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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럴드 로이드

last modified: 2017-05-22 11:26:35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상세
3. 후세의 평가

1. 개요

본명은 해럴드 클레이턴 로이드(Harold Clayton Lloyd). 별명은 스피디(Speedy).

1893년 4월 20일 ~ 1971년 3월 8일. 미국영화배우, 영화감독.

2. 상세

해럴드 로이드는 12살에 처음 무대에 데뷔하여 아역 배우로 활동하다가 헐리우드 최초의 코미디 전문 제작소인 멧 세넷 프로덕션의 조감독 출신인 코미디 제작자 핼 로치[1]를 만나고 그와 계약하면서 코미디 배우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초창기에는 채플린의 방랑자를 모방한 Lonesome Luke라는 캐릭터로 영화에 출연하였지만 이후 동그란 안경과 모자를 쓴 도시청년으로 자기만의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그가 즐겨 썼던 동그란 뿔테안경은 지금도 로이드 안경이라고 불리며 해럴드 로이드의 영화에서 영감을 얻어 슈퍼맨클라크 켄트로 변장하는 설정이 만들어졌다.

해롤드 로이드의 코미디 스타일은 버스터 키튼과 비슷하게 몸개그로 웃기는 스타일이다. 단 두 사람의 스타일은 좀 다른데 버스터 키튼은 계단에서 넘어져서 구르거나 무언가에 발이 걸려서 엉덩방아를 찧는 등 박진감 넘치는 스턴트를 주로 선보였고 해럴드 로이드는 자동차 뒷편에 매달려있거나 높은 건물의 벽을 기어오르는 등 긴장감 넘치는 스턴트를 주로 선보였다. 로이드는 자신의 스턴트를 '스릴 시퀀스'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해럴드 로이드가 선보인 스턴트 중 가장 대표적인 <Safety Last! 1923>에서 등장한 해롤드 로이드의 시계탑 시퀀스. 참고로 해당 장면은 성룡프로젝트A, 투더 퓨쳐에서 오마쥬되었다. 또한 에미트 브라운 박사의 연구실에 진열된 시계를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대놓고 시계에 매달린 해롤드 로이드 선생이 나온다.

해럴드 로이드는 1920년, 영화 촬영 도중 소도구로 사용하던 폭탄이 예정보다 일찍 터져서 오른손 엄지와 검지를 잃었다. 손가락을 잃은 이후에는 오른손 모양을 한 특수장갑을 끼고 생활하였고, 스턴트 장면을 촬영할 때면 안전장치를 꼼꼼히 준비 한 뒤에 촬영을 시작하였다. 일례로 위의 시계탑 시퀀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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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이렇게 찍었다.

또한 해롤드 로이드는 매우 부지런하고 영리한 배우로 유명했고 사업 수완도 뛰어났다. 우선 로이드는 영화를 개봉하기 전 시사회를 거쳐 편집과 촬영을 다시하는 프리뷰 시스템을 최초로 도입했고, 영화계의 사람들 중에서 저작권의 중요성을 최초로 인식한 영화계 인물 중 한명이었다.

또한 유성 영화가 등장한 직후 경제 대공황까지 발생하자 자신의 캐릭터가 시대상과 맞아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 영화 배우에서 은퇴하고 사진 작가로 활동하다가 1930년대 막 활성화되기 시작한 라디오 방송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느끼고 연예계에 복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연예계에서 완전 은퇴를 선언하고 주로 자선 활동을 하면서 지내던 해럴드 로이드는[2] 50년대 초반 TV 방송이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하자 라디오에서의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TV의 잠재력을 예감하고 TV는 일시적인 유행으로 그칠 것이라면서 TV 방송 출연에 회의적이었던 영화계에서 활동한 다른 배우들과는 달리 영화 배우로서는 최초로 TV에 정기적으로 출연하여 무성 영화들을 재평가하는 기틀을 만들기도 하였다. 또한 당시 인기있던 라디오 방송의 제작자들에게 라디오 방송의 TV판 제작을 적극적으로 추천하거나 현역시절의 라이벌이었던 버스터 키튼에게 TV 출연을 강력하게 권유하였다고 한다. 이외에도 키튼을 거덜나게 한 MGM으로의 이적을 가장 강하게 반대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한편 TV의 보급으로 영화관에 관객들이 줄어들어서 영화판이 위기에 처하게 되자 로이드는 영화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시네마스코프, 3D 영화 등 신기술에 주목하고 영화관에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영화사 간부들에게 강력하게 주장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플레이보이가 유명해지자 마릴린 먼로 등 섹시 컨셉의 여배우들과 함께 성인 잡지를 발행하기도 했다.

현역시절 채플린이나 키튼에 비해 돈을 많이 번 데는 다작도 한 몫 한다. 실제로 로이드와 채플린이 1920년대 발표한 영화들의 흥행을 비교하면

Feature film grosses (silents only) during the twenties for Lloyd were as follows:

A Sailor-Made Man (1921) $485,285
Grandma's Boy (1922) $975,623
Doctor Jack (1922) $1,275,423
Safety Last (1923) $1,588,545
Why Worry (1923) $1,476,254
Girl Shy (1924) $1,550,000
Hot Water (1924) $1,350,000
The Freshman (1925) $2,651,167
For Heaven's Sake (1926) $2,591,460
The Kid Brother (1927) $2,403,130
Speedy (1928) $2,287,798

Chaplin's feature film grosses for the decade are:

The Kid (1921) $2,500,000
Gold Rush (1925) $4,250,000
Circus (1928) $3,800,000

해럴드 로이드는 중단편을 꾸준히 뽑아내며 계속 안타를 쳐낸 데 비해 채플린은 좀 더 신중하게 찍으며 큰 거 한 방을 노렸다고 볼 수 있다. 키튼도 채플린도 본인 작품 수가 백 편을 못 넘는데 이 분은 혼자 200편을 찍으셨으니.

무성영화의 시대를 지배했던 3인조중(물론 나머지 2인은 채플린과 키튼) 가장 말년을 평온하게 보냈다. 한창 코미디 스타로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에 헐리우드에서 제일 출연료를 많이 받는 배우들 중 하나였던 사람이 영화계를 은퇴한 이후 사업에서도 승승장구하면서 그야말로 역대급 부자가 된 덕분. 사생활도 평온해서 그의 영화에서 항상 여주인공으로 출연했던 배우 밀드레드 데이비스와 결혼해서 잉꼬부부로 잘 살았다. 밀드레드는 결혼 후 배우업에서 은퇴하고 1969년에 사망했고 해롤드도 아내의 죽음 후 2년 뒤에 세상을 떠났다. 채플린은 그놈의 매카시즘에 걸려서 말년 대부분을 피곤하게 보내야 했고 키튼은 경제적으로 제대로 몰락했다는 걸 감안하면 그야말로 인생의 승리자.

3. 후세의 평가

현역시절에는 찰리 채플린, 버스터 키튼과 동등한 인기를 누렸으나, 지금은 두 사람보다 묻혔다. 월간 키노나 스크린, 로드쇼같은 90년대를 풍미한 국내 영화지에선 채플린이나 키튼은 종종 상세하게 소개하는 반면, 로이드에 대하여 소개한 게 거의 없을 정도이다. 해외 평론가들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현재 평론가들의 해럴드 로이드에 대한 평가는 대략 신(찰리 채플린)과 우주(버스터 키튼)의 싸움에 낀 인간류 최강(해럴드 로이드) 정도. 그나마 해럴드 로이드는 인간류 최강 소리나 듣고 있지 전성기엔 저 셋에 버금간 유성 영화 시기의 막스 형제는 훨씬 심하게 묻혔다.

해롤드 로이드가 찰리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보다 낮은 평가를 받는 것에 대해서 이유로 제시되는 것들은

  • 첫째, 채플린과 키튼에 비해 로이드의 캐릭터는 평범했다.
  • 둘째, 채플린과 키튼에 비해 로이드는 감독이라는 자의식이 적었다. 로이드의 영화를 보면 실제로는 자신이 연출했지만 다른 사람의 이름이 감독으로 나오거나 다른 감독에게 연출을 맡긴 경우가 많은데 아마 '감독'이나 '제작자'보다는 '배우'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중요시했던 것 같다.
  • 셋째, 찰리 채플린이 코미디 영화에 비극적인 요소를 섞거나 사회비판 메시지를 강하게 담고 버스터 키튼이 촬영, 편집에 대해 참신한 시도를 많이 한 것에 비하면 로이드의 영화는 웃음과 재미에만 치중한 영화들이 많았다.
  • 넷째, 해럴드 로이드는 독립 스튜디오를 세운 뒤부터 자신의 출연작을 전부 직접 관리했으며 배우 은퇴 후에는 자신의 저택에 초대받아 온 사람들에게 자신이 출연했던 영화를 보여주는 걸 낙으로 삼았다. 다시 말해서, 대다수 영화팬이나 영화학도들은 그의 영화를 볼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된 상태였다. 심지어 그 유명한 로저 이버트조차 해럴드 로이드의 영화들이 DVD로 발매된 후에야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등이 있다.

그래도 DVD 시대에 들어오면서 그럭저럭 재평가되는 추세이긴 하다. 해럴드 로이드의 대표작인 Safety Last!(1923) 같은 경우 크라이테리온 콜렉션에서 나오기도 했고 The Freshman (1925)은 American Film Institute recognition이 2000년도에 뽑은 100년 동안 만들어진 코미디 영화들 중 가장 웃긴 영화 100편 중 79위를 차지하기도 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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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로치는 초창기 해럴드 로이드 영화의 감독, 각본을 맡알으며 로이드와 결별한 이후에는 <Our Gangs Series> (우리나라에서는 <악동 클럽>이라는 제목으로 인기를 끌던 시리즈. 세계 최초로 아이들을 전면으로 내세운 코미디 시리즈였다.)를 제작하여 대 성공을 거둔다.
  • [2] 해럴드 로이드는 프리메이슨 회원이기도 했고 자신의 신체 콤플렉스 때문에 자선활동에 유달리 관심을 가진 배우로 유명했다.
  • [3] http://en.m.wikipedia.org/wiki/AFI's_100_Years..._100_Laug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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