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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last modified: 2015-04-11 22:34:10 Contributors

Contents

1. Pianist
2. 책/영화
2.1. 줄거리
2.2. 등장인물
2.2.1. 브와디스와프 슈필만
2.2.2. 조연
3.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

1. Pianist

피아노 치는 것을 직업으로 연주하는 사람.

2. 책/영화

The_Pianist.jpg
[JPG image (Unknown)]

영화 《피아니스트》의 포스터.

폴란드 태생의 유대인 피아니스트 브와디스와프 슈필만(Władysław Szpilman)의 저서.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로만 폴란스키제2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 영화. 폴란드에서 평화롭게 지내던 유대인 가족이 나치의 침공에 의해 해체되는 모습을 그렸다. 영화는 2002년 아카데미 감독상, 남우 주연상 그리고 각본상 수상. 2002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1] 국내에선 2003년 1월 3일 개봉.

홀로코스트인종차별 문제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여주는 홀로코스트 영화의 수작. 폴란스키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힌 것이다. 편향적으로 유대인은 희생양으로, 폴란드인은 나라를 잃은 애국자들로, 나치 독일은 무조건 전범으로 비춰주는 여타 홀로코스트 영화와는 다르게,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타난 여러가지 인간상을 균형있게 비추려고 노력했다고.[2] 물론 나치의 만행을 심도 있게 다루는 것도 잊지 않았다.

2.1.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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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폴란드의 피아니스트 블라덱 슈필만이 폴란드 공영방송에서 쇼팽의 야상곡 C# 마이너를 연주하며 시작된다. 1939년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블라덱과 그 가족들은 바르샤바에 고립된다. 처음, 블라덱의 가족들은 독일의 침공에 대한 영국과 프랑스의 선전포고 방송을 들으며 환호한다. 그러나 그들은 폴란드에 직접적 군사개입을 하지 않았고, 폴란드에서는 유대인에 대한 차별이 시작된다. 바르샤바를 점령한 독일군 사령부는 유대인들에게 유대인임을 나타내는 비드의 별 휘장을 달도록 지시한다. 블라덱은 한 독일인 첼리스트 도로타[3]과 가까운 관계가 되어가나 찾아가는 카페마다 유대인 출입금지라는 푯말에 들어가지도 못한다. 나치 독일은 유대인에 대한 차별을 심화하여 바르샤바에 대규모 게토를 조성해 3년 동안 그들을 격리하고 차츰 고사시킨다. 블라덱은 당시 추려놨던 물건을 팔다가 게토 내 식당에서 피아니스트로 근무한다.

어느 정도 인원이 추려지자 나치 독일군은 노약자부터 먼저 아우슈비츠로 보내 처리한다. 블라덱도 가족들과 함께 끌려갈 처지였지만 나치에 협조한 유대인 경찰이었던 친구 이츠학의 도움으로 가족 중 유일하게 빠져나오게 된다. 게토로 도망가서 노역을 하던 블라덱은 유대계 폴란드인들이 게토 안의 나치를 습격하기 전에 게토를 빠져나온다. 그리고는 원래 알고 지내던 사람[4]들의 도움으로 숨어 산다. 그러나 그들도 저항운동을 하다 체포되고, 블라덱은 다른 사람을 찾아가게 되는데 바로 도로타의 남편이었다. 블라덱은 도로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녀가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해 아이를 갖고 첼로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숙이고 만다. 이후 도로타와 남편의 도움으로 새로운 도피처를 마련하나 영양실조에 걸려 목숨을 잃을 뻔 하는 등 고생을 겪는다. [5]

이후 바르샤바 봉기가 일어나고 자신이 숨던 곳이 독일군에게 공격받자 블라덱은 그곳에서 빠져나와 파괴된 병원으로 이동한다. 바르샤바 봉기가 진압된 이후 독일군이 건물에 불을 지르기 시작하자 그는 예전에 간신히 빠져나왔던 게토로 다시 들어간다. 이때 파괴된 게토를 표한한 거대한 세트장 안에서 정처없이 떠도는 그의 모습은 영화의 진정한 백미. 폐건물에 숨어서 살던 중 블라덱은 독일 군인 빌름 호젠펠트에게 발견되고, 누구냐는 그의 질문에 '피아니스트였다'고 답한다. 그러자 호젠펠트는 블라덱에게 피아노 연주를 시켰고, 블라덱은 쇼팽의 발라드 1번 G 마이너를 연주한다.[6] 다른 나치와 달리 호젠펠트는 유대인인 블라덱을 즉결처형하지 않고 식량을 지원해주며 숨겨준다. 소련군의 공격이 점점 거세지며 독일군은 퇴각하게 되는데, 이때 호젠펠트는 블라덱에게 겨울용 독일군 코트와 식량을 남겨주며 떠난다.

독일군이 떠나고 소련군이 바르샤바로 몰려오게 된다. 블라덱은 소련군에게 총격을 받게 되는데 바로 호젠필드가 줬던 독일군 코트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블라덱은 자신이 폴란드인이라고 소리쳤고, 소련군도 그것을 확인한 후 그에게 겨눈 총을 내린다.

전쟁이 끝난 후 폴란드의 피아니스트로 다시 활동하게 된 블라덱은 동료 음악가로부터 호젠펠트가 수용소에 갇혀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과거 자신을 도왔던 호젠펠트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그 독일군 수용소를 찾아갔으나, 호젠필드는 이미 다른 수용소로 이송된 뒤였기 때문에 블라덱을 만나지 못하고 사망한다.

2.2. 등장인물

2.2.1. 브와디스와프 슈필만



브와디스와프 슈필만(Władysław Szpilman)

에이드리언 브로디(Adrien Brody, 1973-)가 분했다. 원래는 피아니스트였고 게토에서도 초창기엔 피아니스트로 일했으나 유대인들이 수용소로 끌려간 뒤에는 일반 노동자로 일했다. 3년이 넘게 도피생활을 했다. 브로디는 이 역할로 만 29세에 최연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다만 이 해에 갱스 오브 뉴욕에서 대니얼 데이루이스가 도살자 빌(Bill the Butcher)로 상당히 인상적인 연기를 보였고 수상이 유력시됐기에 말이 좀 많긴 했다.



실존했던 슈필만은 위와 같다. 1911년에 태어나 2000년에 별세.

2.2.2. 조연

  • 헨리크(Henryk). 블라덱의 동생으로 영국 배우 드 스토파드[7](Ed Stoppard, 1974-)가 분했다. 유대인들이 대규모 강제이주를 당한 이후론 등장하지 않는다. 정황상 아우슈비츠로 끌려간 것으로 보이나 생존 여부는 나오지 않는다. 게토에서 강제이주 당하기 전에 베니스의 상인에서 유대인샤일록이 한 말을 인용하기도 한다. "찌르면 피가 나오고 간지르면 웃음이 난다." 나치도 싫어하지만 나치에 협조하는 유대인 경찰을 싫어한다. 유대인들이 무장 봉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


  • 다른 가족들: 전부 아우슈비츠로 끌려간다. 블라덱과 유렉 말고도 레지나와 할리나라는 딸이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맡은 배우는 영국인 프랭크 핀리(Frank Finlay, 1926-)와 같은 영국인 모린 리프먼(Maureen Lipman, 1946-). 레지나와 할리나를 맡은 배우는 줄리아 레이너(Julia Rayner)와 제시카 케이트 마이어(Jessica Kate Meyer).


  • 이차크 헬러(Itzak Heller). 배우는 로이 스마일스(Roy Smiles)로 영국가수본가, 극작가인데 가끔 배우도 겸업한다. 적절한 이미지가 없어 배우 본인의 사진으로 게재한다. 작중에서 유대인이나 나치에 협조하는 유대인 경찰로 나온다. 게토 후에 등장하지 않는다.


  • 도로타(Dorota). 블라덱의 연주를 보러 오빠(블라덱의 지인)를 졸라 방송국에 왔던 첼리스트. 블라덱이 호감을 갖고 연락해 데이트를 하나, 유대인들이 게토로 끌려간 사이에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 도로타의 남편은 슈필만이 도주하는 걸 돕는다. 슈필만 자신이 애정을 품고 있던 여자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갖고 첼로를 연주하는 모습에 슈필만의 표정속 복잡한 감정은 영화의 백미중 하나이다. (처음에 슈필만을 돕는 여자는 도로타가 아니다.)

    배우는 영국 출신의 에밀리아 폭스.


  • 빌름 호젠펠트 대위(Captain Wilm Hosenfeld). 독일군 대위로 블라덱을 숨겨주고 먹을 걸 챙겨주기도 한다. 후에 소련에 끌려가 포로 생활을 하다가 1952년에 스탈린그라드에서 사망한다. 배우는 독일군 전문 배우로 불리는 토마스 크레치만(Thomas Kretschmann, 1962-).


    실존인물은 이렇다. 1895-1952. 원래는 선생이었는데 전쟁이 나면서 독일 육군에 왔다. 사회정의를 강조하는 가톨릭 집안에서 성장했고 당시 불던 독일의 국주의에도 영향을 받아 고민을 하다가 결혼을 하면서 아내 안네마리에게 평화주의적 영향을 받게 됐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1917년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철십자 2등 훈장을 받았다. 1939년 다시 징집되어 전선으로 나갔는데 주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죽기전까지 히틀러와 나치독일에 대한 충성심은 변치않았다고 한다.그는 폴란드어를 배우기 위해 폴란드인들과 친하게 지냈다. 금지된 행위임에도 성당을 찾아가 고해성사를 하기도 했다. 포로수용소를 짓는 임무를 맡은 동안엔 자기 직권을 남용하여 폴란드인들이 가족과 접촉할 수 있도록 하고 정해진 형기보다 일찍 내보냈다. 그리고 유대계 폴란드인인 블라덱 슈필만이 숨는 걸 도와줬다. 1945년에 소련군에게 붙잡혀 25년형을 선고받고 고문도 당했고 고문후유증으로 추정되는 질병으로 1952년 사망했다. 폴란드인들이 그가 한 행동을 알려 탄원했지만 소련독일군에게 자비가 없었다. 슈필만의 아들인 안제이 슈필만(Andrzej Szpilman)이 호젠펠트를 이스라엘에 위치한 홀로코스트 기념관인 야드 바솀(Yad Vashem)에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 이이니 계의 의인(Righteous Among the Nations)[8]에 추가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2009년 추가되었다.

3.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

Pianiste.jpg
[JPG image (Unknown)]


La Pianiste
영화 《피아니스트》의 포스터.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합작영화로 오스트리아의 소설가 엘프리데 옐리네크가 쓴 '피아노 치는 여자'[9]가 원작이다. 감독은 하엘 하네케.[10] 냉철한 완벽주의자이지만 조금은 뒤틀린 성적 욕망을 가진 중년의 독신 여교수 에리카 코후트와, 젊고 잘생긴 제자 발터 클레머의 불온한 관계를 그리고 있다. 설정만 본다면 사랑과 전쟁 스타일의 3류 성인영화스럽지만, 치밀한 심리묘사와 호연으로 꽤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이사항으론, 국내에는 위의 《피아니스트》와 거의 동시에 개봉(2002년 12월 20일 개봉 대략 2주 차이)했는데 이름이 아예 같아 사전정보 예매했다가 낚이는 경우가 있었다. 2의 반전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는데 3의 관능영화로 오해받고 백안시 당한 사람들에게 묵념. 그 반대는? 게다가 둘 다 칸 영화제 수상작이여서...

영어권에서는 1.은 피아니스트 그대로, 2.는 《피아노 선생(The Piano Teacher)》로 개봉했다. 일본에서는 1은 전장의 피아니스트戦場のピアニスト로 2는 피아니스트ピアニスト로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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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다만 폴란스키 감독은 시상식에 불참했다. 자세한 내용은 로만 폴란스키 항목 참조.
  • [2] 가장 대표적인 예가 숨어지내는 슈필만을 발견하고 피아노를 쳐보게 한 뒤 몰래 도와주는 독일군 장교인 빌름 호젠펠트. 이 사람은 실제로도 슈필만뿐만 아니라 많은 유대인을 몰래 도와준, 인간의 양심을 지킨 군인이었다. 폴란드가 침공당하자 영국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다는 라디오 뉴스를 듣고 기뻐하며 만찬을 즐긴 주인공 가족의 모습과, 이후 독일군이 폴란드를 거침없이 점령해버린 모습을 허탈하게 비추는 장면도 인상깊다. 영프 연합군은 선전포고 후에도 특별한 무력행동을 하지 않았고, 사실상 폴란드는 배신당했음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장면.
  • [3] 공영방송국이 포격당할 당시 소개 받은 여성으로, 슈필만과 매우 가까웠던 친구의 여동생이다.
  • [4] 폴란드계 레지스탕스
  • [5] 심지어 도로타 부부의 부탁으로 블라덱을 돕기로 했던 안텍은 그의 도피자금을 횡령하고 도망친다.
  • [6] 실제로 스필만이 장교 앞에서 연주한 곡은, 이 영화의 주제곡이라 할만한 쇼팽 야상곡 C# minor였다고 전해진다. 확인바람
  • [7] 영국 드라마 Upstairs Downstairs의 홀랜드 경을 연기했던 배우이다.
  • [8] 유대인이 아닌 사람으로 홀로코스트 당시에 유대인을 구하는데 참여한 사람들
  • [9] 영화 제작후 3년뒤 2004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 [10] 하네케 감독은 《피아니스트》로 54회 칸 영화제(2001)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고, 62회 영화제(2009)에서 《얀 리본》으로 황금종려상을, 65회 칸 영화제(2012)에서도 《무르》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