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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 타이거스

last modified: 2018-02-12 08:54:46 Contributors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Central League) / 파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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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G image (Unknown)]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Tokyo Yakult Swallows)
Y-Giants.png
[PNG image (Unknown)]
요미우리 자이언츠
(Yomiuri Gi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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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Yokohama DeNA BaySt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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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G image (Unknown)]
주니치 드래곤즈
(Chunichi Drag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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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F image (Unknown)]
한신 타이거스
(Hanshin Tig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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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F image (Unknown)]
히로시마 도요 카프
(Hiroshima Toyo Ca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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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F image (Unkn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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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G image (Unknown)]
팀 엠블럼 마스코트[1]
토라키(トラッキー)[2], 키타(キー太)[3], 럭키(ラッキー)[4]
한신 타이거스
Hanshin Tigers
阪神タイガース
구단 법인명 ㈜한신 타이거스
(株式会社阪神タイガース)
창단 1935년 12월 10일
연고지 효고니시노미야
구단 연고지 변천 효고 현 (1952~2004, 2008~)
효고 현 & 오사카 부 (2005~2007)
구단명 변천 오사카 타이거스 (1935~1939)
한신군 (1940~1946)
오사카 타이거스 (1947~1960)
한신 타이거스 (1961~)
홈 구장 한신 고시엔 구장 (1935~)
교세라 돔 오사카 (고시엔 기간 중)
2군 구장 한신나루오하마 구장 (1995~)
모기업 한신 전기철도
감독 가네모토 도모아키 (金本 知憲)
킷 스폰서 미즈노
일본시리즈 우승
(1회)
1985
센트럴리그 우승
(5회)
1962, 1964, 1985, 2003, 2005
센트럴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1회)
2014
일본야구연맹 리그 우승[5]
(4회)
1937 추계, 1938 추계, 1944, 1947
공식 홈페이지

Contents

1. 개요
2. 구단 명칭
3. 홈구장
4. 유니폼
5. 인기도
6. 구단 역사
7. 징크스?
7.1. 프랜차이즈 스타는 그냥 은퇴하고 해설이나 해!
7.2. 국제대회
8. 이야깃거리
9. 시즌별 성적
9.1. 2005년
9.2. 2008년
9.3. 2009년
9.4. 2010년
9.5. 2011년
9.6. 2012년
9.7. 2013년
9.8. 2014년
9.9. 2015년
10. 그 외
10.1. 켄터키 할아버지와의 악연
11. 대표적인 선수들
11.1. 현역 선수들(2015년 기준)
11.1.1. 투수
11.1.2. 포수
11.1.3. 내야수
11.1.4. 외야수
11.2. OB
11.3. 구단출신 메이저리거
11.4. 영구결번
11.5. 준영구결번

1. 개요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의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일본 한신[6] 효고니시노미야[7]/오사카[8]. 홈 구장은 한신 고시엔 구장. 구장 위치가 효고현 동쪽 끝[9], 그러니까 오사카부와 효고현의 경계쪽에 있어서 사실상 칸사이 지방의 대표구단적인 존재이며, 일본인들조차 오사카(大阪)에 있다고 생각하는게 보통이다. 타이거스 보려다 버팔로스 보겠다. 고시엔 구장이 오사카에 있다는 말을 듣고 화내면 효고 사람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대충 오사카에서 고베 가는 길에 있다고 보면 된다.

팀의 상징은 호랑이. 팀컬러 옐로우.[10] 그리고 홈 유니폼의 버티컬 스트라이프(세로줄무늬). 그리고 오사카 타이거스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응원곡인 롯코오로시(본디 노래 제목은 '한신(오사카) 타이거스의 노래'였지만, 시작부인 '롯코오로시~'로 많이 알려졌다)가 유명하다.[11][12]


가사 원문 한국어 번역
1절 六甲颪(おろし)に 颯爽(さっそう)と
蒼天(そうてん)翔(か)ける日輪(にちりん)の
青春の覇気 美(うるわ)しく
輝く我が名ぞ 阪神タイガース
※(후렴)
롯코의 강풍에도 기세좋게
푸른 하늘 날도다 저 태양의
청춘의 패기는 아름답게도
빛나도다 우리 이름 한신 타이거스
(후렴)
2절 闘志溌剌(とうしはつらつ) 起(た)つや今
熱血既(すで)に 敵を衝(つ)く
獣王の意気 高らかに
無敵の我等ぞ 阪神タイガース
※(후렴)
투지는 발랄하게 솟구친다 지금
열혈은 이미 적을 꿰뚫었다
동물의 제왕 그 의기 드높이도
무적의 우리들이리 한신 타이거스
(후렴)
3절 鉄腕強打 幾千度(いくちた)び
鍛えてここに 甲子園
勝利に燃ゆる 栄冠は
輝く我等ぞ 阪神タイガース
※(후렴)
철완이며 강타며 몇천번이나
단련하여 여기에 고시엔
승리에 불타는 영광의 왕관은
빛나도다 우리들 한신 타이거스
(후렴)
※(후렴구) オウ オウ オウオウ 阪神タイガース フレフレフレフレ
오,오,오오 한-신 타이거-스, Pla-Pla-Pla-Play~
모기업은 이 팀 덕분에 먹고 사는 한신 전기철도.

주니치 드래곤즈,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함께 프로야구 출범 시절부터 계속 이어진 뼈대 깊은 야구단이다. 또한 둘과 달리 지역명칭을 팀명에서 제외하지 않고 있다. 사실은 모기업 네이밍 센스 때문에 그런 거지만

2. 구단 명칭

영문 표기는 HANSHIN Tigers로 해태/기아 타이거즈 때문에 한신 타이거즈로 부르는 사람이 많지만,[13] 구단 정식명은 어디까지나 탁점을 붙이지 않은 阪神タイガー이다. 하지만 일본어 표기 때문에 한국어로도 한신 타이거로 적어야 하는 건 아니다. 물론 한신 타이거스 측이 원한다면 그렇게 적어 주는 게 좋겠지만 공식적으로 그런 요청을 한 게 아니라면 강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의 프로야구 팀의 '스' '즈' 표기도 일본어로 일관성 있게 옮겨지 않는 경우가 많다.

3. 홈구장

홈구장은 효고 현 니시노미야시[14]에 위치한 한신 고시엔 구장(阪神甲子園球場). 오사카가 아니다. 1924년에 지어진 야구장으로 한신 타이거스의 홈구장임과 동시에 고교야구의 성지라고 불리운다[15]. 이 때문에 철저한 개보수를 하고 있어 연식에 비해 매우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 있다. 참고로 구장 내부도 구장 외부 못지 않게 고급스러우며, 내부는 리모델링 공사를 거치며 최근에 지어진 구장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최신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일본고딩들 침 흘리게 만든다

여담으로 홈구장의 이런 특성으로 인해 3월 말과 8월 중순에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를 치르기 위해 지옥의 원정을 다니기도 한다. 3월의 경우는 아직 개막전이라 큰 지장이 없지만 가끔 프로야구 개막전과 일정이 겹쳐서 개막전을 원정경기로 치르는 경우도 있으며, 8월에도 프로야구 시즌은 계속되기 때문에, 한신 타이거스는 가장 더운 8월초 중순의 약 3주일에 가까운 기간동안 원정경기만 다니는 일명 '죽음의 원정(死のロード)'을 치뤘었으나, 오사카 왕따 오릭스 버팔로즈에게 쿄세라돔을 빌려서 홈경기를 하기 시작한 때부터 죽음의 원정까지는 안 한다.[16] 그리고 성적 저하가 죽음의 원정 탓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농담으로 도쿄에 있는 메이지진구 구장도 한신 홈구장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Here is another Koshien Stadium!, [17] 팬수가 많아서 보다는 야쿠르트 홈구장에 가서 야쿠르트는 안 까고 요미우리를 까기 때문(…). 한신-야쿠르트 전에서는 한신 팬들이 야쿠르트 공식 응원가인 도쿄온도(東京音頭)에서 야쿠르트 팬들이 외치는 '죽어라 요미우리'[18] 부분을 더 크게 따라 부르는 경우가 종종 벌어지기도 한다.

한신-오릭스 전에서의 오사카 교세라돔도 'Here is another Koshien Stadium'을 외칠만큼 한신팬수가 압도적이다.그나마 홈구단인 오릭스 굿즈 매장이 먼저 들어왔다는 게 위안거리

5. 인기도


간사이권에서 한신의 인기를 보여주는 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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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흔한 간사이의 요미우리 취급.jpg[20]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함께 일본프로야구 구단 중 가장 많은 팬 수를 보유한 팀 중 하나. 미디어의 발달로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TV에서 볼 수 있는 팀이 요미우리 뿐이라 요미우리 팬이 됐던 사람들이 다른 팀으로 옮겨가서 요미우리 팬의 숫자가 줄어든 영향도 있고. 그리고 간사이 지역의 팀은 1980년대까지 4개였으나 현재는 2개로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인기가 높았던 한신에 인기가 집중되게 된 탓도 있다. 인기는 엄청 좋은데 성적이 시원치 않다는 점은 비밀이다. 인기는 성적순이 아니라는걸 증명해주는 구단.

인기가 많은 만큼 극성팬이 많다. 팀 선수가 특정 경기에서 활약하면 거의 찬양하다시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며 애정을 쏟아붓는 반면에 못하면 간판 선수고 뭐고 상관 없이 전범 취급을 하며 가루가 되도록 까는 것이 한신 팬들의 모토. 그 임팩트가 크면 클수록 더더욱 까인다. 그래서 2014년 일본시리즈 5차전 시합이 끝난 뒤 팀 내 인기 선수 중 하나인 니시오카 츠요시가 신명나게 까이고 또 까였다. 그 전 날엔 이 분이(...) [21] 그리고 이 날 시합은 소프트뱅크가 일본시리즈 우승을 확신하던 시합이었던 만큼 한신팬들의 분노가 절정으로 치솟아 있던 상태였던지라 후쿠오카 야후 옥션 돔 외야 쪽엔 분노로 가득찬 한신 팬들이 집어던진 것으로 추정 되는 아니 확신 되는 무수의 한신 응원도구들이 쫙 깔려 있기도 했다.

한국의 롯데 자이언츠와 자주 비교 대상이 되는 센트럴 리그 대표.[22] 훌리건급의 열광적인 팬들이라 쓰고 전투종족이라 읽는다을 가진 구단으로 유명하다. 거기다가 해야갤에서도 꼴신으로 불린다. 거기다 지역밀착형이라 칸사이 지방 사람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는 구단[23]. 이 반작용으로 성적만 안 좋으면 언론에서 가루도 안 남을 정도로 까이고 또 까이며, 뭇 칸사이인들의 술안주가 된다. 오릭스는 잘 하든 못 하든 관심이 없다. 정말 한국의 롯데 자이언츠 그 자체(…). 오죽하면 칸사이 지방을 빗대서 한신국(阪神国)이라는 소리까지 나온다. 오오 아시아의 보스턴[24]

어느 정도냐 하면 팀 성적이 바닥을 긁던 1990년대 말에도 "관중석에 빈 자리가 좀 보이더라" 레벨이었고[25] 팀 성적이 좋아진 2000년대에는 원정 서포터즈석을 제외하면 사실상 무조건 만원이었다. 하지만 팀성적이 바닥을 헤메던 1980년대 중후반~1990년대 중후반에는 관중 동원력도 떨어져 그 넓은 고시엔 구장의 절반가량을 공기로 채우고 경기를 했다고 한다. 그래도 1992년처럼 잠깐 반등한다 싶으면 금새 다시 꽉 찼다. 츤데레 그 당시를 기억하는 올드팬들로부터는 "그때는 아무 때나 가도 표가 있었는데 요새는 팀이 성적이 좋아지니까 표 구하기가 힘들어졌다."면서 배부른 푸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창원 마산 종합운동장 야구장처럼 외야가 널럴해도 삼겹살못 구워먹는다. 그리고 구단 OB인 마유미가 감독을 맡은 2011년 시즌 말에 다시 고시엔을 공기로 채우고 말았다. 관중 동원 숫자가 실제 입장수로 발표되기 시작한 2005년 이후 연이어서 홈경기 최소 관중 동원기록을 경신하고 있으며 그 해부터 이어져온 연속 300만 관중 동원에도 실패했다[26]. 센트럴 리그 5위(뒤에서 2위)를 기록한 2012년 시즌도 관중 동원 기록에서 요미우리에 밀려버렸다.

한신 타이거스 팬 자격시험돈을 받고 보기도 하며, 예상 문제집을 만들어서 팔기까지 한다. NPB 구단 중 유일하게 특정 팀만을 위한 게임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름하여 '한신 타이거스 DS'라고…. 흠좀무.

때문에 우승 한 번 했다 치면 칸사이가 난리가 난다. 2003년에 센트럴리그 우승을 했을 당시에는 오버좀 섞어서 전 도시가 세로줄무늬(한신 유니폼)로 칠해졌었으며, 우승 기념으로 출시된 세로줄무늬에 한신 엠블렘이 박혀있는 한신 우승 기념 게임큐브 한정판#[27]이 순식간에 매진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게임큐브의 제작사인 닌텐도의 본사가 칸사이 지방인 교토에 위치하고 있어서 만들어진 한정판. 사실 이 한정판은 당시 닌텐도 사장이었던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이 올해 한신 우승하면 게임큐브 한정판 제작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했던 것에 대한 실제 제품에 해당된다[28].

6. 구단 역사

구단 창단은 무려 1935년. 그러니까 일본야구 초기 창단 구단 중 하나이다. 창단 당시의 이름은 "오사카 타이거스". 1940년에 당시 적대국이었던 미국과 영국의 언어인 영어를 쓰지 말자는 운동이 일어나 이름을 '한신군'(阪神軍)으로 바꿨으나 태평양 전쟁 패전 후인 1946년에 이름을 '오사카 타이거스'로 환원했다가 1961년에 연고지를 오사카에서 니시노미야로 옮기면서 이름을 지금의 한신 타이거스로 바꿨다.

그러나 열광적인 팬에 비해 솔직히 과거 성적은 초라할 정도. 그래도 1970년대까지는 주니치와 더불어 요미우리의 독주에 딴죽을 거는 라이벌이었지만, 우승 경력은 믿을 수 없을만큼 적은데, 만년 2위 주니치 드래곤즈나 답 없기로 유명한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조차 두 번 해본 일본시리즈 제패를 이 유명한 구단이 딱 한 번[29]한 것은 지금도 일본의 미스테리. 카케후 마사유키-랜디 바스-오카다 아키노부 클린업을 앞세운 1985년이 한신의 유일한 일본시리즈 우승이다.[30]
그나마 주니치는 콩라인이더라도 강팀의 반열에 들어가니까 쪽팔릴 게 없는데, 센트럴 리그 3약으로 분류되는 야쿠르트(일본시리즈 우승 5회), 히로시마(일본시리즈 우승 3회), 요코하마(일본시리즈 우승 2회)보다도 일본시리즈 우승 횟수가 적다. 이 우승으로 충격받은 일본인 중 하나인 소설가 카하시 겐이치로는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優雅で感傷的な日本野球)>라는 정신줄 놓아버린 듯한 소설을 써서 내놓기도 했다.

더욱 충격적인 건 1985년 폭풍간지로 리그우승-시리즈 우승을 따놓고 그 다음 리그우승은 무려 18년이 지나서 호시노 감독 2년째인 2003년이다(…). 2003년 우승 때는 총리까지 떠벌릴 정도로 나라에 난리가 났었다. 더 웃기는 건 고이즈미 총리는 카나가와현 출신이다.

리그 우승도 1950년 양리그제로 나뉜 때부터 따지면 5회뿐이다. 이는 2리그 분할 이후로 따져서 센트럴리그 6개 구단중 5위. 아래로는 현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뿐이다.[31] 시민들이 성금 모아서 간신히 연명하던 히로시마 카프보다도 리그 우승 횟수가 적다.[32]. 거기다 2003년까지는 통산 승률이 5할 아래로 밑돌 정도였었다.

7. 징크스?

7.1. 프랜차이즈 스타는 그냥 은퇴하고 해설이나 해!

대대로 구단의 선수출신들이 감독을 맡으면 팀이 막장화되는 경향이 있어서[33] 구단에서 활약했던 스타선수들이 은퇴하고 감독을 맡는 것을 팬들이 달가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2009년에 부임한 마유미 아키노부 감독도 야구의 급격한 능화로 2011년 시즌을 끝으로 경질돼버리고 말았고 그 뒤를 이은 와다 유타카는 아예 투타 모두 폭망. 예능야구도 못하는 지경이다.

1960년대의 두번의 리그 우승은 요미우리 출신의 후지모토 사다요시 감독 밑에서 거두었다. 1985년의 유일한 일본시리즈 우승은 팀 레전드인 요시다 요시오 감독 밑에서 일구어냈지만 불과 2년만에 최하위로 전락하면서 막장화. 그 후 무라야마 미노루-나카무라 카츠히로[34]-지타 타이라 그리고 돌고 돌아 다시 감독을 맡은 요시다 요시오 등등 선수시절에는 팀을 대표하던 스타들이 줄줄이 감독을 맡았지만 돌아온 것은 길고 긴 암흑기. 1987년부터 2002년까지 16년간 6-6-5-6-6-2-4-4-6-6-5-6-6-6-6-4(...). 중간에 2가 하나 보이기는 하지만 그 주변 성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뭔가가 잘못돼서 1년 반짝한 거다.[35] 무엇보다도 최하위인 6만 10번을 찍었다.

그 후 야쿠르트를 세리그의 신흥강호로 만든 데이터야구의 대가이나 난카이 출신노무라 카츠야 감독을 기용하면서 3년 간의 리빌딩을 거쳐[36], 주니치 드래곤즈 출신목메달 호시노 센이치를 데려오고 나서 2003년을 기점으로 대대적인 명예회복에 나서기 시작했다. 2003년 세리그 우승 후 2010 시즌까지 A클래스(3위권)를 유지하는 등 회복세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밑에 2008, 2013년 시즌 요약을 보면 알겠지만 상위권에 있었다고 해서 막장기가 안 보였던 건 아니다.

하지만 그 회복세도 거듭되는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의 삽질로 빛이 바래던 중에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오카다 아키노부에 이어 또다시 구단 OB인 마유미 아키노부가 2009년부터 감독을 맡으면서 다시 안습상황이 되어 버렸다.[37] 설상가상으로 2007년부터 2008년까지 활약했지만 결국 마유미 감독에 의해 방출되었던 외국인 투수 라이언 보겔송메이저리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가서 괴물급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도 지톸ㅋㅋㅋㅋ를 대신한 5선발로.[38]

이 때문에 킨테츠 버팔로즈에서 선수생활을 했고 감독이 되고 나서 킨테츠와 닛폰햄의 두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끈 명장 시다 마사타카 감독을 선임하자는 주장이 팬들 사이에서 나왔고 보도매체에서도 그렇게 전망[39]했으나 웬걸. 오카다-마유미에 이어 구단 OB인 와다칸 와다 유타카 타격코치를 감독으로 선임하며 OB 감독으로 3연타를 날렸다. 과연 와다 감독이 다시 한신을 일으켜 세워서 OB 감독 막장화 징크스를 털어낼 것인지 아니면 198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까지 계속 된 암흑시대 시즌 2를 찍을지 귀추가 주목되었으나... 2012년 와다 감독은 우려했던 대로 센트럴리그 5위를 찍으며 한신의 흑역사를 찍고 있다. 특히 2012년 한신 타선은 아예 멸종된 상태라, 10게임 연속 2득점 이하라는 굴욕적인 기록까지 선보였다. 한점 타이거스 바다건너 이름 같은 팀도 고생 좀 했다 특히 타코 출신이라는 와다가 지휘봉을 잡은 뒤 마유미 시대보다 타선이 더 폭망해, 결국 시즌 후반에 접어들며 팀이 리빌딩에 들어간 상태. 이제부터 우리는 위대한 도전에 나섭니다 그리고 2013년엔 그나마 정규시즌 2위로 올라섰으나, 센트럴 콩라인 주니치도 아닌 오랫동안 얼굴을 못 내민 승률 5할도 안 되는 3위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게 발리고 광탈. 2014년에는 2013년의 수모를 되갚고 숙적 요미우리를 4연승으로 일축하면서 일본시리즈에 진출하여 지긋지긋하던 플레이오프 징크스를 털어내나 했더니 일본시리즈에서 우세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1차전 승리 뒤에 내리 4연패로 또다시 일본시리즈 우승에 실패했다. 게다가 X맨 니시오카 츠요시의 3피트라인 룰 위반에 따른 수비방해라는 사상 초유의 막장플레이로 시리즈의 막을 내리면서 모처럼 분전했던 2014년도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며 마무리했다.

7.2. 국제대회

여담으로 올림픽, WBC 등 국제대회에 선수가 차출되어 나가면 꼭 한둘씩 망가져서 돌아오는 안 좋은 징크스가 있다. 특히 아라이 타카히로. 하나둘 셋이야!

8. 이야깃거리

NPB 역사상 최단시간시합과 최장시간시합 기록을 모두 가지고 있는 구단이다.
최단시간은 1946년 7월 26일의 55분(쇼치쿠 로빈스 전).
최장시간은 1992년 9월 11일의 6시간 26분(야쿠르트 스왈로스 전). 참고로 한국프로야구기록은 최단시간 1시간 33분, 최장시간 5시간 58분.

예전에 비해 FA영입 등에 돈을 많이 풀고 있는데 용병, 일본 내 FA 중 주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서 대어를 낚아대는 바람에 히로시마 구단 팬들과 미묘하게 사이가 안좋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현 4번타자이자 재일교포인 카네모토 토모아키라든가 아라이 타카히로라든가, 앤디 시츠 등 이상하게 히로시마 제들을 데려오면 대박 성공. 때문에 농담으로 히로시마는 한신의 팜(2군)이냐 라는 소리까지 나오는 실정(...). 어쨌든 이런 투자 확대등으로 현재는 과거의 강호의 이미지 회복에 성공했다. 근데 우승은?(...).

그 예로 2003 시즌과 2005 시즌에 세리그 우승으로 일본시리즈에 진출했지만 2003 시즌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에게, 2005 시즌에는 당시 이승엽이 소속된 치바 롯데 마린즈에게 4전 전패의 치욕을 당하고 또다시 준우승에 머물렀다. 게다가 2005년 일본시리즈에서는 4게임동안 총 득점 4대33으로 처절하게 발렸다. [40]

호시노가 건강문제로 사임한 뒤 오랫동안 2군감독을 맡으면서 지도자 수업을 받은 구단출신 오카다 아키노부가 감독자리에 오르게 된다. 오카다가 감독을 맡은 2005년에 다시 리그우승을 하지만 대부분의 평가는 노무라-호시노가 남겨준 유산 덕분. 다만 센트럴 리그는 우승했지만 그 해 일본시리즈는 그야말로 쫄딱 망했다. 2006년, 2007년에도 우승전선에는 뛰어들었지만 뒷심 부족으로 주니치, 요미우리에게 우승을 넘겨주고 말았다.

9. 시즌별 성적

9.1. 2005년

일본시리즈에서 아주 큰 흑역사를 남기고 말았다. 자세한 사항은 33-4 항목 참고.

9.2. 2008년


전설적인 설레발로 남은 《Vやねん!タイガース 08激闘セ・リーグ優勝目前号》(우승이여! 타이거스 08격전 센트럴리그 우승 눈앞에).

13게임차로 1위를 신나게 달리고 있다가, 기록적인 DTD를 보이면서 막판 10연승을 달려버린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역전 우승을 허용하는 캐안습 굴욕을 보였다(...). 참고로 이 기록은 센트럴리그 역대 최다승차 역전 우승이다. 참고로 퍼시픽리그에서는 1963년 니시테츠 라이온즈(現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난카이 호크스(現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14.5경기차를 극복하고 역전 우승을 따낸 적이 있다. 절치부심하고 나간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도 3위 주니치에 밀려 가을야구와 작별. 아...

그리고 이 역사에 남을 만한 대역전극의 희생양이 된 덕분에 서포트 해준 거에 비하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어느정도 괜찮은 성적을 내던 오카다 아키노부는 감독직을 내놓아야 했다.

9.3. 2009년

팀의 프랜차이즈 선수 출신인 마유미 아키노부가 새 감독으로 취임. 프랜차이즈 선수 출신이 감독을 맡으면 하나같이 망한다는 기분 나쁜 징크스를 그대로 반영하듯 2009 시즌에서는 시즌 초반 5위로 추락하며 망했어요가 되려다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연패에 힘입어 시즌 중반 3위까지 치고 올라갔으나 시즌 막판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와의 2연전에서 내리 패하며 결국 최종성적 67승73패4무로 4위에 그쳤다.

9.4. 2010년

2010년 시즌은 전 해의 불안감을 날리듯 아카호시 노리히로의 은퇴 후 영입한 외국인선수 맷 머튼과 메이저리그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온 죠지마 켄지가 대 활약하였다. 맷 머튼은 스즈키 이치로의 210안타 기록을 갱신하는 등 214안타를 때려냈고, 죠지마 역시 28홈런을 치며 타선에 힘을 불어넣는 등 전년도에 비해 타선이 매우 좋아져 줄곧 선두권을 유지하였으며 한때는 1위까지 올라갔으나, 시즌 막판 계투진 붕괴로 3위 팀에게 매직넘버가 켜지는 진기록을 세웠다가 결국 주니치 드래곤즈에게 우승을 넘겨주고 말았다.

그리고 2010년 센트럴리그 클라이막스 시리즈 1회전에선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2패로 광속탈락. 1차전에선 요미우리의 선발투수 토노에게 꽁꽁 묶였고 2차전은 경기 초반부터 점수를 차근차근 쌓아나갔으나 후지카와 큐지가 불을 지르며 결국 시망.-_- 2003년 일본시리즈 6차전 이후로 포스트 시즌 경기에서 1승 12패를 기록했다.

반면 한신 2군은 프랜차이즈 스타인 히라타 카츠오[41] 2군 감독의 지휘 하에 4년만의 웨스턴리그 우승을 했으나, 한신 팬들의 연임요청에도 불구하고 캐막장 프런트에 의해 해임당했다.

9.5. 2011년

한마디로 표현하면 타어강의 일본판 선행버전.

2010년의 반등세에 자신을 얻었는지 구단 차원에서 1985 AGAIN을 외치면서 돈지랄에 나서서 연봉총액이 그동안 매년 돈지랄이라고 까던 라이벌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능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결과 2011년 시즌 시작 전에 전문가들은 만장일치로 한신의 우승을 예상했다.

그런데 막상 시즌이 시작되자 시즌 중반이 지나도록 우승은 커녕 플옵 커트라인인 3~4위를 왔다갔다 했고, 기어이 2011년 6월 한신 전기철도 주주총회에서 마유미 감독을 성토하는 말까지 나왔다. 급기야 시즌 막판에 포스트시즌 커트라인과 점점 멀어져가면서 관중석에서 응원 메가폰이 날아 들어오기 시작했고, 심지어 고시엔 구장의 유료 입장관중이 2만명 대로 추락하여 자리가 남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마유미 감독은 10월 16일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 실패에 따른 책임을 지고 사임하게 된다. 결말은 한국의 타이거즈와 다르다.

9.6. 2012년

마유미 아키노부 감독이 짤리고 타격코치였던 와다 유타카 코치가 내부승격을 통해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구단 프랜차이즈 출신이 감독이 되면 망한다는 징크스 때문에 한신팬들은 우려했으나,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전해 부상때문에 38게임 출장에 그쳤던 조지마 겐지는 재활 끝에 복귀는 했으나, 포수가 아닌 일시적으로 1루수로 출장하게 되었고, 맷 머튼도 부상 때문에 초반 결장하는 등 어째 영 좋지 못한 기운이 감돌았는데...

한마디로 망했어요.

카네모토 토모아키는 초반 주전으로 출장하다 대타로 밀려났고 아라이 타카히로 역시 부상에 시달렸으며 조지마 겐지는 24게임만 뛰고 또다시 부상을 당했다. 중심타자 맷 머튼은 에이스 노우미 아츠시와 트러블을 일으키는 등 팀은 개박살이 났다. 게다가 조지마 겐지는 복귀를 시도하다 2군 경기 도중 또 부상을 당해 그대로 은퇴를 선언했고, 같은 달 카네모토 토모아키 역시 은퇴를 선언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55승 14무 75패로 히로시마에도 뒤진 5위를 마크했다.

결국 시즌 종료 후 미네소타 트윈스에서 자진 퇴단한 니시오카 츠요시와 일본 복귀를 선언한 후쿠도메 고스케에게 접촉, 영입에 성공하는 등 폭풍 돈질을 시전했다. 포수 공백 역시 오릭스에서 히다카 타케시를 데려와 메웠다.

하지만 아예 소득이 없던 것도 아니어서, 유망주 수준이었던 아라이 타카히로의 동생 아라이 료타가 시즌 초반 이후 4번 타순에 들어서며 커리어 처음으로 두자릿수 홈런을 때리는 등 분전했다. 료타 역시 30줄에 접어드는 적지 않은 나이이지만

9.7. 2013년

후쿠도메 고스케는 타율이 1할대에 머물다 부상으로 라인업에서 빠졌고 레이그 브라젤의 공백을 메워줄 것으로 생각된 외국인 브룩스 콘래드는 그 흑역사가 많은 한신 외국인 타자 중에서도 유일하게 0타점을 기록하는 맹활약(?)을 보이다 방출되었으나, 니시오카가 1번에서 활약해주고 루키 후지나미 신타로와 이번 시즌에 첫 선발투수로 나서는 에노키다 다이키가 선발진에 안착하며 시즌 초반까지는 순항하고 있다. 요미우리의 독주속에 한신이 추격하는 게 세리그 초반의 판도. 특히 요미우리를 상대로 성적이 좋은데, 첫 3연전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요미우리에게 3경기 연속 무득점의 수모를 안겼으며[42] 5월 8일에는 도쿄돔에서 요미우리를 상대로 6년만에 스윕에 성공했다. 잠깐 요미우리를 제치고 1위가 된 적도 있었지만, 후반기들어 주춤하며 8월 시점에서 7게임차로 벌어져 1위는 사실상 멀어졌다. 그래도 3위권과 10게임차를 벌리며 순항하다 9월 이후에 주춤해서 3위와 4게임차로 좁혀졌지만 어쨌든 3년만에 2위로 A클래스 복귀.

그러나 홈에서 벌어진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승률 5할도 안되는 3위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게 처절하게 발리며 2연패로 광탈. 2013년에도 또(!) 플레이오프 광탈 징크스를 끊지 못했다. 심지어 돈 별로 없는 시민구단에게![43] 한신 팬들이 할 수 있었던 거라고는 히야마 신지로가 현역 마지막 타석에서 친 대타홈런으로 정신승리하는 것 뿐이었다.. 이로써 오카다 감독 이래로 포스트시즌 성적은 통산 1승 12패. 클라이맥스 시리즈 탈락만 네번. 포스트시즌만 하면 유불리를 막론하고 실패를 거듭하는 퍼시픽리그의 이 팀과 어깨를 견줄 정도. 아니 그 팀은 하다 못해 퍼스트 스테이지 통과는 몇번 해봤다. 그리고 2011년에는 일본시리즈 우승까지 해봤다. 이 팀은 퍼스트 스테이지 조차도 통과 못하니 더 안습.

오프시즌에는 주니치의 선발 나카타 켄이치, 니혼햄의 포수 츠루오카 신야등 여러 FA를 노렸으나,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다. 오승환을 데려오며 마무리 자리를 채웠지만, 외국인 선수 엔트리 제한 때문에 준수한 선발 스탠드리지를 떠나보내야 했다.[44] 베테랑 선발 쿠보도 FA권을 행사해 요코하마로 떠나며, 고정 선발은 3명(노미, 메신저, 후지나미) 밖에 남지 않아 선발진을 채우는 게 큰 과제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쿠보의 보상 선수를 '요코하마의 전력 약화'를 노린다며 베테랑 포수 츠루오카 카즈나리를 데려오면서 선발진 공백은 유지된 채 주전 포수 경쟁만 더욱 큰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되었다...

여담으로 블라디미르 발렌틴의 홈런 기록을 위한 여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일본 기록 타이인 55호, 일본 기록을 경신하는 56호, 사상 최다인 60호포 모두 한신전에서 뽑아냈다.

9.9. 2015년

개막 3연전 중 두 경기는 끝내기로, 한 경기는 타선 폭발으로 다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오승환은 또 갈아넣어져 우려를 자아내는 중...

그러나 이후 4월 첫 주 도쿄 원정 6연전을 2승 4패로 좋지 못하게 마무리했고, 같은 기간 한 주 6경기를 모조리 쓸어담은 주니치 드래곤즈에 선두를 내주고 말았다. 오승환은 팀이 승리를 거둔 2경기 모두에서 세이브를 기록했고, 실점하지 않음으로써 방어율을 1.80까지 낮췄다.

10. 그 외

  • 어지간한 야덕이 아니라면 오사카 및 칸사이 지역에 가서 절대로 한신 이야기를 하지 말 것. 괜히 얘기 꺼냈다가 밤새도록 한신 얘기를 지겨울 정도로 듣게 될 수도 있다(...) 더군다나 "외국인"이 한신 팬이라는 걸 알면 아마 크게 놀라면서 밤새도록 같이 술마시며 롯코오로시를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반면 일본 오사카나 칸사이로 무전여행 중 돈이 없을 경우 한신 얘기 잘 꺼내면 술이나 음식같은 거 얻어먹을 수 있을 듯(...) 물론 야구빠에다 일본어를 잘해야 통하는 얘기지만. 하지만 2005년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될까? 죽을 것이다

  • 한신은 일본 야구 구단 중 가장 인기가 좋고 매니아가 많은 팀으로, 반 요미우리의 선봉 역할을 맡고 있다. 그 이유는 1945년에 제2차 세계대전으로 프로야구가 중단될 때까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우승을 3차례나 저지했기 때문.(1937,1938,1944년) 참고로 일본프로야구가 출범된 1936년부터 1944년까지 우승팀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한신 타이거스 뿐이며, 이로 인해 자연스레 한신 타이거스가 반 요미우리의 선봉 역할을 맡게 되었다. 2리그제가 시행된 1950년 이전에도 우승팀은 총 3팀뿐(요미우리, 한신, 킨키 그레이트링 (現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뿐이며, 킨키 그레이트링의 경우 당시 연고지가 오사카였다.

  • 그러다보니 여러 매체 등에서는 항상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라이벌 관계다. 관서VS관동의 대립구도? 한국으로 치자면 해태 타이거즈삼성 라이온즈과의 관계, 국가 내 지역구도를 떠나서는 미국으로 치자면 보스턴 레드삭스뉴욕 양키스의 관계에 비유할 수 있다. 프로야구 최초의 구단이 거인군(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전신)이었고, 이후 오사카 타이거스(한신 타이거스의 전신)가 생겼는데, 알다시피 요미우리는 일본 야구계를 지배하고 있고 야구팬은 요미우리 팬과 안티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입지가 굳다.[45]

  • 이게 어느 정도냐면, 어떤 한국 야덕이 일본에 가서 홀로 한신 원정석에서 응원을 하다가 우연히 옆에 앉은 한신빠 칸사이 아재(...)와 이야기를 트게 되었다고 한다. 한참 경기가 진행되는데 한신빠 아재가 "너는 외국인인데 한신 팬인게 신기한걸? 왜 한신 팬이 됐냐?" 고 물었단다. 이에 기지를 발휘해서 "요미우리가 싫어서요" 라고 대답하자, 한신빠 아재가 그 순간 낯빛이 변하더니만 그 자리에서 맥주파는 직원을 불러세워서 말없이 맥주를 쏘더라는 훈훈한 이야기가 있다(...). 실화다.

  • 위의 옆 사람과 대화하다 생긴 에피소드는 사실 한신이라 가능한 이야기인데, 일본에서 야구를 보다보면 야구장에 혼자오는 사람을 꽤 많이 볼 수 있지만 혼자 온 관중끼리 스스럼없이 대화를 틀 수 있는 구단은 아무래도 한신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 타 구단 팬이라고 다 그런건 아니지만, 보통 초면 및 타인에게 조심스러운 일본인 특성상 같은 구단을 응원한다고 해도 옆사람에게 쉽게 말 걸면서 대화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케이스이다. 하지만 한신팬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한신팬심을 공유하고자 하고 싶어하는 성향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 일본의 TV등에서 여러 사례로 증명되어 있다. 참고로 어떤 TV 프로그램에서 실제로 한 실험으로, 오사카 지역의 술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한신 얘기를 하고 있으면, 옆에 앉아있던 생판 처음 보는 다른 사람이 매우 높은 확률로 대화에 끼어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따라서 한신 관중석에 혼자 앉아 있다고 해도 분위기가 좋아지면 초면인 사람과 대회할 기회가 타 구단에 비해 충분히 있을 수 있으니 참고하자.

  • 일본 야구계의 양대 기인이라고 할 수 있는 신죠 츠요시이가와 케이가 선수생활을 시작했던 구단이기도 하다. 그런데 후자는...

  • 포켓몬스터야빠 캐릭터 나진이 좋아하는 에레브스는 바로 이 한신 타이거스를 모델로 한 야구팀이다. 이미지 컬러가 노랑이고 세로 줄무늬[46]가 특징이며, 성적이 안습한 점이 유사하다. 특히 포켓몬스터가 제작된 90년대 말은...


  • 일본 만화의 신이라 불렸던 데즈카 오사무도 한신의 팬이었다고 한다. 1950년의 연하장에는 "요즘 한신이 부진해서 야구만화 그릴 생각이 안 든다"(!)라고 적었을 정도였다. 연하장에 꼬박꼬박 한신 유니폼을 입은 호랑이를 그려서 보낸 건 기본. 저렇게 푸념한 1950년 연하장에다 데즈카 선생이 그린 호랑이 마스코트가 바로 위의 그림이다.

  • 유명 성우이자 가수 미즈키 나나도 아버지의 주입식 교육[47] 덕분에 한신 타이거스의 골수팬. 특히나 노 아키히로 선수의 팬이라고 하며 콘서트에서 직접 사인을 전달받고 기뻐서 눈물을 흘린 에피소드도 있다.

  •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 시리즈의 제작사인 파워프로 프로덕션도 한신과 밀접한 관서지방에 있어서인지 제작진 대부분이 한신빠이다. 그래서인지 시리즈 대대로 한신 타이거즈의 선수들은 실제의 활약상보다 능력이 좋게 나오는 편. 그러다보니 페넌트레이스 모드에서도 거의 만년 상위권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하지만 프로야구 스피리츠 2013에서 한신 타자들의 능력치 책정에는 자비가 없었다.

  • 유독 한국 선수를 영입하겠다는 의사를 언론에 많이 흘리지만 실제로 영입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가 드디어 오승환을 영입했다.

    • 이승엽 : 일본 진출 시 영입의사를 표시했고, 치바 롯데 마린즈와의 계약이 끝날 때 쯤 또한번 미끼를 던졌으나 결국 영입하지 않았다. 오히려 2005 재팬시리즈에서 이승엽에게 호되게 얻어맞으며 스윕을 당했고, 요미우리 자이언츠 4번타자로서 센트럴리그에 합류한 이승엽의 충실한 샌드백 역할을 했다. [48]
    • 김동주 : 2008년, 첫 FA를 맞이한 김동주를 영입하고 싶다는 보도를 흘렸으나 결국 김동주는 두산과 계약했다.
    • 이택근 : 일본 언론에서 베이징 올림픽 이후 한신이 이택근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보도했지만 나중에 사실무근이라는 정정보도를 냈다. 이젠 친절하게 정정보도까지.
    • 김태균 : 소문 뿐이었다. 결국 지바 롯데 마린스로 갔다.
    • 이범호 : 소문 뿐이었다. 결국 후쿠오카 소프트뱅크로 갔다.
    • 임창용 : 소문 뿐이었다. 결국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로 갔다. 이후 야쿠르트와의 계약이 끝날 때 한신이 엄청난 거액을 준비중이라는 이야기가 기정사실처럼 퍼졌으나 임창용 본인이 미국무대 도전을 원하여 시카고 컵스로 떠났다. 어차피 여기서 우승 못하나 거기서 우승 못하나
    • 이대호 : 소문 뿐이었다. 결국 오릭스 버팔로스로 갔다. 그리고 2013년 이대호가 일본야구에 적응하고 펄펄 날아오르자 한신이 2013년 이후 오릭스에서 FA가 되는 이대호를 관심깊게 지켜보고 있다는 기사가 떴다. # 또다시 관심 줄듯 결국 2013년 12월 5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계약에 합의했다.
    • 김광현 : 2009년자 보도로 2015년 김광현의 FA를 대비하여 한신이 무려 6년동안의 장기 영입 프로젝트를 준비중이라는 초특급 설레발기사가 나왔다.
    • 오승환 : 2013년에 FA가 되는 오승환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는 소식에, 일본 언론쪽에서 한신이 시즌후 구단동의 해외FA가 가능한 오승환에 대해 영입조사를 착수했다는 설레발 기사가 떴다. #, 위의 경우와는 달리 신빙성이 뒷받침 되는 이유는 2012시즌부로 한신을 떠난 마무리투수 후지카와 큐지와 오승환의 스타일이 상당히 닮았기 때문이다.[49] 오승환의 경우는 위의 경우와 또 다른 것이 시즌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계속해서 언론을 통해 오승환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으며 오승환을 보기 위해 단장인 나카무라 카츠히로가 직접 내한했고, 이제는 오승환 영입을 위해 7억엔이라는 실질적인 금액과 대우까지 제시된 상태이다. 결국 2013년 11월 22일, 2년 최대 9억엔 조건으로 계약에 성공.#
    • 손승락 : 오승환이 팀에서 떠날때를 대비해서 오승환의 대체선수로 손승락을 눈여겨보고있다는 닛칸스포츠의 설레발 기사가 나왔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03&article_id=0006370872
    • 양현종 : 손승락과 비슷한 맥락으로 오승환이 한신을 떠날 걸 염두해두고 앞서 거론 된 김광현과 더불어 양현종에게 눈독 들이고 있다며 일본 언론은 늘 그렇듯 설레발 언플질을 했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5&aid=0000238692

  • 이러다보니 국내 야구팬들에게는 양치기 소년 이미지가 굳어졌으나 오승환 영입으로 이제 한국에서도 관심받는 팀이 되었다.

10.1. 켄터키 할아버지와의 악연

1985년 센트럴리그 우승 후의 에피소드 때문에 30년 동안 우승을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 커넬 샌더스의 저주 항목을 참조.

11. 대표적인 선수들

11.1. 현역 선수들(2015년 기준)

11.1.1. 투수

  • 13. 에노키다 다이키
  • 14. 노우미 아츠시
  • 16. 안도 유야 : 얼굴이 이 사람과 닮았다는 소릴 많이 듣는다. 그래서인지 오승환과 친하다
  • 17. 이와사다 유타
  • 19. 후지나미 신타로
  • 21. 이와타 미노루 : 2015 시즌 한신 2선발투수. 참고로 등번호의 유래는 자신이 동경하는 팀의 레전드 무라야마 미노루보다 10배 더 잘하자는 의미에서 무라야마 미노루의 등번호 11 + 10을 더한 21을 등번호로 정했다고 한다. 나름대로 의미가 깊은 등번호인데도 한신 구단은 지들 멋대로 이와타 본인과는 상의도 없이 21번 등번호를 오승환에게 넙죽 주려고 했다.(...) 오승환 본인은 이와타에게 실례를 범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거절 했다고.
  • 22. 오승환 [50]
  • 26. 사이우치 히로아키
  • 28. 후쿠하라 시노부
  • 34. 다카미야 카즈야
  • 41. 마리오 산티아고
  • 48. 카네다 카즈유키
  • 54. 랜디 메신저
  • 56. 마츠다 료마 : 루키 선수. 일본 현지에서까지 포스트 오승환이라고 불리고 있을 정도로 피칭 스타일이 오승환과 제법 흡사하다. 주 무기는 속구로 볼 끝이 좋다. 다만 아직 신인 투수라 위기 상황에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는 등, 멘탈이 약한 부분이 없잖아 있다.
  • 59. 이와모토 아키라
  • 64. 쿠와하라 켄타로
  • 66. 후타가미 카즈히토
  • 67. 이와자키 스구루

11.1.2. 포수

  • 40. 츠루오카 카즈나리[51]
  • 44. 우메노 류타로[52]
  • 45. 시미즈 타카시
  • 49. 이마나리 료타[53]
  • 50. 후지이 아키히토

11.1.3. 내야수

  • 1. 토리타니 다카시
  • 2. 호죠 후미야
  • 3. 세키모토 켄타로
  • 4. 우에모토 히로키 : 준수한 외모로 일본 내 얼빠들이 많은 선수 중 하나. 허나 사마귀를 연상케하는 특유의 타격 자세로 국내 넷상에선 영원히 고통 받고 있다
  • 5. 마우로 고메즈
  • 7. 니시오카 츠요시
  • 32. 아라이 료타
  • 35. 사카 카즈히코 : 참고로 등장곡은 LMFAO의 Shots ft. Lil Jon. 샄샄사카사카사카샄 x 2 에블바디
  • 58. 아라키 후미야

11.1.4. 외야수

  • 00. 시바타 코헤이
  • 0. 야마토(본명 마에다 야마토) : 하찮은 공격력과는 어울리지 않게 등장곡과 응원가는 우주전함 야마토 주제가라고 한신 중계를 보는 한국팬들로부터[54] 비웃음 받지만 수비력만큼은 국가대표급인 선수라며 극찬을 받고 있는 야수. 우리나라의 누구 못지 않게 수비 범위가 넓고 다이빙 캐치가 취미 수준인 선수다. 아주 가끔씩 2루수로 출장하기도 한다.

  • 8. 후쿠도메 고스케
  • 9. 맷 머튼
  • 25. 에고시 타이가
  • 51. 이토 하야타
  • 61. 타가미 켄이치
  • 68. 슌스케(본명 후지카와 슌스케)
  • 99. 카노 케이스케


11.2. OB

11.3. 구단출신 메이저리거[55]

11.4. 영구결번

10. 후지무라 후미오 : 초대 미스터 타이거스로 사랑받았던 한신의 프랜차이즈 스타. 호쾌한 장타로 홈런타자의 이미지가 강했던 선수로 일본프로야구 양대리그 이전 일본 야구연맹 시절부터 1950년대까지 한신을 이끌었던 클럽하우스 리더이기도 했다. 물론 당연히 구단 최초의 영구결번자다.

11. 무라야마 미노루 : 일명 자토펙 투수. 역시 한신의 전설적인 투수로 양대리그 이후 대졸 출신으로서는 유일무이한 통산 200승 투수(통산 222승)이기도 하다. 특히 나가시마 시게오와의 불꽃튀기는 명승부가 유명할 정도로 교진군 킬러이기도 했다.

23. 요시다 요시오 : 우시와카마루(牛若丸)란 별명에서 볼 수 있듯 투쟁심 강한 선수. 요미우리로오카 타츠로와 '세기의 명 미기(美技)'를 다툴 정도로 유명한 센트럴리그의 명유격수다. 또한 1985년 한신 타이거스의 유일한 우승을 이끈 감독이다. 물론 감독 취임 2기의 흑역사는 안 자랑.

11.5. 준영구결번

6. 가네모토 도모아키 : 연속이닝 출장경기는 물론, 한신 타이거스의 2000년대 중흥기를 이끈 공로를 기리기 위하여 2012 시즌이 끝나고 영구결번을 지정하기로 했으나 가네모토 본인이 고사하면서 일단은 준영구결번으로 지정됐다. 참고로 한신의 6번은 나름 의미있는 번호인데, 한신의 역사를 빛낸 교타자인 지타 타이라와다 유타카가 썼던 번호이기도 하다. 둘 다 감독으로서는 안습.

53. 아카호시 노리히로 : 1번타자로 활약하며 많은 안타와 도루를 기록하였으나 2010년에 중심성척수증후군으로 인해 조기 은퇴하면서 아카호시의 번호를 준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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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014년까지는 토라키 시즌 엠블럼이 따로 있었다.
  • [2] 가장 왼쪽에 있는 호랑이 마스코트이며, 호랑이를 뜻하는 일본어인 토라(虎)와 '행운(lucky)'을 합친 이름이다.
  • [3] 가운데에 있는 꼬맹이작은 호랑이 마스코트. 한신의 어린이 팬을 상징한다.
  • [4] 가장 오른쪽의 분홍색 모자를 쓴 호랑이 마스코트, 토라키의 여친이다.
  • [5] 양대리그 출범 이전
  • [6] 사실 이렇게 표현해도 맞긴 맞다. 한신(阪神)은 모기업명이기 이전에 오사카(大)-고베(戶) 일대의 간사이 지방을 말한다. (阪神을 음독으로 읽으면 한신이다.) 교토(京都)까지 붙여서 케이한신(京阪神)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모기업명에 지역명이 있어 별도로 연고지를 언급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케이스. 지역명 우선표기 전 K리그에서 다른 팀은 몰라도 포항제철 아톰스의 모기업만 봐도 '아, 포항시 연고구나'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 [7]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의 배경이 된 그 니시노미야 시 맞다. 참고로 니시노미야 시는 상당한 부촌이라고 한다. 반대로 옆집 아마가사키는….
  • [8] 전국 고교야구 선수권대회 시즌 한정.
  • [9] 사실 효고현의 동쪽 끝은 아마가사키시이다.
  • [10] 하지만 노란 유니폼을 쓰는 일은 잘 없다(...)
  • [11] 예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일본에서 이 음악을 BGM으로(가사도 노무현과 대한민국을 비난하는 가사로 개사했다.) 고인드립 게임을 만들어서 동영상을 니코동에 올린 사람이 있었다... 제작자가 한신빠인것으로 추정. 역시 한신빠는 명불허전
  • [12] 사실 한신이 위치한 오사카의 경우 재일 한국인이 많기 때문에 혐한도 많다. 문제의 니코동 동영상도 이런 분위기에서 파생된것.
  • [13] 심지어 한국 영업중인 한큐한신토호 계열사에서도 한신 타이거즈로(…) 부른다. #
  • [14] 일본에서도 고급 주택가이고 오사카에서도 가까우며 치안도 좋아 살기 좋은 동네이다. 하지만 경기 있는 날 한신고시엔역을 필두로 한 한신고시엔구장은 헬게이트.
  • [15] 1924년은 십간십이지 상으로 갑자년이기 때문에 여기서 이름을 따왔다.
  • [16] 3일마다 옮겨다니는 것과 본거지와 아주 살짝 먼 곳이지만 1주라도 정착해 있는 것은 체력적으로 천지차이다. 그래서인지 홈개막전을 고시엔이 아닌 교세라 돔에서 치루는 일도 적잖다.
  • [17] 한때 메이지진구 구장의 홈팀인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인기는 안습 수준이어서 원정팀인 한신 굿즈 매장이 홈팀 야쿠르트 굿즈 매장보다 먼저 들어왔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참고.
  • [18] 공식 가사에는 당연히 빠져 있는 부분이다. 오히려 야쿠르트 공식 응원단에서는 지나치게 공격적인 가사 때문에 이 부분을 부르지 말아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을 팬들이 아니죠
  • [19] 위에가 한신 마스코트 토라키. 아래가 자이언츠 마스코트 쟈비트. 벤클 5분전
  • [20] 요미우리 마스코트를 바닥에 끌고 다니고 있다(...)
  • [21] 자세한 사정은 2014년 일본시리즈 항목을 참조.
  • [22] 퍼시픽 리그는 전통의 한신 폭도도 혀를 내두르는 치바 롯데 마린즈. 33-4
  • [23] 한신이 오랜 기간 간사이를 대표하는 센트럴 리그 구단이었던 것도 있지만 오사카 부근의 다른 야구 구단들이 다른 지방으로 옮겨가거나, 아예 해체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거나, 연고지나 구단명을 왔다갔다하는 등 밉상짓을 하거나 해서 지역 야구팬들의 관심이 집중된 탓도 있다.
  • [24] 농담이 아니다. 이 두 지역 사람들 성질이 비슷한 것은 물론이고 부산 사람들과도 성질이 비슷하다.
  • [25] 엄밀하게는 노무라가 취임하고 한신팬들에게 희망고문을 시작한 시기부터 이 정도였고, 그 전에 막장 OB감독들이 지휘권을 잡던 시절에는 고시엔의 절반이 빈 자리였다.
  • [26] 관중이 줄어들었다고 해도 일본 프로야구 관중 동원 1위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2011년 관중 동원 수는 289만 8,432명이고 경기당 평균 4만 256명의 관객을 불러모았다.
  • [27] 보통 큐브보다 정가가 1만 엔 가량 비쌌다.
  • [28] 그런데 닌텐도는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한정 닌텐도 64를 판 적도 있었다. #
  • [29] 현존하는 일본 구단들 중에서 비교적 빨리 일본시리즈 우승한 어린 구단과 함께 가장 적다.
  • [30] 참고로 이 해 우승은 일본 항공 123편 추락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전 구단 사장 나카노 하지무의 영전에 바치는 선물이기도 했다.
  • [31] 그나마 요코하마는 두 번 한 리그 우승에서 두 번 다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해서 한신보다 일본시리즈 우승 횟수가 많다.
  • [32] 히로시마는 총 6회. 1975, 1979, 1980, 1984, 1986, 1991.
  • [33] 멀게는 후지무라 후미오, 가네다 마사야스 항목 참조.
  • [34] 2014년 현재 GM. 여담으로 한신-오릭스에서 감독이나 프론트 직을 맡으면서 맡은 트레이드나 FA, 외국이 선수 영입 등에서 재미를 본 적이 거의 없고 오히려 내보낸 선수들이 맹활약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래서 일본에서의 별명은 이름 '카츠히로'를 비튼 '마케히로'(...)
  • [35] 사실 그 해 우승팀 야쿠르트의 성적은 69승1무61패로 우승팀 치고는 그리 좋은 성적도 아니었고 1위와 최하위간의 게임차가 9.0게임밖에 나지 않았다. 1위 야쿠르트와 4위 히로시마와는 3.0경기차였고 히로시마조차도 66승64패의 성적으로 우승을 노릴 정도로 대 난전이었다. 이 해 한신도 67승 2무 63패로 2위팀 치고는 승률이 높은 편도 아니었다. 그나마 그 2위도 요미우리하고 공동 2위였다.
  • [36] 하지만 노무라 감독 시절에도 여전히 비밀번호를 찍을 정도로 성적은 썩 좋지는 않았다.
  • [37] 승률 5할에 근접한 4위가 뭐가 안습이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2011년의 한신은 시즌 전 전문가들의 예상에서 거의 만장일치의 우승후보였다. 게다가 이미 한신이 요미우리를 제치고 팀 연봉지출 1위까지 먹은 요미우리더러 돈지랄이라고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리멸렬한 경기 내용으로 4위에 그쳐 시즌 막판에는 고시엔에서 열리는 홈경기에서 관중동원 2만명 대를 찍는 등 팬들의 불신도 커진 상태였다. 한마디로 2011년의 두산 베어스 비슷한 상황이었던 것.
  • [38] 참고로 라이언 보겔송의 아내인 니콜은 한신 타이거스 구단 CF에도 출연했다.
  • [39] 그 외에는 팀에서 수석코치를 한 번 역임했으며 2010년까지 2군 감독으로 2군팀을 우승으로 이끈 한신의 프랜차이즈 유격수 스타 히라타 카츠오가 강력한 후보로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이쪽도 구단 OB이고 외압에 의해 2군 감독에서 강제로 물러나야만 했다. 그래도 한 주에 6일씩 예능을 찍어댄 마유미보단 나을 거 같은데?
  • [40] 올해야 말로 우승이라던 한신 팬들은 충격과 공포에 빠졌고, 33-4라는 아름다운 스코어는 05년 한신의 약진을 시기하던 타 구단 팬들에게 한동안 놀림거리가 되었다. 어떤 선수의 방어율이 3.34이거나 타율이 0.334거나, 어떤 경기의 경과시간이 3시간 34분이거나, 3년만의 34회째 센트럴리그 우승이라거나 여튼 한신이든 아니든 야구 관련해서 334라는 수열이 들어가면 なんでや!阪神関係ないやろ!(머꼬! 한신 상과읎다카이!)라고 달아주는 식. 8888577
  • [41] 1985년 한신 일본시리즈 우승멤버로, 한신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코치였다. 차기 감독 후보이기도 했고.
  • [42] 중간에 0-0 무승부가 있어 3연속 완봉승에는 실패했다
  • [43] 전북 현대 모터스대전 시티즌에게 털린다고 상상해보라. 그런 충격이다. 물론 히로시마는 과거에는 몰라도 2013년 현 시점에서는 엄밀한 의미의 시민구단은 아니지만. 하지만 돈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FA 영입 선수가 현재까지 단 한 명도 없다.
  • [44] 참고로 나카타, 츠루오카, 스탠드리지 세명 모두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이적했다.
  • [45] 최근 설문조사에서 한신을 응원하는 팬수가 요미우리를 앞질렀다고 한다. 요미우리가 그동안 저질렀던 병크도 있고 요미우리를 떠난 팬들도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 [46] 합스부르크보루시아 도르트문트도 똑같다. 셋 다 DTD 테크를 탄 적이 있다는 특징이 있다.
  • [47] 그것 말고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돈지랄에 실망해 반 요미우리 성향이 강한 한신 타이거스 팬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신도 돈지랄은 똑같이 하잖아! 히로시마 팬들이 화낸다...
  • [48] 대표적으로 이승엽의 한일통산 400호 홈런의 희생양이 되었다. 또한 이승엽이 일본에서 가장 많은 홈런을 뽑아낸 상대팀이 한신 타이거스.
  • [49] 양국 언론에서도 묵직한 직구위주의 투구를 하는 둘을 동일시 취급하는 경우가 많으며 두 선수도 서로에 대한 언급을 몇 번 한 적이 있다.
  • [50] 구단에서 신뢰를 하고 가장 기대를 거는 선수만이 물려받는 등번호이기 때문에 실로 의미있는 번호다. 레전드 시기엔 22번 등번호를 등에 짊어졌던 선수의 포지션은 대부분 포수였다. 투수로써 최초로 22번을 물려받은 선수는 후지카와 큐지라고. 이후 17대 22번 등번호의 주인공이 된 것이 바로 오승환이다.
  • [51] 일본 현지팬들 기준으로 봤을 때 오승환과 가장 상성이 좋은 포수 취급 받고 있는 선수. 베테랑 선수이며 1포수답게 출장 기회가 많았으나 14시즌에 한신이 아래에서 설명할 공수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루키 선수 우메노 류타로에게 출장할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어 츠루오카의 출장 기회가 전보다는 줄어들었다. 하지만 앞서 거론한 듯 오승환과 호흡이 가장 맞는 포수라는 사실을 벤치 또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츠루오카가 아닌 다른 선수가 선발 출장했을 경우 리드상황에서 9회가 되면 오승환 등판에 맞춰 선발 포수를 빼고 츠루오카로 포수 교체를 한다.
  • [52] 2014년 드래프트를 통해 한신 입단. 첫 시즌부터 7개의 홈런을 치는 등 장타력은 어느 정도 검증되었으나 타율이 멘도사 라인보다 더 밑이라는 게 문제... 게다가 경험도 적은 편이다.
  • [53] 3루와 외야 겸업 중. 2014시즌에 포수로는 거의 나오지 않았기에 취소선을 그어둔다.
  • [54] 일본 야구는 야수의 공격력보다는 수비력을 높이 사는 부분이 있어 일본 야구팬들 같은 경우엔 선수의 타격 능력이 빈약하다고 해서 딱히 비웃음거리로 여기진 않는다.
  • [55] 세실 필더는 한신에 오기 전에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메이저리그 경기에 출전한 경력이 있으므로 제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