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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파 특별 드래프트

last modified: 2015-02-15 23:08:18 Contributors

Contents

1. 소개
2. 드래프트 결과

1. 소개

한국프로야구에서 2007년 4월 2일에 있었던 특별 드래프트.

KBO박찬호의 등장 이후 메이저리그대한민국 야구에 관심을 가지고 선수들을 스카웃하려 하자 1998년에 아마추어 유망주들의 무분별한 해외 진출을 막기 위해 해외파 2년 유예 제도를 만들었다. 이는 1999년 1월 이후부터 해외에 진출한 선수들이 국내 복귀를 원할 경우 최종 소속 팀과의 계약이 완전히 종료된 시점[1]으로부터 2년의 유예 기간을 거쳐야 한다는 내용이다.[2][3] 그 전에는 김병현최희섭 등이 해외 진출을 이유로 KBO로부터 자격정지 처분을 받은 바 있다.

그런데 알다시피 (주로)미국으로 떠난 선수들이 모두 성공한 것이 아닌지라 메이저리그에 안착하지 못하고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다 돌아온 대한민국의 (지명 당시) A급 유망주 대우를 받던 선수들의 대한민국 복귀를 위해서, 그리고 조금 더 한국프로야구의 중흥[4]을 위해 특별히 KBO에서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회의를 갖고 결론을 낸 것이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 때마침 국내 복귀 의사를 밝혔던 승학이 군 면제[5]라는 것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어 꼼짝없이 2년을 날릴 위기에 처했던 상태였기에 결정은 비교적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위 조건에 해당되는 선수들 중 연고지 내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수를 여러 명 보유한 롯데 자이언츠KIA 타이거즈가 복수의 대상자들 중 한 명을 우선 지명할 수 있었고, 이후 4월 2일에 열렸던 드래프트에 지명을 받지 못한 선수와 류제국, 그리고 3월 중에 뒤늦게 명단에 추가된 채태인[6]을 포함하여 최종 5명의 대상자를 영입할 의사가 있는 6개 구단이 지명하도록 하였다. 6개 구단이 추첨을 통해 지명 순서를 정하였고, '6'번을 뽑은 한화 이글스는 지명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이에 한화의 김인식 감독은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결국 한화는 2012년 박찬호대한민국 복귀 때 KBO에 특례를 인정받아 신규 드래프트 없이 지역 연고 투수인 박찬호를 영입하였다. 아마 특별 드래프트에서 제외된 팀이 한화가 아니었으면 박찬호의 과거 지역 연고 지명권을 가졌던 한화와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 지명권을 갖지 못했던 팀이 분쟁을 겪었을 것이 뻔하니 참 골치 아플 뻔했다.

2. 드래프트 결과

지명 순서구단선수출신 고교계약 현황
우선KIA 타이거즈최희섭광주일고2007년 계약
우선롯데 자이언츠송승준경남고2007년 계약
1SK 와이번스추신수부산고미계약, 현 텍사스 레인저스 소속
2LG 트윈스류제국덕수고2013년 계약
3두산 베어스이승학부산공고2007년 계약, 2009년 방출
4삼성 라이온즈채태인부산상고2007년 계약
5현대 유니콘스[7]김병현광주일고넥센과 2012년 계약, 현 KIA
6한화 이글스 지명권 없음[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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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임의탈퇴는 기산점이 아니다. 계약을 완전히 해지하거나 완전히 방출되야 기산점이 시작된다. 이러했던 케이스가 채태인이다.
  • [2] 1994년에 미국으로 진출한 박찬호는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1999년 이전에 입단한 서재응김선우 역시 기존 고졸우선 지명권(각각 당시 OB/해태)이 그대로 유지되어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에 해당되지 않았으며, 두 선수 모두 2008년에 해당 지명권을 보유한 구단으로 대한민국에 복귀했다. 1997년에 미국으로 떠났던 봉중근도 마찬가지.
  • [3] 이 유예 기간 규정은 2009년에 지명을 받지 못하고 나간 선수에 한해 완화하기로 했으나 고교 졸업 예정 선수들의 미국행이 잇다르면서 도리어 강화되었다. 한국프로야구를 거치지 않고 나간 선수들은 돌아오더라도 1차 지명 대상에서 제외되며, 입단하더라도 계약금은 받지 못하고 최저 연봉만 받게 된다. 곧 유예 기간이 지났다고 바로 지명에 참가할 수 있는 게 아니라, 2차 지명 회의가 있기 전에 지명 참가 신청을 하고 KBO에서 주최하는 트라이아웃에 참가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러나 이 트라이아웃이 규약에 없는 임의행사라는 지적이 있었으며 이는 2015년도 2차 지명을 앞두고 몇몇 구단들이 사전 접촉 의혹을 받는 정도에 이르렀다.
  • [4] IMF 구제금융기부터 시작된 프로야구의 침체기는 1999년을 제외하고는 관중 수 300만명 미만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2005년에 338만 7843명으로 1999년의 기록(322만 624명)을 넘었다가 2006년에는 다시 304만 254명으로 하락.
  • [5] 고질적으로 허리 부상을 달고 살았다. 결국 2007년 양준혁에게 한국프로야구 역대 최초 개인 통산 2,000안타를 허용했고, 부상 후유증으로 2009년에 방출당한다.
  • [6] 2005년 1월에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공식 방출되어 이미 유예 기간이 지난 상태였다. 뒤늦게 명단에 추가된 이유는 짐작하시는 대로...
  • [7] 김병현의 지명권은 현대 유니콘스 해체 후 넥센 히어로즈에 인계되었다.
  • [8] 대신 반대 급부로 박찬호가 복귀하긴 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