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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last modified: 2015-03-17 01:19:32 Contributors


韓國銀行. Bank of Korea. 대한민국의 금융을 담당하는 중앙은행.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39 (舊 남대문로3가 110번지) 소재. 앞쪽의 건물은 1910년대 일제에 의해 건립되어 해방 이후 1980년대까지 본관으로 사용되었으며, 지금은 화폐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사적 제280호. 현재 본관은 1987년 건립된 뒤쪽의 신관이다.


Contents

1. 개요
2. 금융통화위원회
3. 과거
4. 관련 문화재
5. 입행
6. 역대 총재
7. 기타

1. 개요

대한민국의 통화정책[1]을 결정하는 중앙은행이다. 한국은행권 원화를 발행하며, '인플레이션을 방지하기 위한 물가 관리'가 한국은행법에 규정된 한국은행의 최우선 목표다. 통화량 조절(물가 관리)을 위한 가장 큰 권한은 지급준비율과 금리결정. 이와 함께 최근 개정된 한국은행법에 따라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하여 금융기관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이 있다. 다만 이 부분은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감독원과 공동으로 행사한다. 화폐의 신뢰성을 위하여 위조지폐에 대한 대응도 담당하고 있다. 다만 화폐의 디자인과 발행권은 가지고 있지만, 화폐 제조는 기획재정부 산하 공기업인 한국조폐공사에서 전담한다. 미국의 연준(Fed.)과는 달리 완전고용을 목표로 하고 있지는 않다.

본점은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국 각 지역에 16개의 지역본부가 소재한다. 본점에서는 화폐 금융 화폐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짐바브웨같은 국내에서 보기 힘든 신기한 돈도 있다. 오오...

근 몇 년 사이 오만원권 지폐 인물 문제 등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대대로 기획재정부와 그리 좋지 않은 사이를 보여 왔다. 광복 직후부터 2공화국 까지는 한국은행의 인적자원이 재무부보다 월등하여 고위층의 파견근무 등이 잦았고, 이로 인해 재무부를 '한국은행 세종로 출장소'라는 별칭으로 불렀다. 그러나, 3공화국 출범 이후 수출을 통한 고도 성장을 목표로 세우고 일사불란한 경제정책 집행을 위해서 중앙은행에 대한 전면적인 통제를 강화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법'을 개정하면서 독립성이 크게 약화되어 재무부와의 관계가 역전되었다. 이후, 한국은행이 확실한 독립을 하기 전까지는 기획재정부의 한 부서로 인식할 정도였다. 실제로 1997년까지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은 재무부 장관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 불렸던 별칭은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였다. 나름흑역사.

1995년 한국은행법 개정으로 확실한 독립기관이 되었지만, 여전히 대통령 및 정부의 눈치를 본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법적으로는 한국은행법을 통해 독립이 되었지만, 그동안의 관습적인 운영 원리를 보면 정부의 간섭이 상당히 잦은 편이다. 한국은행 총재, 부총재를 대통령이 임명하고, 통화운영위원회 구성에 정부가 노골적으로 개입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아래에 서술한다.

최근 몇년간 경기 침체를 핑계로 선제적 금리 인상을 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현재의 고물가 상황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존재한다.[2] 그러나 이는 2011년을 전후한 시기의 이야기이고, 2014년 기준으로는 물가 등을 핑계로 저금리 시대에도 금리 인하를 하지 않아 경기 부흥의 타이밍을 놓치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수장의 명칭은 한국은행'장'이 아닌 한국은행 '총재'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 '총재'라는 단어가 너무 권위주의적이라 바꾸자고 했었는데 현실적인 이유[3]로 일단 놔두기로 했다. 관련기사

2. 금융통화위원회

한국은행의 내부결정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사실상 통화정책을 수행한다. 금융통화위원회는 7명으로 구성되며, 의장은 한국은행 총재가 겸하며, 나머지 6명은 한국은행 부총재(당연직), 한국은행 추천인사, 기획재정부 추천인사, 금융위원회 추천인사, 대한상의 추천인사, 은행연합회 추천인사로 구성된다. 대한상의, 은행연합회 추천은 사실상 형식적인 추천이고 실제로는 정부(특히 기획재정부)의 추천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7명중 총재, 부총재는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고,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 추천 인사는 사실상 정부의 경제관료 낙하산 인사 몫. 여기에 대한상의, 은행연합회 추천까지 관여하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전부 정부쪽 사람들이다. 이런 점 때문에 법적으론 독립이지만, 실질적으론 정부의 입김에 휘둘린다는 비판이 나온다.

3. 과거

한국은행의 전신은 일제 수탈의 한 도구였던 선은행이었다는 흑역사가 있다. 저 서울역 구역사스러운 건물 모양만 봐도 보이는 사실. 도쿄역의 건축가인 다츠노 긴고(辰野金吾)가 설계했다. 다만 서울역은 다츠노 긴고의 제자가 설계에 참여했을 뿐 건축을 총괄한 건축가가 누구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하여튼 한때 일본의 자랑 중 하나였던 만큼, 한국은행 바로 앞의 사거리는 역시 한때 일본인 거리이자 당대 모던뽀이의 거리였던 명동[4]의 코앞에 있었고, 일본어로는 센긴마에(조선은행앞, 鮮銀前)라 불리웠다. 정확히는 현재의 소공로가 구한말에 '하세가와쵸(長谷川町)'라는 이름으로 뚫리며 시작되었는데, 이는 중국인들이 구한말부터 거대한 차이나타운[5]을 형성하고 있던 걸 눈꼴시러하던(...) 일본군이 군사용 목적[6]으로 차이나타운을 반 갈라놓는 목적으로 짓고 거기에 조선은행을 떡 박아놓은 것.(...)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명동, 충무로와 함께 일제시대 최고의 번화가[7]였으며, 1950년 한국은행이 되어 수탈셔틀 신세를 벗어난 현재도 이곳은 한국은행사거리로 불리며 주요 광장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사거리 한복판에 분수대가 있는데, 일제적의 일본인들이 깔아놓은 분수대의 후계자쯤 되는 녀석.

4. 관련 문화재

참고로 저 사거리에는 한국은행 본관, 한국은행 별관, 서울중앙우체국, 신세계 본점 본관, SC은행 제일지점이 있는데, 일제강점기 때부터 지금까지 별로 변한게 없는 사거리라고 볼 수 있다? 완전히 새로 지어진 우체국을 제외하면 모두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항목에서 거론된다.
  • 한국은행 본관. 사적 제280호.
  • 한국은행 소공별관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하얀 건물. 이때만 해도 한국은행이 아니었다. 원래 이곳에는 한국상업은행 본점이 있었는데, 광복 이후 주요 은행으로 성장하면서 그때 그건물 위층으로 콘크리트 건물을 증축했다. 후에 IMF를 지나면서 상업은행은 현재의 우리은행으로 합병되었고, 상업은행 본사는 한은에 팔리고 모델링되어 유리궁전이 되었다.
  • 서울 중앙 우체국
    여기도 원래는 서울역풍의 건물이 있었다. 1915년에 일본이 처음으로 우체국을 지을 당시에는 당연히 벽돌건물. 그러나 6.25 전쟁으로 우체국이 뼈대만 남아버려서 이후 복구할 때는 뼈대에 콘크리트만 덧씌웠다. 이후 1981년 헐리고 성냥갑(...)이 지어졌으며, 이는 2003년까지 쓰이고 현재 마징가, 바지타워포스트타워로 불리는 사옥이 지어지게 된다. 사실은 신한카드타워 한국에 있던 근대건축물 중 제일 크던 건물이라 근대건축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사뭇 아쉬운 감이 있다.
  • 신세계 본점 본관
    일본의 백화점인 미츠코시 경성점으로 지어졌다. 이상이 소설 날개에서 "날자, 날자꾸나."라고 했던 곳이 이 백화점의 옥상이었다. 일제 패망 후에는 미군 PX(...)였던 흑역사가 있으며, 이ᆞ후 설립된 동화백화점을 삼성이 인수하여 신세계가 되었다. 하지만 원래 4층에 사거리를 따라 ㄱ자형으로 되어 있던 건물이었던 것이 증축되어 5층 사각형 건물이 되었고, 원래의 외장재도 몇번 교체되었기 때문에(최근 리모델링은 그나마 원본에 가까움) 문화재는 못된다. 그러니 이상을 따라하려면 옥상 말고 5층에서 따라하자.
  •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 제일지점. 서울시유형문화재 71호.
    조선저축은행 본점으로서 지어졌고, 해방후 제일은행이 되어 본사는 종각으로 가고 제일은행 제일지점이 되었다. 그리고 영국스탠다드차타드에 팔려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실내 장식을 근대에 준하게 꾸며노았기 때문에 다크나이트의 고담시 은행같은 고풍스러운 느낌을 느낄 수 있다.

5. 입행

대우도 공공기관 중 최상위고 그만큼 들어가기도 힘들다. 다만 서류전형은 비교적 널널한(?) 편. 필기 시험에서 대부분의 합격 여부가 결정되며 경제학 필기 시험의 난이도는 행정고시 재경직렬 이상으로 어렵다. 외부인사 총재시절에는 쉽게 출제되는 경향이, 내부인사 총재시절에는 어렵게 출제되는 경향이 있다. 행시 재경직렬과 한국은행을 같이 준비하는 사람이 많고, 재경직에서 한국은행으로 갈아타는 인원도 적지 않은편. 다만 준비하는 과목과 시험 방식이 꽤 상이하기 때문에 준비기간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그리고 실제 업무에도 고수준의 경제, 경제학 지식이 필요하며, 신입행원들은 경제학과 출신이 상당수(약 70%)이다.

경제학 외에 경영학, 법학, 통계학, 전산학 전공으로도 필기시험을 볼 수 있다. 다만 채용 인원은 경제학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소수인 편. 경제학을 제외한 나머지 중 절반 정도가 경영학 전공이며, 전산학 전공은 인력수요에 따라 채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경제직렬 시험과목은 미시, 거시, 국제경제론, 화폐금융론, 계량경제학이다.
  • 계량경제학 : 계량의 경우 대부분의 경제학과에서 경제수학, 경제통계학을 수강한 이후 2학기에 걸쳐 가르치기 때문에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기출을 보면 다른 경제학 과목의 문제도 어렵지만 계량은 기출 범위 자체가 광범위하다.
    특히, 한국은행 시험에서는 시계열(time series)도 출제 대상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의 경우에도 시계열 수업은 2-3년에 한 번 열릴까 말까하며, 계량경제학 수업에서는 보통 가르치지 않는다. 또한 비슷한 시험으로 취급되는 다른 금융공기업에서도 계량경제학을 기출하지만, 시계열까지는 요구하지 않는다. 시계열은 다루기 까다롭기 때문에 학부 수준에서는 상당한 고급과정으로 취급한다.

입행 후에는 다음해 1월 초부터 5주간 신입연수가 있고 2월 초부터 첫 출근을 한다. 국가기관 중에서도 일이 빡세다는 평가이다.
다만, 외국 학술연수를 보내준다. 1년에 70여명이 입행한다면 매년 20여명에게 학비와 생활비를 1년 반동안 지원해주면서 석사를 따게 한다.

6. 역대 총재

  • 초대 구용서(1950.06.05~1951.12.18)
  • 2대 김유택(1951.12.18~1956.12.12)
  • 3대 김진형(1956.12.12~1960.05.21)
  • 4대 배의환(1960.06.01~1960.09.08)
  • 5대 전예용(1960.09.08~1961.05.30)
  • 6대 유창순(1961.05.30~1962.05.26)
  • 7대 민병도(1962.05.26~1963.06.03)
  • 8대 이정환(1963.06.03~1963.12.26)
  • 9대 김세련(1963.12.26~1967.12.25)
  • 10대 서진수(1967.12.29~1970.05.02)
  • 11대 김성환(1970.05.02~1978.05.01)
  • 12대 신병현(1978.05.02~1980.07.05)
  • 13대 김준성(1980.07.05~1982.01.04)
  • 14대 하영기(1982.01.05~1983.10.31)
  • 15대 최창락(1983.10.31~1986.01.07)
  • 16대 박성상(1986.01.13~1988.03.26)
  • 17대 김건(1988.03.26~1992.03.25)
  • 18대 조순(1992.03.26~1993.03.14)
  • 19대 김명호(1993.03.15~1995.08.23)
  • 20대 이경식(1995.08.24~1998.03.05)
  • 21대 전철환(1998.03.06~2002.03.31)
  • 22대 박승(2002.04.01~2006.03.31)
  • 23대 이성태(2006.04.01~2010.03.31)
  • 24대 김중수(2010.04.01~2014.03.31)
  • 25대 이주열(2014.04.01~현재)

7. 기타

농구대잔치 시절에 실업농구단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언제나 승수셔틀(...) 신세. 결국 1996년에 해체되었다. 이승학, 김상준, 김영래 3명은 원주 나래 블루버드에 입단하고, 다른 선수들은 그대로 은퇴.

조사-연구자료 섹션에 있는 자료들은 현직자들도 자주 찾아볼 정도로 방대하고 정교한 자료들이 그득하다. 이 자료들을 출판도 하고 있는데, 말 그대로 재료값 수준의 돈만 받고 팔고 있다. 400페이지가 넘는 책을 5천원 정도 가격에 파는데, 대학교 복사실에 가도 이 정도 가격은 안나온다. 물론 홈페이지에서 PDF파일 다운로드도 가능하다.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경제교육 플래시를 무료로 볼 수 있다. 또 금요일에 본점에서 특별강좌를 하는데 이게 꽤 인기있는 편이라 월요일 오전 9시 30분에 신청이 시작되면 30분도 안돼 마감이 된다. 특별강좌에 참가할 때마다 쿠폰을 1장씩 주는데 25장을 모으면 한국은행 경제기본과정 수료증을, 50장을 모으면 한국은행 경제전문과정 수료증을 받을 수 있다.

한국은행법상 다른 은행에 출자를 할 수 없지만, 한국수출입은행의 주요주주이며, 외환은행의 주요주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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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금융정책 전체가 아니라, 금융정책의 일부인 통화정책을 수행한다. 통화정책을 제외한 금융정책은 정부(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의 고유 권한이다. 그러나 최근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한국은행법 제1조 제2항에 "한국은행은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함에 있어 금융안정에 유의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생겨서 금융도 신경은 쓰고 있다. 주가 아닐 뿐이지.
  • [2] 경기 활성화를 위해서 저금리를 원하는 정부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서 고금리를 주장하는 중앙은행 간의 마찰은 선진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70년대 말 지미 카터 대통령과 볼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의 대립. 폴 볼커는 20%에 달하는 초고금리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진압했지만, 한계기업의 파산과 실업자 급증으로 1980년 대선에서 지미 카터 대통령은 참패한다.
  • [3] 우리가 갖고 있는 지폐를 한번 보자. 모두 '한국은행총재'의 도장이 찍혀 있어서, 이거 하나 바꾸는데만 해도 큰 돈이 들어간다(화폐도안 변경, 이로인한 ATM기 인식시스템 변경 등).
  • [4] 지금도 일본인들이 많이 오는 거리라지만 일제 때에 비교할 것이 못된다. 일제 당시의 명동은 그야말로 '일본인의 일본인에 의한 일본인을 위한 거리'였다.
  • [5] 이 차이나타운은 플라자호텔을 짓기 시작하던 1970년대 초반까지도 남아있었다! 현재 중앙우체국 옆동네에 남아있는 골목은 극히 일부의 흔적.
  • [6] 방사형 도로는 병력수송을 원활케 하기 위한 군사도시의 특징 중 하나이다. 진해의 도시구조를 생각해보자.
  • [7] 현재의 충무로 카메라거리인 본정통(혼마치도리)은 1930년대 당시 즐비한 전깃불 때문에 도쿄보다도 더 번화하다는 기사가 남아 있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