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피지

last modified: 2015-04-14 16:42:48 Contributors

피부 트러블인 피지를 찾는다면 개기름 항목으로.


여행경보 1단계: 남색경보 발령! HELP!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국가/지역에 남색경보(여행유의)가 발령되어 있습니다.
해당 국가/지역에 방문할 예정이라면 [https]여행경보제도(외교부 해외안전여행 웹 사이트)의 내용을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경고: 이 국가/지역에 방문할 경우 신변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vlwlwleh.png
[PNG image (Unknown)]



공식명칭 피지 공화국 (Republic of Fiji, फ़िजी गणराज्य, Matanitu ko Viti)
면적 18,376㎢
인구 883,125 (2011 통계)
1인당 GDP 명목 3,965$, PPP 4,620$(2011)
민족구성 피지인 54%, 인도인 38%
수도 수바
정치체제 공화제, 양원제
국가원수 에펠리 나일라티카우(Epeli Nailatikau) 대통령
정부수반 프랭크 바이니마라마(Frank Bainimarama) 총리
공용어 영어, 피지어, 피지 힌디어
국교 없음
화폐단위 피지 달러 (F$)
대한수교현황 남한 수교 (1971) 북한 수교(1975-1988 // 1988년 단교 , 2002 재수교)

Contents

1. 개요
2. 민족
3. 역사
4. 경제
5. 스포츠
6. 군사
7. 한국과 피지
8. 학제
9. 기타

1. 개요

오세아니아 멜라네시아 동부에 속하는 일련의 제도로, 정식 국호는 피지 공화국. 영어나 힌디어로는 'Fiji(फ़िजी)'지만, 현지 피지어로는 비티(Viti)로 피지란 이름은 제임스 쿡이 통가에 지낼 때 통가 인 들이 비티(Viti)를 피지(Fiji)로 부르는 것을 그대로 적은 것이다.

수도는 수바(Suva). 국토면적 18,376㎢, 인구 약 88만 명(2011). 1874년부터 영국의 식민지였으며, 1970년에 독립하였다. 영연방의 일원이었으나 2009년 9월부터 2013년 8월까지 일시 자격정지.[1] 쿠데타로 정치체제가 혼란을 겪은 적이 있다.

동쪽으로는 통가 왕국, 왈리스 퓌튀나와 가깝고, 절대적인 크기를 봤을 때는 작은 나라이지만 도시 국가 수준의 영토를 가진 나라가 많은 오세아니아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 파푸아뉴기니, 뉴질랜드, 솔로몬 제도에 이어 5번째로 큰 나라이다. 18,376km²면 제주특별자치도의 10배다.

이 때문에 제대로 조사해 보지 않고 피지로 여행을 갔다가 공항에서부터 피를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국제공항이 있는[2] 난디[3]는 섬의 서북부에 위치하고 있고, 수도인 수바는 섬의 동남부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거리가 약 180km 가량 되므로 혹여 택시라도 탔다가는 미칠듯한 요금(약 150 피지달러 : 2010년 12월 현재 기준으로 약 10만 원. 물론 대한민국이라면 싼 편이긴 하지만, 일반적인 공항에서 도심까지의 진입 거리를 생각하고 탔다면 큰 낭패)에 떡실신되니 주의하자. 대한항공이 인천에서 난디로 가는 항공편을 운항하며 A330-200이 투입된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Sunbeam이라는 관광버스를 타는 것을 추천. 디 국제공항에서 수바까지 피지 달러로 2012년 7월 현재 16불.(단 중간 중간에 서서 4시간이 걸린다는 게 흠) 시간표는 Sunbeam 그리고 디 국제공항에서 환승해서 바로 비행기로 우소리 국제공항으로 가는 방법도 있고 수바까지 가장 빠르게 갈수 있는방법이지만 가격이 세서 돈지랄 할수있는 수준으로 부유한 사람이 아니라면 엄두도 못내는 수준이다.(한번 타는데 112$수준) 거기에다가 공항 사용료+버스(혹은 택시비)를 추가 지출해야 하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가장 큰 섬은 비티 레부(Viti Levu) 섬으로 경기도 비슷한 크기이며 피지 인구의 70%가 거주하고 인도계들도 몰려 있으며, 1,324m 높이의 피지 최고봉 토마니비 산이 있다. 그리고 20cm 길이의 크고 아름다운 피지 장수하늘소가 서식한다고 한다. 두 번째로 큰 바누아 레부 섬은 비티레부 보단 작지만 제주도 3배 넓이의 큰 섬으로 해수면 상승으로 위기에 처한 키리바시가 이 섬에 땅을 사려 한다고 한다. 피지 북쪽엔 로투마(Rotuma) 라는 작은 섬이 있는데, 여타 피지하고는 상당히 이질적이다.(인종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다. 물론 의무교육으로 인하여 로투만(Rotuman)들도 의사소통하는 덴 아무 문제가 없다.)

2014년 9월 17일 총선거(General Election)가 치러졌고 현 여당인 피지퍼스트(피지제일당)이 59.2%의 득표율로 32석을 얻어 압승을 거두웠다.

2. 민족

인도계 주민이 많은데, 이들은 식민지 시절 영국이 인도에서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자로 써먹으려고 이주시킨 노동자노예들의 후손. 이는 피지 토착민들이 매우 게을러서 도저히 일을 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저건 서구인 제국주의자 고용주의 시선이고, 토착민들 입장에서는 이대로도 편하게 먹고 살 수 있는데 굳이 노예와 같은 처지로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할 메리트가 없었던 탓도 있다. 돈을 벌 수야 있겠지만 봉급이 상당히 짠 편이었으니.

물론 그런 걸 감안해도 정말 매우 게으른데, 모든 일 처리가 거북이처럼 느리다. 특히 경찰은 신고가 들어와도 늦게 오는 것으로 유명해서, 도둑이 들었을 때 현지 한인들은 일단 근처 믿을 만한 이웃이나 한인 지인에게 전화해서 도움을 청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그래도 부르긴 하자. 1시간 뒤에 도착하겠지만 심지어 2006년 쿠데타 땐 럭비경기를 보느라 군대가 쿠데타를 며칠 연기하는 남도의 기상(!)을 보여주기도. 부연하자면, 당시 총리는 감금된 상태에서도 외신과 자유롭게 인터뷰(...)했을 정도였으니 이때 쿠데타가 전반적으로 엉성했다. 아,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될 건 1987년 쿠데타나 2000년 쿠데타 미수 사건과는 다르게 2006년 쿠데타의 주체는 인도계(...)다. 인도/문화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인도계 사람들도 만만찮게 책임감 없는 사람들이다

2010년10월 피지정부가 영국으로 독립했다는 독립문서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인정했다.[4] 흠좀무 물론 지금와서 해당문서를 잃어버렸다고 피지의 독립이 취소되는건 아니다.

이들이 서구인의 관점에서 봤을 때 게으른 이유는, 풍부한 식량 생산으로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는 공동 생산사회이기 때문이다. 현대에 와서도 이 공동생산 개념이 남아있어 개인이 노동을 통해 돈을 벌어도 마을 공동체 구성원에게 그 돈을 상당 부분 빼앗긴다. 만약 자기가 번 돈이라고 자기 혼자 쓰면 마을에서 추방 또는 처벌 받게 된다고. 그러다 보니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없게 된다. 더군다나 인도인들의 교육열이 높아서 피지인들보다 학력이 높았고 힘들게 번 돈을 꼬박꼬박 모아서 상공업과 관광업을 일으키고 하다보니 자연스레 경제권이 넘어가게 되었다.

그 결과 현재에도 인도계들이 피지의 경제를 엄청 움켜쥐고 있어서 불만이 크다. 인도계에 대한 반발로 토착민으로 구성된 군부의 쿠데타가 수차례 있었다. 덕분에 전통적인 토착민과 인도계 주민의 대립을 해결하는 것이 국가적 과제로 남아있다. 90년대 후반, 인도계들의 경제 장악에 불만을 품은 토착민계 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경제적으로 파산 위기에 몰려 물러섰던 적도 있다. 그리고 당시 한국 대사관은 문 걸어 잠그고 지들만 튀는(!) 비범함을 보여, 교포들에게 두고두고 욕먹었다. 흔한 반도 공무원들의 기상 쓰고 보니 피지 사람들이 일처리 느린 것 정도는 불평거리도 아닌 것 같다

3. 역사

3,500년 전 인류가 피지로 이주해 오면서 역사가 시작된다. 이들은 마탕갈리라고 부르는 부족들을 형성했다. 이후 비교적 발전되었던 옆 나라 통가가 피지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1643년 네덜란드 탐험가 벨 타스만이 피지를 발견했고, 1822년 백인들이 레부카(Levuka)에 처음 정착하기 시작했다. 초창기 백인 거주자들은 주로 선교사나 백단향 무역상들이었다.

피지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인물은 라투 세루 에페니사 다콤바우(Ratu Seru Epenisa Cakobau) 인데, 그는 피지 동부 해안에 위치한 바우 섬(island of Bau)의 추장이었다. 그는 1853년 자신을 투이 비티(Tui Viti) ,즉 피지의 왕으로 선포하고 1854년 기독교로 개종을 하고 1871년에 피지 전역을 통일한다. 하지만 그는 1874년 피지를 영국에 무조건 할양(...)한다. [5] [6] 그렇게 피지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만악의 근원 영국은 피지인이 게으르답시고 피지로 인도인들을 데려와 노동자로 고용했으며 토지제도가 성립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본을 축적한 인도인들은 피지의 경제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의회가 생겨 피지의 추장들과 백인 남성, 그리고 1929년 부유한 인도계에게 선거권이 주어졌으나 일반 피지인들과 여성은 한참 후인 1963년에 가서야 선거권을 얻었다. 1970년 피지는 영국으로부터 반강제독립했다.

독립한 피지는 경제권을 잡은 인도인 vs 정치권을 잡은 피지인의 세력다툼이 이어졌다. 처음으로 정권을 잡은 정당은 피지인들의 동맹당이었다. 그러나 1977년 동맹당이 다수의석 확보에 실패해 인도계의 국민연합당이 정권을 잡게 되자 피지계인 조지 카콤바우 총독은 재선거를 실시해 피지계 동맹당이 선거에서 승리한다. 그러나 1987년 인도계의 피지노동당이 선거에서 승리하자 피지계인 시티베니 람부카 중령이 쿠데타를 일으켜 공화국을 선언하고 1992년까지 군정을 실시했다.

군정이 끝나고 치러진 선거에서 람부카가 승리했으나 람부카는 1999년 선거에서 패배하고 피지노동당의 인도계 출신 마헨드라 초드리가 피지의 총리가 되었다. 그러자 이번엔 민간인(...)인 조지 스페이트가 쿠데타를 일으켰고 프랭크 바이니마라마 이를 진압했지만, 진압된 후에 다시 피지인이 집권했다.

피지엔 영국에 의해 생긴 제도가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당시 피지 토지의 84%는 피지인이 소유하고 있었으나 이 중 대부분은 정글이거나 교통여건이 안 좋은 오지였고 주요섬 지역의 해안지역의 좋은 토지는 대부분이 인도계가 가지고 있다. 새로 집권한 가라세는 이런 상황에 있던 피지인 우대 정책을 폈으나 군부의 바이니마라마는 가라세의 정책에 반대했고 2006년 12월 1일 기한으로 최후통첩을 보냈다. 그러나 막상 당일 바이니마라마 피지에서 가장 큰 스포츠 행사 중 하나인 군대 vs 경찰간 럭비 경기를 관전하느라(...) 쿠데타는 일어나지 않았다. 바이니마라마 응원한 군대 팀은 럭비 경기에서 패배했고, 그래서인진 몰라도 며칠 뒤 군대는 쿠데타를 일으키고 군정이 시작되었다.

이에 사법부가 프랭크 바이니마라마가 일으킨 쿠데타에 대하여 위법 판결을 내리자 피지 대통령은 헌법을 무력화하고 모든 대법관들을 해임시키고, 계엄령을 선포했으며 언론들을 강경하게 탄압했다. 2012년 1월 7일 계엄령이 해제되었으며 2014년 9월 17일 국회의원 총선거가 치러졌고 이 선거에서 현 여당인 피지제일당이 59,2%의 득표율로 과반의석(32석/50석)을 확보하며 승리했다.

4. 경제

5. 스포츠

한국사람들이라면 주로 스포츠 뉴스에서 피지의 국민 영웅(정확히는 인도계들의 영웅이며 토착민들에게는 '그게 누군데?' 수준)이자 PGA 현역 top 5에 드는 골프스타인 비제이 싱(Vijay Singh)을 통해 나라 이름을 들었을 것이다. 물론(?) 다른 대양주권 영연방 국가들처럼 럭비가 초강세인 국가. 이웃 뉴질랜드와 함께 7인 럭비 강국이기도 하다. 그만큼 럭비가 인기가 많은데 럭비 월드컵에서도 1987,2007년 대회 8강에 진출한 바 있을 정도로 상당한 강호이다.

축구도 꽤 하는 편이다. 비록 세계적으로 약체이지만 오세아니아에선 강호. OFC 네이션스컵 4강에도 여럿 진출했고 2002 한일 월드컵 지역예선에선 미국령 사모아를 13-0으로 이겼으며 호주에게 0-2로 지는 선전을 벌였다. 피지 축구 국가대표팀 참고할 것.

6. 군사

특이사항으로 피지 군은 제식 소총으로 대한민국 국군K2 자동소총을 사용하고 있다. 실제로 한인 학생들 중엔 수도 군 기지에 학년단위로 견학을 가서 소총을 들어보다가 총에 새겨진 한국어를 보기도 한다. 이는 당시 쿠데타 수장과 현지 한국인 교민 사업가전모씨가 친구였기 때문으로, 명분 없는 쿠데타로 국제사회가 무기 판매를 거부하고 있을 때 이 교민 사업가를 통해 전두환 정권에 접촉하여 같은 쿠데타 동지로서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사업가를 통해 국군 예비역 장교들이 피지 정부에 채용되어 교관 등으로 복무한 바 있다.

의외로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이 나라 출신 PMC 직원들이 많다고 한다. [7] 피지군은 이 근방에서 의외로 규모가 큰 군대이다.

7. 한국과 피지

대한민국과는 1970년에 수교하였고 북한과는 1975년 수교하였으나 1987년 북한의 지령을 받은 김현희의 대한항공기 공중 테러사건 때 테러를 규탄하는 의사에서 1988년 단교하였다. 동년에 열렸던 1988 서울 올림픽에 참가하였다. 북한과 2002년에 다시 재수교했다.

8. 학제

초등학년과정(Primary School)이 한국의 6년과 달리 8년이며, 중고등학교과정(Secondary School)이 한국의 6년과 달리 5년이다.

Secondary School을 졸업 한 뒤에는 대학교 입학 전 기초예비과정(Foundation)을 수강하는데 필수이며, 이 코스는 고등학교에서 할 수 있는 Form7 과정과 같으며, 대학교에서 수강할 수도 있다.

수업의 모든 과정은 영어로 이루어 진다.(물론 피지어 시간이나 힌디어 시간에는 각각 언어를 씀.)

9. 기타

대항해시대 2에서는 왜인지 여기에서 비행류를 발견할 수 있다.(...)

군사항목에 나온 사업가는 피지 최초의 한국인 사업가인 전청묵씨의 동생 전정묵씨로 형제가 피지에서 대규모 사업을 벌이고있는 형제사업가다. 사업초기부터 고위관리들과 친분을 맺어 피지는 UN평화유지군으로 나가있는 피지군이 보급품을 물품 대신 현금으로 지급받는다는것을 알게되자 이로부터 한국에서 군복과 총기를 포함한 각종 군수품을 조달해서 막대한 돈을 벌었고 이를 바탕으로 통조림사업을 시작해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8]

람부카중령의 쿠데타가 성공한 이후에도 한국정부를 통해 대량의 무기를 수입해오는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고 정치권에도 나서는 등 상당히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피지 한인사회에서의 이들에대한 평가는 이래저래 상당히 갈리고 있다고한다.[9]
----
  • [1] 2010년까지 선거를 하라고 했지만 씹어버려서.. http://www.bbc.co.uk/news/world-asia-pacific-14919688
  • [2] 수도인 근교에 있는 우소리 국제공항에서도 국제선(주로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그 외 인근 남태평양 섬나라들)을 취급하긴 하지만 노선이 제한적이다.(대충 김포국제공항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 [3] Nadi-피지어를 로마자로 표기한 것이라 영어식이라면 나디 내지는 내디가 되어야 하지만 난디로 읽는다. 피지어 b, d, g, q, c는 /mb/, /nd/, /ŋ/, /ŋg/, /ð/로 읽어야 한다. 따라서 피지어 인사인 ni sa bula는 니삼불라라고 읽는다.
  • [4] http://www.bbc.co.uk/news/magazine-11565853
  • [5] 미국은 1855년 존 브라운 윌리엄스라는 사람의 집이 방화로 인해 탔으니 돈 내놓으라 하지, 통가는 바우 섬 일부분을 침략했지..
  • [6] 참 안습 인 게, 1862년 영국에게 할양을 제의 했지만, 영국은 다콤바우가 피지 전체에서 피지의 왕으로 인정 받지 못한다고 거절을 했다.
  • [7] 영미권의 특수부대 출신으로만 뽑으려고 하면 돈도 많이 들고 많은 수를 모으기 힘들다는 이유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네팔이나 필리핀 등지에서 온 직원들도 많다.
  • [8] 다만 이 과정에서 다소 안좋은 이야기가 존재하는데 이 형제사업가는 당시 피지정부와의 연줄을 이용해 그 시기 피지의 통조림사업을 독점중이던 일본 통조림을 전면 수입금지시키고 일단은 피지기업인 이 형제사업가의 회사에대해서는 10년동안 세금을 감면하는 조치를 받게 만든것이다. 결국 그 결과로 이들의 사업은 1000만달러규모를 넘기게된다. 물론 이들의 사업수완도 좋았지만 결국 빼도박도 못할 정경유착이 상당했던 셈.
  • [9] 입지전적인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기도하고 차별이 많던 피지인들의 임금수준이나 후생복리에도 관심이 많아 이래저래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도 많았지만 결국 정경유착 자체가 상당하기도했고 한인사회에서의 막대한 영향력으로 형제 둘이 한인회장 자리를 돌려먹곤 했으니...게다가 심지어 람부카중령의 쿠데타 당시 쿠데타관련 사례로 전두환의 사례를 많이 전해줬다는 이야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