 나라의 무장이자 삼국지의 등장인물. 는 중강(仲康)이며 초(지금의 안휘성 부근) 사람이다. 생몰년도 불명. 조조의 부하 중에서도 첫째 둘째를 다투는 용장이다.

Contents

1. 설명
2. 허저의 친족 관계
3. 연의의 허저
4. 대중문화 속의 허저


1. 설명

허저는 초현 사람으로 그 지방에서 사람들을 모아 성벽을 쌓고 자체적으로 치안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때 도망가는 소의 꼬리를 끌고 백보를 걷는 등의 완력으로 유명해진다. 조조는 196년 헌제가 장안에서 탈출했을 때 조홍을 파견해 놓은 뒤 잠시 여남 일대의 황건적 잔당을 토벌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허저가 조조의 휘하로 들어온다. 조조는 그를 자신의 호위 대장격인 도위로 임명한다. 이 때 전위가 계속 호위 대장으로 있었고 197년 장수가 습격했을 때도 조조를 호위한 인물이 허저가 아닌 전위인 것을 보면 허저가 전위 휘하에 들어간 것 아닌가 추측된다. 전위는 승진해 교위였으므로 허저보다 한 계급 위였다. 전위는 허저가 등용된 지 일년 뒤인 197년에 죽는데, 전위전에 보면 장수가 습격하자 조조는 호위하는 기병과 함께 물러났고 전위는 성문을 지키다 죽는 것으로 나온다. 이때 허저가 맡은 도위직의 임무를 고려한다면 그는 조조를 호위하였던 기병 중 한명이었을 수도 있다.

전위의 죽음 이후 그는 언제나 조조를 곁에서 지켰다. 조조는 그를 '나의 번쾌'라고 평했다.

198년에 있었던 조조의 재침공 때는 허저가 조조군의 선두에서 활약하였고 기세가 오른 조조군은 만 명을 죽인다. 이 때는 조조가 유표, 장수의 추격을 받아 안중에서 궁지에 몰렸을 때 땅굴을 판 뒤 기습했을 때의 일로 보인다.

200년 관도에서 조조와 원소가 싸움을 벌였을 때 근위대의 병사인 서타가 조조의 목숨을 노린 적이 있었다. 서타는 조조를 해치기 위해 허저가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허저가 자리를 비우자 조조가 머무는 장막안으로 들어왔는데 허저가 불안한 예감을 가져 얼른 되돌아 왔으므로 발각된다. 서타가 있는 것을 보자 허저는 즉시 죽였는데 이 때문에 조조의 신임을 더 받게 된다. 이정도면 지력 좀 올려줘야죠

204년 심배가 지키는 업성을 포위 공격했을 때도 활약하여 관내후에 봉해진다.

211년 마초가 관동연합군의 맹주로 추대된 뒤 대규모의 군을 이끌고 조조와 맞설 때도 동행하였다. 조조는 처음에는 동관을 사이를 두고 대치하였다 몰래 서황, 주령을 보내 북쪽의 황하를 건너게 하였다. 서황, 주령이 강을 건너 진영을 세우자 자신의 병력을 모두 보내 강을 건너게 하였는데 조조는 가장 맨 후방에 남아있었다.[1]

마초는 조조가 맨 후방에 남아 있을 때를 기다려 1만 명의 군대로 조조군을 급습하였다. 교위 정비가 우마를 풀어 적들은 이들을 취하고자 어지러워졌고 조조는 서둘러 배 위에 오른다. 이때 허저는 조조를 배에 태운 뒤 왼손으로 안장을 들어 조조를 화살로부터 보호하였다. 그 뒤 사공이 화살에 맞아 죽자 허저는 자신의 오른손으로 배를 저어 나아가 강을 건넜다.

그 뒤 마초와 한수는 조조에게 계속 영토를 분할할 것을 청했고 조조는 가후의 계략에 따라 이를 거짓으로 허락하는체 하였다. 때문에 한수가 조조에게 회담을 갖자고 요구하였고 조조는 이에 응하여 회담을 갖는다.

이때 조조는 허저 한 사람만 데리고 있었는데 마초는 자신의 힘에 의지하여 조조를 죽이려고 했다가, 평소 허저의 용맹함을 듣고 있었던지라 그때 조조를 수행한 기병이 허저가 아닐까 생각해서 "조공에게는 호후(虎侯)가 있다는데,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물었고, 조조가 고개를 돌려 허저를 가리켰고 허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자[2] 마초 등은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각자 진영으로 돌아갔으며 이후의 교전에서 허저는 마초 등을 크게 무찌르고 무위중랑장(武衛中郞將)으로 승진했다.

호후 이전의 별명은 호치(虎痴)인데, 힘은 세지만 순박한 허저를 살짝 놀려먹는 분위기의 호칭이었다. 사람이 어수룩한 탓에 여기저기서 얕보이기도 했지만 업무에 관해서는(조조의 호위) 철통같았다. 우직하게 원리원칙만 고집한게 아니라 센스있게 상황상황에 대처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그리고, 위에 나온 마초와의 대결 이후로는 호후(虎侯)라 불리게 되는데, 호후란 본래 허저의 별명이 호치임을 안 마초가 반쯤 장난삼아 불러보았던 것으로, 이후 공식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조인이 형주에서 조조를 만나기 위해 방문하였을 때 허저에게 말을 붙여보나 허저는 용건만 말하고 조조 곁으로 갔으므로[3] 조인이 기분 나빠하였다. 누가 왜 그랬냐고 따지자 허저는 조인이 종친이라 할 지라도 외번이니 사사로이 대화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라고 반문하였고 이를 들은 조조는 기뻐하여 그를 중견 장군으로 승진시킨다.

조비가 조조의 뒤를 이은 뒤 칭제하였는데 허저에게 수도의 금병(禁兵) 전체를 통솔하는 권한을 부여했다고 한다.

위 명제 조예 시절에 사망했는데 그의 식읍은 7백 호에 이르렀다.

그는 우직하고 말이 적었으며, 법령을 엄수하는 성격이었으니 또한 몹시 순박하고 부끄러움을 잘 타서, 적장의 목을 베어오는 건 너무도 쉽게 하지만 조조가 그것에 감동해 사람들 앞에서 칭찬을 하며 토닥여주자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군졸들 사이로 숨어버렸다는 일화가 있다. 다른 욕심도 없이 그저 자신의 위치에만 만족했던 자로 조비의 신임도 두터웠고 천수를 다 했다.

조조가 죽었을 당시에는 통곡하며 선혈을 토하기도 했다고 한다.

직위도 일군을 이끄는 지휘관이라기보다는 조조의 보디가드 역할로 군사적인 재능을 요하는 직책을 맡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용력과 무예가 뛰어났다는 사실만은 명백한데, 정사에서도 일신의 무예는 최강급임을 밝히고 있으며 매 싸움에서 십단위의 수급을 취했다고 나온다.

호사(虎士)라고 불리는 심복들을 대동하고 다녔는데 조조는 이들 또한 장사라고 여겨 전원에게 벼슬을 내렸다. 교위까지 승진한 자가 100명이고 몇 명인가는 열후에 봉해졌다고 한다.

근본도 없는 무식쟁이 취급하는 사람도 있는데, 처음 등장했을 때 종족을 거느리고 이들의 우두머리 역할을 한데다 조조에게 항복할 때도 부하들을 거느렸던 것을 본다면 어느정도 집안이 되는 호족에 해당되지 않나 추측할 수 있다. 게다가 보통 근본이 없는 사람은 자도 없다. 전위가 그 예.

2. 허저의 친족 관계

아들로 허의가 있으며 손자로 허종이 있다. 아들 허의는 정벌 도중 상관인 종회에게 처형당한다.

3. 연의의 허저

연의 한정으로 한중 공방전 때 수송 임무를 맡았다가 부하들이 건네준 술에 취해서 장비에게 부상당하고 후퇴한 적이 있다(…).

연의에서 허저가 벌이는 일기토는 죄다 구라다. 허저는 꽤나 일기토를 많이 벌이는데 여포와의 일기토를 벌여 50여 합인가를 버티기도 하였고 여남에서는 조운과 100여 합을 싸웠으며 마초장비와도 붙었는데 이것은 모두 허구이다. 은근히 장비보다 약한 듯 하게 설정하여하위호환 술에 취해 장비에게 부상당하거나 여포와 100여 합을 버틴 장비보다 약간 모자른다던게 하게 나온다[4].

주군에게 충성하는 모습이 인정받아서인지 연의에서는 조조 진영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푸쉬를 받는다.

4. 대중문화 속의 허저

창작물에서는 비만 이라기 보다는 근육돼지 캐릭터로 자주 등장하는데,[5] 실제로 정사에 신장이 8척 남짓하고 허리둘레가 10위(圍, 약 115cm)였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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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렇게 하면 동관의 동쪽에 있는 부대와 황하 북쪽의 진영에 있는 조조군의 주력부대가 동관 서쪽에 있는 마초군의 3시, 12시 방향에서 협공하는 형태가 된다. 결국 마초군은 철수하여 위구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 [2] 김홍신 평역판에서는 노려보는 것도 모자라 "내가 바로 초군의 허저다! 무슨 일로 날 찾느냐!"라고 외쳤다. 거기에 눌린 마초가 진영으로 돌아갔으며, 양군 모두 "마초도 허저만은 두려워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여담이지만 이 평역판에서는 마초와 (갑옷이 땀에 젖어서) 웃통을 벗은 허저와 3라운드 일기토를 벌이는 장면도 나온다. 하지만 연의니까 당연히 거짓말.
  • [3] 판본에 따라서는 조조가 술에 취해서 누워 있었기 때문에 "들여보내지 않았다"고도 한다.
  • [4] 장비보다 모자르다기보단 동급으로 했다고 봐야할지 모른다. 장비와 동급인 마초와 동급으로 묘사됐고 장비에게 질 때도 술에 취했다 해서 명백히 페널티가 있는 상태로 묘사됐다. 여포와의 싸움을 통한 간접비교가 약간 애매하긴 하지만 어차피 장비도 호로관에서 관우의 도움을 받았었다
  • [5]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에선 일반 장수들과 다를바 없는 보통체구의 미남(…)으로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